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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5일 수요일

왜 검사는 무죄판결에 항소하는가?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7/15/2026 08:03:00 오후 라벨: 검사 , 검찰 , 무죄 , 사법제도 , 설득 , 잡담 , 재판 , 항소
가까운 지인 사이의 대화를 듣게 됐습니다. 한 분은 화가 많이 난 사람, 다른 한 분은 그런 상대방 말 받아주며 위로해주는 사람.
사업체를 운영하시는 분이 일을 하시다 생긴 잘못으로 형사재판을 받다가 다행히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게 되었는데, 검사가 항소를 하는 바람에 2심 재판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무려 2년이 넘는 기간 판사와 검사가 여러 번 바뀌는 와중에 열 번 이상 법정에 나가느라 시달리신 재판이라는데요. 검사는 정작 법정에선 아무 주장도 제대로 못했으면서 왜 굳이 항소를 한 것이며, 그 때문에 또 법정에 나가야 하는 시간과 새로 들어갈 변호사비용 등 손해가 막심하다며 검사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하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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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공적 절차는 단판승부가 없습니다. 반드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후속절차가 마련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재판도 3심제, 삼세판이죠.
만약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으셨다면 억울한 마음에 당연히 항소를 하셨겠죠?
다행히 무죄판결을 받으셨으니, 반대로 상대방인 검사 입장에선 비슷한 이치로 아무래도 항소를 할 마음을 먹기가 쉽겠죠.

만약 누군가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다가 진범이 잡혀서 무죄가 난 사건이라면, 검사는 당연히 항소를 하지 않을 겁니다. 무죄가 100% 맞으니까요.
무죄가 100% 맞는 사건은 아니더라도 재판 중에 새로 밝혀진 사실들에 의해 검사 스스로 이거 영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드는 사건이라면, 무죄가 났어도 항소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내용을 좀 듣자 하니 이 사건은 그런 사건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잘못된 행위를 한 건 맞는데 고의(알고도 한 거냐 아니면 모르고 한 거냐)가 있냐 없냐가 문제되는 사건입니다.
잘못된 행위 자체야 외부로 보이는 거니까 목격자나 CCTV 영상 같은 객관적인 증거를 수집할 수 있고 쉽게 증명이 가능하지만, 고의라는 건 사람 마음속의 문제이니 이걸 증거라는 걸로 증명하는 건 많이 어렵습니다. 판검사들 입장에선 기껏해야 잘못된 행위 앞뒤에 있었던 이런저런 정황들만 놓고 이 사람이 이걸 알았을 거야 또는 몰랐을 거야 라고 추정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 이유로, 간혹 사람 속마음을 증명한답시고 휴대전화 압수하고 단톡방 탈탈 터는, 무리스런 일을 벌이기도 하는 거구요.

아마도 이 사건에서의 검사의 논리는 ‘이 잘못된 행위가 장기간에 걸쳐 여러 번 있었는데 그리 큰 규모도 아닌 업체의 대표가 그걸 전혀 모를 수 있었겠느냐? 분명 알았을 거야. 설령 완전 구체적으로까진 몰랐더라도 대략은 짐작하고 있었을 거야’ 라는 걸 테고, 이 대표를 대리하는 변호사의 논리는 ‘그 일은 이 업체의 전체 업무 중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거의 자동반복적인 업무라 대표가 거기까진 알 수 없었다. 그걸 해서 얻을 이익도 미미하니 그런 짓을 할 동기가 없다’ 라는 걸 겁니다.
둘 다 천양지차의 결론을 가져올 전혀 상반된 논리이지만, 이런 정반대의 논리가 가능한 사건, 즉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는 사건은 의외로 흔합니다. 외견상 정반대의 논리와 결론으로 보이지만, 사실 세상 일이란 게 정답이 없는 경우가 많고 진실이냐 아니냐는 겨우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건에서 중요한 건, 검사든 변호사든 판사를 얼마나 잘 설득해서 저 두 논리 중 나의 논리로 이끌어오느냐 입니다.
여기서 스킬의 차이, 경험의 차이, 성실성의 차이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는 거겠죠. 이런 게 바로 ‘설득’의 구성요소들입니다.
요즘 검찰의 주력부대는 1-2년차의 신참검사들입니다. 요즘 검찰이 그런 암담한 형편입니다. 만약 저 사건을 이런 1-2년차 신참검사가 담당했다면, 설득이란 일이 참… 글쎄요.
20년 넘는 경력자인 저라면, 잘 설득할 자신 있습니다. 유죄 확률이 확 올라갈 겁니다.
그런데도 혹시나 설득에 실패해 무죄가 났다면, 그러면 저라도 역시 항소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건은 설득이 중요한 거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유무죄가 100% 확실한 사건이 아니거든요. 그러니 설득 한 번 실패했다고 그냥 그걸로 끝이 아닌 거에요, 아쉽고 부족했던 부분 잘 보완해서 다시 더 잘 설득해봐야죠. 제가 일단 한 번 맡았던 일이고 열심히 했던 일인데, 어떻게든 잘 해보려는 그 정도의 성의와 노력은 있어야죠.

유무죄라는 게 법으로 명확하게 정해져 있어야지 겨우 설득 같은 걸로 결론이 왔다갔다 하는 게 말이 되느냐? 라는 의문이 드실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상하긴 하지만, 실상이 그런 걸 어쩌겠어요. 그래서 재판이란 건 함부로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고 심장 쫄깃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그렇게 된 것으로 보이니, 항소한 검사를 너무 미워하진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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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말을 차마 그분에게 드리진 못하고 입 안에만 담아두었습니다. 자칫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격이 될 수 있고, 사실 제가 무슨 말을 드린들 그게 귀에 들어오겠어요.
그래도 혹시나 나중에 그분이 저한테 의견을 구하신다면 이렇게 간단히 답하겠습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하셨을 텐데, 1심에서 좋은 결과 보셔서 다행입니다.
다만 너무 매몰찬 말로 들리시겠지만, 이 무죄판결은 원래 내 껀데 잠시 맡겨놓으셨다가 당연히 찾아가시는 그런 게 아닙니다. 똑같은 일을 놓고도 보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는 거고, 아마도 이 재판 시작할 때 감히 무죄를 장담할 순 없으셨을 테니까요. 다행히 유능한 변호사님이 열심히 노력하고 검사보다 판사를 훨씬 더 잘 설득해주신 덕분에 이런 결과물을 얻게 되신 겁니다.
이 사건의 성격상 검사가 항소하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로 보이구요, 남은 2심 재판도 잘 준비하고 대처하셔서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 사진은 서울 덕수궁 옆에 있는 옛 검찰종합청사입니다. 1973년부터 1995년까지, 서초동 법조타운이 들어서기 전까지 대검찰청, 서울고등검찰청, 서울지방검찰청이 이 한 건물에 옹기종기 모여있었습니다.
지금은 서울시청 서소문청사로 사용되고 있고, 13층 정동전망대는 창밖으로 궁궐뷰가 일품입니다.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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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3일 월요일

[성경] 세리 마태 이야기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7/13/2026 07:58:00 오후 라벨: 검사 , 검찰 , 성경 , 세리 마태 , 잡담
9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길을 가시다가 마태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마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마태가 일어나 예수를 따랐습니다.
10 예수께서 집에서 저녁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도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었습니다.
11 이것을 본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의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어째서 너희 선생님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어울려 먹느냐?”
12 이 말을 듣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원하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태복음 9:9-13, 우리말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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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마태복음에는 세리 마태가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마태는 바로 마태복음을 쓴 그 마태인데요, 마태복음 중간에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삽입해놓은 겁니다.
2026년 2월 22일 제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은 이 세리 마태에 관해 대략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설교하였습니다. 

세리는 유대인들로부터 정해진 것보다 많은 액수의 세금을 걷는 방법으로 돈을 갈취해 일부는 자신들이 챙기고 일부는 지배자인 로마에 바치는 악행을 저질러서, 동족들로부터 매국노, 반역자 취급을 받던 직군이었습니다. 성경에는 곳곳에서 '세리와 죄인들'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렇게 세리를 다른 죄인들 앞에 따로 구분해서 표시한 건 세리를 다른 죄인들보다 특히 더 악한 류의 죄인으로 본다는 의미입니다. 죄인 중의 죄인이고, 그로 인해 유대인 사회로부터 철저히 단절되고 소외된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중죄인임을 뻔히 알면서도, 괜히 가까이 했다간 사람들이 비난할 게 충분히 예상됨에도, 예수님은 오히려 "나를 따라라"고 하며 마태를 제자로 부릅니다. 이는 구원의 대상에서 죄인도 예외가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까지 말합니다. 마태는 세리 일을 하면서 꼼꼼한 기록 실력을 갖게 되었을 텐데, 결국 그 실력을 잘 활용해서 마태복음을 집필하는 위대한 사명을 수행합니다.    

저는 이 설교를 들으며 큰 감동을 느꼈습니다. 
세리는 요즘으로 치면 세무공무원으로서 예수님 시절에는 사람들을 상대로 가렴주구를 일삼는 탐관오리였다는 건데요,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렇게 손가락질 받는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을 수 있고 선한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이죠. 세상 사람들로부터 어떠한 평가를 받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절대자로부터 어떠한 평가를 받느냐인 거구요.
저도 지금 이 시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나는 왜 하필 이런 직장에 들어와 왜 항상 죄인 취급을 받는 건가 하고 늘 불만이었고 그 손가락질이 싫었고 그 손가락을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세리 마태 이야기가 감동이었습니다. 제가 지금 죄인으로 사는 것은, 어쩌면 세리 마태처럼 제가 선택을 받고 쓰임을 받기 위해서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제가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지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제게 걸림돌이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단지 저는 이런 제 삶을 감사해하며, 선택과 쓰임에 대한 소망을 갖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치는, 비단 저뿐만 아니라 이 땅의 죄인들, 악한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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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4일 토요일

서울 405번 버스와 서래마을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1/24/2026 07:37:00 오후 라벨: 서래마을 , 잡담 , 프랑스 생활 , 프랑스어

서울의 강북과 강남을 잇는 405번 버스를 한 번 타보세요. 양재동 차고지에서 출발해 서초동을 지나 반포대교를 넘어 이태원, 남산, 서울시청까지 갔다가 다시 양재동으로 돌아옵니다.

중간에 들를 만한 곳이 많이 있습니다.
예술의 전당, 공연이나 전시 아니라도 그냥 호젓하게 산책하거나 식사하기 좋습니다.
서초동 법조타운, 시끄럽고 복잡하니 여긴 들르지 마시라고 일부러 적어둡니다.
강남성모병원, 국립중앙도서관이나 서래마을이 가깝습니다.
서빙고역, 주한미군 장교 숙소로 쓰이던 조용한 미국마을이 인스타 명소가 되었습니다.
보광동, 유명해진 지 오래된 이태원 엔틱가구거리가 있는 곳이죠.
이태원역 지나 제일기획부터 한강진역 사이, 이미 잘 알려진 리움미술관과 블루스퀘어 외에 요새 꼼데가르송길이라고 부르는 운치있는 이 거리를 비롯해 길 안쪽 좁은 골목이 아기자기한 가게들로 핫합니다.
이제 버스는 남산 중턱에 올라 순환도로에 들어섭니다. 남산야외식물원이라는 이름의 넓고 한산한 공원이 있고, 정말 작지만 멋진 해방촌 신흥시장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남산도서관에 내리면 약간?의 등산 끝에 케데헌의 명소 남산타워에 오를 수도 있구요.
남산에서 내려오면 남대문, 서울역, 명동, 서울시청을 지나갑니다.
회차하여 다시 강남쪽으로 올 때는 반포대교가 아니라 잠수교를 건너온다고 하는데요, 잠수교 정류장에 내리면 반포한강공원과 세빛섬을 가볍게 가볼 수 있습니다.

405번 버스를 소개하게 된 건, 며칠 전 이 버스에 탔다가 우연히 듣게 된 안내방송 때문입니다. 다른 정류장엔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서초역을 지나 다음 강남성모병원 정류장을 안내할 때 문득 “아레 드 로삐탈 쌩뜨 마리”라는 말이 들리더라구요.
프랑스말인데요, “Arrêt de l'hôpital Ste. Marie”, 직역하면 ‘성모마리아 병원 정류장’입니다. 이 병원 앞 반포대로 건너 동네가 프랑스인들이 많이 산다는 서래마을이고, 반포대로 가로수들은 파리 샹젤리제 거리처럼 죄다 깍뚝머리를 하고 있고, 반포대로 제일 높은 언덕에는 무려 ‘몽마르뜨 공원’도 있는데요, 이 버스 안내방송도 이 동네 분위기에 한몫 거들고 있는 거네요. ~ㅎ


++ 2026년 7월 5일 추가 
: 이후에 역시 강남섬모병원 앞을 지나는 740번과 5413번 시내버스를 타봤는데, 이 버스들에서도 이 병원에 다다를 무렵 역시 같은 프랑스어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버스회사별로 따로따로 안내방송을 만드는 게 아닌 모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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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25일 목요일

'공정'에 대한 오해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9/25/2025 10:41:00 오후 라벨: 공정 , 독서일기 , 성경 , 잡담
요즘 사람들이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슈는 ‘공정’입니다. 공정이라는 단어에는 폭넓은 의미가 담겨있지만, 지금의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공정의 개념은 추측건대 ‘내가 남보다 손해를 볼 수는 없다’인 것 같습니다. 여러 사람이 있는 조직인 경우, 내가 남보다 같은 값에 더 많은 일을 하거나 남이 누리는 걸 못 누리는 건 불공정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불만을 쉽게 상사나 직장에 돌리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직장에서의 일이란 각자 비슷한 정도씩의 부담을 지도록 역할분담이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그게 완벽히 똑같을 수는 없는가 하면, 누구의 일인지 불분명한 일이 예기치 않게 생겨 누군가는 그걸 떠맡아주어야 하는 상황이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기여한 성과에 따라 차등적으로 부여되어야 하는 혜택들을 본래의 취지에 맞게 부여하는 게 난해한 경우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 공정으로 인한 갈등을 만나면 일단 답답하고, 이를 해결하는 게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읽은 <청년복음>이라는 책(조광운 지음, 세움북스, 2025)에서, 이 문제에 대한 의외의 인사이트를 얻었습니다. 복음에 대해 해설하는 기독교 서적인데요, 부제는 <불안의 시대, 복음이 말하는 7가지 청년 설루션>입니다.  
이 책 제7장 "공정과 복음"에서는 마태복음 20장 말씀을 갖고 우리가 흔히 '공정'에 대해 갖고 있는 오해를 짚어줍니다(179면 이하). 먼저 마태복음 20장 말씀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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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늘나라는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떤 포도원 주인과 같다.

2 그 주인은 하루 품삯으로 1데나리온을 주기로 하고 일꾼들을 포도원으로 보냈다.

3 오전 9시쯤 돼 그가 나가 보니 시장에 빈둥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4 그는 그들에게 ‘너희도 내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적당한 품삯을 주겠다’라고 했다.

5 그래서 그들도 포도원으로 들어갔다. 그 사람은 12시와 오후 3시쯤에도 다시 나가 또 그렇게 했다.

6 그리고 오후 5시쯤 다시 나가 보니 아직도 빈둥거리며 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왜 하루 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서 빈둥거리고 있느냐?’ 하고 물었다.

7 그들은 ‘아무도 일자리를 주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주인이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도 내 포도원에 와서 일하라.’

8 날이 저물자 포도원 주인이 관리인에게 말했다. ‘일꾼들을 불러 품삯을 지불하여라. 맨 나중에 고용된 사람부터 시작해서 맨 처음 고용된 사람까지 그 순서대로 주어라.’

9 오후 5시에 고용된 일꾼들이 와서 각각 1데나리온씩 받았다.

10 맨 처음 고용된 일꾼들이 와서는 자기들이 더 많이 받으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각 사람이 똑같이 1데나리온씩 받았다.

11 그들은 품삯을 받고 포도원 주인을 향해 불평했다.

12 ‘나중에 고용된 일꾼들은 고작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뙤약볕에서 고되게 일한 우리와 똑같은 일당을 주시다니요?’

13 그러자 포도원 주인이 일꾼 중 하나에게 대답했다. ‘여보게 친구, 나는 자네에게 잘못한 것이 없네. 자네가 처음에 1데나리온을 받고 일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14 그러니 자네 일당이나 받아 가게. 나중에 온 일꾼에게 자네와 똑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네.

15 내가 내 것을 내 뜻대로 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은가? 아니면 내가 선한 것이 자네 눈에 거슬리는가?’

16 이처럼 나중 된 사람이 먼저 되고 먼저 된 사람이 나중 될 것이다.”

(마태복음 20:1~16, 우리말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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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특이한 예화입니다.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이나 딸랑 1시간만 일한 사람이나 모두 동일한 일당을 준다니요. 동일노동에 동일임금 아닌가요. 그야말로 불공정하기 짝이 없는 처사인데, 포도원 주인은 그걸 공정하고 선하다고 우기고나 있고 말이죠. 
<청년복음> 저자는 이 이야기가 불공정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합니다. 불공정하지 않은데 우리가 착각하고 오해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다만, 저자의 의견에 제 생각을 살짝 보태 표현을 다소 달리하였습니다). 

1. 저 상황은 얼핏 보면 불공정해 보일 수 있는 상황이지만, 하나님 입장에서 다른 차원의 공정함과 지혜가 담겨있을 수 있으니 우리가 세상의 관점으로 쉽게 불공정하다고 속단하거나 분노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무언지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2. 이 주인은 잘못한 게 없습니다. 사실 자신이 한 약속을 다 지켰기 때문이에요. 더 먼저 와서 일한 사람들에게 당초 주기로 한 일당을 다 주었거든요. 근데도 이 먼저 와 일한 사람들은 분노합니다. 왜냐, 당초 자신들이 받기로 한대로 1데나리온의 일당을 다 받긴 했지만 늦게 와서 고작 1시간만 일한 사람도 1데나리온을 받는 걸 보고는 자신들도 1데나리온은 넘게 일당을 받으리라는 기대가 생기게 됐고, 다른 말로 하면 욕심이 생겼거든요. 
즉, 문제의 본질은 자신의 욕심인데, 그걸 남한테 불공정이라는 탓을 하고 화살을 돌리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합니다. 

3. 이렇게 먼저 온 사람들은 불공정한 처사를 당했다고 억울해하지만, 맨 마지막에 온 사람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자신이 이 불공정한 세상에서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먼저 온 사람들은 나중에 온 사람들보다 나이가 젊거나 신체적 능력이 낫거나 등의 무언가 우월한 조건이 있기 때문에 일찍 고용된 것일 거거든요. 이런 '조건'을 갖췄느냐 아니냐만으로도 출발점이 달라 불공정을 논할 수 있는 것이잖아요. 
우월한 조건이 있어 쉽게 일자리를 얻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이미 받고 있는 혜택에는 눈감은 채, 자신들이 받지 못한 혜택에 대해서만 분노하는 건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4. 인간 세상의 공정과 하나님 나라의 공정은 그 원리가 다르다고 합니다. 인간 세상에서는 공정이 성과주의와 능력주의에 기반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공정은 은혜, 자비, 사랑에 기반합니다. 
위 15절에서 "선한 것"이라고 한 부분은 "관대함"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 당시 한 가족이 하루 먹고 사는 데 필요한 최저생계비가 1데나리온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러니 주인 입장에서는 냉혈한이 아닌 다음에야 비록 딸랑 1시간만 일한 사람이지만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일당을 줄 순 없었던 겁니다. 은혜, 자비, 사랑의 관점에서 본다면 말이죠. 
이런 관대한 조치가 먼저 온 사람들 입장에서야 물론 억울하고 분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은혜, 자비, 사랑이라는 차원에서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최저생계비 정도는 주자는 게 바로 하나님 나라의 작동원리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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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3일 토요일

프랑스 언론이 소개하는 K-푸드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4/13/2024 04:20:00 오후 라벨: 문화 , 식도락 , 음식 , 잡담 , 프랑스 생활
2024년 4월 12일자 '20 minutes' 기사 "Corée du Sud : La K-food cartonne en France (et ce n’est pas que le bibimbap)"를 소개합니다. "한국 : K-푸드가 프랑스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비빔밥만 있는 게 아니다)"라는 제목이고, 부제는 "On a testé quelques classiques de la street-food coréenne, encore sous-cotés en France", 아직 프랑스에서는 과소평가되고 있는 한국 길거리 음식 몇 가지를 시식해봤답니다. 

이 기사에서 소개한 우리나라 길거리 음식은 다섯 가지입니다. 떡볶이(Le Tteokbokki), 옥수수 핫도그(Les Corn Dogs), 소떡소떡(Les Sotteok Sotteok), 소주를 곁들인 치킨(Le poulet frit avec du Soju), 빙수(Le Bingsu).
대부분 남성형 관사를 앞에 붙이는군요. 소떡소떡은 소세지와 떡이 여러 개 합쳐있으니 복수형 관사를 붙이나 싶은데, 핫도그에는 왜 복수형 관사를 붙이는지 모르겠네요. 
치킨에 소주를 곁들이라는 것도 참 특이한 시선으로 관찰한 거구요. 


2023년 4월 29일에도 K-푸드를 소개한 기사가 있었습니다. "La K-Food, l’autre soft power de la Corée du Sud pour diffuser sa culture". "K-푸드는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또 하나의 소프트 파워이다".
K-푸드가 K-팝, K-드라마와 함께 한류 전파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데, 파리의 한식당이 2018년 120곳에서 2023년 250곳으로 크게 늘어난 사례, 2020년 오스카를 휩쓴 영화 '기생충'에 두 가지 라면을 섞은 '짜파구리'가 등장한 것을 계기로 한국 라면회사의 미국 매출이 26.5% 증가한 사례를 소개합니다. 
다만, K-푸드가 중국이나 일본과 경쟁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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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31일 화요일

Day6,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10/31/2023 02:49:00 오후 라벨: 대구 , 데이식스 , 인생 , 잡담
‘Day6’라는 밴드의 ‘행복했던 날들이었다’라는 노래 얘기를 해보려 합니다. 엄청 흥겹고 중독성 있는 반주와 멜로디가 참 매력적인 노래입니다.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노래라 요새 이 노래 되게 자주 반복해서 듣고 있습니다.

이 노래의 대략적인 가사는, 연인과 헤어지고 나서 그때 참 행복했었네 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회상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가사를 찬찬히 살펴보다 깨닫게 된 게 하나 있어요.

이 가사의 화자는 그때가 좋았고 또 좋았다고 하면서도, 다시 좋았던 그때로 돌아가고파요,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어요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에요. “지난날로 남겨야지” 하는 마지막 부분 가사처럼 지난날은 단지 지난날일 뿐이고 그냥 그때가 좋았었다 라고 딱 거기까지만 쿨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한 사람과 꽤 오래 연애를 해서 연애를 할 만큼 했고 후회도 안 남을 정도로 행복하게 잘 연애했기 때문이에요. 오래 연애를 했으니 이젠 헤어질 시점도 됐고 이쯤에서 이 정도로 연애가 끝난 건 잘된 일이고 그래서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이거지, 지금 그녀를 못 봐서 마음이 아프니 그녀와 다시 시작하고 싶다 하는 바람은 안 들어있는 가사입니다. 

공무원인 저는 최근에 인사이동으로 1년 3개월 동안 근무하던 대구를 떠나 용인으로 근무지를 옮기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행복하고 후회 없는 대구 생활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좋긴 좋았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아요. 
왜냐면 저 곡의 노랫말처럼 그게 우리 인생이기 때문이에요. 좋았다고 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거나 계속 그 상태 그대로 있으면 안돼요. 연애를 할 일이 있을 때 그때 시간 헛되이 보내지 않고 후회 없이 행복하게 연애를 하되, 시간이 흘러가고 기한이 차면 당연히 그 연애는 끝나기 마련인 거고, 그렇게 되면 다시 새로운 연애로 나아가야 하는 게 인생인 것이에요. 새로운 연애가 싫으면 아예 결혼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든가요. 결혼을 했으면 그 다음으로 육아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다시 넘어가구요. 이렇게 계속 새로운 일이 벌어지고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야 하는 게 인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그날 신나는 마음으로 대구를 떠났습니다. 이제부터는 대구에서의 일을 후회 없었다, 정말 좋았다, 행복했었다 라고 기억하며 살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번에 새로 오게 된 용인에서 여기 분들과 또 새로운 연애를 하면서 행복하게 잘 살려고 합니다. 대구에서처럼 잘 살려고 합니다.
대구에 저와 같이 계셨던 분들도 저처럼 또 새로운 연애를 하시면서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란다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드리고 대구를 떠나온 한 달 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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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16일 토요일

인스타그램에서 브르따뉴 지역을 홍보하는 AI 여인, Anne Kerdi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9/16/2023 01:40:00 오후 라벨: 인공지능 , 잡담 , 프랑스 생활 , AI

2023년 9월 10일자 '20minutes'지에 재미있는 기사가 올라왔네요. 
"Qui est Anne Kerdi, cette mystérieuse Instagrameuse qui vante les charmes de la Bretagne ?"

Anne Kerdi라는 이름을 가진 미모의 프랑스 여성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브르따뉴 지역을 홍보합니다. 그런데 이 여성은 30세의 한 프로그래머가 인공지능으로 탄생시킨 가상인간입니다. 
이 기사가 전하는 현재의 팔로워 수는 5천 명인데, 이 기사 덕분에 팔로워가 많이 늘겠습니다.  
그녀의 인스타 계정을 저도 팔로했습니다. 16년 전에 한 번 여행을 가본 브르따뉴 지역에도 관심이 있고, 그녀에게도 관심이 가네요. 제가 아는 누구와 참 많이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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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3일 수요일

인왕재색도를 보고 와서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5/03/2023 09:05:00 오후 라벨: 미술 , 예술 , 인왕재색도 , 잡담

오늘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이건희 컬렉션 전시회를 보고 왔습니다. 가기 전에 이번 전시회의 주인공격인 겸재 정선의 ‘인왕재색도’에 대해 살짝 야트막하게 공부를 해봤습니다. 잠깐 썰을 풀어보겠습니다.   





이런저런 글을 찾아보니 겸재 정선은 그냥 화가가 아니더군요. 몰락한 양반 가문 출신인데, 생계를 위해 그림을 그리다 전국적으로는 물론 저 멀리 중국에까지 명성을 떨친 조선 후기 최고 인기 화가라고 합니다. 유명세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왕이 되기 직전의 어린 영조에게 그림을 가르치기까지 했고 집권세력인 노론의 정치인들과도 각별한 친분을 쌓아, 나중에는 작은 고을의 수령도 해보고 중앙에서 중요한 관직을 맡기도 하는 등 승승장구하였다고 하네요. 


일흔이 넘어 그의 인생 말년에 그린 대작이 바로 ‘인왕재색도’인데요, 한양 인왕산에 막 비가 그치면서 운무가 피어오르는 광경을 웅장하게 묘사한 그림입니다. ‘齋色’의 ‘齋’는 ‘비 그칠 재’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왕재색’은 인왕산에 비가 그쳐 본래의 색(모습)을 드러낸다는 의미가 되구요. 

그냥 가만히 있는 산 풍경을 그린 게 아니라 이제 막 비가 그쳐 땅에서부터 안개가 피어오르는 바로 그 순간을 그린 거라서, 정적이지 않고 동적인 느낌을 줍니다. 비 내린 직후에 산 골짜기 여기저기서 물줄기를 뱉어내는 작은 폭포들도 그려놓아선지 더욱 힘차고 생동감 넘쳐 보이네요. 

그저 시원스런 풍경이고 다 좋은데, 이상한 장면도 하나 들어있어요. 오른쪽 밑에 있는 집, 지붕이 좀 괴이합니다. 찌그러진 건지 잘못 그린 건지, 3차원적으로 말이 안 되는 지붕 모양이 퍽 어색합니다. 지붕을 왜 이렇게 그린 건지 딱부러지게 설명한 글은 못 찾겠네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작년에 재밌게 본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마지막 회에선가 인왕산 아랫동네에 막 이사 온 편의점 사장님이 동네 지리를 익히느라 이 그림을 꼼꼼히 살펴보던 장면도 떠오르네요. 


정선이 이 그림을 그린 이유는, 단지 인왕산 풍경이 좋아서만은 아닌 거 같구요, 학설이 분분하네요. 정선도 인왕산 아랫동네 주민이었다는데 혹자는 같은 동네 사는 절친의 쾌유를 기원하며 그린 그림(비가 개듯이 건강 회복을 기원한다는 취지)이라고 하고, 혹자는 사도세자 문제로 영조와 갈등을 겪고 있던 노론 집권세력의 정치적 견해가 은밀하게 담긴 그림(비가 개듯이 왕과의 관계 회복을 바란다는 취지)이라고도 합니다. 

인왕산은 참 멋있는 산이고, 인왕산 아랫동네는 경복궁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서촌’이라 불리며 경복궁 너머에 있는 ‘북촌’과 더불어 수년 전부터 외국인이나 관광객들을 무지하게 끌어들이고 있는 핫한 동네입니다. 조선 왕조가 들어서고 한양으로 도읍을 정할 때 무학대사는 인왕산을 주산으로 해서 동쪽을 바라보게 궁궐을 짓자고 하고 정도전은 북악산을 등지고 남향으로 궁궐이 들어서야 한다고 다투다, 결국 정도전이 이긴 거라고 하죠. 

인왕산은 밑에서 보는 것보다 정상에 올라서 서울 사대문 안의 전경, 특히 산등성이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져 나가는 한양도성 성곽을 바라보는 뷰가 아주 일품입니다. 


최근에 국립대구미술관에서도 이건희 컬렉션 전시회가 있었습니다. 요새 이건희 컬렉션 붐이 불고 있다고 합니다. 무려 2만 점이 넘는 이건희 컬렉션 작품들은 수도권에 있는 한두 박물관에만 기증된 게 아니라 전국 각지의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에 나누어 기증되었다고 해요. 워낙 기증된 작품 수가 많아서 전국의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내년 2024년까지 전시일정이 죽 잡혀있고, 전국에서 전시회가 열리니 전국적으로 사람들 관심을 끌고 붐이 생긴 것이죠. 

그 덕분에, 남들 다 가본다고 하니 저처럼 평소 미술에 아무 관심 없던 사람도 여기 대구에서 인왕재색도가 뭔지 공부를 하고 이걸 직접 보려고 박물관이란 델 가볼 생각을 하는 것이겠구요. 이 기증이 우리 사회와 문화에 큰 기여를 한 셈입니다.    

이번 전시회는 7월까지 계속되지만, 이 인왕재색도는 안전한 보존을 위해 전시한 지 딱 한 달이 되는 5월 7일까지만 여기 있다 다른 작품으로 교체된다고 합니다. 타이밍 잘 맞춰 잘 보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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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13일 화요일

택시와 Tech, IT

댓글 1개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7/13/2021 09:41:00 오전 라벨: 아이폰 , 앱 , 잡담 , IT

택시, 승객 입장에서 불편한 거 많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담배 냄새, 총알 질주, 신호 무시, 특히 시사·정치 얘기 등등, 누구나 풍부한 경험담들이 있고 그게 지난번 ‘타다’ 논란에서 터져들 나온 거죠.
그 외에 승차거부가 첫손가락에 꼽히기도 해요. 승차거부 당하면 우리 동네 푸대접? 하는 마음이 들어 기분 참 안 좋긴 합니다만, 사실 욕하기 좀 애매한 면도 있습니다. 행선지만 보면 견적 바로 나오는데 제가 기사라도 승차거부 안 할 자신 없거든요. 회사택시 사납금 제도 때문이라고도 말하지만, 인간의 욕구와 본능 자연스럽고 뻔한 건데 벌로만 다스리고 억누르는 건 글쎄요.

아무튼 맘 상하기 싫어 가급적 안 타려 하지만, 그래도 선택의 여지 없는 상황이 꼭 있습니다. 얼마 전에 기차 타고 올라와 새벽 1시 다 돼서 용산역에 떨어진 적이 있었죠. 딱 ‘택시각’입니다. 택시정류장에 줄 섰습니다. 근데 정작 택시정류장엔 택시가 없어요. 무슨 동정이라도 살피는 듯 택시는 다들 그 근처만 슬슬슬 배회하고 있더라구요.
알고 보니, 이 시간에 택시정류장에 줄서 있으면 바보 인증인 거더군요. 얼른 폰 꺼내 앱 열어 콜 해야 하는 거더군요. 앱으로 제 행선지 먼저 알려줘야 제가 골라잡힐 수 있는 거더군요. 결과는 승차거부랑 똑같은데, ‘거부당했다’라기보단 ‘선택되지 않았다’라는 거여서 모양새는 좀 다르죠. 앱으로 만난 택시 기사님이 미안한 말투로 에둘러 설명을 해주시네요.

이게 맞다 안 맞다 고쳐야 한다 바꿔야 한다, 이런 말 할 생각 없습니다. 그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마트폰 안 쓰는 사람들은 밤에 택시도 못 잡고 참 힘든 세상이겠구나, 스마트폰 있어도 유튜브만 보시는 우리 부모님은 가급적 집에서 나오지 마시라고 해야겠구나, 우리 애들 아직 스마트폰 없는데 얼른 사줘야 하는 건가.
택시 욕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테크놀로지라는 건 우리 사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거다, 자칫 게을러져서 이거 손 놓고 살면 큰일 나겠다, 다수가 그 혜택을 누리는 와중에 누군가 여기서 소외되거나 무시당하면 안 되겠다, 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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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3일 토요일

직장인의 식사자리와 '쉐어'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7/03/2021 09:46:00 오후 라벨: 공감 , 소통 , 식도락 , 잡담 , 직장

이탈리안 음식점 같은 델 가면 여러 요리 시켜서 여러 명이 나눠먹는 ‘쉐어’ 풍경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음식을 다 맛볼 수 있다는 이유로 즐기는 분들도 많지만, 저는 이런 거 딱 질색입니다. 친구나 가족이나 편한 사람들과 함께일 땐 그나마 낫지만, 특히 직장 동료들과 있는 자리에선 정말 싫습니다.

첫째, 접시가 이리저리 오고가야 하고, 양 조절 잘해야 합니다. 정신 사납고 음식 덜기 아주 귀찮습니다. 이런 류 음식 양도 얼마 안 되는데, 찔끔찔끔 덜자니 양에도 안 차구요.

둘째, 음식 꼭 남습니다. 아깝습니다. 음식에 대한 소속감, 소유의식, 책임감이 옅어지고, 남들 보기에 불쌍해 보일까봐 싹싹 안 긁어먹기 때문이죠.

셋째, 이게 제일 중요한 이유인데, 은근 서열 신경 쓰입니다. 상급자보다 먼저 내가 음식에 손대도 괜찮나 싶습니다. 밥 먹는 자리에서 머 그런 거까지 신경 쓰느냐구요? 노 노, 사회생활이란 남 눈치 안 보고 사는 거 절대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눈치 없는 사람들이 공감능력 떨어지는 경우 많고, 여럿 모여사는 데선 누구나 남 얘기 쉽게 하기 마련이거든요. 당위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는 겁니다.

가만 생각하니 이탈리안 뿐만 아니라 한정식집이나 중식당에서 몇 가지 요리들이 차례로 나오는 경우도 그렇고, 평범한 밥집에서 큰 냄비에 탕이나 국 같은 거 끓여 각자 국자로 덜어먹는 경우도 마찬가지겠네요. 
암튼 저는 덜어먹고 국자질 하는 거 아주 귀찮습니다. 그냥 내 꺼 나 혼자 퍼먹는 게 좋은데, 직장생활이란 메뉴 선택권 없는 경우도 많아서... 오늘 점심도 음식 많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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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9일 토요일

야구와 심판, 심판과 야구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6/19/2021 04:45:00 오후 라벨: 사법제도 , 야구 , 잡담 , IT

해태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전성기를 이끈 코끼리 감독, 김응용 감독님의 발자취를 추억하는 프로그램을 시청했습니다. 그가 리더십을 발휘하는 요령도 소개되는데요, 대략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선수를 전적으로 믿고 선수에게 맡긴다는 겁니다. 이래라 저래라 일일이 잔소리할 거 없이, 그냥 믿고 맡기면 선수가 스스로 알아서 할 일 찾아서 잘 한다는 논리입니다. 이건 아마 리더마다 생각이 다를 거에요, 그냥 내버려두면 안된다는 의견도 분명 많을 거에요.
다른 하나는, 때를 잘 맞춰 고도의 심리전을 벌인다는 겁니다. 선수들의 집중력이나 사기를 끌어 올려야겠다 싶으면 난데없이 냅다 물건 깨부수고 집어던져 공포분위기를 조성합니다. 퇴장을 불사하고 심판에게 달려가 격하게 싸움을 거는 것도 공포분위기 조성의 일환입니다.

저는 다른 부분보다, 심판에게 싸움을 건다는 대목에 관심이 갔습니다. 꼭 심리전 아니라도, 감독이든 선수든 무엇인가 불만을 심판에게 분풀이하는 경우가 있어요. 스포츠 경기란 둘로 편 갈라 치고받는 싸움판인데, 간혹 둘끼리만의 싸움이 심판과의 싸움으로 넘어가기도 해요. 심판 일 하시는 분들에겐 죄송한 얘기지만, 그러면서 상대와의 직접적인 싸움 피하고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 어디다 하소연도 하고 스스로 속을 달래기도 하는 거겠죠.
물론 이것도 선을 넘지는 않아야 하구요. 심판에게 항의해서 불만을 보여주는 데서 그쳐야지, 폭력을 행사하거나 판 자체를 엎어버리거나 아예 심판을 없애버리겠다고 하면 안 되는 거겠죠.

그런데 싸움을 걸거나 분풀이를 하려면 심판이 뭔가 석연찮은 판정을 했다던가 하는, 싸움을 걸 만한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야구는 공 하나 하나, 매 번의 플레이마다 심판의 판정이 이루어지죠. 이렇게 무수한 판정들이 있기 때문에 싸움 걸 명분도 잔뜩 널려있습니다. 그래서 심판을 가운데 놓고 심리전이나 분풀이가 용이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새 심판 판정에 대해 챌린지를 하고 비디오판독을 하고 있습니다. 의외로 판정 번복이 꽤 잦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사람한테 맡겨놨나 싶을 정도로 사람 눈이 기계 눈을 많이 못 따라갑니다. 비디오판독이 생기니까 이제 심판을 더 못 믿겠어요. 밑져야 본전이라고, 감독이나 선수들도 왠만한 상황에선 일단 심판 말 무시하고 두 손가락으로 네모를 그리거나 양손으로 두 귀를 덮는 제스처를 합니다.
심판에 대한 신뢰, 권위, 땅 가까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물론 실력 의심되는 심판도 있지만, 감각이나 시력의 한계, 심리적 영향 등 사람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어쩔 수 없는 측면도 분명 있는 걸 텐데요. 이유야 어쨌든 동네북 신세가 됐으니, 심판도 참 못해먹겠네요.

그래서 사람 심판을 없애고 로봇 심판, AI 심판을 도입하자는 얘기도 있죠. 근데 사람 심판이 없어지면 이제 백퍼 정확해진 판정 때문에 야구가 더 볼 만하게 될까요? 더 재미있어질까요?
오심은 대폭 줄 테니 심판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는 없어서 좋겠네요. 화도 안 나겠네요.
다만, 판정이 정확해진 대신 이제 심판에 대한 항의를 심리전으로 이용하는 작전은 더이상 볼 수 없겠네요. 이제 감독이나 선수가 어디 분풀이할 데도, 하소연하거나 속을 달랠 데도 없어지는 거네요. 드디어 야구가 볼썽 사나운 쌈박질 풍경 사라져, 아이들도 맘놓고 즐길 수 있는 점잖고 얌전한 스포츠가 되는 거네요.
근데 그게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낭만야구가 좋냐 너드야구가 좋냐는 질문을 받으면, 선뜻 뭐라고 답을 잘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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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29일 토요일

영화 "라스트 레터(Last Letter)"

댓글 2개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5/29/2021 06:38:00 오후 라벨: 4월 이야기 , 영화 , 잡담
코로나 아니었으면 작년에 진작 극장 가서 봤을 영화를 이제야 유튜브로 봤습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최신작 “라스트 레터”입니다.


언론이나 팬의 평들을 보니 이와이 감독의 최고 히트작인 “러브 레터”의 후속편이라고도 하고 “러브 레터”는 물론 “4월 이야기”나 “하나와 앨리스” 등 다른 전작들까지 한데 아우른 속편이라고도 하는데, 제가 보기엔 이건 뭐 그냥 대놓고 “러브 레터” 판박이네요. 소재도 그렇고 플롯도 그렇고 완전 다 “러브 레터”입니다. 1995년 이후 20년 넘게 속편을 기다려온 “러브 레터” 팬들은 이 영화 정말 좋아하시겠습니다.
다만, 그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던 “러브 레터”가 저한텐 그닥이었습니다. 좀 오글거리는 장면이나 억지로 배배 꼬아놓은 듯한 스토리가 그리 와닿지 않았습니다. 빼박인 “라스트 레터”도 그런 느낌이었구요.

그런데 감독의 1997년 작 “4월 이야기”는 매우매우매우 좋아합니다. 별 대단한 스토리 없이 잔잔하게 장면장면들을 보여주는 따뜻한 분위기의 영상이, 과하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고 조미료 맛 안 나는 담백한 음식처럼 눈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잔뜩 널려있는 여백 자체를 그냥 멍때리며 즐길 수도 있고, 반대로 여백 사이사이를 상상력으로 채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4월 이야기”의 팬으로서, “라스트 레터”에는 “4월 이야기”의 흔적들이 얼마나 숨어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다른 글들을 보면 이 영화에서 발견되는 “4월 이야기”의 흔적이라곤, 마츠 타카코가 다시 주인공으로 기용되었다는 점과 일방적 짝사랑 관계까지만 보여주고 본격적으로 연애하는 장면은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건 좀 억지스럽기도 한 논거이긴 합니다만) 정도뿐이라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도 사실 그렇습니다. “라스트 레터”는 첫사랑이 소재라는 점 말고는 “4월 이야기”가 연상되는 장면도 거의 없네요. 굳이 바득바득 “4월 이야기”의 흔적이라 볼 만한 장면들을 찾아보자면 이렇습니다.

- “4월 이야기”의 가장 뚜렷한 흔적은 뭐니 뭐니 해도 마츠 타카코입니다. 마츠 타카코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었다면, 제가 이 영화를 볼 이유도, 이런 글을 쓰고 있을 이유도 없습니다.
두 영화 모두, 마츠 타카코는 같은 고등학교 선배를 짝사랑합니다. 이 영화의 마츠 타카코는 “4월 이야기”의 그 앳된 대학생이 그 성격과 외모 ‘고대로’ 세월을 덧입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말투, 표정, 행동거지 모두 비슷한 캐릭터의 인물을 연기합니다. 수줍음 많고 낯가리는 성격이면서도 짝사랑 상대에게는 적극적으로 가까이 다가가려는 게 똑 닮았습니다.
캐릭터가 닮은 게 아니라, 마츠 타카코의 연기가 항상 비슷비슷해서 그런 걸까요.     

- 영화 앞부분에 마츠 타카코가 고교 동창회에 나가 중년의 동창생들 앞에서 한 스피치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자신의 차례가 되자 낯을 가리는 듯 쭈삣쭈삣 나와서 재미없고 주변머리 없는 말만 몇 마디 잠깐 하다 들어가고 맙니다.
역시 “4월 이야기”에서 낯선 대학 신입생 동기들을 앞에 두고 자신감 없는 말투와 쑥스러운 표정으로 하나마나 한 말만 하고 마는 마츠 타카코의 자기소개 장면이 바로 연상되는 부분입니다.
어릴 땐 여러 사람들 앞에서 스피치 하는 게 얼굴 빨개지고 참 쉽지 않은 일이어도, 나이 들면 얼굴 두꺼워져서 좀 나아지기도 하는데 말이죠.     

- 이 영화에는 소설가인 주인공이 첫사랑을 잊지 못해 첫사랑을 소재로 쓴 소설책 한 권이 자주 등장하는데, 노란색 하드커버로 된 그리 두껍지 않은 책입니다.
이 책은 “4월 이야기”의 주 무대인 서점에서 두 남녀 주인공이 처음으로 서로 살가운 시선을 마주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노란색 하드커버 책을 바로 연상시킵니다. “4월 이야기”의 책은 만화책이었는데, 두 주인공 사이에 묘한 기운이 흘러 서서히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마츠 타카코가 펼쳐든 책이 만화책이어서 피식 하고 헛웃음이 나오는 장면이었죠.

- “4월 이야기”는 빨간색을 모티브로 쓴 걸로 많이 이야기되는 영화입니다. “라스트 레터”에도 빨간색이 등장하는데, 바로 빨간색 우체통입니다. 영화 전체에서 이 우체통이 거의 유일한 빨간색 소품이네요.
주인공들이 서로 편지로 소식을 주고받느라 우체통이 몇 번 등장한 것뿐이어서, 일부러 “4월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우체통을 등장시킨 건 아닌 거 같구요. 빨간색이 워낙 귀하게 쓰인 것만 봐도, “라스트 레터”는 여러모로 “4월 이야기”까지 담아보려고 한 영화는 아닌 걸로 보입니다.

- “라스트 레터” 앞부분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상황에서 추도 행사의 상주에게 다른 사람이 우산을 씌워주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는 “4월 이야기” 앞부분에서 벚꽃 비가 내리고 벚꽃 비도 비니까 맞지 말라고 결혼식 가는 신부를 우산 씌워주는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이와이 감독의 신작을 보면서 제가 좋아하는 “4월 이야기”를 떠올려 보고 싶었는데, 제가 찾은 비슷한 장면은 고작 요 정도 뿐이네요. 영화 한 번 더 보면 혹시 더 찾을 수 있으려나요.

다만, “4월 이야기”와는 관계없지만, 이 영화 앞과 뒷부분에 두 차례에 걸쳐 등장하는 졸업식 축사 장면은 기억에 많이 남네요. 두 남녀 주인공이 합작해서 만든 이 축사의 내용이 참 좋습니다. 추억, 미래, 인생, 선택, 꿈, 가능성, 장소, 이런 단어들이 나열되는데, 이제 고교시절의 추억을 뒤로 하고 미래를 향해 각자도생하게 되는 동창생들끼리 주고받는 덕담들이 담담하게 펼쳐집니다.
영화가 중간에 좀 지루하고 늘어지는 감이 있긴 한데, 이 감동적인 축사 내용 전부를 듣고 감상에 젖어보기 위해서는 영화를 끝까지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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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9일 화요일

드라마 "나의 아저씨"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3/09/2021 11:50:00 오전 라벨: 공감 , 나의아저씨 , 드라마 , 아이유 , 잡담




2018년에 방영되었다는 이 드라마, 이제야 봤는데, 참 문제 많은 드라마입니다.

어떤 무능한 아저씨가 있습니다.

직장에선 그냥 고지식하기만 하고 유도리가 없어 제때 승진도 못하는 만년 부장입니다. 얼마나 고지식한지, 심지어 연로한 회사 오너가 직접 찾아와 밥 한번 먹자는데 그 면전에 대고 선약이 있네 뭐가 있네 하면서 번번히 퇴짜나 놓는 시건방지기까지 한 사람입니다.
고지식하달 뿐 정직한 건 아니어서 누군가가 퀵으로 보낸 뇌물봉투를 받아들고는 마음이 혹하고, 성격은 소심해서 뇌물 받는 걸 누가 봤을까봐 마음 졸이기도 합니다.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데다 폭력적인 성향까지 있어서, 싫어하던 대학 후배가 자기 윗사람인 사장으로 왔다고 꽁해 있다가 급기야는 사장한테 주먹질을 날리기까지 합니다.
자격증은 있는 기술자여선지 안 짤리고 근근이 버티기는 하는데, 남들 다 하는 직장생활 머가 그리 힘들다고 허구한 날 우거지상에 한숨 푹푹 쉬어가며 꾸역꾸역 회사를 다닙니다.

집에서도 좋은 가장이 아닙니다.
회사에서 퇴근하면 무조건 술집입니다. 집에서도 술입니다. 그렇게 줄창 마셔대는데, 다음날 되면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말짱하고 쌩쌩합니다. 술 하난 잘 마시는데 술 말고 할 줄 아는 건 없어서, 어린 아들에게 보여주는 아빠의 특기라는 게 딸랑 폭탄주 제조법뿐입니다.
게다가 끈끈하고 뜨거운 가족애, 형제애, 친구애로 다른 별볼일 없는 아저씨들과 똘똘 뭉쳐다니기 일쑤입니다. 부모형제 집안 일엔 열일 제쳐놓고 달려가고, 주말에도 동네 조기축구 따라다닙니다.
집에 잘 안 있고, 아내와 대화도 없습니다. 아내한테 유일하게 할 줄 아는 말이 퇴근길에 “뭐 사 가?” 뿐입니다.
이렇게 가정은 뒷전이니 아내도 마음이 떠났습니다. 이 아저씨의 회사 사장과 바람을 피웁니다. 이 아내 직업이 변호사인데, 결혼하고 아이 낳고서야 비로소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한 늦깎이 변호사입니다. 아마도 이 답답한 남편만 믿고 살다가는 앞이 안 보이고 이도저도 안 되겠다 싶어 뒤늦게 두 팔 걷고 생활전선에 나선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무능한 아저씨가 주인공이니, 문제 많은 드라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그런 무능한 아저씨를 한참 어리고 예쁘게 생긴 여자아이가 좋아한다는 설정이니, 이건 머 대놓고 막장에다 논란만 일으키는 드라마일 수밖에요.

그런데 이 무능하기만 한 아저씨가 잘 하는 게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공감능력입니다. 아픈 사람 보면서 같이 아파할 줄 알고, 우는 사람 보면서 같이 울어줄 줄 알고, 화난 사람 보면서 같이 화내줄 줄 압니다. 문제아를 그냥 문제아로 보지 않고, 왜 문제아가 됐는지 이해해주려 합니다. 사람 알아봐주는 마음씨가 쓸만 합니다.
그래서 불쌍하고 불행하게 사는 어떤 아이가 이 아저씨에게 반합니다. 이 아저씨로부터 “고맙다” “착하다” 이런 평범한 말을 듣고 바로 감동 먹습니다. 그냥 별거 아닌 말이지만 평소 못 들어보던 말인 거죠. 나한테도 이런 말 해주는 사람이 다 있네, 이거죠. 아무도 관심없고 거들떠도 안 보는 문제아인 자신을 알아주고 이해해주고 신경써주는 유일한 어른인 거거든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른이 할 역할이 바로 그건 거 같습니다. 아이를 알아주고 이해해주고 신경써주는 거. 같이 공감해주는 거. 그래서 아이가 세상에서 잘 크고 잘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해주는 거.
근데 많은 어른들이 이걸 잘 못하죠. 많은 어른들이 공감능력 없는 꼰대여서 되도 않는 잔소리만 하려고 하니 아이들이 다 피합니다. 어떤 어른들은 심지어 자신의 성공과 이익을 위해 아이를 이용해먹고 아이에게 책임을 미루고 하기도 합니다. 이 드라마에서도 사내정치에 이지안을 이용하려는 어른들이 여럿 등장하고, 영화감독 기훈은 영화배우 유라를 등쳐먹고 상처를 줍니다.

이렇게 이 드라마의 주제는 바로 어른과 아이의 관계,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관계 다시보기라고 생각합니다. 어른들 개개인 다 따지고 보면,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아저씨들처럼 다 쪼잔하고 후줄근하기만 합니다. 훌륭한 사람 하나 없이 각자 다 부족한 점 많고 무능하고 흠 투성이이긴 하죠. 기껏 술이나 먹을 줄 알고 다른 거 할 줄은 몰라 시대에 뒤처지기나 하고 망가진 채 여생을 살죠. 그렇지만, 그렇긴 하지만, 아이들에게 공감할 줄 알아야 하는 게 바로 어른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이번 생 망한 어른들이라도 그거 하나만은 제대로 잘 해보자는 겁니다.  
물론 이 드라마에서 이 박동훈이라는 아저씨는 비현실적인 캐릭터입니다. 이 정도로 착하고 바르고 공감능력 있는 어른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실제 보기 힘든 캐릭터이고 이런 캐릭터 되기 쉽지 않은 거긴 하지만, 그래도 어른들이 가급적 이런 어른이 되려고 하는 노력은 필요하겠습니다. 저도 아저씨인데, 아이들에게 저는 어떤 모습일지...... 

장면장면이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참 여운이 긴 괜찮은 드라마입니다. OST도 참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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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10일 월요일

기생충, 오스카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2/10/2020 11:36:00 오후 라벨: 기생충 , 아카데미상 , 영화 , 오스카상 , 잡담
오늘은 프랑스 언론도 '기생충' 일색이네요.

먼저, 르몽드.

[https://www.lemonde.fr/culture/article/2020/02/10/quatre-oscars-dont-celui-du-meilleur-film-le-triomphe-de-parasite_6029030_3246.html]
다음은, 피가로.

[https://www.lefigaro.fr/cinema/ceremonie-oscars/oscars-parasite-le-phenomene-de-bong-joon-ho-bouleverse-l-histoire-du-cinema-20200210]

그리고 리베라시옹.

[https://www.lefigaro.fr/cinema/ceremonie-oscars/oscars-parasite-le-phenomene-de-bong-joon-ho-bouleverse-l-histoire-du-cinema-20200210]

아무튼 봉준호 감독, 배우, 제작자, 스탭 여러분 모두 축하드립니다. 통역하신 분도요. 저도 영화 정말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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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1일 수요일

시스템과 사람의 열정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1/01/2020 11:23:00 오후 라벨: 골든아워 , 시스템 , 열정 , 이국종 , 잡담 , 직장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조직 내외의 많은 고위급 인사들은 아는 체하며 타이르듯 말한다. '조직은 몇몇 사람의 힘으로 끌려가서는 안 되며 누가 그 자리에 오더라도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의 힘으로 움직여야 한다.' 진리이나 이것만큼 누구나 다 아는 거짓말은 없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특히 특정한 오너(owner)가 없는 대부분의 공조직이나 학교와 같은 조직에서 업무를 추진하거나 정책 방향을 밀어붙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 추진력은 해당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의 열정'에서부터 나온다. 모든 정책 추진에 있어 완성도는 담당자 개개인의 업무 능력에 좌우되고, 이에 대한 최종 책임은 정책 결정권자가 인사권을 행사하면서 완성된다. 모두가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 이유는 그래야만 책임 소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국종, "골든아워1", 131쪽]


시스템이 중요한 건 맞지만, 아무리 훌륭한 시스템이 있더라도 사람의 열정이 없으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고, 시스템이 없더라도 사람의 열정이나마 있다면 가까스로 현상유지라도 하거나 장차 현상개선을 위한 실마리가 되기도 합니다. 결국 일을 하는 것은 사람이지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은 사람이 시동을 걸고 운전을 해야 비로소 작동하는 것이고, 시스템은 그저 사람을 도울 뿐입니다. 그런데 일을 하는 사람에게 열정이 없다면, 그 일은 보나마나인 거겠죠.

그래서 시스템이 물론 중요한 거긴 하지만, 시스템만 강조하는 건 누구나 다 아는 거짓말이라는 겁니다. 시스템이 없어서 그렇다,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런 말들은 자신의 열정 없음을 변명하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핑계에 불과합니다. 개인이 집단 속으로 익명화를 시도하는 격인 거죠.
정말 필요한 노력은 안 하면서 법만 하나 만들어 놓으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다 해결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 역시 누구나 다 아는 거짓말일 것입니다.

"골든아워2"에는 저자가 경험한 세월호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자는 가라앉고 있는 배를 눈 앞에 두고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사고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였다고 합니다. 정작 손을 써야 할 때는 아무 손도 쓰지 못하다, 상황이 종료된 후 비로소 너도나도 나서서 '골든타임' 운운하며 희생양과 공공의 적을 만들어 자신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비겁한 말잔치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을 저자는 뼈아프게 지적합니다.
아무튼 눈 앞의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게 시스템이 없어서인지, 시스템이 있는데도 사람이 열정이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특히 위기상황에서는 더더욱 시스템보다는 사람의 열정이 긴요하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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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7일 일요일

메시지보다 메신저?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10/27/2019 10:43:00 오후 라벨: 공감 , 마이클 코넬리 , 미키 할러 , 법정소설 , 변호사 , 사법제도 , 소통 , 아이디어 , 잡담
요새 흔히 '메시지보다 메신저'라고들 합니다.
메시지보다 메신저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어떠한 주장은, 그 내용이 어떠한지보다 그걸 주장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메신저가 매력 있고 호감을 주는 캐릭터여야, 비로소 사람들이 그가 전하는 메시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제가 일하는 법조 분야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요즘 저는 마이클 코넬리의 법정소설과 형사소설에 빠져 있습니다. 존 그리샴처럼 상황이 박진감 넘치거나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진 않아 오락적인 재미는 덜하지만, 미국의 형사사법제도 자체를 실감나고 잘 이해할 수 있게 그리고 있어 소소하면서도 담백한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가 쓴 미키 할러 변호사 시리즈 중 "탄환의 심판(The Brass Verdict)" 470~471쪽에도 이 '메신저'에 관한 비슷한 취지의 내용이 등장합니다.

샤미람 아슬레이니언 박사는 깜짝 증인이었다.
박사가 재판에 나왔다는 점이 놀라운 건 아니었다.
내가 이 사건을 맡기 전부터 증인 명단에 박사의 이름이 있었으니까. 
놀라운 건 박사의 외모와 성격이었다.   (중략) 
그녀는 활발한 성격을 지닌 푸른 눈의 금발 여성이었으며, 미소 짓는 표정이 편안했다. 
그저 사진을 잘 받는 미인이 아니라, 텔레비전에 나가도 될 정도였다. 
말솜씨가 똑 부러지고 자신감이 넘쳤지만 결코 오만하지 않았다. 
박사는 모든 변호사가 증인에게 바라는 단 한 가지 특징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호감이 가는 인상.'   (중략)
박사는 검사에게 이중의 고민을 안겨줄 것이다.
성격과 매력으로 배심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전문가로서 내놓는 증언이 사건에 결론을 내려줄 테니까 말이다.
재판에서는 증인이 누군지가 아주 중요했다.
실제 증언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에서도 6가지 심리법칙 중 '호감의 법칙'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현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로버트 치알디니에 의하면,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의 외모나 체격이 판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결과들을 소개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거나 호감을 가진 사람이 한 부탁은 거절하기 힘들어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호감의 원천은 상대방의 신체적 매력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상대방과 공유하고 있는 사소한 공통점일 수도 있고, 나를 칭찬해주는 사람이나 나에게 익숙해진 사람 또는 나와 상호협력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호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호감에만 빠져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해 공정하지 못한 호감은 없었는지, 그 호감이 없었을 경우에 나의 선택은 어떠할지를 잘 따져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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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28일 일요일

강사가 피하면 좋을 말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7/28/2019 11:36:00 오후 라벨: 강사 , 강의 , 공감 , 소통 , 아이디어 , 잡담
살다 보면, 일하다 보면,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강의를 들을 때가 흔히 있습니다. 여러 다양한 강사 분들을 접하면서, 강사 분들이 강의 때 이런 말은 좀 안 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짧게 적어봅니다.


1. "우리 때는(옛날에는) ~~~했다”, “그런데 지금은(요새는) ~~~한다” 
과거를 긍정적으로, 현재를 부정적으로 그리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특히 강사가 수강생과 연배나 경력에 차이가 좀 많이 나는 경우에 이런 말을 하시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요, 이런 말 들으면 수강생들은 급격히 강의에 집중력을 잃게 됩니다. 
과거는 과거고 현재는 현재 아니겠습니까. 세상이 얼마나 순식간에 확확 바뀌는데요. 지금 세상에 다시 예전처럼 할 수도 없는 거잖아요.

2. "최고의 강사는 강의를 늦게 시작하고 일찍 마치는 강사이다"
머, 꼭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일단 너무 구린 말이잖아요. 강사 열 명 중 서너 분은 꼭 이런 말을 할 정도로, 너무 자주 들어서 이젠 너무 질리거든요. 
그리고 사실 이거 틀린 말이에요. 요새 사람들은 옛날 분들처럼 시간만 적당히 때우려고 강의에 오는 게 아니에요. 강의에서 정말로 뭔가를 얻어가려고 작정하고 오는 거거든요. 그래서 강의의 퀄리티가 높아야 하고, 컨텐츠가 좋아야 해요. 이게 제일 중요한 거고, 이거 충족 안 되면 곤란해요. 즉, 최고의 강사는 "강의를 잘하는 강사이다"여야 하는 거에요. 

3. "왜 질문 없어요?"
흔히 강의 말미에 Q&A 시간이 있곤 하죠. 그런데 질문하는 수강생은 좀처럼 흔치 않죠. 수강생 입장에서, 나는 질문할 거 없지만 강사 민망하지 않게 누군가 예의상 질문 하나 해주었으면 좋겠다 싶기도 한데, 역시 질문하는 사람 흔치 않죠. 그러고 있는데, 강사가 질문 안 하는 너네 문제다 라는 뉘앙스로 "왜 질문 없어요?"라고 하면 기분이 살짝 상하기도 해요. 이런 분들 중엔 강의 끝나고 강의 주최자 측에 수강생들의 소극성이나 무신경을 지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훌륭한 강의를 듣고도 질문 하나 없는 게 물론 수강생들의 소극성이나 무신경에 따른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강의 내용이 별로여서 질문할 거리가 떠오르지 않는 것일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는 것 아닌가요. 아니면 강사 분의 개인적인 캐릭터가 수강생들의 공감을 사지 못하여 그런 것일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요. 쉽게 수강생들만의 문제로 돌릴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비슷한 경우로, "이렇게 반응 없는 청중은 처음(또는 오랜만)입니다"라는 취지의 강사 멘트가 있습니다. 이 경우도 자기 잘못은 생각 안 하고 수강생만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고 수강생을 기분 나쁘게 하는 멘트입니다. 
얼마 전에 고위공무원을 지낸 60대 강사 분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강의 후 이례적으로 많은 질문이 쏟아졌고 질문하고 답변하는 분위기도 무척 훈훈했습니다. 강의 내용은 그럭저럭 평타 수준이었는데, 강사 분의 개인적인 캐릭터가 매력적이고 수강생들의 공감도 쉽게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수강생들이 아무런 거부감이나 거리감 없이 자발적으로 질문 대열에 나섰던 것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면서, "아, 사람들이 질문 안 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였구나"라는 인사이트를 얻었더랬습니다.     


항상 편하게 강의를 듣기만 하는 주제에, 강의하시는 분들의 애로사항은 배려하지 않은 채 주제넘은 말만 늘어놓아 송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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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21일 일요일

잘 나가는 조직과 구성원들의 소통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7/21/2019 09:09:00 오후 라벨: 공감 , 소통 , 아이디어 , 잡담 , 직장
올해 초에 아주 재미있게 읽고서 여기저기 소개한 칼럼이 하나 있습니다. 2019년 1월 11일자 중앙일보 기자 이동현님의 칼럼 '[분수대] 우리 쿨하게'입니다. 내용 전부를 소개하면 이러합니다.

우리 ‘유사 가족’ 행세는 그만하기로 해요. 쿨한 관계로 지내자고요. 조직에 청춘을 바치던 시절은 끝났어요. 아버지 때에나 있던 얘기죠. 사실 그때에도 말만 그랬을 거 같아요. 궁금해하지 말고, 불필요한 질문도 삼갑시다. 같이 밥 안 먹어도 돼요. 전 ‘혼밥’ 잘하거든요. 
엠티요? 콩글리시인 건 아시죠? 요즘 워크숍이라고도 하던데요. 이름은 워크숍인데 산행이 웬 말입니까. 뼈를 묻으라니요. 전 죽으면 화장할 거에요. 어디에도 묻힐 생각이 없어요. 가족같이 생각하라고요? 멀쩡한 가족 놔두고 내가 왜 당신이랑… 아, 좀 흥분했네요. 어쨌거나 노 땡큐입니다. 
격려 방문을 오셨으면 격려만 하셔야지, 왜 노래방에 가자고 하시나요. 알지도 못하는 노래 잔뜩 예약해 놓고 혼자 신나셨더군요. 정말 격려하고 싶으시면 퀵서비스로 법인카드만 보내시든가, 금일봉을 보내주세요. 아. 카카오페이나 토스 편합디다. 송금해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고, 어쩌고… 죄송한데 그만 듣고 싶습니다. 네 인정해요. 전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 못합니다. 그런데요. 그 시절에나 가능했던 일이에요. 들어도 막 애틋하고 그렇진 않아요. 우리 아버지 얘기도 아니고. 사실 아버지 한잔하시면 늘어놓으시는 옛날얘기도 그렇게 감동스럽진 않거든요. 
뒤늦게 페이스북에 빠지신 건 알겠는데, 이 사람 저 사람 친구 신청하지 말아 주세요. 제발 제 이름 태그 걸어서 포스팅하지 마시고요. 요즘은 유튜브만 하긴 하지만 타임라인 지저분해지는 거 정말 ‘극혐’이에요. 인스타그램도 예전 같진 않은데, 게시물 하나 없는 유령 계정이거나 비공개로 해놓고 친구 신청하시면 열에 아홉은 ‘읽씹’이에요. 아시죠? 
애사심이 부족하다고요? 당초부터 그런 거 없어요. 일을 열심히 하게 하는 방법요?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하면 돼요. 돈을 많이 주고, 조직이 정말 잘 나가서 속한 것만으로 으쓱하게 하는 거. 돈만 많이 주거나, 조직만 잘 나가선 안 돼요. 어차피 조직 운영은 당근과 채찍이에요. 당근이 적어도, 채찍이 과해도 안 돌아가거든요. 
아. 프로답게 손익계산 따져서 받은 만큼 일할게요. 보상하면 더 하고요. 놀아도 조직이 모른다, 더 해봐야 못 받는다, 그러면 뭐. ㅎㅎ 제가 나쁜 게 아니라 조직 관리를 못 한 거잖아요. 맞죠? 프로답게. 
하고 싶은 말은 이거에요. 우리 비즈니스 관계로 만났으면 철저하게 비즈니스 관계로 지내자고요. 쿨하게. 질척이지 말고. ㅇㅋ?

아마도 이걸 읽은 '미생'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후련해했을 듯 합니다. 직장에서 상급자들이 알고 있어야 할 하급자들의 정서가 모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조직과 상급자는 하급자들이 원하는대로 다 해주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러한 하급자들의 정서는 알고 있는 상태에서 뭔가를 하더라도 해야 하는 것이죠. 하급자들은 속으로 경악하며 뜨아~ 하고 있는데 조직과 상급자는 진지한 표정으로 소통을 해보겠다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코미디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전적으로 동의 안 되는 구절도 있긴 합니다. "프로답게 손익계산 따져서 받은 만큼 일할게요" 같은 부분이 그래요. 사람마다 각자 얼마치의 일을 하는지 정확히 계산하는 게 가능하긴 한가요, 얼마치의 일을 하는지도 알 수 없는데 과연 손익계산이 따져질까요. 정확하지도 않은 계산을 어설프게 하다 보면 자칫 선량한 주위 동료들이 그 덤터기를 뒤집어쓰는 일이 흔히 있는데요, 우린 이걸 '민폐'라고 부릅니다.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겁니다. 위 글에 나열된 이야기들 중, 가장 아프게 느껴진 구절은 "일을 열심히 하게 하는 방법요?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하면 돼요. 돈을 많이 주고, 조직이 정말 잘 나가서 속한 것만으로 으쓱하게 하는 거"라는 부분입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만족하긴 쉽지 않을 테니, 이 중에서도 굳이 한 가지만 선택하라면 저는 후자를 선택하겠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늘 정말 잘 나가서 속한 것만으로 으쓱하게 하는 조직이 있는가 하면, 예전에는 그러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은 조직도 있고 그 반대의 조직도 있을 것 같습니다. 상급자들은 자신의 조직이 어떤 상태이고 구성원들이 조직에 대해 으쓱해 하는지 아닌지를 잘 파악하여야 합니다. 예전에는 잘 나가는 조직이었는지 몰라도 지금은 전혀 아닌데도 아직까지 잘 나가는 조직인 줄 착각하고 있는 상급자들도 있지요. 하급자들은 전혀 으쓱해 하지 않는데, 상급자들이 아직도 잘 나가는 조직인 줄 알고 하급자들의 자긍심을 운운하며 충성심을 이끌어내려고 한다면 이 또한 코미디가 아닐 수 없을 겁니다. 

얼마 전에 종합병원 신세를 지면서 그 구성원들의 생활을 잠시 접한 적이 있었습니다. 음울한 환경과 더럽고 힘들고 궂은 일들, 24시간 내내 이어지는 근무와 층층의 위계질서가 풍기는 팽팽한 긴장감, 일부 환자들의 고압적 갑질과 떼쓰기 등등, 종합병원에 계시는 분들 모두 정말 고생 많고 왠만한 사람들이 선뜻 하기 어려운 일들을 하고 계셨습니다. 돈도 많이 받으셨으면 좋겠지만, 무엇보다도 의료계가 계속 잘 나가서 거기 속한 것만으로 으쓱해 할 수 있는 여건이 유지되었으면 합니다. 이런 일들 우리 사회에서 정말 중요하고 누군가 계속 꾸준히 해주어야 하는 일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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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10일 수요일

직장 식사자리에서의 대화와 한식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7/10/2019 11:05:00 오후 라벨: 공감 , 대화 , 소통 , 식도락 , 아이디어 , 잡담 , 직장 , 한식 , 회식
직장에서의 저녁 회식은 그 자리에 있는 시간이 유익하거나 재미있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유익하다는 건 상급자나 다른 동료로부터 값진 인생 경험이나 유용한 업무 노하우 같은 걸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고, 재미있다는 건 유익이라는 부분이 좀 여의치 않은 경우 최소한 재미라도 있는 자리여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이런 건 특히 그 자리를 주재하는 상급자의 역할이 중요하겠습니다. 공감능력 없고 아무런 인사이트도 줄 능력 안 되는 상급자들이 혼밥이나 혼술은 할 줄 모르고 꼬박꼬박 식사 파트너를 고집하면, 공연히 여러 사람만 피곤하게 되는 것이죠.

저 글은 직장 상급자의 입장에서 저녁 회식을 하는 게 맞냐 안 맞냐 하는 얘기를 하느라 저녁 회식에 대해서만 따져본 것이지만, 점심자리도 사실 마찬가지겠죠. 
그런데 점심자리는 좀 애매한 측면이 있습니다. 식사시간 자체가 저녁자리에 비해 매우 짧을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요. 대부분의 직장에서 점심시간은 기껏해야 한 시간 정도에 불과할 텐데, 사무실에서 식당까지 이동하는 시간, 주문하는 시간, 식사가 나오길 기다리는 시간, 다른 행동 안 하고 순수하게 식사를 하는 데만 걸리는 시간, 다시 사무실까지 복귀하는 시간만 따져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가 버립니다. 게다가 요새는 순식간에 밥을 비운 후 곧장 커피나 차를 마시러 카페를 향하기도 하기 때문에, 한 시간은 짧아도 너무 짧기만 합니다.

그런데 밥과 커피를 흡입하기에도 부족하기만 한 이 짧은 순간에 유익? 재미? 유익이든 재미이든 일단 대화를 나누어야 유익하든 재미있든 할 텐데, 대화할 시간 자체가 턱없이 없잖아요.
더구나 제 좁은 소견에 우리 한식이 식사 파트너와의 대화를 즐기기에 그다지 적절한 메뉴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우리 한식은 싱거운 밥과 짠 반찬을 한데 입 안에 넣고 그 버무린 맛을 즐기는 음식이고, 기본적으로 여러 번의 상차림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코스 요리가 아니기 때문에, 식사하는 동안 입 안은 항상 여러 음식물이 머물러 있어야 해서 바쁩니다. 입은 쉴 시간이 없고 거의 항상 음식물을 머금고 있기 마련이죠. 그러니 입 안을 비우지 않은 채 대화하기는 힘들고, 조심하지 않을 경우 자칫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서양사람들은 식사시간도 길고 식사자리에서 대화를 많이 나눈다고, 그들이 부러운 듯 말하곤 합니다. 제 생각에 서양사람들의 식사시간이 길고 식사자리에서의 대화가 많은 이유는, 물론 지금이야 많이 간소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서양 요리가 기본적으로 코스 요리이기 때문입니다. 서양사람들이 식사하는 것을 유심히 보면, 눈 앞에 음식이 있을 때는 식사 자체에 집중하면서 순식간에 접시를 비웁니다. 그다지 대화도 없어 보입니다. 입 안에 음식물을 넣은 채 말하는 것은 테이블 매너가 아니라는 확고한 관습이 있어서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코스 요리이기 때문에 식사 사이사이의 간격이 꽤 되고, 바로 이 시간적 간격을 이용해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식사 사이사이의 간격은 물론, 식사를 주문하고 기다릴 때 '빨리 빨리'를 외치지 않고, 식사 후 제자리에 앉은 채로 하게 되는 음식값 계산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대화를 나눌 시간은 더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도 바쁠 때는 이런 느긋한 점심을 포기하고 사무실 제자리에서 샌드위치나 간단한 음식으로 점심을 해결하기도 합니다.

요약하면, 점심시간이 길어야 한 시간밖에 안 되고 식사 자체가 코스 요리 형태가 아닌 우리 실정에서는 점심자리에서의 대화란 요원한 일입니다. 점심자리에서 유익이나 재미를 구하는 것은 사치에 가깝습니다. 그러면 우린 단지 허기만 면하겠다는 용도로 점심시간을 쓸 수밖에 없는 걸까요.

가만 생각해보니, 이런 아이디어도 가능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동료들과의 점심은 이틀에 한 번꼴로만 갖고, 그 나머지 하루는 각자 사무실에서 간단히 때우며 계속 일을 하는 것이죠. 즉, 이틀에 한 번 있는 동료들과의 점심자리는 그 앞뒤 날 절약해 둔 점심시간을 합쳐 두 시간, 혹시 이게 여의치 않으면 한 시간 반 정도로 평소보다 길게 갖는 겁니다. 그리고 이 길어진 점심시간에 가급적 코스 요리 형태로 식사를 할 수 있는 메뉴를 정하기로 합니다. 평상시 흔히 먹는 단품 형태의 한식으로 식사를 하게 되면, 식사 사이사이의 간격이 없어 어차피 많은 대화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코스는 커피나 차까지 포함된 것이면 더 좋겠습니다. 점심시간이 길면 자칫 식사를 후다닥 마치고 커피나 차를 위해 카페로 가게 될 확률이 높은데, 그러면 카페로 이동하는 시간, 차를 주문하는 시간 등 낭비되는 시간이 생기게 되기 때문이죠. 

결론은, 한 자리에서 코스 형태로 나오는 긴 식사를 즐기면서 대화를 좀더 하자는 거지요. 
전제조건으로는 이런 게 있을 수 있겠네요. 이틀에 한 번 정도 간단한 음식으로 점심을 때우는 데 동료들이 모두 동의하느냐, 길어진 점심시간을 대화로 채울 만한 유익하거나 재미있는 콘텐츠를 우리 동료들이 많이 갖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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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28일 수요일

저녁 회식을 바라보는 상급자와 하급자의 관점 (2)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11/28/2018 01:04:00 오전 라벨: 공감 , 소통 , 식도락 , 아이디어 , 잡담 , 직장 , 회식
페이스북에도 인사이트 있는 대단한 글을 쓰는 분들이 많은데요, 그런 분 중 하나인 신상철님의 페이스북 글 하나를 소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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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자다가 전화를 받으면 불쾌할까? 보통 이런 상황은 기분 나쁘고 화나는 게 당연하지만, 만약 상대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설레고 기분 좋은 일일 수 있다. 어떤 행위 자체보단 그걸 하는 주체가 더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설득도 마찬가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설득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에토스라고 했다. 에토스는 그 사람의 인격이나 명예 같은 캐릭터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건 파토스로 이것은 감정을 뜻한다. 이성과 논리에 해당하는 로고스는 고작 10% 비중밖에 안 된다.
호감이 전부다. 상대방에 대한 호감은 불쾌한 일도 기분 좋게 할 수 있고 별거 아닌 말에도 큰 의미를 부여한다. 존경하는 분이 해주는 칭찬은 그저 덕담일 뿐인데도 평생 간직하게 된다. 만약 상대를 의도대로 움직일 수 없다면 그건 어떤 논리나 조건이 부족해서라기보단 호감이 부족해서다.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스타들의 시답지 않은 농담에도 따봉을 누르는 건 그 사람을 좋아해서다. 그 농담이 재밌어서가 아니라. 콘서트에 가는 건 노래를 듣기보단 그와 함께 있는 경험을 하고 싶어서이고. 원하는 게 있다면 상대의 호감을 얻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게 마음을 움직이는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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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난 6월에 "저녁 회식을 바라보는 상급자와 하급자의 관점"이라는 글을 이 블로그에 쓴 적이 있는데요, 제 얘기의 요지는 대부분의 하급자는 상급자가 하자는 저녁 회식을 싫어하지만 그 상급자가 매력적인 사람이라면 문제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상철님의 글도 같은 맥락 같네요.

저 글에서는 상급자와 하급자 간의 직장 회식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회식을 주최하는 상급자가 누구인가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회식 장소가 어딘가라는 점은 부차적이라고 홀대하고 넘어갔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회식 장소가 어디냐 하는 점도 그냥 무시할 요소는 아니죠. 먹고 마시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며칠 후에 직장 동료들과 회식을 갖기로 오늘 약속을 정하였는데요, 저는 회식자리를 만들 때마다 항상 어디서 회식을 할까 하는 문제로 한참 동안 골머리를 앓곤 합니다. 꼭 여러 사람이 모이는 회식이 아니라 친한 사람과 단 둘이 만나는 가벼운 자리라도 제가 만드는 자리라면, 어디서 시간을 가질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회식이나 약속을 주최하는 저의 개인적인 매력이 좀 부족하더라도, 먹고 마시는 거 자체가 훌륭하면 저 자신에게 보다는 그리로 참석자들의 관심이 더 쏠리게 되고, 그러다보면 결국 제가 거기에 묻어갈 수 있고 저의 부족한 면을 잘 메울 수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사실 회식을 주최하는 누구에게나 회식 장소는 참 중요한 문제입니다.  

회식 장소를 고르기 위해서는, 여러가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음식 맛, 분위기, 접근성, 이런 건 너무 당연한 얘기겠죠. 
이왕 하는 회식, 특이한 데 말고 평범한 데서 무난하게 치르려면 가급적 돈 생각 말고 괜찮은 데서 해야 합니다. 참석자들에게 특이한 경험도 못 주면서 돈만 아끼려고 하면, 오히려 돈은 돈대로 쓰고 욕만 얻어먹을 위험이 있습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회식을 안 하는 게 더 안전할 수도 있구요.

상급자가 하급자들에게 "너네 좋아하는 데 가자. 너희끼리 정해봐"라고 하는 경우도 많이 있는데요, 저는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놓으면 과연 그들이 정말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곳을 정해서 갖고 올까요. 상급자의 성향도 (상당히) 고려한, 그저그런, 무난한 곳이 당첨될 확률이 높을 것 같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취향을 몰라서 그런다구요? 같이 일하는 동료인데, 평소에 요즘 젊은 사람들의 취향을 알고 있어야지요. 모른다고 하면 말이 안 되고, 결국 "나 공감능력 떨어지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밖에 안 되는 거지요. 

어쨋든 가급적 참석자들의 취향에 맞춘 회식 장소를 고르는 게 대개 무난한 방법이겠지만, 오히려 반대로 주최자의 개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자리는 어떨까요. "난 이런 거 좋아하는 사람이야. 혹시 처음이면 이번 기회에 한번 경험해봐." 어쩌다 한번 회식을 한다고 모든 동료들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최소한 내 개성에 동조하는 한 두 명은 건질 수 있지 않을까요.  
   
너무 흔한 음식을 먹으러 가는 것도 식상할 수 있겠는데, 경우에 따라 참석자들이 하루 이틀 전에 다른 회식자리에 참석해 어떤 종류의 음식을 먹었는지도 따져보는 게 좋을 때도 있습니다. 제가 며칠 후에 함께 회식을 하자고 한 동료들은 오늘 다른 팀과 고깃집에서 회식을 한다는데, 그 덕에 제 선택지가 크게 줄어버려 고민이 더 크네요.

그런데 결국 가 본 데 많지 않아도, 아는 데 별로 없어도, 시간을 충분히 갖고 부지런히 검색질을 하다 보면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끌어낼만한 회식 장소가 반드시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결국 오늘도 왜 회식을 하자고 했을까 후회하며 늦은 밤까지 열심히 손가락을 고생시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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