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2일 일요일
[독서일기 ]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몽테스키외(Montesquieu)의 본명은 Charles-Louis de Secondat 라고 하는데요, '삼권분립' 이론으로 유명한 "법의 정신(De l'esprit des lois)"을 썼습니다. 기억도 안 날 정도로 한참 전에 사놓고는 읽을까 말까만을 반복하던 책을 드디어 읽었습니다. 미루고 미루던 숙제를 간신히 끝낸 기분입니다.
번역체 때문인지, 너무 오래된 책인 때문인지, 읽기가 쉽지만은 아닌 책이었지만, 역시 고전은 고전, 기억해두었다가 써먹고 싶은 대목들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언젠가 어디선가 써먹을 용도로 여기에 정리해 봅니다.
제가 산 버전은, 홍신문화사에서 2009년쯤 나온 책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법률용어들은 분명 지금의 그것과 의미가 다른 의미를 갖고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감찰관' 같은 용어는 정확히 어떠한 역할의 직책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용어와는 구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
[61면] 법의 집행에 대한 모든 종류의 피신처는 귀족정체를 붕괴시킨다. 그 결과 참주정체가 일어나게 된다. 법은 어떤 경우에나 권리를 남용하는 거만을 제압해야 하므로 잠정적 또는 여욱적으로 귀족을 두렵게 만드는 사법관의 존재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스파르타의 민선 장관이나 베네치아의 종교재판소 판사처럼 어떤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는 사법관이 그런 존재이다. 베네치아에서는 돌의 입이 모든 밀고자를 위해 열려 있는데, 그것은 참주정체의 입이라고 할 수 있다.
귀족정체에서의 그와 같은 참주적 관직은 민주정체에서의 감찰직과 비슷하다. 후자는 그 성질로 볼 때 전자처럼 독립적이다. 사실 감찰관은 직무상 행한 일에 관해 문책을 당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신임을 받아야 하며, 결코 낙담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로마인들은 감탄할 만했다. 로마에서는 모든 집정관에게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었으나, 감찰관만은 예외였다.
[77면] 공화정체에는 감찰관이 필요하다. 그 정체의 원리가 곧 덕성이기 때문이다. 덕성을 파괴하는 것은 범죄뿐만 아니라 태만, 과실, 미지근한 조국애, 나쁜 예, 타락의 싹 등이다. 법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법망을 뚫는 것, 법을 약화시키는 것, 이런 모든 것은 감찰관에 의해 교정되어야 한다.
[88면] 로마에서는 한 시민이 다른 시민을 탄핵하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되었다. 그것은 공화정체의 정신에 따라 정해진 것이다. 즉 공화정체에서는 각 시민이 공익을 위해 무한한 열의를 가져야 하고, 또 각 시민은 조국의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황제 치하에서도 사람들은 공화정체의 격률에 따랐다. 그러자 곧 불길한 인종, 즉 밀고자라는 무리가 나타났다.
뛰어난 간계에 충분한 재능을 가진 자라면, 즉 비천한 영혼과 야망에 불타는 정신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그 처형이 군주의 마음에 들 것 같은 범죄자를 찾아다녔다. 그것이 입신과 부를 얻기 위한 방편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훌륭한 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법을 집행하기 위해 그 지위에 있는 군주는 자신의 이름으로 모든 범죄를 소추하기 위해 각 재판소에 한 사람의 관리를 임명하는 법이다. 이와 같이 하여 밀고자의 일은 우리나라에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플라톤은 <법률>에서, 재판관에게 고소하는 것을 게을리하거나, 또는 그들에게 협력하기를 게을리한 자는 처벌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이 오늘날에는 적합하지 않다. 검사가 시민을 대신해서 감시하고, 그 활동에 의해 시민들은 평온을 누리는 것이다.
----> 이 부분에 대한 제 생각을 잠깐 적어보겠습니다.
여기서 '탄핵'은 오늘날의 '고소'를, '밀고자'는 '무고를 범하는 자'를, '각 재판소에 한 사람의 관리'는 '검사'를 각각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법의 정신'이 출간된 1748년 당시 이미 프랑스에는 근대적 검사 제도의 초창기 모습이 존재하였습니다. 몽테스키외에 따르면 검사는 무고를 방지하기 위해 시민을 대신해 고소라는 직무를 행하게 하기 위해 각 법원마다 한 사람씩 둔 정부의 관리입니다. 이 검사 제도는 공화정체에 필요한 제도이고, 공화정체라는 근대적 정치체제를 구성하고 뒷받침하기 위해 탄생한 근대적 사법 제도인 것입니다.
[90면] 경험에 의하면, 형벌이 가벼운 나라에서는 국민의 마음이 그 가벼운 형벌에 의해 감동을 받는 정도가, 형벌이 엄한 나라에서 엄한 벌에 의해 타격을 받는 것과 같다.
나라에 무슨 불편한 일이 생기면 강권적인 정부는 갑자기 그것을 교정하고자, 낡은 법을 집행하는 대신 즉시 그 해악을 막을 가혹한 형벌을 만든다. 그러나 정부의 동력은 그것에 의해서 소모되고, 국민들은 그 무거운 법에 익숙해져서 예전의 가벼운 형벌 정도로 느끼게 된다. 이와 같이 무거운 벌에 대한 공포가 감소되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더욱더 무거운 법을 제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중략)
인간을 극단적인 수단으로 다루어서는 안 되며,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방법을 적절하게 사용해서 지도해야 한다. 기강이 느슨해지는 원인을 살펴보면, 그것은 범죄를 처벌하지 않은 결과일 뿐 형벌을 경감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연에 따르자. 자연은 인간에게 수치심을 가책으로 주었다. 따라서 형벌의 대부분은 형을 받는다는 수치심을 느끼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120면] 국민의 신탁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부패를 은닉하기 위해 국민을 부패시키려고 할 때, 국민은 그와 같은 불행에 빠진다. 그들은 국민이 자기들의 야심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오직 국민의 위대성만을 이야기한다. 그들의 탐욕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국민의 탐욕을 부채질한다.
[161면] 각 국가에는 세 종류의 권력이 있다. 입법권, 만민법에 속하는 사물의 집행권, 시민법에 속하는 집행권이 그것이다.
첫째의 권력에 의해 군주나 집정관은 일시적 또는 항구적인 법률을 제정하고, 또 이미 정해진 법률을 수정 또는 폐지한다. 둘째의 권력에 의해 그는 강화 또는 선전을 행하고, 대사를 교환하고, 안전을 보장하고, 침략을 예방한다. 셋째의 권력에 의해서 그는 죄를 처벌하고, 개인의 쟁송을 심판한다. 우리는 마지막 것을 재판권이라 부르고, 다른 하나는 단지 국가의 집행권이라 부른다.
한 시민의 정치적 자유란, 각자가 자기의 안전에 대해 가지는 의견에서 유래되는 그 정신의 안정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자유를 갖기 위해서는 한 시민이 다른 시민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정체여야만 한다. 동일한 인간 또는 동일한 집정관 단체의 수중에 입법권과 집행권이 결합되어 있을 때에는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같은 군주 또는 같은 원로원이 폭정적인 법률을 만들고, 그것을 폭정적으로 집행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재판관이 입법권과 집행권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을 때에도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 만약 그것이 입법권과 결합되어 있다면, 시민의 생명과 자유를 지배하는 권력은 자의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재판관이 곧 입법자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집행권에 결합되어 있다면 재판권은 압제자의 힘을 가지게 될 것이며, 또한 동일한 인간, 또는 귀족이나 시민 중 주요한 사람의 동일 단체가 이 세 가지 권력, 즉 법률을 제정하는 권력, 공공의 결정을 실행하는 권력, 죄나 개인의 쟁송을 심판하는 권력을 행사한다면 모든 것은 상실되고 말 것이다.
재판권은 상설적인 원로원에 부여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해마다 일정한 시기에 법률이 정하는 소속에 의해 필요한 기관에 존속하는 법정을 구성해야 하며, 또 그러한 시민단체로부터 선출된 사람들에 의해 행사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몹시 두려워하는 재판권은 특정한 신분이나 특정한 직업에 결합되지 않으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되어 버린다. 사람들의 눈앞에 항상 같은 재판관이 있을 일이 없고, 사람들은 재판관직은 무서워해도 재판관은 무서워하지 않게 된다.
중대한 공판에서 범죄인은 법과 협력해서 스스로 재판관을 선출해야 한다. 또는 적어도 많은 수의 재판관을 기피할 수 있어서 남은 사람이 그가 선택한 사람으로 간주되어도 좋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다른 두 개의 권력은, 한쪽은 국가의 일반적 의지이고, 다른 쪽은 그 일반적 의지의 실행에 지나지 않아 어떤 개인에 대해 행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오히려 항구적인 기구 또는 집정관에 주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재판소가 고정적이어서는 안 되지만, 판결은 그것이 법의 명문이라고 할 정도로 고정적이어야 한다. 만약 그것이 한 재판관의 개인적 견해라고 가정한다면, 사람들은 그 계약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사회생활을 하는 것과 다름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재판관은 피고와 같은 신분의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것은 피고가 자기를 해치려는 사람들의 수중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다.
Search
Category
Tag
Blog Archive
-
2021
(15)
- 12월 2021 (2)
- 11월 2021 (1)
- 10월 2021 (2)
- 9월 2021 (3)
- 8월 2021 (1)
- 7월 2021 (2)
- 6월 2021 (1)
- 5월 2021 (1)
- 3월 2021 (2)
-
2019
(40)
- 12월 2019 (4)
- 11월 2019 (4)
- 10월 2019 (2)
- 9월 2019 (1)
- 8월 2019 (3)
- 7월 2019 (13)
- 4월 2019 (2)
- 3월 2019 (3)
- 2월 2019 (2)
- 1월 2019 (6)
-
2018
(36)
- 12월 2018 (7)
- 11월 2018 (3)
- 10월 2018 (4)
- 9월 2018 (2)
- 8월 2018 (2)
- 7월 2018 (1)
- 6월 2018 (3)
- 5월 2018 (1)
- 4월 2018 (6)
- 3월 2018 (6)
- 2월 2018 (1)
-
2017
(24)
- 12월 2017 (6)
- 11월 2017 (1)
- 9월 2017 (1)
- 8월 2017 (2)
- 7월 2017 (3)
- 6월 2017 (3)
- 5월 2017 (1)
- 3월 2017 (3)
- 2월 2017 (2)
- 1월 2017 (2)
-
2016
(33)
- 12월 2016 (6)
- 11월 2016 (1)
- 10월 2016 (5)
- 9월 2016 (1)
- 8월 2016 (1)
- 7월 2016 (2)
- 6월 2016 (3)
- 5월 2016 (6)
- 4월 2016 (2)
- 3월 2016 (3)
- 2월 2016 (3)
Popular Posts
-
언젠가부터 고급 레스토랑은 물론 동네에 있는 흔한 파스타 집에서도 '식전빵'이란 걸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에피타이저든 주요리든 뭔가가 나오기 전에 가장 먼저 발사믹을 친 올리브 오일과 함께 나오는 빵을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요...
-
프랑스어 인사말 중에 Bonjour와 Bonsoir가 있습니다. 앞의 것은 낮에 하는 인사말, 뒤의 것은 저녁에 하는 인사말이라고 흔히 설명됩니다. 직역하면 각각 '좋은 날', '좋은 저녁' 정도가 되겠네요. 사실 별로 ...
-
요즘 사람들이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슈는 ‘공정’입니다. 공정이라는 단어에는 폭넓은 의미가 담겨있지만, 지금의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공정의 개념은 추측건대 ‘내가 남보다 손해를 볼 수는 없다’인 것 같습니다. 여러 사람이 있는 조직인 경우, 내가...
-
이 글은 2026년 5월 16일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있었던 한불법학회, 국회사무처 법제실, 법제처,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검찰프랑스법연구회가 공동주최한 학술대회에서 제가 발표한 글입니다. 이 학술대회의 대주제는 '한국-프랑스의 ...
-
며칠 전 법정에서 재판을 보다 문득 든 생각을 적어봅니다. 형사재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변호사들의 변론전략 중 이런 게 있습니다. 유무죄가 애매한 사건, 특히 어떠한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건 맞지만 범죄의 고의가 있는지 애매한 사건, 고의...
© iMagistrat 2013 . Powered by Bootstrap , Blogger templates and RWD Testing Tool


댓글 없음 :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