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8일 수요일
저녁 회식을 바라보는 상급자와 하급자의 관점 (2)
페이스북에도 인사이트 있는 대단한 글을 쓰는 분들이 많은데요, 그런 분 중 하나인 신상철님의 페이스북 글 하나를 소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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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자다가 전화를 받으면 불쾌할까? 보통 이런 상황은 기분 나쁘고 화나는 게 당연하지만, 만약 상대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설레고 기분 좋은 일일 수 있다. 어떤 행위 자체보단 그걸 하는 주체가 더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설득도 마찬가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설득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에토스라고 했다. 에토스는 그 사람의 인격이나 명예 같은 캐릭터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건 파토스로 이것은 감정을 뜻한다. 이성과 논리에 해당하는 로고스는 고작 10% 비중밖에 안 된다.
호감이 전부다. 상대방에 대한 호감은 불쾌한 일도 기분 좋게 할 수 있고 별거 아닌 말에도 큰 의미를 부여한다. 존경하는 분이 해주는 칭찬은 그저 덕담일 뿐인데도 평생 간직하게 된다. 만약 상대를 의도대로 움직일 수 없다면 그건 어떤 논리나 조건이 부족해서라기보단 호감이 부족해서다.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스타들의 시답지 않은 농담에도 따봉을 누르는 건 그 사람을 좋아해서다. 그 농담이 재밌어서가 아니라. 콘서트에 가는 건 노래를 듣기보단 그와 함께 있는 경험을 하고 싶어서이고. 원하는 게 있다면 상대의 호감을 얻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게 마음을 움직이는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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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난 6월에 "저녁 회식을 바라보는 상급자와 하급자의 관점"이라는 글을 이 블로그에 쓴 적이 있는데요, 제 얘기의 요지는 대부분의 하급자는 상급자가 하자는 저녁 회식을 싫어하지만 그 상급자가 매력적인 사람이라면 문제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상철님의 글도 같은 맥락 같네요.
저 글에서는 상급자와 하급자 간의 직장 회식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회식을 주최하는 상급자가 누구인가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회식 장소가 어딘가라는 점은 부차적이라고 홀대하고 넘어갔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회식 장소가 어디냐 하는 점도 그냥 무시할 요소는 아니죠. 먹고 마시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며칠 후에 직장 동료들과 회식을 갖기로 오늘 약속을 정하였는데요, 저는 회식자리를 만들 때마다 항상 어디서 회식을 할까 하는 문제로 한참 동안 골머리를 앓곤 합니다. 꼭 여러 사람이 모이는 회식이 아니라 친한 사람과 단 둘이 만나는 가벼운 자리라도 제가 만드는 자리라면, 어디서 시간을 가질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회식이나 약속을 주최하는 저의 개인적인 매력이 좀 부족하더라도, 먹고 마시는 거 자체가 훌륭하면 저 자신에게 보다는 그리로 참석자들의 관심이 더 쏠리게 되고, 그러다보면 결국 제가 거기에 묻어갈 수 있고 저의 부족한 면을 잘 메울 수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사실 회식을 주최하는 누구에게나 회식 장소는 참 중요한 문제입니다.
회식 장소를 고르기 위해서는, 여러가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음식 맛, 분위기, 접근성, 이런 건 너무 당연한 얘기겠죠.
이왕 하는 회식, 특이한 데 말고 평범한 데서 무난하게 치르려면 가급적 돈 생각 말고 괜찮은 데서 해야 합니다. 참석자들에게 특이한 경험도 못 주면서 돈만 아끼려고 하면, 오히려 돈은 돈대로 쓰고 욕만 얻어먹을 위험이 있습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회식을 안 하는 게 더 안전할 수도 있구요.
상급자가 하급자들에게 "너네 좋아하는 데 가자. 너희끼리 정해봐"라고 하는 경우도 많이 있는데요, 저는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놓으면 과연 그들이 정말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곳을 정해서 갖고 올까요. 상급자의 성향도 (상당히) 고려한, 그저그런, 무난한 곳이 당첨될 확률이 높을 것 같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취향을 몰라서 그런다구요? 같이 일하는 동료인데, 평소에 요즘 젊은 사람들의 취향을 알고 있어야지요. 모른다고 하면 말이 안 되고, 결국 "나 공감능력 떨어지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밖에 안 되는 거지요.
어쨋든 가급적 참석자들의 취향에 맞춘 회식 장소를 고르는 게 대개 무난한 방법이겠지만, 오히려 반대로 주최자의 개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자리는 어떨까요. "난 이런 거 좋아하는 사람이야. 혹시 처음이면 이번 기회에 한번 경험해봐." 어쩌다 한번 회식을 한다고 모든 동료들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최소한 내 개성에 동조하는 한 두 명은 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상급자가 하급자들에게 "너네 좋아하는 데 가자. 너희끼리 정해봐"라고 하는 경우도 많이 있는데요, 저는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놓으면 과연 그들이 정말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곳을 정해서 갖고 올까요. 상급자의 성향도 (상당히) 고려한, 그저그런, 무난한 곳이 당첨될 확률이 높을 것 같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취향을 몰라서 그런다구요? 같이 일하는 동료인데, 평소에 요즘 젊은 사람들의 취향을 알고 있어야지요. 모른다고 하면 말이 안 되고, 결국 "나 공감능력 떨어지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밖에 안 되는 거지요.
어쨋든 가급적 참석자들의 취향에 맞춘 회식 장소를 고르는 게 대개 무난한 방법이겠지만, 오히려 반대로 주최자의 개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자리는 어떨까요. "난 이런 거 좋아하는 사람이야. 혹시 처음이면 이번 기회에 한번 경험해봐." 어쩌다 한번 회식을 한다고 모든 동료들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최소한 내 개성에 동조하는 한 두 명은 건질 수 있지 않을까요.
너무 흔한 음식을 먹으러 가는 것도 식상할 수 있겠는데, 경우에 따라 참석자들이 하루 이틀 전에 다른 회식자리에 참석해 어떤 종류의 음식을 먹었는지도 따져보는 게 좋을 때도 있습니다. 제가 며칠 후에 함께 회식을 하자고 한 동료들은 오늘 다른 팀과 고깃집에서 회식을 한다는데, 그 덕에 제 선택지가 크게 줄어버려 고민이 더 크네요.
그런데 결국 가 본 데 많지 않아도, 아는 데 별로 없어도, 시간을 충분히 갖고 부지런히 검색질을 하다 보면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끌어낼만한 회식 장소가 반드시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결국 오늘도 왜 회식을 하자고 했을까 후회하며 늦은 밤까지 열심히 손가락을 고생시키고 있습니다.
2018년 11월 9일 금요일
마크롱 대통령의 페탱 원수 발언 논란
며칠 전인 2018년 11월 7일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프랑스 대통령이 필리프 페탱(Philippe Pétain, 1856-1951)에 대해 위대한 군인이었다고 말했다가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페탱은 1차 세계대전 당시 Verdun 전투에서 독일군을 무찌르는 등 프랑스의 승전을 이끌어 프랑스의 원수(元帥, maréchal)라는 칭호를 받은 장군이었으나, 2차 세계대전 때는 위기상황에 놓인 프랑스의 총리로 복귀하여 나치 독일에 항복하고 비시(Vichy) 정부의 수반으로서 히틀러에 적극 부역하였다가 전후 사형선고를 받은 인물입니다.
생각해보면, 비록 1차 대전의 영웅으로 프랑스를 구원한 페탱이지만, 그래서 2차 대전 당시 프랑스가 위기에 처하게 되자 84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이 영웅이 3공화국의 총리로 소환되어 프랑스를 이끌게까지 된 것이지만, 나치 독일에 대한 항복과 부역은 프랑스로서는 부인하고 숨기고만 싶은 수치스런 기억인 거죠.
반면, 런던에서 망명정부인 '자유 프랑스(La France Libre)'를 이끈 드골은 이 어두운 시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랑스럽게 장식하여야만 하는 프랑스의 단 하나의 기억이어야만 했던 거구요. 이러한 대립구도의 설정에는 혹여 역사의 과장이나 더 나아가 조작이 끼어들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프랑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 같습니다. 이게 현재 프랑스 국민들의 국가적 자긍심의 원천이니까요. 그래서 마크롱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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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대통령이 했다는 발언은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페탱은 비록 2차 세계대전 당시 불행한 선택(des choix funestes)을 하긴 하였지만, 1차 세계대전의 위대한 장군(un grand soldat)이었습니다. 그가 위대한 장군이었다는 사실은 진실입니다. 인간으로서 정치적 삶은 사람들이 믿기 원하는 것보다는 때때로 더 복잡합니다. 저는 항상 우리나라의 역사를 정면으로 바라봐 왔습니다."
2018년 11월 7일자 리베라시옹(Liberation)지의 체크뉴스(CheckNews.fr)에는 "마크롱 이전의 대통령들은 페탱에 대해 어떠한 발언을 하였는가?(Comment les présidents parlaient du maréchal Pétain avant Macron?)"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이 글에 나온 전직 대통령들의 멘트를 소개해드리겠는데요, 결론부터 말하면 전직 대통령들도 마크롱 대통령과 비슷한 정도의 수위로 발언하였고 마크롱 대통령도 이를 충실히 반영하여 발언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전후 프랑스의 재건기를 이끈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1959-1969 재임) 대통령은 1966년 베르덩 전투 50주년 기념식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불행히도 1차 대전 때와는 다른 시점에, 그의 인생에 있어 혹독한 겨울(l'extrême hiver de sa vie)에, 엄청난 일들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고령의 나이가 페탱을 비난할만한 실패로 이끌었다 할지라도, 그가 베르덩에서 거둔 영광, 그가 그(비시 정부 수립)보다 25년 전에 베르덩에서 거둔 영광, 그리고 그가 그 이후에 프랑스군을 승리로 이끌며 지킨 영광은 조국에 의해 다퉈지거나 부정될 수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40년 후 베르덩 전투 90주년 기념식에서는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1995-2007 재임) 대통령이 이와 유사한 발언을 하였습니다.
"승리를 위한 결정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베르덩의 승리자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바로 필리프 페탱입니다. 불행히도, 1940년 6월에 동일한 사람이 그 인생의 겨울(l'hiver de sa vie)에 이르러 그의 영광을 휴전이라는 불행한 선택(le choix funeste)과 부역이라는 불명예로 상쇄시켜버렸습니다."
시라크 대통령의 위 연설을 보면 그가 드골 대통령이 쓴 'l'hiver de sa vie'라는 표현을 모방하고, 마크롱 대통령은 시라크 대통령이 쓴 'le choix funeste'라는 표현을 그대로 갖다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라크 대통령의 직전 대통령인 프랑수와 미테랑(François Mitterrand, 1981-1995 재임) 대통령은, 페탱의 묘에 헌화하였다가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격한 항의를 받은 후 가진 유대인계 라디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페탱의 모순(contradictions)"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저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우리는 역사의 전형적인 모순 상황 앞에 있고, 역사의 모순은 우리를 다시 모순 상황 속에 놓아두며, 이는 정말로 우리를 견딜 수 없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되어 있는, 프랑스가 거둔 가장 위대한 전투를 빼버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사건들(비시 정부 수립)로부터 25년 전에 일어난 베르덩 전투에 누가 참여하고 누가 지휘했는지는 프랑스의 역사에서 뺄 수 없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것은 바로 치욕입니다. 베르덩의 영광은, 수많은 피와 드라마로 만들어진 영광은 잊혀질 수 없고,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1942년의 치욕이 이 영광을 폄훼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본질적인 모순(une contradiction fondamentale)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에 대처해야 하고, 이에 대한 몰이해가 확대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비난에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비록 1차 대전의 영웅으로 프랑스를 구원한 페탱이지만, 그래서 2차 대전 당시 프랑스가 위기에 처하게 되자 84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이 영웅이 3공화국의 총리로 소환되어 프랑스를 이끌게까지 된 것이지만, 나치 독일에 대한 항복과 부역은 프랑스로서는 부인하고 숨기고만 싶은 수치스런 기억인 거죠.
반면, 런던에서 망명정부인 '자유 프랑스(La France Libre)'를 이끈 드골은 이 어두운 시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랑스럽게 장식하여야만 하는 프랑스의 단 하나의 기억이어야만 했던 거구요. 이러한 대립구도의 설정에는 혹여 역사의 과장이나 더 나아가 조작이 끼어들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프랑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 같습니다. 이게 현재 프랑스 국민들의 국가적 자긍심의 원천이니까요. 그래서 마크롱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2018년 11월 5일 월요일
자녀와 둘만의 짧은 파리 여행 후기
지난 주에 4박 5일간의 짧은 파리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다음 여행의 준비를 위해 몇 가지 느낀 점을 두서 없이 적어 볼까 합니다.
1. 이번 파리 여행은 중학교 1학년인 제 딸아이와의 단둘만의 여행이었습니다.
다른 가족들을 빼고 딸아이만 데리고 여행을 간 이유는, 큰아들과의 프랑스 여행이야기를 담은 이코노미스트 홍춘욱님의 아래 책이, 그리고 이 책을 소개하는 "왜 홍 박사님은 아들과 단둘이서 프랑스를 여행했을까"라는 글이 던져 준 아이디어도 있습니다만,
사실은 저 편하자고 한 측면이 많습니다.
2. 시간과 비용 면에서 큰 마음을 먹어야 하는 장거리 여행일수록 아이의 수준을 더 신중하게 고려해봐야겠습니다.
제 딸아이는 중학교 1학년으로, 마침 학기 한 중간에 여행을 가도 큰 무리가 없을만한 1주일이 생겨 파리 여행을 질러본 것이었습니다. 앞으로는 공부 때문에 장기간 학교를 빠질 기회가 없을 거라고도 해서요. 그리고 중학교 1학년이면 이제 어느 정도 커서 유럽 여행에 흥미를 느낄 수도 있는 나이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음, 그런데 아직 그건 좀 이른 것이었더군요. 물론 아이들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제 아이는 아직 유럽 여행에 흥미가 없더군요. 미리 여행 공부를 하라고 책을 몇 권 줬는데, 전혀 보지 않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더군요. 제가 파리에 대해 뭔가 설명을 해줘도 귀담아 듣지 않구요. 아직 유럽에 관심이 생기지 않은 것이고, 아이에 대한 관찰이나 배려 없이 저 혼자 너무 쉽게만 제 위주로 낭만적으로 생각했던 거지요.
그런데도 관심도 없는 관광지와 거리를 아빠 따라 걸어 다니면서 허리 아프다, 다리 아프다 라는 말 외에는 다른 불만을 얘기하지 않고 줄곧 잘 따라다닌 제 아이에게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당초 4박 5일로 일정을 짤 때는 그래도 간만에 큰 돈 들여 파리를 가는 건데 너무 일정이 짧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나고보니 더 긴 일정을 잡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기도 합니다.
3. 아이와 여행하면서 두 가지에 신경을 쓰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첫째는, 아이를 제 가족이 아니라 마치 남인 것처럼 대하자.
제가 남한테는 친절하고 오히려 가족한테는 안 친절한 편인데요, 그래서 이번 여행 기간 중에는 아이를 가급적 남처럼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단둘만의 여행이니 서로 원만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가족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고 남처럼 조심스레 대하고 예의를 지키고 대화도 성의 있게 하는 등 노력을 하는 게 좋을 것 같고, 꼭 그게 아니더라도 이제 아이가 꽤 컸기에 제가 아빠랍시고 그저 편하게만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이 다짐은 나름 잘 지킨 것 같습니다. 배려, 존중, 머 이렇게 거창한 단어까지 갖다붙일 일은 아니지만, 평소와 달리 신경을 좀 썼습니다.
둘째, 아이 보는 데서 외국인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아이가 저를 닮아서 좀 숙맥기가 있습니다. 학원에선 영어를 곧잘 한다는데, 아마 저를 닮아서 정작 실전에서는 영어를 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외국인 천지인 파리에서 제가 제 본연의 모습과 달리 외국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이가 따라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이 다짐은 완전 실패였습니다. 제가 제 본연의 모습을 벗어나질 못하겠더군요. 외국인이 옆에 있는 상황이 생기면 스스로 온갖 핑계를 속으로 대면서 기회를 걷어차버리곤 하였습니다. 제가 본을 보이지 못한 것은 물론, 제 아이도 4박 5일간 영어를 한번도 쓰지 않았습니다. 으이그........
4. 이번 여행에서 제가 가장 기대한 것은 '오페라 갸르니에'에서 발레 공연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제 딸아이가 사실상 첫 파리 여행이었기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여행 일정을 준비하였고, 이 기본적인 일정은 모두 제가 이미 경험해본 것들이어서 제 입장에서는 이번 여행에서 새로운 걸 본다는 기대감은 전혀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새로운 볼거리가 바로 '오페라 갸르니에'에서의 발레 공연이었습니다. 한번도 오페라에서 제대로 공연을 본 적이 없었거든요. 마침 여행기간 중 오페라의 발레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고, 기쁜 마음으로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어느 자리에서나 잘 볼 수 있도록 높은 위치에 광활한 면적으로 스크린이 걸려있는 영화와는 달리, 연극, 오페라, 뮤지컬 같은 실사 공연은 객석의 위치에 따라 무대를 조망할 수 있는 여지가 상당히 달라지지요. 그래서 이런 공연들은 무조건 비싼 자리에서 봐야 한다는 쓸 만한 소신을 갖고 있음에도 막상 실천이 쉽질 않곤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정쩡한 가격대의 표를 구하다보니 사이드에 있는 발코니석, 그것도 두 번째 열에 있는 자리를 구했는데, 이게 시야가 아주 좋지 못해서 무대의 절반도 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작은 방 안에서 공연 관람을 하는 발코니석을 경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사이드의 발코니석이 무대와의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아 관람에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제가 들어간 발코니석은 3열로 구성되어 한 열에 두 자리씩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맨 앞의 열만 시야가 확보되는 자리였고, 나머지 두 번째와 세 번째 자리는 발코니 사이사이를 가르는 벽으로 인해 무대와의 각도상 거의 관람이 불가능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아예 보이지도 않는 자리를 어떻게 돈 주고 파나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아무튼 같은 값이면 무대와의 거리가 좀 멀더라도 그나마 무대가 모두 보이는 중앙쪽의 자리를 고르고, 사이드의 자리들은 피하는 게 좋겠습니다.
5. 처음으로 파리에서 소매치기를 경험했습니다.
파리에 적지 않은 기간 있어봤지만, 말로만 듣던 소매치기를 이번에 처음 당해보았습니다.
사건 발생 시각과 장소는 인파가 많은 오후 4시경 메트로 Invalid 역에서였습니다. 제 뒤를 따라 동유럽 계열로 보이는 청년 두 명이 혼잡한 열차 안에 올라타더니 한 명은 저를 밀치고 괜히 흐느적거리는 이상한 행동을 하면서 주의를 끌고, 그 사이 다른 한 명은 제 뒤에 붙어 제가 어깨에 매고 있던 가방 위에 작은 사각 천을 덮어씌우고 그 사이로 가방 지퍼를 열어 손을 집어넣었습니다.
사실 그때는 저도 사태 파악을 못한 채 앞에 있던 이상한 행동을 하는 청년이 뭔가 싶어 거기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제 몸을 다른 쪽으로 돌리자 비로소 뒤에 있던 청년이 저에게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혹시나 싶어 가방을 살펴보니 지퍼가 열려 있었고, 이게 뭐지 하는 사이에 그 청년들은 유유히 열차에서 내렸습니다.
다행히 여권과 지갑 등 귀중품은 모두 제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고 가방에는 귀중품이 전혀 없었기에, 미수에 그친 범행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피해 본 물건은 없었지만, 남의 손이 제 가방 속을 다녀갔다고 생각하니 기분은 많이 나쁘더군요. 그렇게 많은 경험담들을 듣고도 막상 소매치기를 알아채지 못하고 허술하게 당하고 말다니, 어이 없기도 합니다. 뒤에 다시 생각해보면, 충분히 소매치기임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수법이 좀 엉성하기도 했거든요.
에펠탑 부근에 가보니 'Can you speak english?'들은 왜 이렇게 많아졌는지요. 이 사람들도 관광객들에게 서명을 받는 채 하면서 주의를 끄는 사이에 다른 일당이 뒤에서 지갑을 턴다지요. 아무튼 모두들 파리 여행은 조심합시다.
6. 숙소는 파리 15구에 있는 에어비앤비를 이용했습니다. 오래 전에 지어져 엘리베이터도 없는 파리의 전형적인 6층 아파트였는데, 층간소음을 조심해야겠더군요.
저희는 맨 꼭대기 6층에 있는, 거실 하나와 방 하나를 쓸 수 있는 속칭 '하녀방'에 묵었습니다. 에펠탑이 창밖으로 보이는 근사한 곳이었지요.
저희는 맨 꼭대기 층이어서 층간소음을 당할 입장은 아니었는데, 셋째 날 아침에 아래 층에서 사람이 올라오더군요. 신발 소리가 크게 들린다며 신발을 벗어달라구요. 실내에서 신을 슬리퍼를 따로 준비해오지 않아 신고 온 운동화를 실내에서도 계속 신고 있었는데, 이게 아래 층에는 큰 소음이었던 모양입니다.
뒤늦게 슬리퍼를 사기도 뭐해, 찝찝하지만 그냥 양말 신고 생활했습니다. 에어비앤비를 이용할 땐 준비물에 더 신경을 써야겠습니다.
7. 기타 소소한 팁 몇 가지
- 출국하는 날 집에서 가까운 삼성동 도심공항터미널을 이용할까 했습니다. 제 티켓은 대한항공으로 예약했지만, 항공기는 공동운항편인 에어프랑스였습니다. 이런 경우 에어프랑스 창구에서 출국수속을 해야 하는데, 오리지날 에어프랑스가 아닌 공동운항편의 경우는 도심공항터미널에서 수속을 할 수 없다고 하네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런 분들은 허탕치지 말고 인천공항으로 바로 가셔야겠습니다.
- 인천공항도 그렇고 샤를드골공항도 그렇고, 사람이 있는 출국수속대보다 셀프체크인 기기가 많이 설치되어 있더군요. 무인기기로 보딩패스를 출력하고 짐도 함께 부치는 시스템입니다. 처음 써보는 기기라 한번에 못하고 좀 당황하기도 했는데, 이제 대부분의 일을 기계를 이용해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시대인가 봅니다.
- 샤를드골공항에 도착해서는 출국장에 있는 인포메이션에서 이틀 짜리 뮤지엄패스를 구입했습니다. 처음으로 뮤지엄패스를 써봤는데, 미술관에서 티켓 사느라 긴 줄 설 필요 없어 정말 편리하더군요. 뮤지엄패스가 있으니 다른 때 같으면 잘 안 갔을 소소한 미술관도 고민 없이 방문하게 되구요.
이번 여행 기간은 외국인 관광객은 많지 않은 비수기였지만 하필 만성절(Toussaint) 방학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내국인들이 많아 미술관을 비롯한 주요 관광지에서 엄청난 줄을 볼 수 있었고, 그래서 뮤지엄패스의 위력이 더더욱 유감없이 발휘되었습니다.
그리고 18세 미만은 미술관 입장이 아예 무료이므로, 어른만 뮤지엄패스를 구입하면 되겠습니다.
- 샤를드골공항에 도착해서 파리 시내로 이동할 때는, 시간 절약을 위해 처음으로 '우버'를 이용해봤습니다. 낮 2시에 도착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빨리 시내로 들어가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거든요.
요금은 미리 정해진 금액인지, 딱 50유로를 받더군요.
- 미리 은행 가서 환전할 시간이 없어, 파리에 도착해서 거리 여기저기에 있는 현금인출기에서 신용카드로 수시로 조금씩만 유로를 인출해 사용했습니다. 파리는 신용카드를 그대로 쓰면 되니 어차피 현금을 쓸 일이 많지 않고, 얼마 안 되는 소액의 현금이라면 신용카드 대출 수수료가 그리 큰 부담이 된다고 볼 수는 없거든요.
- 교통편을 위해 메트로 창구에서 교통카드인 Navigo를 만들었습니다. 아이에게 추억거리를 만들어줄 겸 해서요. 나중에 커서 친구들이랑 파리를 놀러왔을 때 이번에 아빠랑 만든 나비고로 파리를 누비고 다니라구요.
나비고를 만들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1주일 내내 1구역, 2구역, 이런 거 신경 쓸 필요 없이 베르사유나 샤를드골공항까지 마음껏 다닐 수 있어 편리하기도 합니다. 카드에 붙일 작은 증명사진 한 장은 미리 준비해 가셔야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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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묵은 숙소 창밖 풍경] |
1. 이번 파리 여행은 중학교 1학년인 제 딸아이와의 단둘만의 여행이었습니다.
다른 가족들을 빼고 딸아이만 데리고 여행을 간 이유는, 큰아들과의 프랑스 여행이야기를 담은 이코노미스트 홍춘욱님의 아래 책이, 그리고 이 책을 소개하는 "왜 홍 박사님은 아들과 단둘이서 프랑스를 여행했을까"라는 글이 던져 준 아이디어도 있습니다만,
사실은 저 편하자고 한 측면이 많습니다.
저의 경우 온가족이라고 해봐야 네 명밖에 안 되지만, 모두 한꺼번에 움직이려면 비용은 많이 들고 시간 맞추기는 힘듭니다. 다른 세 명의 컨디션과 상태, 동선에 대해 계속 신경을 쓰고 있어야 합니다. 한 명이라도 컨디션이나 기분에 문제가 생기면 남은 여행 꽝 될 위험 있습니다. 네 명 짐 다 싸기 힘들고, 여행에서 돌아와 이 네 명의 짐 풀고 정리하는 건 더 힘듭니다. 물론 그 네 명분의 짐을 제가 혼자 거의 다 지고갈 큰 위험도 있지요. 호텔이야 네 명이 동시에 들어가는 객실 없어도 에어비앤비 이용하면 되니 문제 없으나, 유럽의 택시는 조수석을 비워둬야 하니 한 차로 이동 불가입니다. 관광지 입장료 내려면 어른 둘, 청소년 하나, 어린이 하나, 갈수록 머리 나빠지는데 계산 복잡합니다. 숙소 화장실 하나를 네 명이 쓰려면 이것도 꽤 불편하겠네요.
이렇게 이런저런 핑계들을 댔으나, 결국 한마디로 정리하면 저 편한 여행 하자는 심보였지요.
확실히 아이 하나와 단둘만 여행을 하니, 앞에 써놓은 핑계들 그대로 여행 자체가 편하긴 편했습니다. 그런데 함께하지 못한 다른 가족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여행 내내 들어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즐거운 순간에는 더더욱 서울에 있는 가족들이 생각나고, 즐겁지 않은 순간에는 이거 벌을 받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함께한 아이와 과연 많은 대화와 의미있는 만남이, 가족 전부와 함께한 여행에 비해 탁월하게 특별하였는지도 의문이구요.
아이와 단둘이 만드는 추억여행이라고 너무 쉽게만 아름답게 제 위주로 포장하지 말고, 가까운 뒷산이라도 아이와 단둘이 가보고 난 다음 멀고 긴 여행을 준비해보는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2. 시간과 비용 면에서 큰 마음을 먹어야 하는 장거리 여행일수록 아이의 수준을 더 신중하게 고려해봐야겠습니다.
제 딸아이는 중학교 1학년으로, 마침 학기 한 중간에 여행을 가도 큰 무리가 없을만한 1주일이 생겨 파리 여행을 질러본 것이었습니다. 앞으로는 공부 때문에 장기간 학교를 빠질 기회가 없을 거라고도 해서요. 그리고 중학교 1학년이면 이제 어느 정도 커서 유럽 여행에 흥미를 느낄 수도 있는 나이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음, 그런데 아직 그건 좀 이른 것이었더군요. 물론 아이들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제 아이는 아직 유럽 여행에 흥미가 없더군요. 미리 여행 공부를 하라고 책을 몇 권 줬는데, 전혀 보지 않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더군요. 제가 파리에 대해 뭔가 설명을 해줘도 귀담아 듣지 않구요. 아직 유럽에 관심이 생기지 않은 것이고, 아이에 대한 관찰이나 배려 없이 저 혼자 너무 쉽게만 제 위주로 낭만적으로 생각했던 거지요.
그런데도 관심도 없는 관광지와 거리를 아빠 따라 걸어 다니면서 허리 아프다, 다리 아프다 라는 말 외에는 다른 불만을 얘기하지 않고 줄곧 잘 따라다닌 제 아이에게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당초 4박 5일로 일정을 짤 때는 그래도 간만에 큰 돈 들여 파리를 가는 건데 너무 일정이 짧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나고보니 더 긴 일정을 잡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기도 합니다.
3. 아이와 여행하면서 두 가지에 신경을 쓰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첫째는, 아이를 제 가족이 아니라 마치 남인 것처럼 대하자.
제가 남한테는 친절하고 오히려 가족한테는 안 친절한 편인데요, 그래서 이번 여행 기간 중에는 아이를 가급적 남처럼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단둘만의 여행이니 서로 원만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가족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고 남처럼 조심스레 대하고 예의를 지키고 대화도 성의 있게 하는 등 노력을 하는 게 좋을 것 같고, 꼭 그게 아니더라도 이제 아이가 꽤 컸기에 제가 아빠랍시고 그저 편하게만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이 다짐은 나름 잘 지킨 것 같습니다. 배려, 존중, 머 이렇게 거창한 단어까지 갖다붙일 일은 아니지만, 평소와 달리 신경을 좀 썼습니다.
둘째, 아이 보는 데서 외국인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아이가 저를 닮아서 좀 숙맥기가 있습니다. 학원에선 영어를 곧잘 한다는데, 아마 저를 닮아서 정작 실전에서는 영어를 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외국인 천지인 파리에서 제가 제 본연의 모습과 달리 외국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이가 따라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이 다짐은 완전 실패였습니다. 제가 제 본연의 모습을 벗어나질 못하겠더군요. 외국인이 옆에 있는 상황이 생기면 스스로 온갖 핑계를 속으로 대면서 기회를 걷어차버리곤 하였습니다. 제가 본을 보이지 못한 것은 물론, 제 아이도 4박 5일간 영어를 한번도 쓰지 않았습니다. 으이그........
4. 이번 여행에서 제가 가장 기대한 것은 '오페라 갸르니에'에서 발레 공연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제 딸아이가 사실상 첫 파리 여행이었기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여행 일정을 준비하였고, 이 기본적인 일정은 모두 제가 이미 경험해본 것들이어서 제 입장에서는 이번 여행에서 새로운 걸 본다는 기대감은 전혀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새로운 볼거리가 바로 '오페라 갸르니에'에서의 발레 공연이었습니다. 한번도 오페라에서 제대로 공연을 본 적이 없었거든요. 마침 여행기간 중 오페라의 발레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고, 기쁜 마음으로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어느 자리에서나 잘 볼 수 있도록 높은 위치에 광활한 면적으로 스크린이 걸려있는 영화와는 달리, 연극, 오페라, 뮤지컬 같은 실사 공연은 객석의 위치에 따라 무대를 조망할 수 있는 여지가 상당히 달라지지요. 그래서 이런 공연들은 무조건 비싼 자리에서 봐야 한다는 쓸 만한 소신을 갖고 있음에도 막상 실천이 쉽질 않곤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정쩡한 가격대의 표를 구하다보니 사이드에 있는 발코니석, 그것도 두 번째 열에 있는 자리를 구했는데, 이게 시야가 아주 좋지 못해서 무대의 절반도 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작은 방 안에서 공연 관람을 하는 발코니석을 경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사이드의 발코니석이 무대와의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아 관람에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제가 들어간 발코니석은 3열로 구성되어 한 열에 두 자리씩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맨 앞의 열만 시야가 확보되는 자리였고, 나머지 두 번째와 세 번째 자리는 발코니 사이사이를 가르는 벽으로 인해 무대와의 각도상 거의 관람이 불가능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아예 보이지도 않는 자리를 어떻게 돈 주고 파나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아무튼 같은 값이면 무대와의 거리가 좀 멀더라도 그나마 무대가 모두 보이는 중앙쪽의 자리를 고르고, 사이드의 자리들은 피하는 게 좋겠습니다.
5. 처음으로 파리에서 소매치기를 경험했습니다.
파리에 적지 않은 기간 있어봤지만, 말로만 듣던 소매치기를 이번에 처음 당해보았습니다.
사건 발생 시각과 장소는 인파가 많은 오후 4시경 메트로 Invalid 역에서였습니다. 제 뒤를 따라 동유럽 계열로 보이는 청년 두 명이 혼잡한 열차 안에 올라타더니 한 명은 저를 밀치고 괜히 흐느적거리는 이상한 행동을 하면서 주의를 끌고, 그 사이 다른 한 명은 제 뒤에 붙어 제가 어깨에 매고 있던 가방 위에 작은 사각 천을 덮어씌우고 그 사이로 가방 지퍼를 열어 손을 집어넣었습니다.
사실 그때는 저도 사태 파악을 못한 채 앞에 있던 이상한 행동을 하는 청년이 뭔가 싶어 거기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제 몸을 다른 쪽으로 돌리자 비로소 뒤에 있던 청년이 저에게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혹시나 싶어 가방을 살펴보니 지퍼가 열려 있었고, 이게 뭐지 하는 사이에 그 청년들은 유유히 열차에서 내렸습니다.
다행히 여권과 지갑 등 귀중품은 모두 제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고 가방에는 귀중품이 전혀 없었기에, 미수에 그친 범행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피해 본 물건은 없었지만, 남의 손이 제 가방 속을 다녀갔다고 생각하니 기분은 많이 나쁘더군요. 그렇게 많은 경험담들을 듣고도 막상 소매치기를 알아채지 못하고 허술하게 당하고 말다니, 어이 없기도 합니다. 뒤에 다시 생각해보면, 충분히 소매치기임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수법이 좀 엉성하기도 했거든요.
에펠탑 부근에 가보니 'Can you speak english?'들은 왜 이렇게 많아졌는지요. 이 사람들도 관광객들에게 서명을 받는 채 하면서 주의를 끄는 사이에 다른 일당이 뒤에서 지갑을 턴다지요. 아무튼 모두들 파리 여행은 조심합시다.
6. 숙소는 파리 15구에 있는 에어비앤비를 이용했습니다. 오래 전에 지어져 엘리베이터도 없는 파리의 전형적인 6층 아파트였는데, 층간소음을 조심해야겠더군요.
저희는 맨 꼭대기 6층에 있는, 거실 하나와 방 하나를 쓸 수 있는 속칭 '하녀방'에 묵었습니다. 에펠탑이 창밖으로 보이는 근사한 곳이었지요.
저희는 맨 꼭대기 층이어서 층간소음을 당할 입장은 아니었는데, 셋째 날 아침에 아래 층에서 사람이 올라오더군요. 신발 소리가 크게 들린다며 신발을 벗어달라구요. 실내에서 신을 슬리퍼를 따로 준비해오지 않아 신고 온 운동화를 실내에서도 계속 신고 있었는데, 이게 아래 층에는 큰 소음이었던 모양입니다.
뒤늦게 슬리퍼를 사기도 뭐해, 찝찝하지만 그냥 양말 신고 생활했습니다. 에어비앤비를 이용할 땐 준비물에 더 신경을 써야겠습니다.
7. 기타 소소한 팁 몇 가지
- 출국하는 날 집에서 가까운 삼성동 도심공항터미널을 이용할까 했습니다. 제 티켓은 대한항공으로 예약했지만, 항공기는 공동운항편인 에어프랑스였습니다. 이런 경우 에어프랑스 창구에서 출국수속을 해야 하는데, 오리지날 에어프랑스가 아닌 공동운항편의 경우는 도심공항터미널에서 수속을 할 수 없다고 하네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런 분들은 허탕치지 말고 인천공항으로 바로 가셔야겠습니다.
- 인천공항도 그렇고 샤를드골공항도 그렇고, 사람이 있는 출국수속대보다 셀프체크인 기기가 많이 설치되어 있더군요. 무인기기로 보딩패스를 출력하고 짐도 함께 부치는 시스템입니다. 처음 써보는 기기라 한번에 못하고 좀 당황하기도 했는데, 이제 대부분의 일을 기계를 이용해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시대인가 봅니다.
- 샤를드골공항에 도착해서는 출국장에 있는 인포메이션에서 이틀 짜리 뮤지엄패스를 구입했습니다. 처음으로 뮤지엄패스를 써봤는데, 미술관에서 티켓 사느라 긴 줄 설 필요 없어 정말 편리하더군요. 뮤지엄패스가 있으니 다른 때 같으면 잘 안 갔을 소소한 미술관도 고민 없이 방문하게 되구요.
이번 여행 기간은 외국인 관광객은 많지 않은 비수기였지만 하필 만성절(Toussaint) 방학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내국인들이 많아 미술관을 비롯한 주요 관광지에서 엄청난 줄을 볼 수 있었고, 그래서 뮤지엄패스의 위력이 더더욱 유감없이 발휘되었습니다.
그리고 18세 미만은 미술관 입장이 아예 무료이므로, 어른만 뮤지엄패스를 구입하면 되겠습니다.
- 샤를드골공항에 도착해서 파리 시내로 이동할 때는, 시간 절약을 위해 처음으로 '우버'를 이용해봤습니다. 낮 2시에 도착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빨리 시내로 들어가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거든요.
요금은 미리 정해진 금액인지, 딱 50유로를 받더군요.
- 미리 은행 가서 환전할 시간이 없어, 파리에 도착해서 거리 여기저기에 있는 현금인출기에서 신용카드로 수시로 조금씩만 유로를 인출해 사용했습니다. 파리는 신용카드를 그대로 쓰면 되니 어차피 현금을 쓸 일이 많지 않고, 얼마 안 되는 소액의 현금이라면 신용카드 대출 수수료가 그리 큰 부담이 된다고 볼 수는 없거든요.
- 교통편을 위해 메트로 창구에서 교통카드인 Navigo를 만들었습니다. 아이에게 추억거리를 만들어줄 겸 해서요. 나중에 커서 친구들이랑 파리를 놀러왔을 때 이번에 아빠랑 만든 나비고로 파리를 누비고 다니라구요.
나비고를 만들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1주일 내내 1구역, 2구역, 이런 거 신경 쓸 필요 없이 베르사유나 샤를드골공항까지 마음껏 다닐 수 있어 편리하기도 합니다. 카드에 붙일 작은 증명사진 한 장은 미리 준비해 가셔야 하구요.
- 제가 카카오톡을 좋아하지 않아서 평소에는 업무용으로만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폰에는 설치하지 않고 컴퓨터에만 깔아서 쓰고 있는데요, 외국여행을 하려니 카톡을 안 쓰기가 좀 힘드네요. 보통 외국여행 가면서 데이터로밍을 신청하게 되니, 카톡에 있는 보이스톡과 페이스톡 기능으로 가족들과 편리하게 연락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번 여행에서 카톡 아주 유용하게 잘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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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느 목사님이 설교 중에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별의별 직업인들이 다양하게 등장하는데, 그 중엔 검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도 있다고. 바로 사도 바울이 원래 검사였다는 겁니다. 바울이 검사라니,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말이라 의아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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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9. 어제 프랑스 법무부 사이트에 뜬 기사에 의하면 프랑스 법무부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금융전담 검찰을 창설하는 법안을 제안하였다고 합니다. 대형 금융범죄, 탈세, 수뢰범죄 등을 단속하기 위해 금융전담 검찰을 창설하고, 이는 파리지방검찰청에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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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고급 레스토랑은 물론 동네에 있는 흔한 파스타 집에서도 '식전빵'이란 걸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에피타이저든 주요리든 뭔가가 나오기 전에 가장 먼저 발사믹을 친 올리브 오일과 함께 나오는 빵을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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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10일에 " 프랑스 금융전담 검찰 창설 "이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프랑스 법무부장관이 국무회의에서 전국의 대형 금융사건을 전담수사하는 '금융전담 검찰'을 창설하는 법안을 제안하였다는 내용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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