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5일 수요일
왜 검사는 무죄판결에 항소하는가?
가까운 지인 사이의 대화를 듣게 됐습니다. 한 분은 화가 많이 난 사람, 다른 한 분은 그런 상대방 말 받아주며 위로해주는 사람.사업체를 운영하시는 분이 일을 하시다 생긴 잘못으로 형사재판을 받다가 다행히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게 되었는데, 검사가 항소를 하는 바람에 2심 재판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무려 2년이 넘는 기간 판사와 검사가 여러 번 바뀌는 와중에 열 번 이상 법정에 나가느라 시달리신 재판이라는데요. 검사는 정작 법정에선 아무 주장도 제대로 못했으면서 왜 굳이 항소를 한 것이며, 그 때문에 또 법정에 나가야 하는 시간과 새로 들어갈 변호사비용 등 손해가 막심하다며 검사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하시더군요.
———————
모든 공적 절차는 단판승부가 없습니다. 반드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후속절차가 마련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재판도 3심제, 삼세판이죠.
만약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으셨다면 억울한 마음에 당연히 항소를 하셨겠죠?
다행히 무죄판결을 받으셨으니, 반대로 상대방인 검사 입장에선 비슷한 이치로 아무래도 항소를 할 마음을 먹기가 쉽겠죠.
만약 누군가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다가 진범이 잡혀서 무죄가 난 사건이라면, 검사는 당연히 항소를 하지 않을 겁니다. 무죄가 100% 맞으니까요.
무죄가 100% 맞는 사건은 아니더라도 재판 중에 새로 밝혀진 사실들에 의해 검사 스스로 이거 영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드는 사건이라면, 무죄가 났어도 항소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내용을 좀 듣자 하니 이 사건은 그런 사건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잘못된 행위를 한 건 맞는데 고의(알고도 한 거냐 아니면 모르고 한 거냐)가 있냐 없냐가 문제되는 사건입니다.
잘못된 행위 자체야 외부로 보이는 거니까 목격자나 CCTV 영상 같은 객관적인 증거를 수집할 수 있고 쉽게 증명이 가능하지만, 고의라는 건 사람 마음속의 문제이니 이걸 증거라는 걸로 증명하는 건 많이 어렵습니다. 판검사들 입장에선 기껏해야 잘못된 행위 앞뒤에 있었던 이런저런 정황들만 놓고 이 사람이 이걸 알았을 거야 또는 몰랐을 거야 라고 추정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 이유로, 간혹 사람 속마음을 증명한답시고 휴대전화 압수하고 단톡방 탈탈 터는, 무리스런 일을 벌이기도 하는 거구요.
아마도 이 사건에서의 검사의 논리는 ‘이 잘못된 행위가 장기간에 걸쳐 여러 번 있었는데 그리 큰 규모도 아닌 업체의 대표가 그걸 전혀 모를 수 있었겠느냐? 분명 알았을 거야. 설령 완전 구체적으로까진 몰랐더라도 대략은 짐작하고 있었을 거야’ 라는 걸 테고, 이 대표를 대리하는 변호사의 논리는 ‘그 일은 이 업체의 전체 업무 중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거의 자동반복적인 업무라 대표가 거기까진 알 수 없었다. 그걸 해서 얻을 이익도 미미하니 그런 짓을 할 동기가 없다’ 라는 걸 겁니다.
둘 다 천양지차의 결론을 가져올 전혀 상반된 논리이지만, 이런 정반대의 논리가 가능한 사건, 즉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는 사건은 의외로 흔합니다. 외견상 정반대의 논리와 결론으로 보이지만, 사실 세상 일이란 게 정답이 없는 경우가 많고 진실이냐 아니냐는 겨우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건에서 중요한 건, 검사든 변호사든 판사를 얼마나 잘 설득해서 저 두 논리 중 나의 논리로 이끌어오느냐 입니다.
여기서 스킬의 차이, 경험의 차이, 성실성의 차이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는 거겠죠. 이런 게 바로 ‘설득’의 구성요소들입니다.
요즘 검찰의 주력부대는 1-2년차의 신참검사들입니다. 요즘 검찰이 그런 암담한 형편입니다. 만약 저 사건을 이런 1-2년차 신참검사가 담당했다면, 설득이란 일이 참… 글쎄요.
20년 넘는 경력자인 저라면, 잘 설득할 자신 있습니다. 유죄 확률이 확 올라갈 겁니다.
그런데도 혹시나 설득에 실패해 무죄가 났다면, 그러면 저라도 역시 항소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건은 설득이 중요한 거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유무죄가 100% 확실한 사건이 아니거든요. 그러니 설득 한 번 실패했다고 그냥 그걸로 끝이 아닌 거에요, 아쉽고 부족했던 부분 잘 보완해서 다시 더 잘 설득해봐야죠. 제가 일단 한 번 맡았던 일이고 열심히 했던 일인데, 어떻게든 잘 해보려는 그 정도의 성의와 노력은 있어야죠.
유무죄라는 게 법으로 명확하게 정해져 있어야지 겨우 설득 같은 걸로 결론이 왔다갔다 하는 게 말이 되느냐? 라는 의문이 드실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상하긴 하지만, 실상이 그런 걸 어쩌겠어요. 그래서 재판이란 건 함부로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고 심장 쫄깃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그렇게 된 것으로 보이니, 항소한 검사를 너무 미워하진 마시라.
———————
라는 말을 차마 그분에게 드리진 못하고 입 안에만 담아두었습니다. 자칫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격이 될 수 있고, 사실 제가 무슨 말을 드린들 그게 귀에 들어오겠어요.
그래도 혹시나 나중에 그분이 저한테 의견을 구하신다면 이렇게 간단히 답하겠습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하셨을 텐데, 1심에서 좋은 결과 보셔서 다행입니다.
다만 너무 매몰찬 말로 들리시겠지만, 이 무죄판결은 원래 내 껀데 잠시 맡겨놓으셨다가 당연히 찾아가시는 그런 게 아닙니다. 똑같은 일을 놓고도 보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는 거고, 아마도 이 재판 시작할 때 감히 무죄를 장담할 순 없으셨을 테니까요. 다행히 유능한 변호사님이 열심히 노력하고 검사보다 판사를 훨씬 더 잘 설득해주신 덕분에 이런 결과물을 얻게 되신 겁니다.
이 사건의 성격상 검사가 항소하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로 보이구요, 남은 2심 재판도 잘 준비하고 대처하셔서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서울시청 서소문청사로 사용되고 있고, 13층 정동전망대는 창밖으로 궁궐뷰가 일품입니다.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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