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30일 일요일
[독서일기] 레미제라블 1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12/30/2018 10:24:00 오후
라벨:
검사
,
독서일기
,
레미제라블
,
프랑스 사법제도
,
프랑스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
휴 잭맨, 앤 해서웨이, 러셀 크로 등이 출연한 영화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이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12월에 개봉되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당시 극장에서만 4번이나 볼 정도로 깊이 빠졌더랬습니다.
장발장이 사람들과 극진한 사랑을 나누고 혁명파가 희망을 노래하는 두 가지 이야기가 함께 진행되면서 전해주는 찐한 감동, 이런 감동을 한층 더 업~ 시켜주는 묵직하거나 아름다운 멜로디의 노래들, 배우들의 혼이 느껴지는 절절한 연기들, 어느 것 하나 빼고 더하거나 나무랄 데 없는 명작 영화였습니다, 저에게는요.
이 영화는 당시 다른 나라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히트를 하였습니다. 그때 막 끝난 대통령선거 결과에 실망한 우리 국민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어서 흥행한 것이라는 둥의 분석도 있었습니다만, 저의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외롭고 힘들게 지내던 저의 그때 그 시절을 위로해준 영화였기에 더 마음을 뺏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난 직후에 뮤지컬로도 보고 책으로도 접했지만, 영화만큼의 감동은 주지 못하더군요. 저에게는 뮤지컬이나 책보다 이 영화 자체가 '레미제라블'로서는 최고였습니다. 물론 이 영화의 OST도 너무 좋아해서 아직까지 즐겨 듣고 있구요.
2018년의 마지막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밤에 넷플릭스로 이 영화를 오랜만에 다시 찾아 보았습니다. 역시나 재미있으면서도 가슴 뭉클하게 감상했습니다. 다만, 영화에서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않은 내용을 책으로 다시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그래서 오랜만에 빅토르 위고의 책도 다시 꺼내들어 읽고 있습니다.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판본들이 있지만, 제가 읽고 있는 책 '레미제라블'은 동서문화사에서 여섯 권으로 나온 판본입니다.
책으로 보는 '레미제라블'은 분량이 많기도 하지만, 이야기 전개가 그리 빠르지 않고, 불필요해 보이는 잡다한 설명도 많고, 번역체 문장이 쉽게 읽히는 편도 아니어서, 처음 볼 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읽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레미제라블'에는 죄를 지은 장발장과 벌을 주려는 자베르 형사가 등장하는 관계로, 19세기 초의 프랑스 사법제도에 관한 얘기가 간간히 나오게 되는데요, 앞으로 책을 조금씩 읽어가면서 프랑스 사법제도 얘기가 나올 때마다 간단한 코멘트를 해볼까 합니다. 물론 저는 19세기의 프랑스 사법제도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긴 하지만, 저 자신의 공부를 위해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며 낯선 역사 속을 헤매어 보려 합니다.
어제부터 제1권을 펴 들기 시작했는데, 33쪽에 벌써부터 위조지폐범을 잡는 검사 얘기가 등장하네요. 독서일기 '레미제라블' 첫번째 이야기는 이걸로 시작해보겠습니다.
-------------------------------------------
소설 '레미제라블'은 1815년 프랑스 디뉴(Digne)라는 지방에서 주교 직을 수행하고 있는 미리엘(Myriel) 주교를 자세하게 소개하는 대목부터 시작합니다. 위고에 따르면 미리엘 주교는 신앙심 깊고, 빈자에게 자애롭고, 일체의 사리사욕 없이 남을 도우며 극히 검소하고 청렴한 삶을 살고 있고, 합리적인 사고방식과 용기도 갖고 있는, 한마디로 이 시대의 성자이자 현자입니다.
미리엘 주교는 원래 귀족 가문 출신으로 젊은 시절에는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나, 프랑스 대혁명으로 가문이 몰락하고 자신은 이탈리아로 망명하였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성직자로 변신하였고 이후로는 전혀 다른 성품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프랑스어 원문(다음에서 발췌: Victor Hugo. ‘Les misérables Tome I.’ iBooks. https://itunes.apple.com/kr/book/les-mis%C3%A9rables-tome-i/id510969617?mt=11)에는 그의 출신에 대해 "M. Myriel était fils d'un conseiller au parlement d'Aix; noblesse de robe"라고 표현하고 있고, 제가 읽고 있는 동서문화사 판본에서는 "미리엘씨는 액스 고등법원 평의원의 아들로 고귀한 법관 가문 출신이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parlement은 현재 '의회'라는 의미로 쓰이는 단어이고 영어에서 의회를 의미하는 parliament과 같은 단어이기도 하지만, 과거에는 의회가 아니라 '고등법원'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단어라고 합니다. 18세기 말까지 파리를 비롯한 13개 도시에 설치되어 있었고, 최종심으로서의 대법원이 별도로 없었던 당시에는 이 parlement이 각 관할구역 내에서 최종심을 담당하였습니다(문준영, 법원과 검찰의 탄생, 역사비평사, 2010, 75쪽).
그리고 'conseiller'는 대개 의회의 의원이라는 뜻의 단어이기도 하지만 다른 의미로는 법원의 판사를 가리키는 단어이므로, 동서문화사 판본에서 '고등법원 평의원'이라고 번역한 부분은 정확하지 않은 번역이라고 하겠습니다.
바로 다음에 나오는 'noblesse de robe'도 프랑스어 사전을 찾아보니 '법복 귀족'이라는 의미이더군요.
결국 위 프랑스어 문장은 "미리엘씨는 액스(Aix) 고등법원 판사의 아들로, 법복 귀족(또는 법관 가문) 출신이었다"로 읽을 수 있겠습니다.
그 뒤로는 미리엘 주교의 훌륭한 인품을 보여주기 위한 여러 에피소드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위조지폐범을 잡은 검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일단 위 iBooks 버전의 원문을 한번 가져와보겠습니다.
Il entendit un jour conter dans un salon un procès criminel qu'on instruisait et qu'on allait juger. Un misérable homme, par amour pour une femme et pour l'enfant qu'il avait d'elle, à bout de ressources, avait fait de la fausse monnaie. La fausse monnaie était encore punie de mort à cette époque. La femme avait été arrêtée émettant la première pièce fausse fabriquée par l'homme. On la tenait, mais on n'avait de preuves que contre elle. Elle seule pouvait charger son amant et le perdre en avouant. Elle nia. On insista. Elle s'obstina à nier. Sur ce, le procureur du roi avait eu une idée. Il avait supposé une infidélité de l'amant, et était parvenu, avec des fragments de lettres savamment présentés, à persuader à la malheureuse qu'elle avait une rivale et que cet homme la trompait. Alors, exaspérée de jalousie, elle avait dénoncé son amant, tout avoué, tout prouvé. L'homme était perdu. Il allait être prochainement jugé à Aix avec sa complice. On racontait le fait, et chacun s'extasiait sur l'habileté du magistrat. En mettant la jalousie en jeu, il avait fait jaillir la vérité par la colère, il avait fait sortir la justice de la vengeance. L'évêque écoutait tout cela en silence. Quand ce fut fini, il demanda:
—Où jugera-t-on cet homme et cette femme?
—À la cour d'assises.
Il reprit:
—Et où jugera-t-on monsieur le procureur du roi?
여기에 등장하는 사건은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연인관계인 남녀가 위조지폐를 만들어 사용한 혐의로 예심절차(instruire)를 거쳐 판결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형사사건으로, 당시는 위조지폐범에 대한 처벌이 사형이던 시절이었습니다. 남자는 위조지폐를 만들고 여자가 그것을 사용하다가 먼저 체포되었는데, 여자는 남자를 보호하기 위해 위조지폐의 출처에 대해 극구 함구하고 있었습니다. 검사(le procureur du roi)는 위조지폐를 만든 공범을 찾아내기 위해 아이디어 하나를 생각해 냈는데, 그것은 남자에게 다른 연인이 있고 여자는 남자에게 속은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위조하여 여자에게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이를 보고 남자에게 분노한 여자가 결국 남자가 위조지폐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자백하여 남자를 검거되게 하였고, 사람들은 여자의 분노를 이용해 진실을 밝혀내고 여자의 복수심에서 정의를 이끌어 냈다며 이 사법관(le magistrat)의 묘책에 감탄하였습니다.
그런데 미리엘 주교는 이 이야기를 듣고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그 남자와 여자는 어디에서 재판을 받습니까?” / “중죄법원(la cour d'assises)입니다.”
미리엘 주교는 다시 이렇게 묻습니다.
“그렇다면 그 검사는 어디에서 재판을 받지요?”
Read More
장발장이 사람들과 극진한 사랑을 나누고 혁명파가 희망을 노래하는 두 가지 이야기가 함께 진행되면서 전해주는 찐한 감동, 이런 감동을 한층 더 업~ 시켜주는 묵직하거나 아름다운 멜로디의 노래들, 배우들의 혼이 느껴지는 절절한 연기들, 어느 것 하나 빼고 더하거나 나무랄 데 없는 명작 영화였습니다, 저에게는요.
이 영화는 당시 다른 나라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히트를 하였습니다. 그때 막 끝난 대통령선거 결과에 실망한 우리 국민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어서 흥행한 것이라는 둥의 분석도 있었습니다만, 저의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외롭고 힘들게 지내던 저의 그때 그 시절을 위로해준 영화였기에 더 마음을 뺏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난 직후에 뮤지컬로도 보고 책으로도 접했지만, 영화만큼의 감동은 주지 못하더군요. 저에게는 뮤지컬이나 책보다 이 영화 자체가 '레미제라블'로서는 최고였습니다. 물론 이 영화의 OST도 너무 좋아해서 아직까지 즐겨 듣고 있구요.
2018년의 마지막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밤에 넷플릭스로 이 영화를 오랜만에 다시 찾아 보았습니다. 역시나 재미있으면서도 가슴 뭉클하게 감상했습니다. 다만, 영화에서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않은 내용을 책으로 다시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그래서 오랜만에 빅토르 위고의 책도 다시 꺼내들어 읽고 있습니다.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판본들이 있지만, 제가 읽고 있는 책 '레미제라블'은 동서문화사에서 여섯 권으로 나온 판본입니다.
책으로 보는 '레미제라블'은 분량이 많기도 하지만, 이야기 전개가 그리 빠르지 않고, 불필요해 보이는 잡다한 설명도 많고, 번역체 문장이 쉽게 읽히는 편도 아니어서, 처음 볼 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읽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레미제라블'에는 죄를 지은 장발장과 벌을 주려는 자베르 형사가 등장하는 관계로, 19세기 초의 프랑스 사법제도에 관한 얘기가 간간히 나오게 되는데요, 앞으로 책을 조금씩 읽어가면서 프랑스 사법제도 얘기가 나올 때마다 간단한 코멘트를 해볼까 합니다. 물론 저는 19세기의 프랑스 사법제도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긴 하지만, 저 자신의 공부를 위해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며 낯선 역사 속을 헤매어 보려 합니다.
어제부터 제1권을 펴 들기 시작했는데, 33쪽에 벌써부터 위조지폐범을 잡는 검사 얘기가 등장하네요. 독서일기 '레미제라블' 첫번째 이야기는 이걸로 시작해보겠습니다.
[https://ridibooks.com/v2/Detail?id=1519000411] |
-------------------------------------------
소설 '레미제라블'은 1815년 프랑스 디뉴(Digne)라는 지방에서 주교 직을 수행하고 있는 미리엘(Myriel) 주교를 자세하게 소개하는 대목부터 시작합니다. 위고에 따르면 미리엘 주교는 신앙심 깊고, 빈자에게 자애롭고, 일체의 사리사욕 없이 남을 도우며 극히 검소하고 청렴한 삶을 살고 있고, 합리적인 사고방식과 용기도 갖고 있는, 한마디로 이 시대의 성자이자 현자입니다.
미리엘 주교는 원래 귀족 가문 출신으로 젊은 시절에는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나, 프랑스 대혁명으로 가문이 몰락하고 자신은 이탈리아로 망명하였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성직자로 변신하였고 이후로는 전혀 다른 성품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프랑스어 원문(다음에서 발췌: Victor Hugo. ‘Les misérables Tome I.’ iBooks. https://itunes.apple.com/kr/book/les-mis%C3%A9rables-tome-i/id510969617?mt=11)에는 그의 출신에 대해 "M. Myriel était fils d'un conseiller au parlement d'Aix; noblesse de robe"라고 표현하고 있고, 제가 읽고 있는 동서문화사 판본에서는 "미리엘씨는 액스 고등법원 평의원의 아들로 고귀한 법관 가문 출신이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parlement은 현재 '의회'라는 의미로 쓰이는 단어이고 영어에서 의회를 의미하는 parliament과 같은 단어이기도 하지만, 과거에는 의회가 아니라 '고등법원'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단어라고 합니다. 18세기 말까지 파리를 비롯한 13개 도시에 설치되어 있었고, 최종심으로서의 대법원이 별도로 없었던 당시에는 이 parlement이 각 관할구역 내에서 최종심을 담당하였습니다(문준영, 법원과 검찰의 탄생, 역사비평사, 2010, 75쪽).
그리고 'conseiller'는 대개 의회의 의원이라는 뜻의 단어이기도 하지만 다른 의미로는 법원의 판사를 가리키는 단어이므로, 동서문화사 판본에서 '고등법원 평의원'이라고 번역한 부분은 정확하지 않은 번역이라고 하겠습니다.
바로 다음에 나오는 'noblesse de robe'도 프랑스어 사전을 찾아보니 '법복 귀족'이라는 의미이더군요.
결국 위 프랑스어 문장은 "미리엘씨는 액스(Aix) 고등법원 판사의 아들로, 법복 귀족(또는 법관 가문) 출신이었다"로 읽을 수 있겠습니다.
그 뒤로는 미리엘 주교의 훌륭한 인품을 보여주기 위한 여러 에피소드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위조지폐범을 잡은 검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일단 위 iBooks 버전의 원문을 한번 가져와보겠습니다.
Il entendit un jour conter dans un salon un procès criminel qu'on instruisait et qu'on allait juger. Un misérable homme, par amour pour une femme et pour l'enfant qu'il avait d'elle, à bout de ressources, avait fait de la fausse monnaie. La fausse monnaie était encore punie de mort à cette époque. La femme avait été arrêtée émettant la première pièce fausse fabriquée par l'homme. On la tenait, mais on n'avait de preuves que contre elle. Elle seule pouvait charger son amant et le perdre en avouant. Elle nia. On insista. Elle s'obstina à nier. Sur ce, le procureur du roi avait eu une idée. Il avait supposé une infidélité de l'amant, et était parvenu, avec des fragments de lettres savamment présentés, à persuader à la malheureuse qu'elle avait une rivale et que cet homme la trompait. Alors, exaspérée de jalousie, elle avait dénoncé son amant, tout avoué, tout prouvé. L'homme était perdu. Il allait être prochainement jugé à Aix avec sa complice. On racontait le fait, et chacun s'extasiait sur l'habileté du magistrat. En mettant la jalousie en jeu, il avait fait jaillir la vérité par la colère, il avait fait sortir la justice de la vengeance. L'évêque écoutait tout cela en silence. Quand ce fut fini, il demanda:
—Où jugera-t-on cet homme et cette femme?
—À la cour d'assises.
Il reprit:
—Et où jugera-t-on monsieur le procureur du roi?
여기에 등장하는 사건은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연인관계인 남녀가 위조지폐를 만들어 사용한 혐의로 예심절차(instruire)를 거쳐 판결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형사사건으로, 당시는 위조지폐범에 대한 처벌이 사형이던 시절이었습니다. 남자는 위조지폐를 만들고 여자가 그것을 사용하다가 먼저 체포되었는데, 여자는 남자를 보호하기 위해 위조지폐의 출처에 대해 극구 함구하고 있었습니다. 검사(le procureur du roi)는 위조지폐를 만든 공범을 찾아내기 위해 아이디어 하나를 생각해 냈는데, 그것은 남자에게 다른 연인이 있고 여자는 남자에게 속은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위조하여 여자에게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이를 보고 남자에게 분노한 여자가 결국 남자가 위조지폐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자백하여 남자를 검거되게 하였고, 사람들은 여자의 분노를 이용해 진실을 밝혀내고 여자의 복수심에서 정의를 이끌어 냈다며 이 사법관(le magistrat)의 묘책에 감탄하였습니다.
그런데 미리엘 주교는 이 이야기를 듣고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그 남자와 여자는 어디에서 재판을 받습니까?” / “중죄법원(la cour d'assises)입니다.”
미리엘 주교는 다시 이렇게 묻습니다.
“그렇다면 그 검사는 어디에서 재판을 받지요?”
1815년의 프랑스 형사사법제도가 지금과 동일하진 않지만,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 여러 개혁입법이 이루어지면서 지금과 유사한 내용의 근대적 형사사법제도가 마련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범죄수사법(le code d'instruction criminelle, 1808)과 법원조직법(Loi sur l'organisation de l'ordre judiciaire et l'administration de la justice, 1810)이 대표적인 입법입니다.
위 대목에서 등장하는 형사사법절차가 지금과는 다른 법에 근거하고 있지만, 대략적인 모습은 지금과 그다지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먼저, 위 에피소드의 남녀 주인공들이 예심절차를 거쳐 판결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는 대목이 나오네요. 예심절차제도는 구체제(앙시앙 레짐) 시절부터 있어오다 1808년 범죄수사법에 의해 현재의 모습이 갖춰지면서 아직까지 운영되고 있는 제도로서, 법원에서의 재판절차에 앞서 예심판사가 증거를 수집하는 일종의 수사절차 또는 일종의 예비적인 재판절차를 말합니다. 예심절차는 주로 중대한 범죄에 대해서 진행되는 절차인데, 위조지폐범이 사형으로 처벌되던 시절이라고 하니 당연히 예심절차의 대상이 되는 중대한 범죄였던 모양입니다.
예심절차의 대상이 되는 중대한 범죄에 대해서는 중죄법원이 그 재판을 담당합니다.
중죄법원이라 함은 배심재판 방식으로 운영되는 재판부를 말합니다. 프랑스의 배심재판제도(정확하게는 참심재판제도라고 하여야 합니다)는 직접적으로는 프랑스 대혁명을 계기로 영국을 모델로 한 것이나, 사실은 중세 프랑스의 형사재판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노르만족에 의해 영국에 전파되었다가 1791년 법률에 의해 다시 역수입된 것이라고 하네요(김택수, "프랑스 참심재판의 개혁과 시사점", 법학논총 제31집 제2호, 한양대 법학연구소, 2014, 74쪽).
중죄법원은 프랑스 대혁명 직후에는 'tribunal criminel'이라는 명칭으로 출발하였다가, 1810년 법원조직법에서 'cour d'assises'라는 현재의 명칭을 갖게 되었습니다{프랑스 위키피디아, https://fr.wikipedia.org/wiki/Cour_d%27assises_(France)}.
예심판사가 사실상의 수사를 담당하는 제도에서 검사는 어떠한 역할을 하게 될까요.
검사는 13세기 프랑스 왕의 사적 이익을 옹호하는 역할을 하던 '왕의 대리인(procureur du roi)'에서 유래하여 점차 왕의 사적 이익을 옹호하는 위치에서 벗어나 '일반이익과 공공선의 보좌인'이라는 위상을 갖게 된 국가기관으로, 법복 귀족이 장악한 법원을 견제하는 역할을 담당하여 오다 프랑스 대혁명을 계기로 집행권에 속한 특별한 사법관(magistrat)의 지위를 갖게 되었습니다(문준영, 앞의 책, 76~86쪽).
이후 왕정이 모습을 감추고 공화정이 정착되면서 종전의 명칭인 'procureur du roi(왕의 대리인 또는 공소관)' 대신 'procureur de la République(공화국의 대리인 또는 공소관)'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구요. 같은 프랑스어권 국가이지만 입헌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는 벨기에에서는 아직도 검사를 procureur du roi라고 부르고 있지요.
이후 왕정이 모습을 감추고 공화정이 정착되면서 종전의 명칭인 'procureur du roi(왕의 대리인 또는 공소관)' 대신 'procureur de la République(공화국의 대리인 또는 공소관)'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구요. 같은 프랑스어권 국가이지만 입헌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는 벨기에에서는 아직도 검사를 procureur du roi라고 부르고 있지요.
검사는 사법경찰의 수사행위를 지휘감독하고, 사법경찰의 수사 결과 중대한 범죄를 발견하게 되면 이에 대해 예심절차를 개시하여 달라고 예심판사에게 청구하고, 이 사건이 예심판사의 수사 결과 결국 혐의가 인정되어 재판법원으로 넘어오게 되면 법정에 출석하여 범인이 유죄를 받을 수 있도록 소송행위를 담당합니다.
위 에피소드에서 검사는 위조지폐를 사용하다 체포된 여자가 결국 공범에 대해 자백하도록 하였는데, 검사가 사법경찰의 수사, 예심판사의 예심, 재판법원의 재판 등 각 절차 모두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는 하므로 이 중 어느 한 단계에 끼어들어 여자의 자백을 유도하였을 것입니다.
이 에피소드를 들은 사람들 대부분은 이 검사가 기발한 꾀를 내어 자칫 법망을 잘 빠져나갈 뻔했던 공범을 통쾌하게 잡아냈다며 칭송하였다는 것인데요, 유독 미리엘 주교만 여기에 삐딱한 시선을 보냅니다. 아무리 공범을 잡겠다는 선한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무릇 정의를 추구한다는 국가기관이 저렇게 국민을 속이기까지 해서야 되겠냐는 거죠.
사실 지금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공범을 저런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잡아낸 검사가 이상해 보일 뿐 미리엘 주교의 문제 제기는 전혀 삐딱해 보이지 않지만, 미리엘 주교의 선한 품성을 소개하기 위해 빅토르 위고가 이런 에피소드를 레미제라블에 넣은 것을 보면 당시로서는 미리엘 주교를 통해 보여준 이러한 시각이 꽤 독특하고 신선한 것이었던가 봅니다.
사실 지금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공범을 저런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잡아낸 검사가 이상해 보일 뿐 미리엘 주교의 문제 제기는 전혀 삐딱해 보이지 않지만, 미리엘 주교의 선한 품성을 소개하기 위해 빅토르 위고가 이런 에피소드를 레미제라블에 넣은 것을 보면 당시로서는 미리엘 주교를 통해 보여준 이러한 시각이 꽤 독특하고 신선한 것이었던가 봅니다.
그러면 국가기관이 그러한 정직하지 못한 행위를 하면 안 된다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우리 형사소송법에 보면 제308조의2에 위법수집증거 배제원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진실의 발견이 형사사법절차의 목표이기는 하나, 그것은 적법절차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프랑스에도 위법수집증거 배제원칙에 해당하는 것으로 ‘적법절차 원칙(Principe de la légalité)’이라는 것이 있는데요, 인권을 존중하고 정의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증거를 수집함으로써 피고인의 권리와 공정한 절차를 보장하여야 한다는 원칙을 의미합니다. 이는 주로 ‘신의칙(Principe de loyauté)'에서 도출되는 것으로, 형사소송법상 명문의 규정은 없으나 전통적으로 판례에 의해 확립되어 있는 원칙입니다.
적법절차 원칙이 신의칙에서 유래된 데 기인하여, 위법하게(illicite) 수집된 증거뿐만 아니라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déloyale) 수집된 증거도 위법한 증거가 되고, 이러한 증거는 형사소송법에 마련되어 있는 ‘절차의 무효(Nullité de la procédure)'라는 제도에 따라 증거로서의 사용이 금지됩니다(한제희, "프랑스 위법수집증거 취급방법 개관", 형사소송 이론과 실무 제3권 제2호, 한국형사소송법학회, 2011, 198~203쪽).
이와 같이 검사가 위법한 방법으로 증거를 수집하면 안 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 없는 당연한 결론입니다. 그런데 이런 당연한 결론은 그렇다치고, 아마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의문이 드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그럼 위조지폐를 만든 이 범행의 주범인 남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남자에 대해서 위법하게 증거가 수집되었으니 남자는 무죄 판결을 받고 여자만 유죄 판결을 받게 되는 것인가.
우리의 위법수집증거 배제원칙의 경우,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도 예외는 있습니다. 본래의 범죄로 인해 발생한 위법상태와 증거의 위법한 수집으로 인해 발생한 위법상태를 서로 비교하여, 전자가 후자에 비해 본질적이거나 매우 중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도 예외적으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프랑스의 '적법절차 원칙'에도 이런 식의 예외가 인정되는 걸까요. 비슷한 논리로 증거로서의 사용을 인정한 판례들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예외가 인정된다는 취지의 명백한 학설은 없기 때문에, 이 사건의 경우 어떤 결론을 낼 수 있을지는 다소 불분명합니다.
어쨌든 이러한 판단은 재판을 하는 법관이 자유재량에 따라 하게 되는 것인데요. 제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이 사건의 경우 위조지폐를 만드는 것이 사형이라는 벌을 받을 정도로 매우 중대한 범죄이고 남자는 무죄 여자는 유죄라는 불합리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음을 감안할 때, 아마도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이긴 하지만 여자의 자백을 예외적인 유죄의 증거로 채택하여 남자에 대해서도 유죄 판결이 선고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둘째, 만약 검사가 정직한 사람이어서 여자를 속이려고 하지 않아 결국 남자를 못 잡았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남자를 못 잡으면 여자만 혼자 처벌받게 되는 문제가 있고, 남자가 재차 위조지폐를 만들어 사용하는 범행을 반복하게 될 것이니, 무슨 방법을 쓰든 남자를 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소설에 의하면 남자를 잡을 만한 다른 증거는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남자를 잡을 방법이 전혀 없었으니 검사가 정의감이나 의욕이 넘친 나머지 여자의 입을 열기 위해 저런 무리수를 둔 것이라는 거겠죠.
요새같이 두 남녀간의 문자 메시지나 카톡 메시지를 압수해서 보았더니 두 사람이 범행을 함께 한 것이라고 의심할만한 내용이 발견되었다면 어떨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결론은 마찬가지입니다. 공범임을 확신할 수 있는 명백한 내용이 아닌 한, 단지 의심스러운 내용의 문자나 카톡 메시지만으로는 혐의를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결국 두 사람의 자백 진술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거든요.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 보면, 어떤 살인 사건에서 증거라고는 범행에 사용된 칼에서 발견된 누군가의 지문 뿐이라고 할 때, 그 지문만으로 그 지문의 보유자를 범죄자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 지문 보유자의 자백이 추가로 필요합니다. 범죄자가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지문을 칼에 묻혀놓았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다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함부로 유죄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형사재판의 대원칙입니다.
즉, 비록 "자백은 증거의 왕이다"라는 말이 온갖 비난을 다 받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어떠한 물적 증거도 사람의 진술보다는 가치가 낮은 증거라는 것이죠. 여러 물적 증거들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고, 사람의 진술에 의해 '조합'되고 '연결'되어야만 유죄의 증거로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와 같은 이유로 범죄의 증거를 발견하고 수집한다는 것은 극히 힘든 일이고, 특히 사람의 진술은 더더욱 그러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무리 과학수사가 발달하더라도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는 미제 사건은 어쩔 수 없이 발생하기 마련이고, 더구나 그러한 경우가 꽤 잦을 수도 있습니다. 너무 무기력한 얘기 같지만, 이 사건과 같은 류의 사건에서 공범인 남자를 잡지 못하고 사건이 미궁에 빠지는 상황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다시 자세히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셋째, 미리엘 주교의 질문처럼 그럼 여자를 속인 검사는 어디에서 재판을 받게 될까요.
검사가 부정직한 행위를 하기는 했지만, 아마도 이러한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 형법 규정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떠한 잘못된 행위가 있더라도, 그 모두에 대해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 행위의 경중과 불법의 정도 등을 따져, 어떤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가 하면, 그와 다른 어떤 행위에 대해서는 민사배상을 하게 할 수도 있고, 그와는 또다른 어떤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이나 민사배상도 아닌 다른 형태의 제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결국 이 검사의 경우에는 아마도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못한 점을 이유로 내부적인 징계조치를 받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적법절차 원칙이 신의칙에서 유래된 데 기인하여, 위법하게(illicite) 수집된 증거뿐만 아니라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déloyale) 수집된 증거도 위법한 증거가 되고, 이러한 증거는 형사소송법에 마련되어 있는 ‘절차의 무효(Nullité de la procédure)'라는 제도에 따라 증거로서의 사용이 금지됩니다(한제희, "프랑스 위법수집증거 취급방법 개관", 형사소송 이론과 실무 제3권 제2호, 한국형사소송법학회, 2011, 198~203쪽).
이와 같이 검사가 위법한 방법으로 증거를 수집하면 안 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 없는 당연한 결론입니다. 그런데 이런 당연한 결론은 그렇다치고, 아마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의문이 드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그럼 위조지폐를 만든 이 범행의 주범인 남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남자에 대해서 위법하게 증거가 수집되었으니 남자는 무죄 판결을 받고 여자만 유죄 판결을 받게 되는 것인가.
우리의 위법수집증거 배제원칙의 경우,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도 예외는 있습니다. 본래의 범죄로 인해 발생한 위법상태와 증거의 위법한 수집으로 인해 발생한 위법상태를 서로 비교하여, 전자가 후자에 비해 본질적이거나 매우 중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도 예외적으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프랑스의 '적법절차 원칙'에도 이런 식의 예외가 인정되는 걸까요. 비슷한 논리로 증거로서의 사용을 인정한 판례들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예외가 인정된다는 취지의 명백한 학설은 없기 때문에, 이 사건의 경우 어떤 결론을 낼 수 있을지는 다소 불분명합니다.
어쨌든 이러한 판단은 재판을 하는 법관이 자유재량에 따라 하게 되는 것인데요. 제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이 사건의 경우 위조지폐를 만드는 것이 사형이라는 벌을 받을 정도로 매우 중대한 범죄이고 남자는 무죄 여자는 유죄라는 불합리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음을 감안할 때, 아마도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이긴 하지만 여자의 자백을 예외적인 유죄의 증거로 채택하여 남자에 대해서도 유죄 판결이 선고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둘째, 만약 검사가 정직한 사람이어서 여자를 속이려고 하지 않아 결국 남자를 못 잡았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남자를 못 잡으면 여자만 혼자 처벌받게 되는 문제가 있고, 남자가 재차 위조지폐를 만들어 사용하는 범행을 반복하게 될 것이니, 무슨 방법을 쓰든 남자를 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소설에 의하면 남자를 잡을 만한 다른 증거는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남자를 잡을 방법이 전혀 없었으니 검사가 정의감이나 의욕이 넘친 나머지 여자의 입을 열기 위해 저런 무리수를 둔 것이라는 거겠죠.
요새같이 두 남녀간의 문자 메시지나 카톡 메시지를 압수해서 보았더니 두 사람이 범행을 함께 한 것이라고 의심할만한 내용이 발견되었다면 어떨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결론은 마찬가지입니다. 공범임을 확신할 수 있는 명백한 내용이 아닌 한, 단지 의심스러운 내용의 문자나 카톡 메시지만으로는 혐의를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결국 두 사람의 자백 진술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거든요.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 보면, 어떤 살인 사건에서 증거라고는 범행에 사용된 칼에서 발견된 누군가의 지문 뿐이라고 할 때, 그 지문만으로 그 지문의 보유자를 범죄자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 지문 보유자의 자백이 추가로 필요합니다. 범죄자가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지문을 칼에 묻혀놓았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다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함부로 유죄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형사재판의 대원칙입니다.
즉, 비록 "자백은 증거의 왕이다"라는 말이 온갖 비난을 다 받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어떠한 물적 증거도 사람의 진술보다는 가치가 낮은 증거라는 것이죠. 여러 물적 증거들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고, 사람의 진술에 의해 '조합'되고 '연결'되어야만 유죄의 증거로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와 같은 이유로 범죄의 증거를 발견하고 수집한다는 것은 극히 힘든 일이고, 특히 사람의 진술은 더더욱 그러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무리 과학수사가 발달하더라도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는 미제 사건은 어쩔 수 없이 발생하기 마련이고, 더구나 그러한 경우가 꽤 잦을 수도 있습니다. 너무 무기력한 얘기 같지만, 이 사건과 같은 류의 사건에서 공범인 남자를 잡지 못하고 사건이 미궁에 빠지는 상황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다시 자세히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셋째, 미리엘 주교의 질문처럼 그럼 여자를 속인 검사는 어디에서 재판을 받게 될까요.
검사가 부정직한 행위를 하기는 했지만, 아마도 이러한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 형법 규정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떠한 잘못된 행위가 있더라도, 그 모두에 대해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 행위의 경중과 불법의 정도 등을 따져, 어떤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가 하면, 그와 다른 어떤 행위에 대해서는 민사배상을 하게 할 수도 있고, 그와는 또다른 어떤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이나 민사배상도 아닌 다른 형태의 제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결국 이 검사의 경우에는 아마도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못한 점을 이유로 내부적인 징계조치를 받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8년 12월 24일 월요일
르몽드가 추천하는 크리스마스 영화 9편
2018년 12월 23일자 르몽드의 "Les films de Noël de la rédaction du « Monde.fr »" 기사. 르몽드가 100% 주관적으로 뽑은 크리스마스 추천 영화 9편입니다.
미국 영화가 많고, 대부분 너무 흔하고 유명한 영화들이네요. 새로움은 없지만, 미국 영화 제목을 프랑스에서는 어떻게 작명했는지를 보는 새로움은 있다고 할까요.
윗쪽은 프랑스에서의 제목과 개봉 연도이고, 아랫쪽에는 친절하게 오리지널 제목과 한국 제목을 달아드립니다.
1. « Il était une fois en Amérique » (1984)
Once upon a time in America,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2. « Maman, j’ai encore raté l’avion » (1992)
Home Alone 2: Lost in New York, 나홀로 집에 2
3. « Les Gremlins » (1984)
Gremlins, 그렘린
4. « Le Père Noël est une ordure » (1982)
이건 프랑스 영화군요.
5. « Love actually » (2003)
Love actually, 러브 액츄얼리
6. « Un jour sans fin » (1993)
Groundhog Day, 사랑의 블랙홀
8. « Ben Hur » (1959)
Ben Hur, 벤허
9. « West Side Story » (1961)
West Side Story, 웨스트 사이트 스토리
Read More
미국 영화가 많고, 대부분 너무 흔하고 유명한 영화들이네요. 새로움은 없지만, 미국 영화 제목을 프랑스에서는 어떻게 작명했는지를 보는 새로움은 있다고 할까요.
윗쪽은 프랑스에서의 제목과 개봉 연도이고, 아랫쪽에는 친절하게 오리지널 제목과 한국 제목을 달아드립니다.
1. « Il était une fois en Amérique » (1984)
Once upon a time in America,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2. « Maman, j’ai encore raté l’avion » (1992)
Home Alone 2: Lost in New York, 나홀로 집에 2
3. « Les Gremlins » (1984)
Gremlins, 그렘린
4. « Le Père Noël est une ordure » (1982)
이건 프랑스 영화군요.
5. « Love actually » (2003)
Love actually, 러브 액츄얼리
6. « Un jour sans fin » (1993)
Groundhog Day, 사랑의 블랙홀
7. « Une journée en enfer » (1995)
Die Hard with a Vengeance, 다이하드3
Die Hard with a Vengeance, 다이하드3
Ben Hur, 벤허
9. « West Side Story » (1961)
West Side Story, 웨스트 사이트 스토리
2018년 12월 23일 일요일
[독서일기] 아날로그의 반격
재미있는 책을 발견했고, 역시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2017년 6월 우리말로 번역돼 나온 데이비드 색스의 '아날로그의 반격'입니다.
저자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진작 마땅히 멸종되었을 줄 알았던 레코드판, 종이 노트, 필름 카메라, 보드게임 카페, 종이 잡지, 오프라인 서점 등이 지금도 버젓이 살아 남아 있고, 심지어는 이것들이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다시 유행상품이 되려고 하는 사례들을 보여 줍니다.
물론 저자가 제시한 사례들만 보면 아직 이 아날로그들의 반격은 미미하고 대세라고 말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저자는 사람들이 서서히 이 아날로그들에 다시 주목하는 현상에 적지 않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디지털이 지금 사회의 주류 경향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바람직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인간이란 존재는 나름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기에, 사람들이 무작정 디지털 세계라는 한쪽 방향으로만 쏠리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저자는 아날로그에서 시작하여 디지털로의 전환까지 경험한 장년층 세대와, 처음부터 디지털만 경험해온 신진 세대를 나누어 아날로그의 반격 경향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전자의 경우 자신이 어려서부터 경험하고 즐겨왔던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와 복고가 작용하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 디지털에 대해서만 알고 있는 세대의 입장에서 아날로그는 새로운 것이기에 힙하고 쿨해서 매력적이라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새로운 것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손에 넣고서 남들과 달라보인다는 것에 우쭐하고 만족스러워하곤 하지요. 그러다 그 새로운 것이 대세가 되고나면 다시 다른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구요. 그 새로운 것에는 과거의 것도 물론 포함되기도 합니다. 복고가 다시 유행을 타는 경우도 흔하잖습니까.
쉬운 예를 들어 보면, 스마트폰이 처음 우리에게 등장했을 때는 지하철에서 남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즐기며 스마트폰을 시전하다가, 이제는 지하철에서 누구나 스마트폰에 시선을 꽂고 다니게 되자 그러한 유행에 식상하여 반대로 종이책을 꺼내들고 싶어하게 되잖아요.
저자가 제시한 여러 사례들 중에서도 특히 7장의 디트로이트 시계 제조업체 '시놀라' 사례와 8장의 학교 교육 테크놀로지 사례가, 저에게는 인상 깊었습니다.
수십년간 도시를 먹여살리던 자동차 산업이 떠나가 거의 폐허가 된 디트로이트에 아날로그적인 제조업 방식으로 아날로그 시계를 제조하는 '시놀라'가 잔잔한 파문을 던지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미국은 전통적인 제조업체보다는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업체들이 각광을 받고 있지만, 이러한 IT업체들의 경우 제조업체에 비해 매우 적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을 뿐더러 그 일자리조차 고급 프로그래머와 같은 고도로 숙련된 일자리와 단순 업무만을 처리하는 숙련도 낮은 일자리로 양분되어 있을 뿐이어서 사회적인 공헌도가 크지 않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전통적인 제조업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죠.
저는 아이패드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아이패드라는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기계가 등장하면서, 스티브 잡스가, 그리고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 아이패드가 첨단 교육기기로서 금방 학교 교실들을 장악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자에 의하면 이 실험은 이미 실패하였다고 합니다.
모든 교실에 아이패드를 비롯한 첨단 교육용 기기를 공급하고 설치한다는 것은 정치가나 행정가의 보여주기식 정책으로는 정말 그만이지만,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한 오해에 기인한 정책이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교육이라는 게 단지 지식의 전수에 불과한 것이라면 첨단 기기가 충분히 제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교육은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이고 그들 간의 공감이 본질이기에 그렇지 않다는 것이네요. 스마트 기기가 야기하는 집중력과 사고력의 훼손, 기기의 유지보수 비용 등도 부수적으로 문제가 되겠구요.
아날로그는 이미 흘러간 옛노래인 줄만 알았는데, 너무 세상을 단순하게만 보고 있었던 저에게 귀한 교훈을 주는 책이었습니다.
Read More
[http://www.yes24.com/24/goods/43209147] |
저자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진작 마땅히 멸종되었을 줄 알았던 레코드판, 종이 노트, 필름 카메라, 보드게임 카페, 종이 잡지, 오프라인 서점 등이 지금도 버젓이 살아 남아 있고, 심지어는 이것들이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다시 유행상품이 되려고 하는 사례들을 보여 줍니다.
물론 저자가 제시한 사례들만 보면 아직 이 아날로그들의 반격은 미미하고 대세라고 말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저자는 사람들이 서서히 이 아날로그들에 다시 주목하는 현상에 적지 않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디지털이 지금 사회의 주류 경향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바람직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인간이란 존재는 나름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기에, 사람들이 무작정 디지털 세계라는 한쪽 방향으로만 쏠리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저자는 아날로그에서 시작하여 디지털로의 전환까지 경험한 장년층 세대와, 처음부터 디지털만 경험해온 신진 세대를 나누어 아날로그의 반격 경향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전자의 경우 자신이 어려서부터 경험하고 즐겨왔던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와 복고가 작용하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 디지털에 대해서만 알고 있는 세대의 입장에서 아날로그는 새로운 것이기에 힙하고 쿨해서 매력적이라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새로운 것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손에 넣고서 남들과 달라보인다는 것에 우쭐하고 만족스러워하곤 하지요. 그러다 그 새로운 것이 대세가 되고나면 다시 다른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구요. 그 새로운 것에는 과거의 것도 물론 포함되기도 합니다. 복고가 다시 유행을 타는 경우도 흔하잖습니까.
쉬운 예를 들어 보면, 스마트폰이 처음 우리에게 등장했을 때는 지하철에서 남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즐기며 스마트폰을 시전하다가, 이제는 지하철에서 누구나 스마트폰에 시선을 꽂고 다니게 되자 그러한 유행에 식상하여 반대로 종이책을 꺼내들고 싶어하게 되잖아요.
저자가 제시한 여러 사례들 중에서도 특히 7장의 디트로이트 시계 제조업체 '시놀라' 사례와 8장의 학교 교육 테크놀로지 사례가, 저에게는 인상 깊었습니다.
수십년간 도시를 먹여살리던 자동차 산업이 떠나가 거의 폐허가 된 디트로이트에 아날로그적인 제조업 방식으로 아날로그 시계를 제조하는 '시놀라'가 잔잔한 파문을 던지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미국은 전통적인 제조업체보다는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업체들이 각광을 받고 있지만, 이러한 IT업체들의 경우 제조업체에 비해 매우 적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을 뿐더러 그 일자리조차 고급 프로그래머와 같은 고도로 숙련된 일자리와 단순 업무만을 처리하는 숙련도 낮은 일자리로 양분되어 있을 뿐이어서 사회적인 공헌도가 크지 않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전통적인 제조업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죠.
저는 아이패드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아이패드라는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기계가 등장하면서, 스티브 잡스가, 그리고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 아이패드가 첨단 교육기기로서 금방 학교 교실들을 장악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자에 의하면 이 실험은 이미 실패하였다고 합니다.
모든 교실에 아이패드를 비롯한 첨단 교육용 기기를 공급하고 설치한다는 것은 정치가나 행정가의 보여주기식 정책으로는 정말 그만이지만,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한 오해에 기인한 정책이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교육이라는 게 단지 지식의 전수에 불과한 것이라면 첨단 기기가 충분히 제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교육은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이고 그들 간의 공감이 본질이기에 그렇지 않다는 것이네요. 스마트 기기가 야기하는 집중력과 사고력의 훼손, 기기의 유지보수 비용 등도 부수적으로 문제가 되겠구요.
아날로그는 이미 흘러간 옛노래인 줄만 알았는데, 너무 세상을 단순하게만 보고 있었던 저에게 귀한 교훈을 주는 책이었습니다.
2018년 12월 21일 금요일
프랑스도 검사의 수가 부족?
2018년 12월 20일자 르몽드 지 기사 "검사의 긴급한 증원을 권고하는 보고서(Un rapport préconise d’augmenter de façon « urgente » les effectifs de magistrats du parquet)"의 내용은 대략 이러합니다.
법무부 소속의 '사법감찰관(inspection générale de la justice)'이 작성해서 지난 월요일 법무부장관에게 제출한 보고서는, 검찰이 겪고 있는 만성적인 인원 부족 상태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Read More
법무부 소속의 '사법감찰관(inspection générale de la justice)'이 작성해서 지난 월요일 법무부장관에게 제출한 보고서는, 검찰이 겪고 있는 만성적인 인원 부족 상태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세련되고 효율적인 사법제도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직무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장치들이 필요한데, 보다 많은 수의 검사가 우선 필요하다. 사법감찰관은 만성적인 인원 부족 상태에 있는 검사의 수를 확실하게 늘릴 것을 권고한다.
이 보고서에서는 판사에 비해 검사의 인적 손실로 인해 검사의 매력이 줄고 있다고 강조한다. 국립사법관학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검사의 38%가 5년이 지나면 검찰을 떠났고, 10년이 지나면 55%가 검찰을 떠났다.
이렇게 검사 인원이 부족하게 된 이유로는, 근무시간의 급증, 그리고 사법관의 긴급한 대처를 의무화하는 각종 법률의 인플레이션에 따라 검찰에 부여되는 업무의 과중을 들 수 있다.
사법감찰관은 우선 검찰의 빈자리부터 메워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3개월 전까지 검사 보직 중 3.84%가 공석으로 남아 있었고, 이는 1년 전의 7.31%에 비해 낮아진 수치이다. 현재의 공석률은 2.97%로 생각되는데, 이는 내년 9월에 사법관학교를 졸업하는 352명의 사법연수생들이 검찰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에릭 마태(Eric Mathais) 전국검사장회의(Conférence nationale des procureurs de la République) 의장은 "이 보고서는 검사의 자기정체성 위기가 심각하고, 이는 우리가 과장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라고 평하였다.
2017년 여름에 전국검사장회의에서 발간한 'Livre noir'에서는, 빈곤화가 진행 중인 사법기관의 풍경을 묘사하고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검사의 지위 관련 개혁을 요구하였다.
검사의 지위 관련 개혁방안(이는 검찰의 일체감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으로 헌법 개정과 함께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현재 '노란 조끼' 운동으로 인해 헌법 개정작업이 정지되어 있는 상태이다) 외에, 사법감찰관은 검사들의 무관심을 야기하는 또다른 요소이기도 한 위계조직 구조에 관한 폭넓은 검토를 제안하였다.
사법관조합은 이 보고서가 그들의 요구사항에 부합하는 실용적인 내용이라고 환영하면서 법무부장관에게 이 보고서의 28개 권고사항에 대한 세부조치를 마련할 것을 요구하였다.
법무부 대변인은 장관의 요구에 따라 1월부터 조사위원회가 운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 내용만으로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기에 사법감찰관이 작성해서 법무부장관에게 보고하였다는 위 보고서 원문을 보고 싶은데, 법무부 홈페이지에서는 아직 볼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기사 내용만으로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기에 사법감찰관이 작성해서 법무부장관에게 보고하였다는 위 보고서 원문을 보고 싶은데, 법무부 홈페이지에서는 아직 볼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2018년 12월 17일 월요일
[독서일기] <호모 히스토리쿠스>,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
최근에 역사에 관한 좋은 책 두 권을 읽었습니다. 오항녕 지음 <호모 히스토리쿠스>(2016년 8월, 개마고원)와 젊은역사학자모임 지음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2018년 10월, 서해문집)입니다.
전자는 역사란 무엇이고 역사 공부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 하는 점을, 후자는 유사역사학을 비판하면서 역사 공부의 바른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두 책의 저자들이 이 책들을 저술하게 된 각각의 출발점은 다르겠지만, 결국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 주겠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즉, 역사를 섣불리 단정 지어 보지 말고, 또 악의를 갖고 역사를 호도하는 사람들을 경계하자는 것입니다.
두 책 모두 느끼는 바가 많은 내용들을 담고 있고, 거의 암기 정도 해놔야 되지 않을까 싶은 주옥같은 내용들이 많습니다. 비단 역사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 사회를 정확히 바라보는 데도 유용한 사고 틀을 발견할 수 있네요. 두고두고 기억해 놓기 위해 여기 일부 내용을 옮겨보려 합니다.
<호모 히스토리쿠스>
제1부 내 발길이 만드는 역사
- 모든 사건에는 언제나 객관적 조건, 사람의 의지, 그리고 우연이 함께 들어 있다. 모든 사건은 조건, 의지, 우연이 합쳐져서 발생합니다. 역사는 사건에 대한 탐구이므로 모든 사건을 탐구할 때는 조건, 의지, 우연을 다 살펴야 합니다. (34쪽)
- 구조라고 해서 불변은 아닙니다. 구조도 변합니다. 구조는 다음에 살펴볼 자유의지와 대립적이지 않습니다. 자유의지로 선택한 것이 나중에는 구조가 됩니다. (52쪽)
- 객관적 조건과 구조를 고려하지 않으면 사태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구조만 고려하면 설명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이 사라집니다. --- 인간의 의지가 빠진 역사적 사건이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53쪽)
- 모든 역사적 사건에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작용하고 있지만, 사건을 해석할 때는 자유의지를 조심스럽게 대입해야 할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60쪽)
- 역사에는 서로 원인이 다른 둘 이상의 사태가 만나서 생기는 사건이 많습니다. 아니 모든 사건에는 우연이 내재합니다. (68쪽)
제2부 역사의 영역
제3부 기억, 기록, 그리고 시간의 존재
- 이렇게 잘못된 기억이 증언이나 기록으로 남고, 이것이 역사자료로 활용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연스럽게 역사의 오류를 낳거나 왜곡으로 이어지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132쪽)
- 핵심은 주관(성)이란 것이 객관(성)과 대립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무엇이 아니라는 겁니다. 아니 그보다 객관성의 토대이자 자양분이며, 실질적 내용이자 풍부하게 해주는 질료가 주관성입니다. 주관을 객관의 대립으로 설정하는 사유는 결국 하나의 '객관'만을 강요하기에 이릅니다. (151쪽)
- 역사기록이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일기나 편지에서 교과서, 논문까지 역사기록의 스펙트럼은 넓습니다. 전자를 주로 사료, 역사기록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역사서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 이런 스펙트럼을 고려하면 사실과 해석, 주관과 객관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데도 유용합니다. (164쪽)
- 역사성에 대한 인식이 중요한 이유는, 역사성을 놓치면 시대착오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이 오류는 어떤 사건이 실제 일어난 시기(시대)가 아닌 다른 시기에 일어난 것처럼 묘사, 분석,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 시대착오의 오류 중 먼저 들 수 있는 것이 현재주의의 오류입니다. 현재주의는 현재의 관점으로 과거의 어떤 사실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175쪽)
제4부 오해와 이해의 갈림길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
고조선 역사, 어떻게 볼 것인가
- 고조선 문화권에서 세 유물이 모두 균일한 밀도로 갖추어져 있었다고 단순하게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 유물을 통해 확인되는 문화적 분포권을 고대국가의 영역과 간단히 동일시해 버리는 태도 역시 위험하다. 문화는 국경을 넘어서도 전파될 수 있기 때문이다. (29쪽)
낙랑군은 한반도에 없었다?
- 사이비 역사가들은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광대한 대륙을 호령했던 우리 역사를 반도로 축소했다고 열을 올려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대륙의 역사는 우월하고 반도의 역사는 열등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다. 넓은 영토에 대한 환상과 욕망에 취해 정작 우리가 발을 디디고 살고 있는 한반도를 혐오하고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 (60쪽)
광개토왕비 발견과 한중일 역사전쟁
- 광개토대왕비는 이러한 정사 기록이 아니다. 장수왕이 자기 부왕인 광개토왕의 업적을 대외에 과시하고자 작성한 훈적비인 셈이다. 또한 비문은 고구려 왕가의 입장에서 과거에 일으킨 전쟁이 정당한 명분하에 치러졌으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성공적으로 수행했음을 국내성의 귀족과 주민에게 널리 알리는 정치 선전물이기도 했다. (88쪽)
- 정작 중요한 것은 비문에서 드러난 국제 정세에 대한 고구려인의 '인식'과 자기 '욕망'이며, 여기에 토대를 둔 정치적 발언 자체를 사실로 보는 것은 순진한 발상에 불과하다. (92쪽)
백제는 정말 요서로 진출했나
- 백제의 요서 진출 정보가 중국 정사에 기록됐기 때문에 타자의 '객관적 시각'에 따라 서술된 '역사적 사실'이라는 믿음도 있다. 타자의 기록이 가진 긍정적 속성도 있지만, 무지와 편견과 이해관계에 따른 왜곡 역시 적지 않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남조 역사서를 해석할 때는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 --- 백제의 요서 진출 문제는 백제만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요서와 중국 내륙, 나아가 동아시아로 시야를 넓혀 입체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조'라는 타자를 주의 깊게 이해해야 한다. 그들 입장에서 왜 기록하게 됐는지를 다각도로 따져 보는 과정 속에서 백제의 요서 진출에 대한 이해도 풍부해질 것이다. (125쪽)
칠지도가 들려주는 백제와 왜 이야기
- 백제에서 만들어진 칠지도는 기본적으로 왜에 대한 백제의 '인식'을 보여 주는 물건이다. <일본서기>가 백제에 대한 일본의 '인식'을 보여 주는 사료라는 점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칠지도에 보이는 백제의 인식이 당시 백제와 왜의 실제 관계를 보여 주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151쪽)
- 국가 간의 외교 관계에 있어서 어느 한쪽의 인식이 두 나라의 실제 관계와 다르게 기록되는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여러 나라들은 백제왕을 책봉할 때, 자국 중심의 인식에 맞춰 외교문서를 보냈다. 백제왕도 그러한 인식에 어긋나지 않게끔 형식을 갖추어 외교문서를 보냈다. 이러한 관계를 흔히 '조공책봉 관계'라고 하지만, 둘 사이의 실제 관계는 그러한 인식과는 조금 달랐다. 백제왕은 국내의 필요성과 중국의 상황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백제의 외교적 이익에 따라 행동하기도 했다. (151쪽)
- 칠지도는 백제왕이 왜왕에게 내려준다는 백제의 인식에 따라 제작됐다. 다만, 실제 백제와 왜의 관계는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우호 관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우호 관계를 고려한다면, 칠지도의 실제 성격은 '헌상품'이나 '하사품'이라기보다, 외교적 선물에 가까웠을 것이다. (153쪽)
생존을 위한 전쟁, 신라의 삼국통일
- 지금까지 신라의 외교와 전쟁 수행 과정을 살펴보면 결국 고구려와 백제는, 신라 입장에서 상황에 따라 적국이 되거나 동맹국이 될 수 있는, 혹은 상대를 복속시켜서 속국으로 삼기도 한 타국이었다. 이들 사이에 언어가 통한다거나 혹은 문화적 공통점이 어느 정도 있다 할지라도 이들은 같은 민족으로 서로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각기 다른 국가로서 자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합종연횡을 거듭했다. 신라가 백제를 상대할 대상으로 고구려를 선택한 것도 전략적이었으며, 왜나 당을 선택해 외교를 펼친 것 또한 전략적 이득을 감안한 것이었다. (184~5쪽)
- 이 시기에 고구려나 백제, 왜, 당은 신라 입장에서 모두 외세였으며 서로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관계였다. 그리고 이들에게 고구려, 신라, 백제라는 삼국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인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의 관계에 민족이라는 터울을 씌우는 순간 역사는 역사가 아닌 현재의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관점 속에 있는 상상 속 산물이 될 것이다. 그러한 산물 속에서 김춘추는 사대주의자로 포장돼 비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후대의 산물, 인식을 그것이 실재하지 않았던 시기에 실재한 것처럼 덮어씌워 이야기하는 것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이 아닐까. (185쪽)
신라 김씨 왕실은 흉노의 후예였나
- 선조에 대한 여러 기록에는 사람들의 욕망이 투영돼 있다. 또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고대사를 바라보며 여러 욕망을 투영한다. 사람들이 신라 김씨 왕실의 선조에 대한 여러 기록 가운데서도 유독 김일제가 선조였다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던 데에는 우리 민족의 범위를 확장하고 싶은 욕구가 반영돼 있다. 즉 김일제가 신라 김씨 왕실의 선조이면 흉노가 아우르던 드넓은 영토가 곧 우리 민족의 영토가 되고, 중국 왕조를 위협하던 흉노의 강한 군사력이 곧 우리 민족의 힘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일제에 대한 기록은 관념적인 표방이며, 오히려 김일제란 인물은 이민족으로서 중국 왕조에 충성을 바친 상징적 인물이란 사실을 떠올리는 편이 좋을 것이다. (216쪽)
임나일본부설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 과연 고대를 살아간 고대인들을 현대의 국가와 민족 관점에서 해석하는 일이 타당할까?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분과 남해안 교통로의 거점에서 발견되는 왜계 무덤들, 그리고 일본열도에서 발견되는 한반도계 유적들은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에 가로놓인 바다가 당시 사람들에게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가 아니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일 수 있다. <일본서기>에 나타나는 왜인계 관료들의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넘나드는 활동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임나일본부의 실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이처럼 현대인이 아닌 고대인의 관점을 염두에 두고 연구할 때 가능하지 않을까? (246쪽)
발해사는 누구의 역사인가
- 요컨대, 당은 대조영이 실제 말갈인지 아닌지와 관계없이 '발해는 말갈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복속시키지 못한 집단에 대한 오기이자, 일종의 타자화였다. 그런데 공교롭게 그 타자에 대한 멸시를 담은 '말갈'이라는 단어를 근거로 현재 중국은 발해를 자기화하려 한다. 이 얼마나 역설인가. (271~2쪽)
- 일제는 만주국과 조선에 대한 효율적 식민 통치를 위해 역사적으로 만주는 중국과 분리된 지역이었고, 조선은 만주에 종속적이었다는 논리를 만들어 냈다. 발해사 연구는 이런 만선사관 시각에서 진행됐다. (273쪽)
고대국가의 전성기, 언제로 봐야 할까?
<환단고기>에 숨은 군부독재의 유산
Read More
전자는 역사란 무엇이고 역사 공부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 하는 점을, 후자는 유사역사학을 비판하면서 역사 공부의 바른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두 책의 저자들이 이 책들을 저술하게 된 각각의 출발점은 다르겠지만, 결국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 주겠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즉, 역사를 섣불리 단정 지어 보지 말고, 또 악의를 갖고 역사를 호도하는 사람들을 경계하자는 것입니다.
두 책 모두 느끼는 바가 많은 내용들을 담고 있고, 거의 암기 정도 해놔야 되지 않을까 싶은 주옥같은 내용들이 많습니다. 비단 역사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 사회를 정확히 바라보는 데도 유용한 사고 틀을 발견할 수 있네요. 두고두고 기억해 놓기 위해 여기 일부 내용을 옮겨보려 합니다.
<호모 히스토리쿠스>
[http://www.yes24.com/24/goods/30572882?scode=029] |
제1부 내 발길이 만드는 역사
- 모든 사건에는 언제나 객관적 조건, 사람의 의지, 그리고 우연이 함께 들어 있다. 모든 사건은 조건, 의지, 우연이 합쳐져서 발생합니다. 역사는 사건에 대한 탐구이므로 모든 사건을 탐구할 때는 조건, 의지, 우연을 다 살펴야 합니다. (34쪽)
- 구조라고 해서 불변은 아닙니다. 구조도 변합니다. 구조는 다음에 살펴볼 자유의지와 대립적이지 않습니다. 자유의지로 선택한 것이 나중에는 구조가 됩니다. (52쪽)
- 객관적 조건과 구조를 고려하지 않으면 사태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구조만 고려하면 설명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이 사라집니다. --- 인간의 의지가 빠진 역사적 사건이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53쪽)
- 모든 역사적 사건에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작용하고 있지만, 사건을 해석할 때는 자유의지를 조심스럽게 대입해야 할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60쪽)
- 역사에는 서로 원인이 다른 둘 이상의 사태가 만나서 생기는 사건이 많습니다. 아니 모든 사건에는 우연이 내재합니다. (68쪽)
제2부 역사의 영역
제3부 기억, 기록, 그리고 시간의 존재
- 이렇게 잘못된 기억이 증언이나 기록으로 남고, 이것이 역사자료로 활용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연스럽게 역사의 오류를 낳거나 왜곡으로 이어지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132쪽)
- 핵심은 주관(성)이란 것이 객관(성)과 대립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무엇이 아니라는 겁니다. 아니 그보다 객관성의 토대이자 자양분이며, 실질적 내용이자 풍부하게 해주는 질료가 주관성입니다. 주관을 객관의 대립으로 설정하는 사유는 결국 하나의 '객관'만을 강요하기에 이릅니다. (151쪽)
- 역사기록이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일기나 편지에서 교과서, 논문까지 역사기록의 스펙트럼은 넓습니다. 전자를 주로 사료, 역사기록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역사서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 이런 스펙트럼을 고려하면 사실과 해석, 주관과 객관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데도 유용합니다. (164쪽)
- 역사성에 대한 인식이 중요한 이유는, 역사성을 놓치면 시대착오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이 오류는 어떤 사건이 실제 일어난 시기(시대)가 아닌 다른 시기에 일어난 것처럼 묘사, 분석,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 시대착오의 오류 중 먼저 들 수 있는 것이 현재주의의 오류입니다. 현재주의는 현재의 관점으로 과거의 어떤 사실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175쪽)
제4부 오해와 이해의 갈림길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
[http://www.yes24.com/24/goods/65438499?scode=029] |
고조선 역사, 어떻게 볼 것인가
- 고조선 문화권에서 세 유물이 모두 균일한 밀도로 갖추어져 있었다고 단순하게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 유물을 통해 확인되는 문화적 분포권을 고대국가의 영역과 간단히 동일시해 버리는 태도 역시 위험하다. 문화는 국경을 넘어서도 전파될 수 있기 때문이다. (29쪽)
낙랑군은 한반도에 없었다?
- 사이비 역사가들은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광대한 대륙을 호령했던 우리 역사를 반도로 축소했다고 열을 올려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대륙의 역사는 우월하고 반도의 역사는 열등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다. 넓은 영토에 대한 환상과 욕망에 취해 정작 우리가 발을 디디고 살고 있는 한반도를 혐오하고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 (60쪽)
광개토왕비 발견과 한중일 역사전쟁
- 광개토대왕비는 이러한 정사 기록이 아니다. 장수왕이 자기 부왕인 광개토왕의 업적을 대외에 과시하고자 작성한 훈적비인 셈이다. 또한 비문은 고구려 왕가의 입장에서 과거에 일으킨 전쟁이 정당한 명분하에 치러졌으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성공적으로 수행했음을 국내성의 귀족과 주민에게 널리 알리는 정치 선전물이기도 했다. (88쪽)
- 정작 중요한 것은 비문에서 드러난 국제 정세에 대한 고구려인의 '인식'과 자기 '욕망'이며, 여기에 토대를 둔 정치적 발언 자체를 사실로 보는 것은 순진한 발상에 불과하다. (92쪽)
백제는 정말 요서로 진출했나
- 백제의 요서 진출 정보가 중국 정사에 기록됐기 때문에 타자의 '객관적 시각'에 따라 서술된 '역사적 사실'이라는 믿음도 있다. 타자의 기록이 가진 긍정적 속성도 있지만, 무지와 편견과 이해관계에 따른 왜곡 역시 적지 않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남조 역사서를 해석할 때는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 --- 백제의 요서 진출 문제는 백제만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요서와 중국 내륙, 나아가 동아시아로 시야를 넓혀 입체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조'라는 타자를 주의 깊게 이해해야 한다. 그들 입장에서 왜 기록하게 됐는지를 다각도로 따져 보는 과정 속에서 백제의 요서 진출에 대한 이해도 풍부해질 것이다. (125쪽)
칠지도가 들려주는 백제와 왜 이야기
- 백제에서 만들어진 칠지도는 기본적으로 왜에 대한 백제의 '인식'을 보여 주는 물건이다. <일본서기>가 백제에 대한 일본의 '인식'을 보여 주는 사료라는 점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칠지도에 보이는 백제의 인식이 당시 백제와 왜의 실제 관계를 보여 주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151쪽)
- 국가 간의 외교 관계에 있어서 어느 한쪽의 인식이 두 나라의 실제 관계와 다르게 기록되는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여러 나라들은 백제왕을 책봉할 때, 자국 중심의 인식에 맞춰 외교문서를 보냈다. 백제왕도 그러한 인식에 어긋나지 않게끔 형식을 갖추어 외교문서를 보냈다. 이러한 관계를 흔히 '조공책봉 관계'라고 하지만, 둘 사이의 실제 관계는 그러한 인식과는 조금 달랐다. 백제왕은 국내의 필요성과 중국의 상황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백제의 외교적 이익에 따라 행동하기도 했다. (151쪽)
- 칠지도는 백제왕이 왜왕에게 내려준다는 백제의 인식에 따라 제작됐다. 다만, 실제 백제와 왜의 관계는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우호 관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우호 관계를 고려한다면, 칠지도의 실제 성격은 '헌상품'이나 '하사품'이라기보다, 외교적 선물에 가까웠을 것이다. (153쪽)
생존을 위한 전쟁, 신라의 삼국통일
- 지금까지 신라의 외교와 전쟁 수행 과정을 살펴보면 결국 고구려와 백제는, 신라 입장에서 상황에 따라 적국이 되거나 동맹국이 될 수 있는, 혹은 상대를 복속시켜서 속국으로 삼기도 한 타국이었다. 이들 사이에 언어가 통한다거나 혹은 문화적 공통점이 어느 정도 있다 할지라도 이들은 같은 민족으로 서로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각기 다른 국가로서 자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합종연횡을 거듭했다. 신라가 백제를 상대할 대상으로 고구려를 선택한 것도 전략적이었으며, 왜나 당을 선택해 외교를 펼친 것 또한 전략적 이득을 감안한 것이었다. (184~5쪽)
- 이 시기에 고구려나 백제, 왜, 당은 신라 입장에서 모두 외세였으며 서로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관계였다. 그리고 이들에게 고구려, 신라, 백제라는 삼국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인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의 관계에 민족이라는 터울을 씌우는 순간 역사는 역사가 아닌 현재의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관점 속에 있는 상상 속 산물이 될 것이다. 그러한 산물 속에서 김춘추는 사대주의자로 포장돼 비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후대의 산물, 인식을 그것이 실재하지 않았던 시기에 실재한 것처럼 덮어씌워 이야기하는 것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이 아닐까. (185쪽)
신라 김씨 왕실은 흉노의 후예였나
- 선조에 대한 여러 기록에는 사람들의 욕망이 투영돼 있다. 또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고대사를 바라보며 여러 욕망을 투영한다. 사람들이 신라 김씨 왕실의 선조에 대한 여러 기록 가운데서도 유독 김일제가 선조였다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던 데에는 우리 민족의 범위를 확장하고 싶은 욕구가 반영돼 있다. 즉 김일제가 신라 김씨 왕실의 선조이면 흉노가 아우르던 드넓은 영토가 곧 우리 민족의 영토가 되고, 중국 왕조를 위협하던 흉노의 강한 군사력이 곧 우리 민족의 힘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일제에 대한 기록은 관념적인 표방이며, 오히려 김일제란 인물은 이민족으로서 중국 왕조에 충성을 바친 상징적 인물이란 사실을 떠올리는 편이 좋을 것이다. (216쪽)
임나일본부설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 과연 고대를 살아간 고대인들을 현대의 국가와 민족 관점에서 해석하는 일이 타당할까?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분과 남해안 교통로의 거점에서 발견되는 왜계 무덤들, 그리고 일본열도에서 발견되는 한반도계 유적들은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에 가로놓인 바다가 당시 사람들에게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가 아니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일 수 있다. <일본서기>에 나타나는 왜인계 관료들의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넘나드는 활동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임나일본부의 실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이처럼 현대인이 아닌 고대인의 관점을 염두에 두고 연구할 때 가능하지 않을까? (246쪽)
발해사는 누구의 역사인가
- 요컨대, 당은 대조영이 실제 말갈인지 아닌지와 관계없이 '발해는 말갈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복속시키지 못한 집단에 대한 오기이자, 일종의 타자화였다. 그런데 공교롭게 그 타자에 대한 멸시를 담은 '말갈'이라는 단어를 근거로 현재 중국은 발해를 자기화하려 한다. 이 얼마나 역설인가. (271~2쪽)
- 일제는 만주국과 조선에 대한 효율적 식민 통치를 위해 역사적으로 만주는 중국과 분리된 지역이었고, 조선은 만주에 종속적이었다는 논리를 만들어 냈다. 발해사 연구는 이런 만선사관 시각에서 진행됐다. (273쪽)
고대국가의 전성기, 언제로 봐야 할까?
<환단고기>에 숨은 군부독재의 유산
2018년 12월 12일 수요일
프랑스의 직권남용죄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핫한 범죄는 '직권남용죄'라는 것입니다. 직권남용죄는 우리 형법 제123조에 규정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Read More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 직권남용죄는 '직권'이 무엇이고 '남용'이 무엇이냐의 해석이 쉽지 않은 범죄입니다. 해석이 쉽지 않은 이유는, '직권'과 '남용'이라는 말의 의미가 매우 추상적인데다, 자칫 그 의미를 확대해서 해석할 경우 왠만한 공무원의 행위가 모두 이 범죄에 해당하게 되어 그 결과 공무원의 복지부동을 초래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급적 '직권'과 '남용'의 의미를 한정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되겠다싶은 행위에 대해서만 이 규정을 적용하여야 합니다.
어제 어떤 분이 저에게 프랑스에도 우리의 직권남용죄에 해당하는 범죄가 있는지 물어보시기에, 저도 궁금하여 한번 찾아봤습니다. 프랑스 형법 제432-4조 제1항에 비슷한 내용의 범죄가 있더군요.
Le fait, par une personne dépositaire de l'autorité publique ou chargée d'une mission de service public, agissant dans l'exercice ou à l'occasion de l'exercice de ses fonctions ou de sa mission, d'ordonner ou d'accomplir arbitrairement un acte attentatoire à la liberté individuelle est puni de sept ans d'emprisonnement et de 100,000 euros d'amende.
Le fait, par une personne dépositaire de l'autorité publique ou chargée d'une mission de service public, agissant dans l'exercice ou à l'occasion de l'exercice de ses fonctions ou de sa mission, d'ordonner ou d'accomplir arbitrairement un acte attentatoire à la liberté individuelle est puni de sept ans d'emprisonnement et de 100,000 euros d'amende.
공무원 또는 공공사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자신의 직무나 사무를 수행하는 과정 또는 수행하는 기회에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자의적으로 지시하거나 또는 실행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7년의 구금형 및 100,000유로의 벌금에 처한다.
제가 번역하면서 우리말로는 사실상 같은 의미인 '직무(fonctions)'라는 말과 '사무(mission)'라는 말을 동시에 사용하였는데요, fonctions은 복수이고 mission은 단수입니다. 위 조문에서 공무원은 dépositaire de l'autorité publique인 사람이고 공공사무 담당자는 chargée d'une mission de service public인 사람이라고 한 다음 공무원은 ses fonctions을 수행하고 공공사무 담당자는 sa mission을 수행한다고 한 것으로 보아, 공무원의 (계속적인) 업무는 fonctions으로, 공무원이 아니나 공적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의 (항상 계속적이지는 않은) 업무는 mission이라고 서로 구분하여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생각되구요, 따라서 이를 '직무(fonctions)'와 '사무(mission)'라는 말로 서로 달리 번역해 보았습니다.
이 범죄는 "제2장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죄" 항목 중 "제2절 개인에 대한 공권력 남용(des abus d'autorité)"의 paragraphe 1 "개인의 자유 침해" 부분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범죄입니다. 프랑스 형법에는 각 범죄마다 죄명이 별도로 작명되어 있진 않지만, 이러한 소제목을 참고해볼 때 우리와 마찬가지로 직권남용죄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프랑스에서 이 범죄가 문제된 사건으로 무엇이 있었는지 궁금하여 구글에서 우리말 뉴스를 한번 검색해봤습니다.
- 1995년 10월 24일자 중앙일보 보도 : 프랑스 고위공직자의 비리 사건은 2년여 전부터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한햇동안 알랭 카리뇽 통신장관 겸 그르노블 시장 등 현직 장관 3명이 공금유용 등의 혐의로 전격 해임돼 기소 내지 수사를 받고 있다.
최근 쟁점이 됐던 알랭 쥐페 총리의 아파트 특혜임차 사건은 지난 11일 불기소처분으로 일단 고비를 넘겼지만 여전히 불씨로 남아있다. 이 사건을 검찰에 고발한 파리 납세자보호협회는 다시 파리행정법원에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할 기세여서 쥐페 총리는 조만간 비리 시비에 또 휘말릴 전망이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도 지난 9월 파리행정법원에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돼 있는데다 23일에는 한 변호사가 같은 문제로 기소할 수있는지 여부를 결정해 줄 것을 검찰에 요청, 심기가 갈수록 불편해지고 있다. 시라크 대통령은 파리시장 시절 한 부동산회사에 압력을 가해 아파트를 구입케 한 의혹을 사고 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도 지난 9월 파리행정법원에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돼 있는데다 23일에는 한 변호사가 같은 문제로 기소할 수있는지 여부를 결정해 줄 것을 검찰에 요청, 심기가 갈수록 불편해지고 있다. 시라크 대통령은 파리시장 시절 한 부동산회사에 압력을 가해 아파트를 구입케 한 의혹을 사고 있다.
- 2014년 8월 27일자 VOA 보도 :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프랑스에서 직권남용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라가르드 총재는 재무장관 재직 당시인 지난 2007년 운동용품 업체 ‘아디다스’와 국영 ‘크레디리요네’ 은행 사이에 분쟁 중재 권한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직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당시 중재를 밀어붙여 아디다스의 전 소유주 베르나르 타피에게 4억 유로, 미화 5억 2천 700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혐의입니다.
이에 대해 라가르드 총재는 오늘 (27일)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에 대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라가르드 총재는 또 당시 일 처리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변호사에게 수사에 대해 이의를 제기토록 했다고 말했습니다.
라가르드 총재는 재무장관 재직 당시인 지난 2007년 운동용품 업체 ‘아디다스’와 국영 ‘크레디리요네’ 은행 사이에 분쟁 중재 권한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직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당시 중재를 밀어붙여 아디다스의 전 소유주 베르나르 타피에게 4억 유로, 미화 5억 2천 700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혐의입니다.
이에 대해 라가르드 총재는 오늘 (27일)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에 대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라가르드 총재는 또 당시 일 처리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변호사에게 수사에 대해 이의를 제기토록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구글에서 프랑스 뉴스를 검색해봤습니다. 검색하다 파리 소르본 대학의 공법 교수인 Roseline Letteron의 블로그 "Liberté, Libertés chéries"를 발견했습니다.
이 블로그의 2016년 6월 15일자 "개인의 자유 침해죄(Le délit d'atteinte à la liberté individuelle)" 글 첫머리에 재미있는 말이 있습니다.
"형법 제432-4조 개인의 자유 침해죄는 흔하지 않은 범죄이기 때문에 판례가 별로 없다."
우리도 요새 국정농단 사건 이전에는 직권남용죄 사건이 거의 없었는데, 프랑스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 재미있네요.
위 블로그 글에서는 2016년 5월 24일자 대법원 판결(Cour de cassation chambre criminelle, 24 mai 2016, N° de pourvoi: 15-80848)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2010년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이 프랑스의 한 지방을 방문할 때 그 지방 도지사의 지시를 받은 군인경찰(프랑스는 역사적인 이유로 일부 지방의 치안을 민간경찰이 아닌 군인경찰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2명이 사르코지 반대 집회에 참석하려던 노조원을 법적 근거 없이 4시간 가량 군인경찰 사무실에 사실상 감금하였다가, 그 노조원이 이 군인경찰 2명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사안입니다.
대법원은 대통령 방문장소의 안전을 확보하는 직무를 담당하는 이 군인경찰들이 이러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불법감금행위를 한 것이므로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공무원이 자신의 직권과 관련하여 어떠한 침해행위를 하여야 직권남용죄가 성립되는 것이고, 자신의 직권과 아무런 상관없는 침해행위에 대해서는 다른 범죄가 성립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직권남용죄는 성립하지 않는 것이거든요.
이 사건은, 2010년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이 프랑스의 한 지방을 방문할 때 그 지방 도지사의 지시를 받은 군인경찰(프랑스는 역사적인 이유로 일부 지방의 치안을 민간경찰이 아닌 군인경찰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2명이 사르코지 반대 집회에 참석하려던 노조원을 법적 근거 없이 4시간 가량 군인경찰 사무실에 사실상 감금하였다가, 그 노조원이 이 군인경찰 2명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사안입니다.
대법원은 대통령 방문장소의 안전을 확보하는 직무를 담당하는 이 군인경찰들이 이러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불법감금행위를 한 것이므로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공무원이 자신의 직권과 관련하여 어떠한 침해행위를 하여야 직권남용죄가 성립되는 것이고, 자신의 직권과 아무런 상관없는 침해행위에 대해서는 다른 범죄가 성립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직권남용죄는 성립하지 않는 것이거든요.
2018년 12월 9일 일요일
프랑스 파리 지방검찰청 검사장 취임식 소식
2018년 12월 4일 프랑스 법무부 홈페이지에 뜬 "파리 검사장 취임식(Audience d’installation du procureur de la République de Paris)" 소식을 소개합니다.
-----------------------------------
니꼴 벨루베(Nicole Belloubet) 법무부장관은 2018년 12월 4일 레미 에이츠(Rémy Heitz) 파리 지방검찰청 검사장(procureur de la République du tribunal de grande instance de Paris)의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파리 법원을 방문했다.
2017년 8월부터 법무부 형사국장(directeur des affaires criminelles et des grâces)으로 재직해온 레미 에이츠는 2018년 11월 9일자 관보에 게시된 대통령령(décret)에 따라 파리 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그 이전에는 2001년 파리 지방검찰청 부장검사(vice-procureur à Paris),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도로안전청 파견(délégué interministériel à la sécurité routière),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보비니 지방법원장(président du TGI de Bobigny)과 꼴마르 고등법원장(Premier président de la cour d’appel de Colmar) 등으로 재직하였다.
그의 전임자는 2018년 11월 16일 검찰총장(procureur général près la Cour de Cassation)으로 자리를 옮긴 프랑소와 몰랑(François Molins)이다.
2018년 11월 28일 수요일
저녁 회식을 바라보는 상급자와 하급자의 관점 (2)
페이스북에도 인사이트 있는 대단한 글을 쓰는 분들이 많은데요, 그런 분 중 하나인 신상철님의 페이스북 글 하나를 소개해 드립니다.
-----------------------------------------
---------------------------------------------
Read More
-----------------------------------------
새벽에 자다가 전화를 받으면 불쾌할까? 보통 이런 상황은 기분 나쁘고 화나는 게 당연하지만, 만약 상대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설레고 기분 좋은 일일 수 있다. 어떤 행위 자체보단 그걸 하는 주체가 더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설득도 마찬가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설득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에토스라고 했다. 에토스는 그 사람의 인격이나 명예 같은 캐릭터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건 파토스로 이것은 감정을 뜻한다. 이성과 논리에 해당하는 로고스는 고작 10% 비중밖에 안 된다.
호감이 전부다. 상대방에 대한 호감은 불쾌한 일도 기분 좋게 할 수 있고 별거 아닌 말에도 큰 의미를 부여한다. 존경하는 분이 해주는 칭찬은 그저 덕담일 뿐인데도 평생 간직하게 된다. 만약 상대를 의도대로 움직일 수 없다면 그건 어떤 논리나 조건이 부족해서라기보단 호감이 부족해서다.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스타들의 시답지 않은 농담에도 따봉을 누르는 건 그 사람을 좋아해서다. 그 농담이 재밌어서가 아니라. 콘서트에 가는 건 노래를 듣기보단 그와 함께 있는 경험을 하고 싶어서이고. 원하는 게 있다면 상대의 호감을 얻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게 마음을 움직이는 핵심이다.
---------------------------------------------
제가 지난 6월에 "저녁 회식을 바라보는 상급자와 하급자의 관점"이라는 글을 이 블로그에 쓴 적이 있는데요, 제 얘기의 요지는 대부분의 하급자는 상급자가 하자는 저녁 회식을 싫어하지만 그 상급자가 매력적인 사람이라면 문제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상철님의 글도 같은 맥락 같네요.
저 글에서는 상급자와 하급자 간의 직장 회식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회식을 주최하는 상급자가 누구인가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회식 장소가 어딘가라는 점은 부차적이라고 홀대하고 넘어갔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회식 장소가 어디냐 하는 점도 그냥 무시할 요소는 아니죠. 먹고 마시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며칠 후에 직장 동료들과 회식을 갖기로 오늘 약속을 정하였는데요, 저는 회식자리를 만들 때마다 항상 어디서 회식을 할까 하는 문제로 한참 동안 골머리를 앓곤 합니다. 꼭 여러 사람이 모이는 회식이 아니라 친한 사람과 단 둘이 만나는 가벼운 자리라도 제가 만드는 자리라면, 어디서 시간을 가질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회식이나 약속을 주최하는 저의 개인적인 매력이 좀 부족하더라도, 먹고 마시는 거 자체가 훌륭하면 저 자신에게 보다는 그리로 참석자들의 관심이 더 쏠리게 되고, 그러다보면 결국 제가 거기에 묻어갈 수 있고 저의 부족한 면을 잘 메울 수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사실 회식을 주최하는 누구에게나 회식 장소는 참 중요한 문제입니다.
회식 장소를 고르기 위해서는, 여러가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음식 맛, 분위기, 접근성, 이런 건 너무 당연한 얘기겠죠.
이왕 하는 회식, 특이한 데 말고 평범한 데서 무난하게 치르려면 가급적 돈 생각 말고 괜찮은 데서 해야 합니다. 참석자들에게 특이한 경험도 못 주면서 돈만 아끼려고 하면, 오히려 돈은 돈대로 쓰고 욕만 얻어먹을 위험이 있습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회식을 안 하는 게 더 안전할 수도 있구요.
상급자가 하급자들에게 "너네 좋아하는 데 가자. 너희끼리 정해봐"라고 하는 경우도 많이 있는데요, 저는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놓으면 과연 그들이 정말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곳을 정해서 갖고 올까요. 상급자의 성향도 (상당히) 고려한, 그저그런, 무난한 곳이 당첨될 확률이 높을 것 같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취향을 몰라서 그런다구요? 같이 일하는 동료인데, 평소에 요즘 젊은 사람들의 취향을 알고 있어야지요. 모른다고 하면 말이 안 되고, 결국 "나 공감능력 떨어지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밖에 안 되는 거지요.
어쨋든 가급적 참석자들의 취향에 맞춘 회식 장소를 고르는 게 대개 무난한 방법이겠지만, 오히려 반대로 주최자의 개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자리는 어떨까요. "난 이런 거 좋아하는 사람이야. 혹시 처음이면 이번 기회에 한번 경험해봐." 어쩌다 한번 회식을 한다고 모든 동료들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최소한 내 개성에 동조하는 한 두 명은 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상급자가 하급자들에게 "너네 좋아하는 데 가자. 너희끼리 정해봐"라고 하는 경우도 많이 있는데요, 저는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놓으면 과연 그들이 정말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곳을 정해서 갖고 올까요. 상급자의 성향도 (상당히) 고려한, 그저그런, 무난한 곳이 당첨될 확률이 높을 것 같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취향을 몰라서 그런다구요? 같이 일하는 동료인데, 평소에 요즘 젊은 사람들의 취향을 알고 있어야지요. 모른다고 하면 말이 안 되고, 결국 "나 공감능력 떨어지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밖에 안 되는 거지요.
어쨋든 가급적 참석자들의 취향에 맞춘 회식 장소를 고르는 게 대개 무난한 방법이겠지만, 오히려 반대로 주최자의 개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자리는 어떨까요. "난 이런 거 좋아하는 사람이야. 혹시 처음이면 이번 기회에 한번 경험해봐." 어쩌다 한번 회식을 한다고 모든 동료들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최소한 내 개성에 동조하는 한 두 명은 건질 수 있지 않을까요.
너무 흔한 음식을 먹으러 가는 것도 식상할 수 있겠는데, 경우에 따라 참석자들이 하루 이틀 전에 다른 회식자리에 참석해 어떤 종류의 음식을 먹었는지도 따져보는 게 좋을 때도 있습니다. 제가 며칠 후에 함께 회식을 하자고 한 동료들은 오늘 다른 팀과 고깃집에서 회식을 한다는데, 그 덕에 제 선택지가 크게 줄어버려 고민이 더 크네요.
그런데 결국 가 본 데 많지 않아도, 아는 데 별로 없어도, 시간을 충분히 갖고 부지런히 검색질을 하다 보면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끌어낼만한 회식 장소가 반드시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결국 오늘도 왜 회식을 하자고 했을까 후회하며 늦은 밤까지 열심히 손가락을 고생시키고 있습니다.
2018년 11월 9일 금요일
마크롱 대통령의 페탱 원수 발언 논란
며칠 전인 2018년 11월 7일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프랑스 대통령이 필리프 페탱(Philippe Pétain, 1856-1951)에 대해 위대한 군인이었다고 말했다가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페탱은 1차 세계대전 당시 Verdun 전투에서 독일군을 무찌르는 등 프랑스의 승전을 이끌어 프랑스의 원수(元帥, maréchal)라는 칭호를 받은 장군이었으나, 2차 세계대전 때는 위기상황에 놓인 프랑스의 총리로 복귀하여 나치 독일에 항복하고 비시(Vichy) 정부의 수반으로서 히틀러에 적극 부역하였다가 전후 사형선고를 받은 인물입니다.
생각해보면, 비록 1차 대전의 영웅으로 프랑스를 구원한 페탱이지만, 그래서 2차 대전 당시 프랑스가 위기에 처하게 되자 84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이 영웅이 3공화국의 총리로 소환되어 프랑스를 이끌게까지 된 것이지만, 나치 독일에 대한 항복과 부역은 프랑스로서는 부인하고 숨기고만 싶은 수치스런 기억인 거죠.
반면, 런던에서 망명정부인 '자유 프랑스(La France Libre)'를 이끈 드골은 이 어두운 시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랑스럽게 장식하여야만 하는 프랑스의 단 하나의 기억이어야만 했던 거구요. 이러한 대립구도의 설정에는 혹여 역사의 과장이나 더 나아가 조작이 끼어들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프랑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 같습니다. 이게 현재 프랑스 국민들의 국가적 자긍심의 원천이니까요. 그래서 마크롱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Read More
마크롱 대통령이 했다는 발언은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페탱은 비록 2차 세계대전 당시 불행한 선택(des choix funestes)을 하긴 하였지만, 1차 세계대전의 위대한 장군(un grand soldat)이었습니다. 그가 위대한 장군이었다는 사실은 진실입니다. 인간으로서 정치적 삶은 사람들이 믿기 원하는 것보다는 때때로 더 복잡합니다. 저는 항상 우리나라의 역사를 정면으로 바라봐 왔습니다."
2018년 11월 7일자 리베라시옹(Liberation)지의 체크뉴스(CheckNews.fr)에는 "마크롱 이전의 대통령들은 페탱에 대해 어떠한 발언을 하였는가?(Comment les présidents parlaient du maréchal Pétain avant Macron?)"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이 글에 나온 전직 대통령들의 멘트를 소개해드리겠는데요, 결론부터 말하면 전직 대통령들도 마크롱 대통령과 비슷한 정도의 수위로 발언하였고 마크롱 대통령도 이를 충실히 반영하여 발언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전후 프랑스의 재건기를 이끈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1959-1969 재임) 대통령은 1966년 베르덩 전투 50주년 기념식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불행히도 1차 대전 때와는 다른 시점에, 그의 인생에 있어 혹독한 겨울(l'extrême hiver de sa vie)에, 엄청난 일들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고령의 나이가 페탱을 비난할만한 실패로 이끌었다 할지라도, 그가 베르덩에서 거둔 영광, 그가 그(비시 정부 수립)보다 25년 전에 베르덩에서 거둔 영광, 그리고 그가 그 이후에 프랑스군을 승리로 이끌며 지킨 영광은 조국에 의해 다퉈지거나 부정될 수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40년 후 베르덩 전투 90주년 기념식에서는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1995-2007 재임) 대통령이 이와 유사한 발언을 하였습니다.
"승리를 위한 결정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베르덩의 승리자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바로 필리프 페탱입니다. 불행히도, 1940년 6월에 동일한 사람이 그 인생의 겨울(l'hiver de sa vie)에 이르러 그의 영광을 휴전이라는 불행한 선택(le choix funeste)과 부역이라는 불명예로 상쇄시켜버렸습니다."
시라크 대통령의 위 연설을 보면 그가 드골 대통령이 쓴 'l'hiver de sa vie'라는 표현을 모방하고, 마크롱 대통령은 시라크 대통령이 쓴 'le choix funeste'라는 표현을 그대로 갖다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라크 대통령의 직전 대통령인 프랑수와 미테랑(François Mitterrand, 1981-1995 재임) 대통령은, 페탱의 묘에 헌화하였다가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격한 항의를 받은 후 가진 유대인계 라디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페탱의 모순(contradictions)"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저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우리는 역사의 전형적인 모순 상황 앞에 있고, 역사의 모순은 우리를 다시 모순 상황 속에 놓아두며, 이는 정말로 우리를 견딜 수 없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되어 있는, 프랑스가 거둔 가장 위대한 전투를 빼버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사건들(비시 정부 수립)로부터 25년 전에 일어난 베르덩 전투에 누가 참여하고 누가 지휘했는지는 프랑스의 역사에서 뺄 수 없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것은 바로 치욕입니다. 베르덩의 영광은, 수많은 피와 드라마로 만들어진 영광은 잊혀질 수 없고,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1942년의 치욕이 이 영광을 폄훼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본질적인 모순(une contradiction fondamentale)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에 대처해야 하고, 이에 대한 몰이해가 확대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비난에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비록 1차 대전의 영웅으로 프랑스를 구원한 페탱이지만, 그래서 2차 대전 당시 프랑스가 위기에 처하게 되자 84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이 영웅이 3공화국의 총리로 소환되어 프랑스를 이끌게까지 된 것이지만, 나치 독일에 대한 항복과 부역은 프랑스로서는 부인하고 숨기고만 싶은 수치스런 기억인 거죠.
반면, 런던에서 망명정부인 '자유 프랑스(La France Libre)'를 이끈 드골은 이 어두운 시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랑스럽게 장식하여야만 하는 프랑스의 단 하나의 기억이어야만 했던 거구요. 이러한 대립구도의 설정에는 혹여 역사의 과장이나 더 나아가 조작이 끼어들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프랑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 같습니다. 이게 현재 프랑스 국민들의 국가적 자긍심의 원천이니까요. 그래서 마크롱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2018년 11월 5일 월요일
자녀와 둘만의 짧은 파리 여행 후기
지난 주에 4박 5일간의 짧은 파리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다음 여행의 준비를 위해 몇 가지 느낀 점을 두서 없이 적어 볼까 합니다.
1. 이번 파리 여행은 중학교 1학년인 제 딸아이와의 단둘만의 여행이었습니다.
다른 가족들을 빼고 딸아이만 데리고 여행을 간 이유는, 큰아들과의 프랑스 여행이야기를 담은 이코노미스트 홍춘욱님의 아래 책이, 그리고 이 책을 소개하는 "왜 홍 박사님은 아들과 단둘이서 프랑스를 여행했을까"라는 글이 던져 준 아이디어도 있습니다만,
사실은 저 편하자고 한 측면이 많습니다.
2. 시간과 비용 면에서 큰 마음을 먹어야 하는 장거리 여행일수록 아이의 수준을 더 신중하게 고려해봐야겠습니다.
제 딸아이는 중학교 1학년으로, 마침 학기 한 중간에 여행을 가도 큰 무리가 없을만한 1주일이 생겨 파리 여행을 질러본 것이었습니다. 앞으로는 공부 때문에 장기간 학교를 빠질 기회가 없을 거라고도 해서요. 그리고 중학교 1학년이면 이제 어느 정도 커서 유럽 여행에 흥미를 느낄 수도 있는 나이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음, 그런데 아직 그건 좀 이른 것이었더군요. 물론 아이들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제 아이는 아직 유럽 여행에 흥미가 없더군요. 미리 여행 공부를 하라고 책을 몇 권 줬는데, 전혀 보지 않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더군요. 제가 파리에 대해 뭔가 설명을 해줘도 귀담아 듣지 않구요. 아직 유럽에 관심이 생기지 않은 것이고, 아이에 대한 관찰이나 배려 없이 저 혼자 너무 쉽게만 제 위주로 낭만적으로 생각했던 거지요.
그런데도 관심도 없는 관광지와 거리를 아빠 따라 걸어 다니면서 허리 아프다, 다리 아프다 라는 말 외에는 다른 불만을 얘기하지 않고 줄곧 잘 따라다닌 제 아이에게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당초 4박 5일로 일정을 짤 때는 그래도 간만에 큰 돈 들여 파리를 가는 건데 너무 일정이 짧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나고보니 더 긴 일정을 잡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기도 합니다.
3. 아이와 여행하면서 두 가지에 신경을 쓰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첫째는, 아이를 제 가족이 아니라 마치 남인 것처럼 대하자.
제가 남한테는 친절하고 오히려 가족한테는 안 친절한 편인데요, 그래서 이번 여행 기간 중에는 아이를 가급적 남처럼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단둘만의 여행이니 서로 원만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가족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고 남처럼 조심스레 대하고 예의를 지키고 대화도 성의 있게 하는 등 노력을 하는 게 좋을 것 같고, 꼭 그게 아니더라도 이제 아이가 꽤 컸기에 제가 아빠랍시고 그저 편하게만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이 다짐은 나름 잘 지킨 것 같습니다. 배려, 존중, 머 이렇게 거창한 단어까지 갖다붙일 일은 아니지만, 평소와 달리 신경을 좀 썼습니다.
둘째, 아이 보는 데서 외국인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아이가 저를 닮아서 좀 숙맥기가 있습니다. 학원에선 영어를 곧잘 한다는데, 아마 저를 닮아서 정작 실전에서는 영어를 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외국인 천지인 파리에서 제가 제 본연의 모습과 달리 외국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이가 따라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이 다짐은 완전 실패였습니다. 제가 제 본연의 모습을 벗어나질 못하겠더군요. 외국인이 옆에 있는 상황이 생기면 스스로 온갖 핑계를 속으로 대면서 기회를 걷어차버리곤 하였습니다. 제가 본을 보이지 못한 것은 물론, 제 아이도 4박 5일간 영어를 한번도 쓰지 않았습니다. 으이그........
4. 이번 여행에서 제가 가장 기대한 것은 '오페라 갸르니에'에서 발레 공연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제 딸아이가 사실상 첫 파리 여행이었기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여행 일정을 준비하였고, 이 기본적인 일정은 모두 제가 이미 경험해본 것들이어서 제 입장에서는 이번 여행에서 새로운 걸 본다는 기대감은 전혀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새로운 볼거리가 바로 '오페라 갸르니에'에서의 발레 공연이었습니다. 한번도 오페라에서 제대로 공연을 본 적이 없었거든요. 마침 여행기간 중 오페라의 발레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고, 기쁜 마음으로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어느 자리에서나 잘 볼 수 있도록 높은 위치에 광활한 면적으로 스크린이 걸려있는 영화와는 달리, 연극, 오페라, 뮤지컬 같은 실사 공연은 객석의 위치에 따라 무대를 조망할 수 있는 여지가 상당히 달라지지요. 그래서 이런 공연들은 무조건 비싼 자리에서 봐야 한다는 쓸 만한 소신을 갖고 있음에도 막상 실천이 쉽질 않곤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정쩡한 가격대의 표를 구하다보니 사이드에 있는 발코니석, 그것도 두 번째 열에 있는 자리를 구했는데, 이게 시야가 아주 좋지 못해서 무대의 절반도 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작은 방 안에서 공연 관람을 하는 발코니석을 경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사이드의 발코니석이 무대와의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아 관람에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제가 들어간 발코니석은 3열로 구성되어 한 열에 두 자리씩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맨 앞의 열만 시야가 확보되는 자리였고, 나머지 두 번째와 세 번째 자리는 발코니 사이사이를 가르는 벽으로 인해 무대와의 각도상 거의 관람이 불가능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아예 보이지도 않는 자리를 어떻게 돈 주고 파나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아무튼 같은 값이면 무대와의 거리가 좀 멀더라도 그나마 무대가 모두 보이는 중앙쪽의 자리를 고르고, 사이드의 자리들은 피하는 게 좋겠습니다.
5. 처음으로 파리에서 소매치기를 경험했습니다.
파리에 적지 않은 기간 있어봤지만, 말로만 듣던 소매치기를 이번에 처음 당해보았습니다.
사건 발생 시각과 장소는 인파가 많은 오후 4시경 메트로 Invalid 역에서였습니다. 제 뒤를 따라 동유럽 계열로 보이는 청년 두 명이 혼잡한 열차 안에 올라타더니 한 명은 저를 밀치고 괜히 흐느적거리는 이상한 행동을 하면서 주의를 끌고, 그 사이 다른 한 명은 제 뒤에 붙어 제가 어깨에 매고 있던 가방 위에 작은 사각 천을 덮어씌우고 그 사이로 가방 지퍼를 열어 손을 집어넣었습니다.
사실 그때는 저도 사태 파악을 못한 채 앞에 있던 이상한 행동을 하는 청년이 뭔가 싶어 거기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제 몸을 다른 쪽으로 돌리자 비로소 뒤에 있던 청년이 저에게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혹시나 싶어 가방을 살펴보니 지퍼가 열려 있었고, 이게 뭐지 하는 사이에 그 청년들은 유유히 열차에서 내렸습니다.
다행히 여권과 지갑 등 귀중품은 모두 제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고 가방에는 귀중품이 전혀 없었기에, 미수에 그친 범행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피해 본 물건은 없었지만, 남의 손이 제 가방 속을 다녀갔다고 생각하니 기분은 많이 나쁘더군요. 그렇게 많은 경험담들을 듣고도 막상 소매치기를 알아채지 못하고 허술하게 당하고 말다니, 어이 없기도 합니다. 뒤에 다시 생각해보면, 충분히 소매치기임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수법이 좀 엉성하기도 했거든요.
에펠탑 부근에 가보니 'Can you speak english?'들은 왜 이렇게 많아졌는지요. 이 사람들도 관광객들에게 서명을 받는 채 하면서 주의를 끄는 사이에 다른 일당이 뒤에서 지갑을 턴다지요. 아무튼 모두들 파리 여행은 조심합시다.
6. 숙소는 파리 15구에 있는 에어비앤비를 이용했습니다. 오래 전에 지어져 엘리베이터도 없는 파리의 전형적인 6층 아파트였는데, 층간소음을 조심해야겠더군요.
저희는 맨 꼭대기 6층에 있는, 거실 하나와 방 하나를 쓸 수 있는 속칭 '하녀방'에 묵었습니다. 에펠탑이 창밖으로 보이는 근사한 곳이었지요.
저희는 맨 꼭대기 층이어서 층간소음을 당할 입장은 아니었는데, 셋째 날 아침에 아래 층에서 사람이 올라오더군요. 신발 소리가 크게 들린다며 신발을 벗어달라구요. 실내에서 신을 슬리퍼를 따로 준비해오지 않아 신고 온 운동화를 실내에서도 계속 신고 있었는데, 이게 아래 층에는 큰 소음이었던 모양입니다.
뒤늦게 슬리퍼를 사기도 뭐해, 찝찝하지만 그냥 양말 신고 생활했습니다. 에어비앤비를 이용할 땐 준비물에 더 신경을 써야겠습니다.
7. 기타 소소한 팁 몇 가지
- 출국하는 날 집에서 가까운 삼성동 도심공항터미널을 이용할까 했습니다. 제 티켓은 대한항공으로 예약했지만, 항공기는 공동운항편인 에어프랑스였습니다. 이런 경우 에어프랑스 창구에서 출국수속을 해야 하는데, 오리지날 에어프랑스가 아닌 공동운항편의 경우는 도심공항터미널에서 수속을 할 수 없다고 하네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런 분들은 허탕치지 말고 인천공항으로 바로 가셔야겠습니다.
- 인천공항도 그렇고 샤를드골공항도 그렇고, 사람이 있는 출국수속대보다 셀프체크인 기기가 많이 설치되어 있더군요. 무인기기로 보딩패스를 출력하고 짐도 함께 부치는 시스템입니다. 처음 써보는 기기라 한번에 못하고 좀 당황하기도 했는데, 이제 대부분의 일을 기계를 이용해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시대인가 봅니다.
- 샤를드골공항에 도착해서는 출국장에 있는 인포메이션에서 이틀 짜리 뮤지엄패스를 구입했습니다. 처음으로 뮤지엄패스를 써봤는데, 미술관에서 티켓 사느라 긴 줄 설 필요 없어 정말 편리하더군요. 뮤지엄패스가 있으니 다른 때 같으면 잘 안 갔을 소소한 미술관도 고민 없이 방문하게 되구요.
이번 여행 기간은 외국인 관광객은 많지 않은 비수기였지만 하필 만성절(Toussaint) 방학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내국인들이 많아 미술관을 비롯한 주요 관광지에서 엄청난 줄을 볼 수 있었고, 그래서 뮤지엄패스의 위력이 더더욱 유감없이 발휘되었습니다.
그리고 18세 미만은 미술관 입장이 아예 무료이므로, 어른만 뮤지엄패스를 구입하면 되겠습니다.
- 샤를드골공항에 도착해서 파리 시내로 이동할 때는, 시간 절약을 위해 처음으로 '우버'를 이용해봤습니다. 낮 2시에 도착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빨리 시내로 들어가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거든요.
요금은 미리 정해진 금액인지, 딱 50유로를 받더군요.
- 미리 은행 가서 환전할 시간이 없어, 파리에 도착해서 거리 여기저기에 있는 현금인출기에서 신용카드로 수시로 조금씩만 유로를 인출해 사용했습니다. 파리는 신용카드를 그대로 쓰면 되니 어차피 현금을 쓸 일이 많지 않고, 얼마 안 되는 소액의 현금이라면 신용카드 대출 수수료가 그리 큰 부담이 된다고 볼 수는 없거든요.
- 교통편을 위해 메트로 창구에서 교통카드인 Navigo를 만들었습니다. 아이에게 추억거리를 만들어줄 겸 해서요. 나중에 커서 친구들이랑 파리를 놀러왔을 때 이번에 아빠랑 만든 나비고로 파리를 누비고 다니라구요.
나비고를 만들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1주일 내내 1구역, 2구역, 이런 거 신경 쓸 필요 없이 베르사유나 샤를드골공항까지 마음껏 다닐 수 있어 편리하기도 합니다. 카드에 붙일 작은 증명사진 한 장은 미리 준비해 가셔야 하구요.
Read More
[이번에 묵은 숙소 창밖 풍경] |
1. 이번 파리 여행은 중학교 1학년인 제 딸아이와의 단둘만의 여행이었습니다.
다른 가족들을 빼고 딸아이만 데리고 여행을 간 이유는, 큰아들과의 프랑스 여행이야기를 담은 이코노미스트 홍춘욱님의 아래 책이, 그리고 이 책을 소개하는 "왜 홍 박사님은 아들과 단둘이서 프랑스를 여행했을까"라는 글이 던져 준 아이디어도 있습니다만,
사실은 저 편하자고 한 측면이 많습니다.
저의 경우 온가족이라고 해봐야 네 명밖에 안 되지만, 모두 한꺼번에 움직이려면 비용은 많이 들고 시간 맞추기는 힘듭니다. 다른 세 명의 컨디션과 상태, 동선에 대해 계속 신경을 쓰고 있어야 합니다. 한 명이라도 컨디션이나 기분에 문제가 생기면 남은 여행 꽝 될 위험 있습니다. 네 명 짐 다 싸기 힘들고, 여행에서 돌아와 이 네 명의 짐 풀고 정리하는 건 더 힘듭니다. 물론 그 네 명분의 짐을 제가 혼자 거의 다 지고갈 큰 위험도 있지요. 호텔이야 네 명이 동시에 들어가는 객실 없어도 에어비앤비 이용하면 되니 문제 없으나, 유럽의 택시는 조수석을 비워둬야 하니 한 차로 이동 불가입니다. 관광지 입장료 내려면 어른 둘, 청소년 하나, 어린이 하나, 갈수록 머리 나빠지는데 계산 복잡합니다. 숙소 화장실 하나를 네 명이 쓰려면 이것도 꽤 불편하겠네요.
이렇게 이런저런 핑계들을 댔으나, 결국 한마디로 정리하면 저 편한 여행 하자는 심보였지요.
확실히 아이 하나와 단둘만 여행을 하니, 앞에 써놓은 핑계들 그대로 여행 자체가 편하긴 편했습니다. 그런데 함께하지 못한 다른 가족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여행 내내 들어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즐거운 순간에는 더더욱 서울에 있는 가족들이 생각나고, 즐겁지 않은 순간에는 이거 벌을 받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함께한 아이와 과연 많은 대화와 의미있는 만남이, 가족 전부와 함께한 여행에 비해 탁월하게 특별하였는지도 의문이구요.
아이와 단둘이 만드는 추억여행이라고 너무 쉽게만 아름답게 제 위주로 포장하지 말고, 가까운 뒷산이라도 아이와 단둘이 가보고 난 다음 멀고 긴 여행을 준비해보는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2. 시간과 비용 면에서 큰 마음을 먹어야 하는 장거리 여행일수록 아이의 수준을 더 신중하게 고려해봐야겠습니다.
제 딸아이는 중학교 1학년으로, 마침 학기 한 중간에 여행을 가도 큰 무리가 없을만한 1주일이 생겨 파리 여행을 질러본 것이었습니다. 앞으로는 공부 때문에 장기간 학교를 빠질 기회가 없을 거라고도 해서요. 그리고 중학교 1학년이면 이제 어느 정도 커서 유럽 여행에 흥미를 느낄 수도 있는 나이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음, 그런데 아직 그건 좀 이른 것이었더군요. 물론 아이들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제 아이는 아직 유럽 여행에 흥미가 없더군요. 미리 여행 공부를 하라고 책을 몇 권 줬는데, 전혀 보지 않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더군요. 제가 파리에 대해 뭔가 설명을 해줘도 귀담아 듣지 않구요. 아직 유럽에 관심이 생기지 않은 것이고, 아이에 대한 관찰이나 배려 없이 저 혼자 너무 쉽게만 제 위주로 낭만적으로 생각했던 거지요.
그런데도 관심도 없는 관광지와 거리를 아빠 따라 걸어 다니면서 허리 아프다, 다리 아프다 라는 말 외에는 다른 불만을 얘기하지 않고 줄곧 잘 따라다닌 제 아이에게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당초 4박 5일로 일정을 짤 때는 그래도 간만에 큰 돈 들여 파리를 가는 건데 너무 일정이 짧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나고보니 더 긴 일정을 잡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기도 합니다.
3. 아이와 여행하면서 두 가지에 신경을 쓰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첫째는, 아이를 제 가족이 아니라 마치 남인 것처럼 대하자.
제가 남한테는 친절하고 오히려 가족한테는 안 친절한 편인데요, 그래서 이번 여행 기간 중에는 아이를 가급적 남처럼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단둘만의 여행이니 서로 원만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가족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고 남처럼 조심스레 대하고 예의를 지키고 대화도 성의 있게 하는 등 노력을 하는 게 좋을 것 같고, 꼭 그게 아니더라도 이제 아이가 꽤 컸기에 제가 아빠랍시고 그저 편하게만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이 다짐은 나름 잘 지킨 것 같습니다. 배려, 존중, 머 이렇게 거창한 단어까지 갖다붙일 일은 아니지만, 평소와 달리 신경을 좀 썼습니다.
둘째, 아이 보는 데서 외국인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아이가 저를 닮아서 좀 숙맥기가 있습니다. 학원에선 영어를 곧잘 한다는데, 아마 저를 닮아서 정작 실전에서는 영어를 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외국인 천지인 파리에서 제가 제 본연의 모습과 달리 외국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이가 따라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이 다짐은 완전 실패였습니다. 제가 제 본연의 모습을 벗어나질 못하겠더군요. 외국인이 옆에 있는 상황이 생기면 스스로 온갖 핑계를 속으로 대면서 기회를 걷어차버리곤 하였습니다. 제가 본을 보이지 못한 것은 물론, 제 아이도 4박 5일간 영어를 한번도 쓰지 않았습니다. 으이그........
4. 이번 여행에서 제가 가장 기대한 것은 '오페라 갸르니에'에서 발레 공연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제 딸아이가 사실상 첫 파리 여행이었기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여행 일정을 준비하였고, 이 기본적인 일정은 모두 제가 이미 경험해본 것들이어서 제 입장에서는 이번 여행에서 새로운 걸 본다는 기대감은 전혀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새로운 볼거리가 바로 '오페라 갸르니에'에서의 발레 공연이었습니다. 한번도 오페라에서 제대로 공연을 본 적이 없었거든요. 마침 여행기간 중 오페라의 발레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고, 기쁜 마음으로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어느 자리에서나 잘 볼 수 있도록 높은 위치에 광활한 면적으로 스크린이 걸려있는 영화와는 달리, 연극, 오페라, 뮤지컬 같은 실사 공연은 객석의 위치에 따라 무대를 조망할 수 있는 여지가 상당히 달라지지요. 그래서 이런 공연들은 무조건 비싼 자리에서 봐야 한다는 쓸 만한 소신을 갖고 있음에도 막상 실천이 쉽질 않곤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정쩡한 가격대의 표를 구하다보니 사이드에 있는 발코니석, 그것도 두 번째 열에 있는 자리를 구했는데, 이게 시야가 아주 좋지 못해서 무대의 절반도 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작은 방 안에서 공연 관람을 하는 발코니석을 경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사이드의 발코니석이 무대와의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아 관람에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제가 들어간 발코니석은 3열로 구성되어 한 열에 두 자리씩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맨 앞의 열만 시야가 확보되는 자리였고, 나머지 두 번째와 세 번째 자리는 발코니 사이사이를 가르는 벽으로 인해 무대와의 각도상 거의 관람이 불가능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아예 보이지도 않는 자리를 어떻게 돈 주고 파나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아무튼 같은 값이면 무대와의 거리가 좀 멀더라도 그나마 무대가 모두 보이는 중앙쪽의 자리를 고르고, 사이드의 자리들은 피하는 게 좋겠습니다.
5. 처음으로 파리에서 소매치기를 경험했습니다.
파리에 적지 않은 기간 있어봤지만, 말로만 듣던 소매치기를 이번에 처음 당해보았습니다.
사건 발생 시각과 장소는 인파가 많은 오후 4시경 메트로 Invalid 역에서였습니다. 제 뒤를 따라 동유럽 계열로 보이는 청년 두 명이 혼잡한 열차 안에 올라타더니 한 명은 저를 밀치고 괜히 흐느적거리는 이상한 행동을 하면서 주의를 끌고, 그 사이 다른 한 명은 제 뒤에 붙어 제가 어깨에 매고 있던 가방 위에 작은 사각 천을 덮어씌우고 그 사이로 가방 지퍼를 열어 손을 집어넣었습니다.
사실 그때는 저도 사태 파악을 못한 채 앞에 있던 이상한 행동을 하는 청년이 뭔가 싶어 거기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제 몸을 다른 쪽으로 돌리자 비로소 뒤에 있던 청년이 저에게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혹시나 싶어 가방을 살펴보니 지퍼가 열려 있었고, 이게 뭐지 하는 사이에 그 청년들은 유유히 열차에서 내렸습니다.
다행히 여권과 지갑 등 귀중품은 모두 제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고 가방에는 귀중품이 전혀 없었기에, 미수에 그친 범행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피해 본 물건은 없었지만, 남의 손이 제 가방 속을 다녀갔다고 생각하니 기분은 많이 나쁘더군요. 그렇게 많은 경험담들을 듣고도 막상 소매치기를 알아채지 못하고 허술하게 당하고 말다니, 어이 없기도 합니다. 뒤에 다시 생각해보면, 충분히 소매치기임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수법이 좀 엉성하기도 했거든요.
에펠탑 부근에 가보니 'Can you speak english?'들은 왜 이렇게 많아졌는지요. 이 사람들도 관광객들에게 서명을 받는 채 하면서 주의를 끄는 사이에 다른 일당이 뒤에서 지갑을 턴다지요. 아무튼 모두들 파리 여행은 조심합시다.
6. 숙소는 파리 15구에 있는 에어비앤비를 이용했습니다. 오래 전에 지어져 엘리베이터도 없는 파리의 전형적인 6층 아파트였는데, 층간소음을 조심해야겠더군요.
저희는 맨 꼭대기 6층에 있는, 거실 하나와 방 하나를 쓸 수 있는 속칭 '하녀방'에 묵었습니다. 에펠탑이 창밖으로 보이는 근사한 곳이었지요.
저희는 맨 꼭대기 층이어서 층간소음을 당할 입장은 아니었는데, 셋째 날 아침에 아래 층에서 사람이 올라오더군요. 신발 소리가 크게 들린다며 신발을 벗어달라구요. 실내에서 신을 슬리퍼를 따로 준비해오지 않아 신고 온 운동화를 실내에서도 계속 신고 있었는데, 이게 아래 층에는 큰 소음이었던 모양입니다.
뒤늦게 슬리퍼를 사기도 뭐해, 찝찝하지만 그냥 양말 신고 생활했습니다. 에어비앤비를 이용할 땐 준비물에 더 신경을 써야겠습니다.
7. 기타 소소한 팁 몇 가지
- 출국하는 날 집에서 가까운 삼성동 도심공항터미널을 이용할까 했습니다. 제 티켓은 대한항공으로 예약했지만, 항공기는 공동운항편인 에어프랑스였습니다. 이런 경우 에어프랑스 창구에서 출국수속을 해야 하는데, 오리지날 에어프랑스가 아닌 공동운항편의 경우는 도심공항터미널에서 수속을 할 수 없다고 하네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런 분들은 허탕치지 말고 인천공항으로 바로 가셔야겠습니다.
- 인천공항도 그렇고 샤를드골공항도 그렇고, 사람이 있는 출국수속대보다 셀프체크인 기기가 많이 설치되어 있더군요. 무인기기로 보딩패스를 출력하고 짐도 함께 부치는 시스템입니다. 처음 써보는 기기라 한번에 못하고 좀 당황하기도 했는데, 이제 대부분의 일을 기계를 이용해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시대인가 봅니다.
- 샤를드골공항에 도착해서는 출국장에 있는 인포메이션에서 이틀 짜리 뮤지엄패스를 구입했습니다. 처음으로 뮤지엄패스를 써봤는데, 미술관에서 티켓 사느라 긴 줄 설 필요 없어 정말 편리하더군요. 뮤지엄패스가 있으니 다른 때 같으면 잘 안 갔을 소소한 미술관도 고민 없이 방문하게 되구요.
이번 여행 기간은 외국인 관광객은 많지 않은 비수기였지만 하필 만성절(Toussaint) 방학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내국인들이 많아 미술관을 비롯한 주요 관광지에서 엄청난 줄을 볼 수 있었고, 그래서 뮤지엄패스의 위력이 더더욱 유감없이 발휘되었습니다.
그리고 18세 미만은 미술관 입장이 아예 무료이므로, 어른만 뮤지엄패스를 구입하면 되겠습니다.
- 샤를드골공항에 도착해서 파리 시내로 이동할 때는, 시간 절약을 위해 처음으로 '우버'를 이용해봤습니다. 낮 2시에 도착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빨리 시내로 들어가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거든요.
요금은 미리 정해진 금액인지, 딱 50유로를 받더군요.
- 미리 은행 가서 환전할 시간이 없어, 파리에 도착해서 거리 여기저기에 있는 현금인출기에서 신용카드로 수시로 조금씩만 유로를 인출해 사용했습니다. 파리는 신용카드를 그대로 쓰면 되니 어차피 현금을 쓸 일이 많지 않고, 얼마 안 되는 소액의 현금이라면 신용카드 대출 수수료가 그리 큰 부담이 된다고 볼 수는 없거든요.
- 교통편을 위해 메트로 창구에서 교통카드인 Navigo를 만들었습니다. 아이에게 추억거리를 만들어줄 겸 해서요. 나중에 커서 친구들이랑 파리를 놀러왔을 때 이번에 아빠랑 만든 나비고로 파리를 누비고 다니라구요.
나비고를 만들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1주일 내내 1구역, 2구역, 이런 거 신경 쓸 필요 없이 베르사유나 샤를드골공항까지 마음껏 다닐 수 있어 편리하기도 합니다. 카드에 붙일 작은 증명사진 한 장은 미리 준비해 가셔야 하구요.
- 제가 카카오톡을 좋아하지 않아서 평소에는 업무용으로만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폰에는 설치하지 않고 컴퓨터에만 깔아서 쓰고 있는데요, 외국여행을 하려니 카톡을 안 쓰기가 좀 힘드네요. 보통 외국여행 가면서 데이터로밍을 신청하게 되니, 카톡에 있는 보이스톡과 페이스톡 기능으로 가족들과 편리하게 연락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번 여행에서 카톡 아주 유용하게 잘 썼습니다.
2018년 10월 22일 월요일
프랑스 사법관의 직무상 과오에 대한 책임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프랑스도 사법관은 자신의 과오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어 있습니다.
Read More
2018년 7월 7일자 Vie-Publique 사이트의 "사법관의 책임(La responsabilité des magistrats)" 글에 따르면, '1958년 12월 22일자 사법관의 지위에 관한 법률명령'은 사법관의 과오 책임에 대한 일반적인 원칙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법관은 개인적인 과오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다."
즉, 모든 공무원에게 적용되는 공통원칙에 따라, 사법관의 과오가 직무수행과 관련없는 경우 그는 보통법의 조건 하에 책임이 있고, 반대로 사법관의 과오가 직무수행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 과오로 인한 피해자는 국가에 대해서만 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는 민사책임의 경우에 그러하다는 것이고, 형사책임 영역에서는 어떠한 면제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국가 내부적으로 징계책임을 부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2018년 9월 25일자 르몽드지의 기사 "사법관의 과오는 거의 제재를 받지 않는다(Les fautes des magistrats sont peu sanctionnées)"에서는 사법관의 잘못에 대해 이렇다할 처벌이 없는 현실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2014년 리옹에서의 테러를 계획했던 지하디스트 테러범 Qualid B.가 2016년 8월부터 구속되어 수감 중이었는데, 구속기간 연장조치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깜빡 잊은 예심수사판사의 부주의로 2018년 4월 3일 석방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프랑스 주간지 'Le Canard enchaîné'의 보도로 처음 드러나, 8월 22일에서야 법무부장관이 이를 시인하기에 이릅니다.
테러범은 석방되자마자 사법통제(contrôle judiciaire) 상태에 있게 되었는데, 주거지에서의 이탈이 금지되고 매일 두 차례씩 경찰관의 점검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중대한 실수를 한 예심수사판사는 사직을 권고받았으나 이를 거부하였고, 아직까지 처벌은 받지 않았지만 이제 조만간 법무부장관의 지시로 사법감찰 절차(inspection générale de la justice)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보듯이, 프랑스에서는 사법관에 대한 징계조치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고 징계 사례도 해마다 감소하고 있습니다. 징계를 받은 사법관이 2014년 11명, 2015년 3명, 2016년 2명, 2017년 4명, 2018년은 현재까지 단 1명에 불과합니다.
각 법원의 기관장들이 징계조치보다는 단순 경고조치(avertissement)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고조치도 감소하고 있습니다. 최근 5년간(2013~2017) 고등법원장이나 고등검사장이 약 8,000명의 사법관 중 30명에 대해 경고조치를 한 데 비해, 그 10년 전에는 같은 5년간(2004~2008) 46명의 사법관에 대해 경고조치가 있었습니다.
참고 사이트 : http://boris-victor.blogspot.com/2018/09/les-fautes-des-magistrats-peu.html.
그리고 국가 내부적으로 징계책임을 부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2018년 9월 25일자 르몽드지의 기사 "사법관의 과오는 거의 제재를 받지 않는다(Les fautes des magistrats sont peu sanctionnées)"에서는 사법관의 잘못에 대해 이렇다할 처벌이 없는 현실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2014년 리옹에서의 테러를 계획했던 지하디스트 테러범 Qualid B.가 2016년 8월부터 구속되어 수감 중이었는데, 구속기간 연장조치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깜빡 잊은 예심수사판사의 부주의로 2018년 4월 3일 석방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프랑스 주간지 'Le Canard enchaîné'의 보도로 처음 드러나, 8월 22일에서야 법무부장관이 이를 시인하기에 이릅니다.
테러범은 석방되자마자 사법통제(contrôle judiciaire) 상태에 있게 되었는데, 주거지에서의 이탈이 금지되고 매일 두 차례씩 경찰관의 점검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중대한 실수를 한 예심수사판사는 사직을 권고받았으나 이를 거부하였고, 아직까지 처벌은 받지 않았지만 이제 조만간 법무부장관의 지시로 사법감찰 절차(inspection générale de la justice)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보듯이, 프랑스에서는 사법관에 대한 징계조치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고 징계 사례도 해마다 감소하고 있습니다. 징계를 받은 사법관이 2014년 11명, 2015년 3명, 2016년 2명, 2017년 4명, 2018년은 현재까지 단 1명에 불과합니다.
각 법원의 기관장들이 징계조치보다는 단순 경고조치(avertissement)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고조치도 감소하고 있습니다. 최근 5년간(2013~2017) 고등법원장이나 고등검사장이 약 8,000명의 사법관 중 30명에 대해 경고조치를 한 데 비해, 그 10년 전에는 같은 5년간(2004~2008) 46명의 사법관에 대해 경고조치가 있었습니다.
참고 사이트 : http://boris-victor.blogspot.com/2018/09/les-fautes-des-magistrats-peu.html.
2018년 10월 21일 일요일
프랑스 참심재판 제도의 현재와 미래
영국과 미국에서 시행하는 배심재판 제도, 그리고 프랑스와 독일에서 시행하는 참심재판 제도는 일반국민이 심판 자격으로 재판에 참여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른 점은, 배심재판 제도의 경우 유무죄 판단을 배심원이 전적으로 담당하고 판사는 사실상 재판진행만 맡는 데 반해, 참심재판 제도의 경우 참심원과 판사가 함께 유무죄 판단을 한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배심재판은 배심원과 판사의 역할이 따로따로 구분되어 있고, 참심재판은 참심원과 판사가 동등한 자격으로 함께 재판을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좌석배치를 보더라도, 배심재판은 배심원(방청석에서 볼 때 법정의 왼쪽)과 판사(법정의 정중앙)가 아예 다른 위치의 좌석에 따로 앉는다면, 참심재판은 참심원과 판사가 법정 정중앙의 자리(이걸 흔히 '법대'라고 합니다)에 함께 일렬로 죽 앉는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참심재판은 'Cour d'assises', '중죄재판부'라고 부르는 전담재판부에서 담당하고 있습니다. 형법상 범죄를 중죄, 경죄, 위경죄의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는데, 그 중 무기징역을 포함해서 10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중죄(crime) 사건에 대해서는 무조건 중죄재판부에서 재판이 진행됩니다. 보통의 사안은 9명의 참심원(juré)과 3명의 판사가 함께 재판에 참여하고, 테러범죄 사건이나 조직범죄 사건처럼 중대한 범죄의 재판은 더 많은 숫자의 참심원과 판사가 필요합니다.
2018년 10월 15일자 Le Parisien지에 프랑스 중죄재판부(Cour d'assises)에 대한 보도가 있기에, 정리해 봅니다.
기사 제목은 "참심원 없는 소송: 중죄재판부가 점점 덜 이용되고 있다(Procès sans jurés : des cours d’assises de moins en moins populaires)"입니다. 제목에 있는 단어 populaire는 영단어 popular와 같은 말이니, "인기가 없어지고 있다" 또는 "국민 참여적 성격이 없어지고 있다"나 "국민 참여가 줄고 있다", 이런 의미로 번역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 기사의 부제는 "벨기에, 스위스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일반국민 참심원이 점점 더 형사절차에서 배제되고 있다"인데요, 기사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중죄재판부 절차의 병목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형사사법제도 개선안을 마련하였다. 이번 개선안은 징역 15년에서 20년으로 처벌할 중죄 사건(전체 중죄 사건의 약 57%에 해당)을 직업법관으로만 구성된 '지역 중죄법원(tribunal criminel départemental)'에서 재판하게 한다는 것인데, 10월 11일 상원에서 그 시범실시안에 대해 표결하였다 . '지역 중죄법원'은 5명의 직업법관으로 구성되고, 시범실시안이 10여 개 지역에서 시행될 예정이다.
중죄재판부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국민주권 원칙의 구현으로 제도화되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그 역할은 점점더 제한적으로 변화되어 왔다.
이번 개선안은 효율적인 진실발견과 예산 절감을 도모한 방안으로, 이웃한 두 나라의 사례가 참고되었다. 벨기에는 2016년 대부분의 중죄 사건을 경죄 사건 담당재판부로 이송하는 처분을 허용하였고, 스위스는 2011년 26개 주 중 25개 주에서 배심제를 폐지하였다. 스위스의 경우 배심제를 폐지하는 대신 '제한적 구두주의(oralité limiteé)'을 채택하였는데, 이는 '기록을 검토한 사법관이 증거로 확인한 모든 사실은 재판에서 재론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말한다.
앞으로 지역 중죄법원에서 중죄 사건을 담당하게 될 경우, 서면주의와 제한적 구두주의로의 회귀가 우려된다. 보다 신속한 사법절차는 오히려 현실과 유리될 우려도 있다.
기사 말미에 요약된 내용을 보면, 2017년의 경우 프랑스 경죄재판부에서 264,068건의 판결을 선고한 데 비해, 중죄재판부는 2,232건의 판결을 선고하였다고 합니다.
배심재판이나 참심재판은 일반국민이 직접 재판에 참여함으로써 국민주권 원칙을 사법분야에도 관철할 수 있다는 명분상 장점은 있으나, 그 시행에 보다 많은 시간과 인력이 소요되어 재판절차의 신속을 저해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오랜 세월 참심재판 제도를 시행해온 프랑스에서는 이미 이 제도의 효용성과 개선방안에 대해 많은 연구와 검토가 있었겠지요.
그래도 이런 제도를 건드리려면 적지 않은 반대가 있을 것 같네요. 이 기사에도 부정적인 댓글이 2개 달려있는데, 이런 내용입니다. "이런 방안은 판사들을 더 방임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민주주의에 대한 침해이다".
'지역 중죄법원'이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별도의 법원을 신설한다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지방법원에 중죄 사건만을 담당하는 전담재판부를 새로이 둔다는 취지인 것 같습니다. 종전의 중죄재판부는 보다 사안이 중한 사건, 상습범 사건, 중죄 항소 사건을 계속 담당하게 된다고 하네요.
Read More
다른 점은, 배심재판 제도의 경우 유무죄 판단을 배심원이 전적으로 담당하고 판사는 사실상 재판진행만 맡는 데 반해, 참심재판 제도의 경우 참심원과 판사가 함께 유무죄 판단을 한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배심재판은 배심원과 판사의 역할이 따로따로 구분되어 있고, 참심재판은 참심원과 판사가 동등한 자격으로 함께 재판을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좌석배치를 보더라도, 배심재판은 배심원(방청석에서 볼 때 법정의 왼쪽)과 판사(법정의 정중앙)가 아예 다른 위치의 좌석에 따로 앉는다면, 참심재판은 참심원과 판사가 법정 정중앙의 자리(이걸 흔히 '법대'라고 합니다)에 함께 일렬로 죽 앉는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참심재판은 'Cour d'assises', '중죄재판부'라고 부르는 전담재판부에서 담당하고 있습니다. 형법상 범죄를 중죄, 경죄, 위경죄의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는데, 그 중 무기징역을 포함해서 10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중죄(crime) 사건에 대해서는 무조건 중죄재판부에서 재판이 진행됩니다. 보통의 사안은 9명의 참심원(juré)과 3명의 판사가 함께 재판에 참여하고, 테러범죄 사건이나 조직범죄 사건처럼 중대한 범죄의 재판은 더 많은 숫자의 참심원과 판사가 필요합니다.
2018년 10월 15일자 Le Parisien지에 프랑스 중죄재판부(Cour d'assises)에 대한 보도가 있기에, 정리해 봅니다.
기사 제목은 "참심원 없는 소송: 중죄재판부가 점점 덜 이용되고 있다(Procès sans jurés : des cours d’assises de moins en moins populaires)"입니다. 제목에 있는 단어 populaire는 영단어 popular와 같은 말이니, "인기가 없어지고 있다" 또는 "국민 참여적 성격이 없어지고 있다"나 "국민 참여가 줄고 있다", 이런 의미로 번역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 기사의 부제는 "벨기에, 스위스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일반국민 참심원이 점점 더 형사절차에서 배제되고 있다"인데요, 기사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중죄재판부 절차의 병목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형사사법제도 개선안을 마련하였다. 이번 개선안은 징역 15년에서 20년으로 처벌할 중죄 사건(전체 중죄 사건의 약 57%에 해당)을 직업법관으로만 구성된 '지역 중죄법원(tribunal criminel départemental)'에서 재판하게 한다는 것인데, 10월 11일 상원에서 그 시범실시안에 대해 표결하였다 . '지역 중죄법원'은 5명의 직업법관으로 구성되고, 시범실시안이 10여 개 지역에서 시행될 예정이다.
중죄재판부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국민주권 원칙의 구현으로 제도화되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그 역할은 점점더 제한적으로 변화되어 왔다.
이번 개선안은 효율적인 진실발견과 예산 절감을 도모한 방안으로, 이웃한 두 나라의 사례가 참고되었다. 벨기에는 2016년 대부분의 중죄 사건을 경죄 사건 담당재판부로 이송하는 처분을 허용하였고, 스위스는 2011년 26개 주 중 25개 주에서 배심제를 폐지하였다. 스위스의 경우 배심제를 폐지하는 대신 '제한적 구두주의(oralité limiteé)'을 채택하였는데, 이는 '기록을 검토한 사법관이 증거로 확인한 모든 사실은 재판에서 재론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말한다.
앞으로 지역 중죄법원에서 중죄 사건을 담당하게 될 경우, 서면주의와 제한적 구두주의로의 회귀가 우려된다. 보다 신속한 사법절차는 오히려 현실과 유리될 우려도 있다.
기사 말미에 요약된 내용을 보면, 2017년의 경우 프랑스 경죄재판부에서 264,068건의 판결을 선고한 데 비해, 중죄재판부는 2,232건의 판결을 선고하였다고 합니다.
배심재판이나 참심재판은 일반국민이 직접 재판에 참여함으로써 국민주권 원칙을 사법분야에도 관철할 수 있다는 명분상 장점은 있으나, 그 시행에 보다 많은 시간과 인력이 소요되어 재판절차의 신속을 저해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오랜 세월 참심재판 제도를 시행해온 프랑스에서는 이미 이 제도의 효용성과 개선방안에 대해 많은 연구와 검토가 있었겠지요.
그래도 이런 제도를 건드리려면 적지 않은 반대가 있을 것 같네요. 이 기사에도 부정적인 댓글이 2개 달려있는데, 이런 내용입니다. "이런 방안은 판사들을 더 방임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민주주의에 대한 침해이다".
'지역 중죄법원'이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별도의 법원을 신설한다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지방법원에 중죄 사건만을 담당하는 전담재판부를 새로이 둔다는 취지인 것 같습니다. 종전의 중죄재판부는 보다 사안이 중한 사건, 상습범 사건, 중죄 항소 사건을 계속 담당하게 된다고 하네요.
선진국의 배심재판 제도와 참심재판 제도를 뒤늦게 들여와 독특한 모습의 국민참여재판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사법제도 종주국들의 제도변화 추이를 잘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도 항상 문제점을 발견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변화에 대응하여야 하거든요.
2018년 10월 15일 월요일
한양도성 순성길 가이드
걷는 게 유행인 세상, 아니 저한테만 유행인 걸까요. 요새 걷는 게 참 재미있습니다. 제 생각엔 가까이에 걷기 좋은 길들이 많아져서이지 않나 싶습니다. 여기저기 둘레길, 자락길, 철길 공원, 이런 게 흔해졌죠.
제가 사는 서울엔 산길과 동네길이 이어지며 풍경과 역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한양도성 순성길'로, 서울 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한양도성 성곽을 한 바퀴 도는 길입니다. 도성 성곽이 남대문, 남산, 동대문, 낙산, 혜화문, 북악산, 인왕산을 오르락내리락 죽 연결하고 있는데, 전체 길이가 18.6km 정도라고 합니다. 성곽의 많은 부분이 일제시대에 헐렸지만, 그동안 상당 부분을 복원해 오면서 현재 13km 정도 길이의 성곽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부터 이 도성을 한 바퀴 도는 것을 '순성놀이'라고 하며 즐겼다고 하기에, 저도 한번 시도해 보았습니다. 제가 하루에 한꺼번에 돌아보니 잠시 밥 먹고 쉬는 시간까지 합해 7시간 반 정도가 걸리더군요. 바로 어제 두 번째 만의 도전 끝에 하루 한 바퀴의 순성놀이에 성공하였는데요, 처음 순성놀이를 시도했을 때는 여러 실수를 거듭하는 바람에 이걸 제대로 마칠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게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입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 한양도성' 홈페이지에서 한양도성 순성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의 여러 경험담과 후기들을 통해서도 역시 생생한 정보를 얻을 수 있구요. 그런데도 까딱 잘못하면 순성을 아예 진행하지 못하거나 즐길거리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지나칠 수 있습니다. 혹시 저처럼 순간의 실수로 이 좋은 여행에 펑크를 낼 분이 계실지 몰라, 제 실수담을 토대로 꼭 유의해야 할 내용만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유의사항 외에 위 '서울 한양도성' 홈페이지에서 코스 전체의 정보도 꼭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출발하기 전에 스마트폰에 서울시에서 만든 '한양도성' 앱을 설치하시면 좋겠습니다.
이 앱에는 여러 기능이 있지만, 무엇보다 지도 보기 기능이 매우 유용합니다. 길이 애매한 곳, 특히 성곽이 복원되지 않은 시내 구간의 경우 갈림길을 만나 어디로 가야 할지 애매한 경우가 많은데요, 이 앱의 지도를 불러서 자신이 있는 위치와 본래의 진행로를 알 수 있습니다. 순성길 여기저기에 있는 볼거리를 놓치지 않고 확인할 수도 있구요. 아, 증강현실 기능도 있던데, 이건 안 써 봤네요.
위 그림이 이 앱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간략한 지도인데, 이걸로 갈 길을 잘 모르겠다 싶으면 위 그림 왼쪽 아래에 있는 까맣고 둥근 버튼을 눌러 보세요. 아래 그림과 같이 네이버 지도에 그려진 더 자세한 순성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혹시 이 앱을 켜서 지도 보기가 귀찮으시면, 사방을 잘 둘러보시지요. 아래와 같은 표지판들이 여기저기 잘 설치되어 있답니다.
특히, 시내 구간의 바닥을 잘 보시면 아래 사진과 같은 표지가 보도블럭 사이사이에 박혀 있습니다. 이게 보이면 안심하고 그 길을 계속 가시면 됩니다.
인왕산에서 내려와 남대문을 향하는 길에 정동길을 통과하여야 하는데요, 지도를 잘 보시면 아시겠지만 성곽이 남아있지 않은 구간이라 요기가 약간 길이 헷갈릴 수 있습니다. 아래 지도에서 보시는 것처럼 왼쪽 아래에 있는 강북삼성병원 앞 횡단보도를 건너서 경향신문사를 지나 정동극장 앞 사거리에 도착하시면 바로 우회전하신 후, 배재학당 방향으로 다시 우회전하시면 됩니다.
순성놀이 계획을 잡을 때 어디서 출발하고, 또 어느 방향으로 돌면 좋을까요.
물론 출발점은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그리고 교통편이 편한 곳으로 잡으시면 될 텐데요, 그 외에 따져봐야 할 게 하나 있습니다. 북악산의 경우 청와대를 경비하는 구역이기 때문에 산 중턱에 있는 말바위 안내소에 오후 3시까지는 도착하여 신분증을 제시하고 통행표찰을 받으셔야 통과가 가능합니다. 어느 쪽에서 출발하든 이곳에 3시에는 도착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그리고 도성 순성길은 기본적으로 북악산(342m), 인왕산(338m), 남산(262m), 낙산(125m) 등 네 군데의 산 정상을 넘나드는 코스인데, 이 중 북악산과 인왕산이 특히 급경사가 많아 등정이 만만찮습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오르기 수월한 남산과 낙산을 먼저 오른 다음 나중에 북악산과 인왕산을 넘으려면 꽤나 힘이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는 방향과 관련해서는, 저는 반시계 방향으로만 돌아봐서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창의문에서 북악산으로 오르는 길과 국립극장에서 남산으로 오르는 길이 짧지만 경사가 매우 급한 편이고, 강북삼성병원에서 인왕산으로 오르는 길과 광희문에서 반얀트리 호텔까지의 길이 경사는 완만하지만 지속적인 오르막이 길게 이어져 있어 힘도 들고 지루한 느낌이 들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계 방향보다는 반시계 방향이 걷기에는 좀더 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왕산에서 남산을 바라보며 내려올 때 보이는 장쾌한 풍경을 즐기기 위해서도 이 방향이 좋아 보입니다.
그리고 월요일은 반드시 피하시기 바랍니다. 북악산과 인왕산은 매주 월요일에는 입산이 금지된답니다. 이 역시 경비구역인 때문이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처음에 멋모르고 모처럼 월요일에 휴가까지 내고 도성 순성을 시도했다가, 대참사를 겪고 말았습니다. 남산부터 시작해 낙산을 지나 북악산 중턱 말바위 안내소까지 오르고 나서야 비로소 굳게 닫힌 성곽 길을 확인하게 되었거든요. 휴가까지 내고 왔는데 여기서 그대로 포기할 순 없어 바로 삼청공원 쪽으로 하산해서 삼청동 길과 청와대 앞길을 통과해 북악산을 건너뛰고 인왕산 등정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인왕산 입구에 다다라, 역시 눈 앞에 가로막힌 등산로를 어찌할 수 없어 일정을 도중에 마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꼭 미리 입산금지 여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북악산에 갈 때는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는 사실도요.
대부분의 성곽길은 탐방로가 거의 한 길로 정해져 있지만, 외성길과 내성길이라는 표현으로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구간도 있습니다. 외성길은 성곽 바깥으로 난 길을, 내성길은 성곽 안쪽으로 난 길을 말하는데요, 성곽 안쪽에서 그 바깥의 풍경을 내다보는 것도 좋지만 저의 경우 높다란 성곽 자체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외성길이 보다 매력적이었습니다.
위 사진은 동대문에서 낙산을 올라가는 초입에 있는 표지판인데요, 이 구간은 외성길보다는 내성길로 가는 것이 더 좋아 보입니다. 멋없는 축대를 사이에 두고 성곽이 외성길과는 약간 떨어져 있어 성곽을 감상하기가 그다지 편리하지 않고, 조금 올라가다 보면 벽화마을로 유명한 이화마을이 성곽 안쪽에 자리 잡고 있어 이 마을을 구경하기 위해서도 내성길이 보다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낙산 중턱에 있는 이화마을부터 정상부에 있는 낙산공원까지도 마찬가지로 내성길을 따라 그대로 올라간 후, 아래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낙산공원의 암문을 통해 외성길로 빠져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아래 사진과 같이 외성길을 따라 낙산 구간의 하이라이트를 만날 수 있습니다.
또 인왕산에서 내성길을 따라 강북삼성병원 방향으로 내려오다 보면 중간에 차도, 즉 인왕산 자락길을 만나게 되는데요, 여기서도 외성길에 접어들 수 있습니다. 즉, 이 차도에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아래 사진과 같이 밑으로 내려갈 수 있는 나무계단을 볼 수 있고, 이 계단으로 내려가면 외성길을 따라 성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남산 구간에서도 멋진 외성길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남산타워가 있는 정상에서 국립극장 방향으로 조금 내려오면 넓은 버스 정류장이 있는데요, 여기 있는 세븐일레븐 편의점을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왼쪽으로 난 샛길로 가보시지요. 아래 사진이 역광에서 찍은 거라 잘 안 보이실 텐데, 오른쪽 건물이 세븐일레븐이 있는 건물이고 그 왼쪽 옆에 밑으로 내려가는 나무계단이 있습니다.
그러면 아래 사진과 같은 아름다운 외성길이 아름드리 소나무 숲과 함께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이 길에서는 주로 태조 시대에 처음 도성을 쌓았을 때의 성곽을 만날 수 있는데요, 아래 사진과 같은 '각자석'도 볼 수 있습니다. 성곽 아랫 부분에 하나씩 끼워져 있는데, 이 구간 공사 감독자의 실명이 적힌 돌입니다.
짧지만 조용하고 걷기 좋은 길이 끝나면 관광버스들이 관광객들을 실어나르는 차도가 다시 나오면서 일단 성곽길이 끊깁니다. 이때 주의하셔야 하는 게, 차도를 따라 그냥 내려 가시거나 아래 사진과 같이 저 멀리 성곽 끝에 보이는 철탑 쪽으로 가시면 안 되구요, 더 아래 사진과 같이 다시 남산타워를 바라보고 위쪽으로 100미터 정도 올라가셔야 합니다. 그러면 오른쪽에 다시 순성길이 기다리고 있을 거구요.
마냥 걷는 데만 집중하느라, 순성길 중간중간에 있는 볼거리를 놓치시면 안 됩니다. 몇 가지 볼거리를 말씀드리지요.
광희문에서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거쳐 동대문으로 가실 때, 반드시 디자인플라자 앞쪽이 아니라 뒷쪽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정확히 말하면 서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가시라는 얘기입니다. 서쪽으로 가면 동대문만 바라보고 가다 자칫 이간수문을 못 보고 지나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간수문은 수십년 동안 동대문운동장 밑에 묻혀 있다가 동대문운동장이 철거되면서 비로소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청계천 지류가 도성 성곽 밑을 통과하는 문입니다. 이간수문은 아치가 두 개 뿐이지만, 청계천 본류가 성곽을 통과하는 문은 아치가 다섯 개, 즉 오간수문이라고 하지요.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실제 보시면 훨씬 더 웅장하고 우직스런 매력이 있습니다. 저는 이간수문을 처음 보자마자 탄성이 절로 나왔었는데요, 마치 영화 '퍼시픽 림'에 나오는, 단순무식 돌쇠처럼 생겨서 오히려 매력적인 로봇 '체르노 알파'를 보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혜화문을 내려오자마자 현재 명칭은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인 옛 서울시장 공관을 방문할 수 있습니다. 일제시대에 지어진 유서깊은 2층 단독주택이고, 한양도성 순성에 대한 역사도 잠시 배울 수 있는 공간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건물이 도성 성곽을 축대 겸 담으로 삼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곽 살짝 안쪽에 위치해 있는 셈이지요.
아래 사진은 혜화문에서 내려오자마자 볼 수 있는 모습인데요, 이 축대 위에 옛 서울시장 공관이 얹어져 있습니다. 이 공관을 방문하려면 왼쪽으로 가시면 되고, 방문을 마치고 다시 북악산 방향으로 길을 가시려면 이곳으로 되돌아와 사진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시면 됩니다.
또 인왕산에서 남대문 방향으로 내려오면, 아래 사진과 같이 홍난파 선생이 살던 집도 방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주말엔 이곳도 쉬네요. 밖에서만 봐도 이쁩니다.
이렇게 긴 도성을 한 바퀴 돌려면 도중에 식사도 한번쯤 하셔야겠죠. 가급적 시간 절약, 다리품 절약을 위해 순성길에서 가까운 곳이 좋겠구요.
제가 이용해 본 곳은, 창의문 바로 밑에 위치한 '자하손만두'(원래 유명한 곳이기도 했지만 미슐랭 가이드 빕구르망 편 선정으로 다시금 유명세를 떨쳤죠), 광희문 근처에 위치한 '장충동 평양면옥'(유명한 평양냉면 계열 중 장충동 계열을 대표하는 곳이죠)입니다.
마지막으로, 제 결론은 "한양도성을 하루에 전부 다 도는 것은 무리이다"입니다.
몸도 많이 힘들지만, 마음도 많이 바쁜 일정입니다. 북악산, 인왕산, 남산 구간은 그냥 정상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등산과 똑같기 때문에 평소 등산을 안 하시는 분들에겐 힘만 드는 일정일 수 있습니다.
등산이 그다지 썩 내키지 않는 분들을 위해 제가 적당한 코스를 추천해드릴까 합니다.
바로 반얀트리 호텔부터 시작해서 광희문과 동대문을 거쳐 낙산에 올랐다 혜화문을 지나 옛 서울시장 공관에서 마무리하는 코스입니다. 이 코스는 내리막이 많아 그다지 힘들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모양의 성곽이 남아있고 멀리 보이는 장대한 북한산 봉우리들과 조용한 주택가 풍경을 계속 볼 수 있는 명품 구간입니다. 한 마디로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저도 등산이라면 딱 질색을 하는 가족들과 조만간 꼭 다시 가볼까 합니다.
반얀트리 호텔이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엔 좀 불편하니, 조금 더 욕심을 내서 남산을 케이블카나 버스를 타고 올라간 다음 성곽길을 따라 걸어내려와 반얀트리 호텔을 만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겠습니다.
모쪼록 모두들 헛걸음하지 않고 즐거운 순성놀이 되시기 바랍니다.
Read More
제가 사는 서울엔 산길과 동네길이 이어지며 풍경과 역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한양도성 순성길'로, 서울 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한양도성 성곽을 한 바퀴 도는 길입니다. 도성 성곽이 남대문, 남산, 동대문, 낙산, 혜화문, 북악산, 인왕산을 오르락내리락 죽 연결하고 있는데, 전체 길이가 18.6km 정도라고 합니다. 성곽의 많은 부분이 일제시대에 헐렸지만, 그동안 상당 부분을 복원해 오면서 현재 13km 정도 길이의 성곽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http://seoulcitywall.seoul.go.kr/front/kor/sub02/sub0205.do] |
조선시대부터 이 도성을 한 바퀴 도는 것을 '순성놀이'라고 하며 즐겼다고 하기에, 저도 한번 시도해 보았습니다. 제가 하루에 한꺼번에 돌아보니 잠시 밥 먹고 쉬는 시간까지 합해 7시간 반 정도가 걸리더군요. 바로 어제 두 번째 만의 도전 끝에 하루 한 바퀴의 순성놀이에 성공하였는데요, 처음 순성놀이를 시도했을 때는 여러 실수를 거듭하는 바람에 이걸 제대로 마칠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게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입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 한양도성' 홈페이지에서 한양도성 순성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의 여러 경험담과 후기들을 통해서도 역시 생생한 정보를 얻을 수 있구요. 그런데도 까딱 잘못하면 순성을 아예 진행하지 못하거나 즐길거리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지나칠 수 있습니다. 혹시 저처럼 순간의 실수로 이 좋은 여행에 펑크를 낼 분이 계실지 몰라, 제 실수담을 토대로 꼭 유의해야 할 내용만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유의사항 외에 위 '서울 한양도성' 홈페이지에서 코스 전체의 정보도 꼭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출발하기 전에 스마트폰에 서울시에서 만든 '한양도성' 앱을 설치하시면 좋겠습니다.
이 앱에는 여러 기능이 있지만, 무엇보다 지도 보기 기능이 매우 유용합니다. 길이 애매한 곳, 특히 성곽이 복원되지 않은 시내 구간의 경우 갈림길을 만나 어디로 가야 할지 애매한 경우가 많은데요, 이 앱의 지도를 불러서 자신이 있는 위치와 본래의 진행로를 알 수 있습니다. 순성길 여기저기에 있는 볼거리를 놓치지 않고 확인할 수도 있구요. 아, 증강현실 기능도 있던데, 이건 안 써 봤네요.
위 그림이 이 앱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간략한 지도인데, 이걸로 갈 길을 잘 모르겠다 싶으면 위 그림 왼쪽 아래에 있는 까맣고 둥근 버튼을 눌러 보세요. 아래 그림과 같이 네이버 지도에 그려진 더 자세한 순성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혹시 이 앱을 켜서 지도 보기가 귀찮으시면, 사방을 잘 둘러보시지요. 아래와 같은 표지판들이 여기저기 잘 설치되어 있답니다.
특히, 시내 구간의 바닥을 잘 보시면 아래 사진과 같은 표지가 보도블럭 사이사이에 박혀 있습니다. 이게 보이면 안심하고 그 길을 계속 가시면 됩니다.
인왕산에서 내려와 남대문을 향하는 길에 정동길을 통과하여야 하는데요, 지도를 잘 보시면 아시겠지만 성곽이 남아있지 않은 구간이라 요기가 약간 길이 헷갈릴 수 있습니다. 아래 지도에서 보시는 것처럼 왼쪽 아래에 있는 강북삼성병원 앞 횡단보도를 건너서 경향신문사를 지나 정동극장 앞 사거리에 도착하시면 바로 우회전하신 후, 배재학당 방향으로 다시 우회전하시면 됩니다.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 방향으로 빨간 선을 따라가 보세요] |
순성놀이 계획을 잡을 때 어디서 출발하고, 또 어느 방향으로 돌면 좋을까요.
물론 출발점은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그리고 교통편이 편한 곳으로 잡으시면 될 텐데요, 그 외에 따져봐야 할 게 하나 있습니다. 북악산의 경우 청와대를 경비하는 구역이기 때문에 산 중턱에 있는 말바위 안내소에 오후 3시까지는 도착하여 신분증을 제시하고 통행표찰을 받으셔야 통과가 가능합니다. 어느 쪽에서 출발하든 이곳에 3시에는 도착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그리고 도성 순성길은 기본적으로 북악산(342m), 인왕산(338m), 남산(262m), 낙산(125m) 등 네 군데의 산 정상을 넘나드는 코스인데, 이 중 북악산과 인왕산이 특히 급경사가 많아 등정이 만만찮습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오르기 수월한 남산과 낙산을 먼저 오른 다음 나중에 북악산과 인왕산을 넘으려면 꽤나 힘이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는 방향과 관련해서는, 저는 반시계 방향으로만 돌아봐서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창의문에서 북악산으로 오르는 길과 국립극장에서 남산으로 오르는 길이 짧지만 경사가 매우 급한 편이고, 강북삼성병원에서 인왕산으로 오르는 길과 광희문에서 반얀트리 호텔까지의 길이 경사는 완만하지만 지속적인 오르막이 길게 이어져 있어 힘도 들고 지루한 느낌이 들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계 방향보다는 반시계 방향이 걷기에는 좀더 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왕산에서 남산을 바라보며 내려올 때 보이는 장쾌한 풍경을 즐기기 위해서도 이 방향이 좋아 보입니다.
[남산을 바라보며 인왕산을 내려오는 길. 한양도성 순성길 최고의 장관입니다] |
그리고 월요일은 반드시 피하시기 바랍니다. 북악산과 인왕산은 매주 월요일에는 입산이 금지된답니다. 이 역시 경비구역인 때문이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처음에 멋모르고 모처럼 월요일에 휴가까지 내고 도성 순성을 시도했다가, 대참사를 겪고 말았습니다. 남산부터 시작해 낙산을 지나 북악산 중턱 말바위 안내소까지 오르고 나서야 비로소 굳게 닫힌 성곽 길을 확인하게 되었거든요. 휴가까지 내고 왔는데 여기서 그대로 포기할 순 없어 바로 삼청공원 쪽으로 하산해서 삼청동 길과 청와대 앞길을 통과해 북악산을 건너뛰고 인왕산 등정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인왕산 입구에 다다라, 역시 눈 앞에 가로막힌 등산로를 어찌할 수 없어 일정을 도중에 마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꼭 미리 입산금지 여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북악산에 갈 때는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는 사실도요.
대부분의 성곽길은 탐방로가 거의 한 길로 정해져 있지만, 외성길과 내성길이라는 표현으로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구간도 있습니다. 외성길은 성곽 바깥으로 난 길을, 내성길은 성곽 안쪽으로 난 길을 말하는데요, 성곽 안쪽에서 그 바깥의 풍경을 내다보는 것도 좋지만 저의 경우 높다란 성곽 자체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외성길이 보다 매력적이었습니다.
위 사진은 동대문에서 낙산을 올라가는 초입에 있는 표지판인데요, 이 구간은 외성길보다는 내성길로 가는 것이 더 좋아 보입니다. 멋없는 축대를 사이에 두고 성곽이 외성길과는 약간 떨어져 있어 성곽을 감상하기가 그다지 편리하지 않고, 조금 올라가다 보면 벽화마을로 유명한 이화마을이 성곽 안쪽에 자리 잡고 있어 이 마을을 구경하기 위해서도 내성길이 보다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낙산 중턱에 있는 이화마을부터 정상부에 있는 낙산공원까지도 마찬가지로 내성길을 따라 그대로 올라간 후, 아래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낙산공원의 암문을 통해 외성길로 빠져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아래 사진과 같이 외성길을 따라 낙산 구간의 하이라이트를 만날 수 있습니다.
또 인왕산에서 내성길을 따라 강북삼성병원 방향으로 내려오다 보면 중간에 차도, 즉 인왕산 자락길을 만나게 되는데요, 여기서도 외성길에 접어들 수 있습니다. 즉, 이 차도에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아래 사진과 같이 밑으로 내려갈 수 있는 나무계단을 볼 수 있고, 이 계단으로 내려가면 외성길을 따라 성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남산 구간에서도 멋진 외성길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남산타워가 있는 정상에서 국립극장 방향으로 조금 내려오면 넓은 버스 정류장이 있는데요, 여기 있는 세븐일레븐 편의점을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왼쪽으로 난 샛길로 가보시지요. 아래 사진이 역광에서 찍은 거라 잘 안 보이실 텐데, 오른쪽 건물이 세븐일레븐이 있는 건물이고 그 왼쪽 옆에 밑으로 내려가는 나무계단이 있습니다.
그러면 아래 사진과 같은 아름다운 외성길이 아름드리 소나무 숲과 함께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이 길에서는 주로 태조 시대에 처음 도성을 쌓았을 때의 성곽을 만날 수 있는데요, 아래 사진과 같은 '각자석'도 볼 수 있습니다. 성곽 아랫 부분에 하나씩 끼워져 있는데, 이 구간 공사 감독자의 실명이 적힌 돌입니다.
짧지만 조용하고 걷기 좋은 길이 끝나면 관광버스들이 관광객들을 실어나르는 차도가 다시 나오면서 일단 성곽길이 끊깁니다. 이때 주의하셔야 하는 게, 차도를 따라 그냥 내려 가시거나 아래 사진과 같이 저 멀리 성곽 끝에 보이는 철탑 쪽으로 가시면 안 되구요, 더 아래 사진과 같이 다시 남산타워를 바라보고 위쪽으로 100미터 정도 올라가셔야 합니다. 그러면 오른쪽에 다시 순성길이 기다리고 있을 거구요.
마냥 걷는 데만 집중하느라, 순성길 중간중간에 있는 볼거리를 놓치시면 안 됩니다. 몇 가지 볼거리를 말씀드리지요.
광희문에서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거쳐 동대문으로 가실 때, 반드시 디자인플라자 앞쪽이 아니라 뒷쪽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정확히 말하면 서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가시라는 얘기입니다. 서쪽으로 가면 동대문만 바라보고 가다 자칫 이간수문을 못 보고 지나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간수문은 수십년 동안 동대문운동장 밑에 묻혀 있다가 동대문운동장이 철거되면서 비로소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청계천 지류가 도성 성곽 밑을 통과하는 문입니다. 이간수문은 아치가 두 개 뿐이지만, 청계천 본류가 성곽을 통과하는 문은 아치가 다섯 개, 즉 오간수문이라고 하지요.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실제 보시면 훨씬 더 웅장하고 우직스런 매력이 있습니다. 저는 이간수문을 처음 보자마자 탄성이 절로 나왔었는데요, 마치 영화 '퍼시픽 림'에 나오는, 단순무식 돌쇠처럼 생겨서 오히려 매력적인 로봇 '체르노 알파'를 보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혜화문을 내려오자마자 현재 명칭은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인 옛 서울시장 공관을 방문할 수 있습니다. 일제시대에 지어진 유서깊은 2층 단독주택이고, 한양도성 순성에 대한 역사도 잠시 배울 수 있는 공간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건물이 도성 성곽을 축대 겸 담으로 삼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곽 살짝 안쪽에 위치해 있는 셈이지요.
아래 사진은 혜화문에서 내려오자마자 볼 수 있는 모습인데요, 이 축대 위에 옛 서울시장 공관이 얹어져 있습니다. 이 공관을 방문하려면 왼쪽으로 가시면 되고, 방문을 마치고 다시 북악산 방향으로 길을 가시려면 이곳으로 되돌아와 사진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시면 됩니다.
또 인왕산에서 남대문 방향으로 내려오면, 아래 사진과 같이 홍난파 선생이 살던 집도 방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주말엔 이곳도 쉬네요. 밖에서만 봐도 이쁩니다.
이렇게 긴 도성을 한 바퀴 돌려면 도중에 식사도 한번쯤 하셔야겠죠. 가급적 시간 절약, 다리품 절약을 위해 순성길에서 가까운 곳이 좋겠구요.
제가 이용해 본 곳은, 창의문 바로 밑에 위치한 '자하손만두'(원래 유명한 곳이기도 했지만 미슐랭 가이드 빕구르망 편 선정으로 다시금 유명세를 떨쳤죠), 광희문 근처에 위치한 '장충동 평양면옥'(유명한 평양냉면 계열 중 장충동 계열을 대표하는 곳이죠)입니다.
마지막으로, 제 결론은 "한양도성을 하루에 전부 다 도는 것은 무리이다"입니다.
몸도 많이 힘들지만, 마음도 많이 바쁜 일정입니다. 북악산, 인왕산, 남산 구간은 그냥 정상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등산과 똑같기 때문에 평소 등산을 안 하시는 분들에겐 힘만 드는 일정일 수 있습니다.
등산이 그다지 썩 내키지 않는 분들을 위해 제가 적당한 코스를 추천해드릴까 합니다.
바로 반얀트리 호텔부터 시작해서 광희문과 동대문을 거쳐 낙산에 올랐다 혜화문을 지나 옛 서울시장 공관에서 마무리하는 코스입니다. 이 코스는 내리막이 많아 그다지 힘들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모양의 성곽이 남아있고 멀리 보이는 장대한 북한산 봉우리들과 조용한 주택가 풍경을 계속 볼 수 있는 명품 구간입니다. 한 마디로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저도 등산이라면 딱 질색을 하는 가족들과 조만간 꼭 다시 가볼까 합니다.
반얀트리 호텔이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엔 좀 불편하니, 조금 더 욕심을 내서 남산을 케이블카나 버스를 타고 올라간 다음 성곽길을 따라 걸어내려와 반얀트리 호텔을 만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겠습니다.
[오른쪽 파란색 선으로 표시한 길이 제 추천 코스입니다] |
모쪼록 모두들 헛걸음하지 않고 즐거운 순성놀이 되시기 바랍니다.
2018년 10월 9일 화요일
가짜 뉴스, fake news는 프랑스어로 뭐라고 부를까요?
언젠가부터 '가짜 뉴스'라는 말을 흔히 쓰고 있습니다. 'fake news'를 번역한 말인데요,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가짜 뉴스가 말썽을 일으키는 일이 많고, 하루가 멀다 하고 이에 대한 언론보도를 접할 수 있습니다.
2018년 10월 4일자 르몽드지의 기사 "« Fake news » se dira « infox » en français(« Fake news »는 프랑스어로 « infox »로 부르게 될 것이다)"를 한 번 보겠습니다.
이 기사에 의하면 원래 프랑스에서도 그대로 'fake news'로 부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 'La commission d’enrichissement de la langue française', 직역하면 '프랑스 어휘 풍부화 위원회'? 적절한 번역말이 바로 떠오르진 않네요. 아무튼 이 위원회에서 이제부터는 'fake news'를 'information fallacieuse'(허위 정보 또는 거짓 정보)로 부르거나 아니면 아예 신조어인 'infox'로 부를 것을 모든 행정기관에 제안하였다고 합니다.
신조어 'infox'는 '정보'를 뜻하는 'information'과 '기만'을 뜻하는 'intoxication'을 합성한 말이구요.
'가짜 뉴스'라는 우리 용어와 관련해서, 나무위키 글을 찾아보니 '가짜 뉴스' 보다는 '사기성 뉴스'나 '기만성 뉴스'로 불러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 모양입니다.
이상 한글날 기념 포스팅이었습니다.
Read More
프랑스 언론보도들을 보면 이런 현상은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프랑스에서는 'fake news'를 뭐라고 부를까요?
이 기사에 의하면 원래 프랑스에서도 그대로 'fake news'로 부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 'La commission d’enrichissement de la langue française', 직역하면 '프랑스 어휘 풍부화 위원회'? 적절한 번역말이 바로 떠오르진 않네요. 아무튼 이 위원회에서 이제부터는 'fake news'를 'information fallacieuse'(허위 정보 또는 거짓 정보)로 부르거나 아니면 아예 신조어인 'infox'로 부를 것을 모든 행정기관에 제안하였다고 합니다.
신조어 'infox'는 '정보'를 뜻하는 'information'과 '기만'을 뜻하는 'intoxication'을 합성한 말이구요.
'가짜 뉴스'라는 우리 용어와 관련해서, 나무위키 글을 찾아보니 '가짜 뉴스' 보다는 '사기성 뉴스'나 '기만성 뉴스'로 불러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 모양입니다.
이상 한글날 기념 포스팅이었습니다.
2018년 9월 26일 수요일
프랑스의 사법관 선발 제도
2018년 9월 20일자 프랑스 국립사법관학교(ENM) 홈페이지의 뉴스 "보충선발 : 46명의 사법관이 임용되다(CONCOURS COMPLÉMENTAIRE : 46 NOUVEAUX MAGISTRATS ONT PRIS LEURS FONCTIONS)".
이 뉴스는 이런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2016년 9월 3일자로 선발되었던 사법관후보 359명이 사법관으로 임용된 데 이어, 46명의 사법관이 추가로 9월 17일자로 임용되었는데, 이들은 2017년 있었던 보충선발 제도에 따라 사법관 후보로 선발되었다. 이 46명 중 23명은 판사로, 22명은 지방검찰청 검사보로, 1명은 고등검찰청 검사보로 임용되었다."
'사법관'은 제 블로그 이름이기도 한 "magistrat"를 번역한 용어인데, 프랑스에서 판사와 검사를 한데 일컫는 말입니다. 그리고 'concours complémentaire'는 직역해서 일단 '보충선발'로 불러보겠습니다. 이 보충선발 제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바로 다음 내용에 이어집니다.
"7년 이상 법조 직무에 종사한 사람, 즉 법원서기, 변호사, 공무원 등이 7개월 간의 집중연수(1개월은 국립사법관학교 연수, 4개월은 법원 연수, 2개월은 희망직역에서의 연수)를 이수하면 사법관으로 임용된다."
계속하여, 프랑스에서 사법관이 되는 경로를 간단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법관이 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 :
- 사법관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하거나, ‘사법관의 지위에 관한 위임법률(Ordonnance n°58-1270 du 22 décembre 1958, Ordonnance portant loi organique relative au statut de la magistrature)' 제18-1조의 자격요건에 따라 선발되어 사법연수생(auditeur de justice)이 된 후, 31개월 간의 연수과정을 이수한다.
- 보충선발 제도에 따라 선발된 경우 7개월 간의 연수를 이수한다.
- '사법관의 지위에 관한 위임법률' 제22조 또는 제23조의 자격요건에 따라 선발된 후, 직접임용 후보의 자격으로 1년 간의 연수를 이수한다."
둘째 단락에 나오는 방법이 앞의 뉴스에 나온 사례를 말하는데요, 그 뉴스에 링크되어 있는 같은 홈페이지의 "최소 7년 이후의 직업(Professionnels depuis au moins 7 ans)" 글, 그리고 2017년 1월 25일자 프랑스 법무부 홈페이지의 "사법관 무시험 전형(Le recrutement hors concours des magistrats)" 글도 함께 살펴보면서, 프랑스의 사법관 선발 방법을 간략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앞의 뉴스에 나온 내용처럼 사법관이 되는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방법은 입학시험을 거치거나 일정한 자격요건에 따라 사법관학교의 사법연수생 신분을 얻은 다음 사법관학교의 연수를 이수하는 것이고, 둘째와 셋째 방법은 각각 별도의 요건에 따라 선발되어 사법관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채 소정의 연수를 이수하여 사법관이 되는 것입니다. 즉, 가장 원칙적이고 비중이 높은 첫째 방법에 대비하여, 둘째와 셋째 방법을 '측면선발(recrutements latérales)'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 방법의 경우, 사법관학교의 입학시험은 또 세 가지로 나눠집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제1시험(concours externe), 4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40세 이하의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제2시험(concours interne), 8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40세 이상의 민간 분야 직장인, 지역 선출직 정치인, 비직업적 법조경력자를 대상으로 하는 제3시험으로 나누어지는데, 제1시험 입학생이 대다수입니다(사법관의 지위에 관한 위임법률 제17조).
그리고 입학시험 없이 일정한 자격요건에 따라 선발되어 사법관학교에 입학하는 경우(nomination directe en qualité d'auditeur de justice à ENM)는, 사법, 경제, 인문, 사회 분야에서 직업적으로 법조 직무를 수행한 31세부터 40세까지의 사람으로서 법학박사 학위나 그 이상의 학위를 보유하는 등의 자격요건을 갖춘 경우에 인정됩니다(사법관의 지위에 관한 위임법률 제18-1, 18-2조).
둘째 보충선발 방법(concours complémentaire)의 경우, 사법, 행정, 경제, 사회 분야에서 법조 직무를 7년 이상(2급 사법관으로 임용되는 경우. 연령은 35세 이상) 또는 15년 이상(1급 사법관으로 임용되는 경우. 연령은 50세 이상) 수행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합니다(사법관의 지위에 관한 위임법률 제21-1조).
셋째 법조인으로의 직접임용 방법(intégration directe dans le corps judiciaire)은, 7년 이상(2급 사법관으로 임용되는 경우) 또는 15년 이상(1급 사법관으로 임용되는 경우) 직업적으로 법조 직무를 수행한 사람이나 법원서기 간부 또는 법무부 간부 등을 대상으로 합니다(사법관의 지위에 관한 위임법률 제22, 23조).
변호사 자격자에게만 판사, 검사로의 임용 문호가 개방되어 있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이와 같이 프랑스는 한층 다양한 문호를 마련해놓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다양한 문호 중 우리나라 사람이 프랑스 사법관이 되기 위해 도전해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아쉽게도, 사법관의 지위에 관한 위임법률 제16조 제2호는 사법관이 될 수 있는 자격 중 하나로 프랑스 국적이 있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편, 앞의 뉴스에서는 보충선발 제도에 따라 선발된 46명의 사법관들이 23명은 판사(juge), 22명은 지방검찰청 검사보(substitut du procureur), 1명은 고등검찰청 검사보(substitut placé. 이는 substitut placé auprès du procureur général의 준말)로 각각 임용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판사는 뭔지 알겠는데, 검사보는 무엇일까요.
제가 다른 글에서도 몇 번 소개해드린 내용이지만, 프랑스의 검찰은 개개의 판사가 독자적으로 재판 관련 권한을 행사하는 법원과는 조직운영 원리가 좀 다르고, 검사와 판사의 지위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즉, 1심을 관할하는 각 지방검찰청의 수장을 Procureur de la République(직역하면 ‘공화국 검사’로, 우리의 '검사장'에 해당)라고 하고, 그 밑으로는 우리로 치면 부장검사급인 Vice-Procureur(직역하면 ‘부검사’)와 평검사급인 Substitut(직역하면 ‘대리인’)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형사소송법상 각 검찰청별로 이 1명씩의 ‘공화국 검사’가 검찰권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고, 다만 위계조직 구조에 의해 그의 지시와 통제에 따라 Vice-Procureur와 Substitut가 대리인으로서 우리의 개개 검사와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 구조입니다. 검찰권은 각 공화국 검사가 행사할 수 있고 그의 권한을 위임받아 Vice-Procureur와 Substitut가 대리하여 행사하게 되므로, 대리행사자인 이들이 상급자의 지시와 통제에 따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고등검찰청의 수장은 ‘Procureur Général’(직역하면 ‘검사장’으로, 우리의 '고등검사장'에 해당)이라고 하는데, 역시 위계조직상 우리로 치면 고등검찰청 부장검사급인 ‘Avocat Général’과 고등검찰청 검사급인 ‘Substitut Général’이 그 대리인으로서 검찰권을 행사하고, 그 관할 내 각 지방검찰청의 공화국 검사들은 고등검찰청 검사장의 지시와 통제에 따르게 됩니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 판사로 임용되는 사법관은 곧바로 판사 자격으로 임용되지만, 검사로 임용되는 사법관은 곧바로 검사 자격(즉 '검사장')으로 임용되는 것이 아니라 초급 검사에 해당하는 검사장이나 고등검사장의 대리인(Substitut)으로 임용되는 것이고, 저는 이를 '검사보'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
사법관의 지위에 관한 위임법률의 해당 조문 원문을, 나중의 공부를 위해 여기에 옮겨봅니다.
Read More
이 뉴스는 이런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2016년 9월 3일자로 선발되었던 사법관후보 359명이 사법관으로 임용된 데 이어, 46명의 사법관이 추가로 9월 17일자로 임용되었는데, 이들은 2017년 있었던 보충선발 제도에 따라 사법관 후보로 선발되었다. 이 46명 중 23명은 판사로, 22명은 지방검찰청 검사보로, 1명은 고등검찰청 검사보로 임용되었다."
'사법관'은 제 블로그 이름이기도 한 "magistrat"를 번역한 용어인데, 프랑스에서 판사와 검사를 한데 일컫는 말입니다. 그리고 'concours complémentaire'는 직역해서 일단 '보충선발'로 불러보겠습니다. 이 보충선발 제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바로 다음 내용에 이어집니다.
"7년 이상 법조 직무에 종사한 사람, 즉 법원서기, 변호사, 공무원 등이 7개월 간의 집중연수(1개월은 국립사법관학교 연수, 4개월은 법원 연수, 2개월은 희망직역에서의 연수)를 이수하면 사법관으로 임용된다."
계속하여, 프랑스에서 사법관이 되는 경로를 간단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법관이 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 :
- 사법관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하거나, ‘사법관의 지위에 관한 위임법률(Ordonnance n°58-1270 du 22 décembre 1958, Ordonnance portant loi organique relative au statut de la magistrature)' 제18-1조의 자격요건에 따라 선발되어 사법연수생(auditeur de justice)이 된 후, 31개월 간의 연수과정을 이수한다.
- 보충선발 제도에 따라 선발된 경우 7개월 간의 연수를 이수한다.
- '사법관의 지위에 관한 위임법률' 제22조 또는 제23조의 자격요건에 따라 선발된 후, 직접임용 후보의 자격으로 1년 간의 연수를 이수한다."
둘째 단락에 나오는 방법이 앞의 뉴스에 나온 사례를 말하는데요, 그 뉴스에 링크되어 있는 같은 홈페이지의 "최소 7년 이후의 직업(Professionnels depuis au moins 7 ans)" 글, 그리고 2017년 1월 25일자 프랑스 법무부 홈페이지의 "사법관 무시험 전형(Le recrutement hors concours des magistrats)" 글도 함께 살펴보면서, 프랑스의 사법관 선발 방법을 간략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앞의 뉴스에 나온 내용처럼 사법관이 되는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방법은 입학시험을 거치거나 일정한 자격요건에 따라 사법관학교의 사법연수생 신분을 얻은 다음 사법관학교의 연수를 이수하는 것이고, 둘째와 셋째 방법은 각각 별도의 요건에 따라 선발되어 사법관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채 소정의 연수를 이수하여 사법관이 되는 것입니다. 즉, 가장 원칙적이고 비중이 높은 첫째 방법에 대비하여, 둘째와 셋째 방법을 '측면선발(recrutements latérales)'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 방법의 경우, 사법관학교의 입학시험은 또 세 가지로 나눠집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제1시험(concours externe), 4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40세 이하의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제2시험(concours interne), 8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40세 이상의 민간 분야 직장인, 지역 선출직 정치인, 비직업적 법조경력자를 대상으로 하는 제3시험으로 나누어지는데, 제1시험 입학생이 대다수입니다(사법관의 지위에 관한 위임법률 제17조).
그리고 입학시험 없이 일정한 자격요건에 따라 선발되어 사법관학교에 입학하는 경우(nomination directe en qualité d'auditeur de justice à ENM)는, 사법, 경제, 인문, 사회 분야에서 직업적으로 법조 직무를 수행한 31세부터 40세까지의 사람으로서 법학박사 학위나 그 이상의 학위를 보유하는 등의 자격요건을 갖춘 경우에 인정됩니다(사법관의 지위에 관한 위임법률 제18-1, 18-2조).
둘째 보충선발 방법(concours complémentaire)의 경우, 사법, 행정, 경제, 사회 분야에서 법조 직무를 7년 이상(2급 사법관으로 임용되는 경우. 연령은 35세 이상) 또는 15년 이상(1급 사법관으로 임용되는 경우. 연령은 50세 이상) 수행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합니다(사법관의 지위에 관한 위임법률 제21-1조).
셋째 법조인으로의 직접임용 방법(intégration directe dans le corps judiciaire)은, 7년 이상(2급 사법관으로 임용되는 경우) 또는 15년 이상(1급 사법관으로 임용되는 경우) 직업적으로 법조 직무를 수행한 사람이나 법원서기 간부 또는 법무부 간부 등을 대상으로 합니다(사법관의 지위에 관한 위임법률 제22, 23조).
변호사 자격자에게만 판사, 검사로의 임용 문호가 개방되어 있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이와 같이 프랑스는 한층 다양한 문호를 마련해놓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다양한 문호 중 우리나라 사람이 프랑스 사법관이 되기 위해 도전해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아쉽게도, 사법관의 지위에 관한 위임법률 제16조 제2호는 사법관이 될 수 있는 자격 중 하나로 프랑스 국적이 있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편, 앞의 뉴스에서는 보충선발 제도에 따라 선발된 46명의 사법관들이 23명은 판사(juge), 22명은 지방검찰청 검사보(substitut du procureur), 1명은 고등검찰청 검사보(substitut placé. 이는 substitut placé auprès du procureur général의 준말)로 각각 임용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판사는 뭔지 알겠는데, 검사보는 무엇일까요.
제가 다른 글에서도 몇 번 소개해드린 내용이지만, 프랑스의 검찰은 개개의 판사가 독자적으로 재판 관련 권한을 행사하는 법원과는 조직운영 원리가 좀 다르고, 검사와 판사의 지위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즉, 1심을 관할하는 각 지방검찰청의 수장을 Procureur de la République(직역하면 ‘공화국 검사’로, 우리의 '검사장'에 해당)라고 하고, 그 밑으로는 우리로 치면 부장검사급인 Vice-Procureur(직역하면 ‘부검사’)와 평검사급인 Substitut(직역하면 ‘대리인’)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형사소송법상 각 검찰청별로 이 1명씩의 ‘공화국 검사’가 검찰권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고, 다만 위계조직 구조에 의해 그의 지시와 통제에 따라 Vice-Procureur와 Substitut가 대리인으로서 우리의 개개 검사와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 구조입니다. 검찰권은 각 공화국 검사가 행사할 수 있고 그의 권한을 위임받아 Vice-Procureur와 Substitut가 대리하여 행사하게 되므로, 대리행사자인 이들이 상급자의 지시와 통제에 따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고등검찰청의 수장은 ‘Procureur Général’(직역하면 ‘검사장’으로, 우리의 '고등검사장'에 해당)이라고 하는데, 역시 위계조직상 우리로 치면 고등검찰청 부장검사급인 ‘Avocat Général’과 고등검찰청 검사급인 ‘Substitut Général’이 그 대리인으로서 검찰권을 행사하고, 그 관할 내 각 지방검찰청의 공화국 검사들은 고등검찰청 검사장의 지시와 통제에 따르게 됩니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 판사로 임용되는 사법관은 곧바로 판사 자격으로 임용되지만, 검사로 임용되는 사법관은 곧바로 검사 자격(즉 '검사장')으로 임용되는 것이 아니라 초급 검사에 해당하는 검사장이나 고등검사장의 대리인(Substitut)으로 임용되는 것이고, 저는 이를 '검사보'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
사법관의 지위에 관한 위임법률의 해당 조문 원문을, 나중의 공부를 위해 여기에 옮겨봅니다.
Article 17 En savoir plus sur cet article...
- Modifié par LOI n° 2016-1090 du 8 août 2016 - art. 4
Trois concours sont ouverts pour le recrutement d'auditeurs de justice :
1° Le premier, aux candidats remplissant la condition prévue au 1° de l'article 16 ;
2° Le deuxième, de même niveau, aux fonctionnaires régis par les titres Ier, II, III et IV du statut général des fonctionnaires de l'Etat et des collectivités territoriales, aux militaires et aux autres agents de l'Etat, des collectivités territoriales et de leurs établissements publics, en activité, en détachement, en congé parental ou accomplissant leur service national, justifiant, au 1er janvier de l'année du concours, de quatre ans de service en ces qualités ;
3° Le troisième, de même niveau, aux personnes justifiant, durant huit années au total, d'une ou plusieurs activités professionnelles, d'un ou plusieurs mandats de membre d'une assemblée élue d'une collectivité territoriale ou de fonctions juridictionnelles à titre non professionnel. La durée de ces activités, mandats ou fonctions ne peut être prise en compte que si les intéressés n'avaient pas, lorsqu'ils les exerçaient, la qualité de magistrat, de fonctionnaire, de militaire ou d'agent public.
Un cycle de préparation est ouvert aux personnes remplissant les conditions définies au 3° du présent article et ayant subi avec succès une épreuve de sélection. Les candidats ayant suivi ce cycle et échoué au troisième concours sont admis à se présenter, dans un délai de deux ans à compter de la fin du cycle, aux concours d'entrée dans les corps de catégorie A de la fonction publique de l'Etat, aux concours sur épreuves d'entrée dans les cadres d'emploi de catégorie A de la fonction publique territoriale ainsi qu'aux concours sur épreuves d'entrée dans les corps de la fonction publique hospitalière, dans les conditions prévues par les dispositions législatives relatives à la création d'un troisième concours d'entrée à l'Ecole nationale d'administration.
Un décret en Conseil d'Etat détermine les conditions d'application du présent article.
Article 18-1 En savoir plus sur cet article...
- Modifié par LOI n° 2016-1090 du 8 août 2016 - art. 5
Peuvent être nommées directement auditeurs de justice les personnes que quatre années d'activité dans les domaines juridique, économique ou des sciences humaines et sociales qualifient pour l'exercice des fonctions judiciaires :
1° Si elles sont titulaires d'un diplôme sanctionnant une formation d'une durée au moins égale à quatre années d'études après le baccalauréat dans un domaine juridique ou justifiant d'une qualification reconnue au moins équivalente dans des conditions fixées par décret en Conseil d'Etat ;
2° Et si elles remplissent les autres conditions fixées aux 2° à 5° de l'article 16.
1° Si elles sont titulaires d'un diplôme sanctionnant une formation d'une durée au moins égale à quatre années d'études après le baccalauréat dans un domaine juridique ou justifiant d'une qualification reconnue au moins équivalente dans des conditions fixées par décret en Conseil d'Etat ;
2° Et si elles remplissent les autres conditions fixées aux 2° à 5° de l'article 16.
Peuvent également être nommés dans les mêmes conditions :
a) Les docteurs en droit qui possèdent, outre les diplômes requis pour le doctorat, un autre diplôme d'études supérieures ;
b) Les docteurs en droit justifiant de trois années au moins d'exercice professionnel en qualité de juriste assistant ;
c) Les personnes titulaires d'un diplôme sanctionnant une formation d'une durée au moins égale à cinq années d'études après le baccalauréat dans un domaine juridique ou justifiant d'une qualification reconnue au moins équivalente dans des conditions fixées par décret en Conseil d'Etat qui justifient de trois années au moins d'exercice professionnel en qualité de juriste assistant ;
d) Les personnes ayant exercé des fonctions d'enseignement ou de recherche en droit dans un établissement public d'enseignement supérieur pendant trois ans après l'obtention d'un diplôme sanctionnant une formation d'une durée au moins égale à cinq années d'études après le baccalauréat dans un domaine juridique ou justifiant d'une qualification reconnue au moins équivalente dans des conditions fixées par décret en Conseil d'Etat.
Le temps de scolarité des auditeurs de justice recrutés au titre du b ne peut être supérieur à la moitié de la durée normale de la scolarité.
a) Les docteurs en droit qui possèdent, outre les diplômes requis pour le doctorat, un autre diplôme d'études supérieures ;
b) Les docteurs en droit justifiant de trois années au moins d'exercice professionnel en qualité de juriste assistant ;
c) Les personnes titulaires d'un diplôme sanctionnant une formation d'une durée au moins égale à cinq années d'études après le baccalauréat dans un domaine juridique ou justifiant d'une qualification reconnue au moins équivalente dans des conditions fixées par décret en Conseil d'Etat qui justifient de trois années au moins d'exercice professionnel en qualité de juriste assistant ;
d) Les personnes ayant exercé des fonctions d'enseignement ou de recherche en droit dans un établissement public d'enseignement supérieur pendant trois ans après l'obtention d'un diplôme sanctionnant une formation d'une durée au moins égale à cinq années d'études après le baccalauréat dans un domaine juridique ou justifiant d'une qualification reconnue au moins équivalente dans des conditions fixées par décret en Conseil d'Etat.
Le temps de scolarité des auditeurs de justice recrutés au titre du b ne peut être supérieur à la moitié de la durée normale de la scolarité.
Le nombre des auditeurs nommés au titre du présent article ne peut dépasser le tiers du nombre des places offertes aux concours prévus à l'article 17 pour le recrutement des auditeurs de justice de la promotion à laquelle ils seront intégrés.
Les candidats visés au présent article sont nommés par arrêté du garde des sceaux, ministre de la justice, sur avis conforme de la commission prévue à l'article 34.
Article 21-1 En savoir plus sur cet article...
- Modifié par LOI n° 2016-1090 du 8 août 2016 - art. 45
Deux concours sont ouverts pour le recrutement de magistrats du second et du premier grade de la hiérarchie judiciaire.
Les candidats doivent remplir les conditions prévues à l'article 16.
Ils doivent en outre :
1° Pour les candidats aux fonctions du second grade de la hiérarchie judiciaire, être âgés de trente-cinq ans au moins au 1er janvier de l'année d'ouverture du concours et justifier d'au moins sept ans d'activité professionnelle dans le domaine juridique, administratif, économique ou social, les qualifiant particulièrement pour exercer des fonctions judiciaires ;
2° Pour les candidats aux fonctions du premier grade de la hiérarchie judiciaire, être âgés de cinquante ans au moins au 1er janvier de l'année d'ouverture du concours et justifier d'au moins quinze ans d'activité professionnelle dans le domaine juridique, administratif, économique ou social, les qualifiant particulièrement pour exercer des fonctions judiciaires.
Les candidats admis suivent une formation probatoire organisée par l'Ecole nationale de la magistrature comportant un stage en juridiction effectué selon les modalités prévues à l'article 19. Ils sont rémunérés pendant cette formation.
Préalablement à toute activité, ils prêtent serment devant la cour d'appel en ces termes : "Je jure de conserver le secret des actes du parquet, des juridictions d'instruction et de jugement dont j'aurai eu connaissance au cours de mon stage." Ils ne peuvent en aucun cas être relevés de ce serment.
Le directeur de l'Ecole nationale de la magistrature établit, sous la forme d'un rapport, le bilan de la formation probatoire de chaque candidat et adresse celui-ci au jury prévu à l'article 21.
Après un entretien avec le candidat, le jury se prononce sur son aptitude à exercer les fonctions judiciaires.
Les candidats déclarés aptes à exercer les fonctions judiciaires suivent une formation complémentaire jusqu'à leur nomination, dans les formes prévues à l'article 28, aux emplois pour lesquels ils ont été recrutés. Les dispositions de l'article 27-1 ne sont pas applicables.
Les années d'activité professionnelle accomplies par les magistrats recrutés au titre du présent article sont prises en compte pour leur classement indiciaire dans leur grade et pour leur avancement.
Les dispositions de l'article 25-4 sont applicables aux magistrats recrutés au titre du présent article.
Le nombre total des postes offerts au concours pour une année déterminée ne peut excéder :
1° Pour les concours de recrutement au second grade de la hiérarchie judiciaire, le cinquième du nombre total des premières nominations intervenues au second grade au cours de l'année civile précédente, cette proportion pouvant toutefois être augmentée à concurrence de la part non utilisée au cours de la même année civile des possibilités de nomination déterminées par l'article 25 ;
2° Pour les concours de recrutement au premier grade de la hiérarchie judiciaire, le dixième du nombre total de nominations en avancement au premier grade prononcées au cours de l'année précédente.
Un décret en Conseil d'Etat détermine les conditions d'application du présent article.
Article 22 En savoir plus sur cet article...
- Modifié par LOI n° 2016-1090 du 8 août 2016 - art. 46
Peuvent être nommés directement aux fonctions du second grade de la hiérarchie judiciaire, à condition d'être âgés de trente-cinq ans au moins :
1° Les personnes remplissant les conditions prévues à l'article 16 et justifiant de sept années au moins d'exercice professionnel les qualifiant particulièrement pour exercer des fonctions judiciaires ;
2° Les directeurs des services de greffe judiciaires justifiant de sept années de services effectifs dans leur corps ;
3° Les fonctionnaires de catégorie A du ministère de la justice ne remplissant pas les conditions prévues au 1° de l'article 16 et justifiant de sept années de services effectifs au moins en cette qualité.
Article 23 En savoir plus sur cet article...
- Modifié par LOI n° 2016-1090 du 8 août 2016 - art. 46
Peuvent être nommés directement aux fonctions du premier grade de la hiérarchie judiciaire :
1° Les personnes remplissant les conditions prévues à l'article 16 et justifiant de quinze années au moins d'exercice professionnel les qualifiant particulièrement pour exercer des fonctions judiciaires ;
2° Les directeurs des services de greffe judiciaires qui remplissent des conditions de grade et d'emploi définies par décret en Conseil d'Etat et que leur compétence et leur expérience qualifient particulièrement pour exercer des fonctions judiciaires visées au présent article.
피드 구독하기:
글
(
Atom
)
Search
Category
Tag
4월 이야기
(2)
가짜 뉴스
(1)
감독관
(1)
감찰관
(2)
감찰제도
(3)
강사
(1)
강의
(3)
강제수사
(2)
강제입원
(1)
개혁
(9)
건축
(4)
검사
(51)
검찰
(26)
검찰총장
(6)
검찰항고
(1)
경찰
(4)
고등사법위원회
(7)
골든아워
(1)
공감
(9)
공기계
(1)
공부
(4)
교도소
(2)
교육
(2)
구글
(10)
구글포토
(1)
구금대체형
(2)
구금시설
(1)
구치소
(1)
국가금융검찰
(4)
국가대테러검찰
(2)
국가사법재판소
(4)
국가정보기술감독위원회
(1)
국가정의재판소
(2)
국사
(1)
권리보호관
(1)
그리스
(1)
근무환경
(3)
금융전담 검찰
(3)
기생충
(1)
까페
(2)
나의아저씨
(1)
네덜란드
(1)
노란조끼
(1)
녹음
(1)
논고
(1)
대구
(1)
대륙법
(1)
대법원
(10)
대법원장
(2)
대테러
(3)
대통령
(2)
대학원
(6)
대화
(2)
데이식스
(1)
덴마크
(1)
도시
(1)
도피성
(1)
독립성
(17)
독서일기
(37)
독일
(1)
드라마
(1)
디지털
(8)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3)
디지털증거
(2)
라따뚜이
(1)
라트비아
(1)
레미제라블
(3)
루브르
(1)
룩셈부르크
(1)
리더
(1)
리투아니아
(1)
마이클 코넬리
(6)
마인드맵
(1)
마츠 타카코
(1)
마크롱
(2)
맥
(3)
메타버스
(1)
명예훼손죄
(3)
모노프리
(1)
모욕죄
(2)
몰타
(1)
문화
(1)
미국
(12)
미러링
(2)
미모자
(1)
미술
(1)
미키 할러
(6)
바울
(1)
배심재판
(1)
배심제
(7)
범죄
(4)
법률구조
(1)
법률용어
(2)
법무부
(19)
법무부장관
(11)
법원
(15)
법원서기
(1)
법정
(3)
법정소설
(6)
벨기에
(1)
변호사
(11)
변호사협회
(1)
보호유치
(4)
블로그
(5)
비상상고
(1)
비시정부
(2)
빵
(3)
사교
(1)
사기죄
(2)
사법감찰
(1)
사법개혁
(2)
사법관
(16)
사법정보
(2)
사법제도
(86)
사소
(1)
사용자 환경
(1)
사진
(1)
샌드위치
(1)
서기
(1)
서울
(5)
석방구금판사
(1)
성경
(2)
성희롱
(1)
센강
(1)
소년법원
(1)
소법원
(2)
소통
(7)
수사
(1)
수사지휘
(1)
수사판사
(4)
수용시설
(1)
수용시설 최고감독관
(1)
슈크르트
(1)
스웨덴
(1)
스트로스 칸
(1)
스티브잡스
(5)
스페인
(1)
슬로바키아
(1)
슬로베니아
(1)
시간
(1)
시스템
(1)
식도락
(14)
식전빵
(1)
신년사
(2)
신속기소절차
(1)
신원확인
(1)
심리학
(2)
아날로그
(2)
아웃라이어
(1)
아이디어
(9)
아이유
(1)
아이패드
(16)
아이폰
(24)
아일랜드
(1)
아카데미상
(1)
압수수색
(2)
애플
(8)
앱
(5)
야구
(2)
언락폰
(1)
언터처블
(1)
에스토니아
(1)
엘리제 궁
(1)
여행
(10)
역사
(11)
열정
(1)
영국
(2)
영미법
(1)
영상녹화물
(2)
영어
(1)
영화
(9)
예술
(1)
예심수사판사
(6)
예심판사
(3)
오스카상
(1)
오스트리아
(1)
올림픽
(1)
와이파이
(1)
와인
(1)
우트로 사건
(1)
웹사이트
(1)
위선떨지 말자
(1)
위헌
(1)
유럽사법재판소
(1)
유럽인권법원
(1)
유심
(1)
유튜브
(3)
음식
(1)
이국종
(1)
이준
(1)
이탈리아
(1)
인간관계론
(1)
인공지능
(1)
인사
(3)
인생
(1)
인왕재색도
(1)
일본
(1)
자치경찰
(1)
잡담
(40)
재판
(1)
재판의 독립
(1)
쟝-루이 나달
(1)
저작권
(1)
전문법칙
(3)
전원
(1)
전자소송
(4)
전자화
(5)
절차의 무효
(1)
정신병원
(2)
조서
(4)
조직범죄
(1)
중죄재판부
(2)
증거
(7)
증거법
(2)
지문
(1)
직권남용
(1)
직무교육
(1)
직무상 과오 책임
(1)
직장
(7)
직접주의
(1)
참고인
(1)
참고인 구인
(1)
참심제
(2)
체코
(1)
최고사법관회의
(7)
치료감호소
(1)
카페
(1)
캠핑장
(2)
케밥
(1)
크롬
(1)
크리스마스
(1)
키노트
(1)
키프로스
(1)
테러
(3)
통계
(1)
통신비밀
(1)
퇴사
(1)
트위터
(4)
파기원
(2)
파리
(21)
파리 지방검찰청
(1)
판결정보 공개
(3)
판례
(1)
판사
(7)
팟캐스트
(1)
페이스북
(2)
포르투갈
(1)
포토북
(2)
폴란드
(1)
프랑스
(26)
프랑스 국립사법관학교
(13)
프랑스 드라마
(1)
프랑스 사법제도
(131)
프랑스 생활
(36)
프랑스 언론
(3)
프랑스 영화
(3)
프랑스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
(9)
프랑스 장관
(1)
프랑스 총리
(1)
프랑스어
(4)
프레젠테이션
(1)
프리젠테이션
(1)
플뢰르 펠르랭
(2)
플리바기닝
(5)
피해자
(1)
핀란드
(1)
한식
(1)
한양도성
(1)
햄버거
(1)
헌법
(1)
헌법위원회
(3)
헝가리
(1)
형벌
(4)
형사소송
(37)
호텔
(1)
회식
(3)
AI
(1)
CEO
(1)
DELF
(3)
DNA
(1)
EU
(28)
gilets jaunes
(1)
greffier
(1)
IT
(56)
jeudigital
(1)
NFT
(1)
open data
(4)
RSS
(1)
transformation numérique
(1)
UI
(1)
Je-Hee. Powered by Blogger.
Blog Archive
-
2021
(15)
- 12월 2021 (2)
- 11월 2021 (1)
- 10월 2021 (2)
- 9월 2021 (3)
- 8월 2021 (1)
- 7월 2021 (2)
- 6월 2021 (1)
- 5월 2021 (1)
- 3월 2021 (2)
-
2019
(40)
- 12월 2019 (4)
- 11월 2019 (4)
- 10월 2019 (2)
- 9월 2019 (1)
- 8월 2019 (3)
- 7월 2019 (13)
- 4월 2019 (2)
- 3월 2019 (3)
- 2월 2019 (2)
- 1월 2019 (6)
-
2018
(36)
- 12월 2018 (7)
- 10월 2018 (4)
- 8월 2018 (2)
- 7월 2018 (1)
- 6월 2018 (3)
- 5월 2018 (1)
- 4월 2018 (6)
- 3월 2018 (6)
- 2월 2018 (1)
-
2017
(24)
- 12월 2017 (6)
- 11월 2017 (1)
- 9월 2017 (1)
- 8월 2017 (2)
- 7월 2017 (3)
- 6월 2017 (3)
- 5월 2017 (1)
- 3월 2017 (3)
- 2월 2017 (2)
- 1월 2017 (2)
-
2016
(33)
- 12월 2016 (6)
- 11월 2016 (1)
- 10월 2016 (5)
- 9월 2016 (1)
- 8월 2016 (1)
- 7월 2016 (2)
- 6월 2016 (3)
- 5월 2016 (6)
- 4월 2016 (2)
- 3월 2016 (3)
- 2월 2016 (3)
Popular Posts
-
얼마 전 어느 목사님이 설교 중에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별의별 직업인들이 다양하게 등장하는데, 그 중엔 검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도 있다고. 바로 사도 바울이 원래 검사였다는 겁니다. 바울이 검사라니,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말이라 의아했습...
-
5. 9. 어제 프랑스 법무부 사이트에 뜬 기사에 의하면 프랑스 법무부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금융전담 검찰을 창설하는 법안을 제안하였다고 합니다. 대형 금융범죄, 탈세, 수뢰범죄 등을 단속하기 위해 금융전담 검찰을 창설하고, 이는 파리지방검찰청에 배치...
-
언젠가부터 고급 레스토랑은 물론 동네에 있는 흔한 파스타 집에서도 '식전빵'이란 걸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에피타이저든 주요리든 뭔가가 나오기 전에 가장 먼저 발사믹을 친 올리브 오일과 함께 나오는 빵을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요...
-
2013년 5월 10일에 " 프랑스 금융전담 검찰 창설 "이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프랑스 법무부장관이 국무회의에서 전국의 대형 금융사건을 전담수사하는 '금융전담 검찰'을 창설하는 법안을 제안하였다는 내용인데요,...
© iMagistrat 2013 . Powered by Bootstrap , Blogger templates and RWD Testing To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