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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9일 일요일

책을 두 권 냈습니다. "2026년, 마지막 검찰청법 이야기", "검사의 시각으로 쉽게 풀어낸 형사증거법 강의"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7/19/2026 09:36:00 오후 라벨: 검사 , 검찰 , 검찰청법 , 사법제도 , 프랑스 사법제도 , 형사소송 , 형사증거법

 



올해 4월과 5월, 제 이름을 단 책을 두 권 냈습니다. 이 블로그는 비실명으로 운영하고 있어 이 책 얘기를 할까말까 망설였습니다. 그래도 이 블로그가 저의 개인 역사책인데 여기에 저의 중요한 역사를 기록해두지 않을 수 없네요. 뒤늦게 제 책을 소개합니다. 

출판사는 박영사입니다. 두 책의 머릿말 중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책 소개를 대신합니다.  


O "2026년, 마지막 검찰청법 이야기"

하필 곧 검찰청이 간판을 내리려는 2026년, 그 검찰청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시하려는 건 아니고, 미래의 역사가 될 지금을 일단 기록해 놓으려는 것입니다.

이제는 사라진 법을 해설하는 글이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가 지금 2026년도 검찰청법의 마지막 모습을 연구하거나 회고하려는 시도가 분명히 있으리라 기대하며 어찌어찌 글을 완성해 봤습니다.

나라마다 각각의 검찰 제도는 조금씩 다른 모양을 띠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다양성 속에서도 공통분모가, 보편적인 제도의 모델은 분명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게 검찰 제도의 취지이다, 이런 게 검찰의 역할이다, 이런 게 검사가 할 일이다, 하는 보편적인 컨센서스가 전 세계적으로 인정되고 있다는 것이죠.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에서는 이 제도가 자꾸만 그 보편적인 모습에서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 제도와의 공통분모도 이젠 얼마 안 남아 보입니다. 본래의 보편적인 모습에서 멀어져가는 대한민국에서의 이 제도가 곧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오기를 소망하면서, 이 책을 내놓습니다.

O "검사의 시각으로 쉽게 풀어낸 형사증거법 강의"

증거법은 형사소송법 교과서 안에서도 가장 난해하기로 유명한 파트여서 처음 공부하는 분들에게는 대단한 인내심을 요구하는데요, 원래 신임검사님들을 위해 모임을 만들고 강의를 하고 글을 쓴 것이니만큼, 이 책은 특히 새내기 법조인이나 예비 법조인분들, 그리고 기존 교과서에서 힘들게 증거법을 공부하고도 과연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건지 의문이 들었던 분들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검사들이 일을 어떤 식으로 하는지 궁금한 분들도 좋겠구요.

주류의 시각보다는 ‘검사의 시각’이라는 좀 색다른 관점에서 증거법을 풀어내는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물론 저의 소수설이 옳다는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에요. 소수설을 통해 판례가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왜 그러한 논리를 갖게 된 건지를 독자 분들이 보다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 책은 저의 첫 책 『2026년, 마지막 검찰청법 이야기』(2026년 박영사 刊)에 이은 ‘검찰에 대한 오해와 이해’ 시리즈의 제2탄 정도가 되겠습니다. 검찰이 잘났고 잘하기만 했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건 전혀 아니구요, 검찰에 대한 어지럽고 악의적인 선동구호 저 너머에, 우리 사회를 굴려나가는 한 톱니바퀴로서 이 제도와 시스템이 조용히 작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이 검찰청법 책과 관련해 법률신문과 인터뷰를 했었습니다.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법률신문 2026년 7월 8일자 "사라질 검찰에는 遺書, 태어날 공소청엔 사용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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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5일 수요일

왜 검사는 무죄판결에 항소하는가?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7/15/2026 08:03:00 오후 라벨: 검사 , 검찰 , 무죄 , 사법제도 , 설득 , 잡담 , 재판 , 항소
가까운 지인 사이의 대화를 듣게 됐습니다. 한 분은 화가 많이 난 사람, 다른 한 분은 그런 상대방 말 받아주며 위로해주는 사람.
사업체를 운영하시는 분이 일을 하시다 생긴 잘못으로 형사재판을 받다가 다행히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게 되었는데, 검사가 항소를 하는 바람에 2심 재판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무려 2년이 넘는 기간 판사와 검사가 여러 번 바뀌는 와중에 열 번 이상 법정에 나가느라 시달리신 재판이라는데요. 검사는 정작 법정에선 아무 주장도 제대로 못했으면서 왜 굳이 항소를 한 것이며, 그 때문에 또 법정에 나가야 하는 시간과 새로 들어갈 변호사비용 등 손해가 막심하다며 검사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하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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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공적 절차는 단판승부가 없습니다. 반드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후속절차가 마련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재판도 3심제, 삼세판이죠.
만약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으셨다면 억울한 마음에 당연히 항소를 하셨겠죠?
다행히 무죄판결을 받으셨으니, 반대로 상대방인 검사 입장에선 비슷한 이치로 아무래도 항소를 할 마음을 먹기가 쉽겠죠.

만약 누군가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다가 진범이 잡혀서 무죄가 난 사건이라면, 검사는 당연히 항소를 하지 않을 겁니다. 무죄가 100% 맞으니까요.
무죄가 100% 맞는 사건은 아니더라도 재판 중에 새로 밝혀진 사실들에 의해 검사 스스로 이거 영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드는 사건이라면, 무죄가 났어도 항소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내용을 좀 듣자 하니 이 사건은 그런 사건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잘못된 행위를 한 건 맞는데 고의(알고도 한 거냐 아니면 모르고 한 거냐)가 있냐 없냐가 문제되는 사건입니다.
잘못된 행위 자체야 외부로 보이는 거니까 목격자나 CCTV 영상 같은 객관적인 증거를 수집할 수 있고 쉽게 증명이 가능하지만, 고의라는 건 사람 마음속의 문제이니 이걸 증거라는 걸로 증명하는 건 많이 어렵습니다. 판검사들 입장에선 기껏해야 잘못된 행위 앞뒤에 있었던 이런저런 정황들만 놓고 이 사람이 이걸 알았을 거야 또는 몰랐을 거야 라고 추정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 이유로, 간혹 사람 속마음을 증명한답시고 휴대전화 압수하고 단톡방 탈탈 터는, 무리스런 일을 벌이기도 하는 거구요.

아마도 이 사건에서의 검사의 논리는 ‘이 잘못된 행위가 장기간에 걸쳐 여러 번 있었는데 그리 큰 규모도 아닌 업체의 대표가 그걸 전혀 모를 수 있었겠느냐? 분명 알았을 거야. 설령 완전 구체적으로까진 몰랐더라도 대략은 짐작하고 있었을 거야’ 라는 걸 테고, 이 대표를 대리하는 변호사의 논리는 ‘그 일은 이 업체의 전체 업무 중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거의 자동반복적인 업무라 대표가 거기까진 알 수 없었다. 그걸 해서 얻을 이익도 미미하니 그런 짓을 할 동기가 없다’ 라는 걸 겁니다.
둘 다 천양지차의 결론을 가져올 전혀 상반된 논리이지만, 이런 정반대의 논리가 가능한 사건, 즉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는 사건은 의외로 흔합니다. 외견상 정반대의 논리와 결론으로 보이지만, 사실 세상 일이란 게 정답이 없는 경우가 많고 진실이냐 아니냐는 겨우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건에서 중요한 건, 검사든 변호사든 판사를 얼마나 잘 설득해서 저 두 논리 중 나의 논리로 이끌어오느냐 입니다.
여기서 스킬의 차이, 경험의 차이, 성실성의 차이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는 거겠죠. 이런 게 바로 ‘설득’의 구성요소들입니다.
요즘 검찰의 주력부대는 1-2년차의 신참검사들입니다. 요즘 검찰이 그런 암담한 형편입니다. 만약 저 사건을 이런 1-2년차 신참검사가 담당했다면, 설득이란 일이 참… 글쎄요.
20년 넘는 경력자인 저라면, 잘 설득할 자신 있습니다. 유죄 확률이 확 올라갈 겁니다.
그런데도 혹시나 설득에 실패해 무죄가 났다면, 그러면 저라도 역시 항소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건은 설득이 중요한 거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유무죄가 100% 확실한 사건이 아니거든요. 그러니 설득 한 번 실패했다고 그냥 그걸로 끝이 아닌 거에요, 아쉽고 부족했던 부분 잘 보완해서 다시 더 잘 설득해봐야죠. 제가 일단 한 번 맡았던 일이고 열심히 했던 일인데, 어떻게든 잘 해보려는 그 정도의 성의와 노력은 있어야죠.

유무죄라는 게 법으로 명확하게 정해져 있어야지 겨우 설득 같은 걸로 결론이 왔다갔다 하는 게 말이 되느냐? 라는 의문이 드실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상하긴 하지만, 실상이 그런 걸 어쩌겠어요. 그래서 재판이란 건 함부로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고 심장 쫄깃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그렇게 된 것으로 보이니, 항소한 검사를 너무 미워하진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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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말을 차마 그분에게 드리진 못하고 입 안에만 담아두었습니다. 자칫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격이 될 수 있고, 사실 제가 무슨 말을 드린들 그게 귀에 들어오겠어요.
그래도 혹시나 나중에 그분이 저한테 의견을 구하신다면 이렇게 간단히 답하겠습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하셨을 텐데, 1심에서 좋은 결과 보셔서 다행입니다.
다만 너무 매몰찬 말로 들리시겠지만, 이 무죄판결은 원래 내 껀데 잠시 맡겨놓으셨다가 당연히 찾아가시는 그런 게 아닙니다. 똑같은 일을 놓고도 보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는 거고, 아마도 이 재판 시작할 때 감히 무죄를 장담할 순 없으셨을 테니까요. 다행히 유능한 변호사님이 열심히 노력하고 검사보다 판사를 훨씬 더 잘 설득해주신 덕분에 이런 결과물을 얻게 되신 겁니다.
이 사건의 성격상 검사가 항소하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로 보이구요, 남은 2심 재판도 잘 준비하고 대처하셔서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 사진은 서울 덕수궁 옆에 있는 옛 검찰종합청사입니다. 1973년부터 1995년까지, 서초동 법조타운이 들어서기 전까지 대검찰청, 서울고등검찰청, 서울지방검찰청이 이 한 건물에 옹기종기 모여있었습니다.
지금은 서울시청 서소문청사로 사용되고 있고, 13층 정동전망대는 창밖으로 궁궐뷰가 일품입니다.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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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3일 월요일

[성경] 세리 마태 이야기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7/13/2026 07:58:00 오후 라벨: 검사 , 검찰 , 성경 , 세리 마태 , 잡담
9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길을 가시다가 마태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마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마태가 일어나 예수를 따랐습니다.
10 예수께서 집에서 저녁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도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었습니다.
11 이것을 본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의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어째서 너희 선생님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어울려 먹느냐?”
12 이 말을 듣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원하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태복음 9:9-13, 우리말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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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마태복음에는 세리 마태가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마태는 바로 마태복음을 쓴 그 마태인데요, 마태복음 중간에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삽입해놓은 겁니다.
2026년 2월 22일 제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은 이 세리 마태에 관해 대략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설교하였습니다. 

세리는 유대인들로부터 정해진 것보다 많은 액수의 세금을 걷는 방법으로 돈을 갈취해 일부는 자신들이 챙기고 일부는 지배자인 로마에 바치는 악행을 저질러서, 동족들로부터 매국노, 반역자 취급을 받던 직군이었습니다. 성경에는 곳곳에서 '세리와 죄인들'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렇게 세리를 다른 죄인들 앞에 따로 구분해서 표시한 건 세리를 다른 죄인들보다 특히 더 악한 류의 죄인으로 본다는 의미입니다. 죄인 중의 죄인이고, 그로 인해 유대인 사회로부터 철저히 단절되고 소외된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중죄인임을 뻔히 알면서도, 괜히 가까이 했다간 사람들이 비난할 게 충분히 예상됨에도, 예수님은 오히려 "나를 따라라"고 하며 마태를 제자로 부릅니다. 이는 구원의 대상에서 죄인도 예외가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까지 말합니다. 마태는 세리 일을 하면서 꼼꼼한 기록 실력을 갖게 되었을 텐데, 결국 그 실력을 잘 활용해서 마태복음을 집필하는 위대한 사명을 수행합니다.    

저는 이 설교를 들으며 큰 감동을 느꼈습니다. 
세리는 요즘으로 치면 세무공무원으로서 예수님 시절에는 사람들을 상대로 가렴주구를 일삼는 탐관오리였다는 건데요,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렇게 손가락질 받는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을 수 있고 선한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이죠. 세상 사람들로부터 어떠한 평가를 받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절대자로부터 어떠한 평가를 받느냐인 거구요.
저도 지금 이 시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나는 왜 하필 이런 직장에 들어와 왜 항상 죄인 취급을 받는 건가 하고 늘 불만이었고 그 손가락질이 싫었고 그 손가락을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세리 마태 이야기가 감동이었습니다. 제가 지금 죄인으로 사는 것은, 어쩌면 세리 마태처럼 제가 선택을 받고 쓰임을 받기 위해서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제가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지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제게 걸림돌이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단지 저는 이런 제 삶을 감사해하며, 선택과 쓰임에 대한 소망을 갖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치는, 비단 저뿐만 아니라 이 땅의 죄인들, 악한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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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2일 일요일

[독서일기 ]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7/12/2026 10:26:00 오후 라벨: 검사 , 검찰 , 독서일기 , 사법제도 , 재판 , 프랑스 사법제도




몽테스키외(Montesquieu)의 본명은 Charles-Louis de Secondat 라고 하는데요, '삼권분립' 이론으로 유명한 "법의 정신(De l'esprit des lois)"을 썼습니다. 기억도 안 날 정도로 한참 전에 사놓고는 읽을까 말까만을 반복하던 책을 드디어 읽었습니다. 미루고 미루던 숙제를 간신히 끝낸 기분입니다.  

번역체 때문인지, 너무 오래된 책인 때문인지, 읽기가 쉽지만은 아닌 책이었지만, 역시 고전은 고전, 기억해두었다가 써먹고 싶은 대목들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언젠가 어디선가 써먹을 용도로 여기에 정리해 봅니다. 

제가 산 버전은, 홍신문화사에서 2009년쯤 나온 책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법률용어들은 분명 지금의 그것과 의미가 다른 의미를 갖고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감찰관' 같은 용어는 정확히 어떠한 역할의 직책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용어와는 구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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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면] 법의 집행에 대한 모든 종류의 피신처는 귀족정체를 붕괴시킨다. 그 결과 참주정체가 일어나게 된다. 법은 어떤 경우에나 권리를 남용하는 거만을 제압해야 하므로 잠정적 또는 여욱적으로 귀족을 두렵게 만드는 사법관의 존재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스파르타의 민선 장관이나 베네치아의 종교재판소 판사처럼 어떤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는 사법관이 그런 존재이다. 베네치아에서는 돌의 입이 모든 밀고자를 위해 열려 있는데, 그것은 참주정체의 입이라고 할 수 있다.

귀족정체에서의 그와 같은 참주적 관직은 민주정체에서의 감찰직과 비슷하다. 후자는 그 성질로 볼 때 전자처럼 독립적이다. 사실 감찰관은 직무상 행한 일에 관해 문책을 당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신임을 받아야 하며, 결코 낙담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로마인들은 감탄할 만했다. 로마에서는 모든 집정관에게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었으나, 감찰관만은 예외였다.


[77면] 공화정체에는 감찰관이 필요하다. 그 정체의 원리가 곧 덕성이기 때문이다. 덕성을 파괴하는 것은 범죄뿐만 아니라 태만, 과실, 미지근한 조국애, 나쁜 예, 타락의 싹 등이다. 법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법망을 뚫는 것, 법을 약화시키는 것, 이런 모든 것은 감찰관에 의해 교정되어야 한다. 


[88면] 로마에서는 한 시민이 다른 시민을 탄핵하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되었다. 그것은 공화정체의 정신에 따라 정해진 것이다. 즉 공화정체에서는 각 시민이 공익을 위해 무한한 열의를 가져야 하고, 또 각 시민은 조국의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황제 치하에서도 사람들은 공화정체의 격률에 따랐다. 그러자 곧 불길한 인종, 즉 밀고자라는 무리가 나타났다.

뛰어난 간계에 충분한 재능을 가진 자라면, 즉 비천한 영혼과 야망에 불타는 정신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그 처형이 군주의 마음에 들 것 같은 범죄자를 찾아다녔다. 그것이 입신과 부를 얻기 위한 방편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훌륭한 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법을 집행하기 위해 그 지위에 있는 군주는 자신의 이름으로 모든 범죄를 소추하기 위해 각 재판소에 한 사람의 관리를 임명하는 법이다. 이와 같이 하여 밀고자의 일은 우리나라에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플라톤은 <법률>에서, 재판관에게 고소하는 것을 게을리하거나, 또는 그들에게 협력하기를 게을리한 자는 처벌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이 오늘날에는 적합하지 않다. 검사가 시민을 대신해서 감시하고, 그 활동에 의해 시민들은 평온을 누리는 것이다. 


----> 이 부분에 대한 제 생각을 잠깐 적어보겠습니다. 

여기서 '탄핵'은 오늘날의 '고소'를, '밀고자'는 '무고를 범하는 자'를, '각 재판소에 한 사람의 관리'는 '검사'를 각각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법의 정신'이 출간된 1748년 당시 이미 프랑스에는 근대적 검사 제도의 초창기 모습이 존재하였습니다. 몽테스키외에 따르면 검사는 무고를 방지하기 위해 시민을 대신해 고소라는 직무를 행하게 하기 위해 각 법원마다 한 사람씩 둔 정부의 관리입니다. 이 검사 제도는 공화정체에 필요한 제도이고, 공화정체라는 근대적 정치체제를 구성하고 뒷받침하기 위해 탄생한 근대적 사법 제도인 것입니다. 


[90면] 경험에 의하면, 형벌이 가벼운 나라에서는 국민의 마음이 그 가벼운 형벌에 의해 감동을 받는 정도가, 형벌이 엄한 나라에서 엄한 벌에 의해 타격을 받는 것과 같다.

나라에 무슨 불편한 일이 생기면 강권적인 정부는 갑자기 그것을 교정하고자, 낡은 법을 집행하는 대신 즉시 그 해악을 막을 가혹한 형벌을 만든다. 그러나 정부의 동력은 그것에 의해서 소모되고, 국민들은 그 무거운 법에 익숙해져서 예전의 가벼운 형벌 정도로 느끼게 된다. 이와 같이 무거운 벌에 대한 공포가 감소되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더욱더 무거운 법을 제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중략)

인간을 극단적인 수단으로 다루어서는 안 되며,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방법을 적절하게 사용해서 지도해야 한다. 기강이 느슨해지는 원인을 살펴보면, 그것은 범죄를 처벌하지 않은 결과일 뿐 형벌을 경감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연에 따르자. 자연은 인간에게 수치심을 가책으로 주었다. 따라서 형벌의 대부분은 형을 받는다는 수치심을 느끼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120면] 국민의 신탁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부패를 은닉하기 위해 국민을 부패시키려고 할 때, 국민은 그와 같은 불행에 빠진다. 그들은 국민이 자기들의 야심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오직 국민의 위대성만을 이야기한다. 그들의 탐욕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국민의 탐욕을 부채질한다. 


[161면] 각 국가에는 세 종류의 권력이 있다. 입법권, 만민법에 속하는 사물의 집행권, 시민법에 속하는 집행권이 그것이다. 

첫째의 권력에 의해 군주나 집정관은 일시적 또는 항구적인 법률을 제정하고, 또 이미 정해진 법률을 수정 또는 폐지한다. 둘째의 권력에 의해 그는 강화 또는 선전을 행하고, 대사를 교환하고, 안전을 보장하고, 침략을 예방한다. 셋째의 권력에 의해서 그는 죄를 처벌하고, 개인의 쟁송을 심판한다. 우리는 마지막 것을 재판권이라 부르고, 다른 하나는 단지 국가의 집행권이라 부른다.

한 시민의 정치적 자유란, 각자가 자기의 안전에 대해 가지는 의견에서 유래되는 그 정신의 안정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자유를 갖기 위해서는 한 시민이 다른 시민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정체여야만 한다. 동일한 인간 또는 동일한 집정관 단체의 수중에 입법권과 집행권이 결합되어 있을 때에는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같은 군주 또는 같은 원로원이 폭정적인 법률을 만들고, 그것을 폭정적으로 집행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재판관이 입법권과 집행권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을 때에도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 만약 그것이 입법권과 결합되어 있다면, 시민의 생명과 자유를 지배하는 권력은 자의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재판관이 곧 입법자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집행권에 결합되어 있다면 재판권은 압제자의 힘을 가지게 될 것이며, 또한 동일한 인간, 또는 귀족이나 시민 중 주요한 사람의 동일 단체가 이 세 가지 권력, 즉 법률을 제정하는 권력, 공공의 결정을 실행하는 권력, 죄나 개인의 쟁송을 심판하는 권력을 행사한다면 모든 것은 상실되고 말 것이다. 

재판권은 상설적인 원로원에 부여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해마다 일정한 시기에 법률이 정하는 소속에 의해 필요한 기관에 존속하는 법정을 구성해야 하며, 또 그러한 시민단체로부터 선출된 사람들에 의해 행사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몹시 두려워하는 재판권은 특정한 신분이나 특정한 직업에 결합되지 않으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되어 버린다. 사람들의 눈앞에 항상 같은 재판관이 있을 일이 없고, 사람들은 재판관직은 무서워해도 재판관은 무서워하지 않게 된다. 

중대한 공판에서 범죄인은 법과 협력해서 스스로 재판관을 선출해야 한다. 또는 적어도 많은 수의 재판관을 기피할 수 있어서 남은 사람이 그가 선택한 사람으로 간주되어도 좋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다른 두 개의 권력은, 한쪽은 국가의 일반적 의지이고, 다른 쪽은 그 일반적 의지의 실행에 지나지 않아 어떤 개인에 대해 행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오히려 항구적인 기구 또는 집정관에 주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재판소가 고정적이어서는 안 되지만, 판결은 그것이 법의 명문이라고 할 정도로 고정적이어야 한다. 만약 그것이 한 재판관의 개인적 견해라고 가정한다면, 사람들은 그 계약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사회생활을 하는 것과 다름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재판관은 피고와 같은 신분의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것은 피고가 자기를 해치려는 사람들의 수중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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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5일 토요일

프랑스 예심판사 제도 뉴스에 대한 코멘트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4/05/2025 11:00:00 오후 라벨: 검사 , 독립성 , 예심수사판사 , 예심판사 , 프랑스 사법제도

2024년 10월 15일자 한겨레의 <'사냥하듯 수사하지 말라'는 제도적 명령, 예심판사>라는 기사는, 우리나라 검찰과 비교하면서 프랑스 예심판사 제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사법제도에 관심이 많은 저는 예심판사 제도 소개 부분에 시선이 꽂혔습니다.

프랑스 법원에는 두 종류의 판사가 일하고 있습니다. 재판절차를 담당하는 판사와 예심절차를 담당하는 판사가 각각 있고, 후자가 바로 예심판사(Juge d'instruction)입니다. 예심절차란 사건이 재판절차에 보낼 만한 것인지, 유죄를 받을 만한 증거는 갖춰져 있는지 여부를 재판 전 단계에서 미리 심사한다는 의미인데, 단지 현재 있는 자료만 갖고 그냥 심사만 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증거를 수집하는 활동, 즉 수사와 같은 활동을 한다는 게 특이한 점입니다. 그래서 예심절차를 담당하니 ‘예심판사’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수사를 하기 때문에 ‘수사판사’라고 하기도 하고, 이도저도 애매하니 한데 합쳐서 ‘예심수사판사’라고 하기도 합니다.

예심판사는 형법에 중죄로 정의된 사건이나 검사가 예심판사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예심절차 개시를 청구하는 사건을 수사하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판사가 검사 같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프랑스가 1808년 이 제도를 만든 이후 19세기 내내 전 세계에 수출하였지만, 차츰 이 제도를 포기하는 나라들이 등장하기 시작해 독일은 1974년에, 이탈리아는 1989년에, 오스트리아는 2001년에 예심판사 제도를 폐지하였습니다. 경찰조직과 수사기법의 발전, 예심판사가 더 이상 필요 없을 정도로 신속하고 다양한 제도의 도입, 수사나 기소와 관련하여 검사에게 부여된 새로운 권한들, 피의자의 권리 확대 등이 그 이유라고 합니다. 일제시대에 예심판사 제도가 있던 우리나라도 해방과 더불어 사라진 제도가 되겠습니다.

프랑스에서도 예심판사에의 과도한 권한 집중과 지나친 절차 지연 등을 이유로 예심판사 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1950년대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이미 예심판사 제도를 폐지한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만약 프랑스에서도 예심판사 제도가 폐지되는 경우에는 검사가 그 역할을 대신할 것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한겨레 기사의 일부 내용을 옮겨 예심판사 제도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프랑스 형사소송법은 분명하게 답합니다. “예심판사는 유죄의 증거와 마찬가지로 무죄의 증거도 찾아야 한다.” 이른바 ‘객관 의무’입니다. 예심판사가 수사를 마친 뒤 마지막에 작성하는 문서에는 수사 대상자에게 불리한 증거와 유리한 증거를 함께 명기하도록 역시 법에 규정돼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예심판사는 수사를 담당하는 수사기관인 동시에 불편부당해야 하는 사법부 소속 법관이기에 ‘객관 의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예심판사의 임무는 유죄를 받아내는 게 아니라 진실을 밝히는 것으로 규정됩니다. 한마디로 ‘사냥하듯 수사하지 말라’는 제도적 명령인 것입니다.
반면 경찰과 같은 일반적 수사기관은 수사 대상자의 대척점에 서서 그를 처벌하는 데 몰두하게 마련입니다. 검찰도 형사재판의 한 당사자로서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는 게 주된 역할이라는 점에서 예심판사와 구별된다는 게 프랑스 제도에 함축돼있는 기본적인 시각입니다. 다만 2016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객관 의무를 검찰에도 부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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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블로그의 2018년 6월 27일자 글 <프랑스 형사소송 구조와 동향>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1990년대 이후 프랑스에서는 국경을 넘나드는 범죄들 때문에 위기가 닥쳤고 사법제도 차원에서 이에 대응을 해왔습니다. 즉, 새로운 범죄의 출현과 중대범죄의 급증에 따라 그에 대처하기 위한 새롭고 다양한 수사제도와 수사조직의 신설 등으로 이어졌고, 이는 범죄현장의 최일선에 자리한 사법경찰의 역할과 권한 확대라는 결과와도 직결됩니다. 사법경찰의 역할과 권한 확대는 이에 대한 통제의 필요성과 함께 전반적인 수사과정을 감독할 검사의 수사주재자로서의 역할 또한 종전보다 더욱 강조되는 결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사법경찰에 대한 검사의 수사주재자로서의 지위를 명확히 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이 있었습니다.
2016년 6월 3일 ‘조직범죄, 테러범죄, 이 범죄들과 관련한 금융범죄 대응 강화, 형사절차의 효율성과 보장성 개선을 위한 법률 제2016-731호’를 통해 형사소송법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제39-3조가 신설되었습니다. 이는 검사에게 사법경찰의 수사를 통제할 핵심적 역할이 있음을 재확인하고, 아울러 검사의 수사주재자 역할을 더욱 강조하는 취지의 규정입니다.

‣ 제39-3조
제1항 사법경찰을 지휘하는 영역에서, 검사(검사장)는 사법경찰에게 일반적인 지시나 구체적인 지시를 할 수 있다. 검사(검사장)는 사법경찰에 의해 행해지는 수사절차의 적법성, 사실관계의 본질과 중요도에 따른 수사행위의 비례성, 수사의 방향 및 수사의 충실성 등을 통제한다.
제2항 검사(검사장)는 피해자, 고소인, 피의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수사가 실체적 진실을 증명하는 데 이르고 있는지, 이들에게 불리한 내용이든 유리한 내용이든 수사가 수행되고 있는지 감독한다.

이 법률은 2015년 11월 발생한 파리 테러사건을 계기로 이러한 사건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더욱 효율적인 수사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하는 데 취지를 두고 마련된 것인데, 특히 제39-3조 제2항의 경우는 종전 형사소송법 제81조 제1항에 대응하도록 마련된 규정입니다.

‣ 제81조 제1항 예심판사는 법률에 따라 실체적 진실 증명에 필요한 모든 수사를 한다. 예심판사의 수사대상에는 피의자에게 불리한 사항과 유리한 사항이 포함된다.

즉, 실체적 진실주의를 규정한 제81조 제1항이 예심판사에 관해서만 언급되어 있고 검사에 관해서는 이러한 언급이 별도로 없어, 검사의 임무가 진실을 찾는 것이기보다는 마치 사람을 법정에 들여오기 위한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검사가 소추기관으로서 수사를 통제한다는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서도 예심판사와 동일하게 공정성과 객관성이라는 의무를 준수하여야 하고, 검사의 지위가 수사관과 혼동되어서는 안 되고 수사관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규정에 대해서는 "종전에 사법경찰의 수사에 대해서는 검사뿐만 아니라 예심판사도 통제권한을 갖고 있었으나, 제39-3조는 사법경찰의 수사를 통제할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검사에게 부여한 것이다”, "검사가 헌법에 규정된 사법관으로서 불리한 내용이든 유리한 내용이든 공정한 수사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역할을 부여한 것이다”, “이번 규정은 현행 형사소송법 제81조, 즉 예심판사의 의무에 관한 규정과 대비되는데, 이는 궁극적으로는 정부가 ‘21세기 사법 현대화 법안’을 통해 전체 형사사건의 일부만을 담당하고 있는 예심판사 제도의 폐지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라는 등의 평가가 있어, 장차 예심판사와 검사의 역할에 또다시 어떠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도 합니다.

위 프랑스 형사소송법 제39-3조 제2항과 제81조 제1항의 내용이 바로 '객관의무'를 말하는 규정입니다. 예심판사이든 검사이든 수사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이라면 당연히 갖고 있어야 할 이러한 객관의무를 명시적으로 정한 것입니다. 다만, 위 한겨레 기사에서는 <검찰도 형사재판의 한 당사자로서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는 게 주된 역할이라는 점에서 예심판사와 구별된다는 게 프랑스 제도에 함축돼있는 기본적인 시각입니다. 다만 2016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객관 의무를 검찰에도 부여했습니다.>라고 하여, 검사의 객관의무와 예심판사의 객관의무는 서로 구별된 것이고 2016년에야 비로소 검사에게도 기존에 없던 객관의무를 부여한 것이라고 서술하였습니다만, 이게 완전 틀린 말은 아니더라도 오해의 소지가 많은 표현입니다. 
즉, 프랑스의 검사는 판사와 동등한 지위의 '사법기관'입니다. 우리나라 검사는 판사와 소속 자체가 다르기에 감히 사법기관까지는 아니고 기껏해야 '준사법기관' 정도에 불과하지만, 프랑스의 판사와 검사는 똑같은 사법기관입니다. 따라서  프랑스 판사와 검사의 객관의무는 구별된 것이 아니고 똑같은 것입니다. 검사가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는 게 주된 역할이라고 보더라도 예심판사의 역할 역시 동일하고, 둘의 지위 역시 같은 사법기관이어서 객관의무 면에서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또, 예심판사의 객관의무 조문은 기존부터 있어온 데 반해 검사의 객관의무 조문이 2016년에야 신설된 것은, 시대상황에 맞춰 검사에게 예심판사보다 더 많은 역할과 임무를 부여하자는 차원에서였습니다. 원래는 없던 객관의무를 비로소 부여한 게 아니라, 원래부터 있던 객관의무를 명문화한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실제의 프랑스 제도의 취지와 위 한겨레 기사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그 뉘앙스가 많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프랑스에서 예심 결과 불기소 처분되는 비율은 꽤 높습니다. 2022년 통계를 보면, 예심 수사 대상자 3만2032명 중 약 23%인 7470명이 불기소 처분을 받았습니다. 검찰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예심판사에게 넘긴 중대 사건들 가운데 4분의 1 가까이가 불기소로 마무리된 것입니다. 예심 과정에서 객관성·공정성이 담보된다는 방증으로 이같은 수치가 인용되곤 합니다.>

---> 이 부분도 오해의 소지가 좀 있어 보입니다. 
앞에서 예심판사는 형법에 중죄로 정의된 사건이나 검사가 예심판사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예심절차 개시를 청구하는 사건을 수사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즉 예심판사가 모든 형사사건의 수사를 담당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프랑스에서는 범죄를 그 법정형에 따라 중죄(crime, 무기징역형 또는 10년 이상 30년 이하의 징역형), 경죄(délit, 10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3,750유로 이상의 벌금형), 위경죄(contravention, 3,000유로 이하의 벌금형) 등의 세 가지로 분류하여 각각의 수사절차와 재판절차를 달리 규정하고 있는데, 중죄사건의 경우 예심절차가 의무적이므로 검사는 중죄사건에 대해서는 예심판사에게 예심을 청구하여야 합니다. 중죄사건이 아닌 경죄사건이나 위경죄사건의 경우에는, 검사가 예심판사에 의한 보완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때에 예심판사에게 예심을 청구하게 됩니다.
검사는 예심판사에게 예심을 청구하기에 앞서 일단 사법경찰이 1차로 수사한 결과물, 즉 사법경찰의 수사기록을 보고 예심 청구 여부를 판단하게 됩니다. 검사가 이러한 판단을 할 때는 사법경찰이 작성해서 송치한 수사기록만 보고 판단할 뿐 직접 수사를 하지는 않습니다. 중죄에 해당하는 사건은 의무적으로 예심을 청구해야 하니 사법경찰의 수사기록상 중죄에 해당하는 내용이 있으면 무조건 예심판사에게 사건을 보내고, 경죄나 위경죄에 해당하는 사건의 경우에는 사법경찰의 수사가 미진하여 혐의 유무가 불분명하다 싶으면 예심판사에 의한 예심수사를 생각해보기 마련입니다. 
즉, 검사가 예심판사에게 사건을 보낼 시점에는 피의자의 혐의 유무가 불분명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예심판사에 의한 예심절차가 더 진행되어 보아야 그 피의자의 혐의 유무가 더 분명해질 것입니다. 검찰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예심판사에게 넘긴 중대 사건들 가운데 4분의 1 가까이가 불기소로 마무리된 것은, 검사는 객관성·공정성이 없는 반면 예심판사는 객관성·공정성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심판사의 또 한가지 독특한 성격은 철저히 ‘단독자’라는 점입니다. 재판을 하는 판사와 마찬가지로, 예심판사는 비록 법원에 속해 있지만 자신이 맡은 사건은 철저히 독립적으로 처리합니다. 이는 위계질서로 짜인 조직에 속한 검사와 다른 점입니다. 조직으로부터의 단절은 수사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장치입니다. 조직적 이해관계에 따라, 또는 상부의 압박에 따라 수사가 왜곡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직을 뒷배로 한 무리한 수사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예심판사를 두고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사람’(발자크)이라는 세평과 ‘불쌍하고 외로운 사람’이라는 자조가 엇갈린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양자 모두 예심판사의 독립성이 갖는 중요성을 짚어낸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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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심판사는 수사업무를 하기에 얼핏 보면 검사와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심판사는 엄연히 '판사'이지 '검사'는 아닙니다. 동등한 지위가 있는 사법기관이라 하더라도 판사와 검사는 확연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판사는 재판독립성 원칙에 따라 판사 한 명 한 명이 독립적으로 재판업무를 할 수 있는 데 반해, 검사는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라 검사 한 명 한 명이 독립적이 아니라 전체 검찰의 의사를 대변하여 검찰업무를 수행합니다. 판사는 누구의 결재를 받지 않고 혼자 결정을 할 수 있는 반면, 검사는 결재제도를 통해 전체 검찰의 승인을 받아 결정을 해야 합니다. 이건 프랑스나 우리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왜 이렇게 판사가 일하는 방식과 검사가 일하는 방식을 다르게 해놓은 것일까요? 혼자 독립적으로 일하면 조직으로부터 단절되어 조직을 뒷배로 한 일처리도 하지 않아 독립성과 공정성을 기할 수 있으니 좋기만 해보이는데 말이죠. 이는, 프랑스 헌법 제20조 제1항이 정부는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고 지도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이에 따라 법무부장관이 국가의 여러 정책들 중 하나인 형사정책을 집행할 권한이 있고, 법무부장관은 형사정책을 집행하기 위해 법무부장관을 정점으로 하는 위계조직체로 검찰을 구성하여 검찰을 지휘감독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검찰도 행정부에 소속되어 법무부장관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정부의 정책을 수행하는 역할을 합니다. 혼자 하는 일과 조직적으로 하는 일은 이렇게 그 원리와 취지가 다를 뿐인 것이지, 혼자 하면 공정하게 일하는 것이고 조직적으로 하면 불공정하게 일하는 것이라고 볼 건 아닙니다. 두 가지 일의 방식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방향이 다른 것이고 각기 의미가 있는 것이지, 어느 일방이 무조건 선이고 악인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혼자 하는 게 무조건 좋은 것이라면, 왜 검사 일은 혼자 하게 두지 않은 거겠어요. 프랑스나 우리나라나요. 제도적으로 논리적으로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겁니다. 
예전에 어느 분이 하신 말씀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판사의 일은 '자유의 향기'가 있다는 식의 표현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판사의 일은 혼자 하는 일이기 때문에, 판사 개인의 성향과 개인적 소신에 따라 똑같은 사안을 두고도 다른 결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게 불공평한 일이니 AI판사를 도입하는 게 낫겠다 라고 비난받을 수도 있겠지만, 이른바 '튀는 판결' 덕분에 기존의 공고하기만 했던 편견과 선입견이 무너지고 우리 사회에 진보적인 인사이트를 던져준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자유의 향기'이고, 판사가 사회 정의의 최후 보루라고 불릴 수 있었던 거죠. 판사 개개인이 존재 자체는 미약할 수 있어도, 공동체에 던질 수 있는 영향력은 거대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법상식에 반하는 '과하게 튀는 판결'은 심급제도라는 통제장치가 있어 상급심에서 대부분 바로잡히게 됩니다. 
판사의 긍정적인 영향력은 그렇게 '혼자' 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고, 검사의 긍정적인 영향력은 반대로 '조직적으로' 하는 데서 나오는 겁니다. 판사가 혼자 하는 게 좋은 것처럼 검사도 혼자 하는 게 좋은 거라구요? 그렇게 이상적인 제도가 운영되는 모델이 있다면 당연히 우리도 흉내내는 게 좋겠습니다만, 아쉽게도 제가 아는 한에서는 그런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제도 자체가 문제인 경우보다는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이 문제인 경우가 훨씬 많을 것입니다. 사람의 죄를 묻지 않고 죄도 없는 제도만 이상한 모양새로 만들어버리는 건, 결코 현명한 해결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심판사 제도에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큰 논란을 불러온 게 ‘우트로 사건’이었습니다. 올해 넷플릭스에 이 사건을 다룬 3부작 다큐멘터리 ‘우트로 사건: 프랑스의 악몽’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2000년 발생한 우트로 사건은 무고한 시민들이 아동 성폭행이라는 끔찍한 누명을 쓰고 장기간 구금되는 등 인권침해를 당한 사건이었습니다. 예심판사의 수사 실패가 비판받으면서 예심판사 폐지론까지 불러일으켰습니다.>
<경험이 부족했던 젊은 예심판사는 허위 진술에 속아 18명 모두를 재판에 넘겼습니다. 한 명은 억울함을 호소하다 구속 중 자살했고, 2004년 1심 재판에서 10명 유죄, 7명 무죄라는 엇갈린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허위 진술을 했던 여성이 2005년 2심 재판에서 자신의 진술이 거짓이었음을 실토하면서 사건의 실상이 명확해졌습니다.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았던 6명에 대해 검찰은 무죄를 구형했고,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대통령, 총리, 법무장관 등이 이들에게 사과했고, 국회가 진상조사에 나섰습니다. 예심판사가 주요 사건을 단독으로 처리하다 보니 경험 부족 등으로 인한 오류를 통제할 방법이 없다는 지적에 따라 2007년 프랑스 국회는 3명의 예심판사가 합의체를 구성해 예심을 이끄는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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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이 기사에서도 혼자 일하는 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잘 지적해주셨습니다. 등장인물이 많고 사회적인 관심이 지대한 방대한 사건을 예심판사 혼자 수사하다가 탈이 난 일을 잘 소개해주셨습니다. 
수사는 어떤 형체가 없는 사안을 차곡차곡 퍼즐들을 갖다붙여서 어떠한 보기 그럴듯한 모양새를 만들어내는 일이고, 재판은 이렇게 이미 형체를 구성하고 있는 퍼즐들이 과연 제대로 갖다붙인 것인지를 살펴보는 과정입니다. 이를테면 수사는 빌드업이고 재판은 복기인 것입니다. 빌드업은 여러 명이 필요한 일이지만 복기는 혼자서도 가능한 일이겠죠.
따라서 복잡하고 어렵고 방대한 사건이라면, 재판은 혼자 하는 게 가능해도 수사는 혼자 하기 힘든 일입니다. 복잡하고 어렵고 방대한 사건 많은 현대사회에서 예심판사 제도가 과연 유지가능한 제도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이후 2009년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은 예심판사 제도 폐지를 본격 제안하며 대통령 직속 사법개혁위원회를 만들어 검토하게 했습니다. 위원회는 예심판사를 없애고 모든 수사를 검사에게 맡기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사법관 노조와 대법원, 변호사협회 등의 강한 반대에 부딪쳐 입법이 무산됐습니다.>
<폐지 반대 주장의 주된 근거는 예심판사의 역할을 검찰로 넘긴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검찰이 수사·기소 권한을 모두 갖게 되면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고, 수사에 대한 법원의 통제가 이뤄지기 힘들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검찰이 수사를 전담하고 법원은 영장심사 등을 통해서만 수사를 통제할 경우(지금 우리나라의 상황과 같습니다), 법원이 수사의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한 채 검찰의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진정한 수사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또 행정부 소속으로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검찰은 수사·기소에서 법원 소속의 예심판사만큼 중립성을 지킬 수 없다는 우려도 컸습니다.
예심판사의 권한은 우리 기준으로 볼 때 과도한 면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구속 여부를 직접 결정하던 권한은 폐지됐지만, 여전히 통신 감청 등을 직권으로 할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예심판사가 수사 뒤 기소 여부까지 결정하는 것보다 검사에게 기소 여부 판단을 넘김으로써 수사·기소 권한을 더 명확히 구분할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예심판사 제도는 수사·기소 권한을 검찰과 분점해 상호견제하고 수사의 객관성과 독립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프랑스가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200년 넘은 예심판사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는 우리의 형사사법체계 개혁에서도 중요한 참고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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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예심판사 제도의 폐지론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의 2016년 10월 26일 <프랑스 예심수사판사 제도 폐지와 관련한 오래된 뉴스> 글에서도 소개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위 <프랑스 형사소송 구조와 동향> 글에 적은 2014년 통계를 보면, 그 해 프랑스 검찰에 사건접수된 2,049,427명의 피의자들 중 660,276명이 기소되었고 그 중 28,242명에 대해 검사가 예심수사를 청구하였습니다. 즉, 그 한 해 동안 예심판사가 담당한 사건의 피의자 수는 전체 피의자 2,049,427명 중 28,242명, 비율로는 1.38%라는 얘기로, 결국 예심판사가 중범죄 사건 같은 중요한 사건의 수사업무를 담당하기는 하지만 전체 형사사건에서 차지하는 비중 자체는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심판사가 처리하는 사건의 비중이 이렇게 낮고 사건 수도 날이 갈수록 줄고 있다는 현상은, 오늘날 프랑스에서 예심판사 제도를 폐지하여야 한다는 주장의 주요한 논거 중 하나가 되고 있기도 합니다. 
판사가 재판권한뿐만 아니라 수사권한도 아울러 갖고 있다는 점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매우 많습니다. 예심판사나 재판하는 판사나 동일한 신분을 가진 판사이므로 어떤 판사가 어느 날은 예심판사로서 수사를 했다가 다음 인사 때는 재판 판사로 발령이 나 재판업무를 맡기도 하고, 심지어는 소속 법원의 업무분장에 따라 예심판사와 재판 판사를 동시에 맡고 있어서 오늘은 예심판사로 일하고 내일은 법정에 들어가 재판장으로 일하기도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과연 수사와 재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 요새 어느 선진국이 수사와 재판을 한 기관에서 모두 담당하느냐, 그래서 이건 굉장히 낡은 제도가 아니냐라는 의문이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오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예심판사 제도를 폐지한 다른 유럽 나라들처럼 프랑스도 예심판사 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1950년대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제도를 당장 없애긴 힘드니, 입법자들은 일단 예심판사의 권한을 줄이고 검사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모색하여 왔습니다. 즉, 2000년 예심판사로부터 구속 관련 권한을 배제하였고, 2003년과 2004년 예심판사의 개입을 무의미하게 할 정도로 수사절차에 관한 검사의 권한이 확대되었고(특히 조직범죄 분야에서), 2007년에는 검사의 기소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소당사자(범죄피해자)가 예심판사에게 직접 고소를 제기하여 피의자를 곧바로 법정에 세우는 것을 사실상 곤란하게 만들었습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라지고 겨우 프랑스 정도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예심판사 제도를, 우리나라에서도 일제시대에 존재하다 해방과 동시에 사라진 제도를, 지금의 검찰을 견제하자고 우리나라에 들여온다는 건 넌센스일 겁니다. 예심판사가 '혼자' 일하는 게 공정한 일처리가 가능한 원인으로 보인다고 우리나라 검사를 '혼자' 일하는 기관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한 방안이 아닐 것입니다. 예심판사가 모든 형사사건의 수사를 도맡아 하는 것도 아닌데 검사와 수사·기소 권한을 분점해 상호견제하게 한다는 것도 뭔가 핀트가 맞지 않는 방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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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바기닝 아닌 플리바기닝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4/05/2025 02:29:00 오후 라벨: 검사 , 사법제도 , 재판 , 플리바기닝

며칠 전 법정에서 재판을 보다 문득 든 생각을 적어봅니다.   

형사재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변호사들의 변론전략 중 이런 게 있습니다. 유무죄가 애매한 사건, 특히 어떠한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건 맞지만 범죄의 고의가 있는지 애매한 사건, 고의도 그냥 고의가 아니라 미필적 고의가 있는지가 쟁점인 사건에서는 무죄를 주장하지 않고 그냥 유죄라고 인정한 다음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으니 형량을 가볍게 해달라고 선처를 호소하는 전략입니다. 
범죄는 단순하게 말해서 행위(객관적 요건)와 고의(주관적 요건), 이렇게 두 가지로 구성됩니다. 피고인이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했는지 안 했는지부터 문제되는 사건이라면 무죄 가능성이 높겠지만, 행위를 한 건 맞지만 고의가 있는지 없는지가 애매한 사건이라면 무죄를 장담할 순 없을 겁니다. 앞의 사건이야 무죄 가능성이 높으니 무죄를 주장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뒤의 사건이라면 자칫 무죄를 주장하다 먹혀들지 않을 경우 처음부터 범행을 인정한 경우에 비해 형량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 위험까지 계산해서 그냥 범행을 인정하고 선처를 구하는 것입니다. 
검사의 엄격한 입증이 필요한 형사재판에서 다소라도 무죄를 다퉈볼 만한 경우 피고인이나 변호인이나 무죄를 주장하는 게 이론상으로야 맞겠지만, 다소라도 무죄 가능성이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만으로 무죄를 주장하는 건 실제의 재판현장에선 위험한 전략입니다. 그리고 사실 자신에게 범죄의 고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피고인 자신이 잘 알고 있을 것이고, 피고인을 가까이에서 변호하다 보면 변호인도 감이 올 것이잖아요. 
1심에서 무죄를 주장하다(이런 경우는 보통 수사절차에서도 무죄를 주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 되지 않아 유죄판결과 함께 무거운 형을 받게 되자 2심에선 전략을 바꿔 유죄를 인정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1심에서 유죄를 인정했는데도(이런 경우는 수사절차에서 유죄를 인정하는 경우도 있고 무죄를 주장하는 경우도 있고 랜덤입니다) 기대보다 무거운 형을 받게 되자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2심에선 무죄를 주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변호사들이 법정에서 이런 변론전략을 흔히 취하는 걸 보고 문득 플리바기닝 생각이 났습니다. 사실 이거 플리바기닝과 똑같잖아요. 자신의 죄는 피고인 자신이 제일 잘 알 테니 자신이 어떤 길을 갈지 선택권이 있는 것이고, 사법기관은 피고인의 선택에 따라 그에 맞는 적절한 답을 주면 되는 것이죠. 미국에선 검사 앞에서 이런 선택이 이루어지지만 우리나라에선 법정에서 판사 앞에서 선택이 이루어지는 것만 다를 뿐이구요. 사실상 그 프로세스나 효과가 똑같습니다.
다만, 미국의 플리바기닝은 대개 형사절차 초기에 이루어지기에(재판 중에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피고인이나 사법기관이나 수사와 재판에 들이는 수고를 모두 절약할 수 있는 데 반해, 우리나라의 변론전략은 형사절차가 이미 상당부분 진행된 후 법정에서 비로소 이루어지기 때문에 재판에 들이는 수고만 좀 절약되고 수사에 들이는 수고는 그대로라는 게 다르겠네요. 

어느 나라나 사법기관의 사법자원은 인적으로나 예산상으로나 한정되어 있으니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모든 형사사건을 전부 다 (정식)재판으로 보내는 나라는 없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재판 전 단계에서 상당수의 사건을 걸러내고 극히 일부 사건만 재판절차로 들여보냅니다. 
미국의 경우 모든 형사사건에 대해 배심재판(jury trial)이나 단독판사재판(bench trial)을 할 수는 없으므로, 절대다수의 사건을 그 전 단계에서 플리바기닝으로 종결시켜버립니다. 
프랑스나 독일 같은 유럽 나라들은 재판 전 단계에서 예심절차(수사절차)를 운영합니다. 예심절차란, 판사와 동등한 ‘사법관’의 자격을 갖고 있는 예심판사나 검사(예심판사 제도가 폐지된 독일 같은 나라의 경우)가 주재하는 예비심리절차로서, 재판에 보낼 사건을 미리 검토하고 추리는 절차입니다. 모든 사건을 전부 다 재판에 보내면 재판 제도가 마비될 것이니 도저히 가능한 일이 아니고, 재판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건만 재판에 보냄으로써 재판 제도가 제대로 굴러가도록 미리 사건을 검토하고 추리는 절차가 필요한 것입니다.

결국 따져보면, 우리나라는 예심절차인 수사절차도 있고 법정에서 사실상의 플리바기닝도 있는 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플리바기닝에 대해, 정의에 관한 고차원적 문제를 어떻게 협상이니 거래니 하는 저급한 단어로 대체할 수 있느냐, 인권을 무시하는 편의주의적 발상이다, 라는 알레르기 반응이 많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범죄를 하지 않았는데도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이라면 아마 플리바기닝 제안을 덥석 받고 유죄를 인정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절대 억울해서 그렇게 할 수는 없죠. 끝까지 재판으로 가서 무죄를 받겠다고 하기 마련일 겁니다. 재판이란 반드시 진실이 밝혀진다는 보장이 없는 위험한 절차이므로 끝까지 재판으로 갔다가 자칫 잘못돼서 생사람을 잡게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정말로 억울한 피고인이라면 자신은 죄가 없으니 당연히 재판에서 진실이 밝혀질 거라고 굳게 믿는 게 보통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조심스레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나라에 플리바기닝 제도가 생긴다면, 죄명을 바꿔주거나 형량을 낮춰주겠다는 검사의 제안을 넙죽 받을 피고인은, 아마도 현재 혐의를 딱 잡아떼고는 있지만 사실은 죄를 지은 게 맞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우리 재판에서 종전의 무죄 주장과는 달리 유죄를 인정하며 선처를 구하고 있는 피고인들처럼 말이죠. 
그럼에도 플리바기닝 얘기가 나오면, 우리는 이런 현실을 도외시한 채 영화나 드라마만 잔뜩 본 사람들처럼 완전 무죄인데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매우 극단적인 사례를 상상해가며 이 제도에 부정적인 인상을 갖곤 합니다. 이 세상이 완전무결할 수야 없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극단적인 일만 벌어지는 곳은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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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9일 금요일

미국 뉴욕남부검찰청 공소장

댓글 1개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7/19/2024 04:50:00 오후 라벨: 검사 , 검찰 , 공소장 , 미국 , 사법제도 , 증거 , 형사소송

수 미 테리 SUE MI TERRY 사건. 국정원으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으며 한국 정부를 위한 첩보원으로 활동한 혐의로 미국 뉴욕남부검찰청이 2024년 7월 15일 기소하였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워싱턴포스트 지는 7월 17일 홈페이지에 그 공소장을 게시하였습니다. 저는 미국의 공소장을 처음 봅니다. 낯서네요. 몇 가지 메모해봅니다. 


공소장은 indictment. 총 31쪽입니다.

대배심 Grand Jury를 거쳐 기소된 법원은 UNITED STATES DISTRICT COURT SOUTHERN DISTRICT OF NEW YORK.

사건번호는 24 CRIM 427.

기소한 검사의 명의는 United States Attorney DAMIAN WILLIAMS.

문단마다 문단번호가 매겨져 있고, 군데군데 소제목과 각주도 달려있습니다.

중간중간 사진도 6장이나 삽입되어 있습니다. 공소장에 증거자료를 넣을 수 있군요. 우리나라는 이런 거 하면 안 되는데요.

미국은 기소하자마자 이렇게 공소장이 일반에 공개되는군요. 우리나라는 공소장의 공개시점에 대해 지난 정부 때 만들어진 제한사항이 있습니다.  
 


아무튼 이 공소장의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고, 훗날의 공부를 위해 일단 여기 공소장 링크를 적어둡니다. 

235b1cb6-82bc-4a5e-a820-b12721d2f6f8.pdf (washingtonpo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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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3일 토요일

비리 혐의로 구속된 프랑스 사법관 소식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4/13/2024 05:12:00 오후 라벨: 검사 , 사법관 , 예심판사 , 프랑스 사법제도
2024년 4월 6일자 Libération지의 기사 "Une magistrate mise en examen pour ses relations supposées avec le grand banditisme corse"를 소개합니다. 

현재 Agen 고등법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49세의 사법관 Hélène Gerhards가 2010년부터 2016년까지의 코르시카 법원 근무를 전후하여 코르시카 범죄조직과 친분을 가지면서 뇌물을 받고 공금을 횡령하는 등 11가지 중죄와 경죄 죄명의 비리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구속되어 예심수사를 받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2008년부터 2022년까지 이 범죄조직과 지속적으로 친분을 유지하면서 법적 조언을 하거나 경찰의 수사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Eric Dupond-Moretti 법무부장관과도 친분이 있다고 하구요.

이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 몇 가지를 메모해봅니다. 

- 프랑스의 사법관은 판사와 검사를 함께 지칭하는 말로, 검찰청이 법원과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법원 안에 판사와 검사가 함께 근무하는 구조입니다. 어느 기사에 의하면 이 사법관을 예심판사였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아마 이 사법관은 여러 법원에서 근무하며 예심판사뿐만 아니라 판사와 검사 보직을 두루 거쳤을 겁니다.   

- 이 사법관에 대한 수사는 2021년부터 경찰의 예비수사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검사의 지휘를 받아 경찰의 예비수사가 이렇게 장기간 진행되어왔을 것이고, 어느 단계부터는 검사의 예심개시 청구로 예심판사에 의해 예심수사가 진행되다 예심판사가 이 사법관을 구속하였을 겁니다. 

- 경찰은 예비수사를 하면서 이 사법관에 대해 전화감청도 하였다고 합니다. 뇌물 사건 같은 공무원의 비리를 수사할 때도 전화감청을 할 수 있군요.

- 이 기사에는 구속된 사법관의 실명은 물론 혐의사실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고, 이러한 수사상황은 니스 검찰청이 보도자료를 통해 발표하였습니다. 프랑스에서 수사 관련 언론보도는 이렇게 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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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31일 화요일

Justice en direct 팟캐스트 소개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10/31/2023 02:49:00 오후 라벨: 검사 , 아이폰 , 재판 , 판사 , 팟캐스트 , 프랑스 사법제도 , IT

요새 팟캐스트를 이용하는 분은 퍽 보기 힘든 것 같습니다. 방금 검색해보니 '구글 팟캐스트'는 유튜브에 이용자를 모두 뺏기고 내년에 문을 닫는다고 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프랑스어 공부를 해볼까 하고 검색하다 발견한 프랑스 팟캐스트 하나 소개해드립니다. 



<Justice en direct>라는 팟캐스트입니다. 꼭 팟캐스트 아니라도 일반 인터넷 사이트로 접근 가능합니다. 2010년부터 2013년 사이에 있었던 프랑스 경죄법원의 형사재판 장면을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매주 한 에피소드마다 한 개 사건의 재판 장면을 다루는데, 사건관계인의 이름만 안 들리게 할 뿐 법정에서 오고가는 피고인, 재판장, 검사, 변호사의 육성을 날것 그대로 생생하게 들려줍니다. 

프랑스 경죄법원의 형사재판은, 재판장이 수사기록을 넘겨가며 기록의 주요 부분을 요약설명하면서 피고인과 수시로 문답을 하고, 검사와 변호인의 문답과 의견진술 순으로 통상 진행됩니다. 재판장이 거의 80-90% 이상의 발언권을 행사하고, 검사와 변호사, 피고인이 나머지 시간을 간간히 채워갑니다. 전형적인 유럽 대륙식 직권주의 형태의 재판이 바로 이것입니다.    

2022년 5월 11일부터 시작된 이 팟캐스트는 현재까지 98개의 에피소드가 올라와 있습니다. 프랑스 형사사건 재판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공부할 수 있는 너무 좋은 컨텐츠네요. 저는 1/2 속도로 해놓고 듣는데, 프랑스어 듣기 공부에도 아주 딱입니다. 공부하기 좋은 컨텐츠야 머 어디든 잔뜩 널려있죠, 저도 이거 얼마나 꾸준히 공부할지는 사실 그다지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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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10일 월요일

프랑스의 새로운 검찰총장 임명 소식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7/10/2023 08:27:00 오후 라벨: 검사 , 검찰총장 , 국가사법재판소 , 프랑스 사법제도

이 블로그의 2018년 12월 9일자 "프랑스 파리 지방검찰청 검사장 취임식 소식"에서 소개한 인물에 대한 후속 소식입니다. AFP 통신 기사를 인용한 2023년 7월 2일자 르몽드의 "Rémy Heitz succède à François Molins au poste éminemment politique de procureur général près la Cour de cassation" 기사는 프랑스의 새로운 검찰총장 임명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제목을 직역하면 "Rémy Heitz가 François Molins의 뒤를 이어 매우 정치적인 자리인 검찰총장 자리를 잇는다"입니다.

1963년 10월 26일에 태어난 Nancy 출신의 Rémy Heitz는 올해 59세의 사법관으로, 1999년부터 2001년까지 Saint-Malo 지방법원 검사로 첫 근무를 시작하여 유명한 Godard 사건(범선을 타고 바다에 나가 아내와 두 자녀를 살해한 의사 사건)을 처리했습니다.
파리 지방법원 부장검사로 승진한 후 2002년 Jean-Pierre Raffarin 총리실에 법무담당 기술고문으로 합류했고, 2008년 메츠 지방검찰청 검사장과 2011년부터 2015년까지 프랑스 제2의 법원인 보비니 지방법원장을 지낸 뒤 콜마르 고등법원장을 거쳐 2017년 8월 법무부 형사국장으로 임명됐습니다. 그리고 2018년 11월 파리 지방검찰청 검사장, 2021년 9월 파리 고등검찰청 검사장으로 재직해왔습니다. 

Rémy Heitz는 앞으로 국가사법재판소(Cour de Justice de la Republique)의 소추자 자격으로 불법이익 취득 혐의를 받고 있는 Eric Dupond-Moretti 법무부장관 사건에 관여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사법재판소는 직무수행 중 범죄를 저지른 정부 고위공직자 사건을 재판하는 정치적 기관인데요, 그래서 이 기사에서 이 검찰총장 자리를 '매우 정치적인 자리'라고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전임 검찰총장 François Molins이 법무부장관에 대해 직접적으로 반대할 정도로 행정부로부터의 검찰의 독립성을 맹렬히 키운 데 반해, Rémy Heitz가 정치권력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Rémy Heitz는 노란 조끼 사태 당시 파리 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있으면서 집회가 끝난 이후에 집회 참가자들을 체포하도록 경찰을 지휘하거나, 특히 혐의가 없는 경우에도 체포를 하도록 지휘한 일로 인해 사법관 조합과 변호사 조합으로부터 비판을 받은 일이 있다고 합니다.

동료들의 말을 빌리면, Rémy Heitz는 취미가 없을 정도로 일에만 몰두하는 게 유일한 단점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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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17일 토요일

1990년대 이후 프랑스 검찰 관련 이슈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6/17/2023 10:49:00 오전 라벨: 검사 , 검찰 , 국가금융검찰 , 국가대테러검찰 , 독립성 , 프랑스 사법제도

프랑스는 1990년대 이후 범죄의 세계화와 유럽통합의 영향에 따른 조직범죄와 금융경제범죄 급증, 강력범죄 재범 증가, Charlie Hebdo 총기난사 사건 이후 대형 테러범죄 빈발에 따라 범죄로부터의 사회안전 확보가 중대한 국가 현안이 되었습니다. 이에 선택과 집중을 통한 형사사법의 효율화를 목표로, 경미범죄는 간이절차 등을 통해 신속히 처리하는 대신 중대범죄에 대한 수사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형사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수사제도와 수사조직이 만들어졌고, 필연적으로 수사를 주재하는 검사의 역할이 더욱 중시되고 검사의 권한이 점차 확대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수사역량의 전문화와 집중화를 위한 ‘금융경제범죄 중점수사부’(Pôle financier, 1998년)와 ‘공중보건범죄 중점수사부’(Pôle de santé-publique, 2002년)의 신설, 더 나아가 ‘전국금융검찰청’(Parquet National Financier, 2014년)과 ‘전국대테러검찰청’(Parquet National Antiterroriste, 2019년)의 신설, 검찰 단계에서의 경미사건 신속처리를 위한 ‘형사화해 제도’(Composition pénale, 1999년)의 마련과 ‘신속기소절차 제도’(Comparution immédiate, 2002년)의 적용범위 확대, 검사에 의한 ‘긴급구속 제도’(Référé-détetion, 2002년)의 신설, 플리바게닝 제도의 일종인 ‘유죄를 인정한 경우의 특례절차 제도’(Comparution sur reconnaissance préalable de culpabilité, 2004년)의 신설, 기존 참심재판 제도의 축소운영을 통해 신속한 중죄사건 재판을 목표로 한 ‘중죄재판부 제도’(Cour criminelle, 2019년)의 신설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신종범죄 출현과 중대범죄 급증에 대처하기 위한 국가적 노력은 범죄현장의 최일선에 자리한 사법경찰의 역할과 권한 확대라는 효과와도 직결됩니다. 사법경찰의 역할과 권한 확대는 이에 대한 통제의 필요성과 함께 전반적인 수사과정을 지휘감독할 검사의 수사주재자로서의 역할 또한 종전보다 더욱 강조되는 결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검사의 수사주재자로서의 역할 강화를 위한 움직임으로는, 사법경찰에 대한 고검장의 근무평정 제도와 검사의 보호유치장소 감찰 제도 신설(1993년), 검사에게 사법경찰의 수사를 통제할 핵심적 역할이 있음을 재확인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제39-3조 신설(2016년)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비록 결론을 보진 못했지만, 사르코지 정부 시절 예심판사 제도를 폐지하고 그 역할을 검사가 대체하게 하려던 시도 역시 그러한 움직임의 하나로 볼 수 있겠습니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검찰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법무부와 검찰 사이의 거리두기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프랑스 검찰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행정부에 소속되어 법무부장관을 정점으로 한 위계조직 속에 놓여 있는 관계로, 수시로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정치적 중립성 측면에서 취약한 검사가 사법관임을 근거로 강제처분권을 행사하거나 판결의 성질을 갖는 처분을 행하는 게 적정한지에 대해 종종 의문이 제기되고 유럽법원이나 국내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한때 검찰을 법무부로부터 완전히 독립시켜 정치성을 배제시키자는 내용의 법률개정안이 제안되기도 하였고(1997년), 1999년 이후 오랜 논의 끝에 법무부장관이 개별 사건에 관하여 검찰을 지휘하는 것이 아예 금지되기에 이르렀습니다(2013년).

그뿐 아니라, 검사 인사와 징계에 관한 법무부장관의 권한을 제한하는 방안도 꾸준히 시도되고 있습니다. 고등사법위원회(Conseil Supérieur de la Magistrature)의 의장과 부의장 자리에서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을 제외시키고 그 위원들의 구성을 다양화한 데 이어(2008년), 판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검사 인사와 징계에 관한 고등사법위원회의 의견에 구속력을 인정하는 방안이 올랑드 정부에 이어 현 마크롱 정부에서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1990년대 이후 프랑스에서의 검찰과 관련한 논의주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테러범죄, 조직범죄, 금융범죄 등 국경을 넘나들며 프랑스 국내에 빈발하는 중대범죄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 검찰에 힘을 주자>이고, 다른 하나는 <검찰이 정치권력으로부터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법무부장관의 검찰 지휘권을 줄이고 검사 인사권과 징계권도 줄이자>입니다. 얼핏 보면 둘 다 검찰에게만 유리하고 좋은 일 만들어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취지는 이겁니다. 지금 현실적으로 검찰이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중요한 상황에 있는데 이에 상응하여 검찰의 권한이 커질수록 그런 권한을 이용하려고 정치권력이 부당하게 검찰권 행사에 관여할 위험도 커진다, 그러니 검찰이 정치권력의 간섭을 받지 않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자는 것입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의 검찰과 관련한 대표적인 논의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어서 폐해가 크니, 그 권한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혁을 해야 한다>입니다. 이번 정부 들어 검찰에 한때 사라졌던 조직과 권한이 다시 생기면서 ‘검찰공화국’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고는 있지만, 이는 그간의 꾸준한 정치적 흐름에 비춰 보았을 때 퍽 이례적인 현상에 불과합니다. 검찰이 처해있는 위치가 워낙 정치바람을 많이 타는 터라 사실 이게 또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아무튼 프랑스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가는 듯 보입니다. 우리가 잘 하는 걸까요, 프랑스가 잘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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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21일 일요일

[독서일기] 르네상스의 갈림길 - 배심재판과 조서재판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8/21/2022 05:26:00 오후 라벨: 검사 , 독서일기 , 미국 , 배심재판 , 배심제 , 사법제도 , 조서 , 프랑스 사법제도 , 형사소송

『르네상스의 갈림길 - 배심재판과 조서재판』, John H. Langbein 저 / 김희균 역,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12.

이미 절판된 책이지만 '국가정책연구포털' 사이트(https://www.nkis.re.kr:4445)에서 원문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번역자이자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계신 김희균 교수님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프랑스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형사법을 공부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십니다. 형사법에 대해 엄청난 내공을 갖고 계시면서 글을 참 알기 쉽고 재밌게 쓰시는, 대단하고 존경스런 분입니다. 교수님이 쓰신 여러 학술논문들 중 특히 "CCTV를 본 증인의 진술의 증거능력"(서울법학 제20권 제1호, 서울시립대학교, 2012)이라는 논문은, 그 어려운 전문증거의 개념을 쉽고 명확하게 이해하게 해주는 불후의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 『르네상스의 갈림길 - 배심재판과 조서재판』은 16세기 영국, 독일, 프랑스에서 각각 벌어진 형사법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원 제목은 『Prosecuting Crimes in the Renaissance』. 한참 전에 있었던 남의 나라 얘기, 사실 많이 지루하고 재미도 없습니다. 책 자체보다는 김 교수님이 쓰신 '역자 서문'이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교수님 유학생활의 애환도 들을 수 있고, 무엇보다 전문법칙과 크로포드 판결이 뭔지 쉽게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역자 서문만 읽어도 본전 뽑는 거라 생각합니다. 너무 좋은 글이기에 이 블로그에 찬찬히 정리해놓고 싶어 오랜만에 독서일기를 적어봅니다. 

마지막 약간의 인사말 부분만 빼고 다소 길지만 역자 서문의 대부분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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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Crawford v. Washington 이라는 판례에 각주로 소개된 책이다. 보통 외국 판례를 읽을 때 각주까지 부릅뜨고 읽을 일이 거의 없지만 아주 개인적인 이유로 나는 그런 무모한 짓을 하고 말았다. 


2004년 여름 박사학위 논문을 다 마치고, 귀국해서 무얼 할까 궁리하고 있었다. 미국에 가서는 절대 전공하지 말라는 전문법칙으로 논문을 거의 다 쓴 터라 그 다음 일이 걱정이었다. 그러던 차에 A 대학 공채에 서류를 냈고 총장 면접까지 무사히 올라갔으며, 나름대로 잘 치르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니, 9월이었다. 학위논문 완성본만 있으면 얼른 고국으로 돌아가야지, 그런 생각에 적잖이 들떠 있었다. 마지막 구두심사를 하는 날 제일 비싼 커피를 열 잔씩이나 갖다 놓고 교수님들을 기다렸다. 전문법칙과 그 예외이론은 건드리기만 해도 다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특히, Ohio v. Roberts 라는 1980년 판결에 대해서는 여러 층으로 분석을 끝낸 상태였다. 그런데 그날 심사에 들어오신 미국 교수 3명은 Roberts에 대해서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Crawford만 물어 봤다. 그런 판결이 금년 봄에 나왔다는 것쯤은 나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뭐? 그게 어쨌다고? 그게 Roberts를 엎기라도 했다는 거야, 뭐야? 아니, 24년 동안 멀쩡하던 판결이 왜 하필 지금 뒤집혀? 나는 열심히 대답했지만 교수들은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다. 끝자리에 앉아 있던 지도교수는 별다른 도움은 주지 않고 창문만 힐끔힐끔 쳐다봤다. 나만큼이나 곤란해 보였다. 나는 얼굴이 점점 노래져 갔다. 심사가 끝나고 지도교수가 아주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고치는 데 1년까지 걸리지는 않을 거야.” 

서울 갈 짐을 싸고 있는 아내한테 뭐라고 말해야 하지... 

지도교수 말을 듣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다. 


2004년 3월에 나온 Crawford는 1980년 Roberts를 뒤집었다. Roberts를 근거로 썼던 책들은 다시 써야 할 처지가 됐다. 도대체 Crawford가 뭐길래 24년 간 요지부동이던 Roberts를 엎은 것일까. A 대학 교수로 가는 길이 막혀 버린 나는 그해 가을 눈을 부릅뜨고 Crawford를 읽을 수밖에 없었다. 

재판에는 원래 증인이 나와야 한다. 증인은 안 나오고 증인이 한 말을 들어서 다른 사람이 전하는(이걸 ‘전문’이라고 한다) 경우, 그 전하는 사람의 진술을 전문증거라고 한다. 전문증거는 증거능력이 없다. 왜? 반대신문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신문을 해야 약점을 노출시켜서 신용성을 높일 수 있는데, 그걸 못하니까 증거능력이 없다. 이게 전문법칙이다. 그렇다면 굳이 반대신문 하지 않아도 충분히 믿을 만한 진술은 어떻게 하나? 가령 증인이 재판 전에 죽어가면서 한 진술, “이제 죽으면서 하는 말이지만, 그 피고인이 스미스 부인을 죽이는 걸 내가 봤어” 이런 진술, 이런 건 반대신문을 하지 않아도 증거능력이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왜? 충분히 믿을 만하니까 말이다. 이런 진술을 우리는 전문법칙의 예외라고 한다. 반대신문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믿을 만한 불출석 증인의 진술은 예외적으로 증거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자. 범행 현장에서 피고인의 머리카락이 발견되었다. 그 머리카락에서 DNA를 추출한 결과 피고인 것이다, 라는 사실을 알아낸 사람이 과학수사담당관이자 증인인 W다. W는 그런 취지로 감정서를 썼다. 감정서에는 “현장에서 발견한 머리카락은 피고인의 것이다” 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그 감정서를 썼다는 W는 이미 퇴직해서 이민을 갔고, 그가 쓴 감정서만 증거로 제출됐다. 그러면 감정서는 전문증거가 된다. W가 직접 말하는 게 아니라 서류에 담겨서 법정에 나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증거능력이 있는가? 있다. 왜? 전문법칙의 예외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감정서 같은 공신력 있는 분석기관의 문서는 증거능력이 있다는 예외가 우리 법 제314조에도 있고, 미국연방증거규칙 제803조(8)에도 있다. 이런 조항들이 없다면 우리는 모든 DNA 분석 결과를 낼 때 직접 쓴 사람을 대기시켜야 한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쉬운 일은 절대로 아니다. 

전문법칙의 예외 이론은 수사기관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장점을 가지고 있다. 증인을 직접 내지 않고도 증인의 진술을 제3자나 서면을 통해서, 혹은 비디오테이프를 통해서, 녹음테이프를 통해서 법정에 내고 그걸로 유죄판결을 받을 수 있는 유용한 장치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전부 증거법이고, 헌법 상 문제가 남아 있다. 미연방헌법 수정 제6조는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자를 피고인이 대면할 수 있는 권리, 즉, 대면권(right of confrontation)을 규정하고 있다. 우리 예로 바꿔 설명하면 피고인이 W를 대면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그게 보장되지 않으면 헌법 위반이라고 한다. 만약 이 대면권 조항을 곧이곧대로 적용하면 모든 전문법칙의 예외 조항은 다 위헌이 된다. 왜? 대면을 시켜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 앞에 데리고 와라. 내 앞에서 말하게 하라. 그러면 내가 기꺼이 죽겠다”는 1603년 영국의 장군 Walter Raleigh의 외침이 있었고, 그게 대면권이 되었으며, 미국 헌법 수정 제6조에 등기되어 있다. 

미국은 200년 동안 이 문제를 두고 골머리를 앓았다. 전문증거를 쓰기는 써야겠는데, 그러자면 헌법 위반이 된다. 대면이 옳은 것은 안다. 대면? 좋다. 하지만 어떻게 일일이 증인을 다 법정에 데려오는가 말이다. 이런 논쟁이 200년 동안 계속되다가 1980년 Roberts에서 매듭을 짓는다. “신용성이 있어서 예외적으로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경우, 헌법 상 대면권도 보장한 것이 된다” 라고 연방대법원이 설시한 것이다. 즉, 피고인에게 증인의 얼굴을 직접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증인의 진술이 일단 신용성 심사를 받았고, 그걸 통과했으면 별 문제가 안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DNA 분석결과보고서와 같은 중요한 증거가 법정에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당연히 나도 이 판결을 기초로 전문법칙을 썼고, 그 예외 이론을 썼고, 그간의 논의를 썼고, 결론을 내렸다. 전문법칙의 예외 규정을 맞추면 대면권도 보장된 걸로 친다, 라고 말이다. 그런데 Crawford가 이를 뒤집은 것이다. 어떻게 뒤집었겠는가. 짐작하시는 그대로다. 

“전문법칙이고 예외고 우리는 그런 거 모른다. 불리한 증인은 얼굴을 보여 줘라.” 라고 말이다. 

이로써 내가 쓴 논문은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1999년 여름 크로포드는 Lee라는 자가 자기 부인을 강간하려고 했다는 얘기를 듣고 펄쩍 뛰었다. 여러 바를 전전하면서 ‘Lee, 어디 있어? 알아?’ 라고 수소문을 하고 다녔다. 크로포드 부인은 보다 못해 크로포드를 Lee의 아파트로 안내했다. 그런데 주소를 잘못 알아서 다른 집을 눌렀는데도 Lee가 우연히 자기 집 문을 열었다. 크로포드와 부인은 Lee의 집으로 들어갔고, 크로포드와 Lee 사이에 말다툼이 있었으며, 크로포드가 Lee를 칼로 찔러 상해를 입혔다. 이게 사건의 전말이다. 

크로포드와 부인은 수차례 경찰 조사를 받았다. 두 사람이 말하는 바가 대부분 일치했다. 그런데 한 군데서 진술이 달랐다. 논점은, ‘크로포드가 칼을 들고 달려들 당시에 Lee가 칼을 들고 있었느냐?’로 모아졌다. 크로포드는 이 대목에서 그렇다, 고 대답했다. 즉, 상해한 것은 맞지만 정당방위라는 것이다. 반면에 부인의 진술은 약간 달랐다. 남편이 칼로 찌를 때 Lee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는데, 나중에 손을 꺼낼 때 보니까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부인의 진술에 따르면 크로포드는 정당방위를 한 게 아니라, 무기도 없는 자를 찌른 게 된다. 경찰이 부인의 진술을 그대로 녹음했고, 크로포드에게는 위험한 한 방(?)이 될 수 있는 증거였다. 

크로포드는 재판에서 ‘부부 간 증언거부권’을 행사한다. 즉, 부부는 다른 일방의 형사사건에서 진술할 수 없다, 는 워싱턴 주법 조항을 원용한 것이다. 그래서 부인은 법정에 나올 수 없었고, 대신 녹음테이프만 나왔다. 전문증거만 나온 것이다. 피고인 측 변호사는 바로 손을 들었다. 

“전문증거라서 증거능력이 없습니다.”

그러자 검사가 반박했다. 

“전문증거인 것은 맞지만, 이 테이프는 예외에 해당해서 증거능력이 있습니다.” 

“무슨 예외?” 

“증인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로서 전문법칙의 예외에 속합니다.” 

크로포드 사건에서 가장 신비로운 인물이 바로 부인이다. 부인은 자기 남편에게 무슨 애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남편 성질을 뻔히 알면서도 남편을 Lee의 아파트로 인도한 것이다. 번지수는 약간 틀렸지만, 그래도 마침 Lee가 기어 나오는 바람에 사단이 벌어졌다. 그렇다면 부인은 나중에라도 남편 편을 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심지어 잘 못 봤더라도 ‘저를 강간하려 했던 그 Lee라는 자가 손에 칼을 들고 있었어요. 그래서 남편이 별 수 없이 칼로 찔렀어요, 우리 남편이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닌데, 흑흑.’ 이렇게 흘러갔어야 맞다. 그런데 반대로 진실을 말해 버렸다. ‘저쪽은 칼도 들고 있지 않았는데, 남편이 칼로 찔렀어요’ 라고 말이다. 과연 이 진술은 믿을 만한가. 

크로포드 부인이 이상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이 진술은 전문법칙의 예외 이론에 의하면 믿을 만하다. 왜? 크로포드 부인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진술이기 때문이다. 미연방증거규칙 제804조(b)(3)에 나오는 얘기다. 부인의 진술대로라면 부인 자신도 상해죄의 공범이 된다. 정범인 남편을 Lee에게 안내한 사람이 바로 부인이기 때문이다. 부인은 상해죄의 방조범이다. 그걸 아는데도 불구하고 피해자 손에 칼이 없었다고 진술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믿을 만하다고 보아야 한다. 이게 제804조(b)(3)의 취지다. 

다시 공판으로 돌아와 보자. 

검사가 대답한다. 

“증인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로서 전문법칙의 예외에 속합니다.” 

판사는 검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부인은 못 나왔지만 자기 자신한테 불리한 내용인데도 경찰한테 말한 걸로 봐서 부인의 진술은 믿을 만하지. 증거로 받아도 되겠어.’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 결과 크로포드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크로포드의 변호사는 이 대목에서 큰 판을 벌이기로 작심한다. 부인의 얼굴을 보여주지도 않고, 부인의 진술을 증거로 쓰는 것은 헌법 위반이잖아, 워싱턴으로 가자,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결국 크로포드 사건은 연방대법원으로 갔고, 다음과 같은 판결을 얻어 냈다. 

“전문법칙이 중요한 게 아니라 헌법이 중요하다. 헌법 상 크로포드에게는 불리한 증인에 대한 대면권이 있다. 그런데 부인을 대면시켜 주지 않았으므로, 부인의 진술은 증거로 쓸 수 없다.” 

크로포드는 그렇게 자유의 몸이 되었다. 


사실 연방대법원은 크로포드를 구제해 주는 게 아니었다. 왜? 크로포드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이 아니다. 지금 이 사건에서 경찰이 부인을 증인으로 못 나오게 한 게 아니다. 불리한 증인인 부인을 경찰이 어디로 빼돌린 게 아니다. 크로포드 본인이 못 나오게 했다. 그래 놓고서는 ‘내 부인을 데려와라!!! 내 앞에 와서 얘기하게 해라!!!’ 이렇게 말하는 건 생떼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방대법원은 크로포드의 손을 들어줬다. 왜 그랬을까? 

연방대법원은 그만큼 진실 발견의 장으로서 법정을 중시한다. 진실은 법정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판사는 난데, 왜 경찰인 당신이 진술을 받아?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아니, 판사님, 제가 증인을 못 나오게 한 게 아닌데요, 피고인이 못 나오게 한 건데요?’ 

‘그건 그거고. 어쨌든 증인이 못 나왔잖아? 그런데 왜 증인 진술이 증거로 나와? 당신들이 녹음한 거 아냐? 그런 거 하지 말란 말이야. 당신이 판사야, 내가 판사지? 뭐든 내 앞에서, 피고인 보는 앞에서 얘기하란 말이야. 왜 자꾸 테이프니 문서니 이딴 데 적어서 증거로 내밀어? 그건 우리 재판이 아니야. 우리가 무슨 대륙법이야?’ 

그렇다. 중요한 건 여기다. 연방대법원이 무슨 말을 길게 하든, 무슨 이유를 덕지 덕지 붙이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연방대법원 판사들 속에 있는 확신이다. 무엇일까? 바로 미국법은 대륙법과 다르다는 사실이다. 사실 크로포드 판결의 나머지 구절들은 전부 그야말로 사족이다. 모두 들러리다. 연방대법원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단 한 문장으로 귀결된다. 

‘(대면권을 강조하는 이유는) 대륙법에서처럼 증인을 신문해서 공판 전에 진술을 받아내고 그걸 법정에 증거로 내는 일을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preventing the government from using hearsay statements at trial if the statements were obtained through a method that resembles a civil-law mode of interrogation)(Crawford, 541 U.S. at 51-52) 

연방대법원이 대면권을 강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륙법 방식으로 하지 말라는 얘기다. 경찰이 뭘 적었다가 증거로 내는 것? 그게 대륙법이다. 반면에 우리는 우리 식이 있다. 그게 바로 증인을 데려오는 것이다. 이게 연방대법원이 하고 싶은 말이다. 


이에 대해 누군가 반론을 제기한다. 

‘잠깐만요, 판사님. 우리도 예전에 공판 전에 진술을 받아서 증거로 낸 적이 있습니다.’ 

‘뭐?’ 

‘판사님이 그렇게 싫어하시는 대륙법적인 예심절차를 도입한 적이 있다고요. 르네상스 시댄데요, 왜 그때는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 전부 다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뭐? 우리가 조서재판을 했다고?’ 

연방대법원은 깜짝 놀란다. 그래서 부랴부랴 르네상스 시대 법제사 책을 뒤진다. ‘우리가 대륙식으로 조서재판을 했다니!’ 혀를 끌끌 차면서 연구원들을 동원해서 사료를 뒤진 것이다. 그 결과 발견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비로소 연방대법원은 안도의 한숨을 쉰다. 

‘거 봐. 아니잖아. 우리가 한 건 조서재판과는 차원이 다르대잖아.’ 

연방대법원은 의기양양했다. 그래서 아예 각주로 달아 세상에 공표하는 것이다. 


‘이상은 J.H. Langbein, 『Prosecuting Crimes in the Renaissance』 참조’ 라고 말이다. 

나는 그 각주에 나온 책을 대출해서 읽어 보았다. 

그게 이 책을 번역한 계기다. 


그런데 연방대법원이 한 가지 틀린 점이 있다. 

이 책은 앞부분에서 

“영국에서도 한 때 문서로 공판 전에 증인의 진술을 적었지만 그걸 그대로 증거로 쓰지는 않았고, 오히려 공판정에 증인을 불러서 구두로 진술하게 하는 방식을 썼다” 

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건 맞다. 연방대법원이 읽고 싶어하는 바 그대로다. 하지만 문제는 연방대법원 혹은 그 소속 연구원들은 여기까지만 읽고 덮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무슨 말이냐면, 그 다음에는 더 엄청난 사실이 나오는데, 그게 더 중요하다. 저자는 연방대법원이 이름만 듣고도 몸서리쳐 하는 그 고약한 대륙법이 사실은 나쁜 법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적과 선을 긋다가 엉뚱하게 적을 추켜세우기에 이르는 것이다. 

독자들도 들어 봤을 것이다. 캐롤리나라고. 캐롤리나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알 5세가 만들어 반포한 16세기 형법 및 형사소송법이다. 

보통 교과서에는 그게 악법으로 나온다. 규문절차의 금자탑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란다. 고문과 자백을 중시하는 법은 맞지만 악법은 아니란다. 합리적인 법이고, 개혁법이란다. 19세기까지 독일 법학자들의 사랑을 받던 법이고, 자랑스러워 하던 법이란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미연방대법원이 경멸해 마지않던 그 대륙식이라는 것이 사실은 미개하고 잔인한 제도가 아닐 수 있다. 아니, 아니다. 르네상스 시대 대륙에서도 나름대로 합리적인 재판을 했다. 그 이후로도 마찬가지다. 미연방대법원 판사들이 짐작하는 것처럼 르네상스의 갈림길에서 영국은 천국으로 가고 독일이나 프랑스는 지옥으로 간 게 아니다. 

나는 책을 덮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게 내가 이 책을 번역하고자 마음먹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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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균 교수님의 설명에 의하면, 미국 유학 시절 전문법칙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준비하다 크로포드 판결 때문에 국내 취업이 좌절되고 유학생활이 연장되는 곤혹스런 상황을 맞이합니다. 크로포드 판결은 미국법이 대륙법과 다르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획기적인 판결이라고 소개합니다. 미국법과 대륙법이 뭐가 그렇게 다르기에 연방대법원은 이런 판결을 만들어낸 걸까요? 

영미법의 사법제도는 배심원에 의한 재판을 전제로 한 제도이고, 대륙법의 사법제도는 관료(직업법관)에 의한 재판을 전제로 한 제도입니다. 그로 인해 영미법은 수사기록이 없는 재판이, 대륙법은 수사기록 위주의 재판이 이루어집니다.  

영미법에서는, 법을 모르는 배심원들에게 복잡하고 알아듣기 힘든 전문용어들이 잔뜩 쓰여있는 수사기록을 재판하는 데 참고하라고 주는 건 의미없는 일입니다. 간혹 글을 못 읽는 배심원이 있을 수도 있구요. 그래서 재판에 수사기록이 나오지 않고, 증인들이 우르르 나옵니다. 재판이 이렇게 진행되니 수사기관도 굳이 수사기록을 만들지 않습... 아니, 안 만드는 건 아닙니다. 수사기록을 만들긴 만들고 그 중 일부가 재판에 나오긴 합니다만(크로포드 사건에서도 경찰이 크로포드 부인을 조사하면서 음성녹음물을 작성하였고 이게 재판에 증거로 등장했죠), 이는 어디까지나 단지 수사 자체를 위한 목적으로, 즉 수사진행 상황을 그때그때 기록해두는 게 주된 목적(혹시나 수사담당자가 변경될 수 있고, 미제 사건으로 남을 경우 언젠가 재개될 수사를 위해서도 수사기록 작성이 필요합니다)이지 재판에서 증거로 쓰려는 게 주된 목적은 아닙니다. 

이렇게 영미법 재판에서는 수사기록이 없는 대신 증인들이 직접 법정에 나와 증언하고 배심원들은 이 말들을 듣고 재판을 합니다. 다만, 필요한 증인이 재판에 다 못 나오는 경우가 분명히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때는 크로포드 부인의 음성녹음물처럼 증인 대신 수사기록이 증거로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이 수사기록은 간혹 신용성이 없어 증거가치가 극히 적은 것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증거를 배심원에게 바로 주면 법을 모르는 배심원들이 그 증거가치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속아서 엉뚱한 판단을 할 수 있기에, 이를 막고자 전문법칙이란 걸 만들어 증거가치가 적은 수사기록들을 걸러내고 배심원들에겐 소수의 양질의 증거만 제공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배심재판에는 시간과 자원이 과도하게 소요되기 때문에 모든 사건의 재판을 배심재판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실 미국에선 95% 이상의 형사사건이 플리바게닝 등 정식재판이 아닌 간이한 방법으로 종결되고, 극히 일부의 사건만 배심재판이나 직업법관의 재판으로 진행됩니다. 직업법관이 하는 재판의 경우에도 기본적인 재판모델이 배심재판이기 때문에 배심재판에서의 원리가 대부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에 비해 대륙법에서는, 일찌감치 예심제도가 발달하였습니다. 법률전문가인 직업법관이 재판을 하지만, 직업법관이 아주 많지 않은 다음에야 모든 사건을 다 꼼꼼히 재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재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재판절차 이전에 예심절차를 둡니다. 예심절차를 담당하는 예심판사 또는 (예심판사 제도가 없는 경우) 검사가 재판에 준하는 심리를 미리 해보고 재판을 할 만한 사건만 골라서 재판에 보냅니다. 예심판사나 검사도 자신이 모든 사건의 심리를 다 할 여력은 안 되어 경찰에게 조사를 위임하는 방법으로 예심을 진행합니다. 예심은 재판을 준비하는 절차이기 때문에 예심판사나 검사는 자신이 확인한 내용을 기록으로 만들어(경찰의 수사기록도 포함) 재판에 보냅니다. 이 기록은 재판에서 바로 증거로 쓰이기도 하고, 예심 과정에서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심리를 하고 제대로 판단을 했는지를 재판법원 판사나 상급기관에게 알리고 심의를 받는 목적도 있기 때문에 비교적 꼼꼼한 내용과 방대한 분량으로 만들어집니다. 이 예심기록이 사실상의 수사기록인 거죠. 

재판을 하는 판사는 이렇게 꼼꼼하고 방대하게 만들어진 수사기록이 있으니 정작 재판은 간이한 방법으로 진행합니다. 이미 같은 사법관인 예심판사나 검사가 열심히 사건을 들여다보고 필요한 사실을 확인하고 재판에 보낸 것이기 때문에 재판을 하는 판사가 필요한 증인을 죄다 다시 재판에 부를 필요가 없는 겁니다. 즉, 수사기록은 각 서류들을 증거와 증거 아닌 것으로 분류할 필요도 없이 기록 통째로 증거로 활용되고, 이런 구조에서는 전문법칙도 필요가 없는 겁니다(다만, 대륙법에도 가급적이면 재판에서 너무 수사기록에만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말라는 원칙이 있고, 이를 '직접주의' 내지 '직접심리주의'라고 부릅니다). 이런 방법을 통해 영미법보다는 많은 사건이 정식재판에서 처리될 수 있습니다. 물론 프랑스와 독일에도 미국의 플리바게닝을 본딴 제도들이 존재하지만, 이를 통해 처리되는 사건은 미국 플리바게닝 사건에 비하면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편입니다. 

한편, 대륙법에도 배심재판과 닮은 참심재판 제도가 있습니다. 직업법관이 사실판단 과정에서 배제되어 있는 배심재판과 달리, 참심재판에는 직업법관도 일반인 참심원들과 함께 재판부를 구성해서 사실판단을 할 권한이 있습니다. 또, 직업법관은 수사기록도 미리 볼 수 있기 때문에 참심원들에게 직업법관이 갖고 있는 사건 관련 지식과 심증이 그대로 전달되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직업법관이 결론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겁니다. 더구나 만장일치로 평결을 하여야 하는 미국 배심재판과 달리, 대륙의 참심재판은 대개 다수결 평결 제도이기 때문에 직업법관의 판단과 크게 다른 결론이 나기 힘든 구조이기도 합니다. 

영미법이나 대륙법이나 각자의 나라에서 나름 잘 굴러가고 있습니다. 역자 서문의 마지막 말처럼, 영미법과 대륙법 중 무엇이 더 낫고 무엇이 못하다 라는 우열관계는 있을 수 없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대륙법을 그렇게 너무 무시하거나 미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륙법도 나름의 역사와 이유가 있어 지금의 제도를 갖고 있는 것이거든요. 16세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구요. 결국 각 나라마다 특유의 전통과 관습이 현재의 제도에 영향을 미친 것이고, 각 제도마다 각기 장단점을 다 갖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한 쪽만 지고지선이라고 맹종하는 건 현명하지 못한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크로포드 판결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영미법 입장에서는 대륙법처럼 전문법칙도 없고 수사기록을 그대로 재판에 활용하는 제도는 참 미개하고 수준 낮은 제도라고 봅니다. 어떻게 판사가 사건관계인 진술도 안 들어보고 재판을 하느냐는 거죠. 그래서 전문법칙의 예외 영역이 자꾸 넓어지면서 점차 대륙법을 닮아가는 재판실무가 마음에 안 들어 헌법상의 대면권 규정을 들어 이러한 시류에 제동을 걸게 된 겁니다. 

그러면 크로포드 이후의 미국 전문법칙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까요? 김희균 교수님의 다른 논문 "형사증거법의 재조명II: 크로포드 이후 전문법칙의 미래"(형사법연구 제25권 제1호, 한국형사법학회, 2013)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크로포드 판결에서 지적한 것처럼 모든 증인을 죄다 법정에 불러 피고인의 대면권을 보장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이고 제도 운영상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결론입니다. 연방대법원은 이에 대한 우회방법으로, 크로포드 판결의 적용범위를 제한하는 새로운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즉, 피고인의 대면권을 보장하여야 하는 진술은 '증언으로서 가치를 가지는(testimonial) 진술”(증언적 진술)에 제한되고, 그렇지 않은 진술(비증언적 진술)에 대해서는 피고인 앞에 증인을 부르지 않아도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증언으로서 가치를 가지는 진술'의 의미에 대해 연방대법원은, 사건관계인이 장차 재판에서 진술할 것을 염두에 두고 국가기관 앞에서 행한 진술을 주로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크로포드 이후의 판례들은 이러한 진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2006년 Davis v. Washington 사건에서는 범행 당시 피해자의 911 신고전화 진술은 위급한 상황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 것이지 장차 증언으로 쓰일 것을 염두에 두고 한 진술이 아니므로 비증언적 진술이라고 보았고, 2006년 Hammond v. Indiana 사건에서는 가정폭력 사건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격리한 후 피해자로부터 작성받은 진술서는 피해자가 이미 위험한 상태에서 벗어난 이후의 진술이어서 장차 증언으로 쓰일 것을 예상한 진술이므로 증언적 진술이라고 보았습니다. 2009년 Melendez-Diaz v. Massachusetts 사건에서는 마약 딜러로부터 압수한 물건이 코카인이라는 감정서의 내용은 증언적 진술이므로 감정인이 법정에 나와야 증거능력이 있고, 2011년 Bryant v. Michigan 사건에서는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자신에 대한 총격 직후 경찰에게 말한 피해진술은 피해자를 기준으로 한다면 이미 범행 후의 진술이기는 하지만 아직 다른 사람들에 대한 총격의 위험은 남아 있는 상황이어서 이 역시 위급상황에서의 진술로 볼 수 있으므로 비증언적 진술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2012년 Williams v. Illinois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질에서 채취한 정액의 DNA와 피고인의 DNA를 비교한 감정서 내용이 비증언적 진술이라고 보았는데, 이는 아직 진범이 특정되기 전에 범행현장에서 채취한 DNA와 여러 사람의 DNA를 비교한 결과에 불과할 뿐 특정인을 처벌할 목적으로 만들어 낸 증거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 책의 주제와 비슷한 내용으로 법제사에 관심이 있는 분에게는 김희균 교수님의 다른 번역서 『대륙법 전통 - 비교를 통해 알아보는 대륙법과 영미법』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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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4일 금요일

[성경] 사도 바울의 원래 직업은 검사?

댓글 3개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12/24/2021 08:00:00 오후 라벨: 검사 , 바울 , 사법제도 , 성경


얼마 전 어느 목사님이 설교 중에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별의별 직업인들이 다양하게 등장하는데, 그 중엔 검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도 있다고. 바로 사도 바울이 원래 검사였다는 겁니다.
바울이 검사라니,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말이라 의아했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를 찾기 위해 신약성경의 사도행전을 한번 뒤져봤습니다.


5:34 그런데 가말리엘이라는 한 바리새파 사람이 공회 가운데 일어났습니다. 그는 율법학자로서 모든 사람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가말리엘은 바울의 스승입니다. 바울은 유명한 율법학자인 가말리엘로부터 율법을 배웠습니다. 여기서 율법이란 구약성경의 모세 5경을 가리키는데, 지금 서양의 법률이란 중세 교회법에서 비롯된 것이고, 교회법이란 바로 이 성경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결국 바울은 요새로 따지면 법대에서 법을 공부한 것이죠.


7:1 대제사장이 스데반에게 "사람들이 고소한 내용들이 사실이냐?" 하고 물었습니다.
7:58 그를 성 밖으로 끌어낸 후 돌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목격자들은 자기들의 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청년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8:1 사울은 스데반이 죽게 된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성경에서 바울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던 스데반이라는 사람이 유대인들의 회당에 끌려와 대제사장 앞에서 재판을 받습니다. 율법(종교)이 법(법치, 재판)인 세상이었기 때문에 대제사장이 재판을 합니다. 이 재판에서 스데반은 군중들로부터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는 형벌을 받게 되는데, 군중들은 스데반에게 돌을 던지기 직전에 바울(사도로 활동하기 전에 불리던 이름이 사울) 앞에 옷을 벗어두었고, 바울은 스데반이 마땅히 죽을 짓을 한 거라 생각하며 그저 구경만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바울 앞에 옷을 벗어두는 행동을 하고(어느 글을 보니 이러한 행동은 스데반에 대한 형벌 집행에 관해 바울이 증인이 되게끔 하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바울이 이를 지켜보는 장면에 비추어 보면, 바울도 일반인으로서가 아니라 무언가 공적인 지위를 갖고 이러한 재판절차에 관여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8:3 그러나 사울은 교회를 파괴하면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끌어내 그들을 감옥에 보냈습니다.

바울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점점 명확하게 서술되기 시작합니다. 유대교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기독교인이라는 이단들을 붙잡아 감옥에 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즉, 바울은 현행법에 따라 이단이라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체포해서 구속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검사나 경찰에 해당될까요?


9:1 한편 사울은 여전히 주의 제자들을 위협하며 그들을 죽일 기세로 대제사장에게 나아가 다메섹의 여러 회당들에 써 보낼 공문을 요청했습니다. 거기서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잡아다가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기 위해서였습니다.

바울은 대제사장에게 공문을 요청합니다. 이 공문으로 다른 지역에 있는 이단들을 잡아올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은 검사나 경찰이 범죄자들을 체포하거나 구속하기 위해 법관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는 모습과 흡사하긴 한데, 직접 현장에 달려나가 범죄자들을 검거하는 장면을 봐서는 검사보다는 경찰에 가까워 보입니다.


22:2-5 그러자 바울이 계속 말했습니다.
"나는 길리기아 지방의 다소에서 태어난 유대 사람이지만 이 도시에서 자랐습니다. 나는 가말리엘의 지도 가운데 우리 조상들의 율법으로 엄격한 훈련을 받았고 오늘 여기 모인 여러분 못지않게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핍박하며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모두 잡아다가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그것은 대제사장과 모든 공회원들이 증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심지어 그들로부터 다메섹에 있는 형제들에게 보낼 공문을 얻어 냈고 그곳에 있는 신자들을 붙잡아 예루살렘으로 데려와 처벌받게 하려고 다메섹으로 떠났습니다.
26:9-12 저도 한때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반대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해야 한다고 확신했던 사람입니다.
제가 예루살렘에서 했던 일이 바로 그런 일입니다. 대제사장들의 권한을 받아 많은 성도들을 감옥에 가두었고 그들이 죽임을 당할 때 찬성했습니다.
여러 회당들을 다니며 그들을 여러 번 처벌했으며 강제로 그들에게 모독하는 말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들에게 격분한 나머지 다른 나라 도시까지도 찾아가 핍박했습니다.
그런 일로 다니던 가운데 나는 대제사장들의 권한을 위임받아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기독교를 핍박하던 바울이 회심하여 오히려 기독교를 전파하는 일을 하다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고, 법정에서 자신에 대해 변론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바울은 대제사장들로부터 권한을 받아 범죄자들을 체포하고 그들의 죄를 드러내어 형벌을 받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앞서 스데반이 돌로 쳐죽임을 당하는 형벌을 받는 현장에 관여한 장면을 보면 형 집행이라는 업무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당시 중동 지방의 제도와 지금의 우리 제도를 비교한다는 건 좀 말이 안 되는 억지스런 일이긴 합니다. 그래도 굳이 비교를 해본다면, 유명한 율법학자로부터 교육을 받고 대제사장으로부터 직접 권한을 받아 일을 한 점에 비추어 고위급 공무원이라 볼 여지가 있고, 형 집행은 검사의 고유업무라는 점을 봤을 때, 일응 바울이 사도가 되기 전에 가졌던 직업은 검사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한번 팩트체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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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29일 월요일

프랑스 검사의 지위에 대해 설명하는 글 두 편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11/29/2021 04:29:00 오후 라벨: 검사 , 독립성 , 사법관 , 프랑스 사법제도


프랑스에서는 검사의 지위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판사와 함께 사법관(magistrat)이라 불리면서 판사와 마찬가지의 사법기관으로 취급되고는 있지만, 독립기관임에 의문이 없는 판사와는 달리 검사는 (정치인인 대통령의 참모인) 법무부장관의 지휘감독을 받는 지위에 있기에 항상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에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입니다. 

매번 정부가 바뀌거나 법무부장관이 바뀌면 거의 반복적으로 '검찰 개혁'이라는 정책이 화두가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2020. 7. 7. 새로 취임한 36년 경력 변호사 출신의 법무부장관 Éric Dupond-Moretti 역시 검찰 개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관련 뉴스]

그래서 독립성이 없는 검사를 판사와 동일한 지위로 취급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견해, 검사가 판사처럼 제대로 사법기관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독립성을 주어야 한다는 견해 등이 주장됩니다. 이 주제에 관한 글 두 편을 소개.........할 능력은 안 되어 링크만 걸어놓습니다. 
Michel Huyette 판사의 글은 전자의 입장에서 검사는 판사와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관계라는 의견을, Pierre Tcherkessoff 박사의 글은 후자의 입장에서 판사와 검사는 둘 다 함께 섞어서 쓸 수 있는 기름이라는 의견을 각각 말하고 있습니다.


Michel Huyette, "LE STATUT DU MINISTÈRE PUBLIC, OU L’IMPOSSIBLE MÉLANGE DE L’HUILE ET DE L’EAU" (원문은 여기)

Pierre Tcherkessoff, "LE STATUT DU PARQUET EST-IL COHÉRENT AVEC L’ÉVOLUTION CONTEMPORAINE DU MINISTÈRE PUBLI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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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25일 목요일

프랑스 대학생들의 중국인 모욕 사건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3/25/2021 04:31:00 오후 라벨: 검사 , 모욕죄 , 법원 , 프랑스 사법제도
오늘자 르몽드 기사입니다.
 
"사람들이 볼 수 있다는 걸 잊었습니다" : 다섯 학생이 트위터에서 공개적으로 중국인들을 모욕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 J’avais oublié que tout le monde pouvait voir » : cinq étudiants jugés pour injures publiques contre « les Chinois » sur Twitter

법과대학, 시앙스포, 기술학교, 정보통신학교, 고등기술학교 등에 재학 중인 20대 프랑스 대학생 5명이 트위터에서 중국인에 대한 혐오 발언을 한 혐의로 기소되어 파리 법원 법정에 서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프랑스도 코비드-19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작년 10월에는 두 번째로 전국 봉쇄령이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바로 그때 이 젊은이들은 그에 따른 불만을 코로나의 진원지 중국과 중국인들에게로 쏟아낸 것이라고 합니다.  
이 법정에서 검사는 코비드-19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을 중국인 공동체라는 구체적인 실체로써 대체한 것이라고 표현하면서, 이들에게 징역 7년을 구형하였습니다. 

대상자 개개인을 특정하지는 않은, 집단표시 내지 집합명칭에 의한 모욕죄 사안이네요. 인종, 출신, 국적 등에 관한 차별적 언동은 결코 가볍지 않은 범죄입니다. 
이들에 대한 판결은 5월 26일 선고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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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9일 일요일

프랑스 검찰의 독립성 논란 뉴스 ; 국가금융검찰 검사장의 청문회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8/09/2020 12:05:00 오전 라벨: 검사 , 검찰 , 금융전담 검찰 , 독립성 , 프랑스 사법제도
2011년 2월 2일자 "검사의 지위 관련 프랑스의 최근 논의 동향"라는 제목의 글을 시작으로, 저는 이 블로그에서 '프랑스 검찰의 독립성'이라는 주제에 관한 프랑스 내의 논의상황을 꾸준히 소개해 왔습니다. 똑같은 얘기를 매번 반복하는 것 같아 좀 그렇지만, 그 논의상황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의 검찰과 관련한 논의주제는 한마디로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어서 폐해가 크니, 그 권한을 줄이는 방향으로 검찰개혁을 이루어야 한다'이죠. 프랑스에서의 검찰과 관련한 논의주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테러범죄, 조직범죄, 금융범죄 등 국경을 넘나들며 프랑스 국내에 빈발하는 중대범죄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 검찰에 힘을 주자', 그리고 다른 하나는 '검찰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도록 법무부장관의 검찰 지휘권을 줄이고 법무부의 검사 인사권도 줄이자'입니다. 
얼핏 보면 둘 다 검찰에게만 유리하고 좋은 일 만들어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취지는 이겁니다. 지금 현실적으로 검찰이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데 이에 상응하여 검찰의 권한이 커질수록 그런 권한을 이용하려고 정치권력이 부당하게 검찰권 행사에 관여할 위험도 커진다, 그러니 검찰이 정치권력의 간섭을 받지 않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자는 것입니다. 
최근에도 프랑스 검찰의 독립성 논란과 관련한 뉴스가 또 눈에 띄어 소개합니다. 


2017년 2월 14일자 "프랑스 국가금융검찰은 포화상태?"라는 제목의 글에서, 2014년 2월에 창설된 프랑스의 금융범죄 전담 검찰청인 '국가금융검찰(Parquet National Financier, 약칭 PNF)'의 3년간의 수사실적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 글에서 당시 유력 대통령선거 후보인 프랑소와 피용(François Fillon) 전 총리에 대한 공금유용 사건의 예비수사를 국가금융검찰이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이 국가금융검찰에서 수사한 사건 중 "절반에 가까운 사건은 다른 검찰청으로부터 이송받은 사건이고, 29%는 공공기관으로부터 직접 넘겨받은 사건이며, 8%는 피용 전 총리 사건처럼 국가금융검찰이 처음부터 수사를 시작한 사건이다"라는 내용도 소개하였습니다.
이 당시 국가금융검찰을 이끈 수장은 엘리안 울레뜨(Éliane Houlette) 검사장(procureur de la République financier)이었습니다. 그는 2014년 창설멤버로 시작해 2019년까지 국가금융검찰의 검사장으로 재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울레뜨 검사장이 2020년 6월 10일 하원의 '사법권 독립 침해 관련 조사위원회(La commission d'enquête sur les obstacles à l'indépendance du pouvoir judiciaire)'에 출석해서 했던 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청문회에 출석하여 발언하는 울레뜨 검사장. 출처 :https://www.dalloz-actualite.fr/flash/affaire-houlette-ou-l-hypocrite-debat-sur-l-independance-de-justice-relance#.XyahG_gzbFR]

이 조사위원회는 Jean-Luc Mélenchon이 이끄는 극좌정당인 'Groupe La France Insoumise(LFI)' 주도로 2020년 1월 7일 하원에 설치되었습니다. 이 정당은 2018년에 자신들이 정치적인 재판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사법권 독립 문제를 전반적으로 조사하겠다는 명분으로 이 위원회 설치를 주장한 것이라 합니다. 위원회 운영기간은 6개월인데, 코로나 사태로 두 달 간 휴업을 한 탓에 9월 7일까지 활동기간이 연장되었구요. 이 위원회는 6월까지 François Molins 검찰총장, Rémy Heitz 파리지방검찰청 검사장, 군경찰청장, 국가경찰청장을 비롯해 여러 명의 사법관 등 총 20여 명을 소환해 청문회를 진행했고, 7월 들어서는 Catherine Champrenault 파리고등검찰청 검사장, Christophe Castaner 내무부장관, Nicole Belloubet 현 법무부장관, Christiane Taubira 전 법무부장관 등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하였습니다. [2020년 6월 24일자 LCI 기사 "Quelle est cette commission sur l'indépendance de la justice qui a relancé l'affaire Fillon ?"]
청문회에 소환된 사람들의 직책을 보니, 가히 초호화판 청문회네요. 우리나라에 이런 청문회가 열렸다면 전국이 몇 달 내내 들썩들썩 했겠는데요. 그런데 프랑스 언론의 보도 빈도를 보면, 제 느낌으론 퍽 썰렁해 보입니다. 

울레뜨 검사장은 2017년 국가금융검찰을 이끌며 수사한 피용 전 총리 부부를 위장고용 혐의로 기소하였고, 이 사건은 최근 1심에서 유죄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즉, 사르코지 대통령 시절인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총리를 역임한 피용은 2016년 11월 중도우파 공화당의 대통령선거 후보로 선출된 뒤, 하원의원 시절 배우자인 페넬로페 피용을 보좌관으로 위장취업시켜 공금을 유용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다, 대선 1차 선거에서 패배한 후 기소되었습니다. 1심인 파리지방법원은 2020년 6월 29일 피용에게 징역 5년과 이 중 3년에 대해서는 집행유예를 선고했고, 함께 기소된 페넬로페에 대해서는 공범임을 명시하며 징역 3년의 집행유예를 선고하였으며, 이 부부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였습니다. 페넬로페가 1986년부터 2013년까지 피용의 보좌관으로 등록해 받은 세비는 68만 유로에 달하고, 자녀까지 합하면 100만 유로가 넘는 공금을 취득하였다고 합니다. 피용 전 총리는 당시 올랑드 대통령이 이끌던 집권 사회당의 인기가 떨어져 대선에서 당선이 유력하였으나 이 사건이 불거지면서 대선에서 3위로 밀려나 결선 진출이 무산되었고, 결국 무소속 후보이던 마크롱 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였습니다. [2020년 6월 30일자 뉴시스 기사 "'가족 허위 보좌관 채용' 피용 전 총리에 징역 5년"]

아무튼 뒷배경은 이렇고, 이번 6월 10일 이 조사위원회의 청문회에 출석한 울레뜨 검사장은 이런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 그 발언 요지는 '피용 전 총리 사건을 수사할 때 상부에서 이런저런 압력과 간섭을 받았다'이고, 이를 보도한 언론의 논조는 '정치권이 이 사건에 개입하여 검찰의 독립성이 위협받았다'는 것입니다. 
울레뜨 검사장은 "고검장(parquet général)으로부터 '수사와 관련하여 일상적으로(au quotidien dans l’action publique)' 간섭을 받으며 '매우, 매우 많은 요구(très, très nombreuses demandes)'를 받았다", "그 요구들은 '매우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것(d’un degré de précision ahurissante)'이었고 '나는 그것을 심각한 압력으로 느꼈다(Je les ai ressenties comme une énorme pression)'", "고검장은 조사결과에 관해 최대한 빠른 '정보보고(remontées d’informations)'를 원했고, 때로는 '다음날 11시 전까지(avant 11 heures le lendemain)' '전날의 수사상황(les actes de la veille)'을 보고할 것을 요구했다", "'조사결과와 피의자의 진술내용 등 일상적인 수사의 세부사항에 관해 2-3일 간격으로 요구가 있었다(Les demandes de précisions, de chronologie générale - tout ça à deux ou trois jours d’intervalle -, les demandes d’éléments sur les auditions, les demandes de notes des conseils des mis en cause…)'. 이에 대해 '나는 10쪽에 이르는 자세하고 명확한 내용의 상세보고서를 작성했다(Les rapports que j’ai adressés, je les ai relus…. Il y a des rapports qui étaient circonstanciés, qui faisaient dix pages, précis, clairs, voilà)'. '나는 질문은 할 수 없었고, 그건 매우 엄격한 방식의 통제였다(On ne peut que se poser des questions. C’est un contrôle très étroit…)'"라는 등의 내용으로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면 울레뜨 검사장은 자신이 압력으로 느꼈다는 그러한 요구에 대해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기사 내용을 보면 울레뜨 검사장은 그러한 요구에 대해 반발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대부분 이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울레뜨 검사장은 피용 전 총리 사건에 대해 예비조사(enquête préliminaire)를 진행하고 있을 당시 상부로부터 예심수사(information judiciaire)로 진행하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합니다. 즉, 2017년 2월 15일 "고검장의 연락을 받고 3명의 동료와 함께 고검장을 방문하였는데, 이는 내가 선택한 수사절차 때문이었다. 고검장은 절차를 바꿔 예심수사를 개시하라고 하였다(J’ai été convoquée au parquet général - j’y suis allée avec trois de mes collègues, d’ailleurs - parce que le choix procédural que j’avais adopté ne convenait pas. On m’engageait à changer de voie procédurale, c’est-à-dire à ouvrir une information judiciaire)"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9일 후인 2월 24일 울레뜨 검사장은 예심수사를 개시하는 데 동의하였음을 인정합니다. [2020년 6월 19일자 Le Figaro 기사 "L’ex-procureure qui a poursuivi François Fillon sème le doute", 2020년 6월 22일자 Dalloz 기사 "Affaire Houlette ou l’hypocrite débat sur l’indépendance du parquet relancé"]

국가금융검찰은 전국을 관할지역으로 하지만 그 조직 자체는 파리지방검찰청에 설치되어 있는데, 특이하게 그에 대한 지휘감독자는 파리고등검찰청 검사장(procureur général près la cour d’appel de Paris)입니다. 따라서 울레뜨 검사장이 자신에게 압력을 가했다고 지칭하는 대상자는 당시 파리고등검찰청 검사장인 까트린 샹프르노(Catherine Champrenault)입니다. 샹프르노 고검장은 한때 사회당의 대선 후보이기도 했던 Ségolène Royal의 측근이었고, 그와 사실혼 관계에 있었던 올랑드 대통령에 의해 고검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법무부장관은 Jean-Jacques Urvoas였습니다.  


[울레뜨 검사장에 이어 역시 하원 청문회에 출석한 샹프르노 고검장. https://www.lefigaro.fr/actualite-france/affaire-fillon-la-procureur-generale-nie-les-pressions-20200702]

그러면 울레뜨 검사장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샹프르노 고검장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7월 2일 같은 청문회에 출석한 샹프르노 고검장은 울레뜨 검사장의 주장을 부인합니다. "다른 사건에서 내가 검찰의 위계조직체제에 따라 지휘감독을 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나는 피용 사건에 관하여 법무부 형사국 또는 행정부의 어떠한 지시도 받지 않았고, 이 사건에 영향을 줄 만한 법무부장관이나 행정부의 어떠한 요구도 받은 적이 없다(Je vous le dis solennellement, je n’ai reçu dans l’affaire Fillon, comme dans tous les autres dossiers relevant de mon contrôle hiérarchique, aucune instruction de la direction des affaires criminelles et des grâces, aucune instruction du pouvoir exécutif et je n’ai jamais relayé une demande du garde des Sceaux ou du pouvoir exécutif pour influer sur une procédure.)", "정보보고를 하라고 요구한 경우는 4건이 있었는데, 법무부로부터 2 건의 요구가 있었고, 내가 요구한 것이 2건이었다. 나머지 9건의 정보보고는 모두 국가금융검찰의 자발적인 것이었다(Il n’y a eu que quatre demandes de remontées d’information, deux de la part de la justice, deux à ma demande. Neuf autres étaient spontanées)." [2020년 7월 3일자 Le Figaro 기사 "Affaire Fillon: la procureur générale nie les pressions"]


결국 이 뉴스의 쟁점은 이렇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1. 예비수사를 예심수사로 바꾸라는 고검장의 지시는 적정한 것이었는가?
  ---> 프랑스법상 예비수사는 일종의 내사이고, 공식적인 수사를 벌이거나 압수수색과 같은 강제수사가 필요한 경우에는 예심수사판사에 의한 예심수사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예비수사를 예심수사로 진행하라는 지시는, 수사를 더 본격적으로 하라는 의미이죠. 그러한 지시의 속뜻까지야 알 수 없지만,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유명 정치인의 혐의를 조사하는 데 내사 정도로 어정쩡하게 진행하기보다 공식수사로 전환하여 제대로 수사하라는 게 형식적으로는 문제될 게 없는 지시로 보입니다. 더구나 예심수사'판사'가 진행하는 예심수사가 예비수사보다는 공정성 측면에서도 더 바람직해 보이기도 하구요.    

2. 예심수사로 진행하라는 지시는 그렇다치고, 울레뜨 검사장이 주장하는 것처럼 샹프르노 고검장의 매우 타이티한 지휘감독 방식(이를테면 빈번하고 자세한 내용의 정보보고 요구)이 고검장의 지휘감독 방식으로서 적정한 것이었는가?
  ---> 글쎄요, 다른 사건에 비해 피용 전 총리 사건에서 유독 이런 부분에서 과도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울레뜨 검사장이 반감을 가졌던 것이겠지요. 그래도 수사대상자의 네임밸류에 비춰볼 때 그 정도가 무슨 문제냐, 당연한 거 아니냐는 샹프르노 고검장의 항변도 이유는 있어 보입니다.   

3. 샹프르노 고검장의 행위는 법무부장관, 더 위로는 엘리제궁으로부터의 부당한 수사 간섭에 따른 것인가? 
  ---> 이 부분이 이 사건의 핵심쟁점입니다. 당시 사회당 정부가 검찰수사에 영향력을 가해 공화당 대선 후보를 낙마하게 한 것인지 여부입니다. 다만, 이 부분은 현재까지는 추측만 있을 뿐입니다. 아무리 법무부장관이 대통령의 참모이더라도, 아무리 고검장이 대통령의 배우자와 친하더라도, 법무부장관은 자신의 지휘감독을 받는 고검장으로부터 수사 중인 사건에 관해 정보보고를 받을 권한이 있습니다(다만, 정보보고를 받을 권한이 있을 뿐, 사건 수사에 관해 어떠한 구체적 지시를 할 권한은 없습니다). 아무리 빈번하고 자세한 정보보고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검찰에 정치권의 압력이 가해진 거라고 단정하기는 부족해 보입니다. 

이번 하원 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 발표는 9월 중에 있을 거라고 합니다. 일단 9월 발표를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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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9일 일요일

프랑스 검찰총장의 신년사, 그리고 여전히 검찰 독립 문제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2/09/2020 05:56:00 오후 라벨: 검사 , 검찰 , 검찰총장 , 국가사법재판소 , 국가정의재판소 , 대법원 , 독립성 , 법무부장관 , 신년사 , 유럽사법재판소 , 프랑스 사법제도
프랑스 검찰총장 François Molins은 2020년 1월 10일 법무부장관 등이 참석한 대법원 신년식 행사에서 대법원장에 이어 신년사(Discours de Monsieur François Molins Procureur général près la Cour de cassation, Audience de début d’année judiciaire)를 발표했습니다.

[https://www.courdecassation.fr/venements_23/audiences_solennelles_59/audiences_debut_annee_judiciaire_60/annees_2020_9590/janvier_2020_44203.html]


Molins 총장은 대법원의 업무와 역할에 대한 의견을 이어가다 마지막에는 검찰 독립에 관한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러합니다.

검사 직무의 의미를 일깨운 2건의 판결이 최근에 있었는데, 이 2건의 판결은 개별 사건에 관한 법무부장관의 검사 지휘권 폐지로 검찰 독립에 기여한 2013년 7월 25일자 법률의 중요성을 상기시켰습니다.

우선, 유럽사법재판소(La Cour de justice de l’Union européenne)는 2019년 12월 12일자 판결에서 프랑스 검찰이 유럽체포영장(mandat d’arrêt européen)을 발부하는(émettre) 데 필요한 자격인 독립성 요건을 갖췄다고 평가하였습니다. 재판소는 프랑스 검사들이 유럽체포영장 발부의 필요성과 비례성, 그리고 혐의자에게 유리한 요소와 불리한 요소를 모두 고려하여 객관적으로 권한을 행사할지 여부를 특히 정부와의 관계에서 독립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인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재판소는 프랑스 검찰의 독립성에 대한 의문은 검사들이 공소권을 행사할 임무를 가졌다는 사실이나, 법무부장관이 검사들에게 형사정책에 관한 일반적 지시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나, 검사들이 위계조직 구조에서 상급자의 지휘감독을 받는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하였습니다. 결국 이 2013년 7월 25일자 법률의 이전과 이후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판결은, 국가사법재판소(La Cour de justice de la République)가 2019년 9월 30일 전직 법무부장관의 공무상기밀 누설(violation du secret professionnel) 혐의에 대해 선고한 판결입니다. 재판소는 공무상기밀의 범위와 관리 문제를 통해 법무부장관과 고등검사장, 검사장 사이의 관계를 명확히 하였습니다. 즉, 고등검사장이 법무부장관에게 보고한 개별 사건에 관한 정보들은 공무상기밀로서 공개되지 않아야 하고, 공익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 검사장만이 형사소송법 제11조 제3항에 정한 절차에 따라 공개할 수 있을 뿐이라는 점이 강조되었습니다.

검사에 대한 인사와 징계 절차에서 판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고등사법위원회(Conseil supérieur de la magistrature)의 의견에 구속력을 부여한다는 점 등을 내용으로 한 헌법개정안의 구체화에 따라, 프랑스 검사의 지위에 관한 진보적인 상황들이 매우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해를 시작하는 지금, 저는 현재 진행 중인 사법개혁을 통해 우리 시민들에게 사법기관, 특히 검사가 충실하고, 신속하고, 단순하고, 독립적이고, 용기있고, 인간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기를 간곡히 기원합니다. 그것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사법이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가장 안전한 길이 될 것입니다.   

제가 이 블로그의 여러 글에서 소개하였듯이, 여전히 프랑스 검찰에서는 법무부장관으로 대표되는 행정권력으로부터의 검찰의 독립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다만, Molins 총장도 말하듯이 마크롱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헌법개정안에 검사의 지위에 관한 진전된 내용(법무부장관의 검사 인사와 징계 권한 축소)이 포함되어 있는 등 프랑스 검찰의 독립은 이제 거의 완성판에 다다르고 있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그리고 Molins 총장이 말한 2건의 판결에 관한 기사들을 찾아봤습니다.
첫 번째 판결은, 룩셈부르크에 있는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입니다. 유럽체포영장은 유럽연합 역내에서 발생한 범죄에 대해 유럽연합 각국이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마련된 사법제도로서, 범죄지나 범죄자의 국적을 따지지 않고 각 회원국에 체포 권한을 부여하고 필요할 경우 범죄인 인도를 요구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이 판결의 사안에서는 독일, 오스트리아, 리투아니아에서의 범죄와 관련하여 프랑스 검사가 유럽체포영장을 발부하였고, 범죄자들의 변호인들은 2013년 법률의 문구상으로는 개별 사건에 관한 법무부장관의 검사 지휘권이 폐지된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반대라는 주장을 하면서 프랑스 검사가 영장을 발부할만한 독립적 사법기관(autorité judiciaire)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였으나, 유럽사법재판소는 프랑스 검사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참고한 언론기사는 2019년 12월 12일자 Le Figaro지의 'La Cour de justice de l’Union européenne défend le parquet à la française'입니다. 

두 번째 판결은, 이 블로그의 2018년 3월 8일자 '프랑스 전직 법무부장관의 공무상기밀 누설 사건과 국가사법재판소(Cour de Justice de la Republique)' 글의 후속 소식입니다. 프랑스 검찰이 하원의원 Thierry Solère에 대해 탈세 등의 혐의로 예비수사를 진행하던 중 2017년 6월 29일 그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하였는데, 압수수색 결과 그 당시 올랑드 정부의 법무부장관이었던 Jean-Jacques Urvoas가 Solère 의원에게 그 예비수사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한 정황이 확인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결국 이 재판에서 Urvoas 전 장관은 그 혐의가 인정되어 집행유예가 부가된 징역 1년의 형과 5,000유로의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참고한 언론기사는 2019년 10월 1일자 Le Figaro지의 'Urvoas condamné à un mois de prison avec sursis'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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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25일 수요일

[독서일기] 파기환송 (feat. 플리바기닝)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12/25/2019 12:15:00 오전 라벨: 검사 , 독서일기 , 마이클 코넬리 , 미국 , 미키 할러 , 법정소설 , 변호사 , 사법제도 , 수사 , 위선떨지 말자 , 플리바기닝 , 형사소송
이번에 소개하는 책은 마이클 코넬리의 미키 할러 변호사 시리즈 중 세 번째 작품, ‘파기환송(The Reversal)'입니다.



현재까지 국내에 번역되어 출간된 미키 할러 변호사 시리즈는 모두 4권입니다. 저작 순서로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탄환의 심판', '파기환송', '다섯 번째 증인', 이렇게 됩니다. 마지막 작품인 'The Gods of Guilt'도 조만간 번역되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 흥미로운 시리즈를 죽 읽어가면서, 저는 미국의 형사사법제도 중 특히 한 가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바로 '플리바기닝(plea bargaining)'이라는 제도입니다.
앞서 '다섯 번째 증인' 편에서도 소개하였듯이, 우리말로는 유죄인정 합의, 유죄답변 거래, 유죄답변 협상 등으로 다양하게 부르는 플리바기닝 절차는, 피의자나 피고인이 현재 자신이 받고 있는 혐의보다 가벼운 내용의 혐의를 인정하고 그 가벼운 혐의에 해당하는 처벌만 받기로 하고 정식재판 없이 사건을 종결시키는 검사와 피의자 또는 피고인 사이의 공적 계약을 말합니다.
미국에서 플리바기닝 제도를 도입한 취지는, 형사사건을 효율적으로 처리함으로써 사법자원을 절약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플리바기닝은 재판이 끝나기 전이라면 기소 전이든 재판 중이든 언제든 가능합니다. 다만, 수사 초기에 협상이 이루어진다면 검사 입장에선 수사와 재판에 들이는 수고를 대폭 절약할 수 있어 유리합니다. 만약 피고인이 끝까지 자신에게 죄가 없음을 주장해서 결국 정식재판인 배심재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면, 배심원 선정부터 시작해서 여러 날이 걸리는 이 재판절차를 위해 사법기관은 막대한 노력과 자원을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이죠.
같은 취지로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도 미국과 비슷하거나 다소 변형된 형태의 플리바기닝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미키 할러 변호사 시리즈에는 플리바기닝이 아주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형사사건의 시작은 바로 플리바기닝을 할지 말지 여부에 대한 검사와 변호인의 머리싸움입니다. 보통은 전세가 불리한 편에서 먼저 플리바기닝을 시도합니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건에서 플리바기닝이 검토되고 있고, 실제로도 미국에서는 이 절차를 통해 90퍼센트 이상의 형사사건이 정식재판 없이 종결된다고 하는데, 이처럼 플리바기닝은 미국 형사사법절차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제도입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실체적 진실 발견과 정의 구현이 최고이념인 형사사법절차에서 죄와 벌을 놓고 '협상'이니 '거래'니 하는 단어를 입에 담는 것 자체에 대한 극심한 알레르기 반응이 존재합니다. 즉, '국민정서법'상 용납되기 매우 힘든 제도입니다. 단언컨대, 100년 안에는 우리나라에 이 제도가 도입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왜 이 제도가 그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이 작품을 통해 해답을 한번 찾아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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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03쪽]  형사재판소 건물 13층, 제124호 법정 옆에 있는 유치장에는 내 의뢰인 카시우스 클레이 몽고메리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
......
"...... 그리고 우린 지금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잖아. 오늘 심리는 잠깐이면 끝날 거야. 그것도 아주 기분 좋게. 재판 날짜만 정하면 그걸로 끝이니까. 그렇지만 우리의 검사 헬먼 씨는 자기가 제안한 협상안이 오늘까지만 유효하다고 말한다는 거지. 만약 우리가 샴페인 판사에게 재판에 임할 준비가 됐다고 오늘 말한다면, 그 거래는 없던 일이 되고, 우리는 재판으로 가는 거야. 어때,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겠어?"

---> 할러 변호사가 법원에 가서 구속되어 있는 의뢰인을 만나고 있습니다. 검사가 제안한 플리바기닝 안에 대해 의뢰인의 의사를 물어보고 있네요. 좀 있다 바로 법정에 나가 판사 앞에 서야 하는데, 법정에 나가기 전에 검사가 제안한 안을 받아들이고 절차를 여기서 끝낼지 아니면 검사의 제안을 거부하고 판사에게 정식재판을 위한 날짜를 잡아달라고 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103-104쪽]  몽고메리가 철창 사이에 고개를 기댔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입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47살이고 살아오면서 이미 9년이라는 세월을 감방 안에서 보냈다. 그리고 지금은 무장 강도죄와 신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 폭행죄로 기소되어 나락으로 추락할 위기에 놓여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몽고메리는 로디아 가든스 빈민 주택단지 내에 있는,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물건을 구할 수 있는 마약 시장을 찾아가 구매자 행세를 했다. 그렇지만 돈을 지불하는 대신 총을 빼들어 마약상이 가진 약과 현찰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그러자 마약상이 그의 총을 빼앗으려 하다가 총이 발사되고 만 것이다. 갱단의 일원이기도 한 다넬 힉스라는 그 마약상은 현재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으며, 앞으로 남은 평생 동안 그 위에서 지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 의뢰인 몽고메리의 혐의는 마약을 빼앗기 위해 마약상을 총으로 쏘고 불구자로 만든 것이로군요. 마약은 해야겠는데, 돈이 없어서 총을 가지고 갔던 모양입니다.
경찰의 수사결과에 의하면, 의뢰인이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일부러 총을 쏜 건 아니고 총으로 피해자를 협박만 하고 있었는데 이 총을 빼앗으려는 피해자와 실랑이를 벌이다 우발적으로 총이 발사된 것이라고 합니다. 비록 일부러 쏜 건 아니라도, 총으로 피해자를 위협함으로써 먼저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니 단순한 과실범은 아니고 그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겠습니다.


[104쪽]  빈민 주택단지가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그곳 주민들은 아무도 수사에 협조하지 않았다. 심지어 피해자조차도 자신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갱단 동료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해주리라 믿었기에 침묵 쪽을 선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찌 됐건 경찰은 수사를 진행했다. 주택단지 입구에 설치된 비디오카메라를 판독해 내 의뢰인의 차량을 확인해서 숨겨둔 차량을 찾아냈고, 차량 문짝에서 피해자의 혈흔을 발견했다. 

---> 그럼 그와 같은 혐의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경찰과 검사가 현재까지 확보한 증거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가장 중요한 증거는 피해자의 진술이 될 텐데, 피해자는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당시 상황이 잘 기억나지만 곧이곧대로 말할 수가 없는 입장입니다. 스스로 마약을 판매한 범죄를 자인하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는 갱단의 일원입니다. 자칫 곧이곧대로 진술했다가 자신의 갱단에까지 피해를 입히게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입은 피해는 갱단 동료들이 보복이라는 방식으로 해결해줄 것이기 때문에 굳이 국가에서 제공하는 형사사법 서비스에 기댈 필요도 없습니다. 이런 부류들에겐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깝고 편리한 것이죠. 혹시 피해자가 나중에 마음을 바꿔먹어 사실 그대로 말을 하게 되더라도, 이미 '진술의 일관성'에 흠이 생겨버린 상태여서 진실한 진술도 신빙성 없는 진술로 치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튼 피해자가 이 모양이니,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가 수사기관의 손에는 없는 겁니다.
다음으로, 범행이 발생할 무렵 범행장소 부근을 지나가는 몽고메리의 차가 촬영된 비디오카메라 영상, 그리고 몽고메리의 차에서 발견된 피해자의 혈흔이라는 두 개의 증거가 확보되어 있습니다. 몽고메리가 죄를 저질렀음을 추정할 수 있는 좋은 증거이지만, 이것만 가지고 몽고메리가 피해자를 총으로 쐈다는 사실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피해자가 제대로 말을 하지 않으면, 이를 틈타 몽고메리가 둘러댈 수 있는 변명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입니다. 피해자가 말을 하지 않으니, 그 사이를 연결할 뭔가 다른 증거가 더 필요합니다.


[104쪽]  그다지 강력한 증거는 아니었지만, 우리 쪽에서 검찰의 협상을 끌어내기에는 충분했다. 만약 몽고메리가 검찰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그는 3년 형을 선고받고 대략 2년 6개월 정도 복역하면 풀려날 수 있었다. 만약 그가 도박하기로 결정해서 재판 마지막에 유죄판결을 받게 된다면, 최소한 15년은 꼼짝없이 감방에서 썩게 될 터였다. GBI(신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 폭행죄)와 강도행위 중에 무기를 사용했다는 혐의가 합해졌으니 거의 구원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나는 주디스 샴페인 판사가 총기 범죄에 전혀 관대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증거가 뭔가 좀 더 있을 줄 알았더니, 그게 전부로군요. 현재까지의 증거만으로는 유죄판결을 받기에 부족합니다. 몽고메리 차에 묻은 피해자의 혈흔과 몽고메리가 피해자를 쏜 사실을 바로 연결할 연결고리가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겨우 이 상태에서 재판으로 가려면 검사의 입장에선 피해자의 입을 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피해자의 입을 열지 않으면 유죄판결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피해자가 계속해서 입을 닫고 있겠다면 큰 문제입니다. 사람의 입을, 그것도 피해자의 입을 강제로 열게 할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학수사'나 '물적 증거'와 같이 '사람'이 배제된 수사가 능사는 아닙니다. 반드시 형사재판에는 '인적 증거', 즉 '사람의 진술'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수사기관은 사람으로부터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증거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검사가 먼저 할러 변호사에게 플리바기닝을 제안한 것입니다. 원래는 최소 15년의 형을 받아야 할 사건을 3년 형으로 줄여 준다고 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총을 쏜 행위를 고의범이 아닌 과실범으로 의율해 주겠다는 제안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반대로, 변호인은 유리한 입장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변호인의 입장에서도 검사가 가진 증거가 저게 다라고 해서 무죄판결을 장담할 수만은 없습니다. 총의 발사경위에 대해 몽고메리가 할 수 있는 변명이 아무리 많더라도, 배심원들을 자기 편으로 확 끌어올 만한 그럴듯한 변명이 과연 얼마나 되겠어요. 몽고메리가 마약상을 만나러 가는데 왜 총을 가지고 간 것이며, 왜 하필 그의 차에 피해자의 혈흔이 묻게 된 것이며 등등, 깔끔한 설명이 곤란한 부분이 많습니다. 게다가 그는 전과도 많습니다. 배심원들에게 신뢰를 주기 힘든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배심원들은 확실한 증거가 없더라도 이런저런 정황만으로 몽고메리가 유죄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 위험부담이 있으니, 할러 변호사도 15년과 3년 사이에서 고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이렇게 검사도 변호인도 자신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팽팽한 상황이니, 협상과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각자 자신의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냥 그쪽으로 가서 유죄를 받든 무죄를 받든 하면 그만인 거죠. 플리바기닝이 그렇게 많이 이용된다는 것은, 그만큼 이렇게 팽팽한 상황에 있는 사건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사건이란 게 생각만큼 그렇게 쉽게 수사가 이루어지고 쉽게 증거가 수집되고 쉽게 유죄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형사소송의 대원칙인 '엄격한 증명의 원칙'과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 등의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105쪽]  나는 의뢰인에게 검찰의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권유했다. 내게는 쉬운 결정이었지만, 사실 형을 살게 될 사람은 내가 아니지 않은가. 몽고메리는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
......
"자네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군." 내가 말했다. "우리에겐 상당히 좋은 제안이야. 검사가 이 건을 재판까지 끌고 가고 싶어하지 않아. 법정에 서고 싶어하지 않는 피해자를 굳이 거기다 끌어다 놓고 싶지 않은 거야. 그랬다가는 도움이 아니라 오히려 해를 입히는 꼴이 될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최대한 선심을 베풀어서 가장 짧은 형기를 제시하는 거라고. 하지만 모든 건 자네에게 달렸어. 자네가 결정해야 해. 앞으로 2주 정도 시간이 있고, 그 이후로는 끝이야. 어쨌든 몇 분만 있으면 법정에 나가야 해."

---> 할러 변호사가 검사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나은 전략이라고 의뢰인을 설득합니다. 결정은 의뢰인이 하는 것이지만, 변호인 자신의 의견도 의뢰인에게 솔직하게 전달합니다.
할러 변호사의 말대로 검사는 피해자를 법정에 증인으로 세우고 싶어하지 않을 겁니다. 피해자가 제대로 진술을 하려 하지 않는 건 둘째치더라도, 갱단에 몸담고 있는 데서 연상할 수 있는 피해자의 우락부락한 인상이라든가 몸 여기저기에 문신들이 또아리 틀고 있는 이미지라든가, 배심원들에게 점수 딸만한 꺼리가 하나도 없어서이겠죠. '메시지보다 메신저'를 고려해볼 때 유리할 게 없는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105-106쪽]  "...... 자네가 선택해. 3년을 받든가, 아니면 재판으로 가는 거야. 그리고 전에도 말했듯이 재판으로 가도 뭔가 방법이 있기는 할 거야. 검찰 측에서 무기를 찾아내지도 못했고, 피해자는 진술을 거부하고 있잖아. 하지만 여전히 자네 차에 묻어있는 혈흔이 문제야. 그리고 검사 측은 총격 직후에 자네가 차를 운전해서 로디아를 빠져나가는 비디오 영상도 가지고 있잖아. 물론 자네가 얘기했던 대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고 배심원을 설득할 수도 있겠지. 정당방위였다고. 거기에 약을 사러 갔었는데, 그가 자네 돈뭉치를 보고는 그걸 빼앗으려다가 그렇게 됐다고 말이지. 어쩌면 배심원단도 그 말을 믿을지 몰라. 특히 피해자가 증언을 안 하려 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설사 그가 증언을 하더라도 자네 말을 더 믿을지도 모르지. 일단 변론을 시작하면 난 그가 수도 없이 묵비권을 행사하도록 만들 작정이거든. 그럼 배심원들은 그가 증언대에 올라서기도 전에 그를 마치 알 카포네라도 되는 듯이 생각하게 될 거라고."

---> 이제 보니, 범행에 사용된 총도 몽고메리가 이미 어딘가에 버려버린 모양이군요. 총도 없으니 정확한 발사경위를 확인하기도 더 어려워, 몽고메리에게 매우 유리한 상황이겠습니다.
그리고 몽고메리는 정당방위를 주장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일응 해볼 수는 있는 변명 같기는 합니다만, 그 변명이 그럴듯해 보이려면 그 당시 피해자가 탐낼 만한 돈뭉치를 몽고메리가 갖고 있었음을 몽고메리가 입증하여야 할 텐데요. 돈도 전혀 없어서 총으로 협박해 마약을 빼앗으려던 사람이 과연 자신에게 돈뭉치가 있었음을 입증할 수 있을까요? 
아무튼 할러 변호사의 탁월한 변론실력을 감안한다면, 정식재판으로 가도 해볼만한 싸움이 될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만......


[106쪽]  "검사가 지금 자네에게 제안하는 형량과 만약 우리가 재판에서 졌을 때 선고받게 될 형량 사이에 틈이 너무 벌어져 있다고. 최소한 12년 정도는 예상하고 있어야 해, 캐시. 그 기간을 도박에 걸기에는 너무 길잖아."

---> 아무래도 실패했을 경우의 위험부담이 너무 큽니다. 피고인의 위험부담 뿐만 아니라, 실패했을 경우 변호인이 입게될 데미지도 어마어마할 겁니다.
게다가 빨리 결정을 못하고 어정쩡하게 정식재판으로 가기로 했다가, 그 사이에 어디선가 몽고메리의 총이라도 발견되어 그에게 불리한 상황이 초래될 위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빨리 결정을 내리는 게 유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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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파기환송'에서 플리바기닝이 활약하는 장면 소개는 요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위 사건의 결말은 정확히 소개되지 않은 채 다른 사건으로 넘어가지만, 할러 변호사가 검사의 제안을 1년형으로 더 깎으면서 플리바기닝에 성공하는 듯한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작품에서 미키 할러 변호사는 총기 상해범죄 피고인을 위한 플리바기닝을 시도하였고, 다음 작품 '다섯 번째 증인'에서는 살인범죄 피고인을 위한 플리바기닝을 시도하였습니다. 이런 사건은 피해자가 존재하는 강력 사건인데요, 우리나라라면 이런 류의 사건에서 플리바기닝을 한다는 것은 최소한 검사 입장에선 쉽지 않아 보입니다. 범인임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 가해자가 수사기관에 잡혀있기까지 한 상황인데, 증거가 좀 부족하다고 해서, 무죄판결 가능성이 좀 있다고 해서 가벼운 죄로만 살짝 처벌하고 만다는 것은 누구도 수긍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중범죄인을 봐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수사기관은 어떻게 해서든 중범죄인일수록 법정에 세우려고 기를 쓰게 마련입니다. 수사기관이라도 그렇게 안 하면 불쌍한 피해자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요?
게다가 이런 류의 강력 사건은, 수사가 아주 어렵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잘하면 범인을 잡아낼 가능성이 꽤 있습니다. 왜냐하면 강력 사건은 눈에 보이는 범행현장이 있고, 확실한 피해자가 있고, 세상이 좋아져서 지문 감식이나 DNA 감정과 같은 과학수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동네 여기저기에 설치되어 있는 CCTV에 범인의 단서가 포착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긴 세월 오리무중이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도 결국에는 범인이 잡히고야 말지 않습니까?

이런 류의 강력 사건 말고, 정작 플리바기닝이 필요하거나 적절한 사건은 따로 있습니다.
우선은, 범죄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자가 없는 사건이 좋겠습니다. 피해자의 피해감정을 해하면서까지 국가가 범인에게 혜택을 부여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론, 수사가 정말로 쉽지 않은 성격의 사건입니다. 예를 들어, 화이트칼라 사건, 기업 비리 사건, 금융경제 사건, 뇌물 사건, 조직범죄 사건, 마약 사건, 테러 사건, 보이스피싱 사건 같은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사건의 특징은, 가담자들이 다수인데 범죄가 은밀히 이루어지는데다 직접적인 피해자가 없고 범죄자나 그 관련자 모두 서로 win-win 하는 성격의 사건이어서 적발이 쉽지 않고, 어쩌다 잡힌 가담자가 나는 잘 모르는 일이라며 입을 닫아버리면 증거수집도 쉽지 않고 더 이상 윗선으로 올라갈 수 없어 주동자들을 일망타진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된다는 점입니다.
즉, 이런 사건은 적발과 증거수집을 위해서는 내부자의 제보나 협조가 필수적입니다. 내부자의 제보나 협조 없이는 그런 범죄를 제대로 잡아내거나 예방하기는 힘듭니다. 내부자의 제보나 협조를 기대하기 힘든 경우에는, 통신감청이나 잠입수사, 함정수사와 같은 극단적인 형태의 수사기법이라도 동원하여야 하나, 이런 수사기법은 우리 법상 인정되지 않거나 매우 제한적으로만 쓸 수 있고, 설령 가능한 경우라도 인권이나 사생활 침해의 위험이 큰 만큼 함부로 휘두를 수도 없습니다. 이런 사건은 직접적인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아 당장은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법질서를 망가뜨리고 사회와 국가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범죄이기 때문에 국가가 반드시 적발하고 처벌해야 하는 사건입니다. 

수년 전 우리나라 법무부와 검찰에서 플리바기닝 제도의 도입을 시도하였다가 무산된 적이 있습니다. 법무부나 검찰에서 플리바기닝 제도에 대해 얘기할 때 흔히 있을 수 있는 비판이, 수사의 효율성만을 강조하여 물증 확보에 노력하지 않고 쉽게 피의자의 자백만 받아내려는 수사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형사절차 실무는, 검사에게 범죄의 성립요건에 대해 엄격한 입증책임을 부담시키고 정밀한 입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극히 간단한 수사만 진행한 채 곧바로 재판절차로 직행하여 대부분의 입증활동이 재판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미국의 형사사법제도와 달리, 우리의 형사사법제도는 수사기관이 충분한 수사를 통해 혐의 입증까지 성공한 다음에야 비로소 재판절차로 넘어가게 되고 재판절차는 수사 과정에서 입증된 사실을 재확인하는 정도로 진행됩니다.
따라서 검사는 재판으로 가기 전에 미리 엄격하고 정밀한 입증을 위해 물증을 확보하고 피의자나 참고인들을 조사하여 진술증거를 충분히 확보하려고 노력합니다. 물증이라는 게 말처럼 쉽게 수집되는 게 아니지만, 설령 아무리 많은 물증이 확보되어 있더라도 물증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 범죄가 입증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의 진술을 통해 물증과 범죄와의 연관성까지 밝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앞에서 말한 플리바기닝에 적합한 성격의 사건들은, 범죄를 적발하고 처벌하기 위해서 내부자들의 진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사기관이 엄격하고 정밀한 입증을 위한 수사에 주력하다보니 부작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혹시라도 무죄판결을 받는 불상사를 방지하고 어떻게든 증거 하나라도 더 수집해서 확실하게 유죄판결을 받기 위해, 압수수색을 과도하게 한다거나, 예컨대 휴대폰이나 카카오톡 같은 지극히 사적인 물건을 그야말로 탈탈탈 턴다거나, 자백을 받기 위해 피의자를 강압적 또는 반복적으로 조사한다거나 하는 인권 침해나 사생활 침해 등의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수사기관이 단지 법과 절차를 잘 지켜 수사를 하는 것만으로는 이런 부작용 예방에 부족할 수 있습니다. 수사기관의 선의에만 기대지 않고 이런 부작용을 근본적으로 예방하려면, 수사기관이 수사라는 걸 좀 적당히 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엄격하고 정밀한 입증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런 부담을 좀 덜어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또한, 사법자원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국가재정상 사법자원은 물적으로나 인적으로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 한계 내에서 효율적으로 배분되어야 한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합니다. 수사기관이 엄격하고 정밀한 입증활동에 나설 수 있는 사건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이런 식의 반론이 가능할 겁니다. 국가의 수사기관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범죄자들을 잡아들이고, 다른 한편으론 억울한 사람이 누명을 쓰는 일이 없도록 엄격하고 정밀한 입증활동을 다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이죠.
네, 당연히 지당하고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현실은 바로 보려 하지 않고 애써 눈을 감은 채, 마치 공자님인 양 맹자님인 양 늘 점잖은 목소리로 지당하고 옳은 말을 하는 데만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저는 2019년 하반기 대한민국을 온통 휘어잡은 소동들을 지켜보면서 한 가지 인사이트를 얻었습니다. 바로, '이제 제발 위선 떨지 말자'라는 생각입니다. 사실은 진심도 아니면서 그저 남 듣기 좋으라고 아름답고 번드르르한 말만 늘어놓는 이중성과 위선, 우린 그걸 올해 새삼스레 많이도 목격하지 않았습니까? 이젠 우리도 솔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점잖게 지당하고 옳은 말만 하기에 앞서, 과연 그게 실현은 가능한 얘기인지, 과연 우리 앞에 놓인 실상과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똑바로 보고 제대로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제 우리는 수사기관이 전지전능하지 않은 존재라는 현실을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수사기관이 행사하는 수사권이 뭔가 대단한 권한이라고 생각하고, 이 요술방망이 같은 권한으로 해결 못하는 일이 없고 못 밝히는 진실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형사법 만능주의 국가가 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회적 논쟁과 문제점은 죄다 형사절차 안에 집합시켜 놓고 형사법에 따른 해결을 기다립니다. 사회적 논쟁과 문제점의 직접당사자들은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해결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그 일의 당사자도 아니고 문외한에 불과한 판검사의 손에 해결을 맡겨버리고는 그 처분만 하염없이 기다리곤 합니다. 그러고도 정작 그 결과에는 승복하지 않고 각 진영별로 아전인수격 주장만 일삼습니다.
그러나 "조사하면 다 나와", 이런 말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조사한다고 속 시원하게 알고 싶은 게 다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몇 사람 사이에 있었던 과거의 어떤 사건을 제3자인 수사기관이 증거라는 형식으로 완벽하게 재구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즉, 수사기관은 제아무리 애를 써도 누구나 수긍하는 진실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수사기관의 능력이 모자라서이기도 하고, 수사라는 행위만으로는 진실을 밝히는 데 턱없이 부족해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언제나 진실을 발견하는 게 가능함을 전제로, 수사기관의 도리와 의무를 말해서는 곤란합니다. 이는 세상의 모든 범죄를 빠짐없이 적발하겠다고 모든 장소에 빠짐없이 CCTV를 설치하자거나 모든 사람들의 휴대폰과 카카오톡을 수사기관이 마음껏 보게 하자는 게 전혀 말이 안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더구나 갈수록 수사환경은 열악해지고 있습니다. 범죄는 고도로 지능적이고 은밀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수사기관이 범죄의 단서조차 찾기 쉽지 않고, 범죄자들은 묵비권을 행사하며 입을 닫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고, 참고인들은 괜한 불이익이라도 당할까 싶어 남의 사건에 개입하기 꺼려합니다. 범죄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자가 있는 사건의 경우에는 피해자의 진술이라도 확보하여 어찌어찌 수사를 진행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건은 사람의 진술을 확보하기 힘들어 수사 진행 자체가 곤란한 경우도 많습니다.
사법선진국 수사기관의 최신 수사기법과 제도를 우리나라에도 수입하려면 온갖 반대론에 맞닥뜨리게 되어, 아직까지 우리나라 수사기관은 2차 세계대전 때 사용하던 구식 무기로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당연한 현실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수사기관의 권한을 늘리고 힘을 키워주자는 주장이 아닙니다. 그런 해결책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수사기관의 과욕에 따른 부작용을 조장하는 위험한 주장일 수 있습니다. 단지, 수사기관이 모든 범죄를 엄격하고 정밀하게 입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수사기관의 엄격하고 정밀한 입증이 가능하고, 수사기관이 언제나 진실을 발견하는 게 가능하더라도, 그 때문에 야기될 수 있는 인권 침해 등의 부작용을 예방한다는 더 중요한 가치를 위해서, 이제 수사기관의 도리와 의무에 대해 현실과는 유리된, 그저 지당하고 옳아 보이기만 한 말은 더 이상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이미 그런 현실을 인정하고 있고, 이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바로 플리바기닝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플리바기닝 제도의 취지는 수사기관의 한계를 인정하고 수사기관의 수사를 줄이자는 것으로, 바로 수사기관의 입증이 부족할 수밖에 없어 생기는 빈 틈의 존재를 인정하되 그 빈 틈을 그냥 방치해두지만 말고 어떻게든 뭐라도 메워놓자는 게 그 취지라고 생각합니다. 플리바기닝 제도는 수사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 맞습니다. 사회적으로 필요성이 있으면 수사편의주의적 발상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수사편의주의를 위해 플리바기닝을 하자는데 이를 수사편의주의라고 비난하는 것은 동어반복에 불과하고 적절한 비난이 아닙니다.
일본의 경우 미국의 제도를 참고하여 변형된 형태의 플리바기닝 제도를 2016년에 도입하였습니다. 그 도입 이유가 재미있는데, 갈수록 진술증거의 수집이 곤란해지고 있는 수사환경을 고려하여 조사의 비중을 줄이고 사건 관련자들로부터 자발적인 진술을 이끌어내기 위한 새로운 수사방법으로서 이 플리바기닝 제도를 도입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역시 수사기관의 한계를 인정하고 현실을 수긍하는 데서 이끌어낸 적절한 대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도 2004년부터 변형된 형태의 플리바기닝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인데, 최근인 2019년 9월부터는 종전의 배심재판 대상사건을 축소해서 시민배심원들의 사법절차 참여를 점차 줄여가고 있습니다. 이는 배심재판으로 야기될 수 있는 형사사법절차의 지연을 방지하여 신속한 재판 진행과 사법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대책인데, '시민의 사법참여'니 '사법의 민주화' 같은 지고지순한 말만 앞세워 배심재판 제도를 숭배대상으로 삼으려 하지 않고, 위선 떨지 않으면서 그리고 실상을 인정하면서 과감하게 문제점을 고쳐나가겠다는 프랑스 국민들의 실용적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사례입니다. 

결론을 정리하면, 우리나라에도 플리바기닝 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저는 우리 국민정서법상 100년 안에는 우리나라에 이 제도가 도입되는 일이 절대 없을 거라 예상합니다.
제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이제 우리 솔직해지고 제발 위선 떨지 말자는 것입니다. 모자라고 부족한 현실은 현실 그대로 인정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나갈 수 있습니다. 실상은 외면한 채, 하나마나 한, 그럴듯하기만 한, 그저 번드르르하기만 한 말만 해서는 아무런 해결책도 마련할 수 없습니다.
왜 미국이 스스로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자인하면서도 플리바기닝 제도를 그렇게 오랜 세월 운영하고 있는지, 왜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은 지극히 미국스러운 제도인 플리바기닝 제도를 굳이 자국에 도입한 것인지, 우리는 그 이유를 솔직하게 들여다보면서 우리의 문제점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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