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29일 토요일
영화 "라스트 레터(Last Letter)"
코로나 아니었으면 작년에 진작 극장 가서 봤을 영화를 이제야 유튜브로 봤습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최신작 “라스트 레터”입니다.언론이나 팬의 평들을 보니 이와이 감독의 최고 히트작인 “러브 레터”의 후속편이라고도 하고 “러브 레터”는 물론 “4월 이야기”나 “하나와 앨리스” 등 다른 전작들까지 한데 아우른 속편이라고도 하는데, 제가 보기엔 이건 뭐 그냥 대놓고 “러브 레터” 판박이네요. 소재도 그렇고 플롯도 그렇고 완전 다 “러브 레터”입니다. 1995년 이후 20년 넘게 속편을 기다려온 “러브 레터” 팬들은 이 영화 정말 좋아하시겠습니다.
다만, 그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던 “러브 레터”가 저한텐 그닥이었습니다. 좀 오글거리는 장면이나 억지로 배배 꼬아놓은 듯한 스토리가 그리 와닿지 않았습니다. 빼박인 “라스트 레터”도 그런 느낌이었구요.
그런데 감독의 1997년 작 “4월 이야기”는 매우매우매우 좋아합니다. 별 대단한 스토리 없이 잔잔하게 장면장면들을 보여주는 따뜻한 분위기의 영상이, 과하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고 조미료 맛 안 나는 담백한 음식처럼 눈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잔뜩 널려있는 여백 자체를 그냥 멍때리며 즐길 수도 있고, 반대로 여백 사이사이를 상상력으로 채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4월 이야기”의 팬으로서, “라스트 레터”에는 “4월 이야기”의 흔적들이 얼마나 숨어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다른 글들을 보면 이 영화에서 발견되는 “4월 이야기”의 흔적이라곤, 마츠 타카코가 다시 주인공으로 기용되었다는 점과 일방적 짝사랑 관계까지만 보여주고 본격적으로 연애하는 장면은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건 좀 억지스럽기도 한 논거이긴 합니다만) 정도뿐이라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도 사실 그렇습니다. “라스트 레터”는 첫사랑이 소재라는 점 말고는 “4월 이야기”가 연상되는 장면도 거의 없네요. 굳이 바득바득 “4월 이야기”의 흔적이라 볼 만한 장면들을 찾아보자면 이렇습니다.
- “4월 이야기”의 가장 뚜렷한 흔적은 뭐니 뭐니 해도 마츠 타카코입니다. 마츠 타카코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었다면, 제가 이 영화를 볼 이유도, 이런 글을 쓰고 있을 이유도 없습니다.
두 영화 모두, 마츠 타카코는 같은 고등학교 선배를 짝사랑합니다. 이 영화의 마츠 타카코는 “4월 이야기”의 그 앳된 대학생이 그 성격과 외모 ‘고대로’ 세월을 덧입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말투, 표정, 행동거지 모두 비슷한 캐릭터의 인물을 연기합니다. 수줍음 많고 낯가리는 성격이면서도 짝사랑 상대에게는 적극적으로 가까이 다가가려는 게 똑 닮았습니다.
캐릭터가 닮은 게 아니라, 마츠 타카코의 연기가 항상 비슷비슷해서 그런 걸까요.
- 영화 앞부분에 마츠 타카코가 고교 동창회에 나가 중년의 동창생들 앞에서 한 스피치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자신의 차례가 되자 낯을 가리는 듯 쭈삣쭈삣 나와서 재미없고 주변머리 없는 말만 몇 마디 잠깐 하다 들어가고 맙니다.
역시 “4월 이야기”에서 낯선 대학 신입생 동기들을 앞에 두고 자신감 없는 말투와 쑥스러운 표정으로 하나마나 한 말만 하고 마는 마츠 타카코의 자기소개 장면이 바로 연상되는 부분입니다.
- 영화 앞부분에 마츠 타카코가 고교 동창회에 나가 중년의 동창생들 앞에서 한 스피치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자신의 차례가 되자 낯을 가리는 듯 쭈삣쭈삣 나와서 재미없고 주변머리 없는 말만 몇 마디 잠깐 하다 들어가고 맙니다.
역시 “4월 이야기”에서 낯선 대학 신입생 동기들을 앞에 두고 자신감 없는 말투와 쑥스러운 표정으로 하나마나 한 말만 하고 마는 마츠 타카코의 자기소개 장면이 바로 연상되는 부분입니다.
어릴 땐 여러 사람들 앞에서 스피치 하는 게 얼굴 빨개지고 참 쉽지 않은 일이어도, 나이 들면 얼굴 두꺼워져서 좀 나아지기도 하는데 말이죠.
- 이 영화에는 소설가인 주인공이 첫사랑을 잊지 못해 첫사랑을 소재로 쓴 소설책 한 권이 자주 등장하는데, 노란색 하드커버로 된 그리 두껍지 않은 책입니다.
이 책은 “4월 이야기”의 주 무대인 서점에서 두 남녀 주인공이 처음으로 서로 살가운 시선을 마주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노란색 하드커버 책을 바로 연상시킵니다. “4월 이야기”의 책은 만화책이었는데, 두 주인공 사이에 묘한 기운이 흘러 서서히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마츠 타카코가 펼쳐든 책이 만화책이어서 피식 하고 헛웃음이 나오는 장면이었죠.
- 이 영화에는 소설가인 주인공이 첫사랑을 잊지 못해 첫사랑을 소재로 쓴 소설책 한 권이 자주 등장하는데, 노란색 하드커버로 된 그리 두껍지 않은 책입니다.
이 책은 “4월 이야기”의 주 무대인 서점에서 두 남녀 주인공이 처음으로 서로 살가운 시선을 마주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노란색 하드커버 책을 바로 연상시킵니다. “4월 이야기”의 책은 만화책이었는데, 두 주인공 사이에 묘한 기운이 흘러 서서히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마츠 타카코가 펼쳐든 책이 만화책이어서 피식 하고 헛웃음이 나오는 장면이었죠.
- “4월 이야기”는 빨간색을 모티브로 쓴 걸로 많이 이야기되는 영화입니다. “라스트 레터”에도 빨간색이 등장하는데, 바로 빨간색 우체통입니다. 영화 전체에서 이 우체통이 거의 유일한 빨간색 소품이네요.
주인공들이 서로 편지로 소식을 주고받느라 우체통이 몇 번 등장한 것뿐이어서, 일부러 “4월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우체통을 등장시킨 건 아닌 거 같구요. 빨간색이 워낙 귀하게 쓰인 것만 봐도, “라스트 레터”는 여러모로 “4월 이야기”까지 담아보려고 한 영화는 아닌 걸로 보입니다.
- “라스트 레터” 앞부분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상황에서 추도 행사의 상주에게 다른 사람이 우산을 씌워주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는 “4월 이야기” 앞부분에서 벚꽃 비가 내리고 벚꽃 비도 비니까 맞지 말라고 결혼식 가는 신부를 우산 씌워주는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이와이 감독의 신작을 보면서 제가 좋아하는 “4월 이야기”를 떠올려 보고 싶었는데, 제가 찾은 비슷한 장면은 고작 요 정도 뿐이네요. 영화 한 번 더 보면 혹시 더 찾을 수 있으려나요.
다만, “4월 이야기”와는 관계없지만, 이 영화 앞과 뒷부분에 두 차례에 걸쳐 등장하는 졸업식 축사 장면은 기억에 많이 남네요. 두 남녀 주인공이 합작해서 만든 이 축사의 내용이 참 좋습니다. 추억, 미래, 인생, 선택, 꿈, 가능성, 장소, 이런 단어들이 나열되는데, 이제 고교시절의 추억을 뒤로 하고 미래를 향해 각자도생하게 되는 동창생들끼리 주고받는 덕담들이 담담하게 펼쳐집니다.
영화가 중간에 좀 지루하고 늘어지는 감이 있긴 한데, 이 감동적인 축사 내용 전부를 듣고 감상에 젖어보기 위해서는 영화를 끝까지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가 중간에 좀 지루하고 늘어지는 감이 있긴 한데, 이 감동적인 축사 내용 전부를 듣고 감상에 젖어보기 위해서는 영화를 끝까지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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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선생님 블로그를 종종 방문하고 있는 독자입니다. 오늘도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저도 영화관의 팝콘 냄새를 맡은지가 이제 만으로 2년이 넘은 것 같습니다. 영화가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다니 아쉽지만 선생님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장면들도 있었다니 흥미가 생기네요. 정확하게는, 4월 이야기를 봐야겠다는 욕심이 무럭무럭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답글삭제항상 감사히 읽는 입장에서 인사 한 번 올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되어 이렇게 댓글을 남깁니다. 비록 잘 알지 못하는 분야들이 많아 배운다고 하기도 부끄럽지만, 선생님 블로그를 통해 세상 보는 눈을 여러모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날이 점점 변덕스러워지는데, 건강하시길 바라며.
애독자 드림.
별 내용 없는 글인데, 과찬해주셔서 송구하고 감사합니다. 애독자가 계신다고 하니, 앞으로의 글 더 신경 쓰고 노력하겠습니다. 거듭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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