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0일 수요일
직장 식사자리에서의 대화와 한식
직장에서의 저녁 회식은 그 자리에 있는 시간이 유익하거나 재미있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유익하다는 건 상급자나 다른 동료로부터 값진 인생 경험이나 유용한 업무 노하우 같은 걸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고, 재미있다는 건 유익이라는 부분이 좀 여의치 않은 경우 최소한 재미라도 있는 자리여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이런 건 특히 그 자리를 주재하는 상급자의 역할이 중요하겠습니다. 공감능력 없고 아무런 인사이트도 줄 능력 안 되는 상급자들이 혼밥이나 혼술은 할 줄 모르고 꼬박꼬박 식사 파트너를 고집하면, 공연히 여러 사람만 피곤하게 되는 것이죠.
저 글은 직장 상급자의 입장에서 저녁 회식을 하는 게 맞냐 안 맞냐 하는 얘기를 하느라 저녁 회식에 대해서만 따져본 것이지만, 점심자리도 사실 마찬가지겠죠.
그런데 점심자리는 좀 애매한 측면이 있습니다. 식사시간 자체가 저녁자리에 비해 매우 짧을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요. 대부분의 직장에서 점심시간은 기껏해야 한 시간 정도에 불과할 텐데, 사무실에서 식당까지 이동하는 시간, 주문하는 시간, 식사가 나오길 기다리는 시간, 다른 행동 안 하고 순수하게 식사를 하는 데만 걸리는 시간, 다시 사무실까지 복귀하는 시간만 따져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가 버립니다. 게다가 요새는 순식간에 밥을 비운 후 곧장 커피나 차를 마시러 카페를 향하기도 하기 때문에, 한 시간은 짧아도 너무 짧기만 합니다.
그런데 밥과 커피를 흡입하기에도 부족하기만 한 이 짧은 순간에 유익? 재미? 유익이든 재미이든 일단 대화를 나누어야 유익하든 재미있든 할 텐데, 대화할 시간 자체가 턱없이 없잖아요.
더구나 제 좁은 소견에 우리 한식이 식사 파트너와의 대화를 즐기기에 그다지 적절한 메뉴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우리 한식은 싱거운 밥과 짠 반찬을 한데 입 안에 넣고 그 버무린 맛을 즐기는 음식이고, 기본적으로 여러 번의 상차림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코스 요리가 아니기 때문에, 식사하는 동안 입 안은 항상 여러 음식물이 머물러 있어야 해서 바쁩니다. 입은 쉴 시간이 없고 거의 항상 음식물을 머금고 있기 마련이죠. 그러니 입 안을 비우지 않은 채 대화하기는 힘들고, 조심하지 않을 경우 자칫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서양사람들은 식사시간도 길고 식사자리에서 대화를 많이 나눈다고, 그들이 부러운 듯 말하곤 합니다. 제 생각에 서양사람들의 식사시간이 길고 식사자리에서의 대화가 많은 이유는, 물론 지금이야 많이 간소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서양 요리가 기본적으로 코스 요리이기 때문입니다. 서양사람들이 식사하는 것을 유심히 보면, 눈 앞에 음식이 있을 때는 식사 자체에 집중하면서 순식간에 접시를 비웁니다. 그다지 대화도 없어 보입니다. 입 안에 음식물을 넣은 채 말하는 것은 테이블 매너가 아니라는 확고한 관습이 있어서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코스 요리이기 때문에 식사 사이사이의 간격이 꽤 되고, 바로 이 시간적 간격을 이용해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식사 사이사이의 간격은 물론, 식사를 주문하고 기다릴 때 '빨리 빨리'를 외치지 않고, 식사 후 제자리에 앉은 채로 하게 되는 음식값 계산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대화를 나눌 시간은 더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도 바쁠 때는 이런 느긋한 점심을 포기하고 사무실 제자리에서 샌드위치나 간단한 음식으로 점심을 해결하기도 합니다.
요약하면, 점심시간이 길어야 한 시간밖에 안 되고 식사 자체가 코스 요리 형태가 아닌 우리 실정에서는 점심자리에서의 대화란 요원한 일입니다. 점심자리에서 유익이나 재미를 구하는 것은 사치에 가깝습니다. 그러면 우린 단지 허기만 면하겠다는 용도로 점심시간을 쓸 수밖에 없는 걸까요.
가만 생각해보니, 이런 아이디어도 가능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동료들과의 점심은 이틀에 한 번꼴로만 갖고, 그 나머지 하루는 각자 사무실에서 간단히 때우며 계속 일을 하는 것이죠. 즉, 이틀에 한 번 있는 동료들과의 점심자리는 그 앞뒤 날 절약해 둔 점심시간을 합쳐 두 시간, 혹시 이게 여의치 않으면 한 시간 반 정도로 평소보다 길게 갖는 겁니다. 그리고 이 길어진 점심시간에 가급적 코스 요리 형태로 식사를 할 수 있는 메뉴를 정하기로 합니다. 평상시 흔히 먹는 단품 형태의 한식으로 식사를 하게 되면, 식사 사이사이의 간격이 없어 어차피 많은 대화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코스는 커피나 차까지 포함된 것이면 더 좋겠습니다. 점심시간이 길면 자칫 식사를 후다닥 마치고 커피나 차를 위해 카페로 가게 될 확률이 높은데, 그러면 카페로 이동하는 시간, 차를 주문하는 시간 등 낭비되는 시간이 생기게 되기 때문이죠.
결론은, 한 자리에서 코스 형태로 나오는 긴 식사를 즐기면서 대화를 좀더 하자는 거지요.
전제조건으로는 이런 게 있을 수 있겠네요. 이틀에 한 번 정도 간단한 음식으로 점심을 때우는 데 동료들이 모두 동의하느냐, 길어진 점심시간을 대화로 채울 만한 유익하거나 재미있는 콘텐츠를 우리 동료들이 많이 갖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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