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30일 일요일
[독서일기] 레미제라블 1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12/30/2018 10:24: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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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
독서일기
,
레미제라블
,
프랑스 사법제도
,
프랑스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
휴 잭맨, 앤 해서웨이, 러셀 크로 등이 출연한 영화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이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12월에 개봉되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당시 극장에서만 4번이나 볼 정도로 깊이 빠졌더랬습니다.
장발장이 사람들과 극진한 사랑을 나누고 혁명파가 희망을 노래하는 두 가지 이야기가 함께 진행되면서 전해주는 찐한 감동, 이런 감동을 한층 더 업~ 시켜주는 묵직하거나 아름다운 멜로디의 노래들, 배우들의 혼이 느껴지는 절절한 연기들, 어느 것 하나 빼고 더하거나 나무랄 데 없는 명작 영화였습니다, 저에게는요.
이 영화는 당시 다른 나라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히트를 하였습니다. 그때 막 끝난 대통령선거 결과에 실망한 우리 국민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어서 흥행한 것이라는 둥의 분석도 있었습니다만, 저의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외롭고 힘들게 지내던 저의 그때 그 시절을 위로해준 영화였기에 더 마음을 뺏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난 직후에 뮤지컬로도 보고 책으로도 접했지만, 영화만큼의 감동은 주지 못하더군요. 저에게는 뮤지컬이나 책보다 이 영화 자체가 '레미제라블'로서는 최고였습니다. 물론 이 영화의 OST도 너무 좋아해서 아직까지 즐겨 듣고 있구요.
2018년의 마지막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밤에 넷플릭스로 이 영화를 오랜만에 다시 찾아 보았습니다. 역시나 재미있으면서도 가슴 뭉클하게 감상했습니다. 다만, 영화에서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않은 내용을 책으로 다시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그래서 오랜만에 빅토르 위고의 책도 다시 꺼내들어 읽고 있습니다.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판본들이 있지만, 제가 읽고 있는 책 '레미제라블'은 동서문화사에서 여섯 권으로 나온 판본입니다.
책으로 보는 '레미제라블'은 분량이 많기도 하지만, 이야기 전개가 그리 빠르지 않고, 불필요해 보이는 잡다한 설명도 많고, 번역체 문장이 쉽게 읽히는 편도 아니어서, 처음 볼 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읽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레미제라블'에는 죄를 지은 장발장과 벌을 주려는 자베르 형사가 등장하는 관계로, 19세기 초의 프랑스 사법제도에 관한 얘기가 간간히 나오게 되는데요, 앞으로 책을 조금씩 읽어가면서 프랑스 사법제도 얘기가 나올 때마다 간단한 코멘트를 해볼까 합니다. 물론 저는 19세기의 프랑스 사법제도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긴 하지만, 저 자신의 공부를 위해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며 낯선 역사 속을 헤매어 보려 합니다.
어제부터 제1권을 펴 들기 시작했는데, 33쪽에 벌써부터 위조지폐범을 잡는 검사 얘기가 등장하네요. 독서일기 '레미제라블' 첫번째 이야기는 이걸로 시작해보겠습니다.
-------------------------------------------
소설 '레미제라블'은 1815년 프랑스 디뉴(Digne)라는 지방에서 주교 직을 수행하고 있는 미리엘(Myriel) 주교를 자세하게 소개하는 대목부터 시작합니다. 위고에 따르면 미리엘 주교는 신앙심 깊고, 빈자에게 자애롭고, 일체의 사리사욕 없이 남을 도우며 극히 검소하고 청렴한 삶을 살고 있고, 합리적인 사고방식과 용기도 갖고 있는, 한마디로 이 시대의 성자이자 현자입니다.
미리엘 주교는 원래 귀족 가문 출신으로 젊은 시절에는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나, 프랑스 대혁명으로 가문이 몰락하고 자신은 이탈리아로 망명하였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성직자로 변신하였고 이후로는 전혀 다른 성품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프랑스어 원문(다음에서 발췌: Victor Hugo. ‘Les misérables Tome I.’ iBooks. https://itunes.apple.com/kr/book/les-mis%C3%A9rables-tome-i/id510969617?mt=11)에는 그의 출신에 대해 "M. Myriel était fils d'un conseiller au parlement d'Aix; noblesse de robe"라고 표현하고 있고, 제가 읽고 있는 동서문화사 판본에서는 "미리엘씨는 액스 고등법원 평의원의 아들로 고귀한 법관 가문 출신이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parlement은 현재 '의회'라는 의미로 쓰이는 단어이고 영어에서 의회를 의미하는 parliament과 같은 단어이기도 하지만, 과거에는 의회가 아니라 '고등법원'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단어라고 합니다. 18세기 말까지 파리를 비롯한 13개 도시에 설치되어 있었고, 최종심으로서의 대법원이 별도로 없었던 당시에는 이 parlement이 각 관할구역 내에서 최종심을 담당하였습니다(문준영, 법원과 검찰의 탄생, 역사비평사, 2010, 75쪽).
그리고 'conseiller'는 대개 의회의 의원이라는 뜻의 단어이기도 하지만 다른 의미로는 법원의 판사를 가리키는 단어이므로, 동서문화사 판본에서 '고등법원 평의원'이라고 번역한 부분은 정확하지 않은 번역이라고 하겠습니다.
바로 다음에 나오는 'noblesse de robe'도 프랑스어 사전을 찾아보니 '법복 귀족'이라는 의미이더군요.
결국 위 프랑스어 문장은 "미리엘씨는 액스(Aix) 고등법원 판사의 아들로, 법복 귀족(또는 법관 가문) 출신이었다"로 읽을 수 있겠습니다.
그 뒤로는 미리엘 주교의 훌륭한 인품을 보여주기 위한 여러 에피소드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위조지폐범을 잡은 검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일단 위 iBooks 버전의 원문을 한번 가져와보겠습니다.
Il entendit un jour conter dans un salon un procès criminel qu'on instruisait et qu'on allait juger. Un misérable homme, par amour pour une femme et pour l'enfant qu'il avait d'elle, à bout de ressources, avait fait de la fausse monnaie. La fausse monnaie était encore punie de mort à cette époque. La femme avait été arrêtée émettant la première pièce fausse fabriquée par l'homme. On la tenait, mais on n'avait de preuves que contre elle. Elle seule pouvait charger son amant et le perdre en avouant. Elle nia. On insista. Elle s'obstina à nier. Sur ce, le procureur du roi avait eu une idée. Il avait supposé une infidélité de l'amant, et était parvenu, avec des fragments de lettres savamment présentés, à persuader à la malheureuse qu'elle avait une rivale et que cet homme la trompait. Alors, exaspérée de jalousie, elle avait dénoncé son amant, tout avoué, tout prouvé. L'homme était perdu. Il allait être prochainement jugé à Aix avec sa complice. On racontait le fait, et chacun s'extasiait sur l'habileté du magistrat. En mettant la jalousie en jeu, il avait fait jaillir la vérité par la colère, il avait fait sortir la justice de la vengeance. L'évêque écoutait tout cela en silence. Quand ce fut fini, il demanda:
—Où jugera-t-on cet homme et cette femme?
—À la cour d'assises.
Il reprit:
—Et où jugera-t-on monsieur le procureur du roi?
여기에 등장하는 사건은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연인관계인 남녀가 위조지폐를 만들어 사용한 혐의로 예심절차(instruire)를 거쳐 판결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형사사건으로, 당시는 위조지폐범에 대한 처벌이 사형이던 시절이었습니다. 남자는 위조지폐를 만들고 여자가 그것을 사용하다가 먼저 체포되었는데, 여자는 남자를 보호하기 위해 위조지폐의 출처에 대해 극구 함구하고 있었습니다. 검사(le procureur du roi)는 위조지폐를 만든 공범을 찾아내기 위해 아이디어 하나를 생각해 냈는데, 그것은 남자에게 다른 연인이 있고 여자는 남자에게 속은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위조하여 여자에게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이를 보고 남자에게 분노한 여자가 결국 남자가 위조지폐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자백하여 남자를 검거되게 하였고, 사람들은 여자의 분노를 이용해 진실을 밝혀내고 여자의 복수심에서 정의를 이끌어 냈다며 이 사법관(le magistrat)의 묘책에 감탄하였습니다.
그런데 미리엘 주교는 이 이야기를 듣고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그 남자와 여자는 어디에서 재판을 받습니까?” / “중죄법원(la cour d'assises)입니다.”
미리엘 주교는 다시 이렇게 묻습니다.
“그렇다면 그 검사는 어디에서 재판을 받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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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장이 사람들과 극진한 사랑을 나누고 혁명파가 희망을 노래하는 두 가지 이야기가 함께 진행되면서 전해주는 찐한 감동, 이런 감동을 한층 더 업~ 시켜주는 묵직하거나 아름다운 멜로디의 노래들, 배우들의 혼이 느껴지는 절절한 연기들, 어느 것 하나 빼고 더하거나 나무랄 데 없는 명작 영화였습니다, 저에게는요.
이 영화는 당시 다른 나라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히트를 하였습니다. 그때 막 끝난 대통령선거 결과에 실망한 우리 국민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어서 흥행한 것이라는 둥의 분석도 있었습니다만, 저의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외롭고 힘들게 지내던 저의 그때 그 시절을 위로해준 영화였기에 더 마음을 뺏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난 직후에 뮤지컬로도 보고 책으로도 접했지만, 영화만큼의 감동은 주지 못하더군요. 저에게는 뮤지컬이나 책보다 이 영화 자체가 '레미제라블'로서는 최고였습니다. 물론 이 영화의 OST도 너무 좋아해서 아직까지 즐겨 듣고 있구요.
2018년의 마지막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밤에 넷플릭스로 이 영화를 오랜만에 다시 찾아 보았습니다. 역시나 재미있으면서도 가슴 뭉클하게 감상했습니다. 다만, 영화에서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않은 내용을 책으로 다시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그래서 오랜만에 빅토르 위고의 책도 다시 꺼내들어 읽고 있습니다.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판본들이 있지만, 제가 읽고 있는 책 '레미제라블'은 동서문화사에서 여섯 권으로 나온 판본입니다.
책으로 보는 '레미제라블'은 분량이 많기도 하지만, 이야기 전개가 그리 빠르지 않고, 불필요해 보이는 잡다한 설명도 많고, 번역체 문장이 쉽게 읽히는 편도 아니어서, 처음 볼 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읽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레미제라블'에는 죄를 지은 장발장과 벌을 주려는 자베르 형사가 등장하는 관계로, 19세기 초의 프랑스 사법제도에 관한 얘기가 간간히 나오게 되는데요, 앞으로 책을 조금씩 읽어가면서 프랑스 사법제도 얘기가 나올 때마다 간단한 코멘트를 해볼까 합니다. 물론 저는 19세기의 프랑스 사법제도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긴 하지만, 저 자신의 공부를 위해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며 낯선 역사 속을 헤매어 보려 합니다.
어제부터 제1권을 펴 들기 시작했는데, 33쪽에 벌써부터 위조지폐범을 잡는 검사 얘기가 등장하네요. 독서일기 '레미제라블' 첫번째 이야기는 이걸로 시작해보겠습니다.
[https://ridibooks.com/v2/Detail?id=15190004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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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레미제라블'은 1815년 프랑스 디뉴(Digne)라는 지방에서 주교 직을 수행하고 있는 미리엘(Myriel) 주교를 자세하게 소개하는 대목부터 시작합니다. 위고에 따르면 미리엘 주교는 신앙심 깊고, 빈자에게 자애롭고, 일체의 사리사욕 없이 남을 도우며 극히 검소하고 청렴한 삶을 살고 있고, 합리적인 사고방식과 용기도 갖고 있는, 한마디로 이 시대의 성자이자 현자입니다.
미리엘 주교는 원래 귀족 가문 출신으로 젊은 시절에는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나, 프랑스 대혁명으로 가문이 몰락하고 자신은 이탈리아로 망명하였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성직자로 변신하였고 이후로는 전혀 다른 성품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프랑스어 원문(다음에서 발췌: Victor Hugo. ‘Les misérables Tome I.’ iBooks. https://itunes.apple.com/kr/book/les-mis%C3%A9rables-tome-i/id510969617?mt=11)에는 그의 출신에 대해 "M. Myriel était fils d'un conseiller au parlement d'Aix; noblesse de robe"라고 표현하고 있고, 제가 읽고 있는 동서문화사 판본에서는 "미리엘씨는 액스 고등법원 평의원의 아들로 고귀한 법관 가문 출신이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parlement은 현재 '의회'라는 의미로 쓰이는 단어이고 영어에서 의회를 의미하는 parliament과 같은 단어이기도 하지만, 과거에는 의회가 아니라 '고등법원'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단어라고 합니다. 18세기 말까지 파리를 비롯한 13개 도시에 설치되어 있었고, 최종심으로서의 대법원이 별도로 없었던 당시에는 이 parlement이 각 관할구역 내에서 최종심을 담당하였습니다(문준영, 법원과 검찰의 탄생, 역사비평사, 2010, 75쪽).
그리고 'conseiller'는 대개 의회의 의원이라는 뜻의 단어이기도 하지만 다른 의미로는 법원의 판사를 가리키는 단어이므로, 동서문화사 판본에서 '고등법원 평의원'이라고 번역한 부분은 정확하지 않은 번역이라고 하겠습니다.
바로 다음에 나오는 'noblesse de robe'도 프랑스어 사전을 찾아보니 '법복 귀족'이라는 의미이더군요.
결국 위 프랑스어 문장은 "미리엘씨는 액스(Aix) 고등법원 판사의 아들로, 법복 귀족(또는 법관 가문) 출신이었다"로 읽을 수 있겠습니다.
그 뒤로는 미리엘 주교의 훌륭한 인품을 보여주기 위한 여러 에피소드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위조지폐범을 잡은 검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일단 위 iBooks 버전의 원문을 한번 가져와보겠습니다.
Il entendit un jour conter dans un salon un procès criminel qu'on instruisait et qu'on allait juger. Un misérable homme, par amour pour une femme et pour l'enfant qu'il avait d'elle, à bout de ressources, avait fait de la fausse monnaie. La fausse monnaie était encore punie de mort à cette époque. La femme avait été arrêtée émettant la première pièce fausse fabriquée par l'homme. On la tenait, mais on n'avait de preuves que contre elle. Elle seule pouvait charger son amant et le perdre en avouant. Elle nia. On insista. Elle s'obstina à nier. Sur ce, le procureur du roi avait eu une idée. Il avait supposé une infidélité de l'amant, et était parvenu, avec des fragments de lettres savamment présentés, à persuader à la malheureuse qu'elle avait une rivale et que cet homme la trompait. Alors, exaspérée de jalousie, elle avait dénoncé son amant, tout avoué, tout prouvé. L'homme était perdu. Il allait être prochainement jugé à Aix avec sa complice. On racontait le fait, et chacun s'extasiait sur l'habileté du magistrat. En mettant la jalousie en jeu, il avait fait jaillir la vérité par la colère, il avait fait sortir la justice de la vengeance. L'évêque écoutait tout cela en silence. Quand ce fut fini, il demanda:
—Où jugera-t-on cet homme et cette femme?
—À la cour d'assises.
Il reprit:
—Et où jugera-t-on monsieur le procureur du roi?
여기에 등장하는 사건은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연인관계인 남녀가 위조지폐를 만들어 사용한 혐의로 예심절차(instruire)를 거쳐 판결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형사사건으로, 당시는 위조지폐범에 대한 처벌이 사형이던 시절이었습니다. 남자는 위조지폐를 만들고 여자가 그것을 사용하다가 먼저 체포되었는데, 여자는 남자를 보호하기 위해 위조지폐의 출처에 대해 극구 함구하고 있었습니다. 검사(le procureur du roi)는 위조지폐를 만든 공범을 찾아내기 위해 아이디어 하나를 생각해 냈는데, 그것은 남자에게 다른 연인이 있고 여자는 남자에게 속은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위조하여 여자에게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이를 보고 남자에게 분노한 여자가 결국 남자가 위조지폐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자백하여 남자를 검거되게 하였고, 사람들은 여자의 분노를 이용해 진실을 밝혀내고 여자의 복수심에서 정의를 이끌어 냈다며 이 사법관(le magistrat)의 묘책에 감탄하였습니다.
그런데 미리엘 주교는 이 이야기를 듣고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그 남자와 여자는 어디에서 재판을 받습니까?” / “중죄법원(la cour d'assises)입니다.”
미리엘 주교는 다시 이렇게 묻습니다.
“그렇다면 그 검사는 어디에서 재판을 받지요?”
1815년의 프랑스 형사사법제도가 지금과 동일하진 않지만,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 여러 개혁입법이 이루어지면서 지금과 유사한 내용의 근대적 형사사법제도가 마련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범죄수사법(le code d'instruction criminelle, 1808)과 법원조직법(Loi sur l'organisation de l'ordre judiciaire et l'administration de la justice, 1810)이 대표적인 입법입니다.
위 대목에서 등장하는 형사사법절차가 지금과는 다른 법에 근거하고 있지만, 대략적인 모습은 지금과 그다지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먼저, 위 에피소드의 남녀 주인공들이 예심절차를 거쳐 판결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는 대목이 나오네요. 예심절차제도는 구체제(앙시앙 레짐) 시절부터 있어오다 1808년 범죄수사법에 의해 현재의 모습이 갖춰지면서 아직까지 운영되고 있는 제도로서, 법원에서의 재판절차에 앞서 예심판사가 증거를 수집하는 일종의 수사절차 또는 일종의 예비적인 재판절차를 말합니다. 예심절차는 주로 중대한 범죄에 대해서 진행되는 절차인데, 위조지폐범이 사형으로 처벌되던 시절이라고 하니 당연히 예심절차의 대상이 되는 중대한 범죄였던 모양입니다.
예심절차의 대상이 되는 중대한 범죄에 대해서는 중죄법원이 그 재판을 담당합니다.
중죄법원이라 함은 배심재판 방식으로 운영되는 재판부를 말합니다. 프랑스의 배심재판제도(정확하게는 참심재판제도라고 하여야 합니다)는 직접적으로는 프랑스 대혁명을 계기로 영국을 모델로 한 것이나, 사실은 중세 프랑스의 형사재판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노르만족에 의해 영국에 전파되었다가 1791년 법률에 의해 다시 역수입된 것이라고 하네요(김택수, "프랑스 참심재판의 개혁과 시사점", 법학논총 제31집 제2호, 한양대 법학연구소, 2014, 74쪽).
중죄법원은 프랑스 대혁명 직후에는 'tribunal criminel'이라는 명칭으로 출발하였다가, 1810년 법원조직법에서 'cour d'assises'라는 현재의 명칭을 갖게 되었습니다{프랑스 위키피디아, https://fr.wikipedia.org/wiki/Cour_d%27assises_(France)}.
예심판사가 사실상의 수사를 담당하는 제도에서 검사는 어떠한 역할을 하게 될까요.
검사는 13세기 프랑스 왕의 사적 이익을 옹호하는 역할을 하던 '왕의 대리인(procureur du roi)'에서 유래하여 점차 왕의 사적 이익을 옹호하는 위치에서 벗어나 '일반이익과 공공선의 보좌인'이라는 위상을 갖게 된 국가기관으로, 법복 귀족이 장악한 법원을 견제하는 역할을 담당하여 오다 프랑스 대혁명을 계기로 집행권에 속한 특별한 사법관(magistrat)의 지위를 갖게 되었습니다(문준영, 앞의 책, 76~86쪽).
이후 왕정이 모습을 감추고 공화정이 정착되면서 종전의 명칭인 'procureur du roi(왕의 대리인 또는 공소관)' 대신 'procureur de la République(공화국의 대리인 또는 공소관)'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구요. 같은 프랑스어권 국가이지만 입헌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는 벨기에에서는 아직도 검사를 procureur du roi라고 부르고 있지요.
이후 왕정이 모습을 감추고 공화정이 정착되면서 종전의 명칭인 'procureur du roi(왕의 대리인 또는 공소관)' 대신 'procureur de la République(공화국의 대리인 또는 공소관)'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구요. 같은 프랑스어권 국가이지만 입헌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는 벨기에에서는 아직도 검사를 procureur du roi라고 부르고 있지요.
검사는 사법경찰의 수사행위를 지휘감독하고, 사법경찰의 수사 결과 중대한 범죄를 발견하게 되면 이에 대해 예심절차를 개시하여 달라고 예심판사에게 청구하고, 이 사건이 예심판사의 수사 결과 결국 혐의가 인정되어 재판법원으로 넘어오게 되면 법정에 출석하여 범인이 유죄를 받을 수 있도록 소송행위를 담당합니다.
위 에피소드에서 검사는 위조지폐를 사용하다 체포된 여자가 결국 공범에 대해 자백하도록 하였는데, 검사가 사법경찰의 수사, 예심판사의 예심, 재판법원의 재판 등 각 절차 모두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는 하므로 이 중 어느 한 단계에 끼어들어 여자의 자백을 유도하였을 것입니다.
이 에피소드를 들은 사람들 대부분은 이 검사가 기발한 꾀를 내어 자칫 법망을 잘 빠져나갈 뻔했던 공범을 통쾌하게 잡아냈다며 칭송하였다는 것인데요, 유독 미리엘 주교만 여기에 삐딱한 시선을 보냅니다. 아무리 공범을 잡겠다는 선한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무릇 정의를 추구한다는 국가기관이 저렇게 국민을 속이기까지 해서야 되겠냐는 거죠.
사실 지금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공범을 저런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잡아낸 검사가 이상해 보일 뿐 미리엘 주교의 문제 제기는 전혀 삐딱해 보이지 않지만, 미리엘 주교의 선한 품성을 소개하기 위해 빅토르 위고가 이런 에피소드를 레미제라블에 넣은 것을 보면 당시로서는 미리엘 주교를 통해 보여준 이러한 시각이 꽤 독특하고 신선한 것이었던가 봅니다.
사실 지금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공범을 저런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잡아낸 검사가 이상해 보일 뿐 미리엘 주교의 문제 제기는 전혀 삐딱해 보이지 않지만, 미리엘 주교의 선한 품성을 소개하기 위해 빅토르 위고가 이런 에피소드를 레미제라블에 넣은 것을 보면 당시로서는 미리엘 주교를 통해 보여준 이러한 시각이 꽤 독특하고 신선한 것이었던가 봅니다.
그러면 국가기관이 그러한 정직하지 못한 행위를 하면 안 된다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우리 형사소송법에 보면 제308조의2에 위법수집증거 배제원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진실의 발견이 형사사법절차의 목표이기는 하나, 그것은 적법절차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프랑스에도 위법수집증거 배제원칙에 해당하는 것으로 ‘적법절차 원칙(Principe de la légalité)’이라는 것이 있는데요, 인권을 존중하고 정의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증거를 수집함으로써 피고인의 권리와 공정한 절차를 보장하여야 한다는 원칙을 의미합니다. 이는 주로 ‘신의칙(Principe de loyauté)'에서 도출되는 것으로, 형사소송법상 명문의 규정은 없으나 전통적으로 판례에 의해 확립되어 있는 원칙입니다.
적법절차 원칙이 신의칙에서 유래된 데 기인하여, 위법하게(illicite) 수집된 증거뿐만 아니라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déloyale) 수집된 증거도 위법한 증거가 되고, 이러한 증거는 형사소송법에 마련되어 있는 ‘절차의 무효(Nullité de la procédure)'라는 제도에 따라 증거로서의 사용이 금지됩니다(한제희, "프랑스 위법수집증거 취급방법 개관", 형사소송 이론과 실무 제3권 제2호, 한국형사소송법학회, 2011, 198~203쪽).
이와 같이 검사가 위법한 방법으로 증거를 수집하면 안 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 없는 당연한 결론입니다. 그런데 이런 당연한 결론은 그렇다치고, 아마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의문이 드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그럼 위조지폐를 만든 이 범행의 주범인 남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남자에 대해서 위법하게 증거가 수집되었으니 남자는 무죄 판결을 받고 여자만 유죄 판결을 받게 되는 것인가.
우리의 위법수집증거 배제원칙의 경우,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도 예외는 있습니다. 본래의 범죄로 인해 발생한 위법상태와 증거의 위법한 수집으로 인해 발생한 위법상태를 서로 비교하여, 전자가 후자에 비해 본질적이거나 매우 중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도 예외적으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프랑스의 '적법절차 원칙'에도 이런 식의 예외가 인정되는 걸까요. 비슷한 논리로 증거로서의 사용을 인정한 판례들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예외가 인정된다는 취지의 명백한 학설은 없기 때문에, 이 사건의 경우 어떤 결론을 낼 수 있을지는 다소 불분명합니다.
어쨌든 이러한 판단은 재판을 하는 법관이 자유재량에 따라 하게 되는 것인데요. 제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이 사건의 경우 위조지폐를 만드는 것이 사형이라는 벌을 받을 정도로 매우 중대한 범죄이고 남자는 무죄 여자는 유죄라는 불합리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음을 감안할 때, 아마도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이긴 하지만 여자의 자백을 예외적인 유죄의 증거로 채택하여 남자에 대해서도 유죄 판결이 선고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둘째, 만약 검사가 정직한 사람이어서 여자를 속이려고 하지 않아 결국 남자를 못 잡았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남자를 못 잡으면 여자만 혼자 처벌받게 되는 문제가 있고, 남자가 재차 위조지폐를 만들어 사용하는 범행을 반복하게 될 것이니, 무슨 방법을 쓰든 남자를 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소설에 의하면 남자를 잡을 만한 다른 증거는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남자를 잡을 방법이 전혀 없었으니 검사가 정의감이나 의욕이 넘친 나머지 여자의 입을 열기 위해 저런 무리수를 둔 것이라는 거겠죠.
요새같이 두 남녀간의 문자 메시지나 카톡 메시지를 압수해서 보았더니 두 사람이 범행을 함께 한 것이라고 의심할만한 내용이 발견되었다면 어떨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결론은 마찬가지입니다. 공범임을 확신할 수 있는 명백한 내용이 아닌 한, 단지 의심스러운 내용의 문자나 카톡 메시지만으로는 혐의를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결국 두 사람의 자백 진술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거든요.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 보면, 어떤 살인 사건에서 증거라고는 범행에 사용된 칼에서 발견된 누군가의 지문 뿐이라고 할 때, 그 지문만으로 그 지문의 보유자를 범죄자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 지문 보유자의 자백이 추가로 필요합니다. 범죄자가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지문을 칼에 묻혀놓았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다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함부로 유죄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형사재판의 대원칙입니다.
즉, 비록 "자백은 증거의 왕이다"라는 말이 온갖 비난을 다 받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어떠한 물적 증거도 사람의 진술보다는 가치가 낮은 증거라는 것이죠. 여러 물적 증거들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고, 사람의 진술에 의해 '조합'되고 '연결'되어야만 유죄의 증거로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와 같은 이유로 범죄의 증거를 발견하고 수집한다는 것은 극히 힘든 일이고, 특히 사람의 진술은 더더욱 그러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무리 과학수사가 발달하더라도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는 미제 사건은 어쩔 수 없이 발생하기 마련이고, 더구나 그러한 경우가 꽤 잦을 수도 있습니다. 너무 무기력한 얘기 같지만, 이 사건과 같은 류의 사건에서 공범인 남자를 잡지 못하고 사건이 미궁에 빠지는 상황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다시 자세히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셋째, 미리엘 주교의 질문처럼 그럼 여자를 속인 검사는 어디에서 재판을 받게 될까요.
검사가 부정직한 행위를 하기는 했지만, 아마도 이러한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 형법 규정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떠한 잘못된 행위가 있더라도, 그 모두에 대해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 행위의 경중과 불법의 정도 등을 따져, 어떤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가 하면, 그와 다른 어떤 행위에 대해서는 민사배상을 하게 할 수도 있고, 그와는 또다른 어떤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이나 민사배상도 아닌 다른 형태의 제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결국 이 검사의 경우에는 아마도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못한 점을 이유로 내부적인 징계조치를 받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적법절차 원칙이 신의칙에서 유래된 데 기인하여, 위법하게(illicite) 수집된 증거뿐만 아니라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déloyale) 수집된 증거도 위법한 증거가 되고, 이러한 증거는 형사소송법에 마련되어 있는 ‘절차의 무효(Nullité de la procédure)'라는 제도에 따라 증거로서의 사용이 금지됩니다(한제희, "프랑스 위법수집증거 취급방법 개관", 형사소송 이론과 실무 제3권 제2호, 한국형사소송법학회, 2011, 198~203쪽).
이와 같이 검사가 위법한 방법으로 증거를 수집하면 안 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 없는 당연한 결론입니다. 그런데 이런 당연한 결론은 그렇다치고, 아마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의문이 드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그럼 위조지폐를 만든 이 범행의 주범인 남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남자에 대해서 위법하게 증거가 수집되었으니 남자는 무죄 판결을 받고 여자만 유죄 판결을 받게 되는 것인가.
우리의 위법수집증거 배제원칙의 경우,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도 예외는 있습니다. 본래의 범죄로 인해 발생한 위법상태와 증거의 위법한 수집으로 인해 발생한 위법상태를 서로 비교하여, 전자가 후자에 비해 본질적이거나 매우 중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도 예외적으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프랑스의 '적법절차 원칙'에도 이런 식의 예외가 인정되는 걸까요. 비슷한 논리로 증거로서의 사용을 인정한 판례들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예외가 인정된다는 취지의 명백한 학설은 없기 때문에, 이 사건의 경우 어떤 결론을 낼 수 있을지는 다소 불분명합니다.
어쨌든 이러한 판단은 재판을 하는 법관이 자유재량에 따라 하게 되는 것인데요. 제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이 사건의 경우 위조지폐를 만드는 것이 사형이라는 벌을 받을 정도로 매우 중대한 범죄이고 남자는 무죄 여자는 유죄라는 불합리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음을 감안할 때, 아마도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이긴 하지만 여자의 자백을 예외적인 유죄의 증거로 채택하여 남자에 대해서도 유죄 판결이 선고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둘째, 만약 검사가 정직한 사람이어서 여자를 속이려고 하지 않아 결국 남자를 못 잡았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남자를 못 잡으면 여자만 혼자 처벌받게 되는 문제가 있고, 남자가 재차 위조지폐를 만들어 사용하는 범행을 반복하게 될 것이니, 무슨 방법을 쓰든 남자를 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소설에 의하면 남자를 잡을 만한 다른 증거는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남자를 잡을 방법이 전혀 없었으니 검사가 정의감이나 의욕이 넘친 나머지 여자의 입을 열기 위해 저런 무리수를 둔 것이라는 거겠죠.
요새같이 두 남녀간의 문자 메시지나 카톡 메시지를 압수해서 보았더니 두 사람이 범행을 함께 한 것이라고 의심할만한 내용이 발견되었다면 어떨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결론은 마찬가지입니다. 공범임을 확신할 수 있는 명백한 내용이 아닌 한, 단지 의심스러운 내용의 문자나 카톡 메시지만으로는 혐의를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결국 두 사람의 자백 진술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거든요.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 보면, 어떤 살인 사건에서 증거라고는 범행에 사용된 칼에서 발견된 누군가의 지문 뿐이라고 할 때, 그 지문만으로 그 지문의 보유자를 범죄자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 지문 보유자의 자백이 추가로 필요합니다. 범죄자가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지문을 칼에 묻혀놓았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다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함부로 유죄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형사재판의 대원칙입니다.
즉, 비록 "자백은 증거의 왕이다"라는 말이 온갖 비난을 다 받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어떠한 물적 증거도 사람의 진술보다는 가치가 낮은 증거라는 것이죠. 여러 물적 증거들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고, 사람의 진술에 의해 '조합'되고 '연결'되어야만 유죄의 증거로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와 같은 이유로 범죄의 증거를 발견하고 수집한다는 것은 극히 힘든 일이고, 특히 사람의 진술은 더더욱 그러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무리 과학수사가 발달하더라도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는 미제 사건은 어쩔 수 없이 발생하기 마련이고, 더구나 그러한 경우가 꽤 잦을 수도 있습니다. 너무 무기력한 얘기 같지만, 이 사건과 같은 류의 사건에서 공범인 남자를 잡지 못하고 사건이 미궁에 빠지는 상황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다시 자세히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셋째, 미리엘 주교의 질문처럼 그럼 여자를 속인 검사는 어디에서 재판을 받게 될까요.
검사가 부정직한 행위를 하기는 했지만, 아마도 이러한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 형법 규정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떠한 잘못된 행위가 있더라도, 그 모두에 대해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 행위의 경중과 불법의 정도 등을 따져, 어떤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가 하면, 그와 다른 어떤 행위에 대해서는 민사배상을 하게 할 수도 있고, 그와는 또다른 어떤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이나 민사배상도 아닌 다른 형태의 제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결국 이 검사의 경우에는 아마도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못한 점을 이유로 내부적인 징계조치를 받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8년 12월 24일 월요일
르몽드가 추천하는 크리스마스 영화 9편
2018년 12월 23일자 르몽드의 "Les films de Noël de la rédaction du « Monde.fr »" 기사. 르몽드가 100% 주관적으로 뽑은 크리스마스 추천 영화 9편입니다.
미국 영화가 많고, 대부분 너무 흔하고 유명한 영화들이네요. 새로움은 없지만, 미국 영화 제목을 프랑스에서는 어떻게 작명했는지를 보는 새로움은 있다고 할까요.
윗쪽은 프랑스에서의 제목과 개봉 연도이고, 아랫쪽에는 친절하게 오리지널 제목과 한국 제목을 달아드립니다.
1. « Il était une fois en Amérique » (1984)
Once upon a time in America,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2. « Maman, j’ai encore raté l’avion » (1992)
Home Alone 2: Lost in New York, 나홀로 집에 2
3. « Les Gremlins » (1984)
Gremlins, 그렘린
4. « Le Père Noël est une ordure » (1982)
이건 프랑스 영화군요.
5. « Love actually » (2003)
Love actually, 러브 액츄얼리
6. « Un jour sans fin » (1993)
Groundhog Day, 사랑의 블랙홀
8. « Ben Hur » (1959)
Ben Hur, 벤허
9. « West Side Story » (1961)
West Side Story, 웨스트 사이트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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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화가 많고, 대부분 너무 흔하고 유명한 영화들이네요. 새로움은 없지만, 미국 영화 제목을 프랑스에서는 어떻게 작명했는지를 보는 새로움은 있다고 할까요.
윗쪽은 프랑스에서의 제목과 개봉 연도이고, 아랫쪽에는 친절하게 오리지널 제목과 한국 제목을 달아드립니다.
1. « Il était une fois en Amérique » (1984)
Once upon a time in America,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2. « Maman, j’ai encore raté l’avion » (1992)
Home Alone 2: Lost in New York, 나홀로 집에 2
3. « Les Gremlins » (1984)
Gremlins, 그렘린
4. « Le Père Noël est une ordure » (1982)
이건 프랑스 영화군요.
5. « Love actually » (2003)
Love actually, 러브 액츄얼리
6. « Un jour sans fin » (1993)
Groundhog Day, 사랑의 블랙홀
7. « Une journée en enfer » (1995)
Die Hard with a Vengeance, 다이하드3
Die Hard with a Vengeance, 다이하드3
Ben Hur, 벤허
9. « West Side Story » (1961)
West Side Story, 웨스트 사이트 스토리
2018년 12월 23일 일요일
[독서일기] 아날로그의 반격
재미있는 책을 발견했고, 역시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2017년 6월 우리말로 번역돼 나온 데이비드 색스의 '아날로그의 반격'입니다.
저자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진작 마땅히 멸종되었을 줄 알았던 레코드판, 종이 노트, 필름 카메라, 보드게임 카페, 종이 잡지, 오프라인 서점 등이 지금도 버젓이 살아 남아 있고, 심지어는 이것들이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다시 유행상품이 되려고 하는 사례들을 보여 줍니다.
물론 저자가 제시한 사례들만 보면 아직 이 아날로그들의 반격은 미미하고 대세라고 말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저자는 사람들이 서서히 이 아날로그들에 다시 주목하는 현상에 적지 않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디지털이 지금 사회의 주류 경향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바람직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인간이란 존재는 나름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기에, 사람들이 무작정 디지털 세계라는 한쪽 방향으로만 쏠리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저자는 아날로그에서 시작하여 디지털로의 전환까지 경험한 장년층 세대와, 처음부터 디지털만 경험해온 신진 세대를 나누어 아날로그의 반격 경향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전자의 경우 자신이 어려서부터 경험하고 즐겨왔던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와 복고가 작용하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 디지털에 대해서만 알고 있는 세대의 입장에서 아날로그는 새로운 것이기에 힙하고 쿨해서 매력적이라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새로운 것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손에 넣고서 남들과 달라보인다는 것에 우쭐하고 만족스러워하곤 하지요. 그러다 그 새로운 것이 대세가 되고나면 다시 다른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구요. 그 새로운 것에는 과거의 것도 물론 포함되기도 합니다. 복고가 다시 유행을 타는 경우도 흔하잖습니까.
쉬운 예를 들어 보면, 스마트폰이 처음 우리에게 등장했을 때는 지하철에서 남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즐기며 스마트폰을 시전하다가, 이제는 지하철에서 누구나 스마트폰에 시선을 꽂고 다니게 되자 그러한 유행에 식상하여 반대로 종이책을 꺼내들고 싶어하게 되잖아요.
저자가 제시한 여러 사례들 중에서도 특히 7장의 디트로이트 시계 제조업체 '시놀라' 사례와 8장의 학교 교육 테크놀로지 사례가, 저에게는 인상 깊었습니다.
수십년간 도시를 먹여살리던 자동차 산업이 떠나가 거의 폐허가 된 디트로이트에 아날로그적인 제조업 방식으로 아날로그 시계를 제조하는 '시놀라'가 잔잔한 파문을 던지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미국은 전통적인 제조업체보다는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업체들이 각광을 받고 있지만, 이러한 IT업체들의 경우 제조업체에 비해 매우 적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을 뿐더러 그 일자리조차 고급 프로그래머와 같은 고도로 숙련된 일자리와 단순 업무만을 처리하는 숙련도 낮은 일자리로 양분되어 있을 뿐이어서 사회적인 공헌도가 크지 않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전통적인 제조업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죠.
저는 아이패드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아이패드라는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기계가 등장하면서, 스티브 잡스가, 그리고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 아이패드가 첨단 교육기기로서 금방 학교 교실들을 장악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자에 의하면 이 실험은 이미 실패하였다고 합니다.
모든 교실에 아이패드를 비롯한 첨단 교육용 기기를 공급하고 설치한다는 것은 정치가나 행정가의 보여주기식 정책으로는 정말 그만이지만,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한 오해에 기인한 정책이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교육이라는 게 단지 지식의 전수에 불과한 것이라면 첨단 기기가 충분히 제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교육은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이고 그들 간의 공감이 본질이기에 그렇지 않다는 것이네요. 스마트 기기가 야기하는 집중력과 사고력의 훼손, 기기의 유지보수 비용 등도 부수적으로 문제가 되겠구요.
아날로그는 이미 흘러간 옛노래인 줄만 알았는데, 너무 세상을 단순하게만 보고 있었던 저에게 귀한 교훈을 주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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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es24.com/24/goods/43209147] |
저자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진작 마땅히 멸종되었을 줄 알았던 레코드판, 종이 노트, 필름 카메라, 보드게임 카페, 종이 잡지, 오프라인 서점 등이 지금도 버젓이 살아 남아 있고, 심지어는 이것들이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다시 유행상품이 되려고 하는 사례들을 보여 줍니다.
물론 저자가 제시한 사례들만 보면 아직 이 아날로그들의 반격은 미미하고 대세라고 말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저자는 사람들이 서서히 이 아날로그들에 다시 주목하는 현상에 적지 않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디지털이 지금 사회의 주류 경향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바람직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인간이란 존재는 나름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기에, 사람들이 무작정 디지털 세계라는 한쪽 방향으로만 쏠리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저자는 아날로그에서 시작하여 디지털로의 전환까지 경험한 장년층 세대와, 처음부터 디지털만 경험해온 신진 세대를 나누어 아날로그의 반격 경향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전자의 경우 자신이 어려서부터 경험하고 즐겨왔던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와 복고가 작용하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 디지털에 대해서만 알고 있는 세대의 입장에서 아날로그는 새로운 것이기에 힙하고 쿨해서 매력적이라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새로운 것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손에 넣고서 남들과 달라보인다는 것에 우쭐하고 만족스러워하곤 하지요. 그러다 그 새로운 것이 대세가 되고나면 다시 다른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구요. 그 새로운 것에는 과거의 것도 물론 포함되기도 합니다. 복고가 다시 유행을 타는 경우도 흔하잖습니까.
쉬운 예를 들어 보면, 스마트폰이 처음 우리에게 등장했을 때는 지하철에서 남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즐기며 스마트폰을 시전하다가, 이제는 지하철에서 누구나 스마트폰에 시선을 꽂고 다니게 되자 그러한 유행에 식상하여 반대로 종이책을 꺼내들고 싶어하게 되잖아요.
저자가 제시한 여러 사례들 중에서도 특히 7장의 디트로이트 시계 제조업체 '시놀라' 사례와 8장의 학교 교육 테크놀로지 사례가, 저에게는 인상 깊었습니다.
수십년간 도시를 먹여살리던 자동차 산업이 떠나가 거의 폐허가 된 디트로이트에 아날로그적인 제조업 방식으로 아날로그 시계를 제조하는 '시놀라'가 잔잔한 파문을 던지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미국은 전통적인 제조업체보다는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업체들이 각광을 받고 있지만, 이러한 IT업체들의 경우 제조업체에 비해 매우 적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을 뿐더러 그 일자리조차 고급 프로그래머와 같은 고도로 숙련된 일자리와 단순 업무만을 처리하는 숙련도 낮은 일자리로 양분되어 있을 뿐이어서 사회적인 공헌도가 크지 않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전통적인 제조업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죠.
저는 아이패드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아이패드라는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기계가 등장하면서, 스티브 잡스가, 그리고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 아이패드가 첨단 교육기기로서 금방 학교 교실들을 장악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자에 의하면 이 실험은 이미 실패하였다고 합니다.
모든 교실에 아이패드를 비롯한 첨단 교육용 기기를 공급하고 설치한다는 것은 정치가나 행정가의 보여주기식 정책으로는 정말 그만이지만,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한 오해에 기인한 정책이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교육이라는 게 단지 지식의 전수에 불과한 것이라면 첨단 기기가 충분히 제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교육은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이고 그들 간의 공감이 본질이기에 그렇지 않다는 것이네요. 스마트 기기가 야기하는 집중력과 사고력의 훼손, 기기의 유지보수 비용 등도 부수적으로 문제가 되겠구요.
아날로그는 이미 흘러간 옛노래인 줄만 알았는데, 너무 세상을 단순하게만 보고 있었던 저에게 귀한 교훈을 주는 책이었습니다.
2018년 12월 21일 금요일
프랑스도 검사의 수가 부족?
2018년 12월 20일자 르몽드 지 기사 "검사의 긴급한 증원을 권고하는 보고서(Un rapport préconise d’augmenter de façon « urgente » les effectifs de magistrats du parquet)"의 내용은 대략 이러합니다.
법무부 소속의 '사법감찰관(inspection générale de la justice)'이 작성해서 지난 월요일 법무부장관에게 제출한 보고서는, 검찰이 겪고 있는 만성적인 인원 부족 상태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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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소속의 '사법감찰관(inspection générale de la justice)'이 작성해서 지난 월요일 법무부장관에게 제출한 보고서는, 검찰이 겪고 있는 만성적인 인원 부족 상태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세련되고 효율적인 사법제도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직무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장치들이 필요한데, 보다 많은 수의 검사가 우선 필요하다. 사법감찰관은 만성적인 인원 부족 상태에 있는 검사의 수를 확실하게 늘릴 것을 권고한다.
이 보고서에서는 판사에 비해 검사의 인적 손실로 인해 검사의 매력이 줄고 있다고 강조한다. 국립사법관학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검사의 38%가 5년이 지나면 검찰을 떠났고, 10년이 지나면 55%가 검찰을 떠났다.
이렇게 검사 인원이 부족하게 된 이유로는, 근무시간의 급증, 그리고 사법관의 긴급한 대처를 의무화하는 각종 법률의 인플레이션에 따라 검찰에 부여되는 업무의 과중을 들 수 있다.
사법감찰관은 우선 검찰의 빈자리부터 메워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3개월 전까지 검사 보직 중 3.84%가 공석으로 남아 있었고, 이는 1년 전의 7.31%에 비해 낮아진 수치이다. 현재의 공석률은 2.97%로 생각되는데, 이는 내년 9월에 사법관학교를 졸업하는 352명의 사법연수생들이 검찰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에릭 마태(Eric Mathais) 전국검사장회의(Conférence nationale des procureurs de la République) 의장은 "이 보고서는 검사의 자기정체성 위기가 심각하고, 이는 우리가 과장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라고 평하였다.
2017년 여름에 전국검사장회의에서 발간한 'Livre noir'에서는, 빈곤화가 진행 중인 사법기관의 풍경을 묘사하고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검사의 지위 관련 개혁을 요구하였다.
검사의 지위 관련 개혁방안(이는 검찰의 일체감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으로 헌법 개정과 함께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현재 '노란 조끼' 운동으로 인해 헌법 개정작업이 정지되어 있는 상태이다) 외에, 사법감찰관은 검사들의 무관심을 야기하는 또다른 요소이기도 한 위계조직 구조에 관한 폭넓은 검토를 제안하였다.
사법관조합은 이 보고서가 그들의 요구사항에 부합하는 실용적인 내용이라고 환영하면서 법무부장관에게 이 보고서의 28개 권고사항에 대한 세부조치를 마련할 것을 요구하였다.
법무부 대변인은 장관의 요구에 따라 1월부터 조사위원회가 운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 내용만으로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기에 사법감찰관이 작성해서 법무부장관에게 보고하였다는 위 보고서 원문을 보고 싶은데, 법무부 홈페이지에서는 아직 볼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기사 내용만으로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기에 사법감찰관이 작성해서 법무부장관에게 보고하였다는 위 보고서 원문을 보고 싶은데, 법무부 홈페이지에서는 아직 볼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2018년 12월 17일 월요일
[독서일기] <호모 히스토리쿠스>,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
최근에 역사에 관한 좋은 책 두 권을 읽었습니다. 오항녕 지음 <호모 히스토리쿠스>(2016년 8월, 개마고원)와 젊은역사학자모임 지음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2018년 10월, 서해문집)입니다.
전자는 역사란 무엇이고 역사 공부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 하는 점을, 후자는 유사역사학을 비판하면서 역사 공부의 바른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두 책의 저자들이 이 책들을 저술하게 된 각각의 출발점은 다르겠지만, 결국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 주겠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즉, 역사를 섣불리 단정 지어 보지 말고, 또 악의를 갖고 역사를 호도하는 사람들을 경계하자는 것입니다.
두 책 모두 느끼는 바가 많은 내용들을 담고 있고, 거의 암기 정도 해놔야 되지 않을까 싶은 주옥같은 내용들이 많습니다. 비단 역사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 사회를 정확히 바라보는 데도 유용한 사고 틀을 발견할 수 있네요. 두고두고 기억해 놓기 위해 여기 일부 내용을 옮겨보려 합니다.
<호모 히스토리쿠스>
제1부 내 발길이 만드는 역사
- 모든 사건에는 언제나 객관적 조건, 사람의 의지, 그리고 우연이 함께 들어 있다. 모든 사건은 조건, 의지, 우연이 합쳐져서 발생합니다. 역사는 사건에 대한 탐구이므로 모든 사건을 탐구할 때는 조건, 의지, 우연을 다 살펴야 합니다. (34쪽)
- 구조라고 해서 불변은 아닙니다. 구조도 변합니다. 구조는 다음에 살펴볼 자유의지와 대립적이지 않습니다. 자유의지로 선택한 것이 나중에는 구조가 됩니다. (52쪽)
- 객관적 조건과 구조를 고려하지 않으면 사태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구조만 고려하면 설명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이 사라집니다. --- 인간의 의지가 빠진 역사적 사건이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53쪽)
- 모든 역사적 사건에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작용하고 있지만, 사건을 해석할 때는 자유의지를 조심스럽게 대입해야 할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60쪽)
- 역사에는 서로 원인이 다른 둘 이상의 사태가 만나서 생기는 사건이 많습니다. 아니 모든 사건에는 우연이 내재합니다. (68쪽)
제2부 역사의 영역
제3부 기억, 기록, 그리고 시간의 존재
- 이렇게 잘못된 기억이 증언이나 기록으로 남고, 이것이 역사자료로 활용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연스럽게 역사의 오류를 낳거나 왜곡으로 이어지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132쪽)
- 핵심은 주관(성)이란 것이 객관(성)과 대립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무엇이 아니라는 겁니다. 아니 그보다 객관성의 토대이자 자양분이며, 실질적 내용이자 풍부하게 해주는 질료가 주관성입니다. 주관을 객관의 대립으로 설정하는 사유는 결국 하나의 '객관'만을 강요하기에 이릅니다. (151쪽)
- 역사기록이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일기나 편지에서 교과서, 논문까지 역사기록의 스펙트럼은 넓습니다. 전자를 주로 사료, 역사기록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역사서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 이런 스펙트럼을 고려하면 사실과 해석, 주관과 객관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데도 유용합니다. (164쪽)
- 역사성에 대한 인식이 중요한 이유는, 역사성을 놓치면 시대착오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이 오류는 어떤 사건이 실제 일어난 시기(시대)가 아닌 다른 시기에 일어난 것처럼 묘사, 분석,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 시대착오의 오류 중 먼저 들 수 있는 것이 현재주의의 오류입니다. 현재주의는 현재의 관점으로 과거의 어떤 사실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175쪽)
제4부 오해와 이해의 갈림길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
고조선 역사, 어떻게 볼 것인가
- 고조선 문화권에서 세 유물이 모두 균일한 밀도로 갖추어져 있었다고 단순하게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 유물을 통해 확인되는 문화적 분포권을 고대국가의 영역과 간단히 동일시해 버리는 태도 역시 위험하다. 문화는 국경을 넘어서도 전파될 수 있기 때문이다. (29쪽)
낙랑군은 한반도에 없었다?
- 사이비 역사가들은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광대한 대륙을 호령했던 우리 역사를 반도로 축소했다고 열을 올려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대륙의 역사는 우월하고 반도의 역사는 열등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다. 넓은 영토에 대한 환상과 욕망에 취해 정작 우리가 발을 디디고 살고 있는 한반도를 혐오하고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 (60쪽)
광개토왕비 발견과 한중일 역사전쟁
- 광개토대왕비는 이러한 정사 기록이 아니다. 장수왕이 자기 부왕인 광개토왕의 업적을 대외에 과시하고자 작성한 훈적비인 셈이다. 또한 비문은 고구려 왕가의 입장에서 과거에 일으킨 전쟁이 정당한 명분하에 치러졌으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성공적으로 수행했음을 국내성의 귀족과 주민에게 널리 알리는 정치 선전물이기도 했다. (88쪽)
- 정작 중요한 것은 비문에서 드러난 국제 정세에 대한 고구려인의 '인식'과 자기 '욕망'이며, 여기에 토대를 둔 정치적 발언 자체를 사실로 보는 것은 순진한 발상에 불과하다. (92쪽)
백제는 정말 요서로 진출했나
- 백제의 요서 진출 정보가 중국 정사에 기록됐기 때문에 타자의 '객관적 시각'에 따라 서술된 '역사적 사실'이라는 믿음도 있다. 타자의 기록이 가진 긍정적 속성도 있지만, 무지와 편견과 이해관계에 따른 왜곡 역시 적지 않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남조 역사서를 해석할 때는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 --- 백제의 요서 진출 문제는 백제만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요서와 중국 내륙, 나아가 동아시아로 시야를 넓혀 입체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조'라는 타자를 주의 깊게 이해해야 한다. 그들 입장에서 왜 기록하게 됐는지를 다각도로 따져 보는 과정 속에서 백제의 요서 진출에 대한 이해도 풍부해질 것이다. (125쪽)
칠지도가 들려주는 백제와 왜 이야기
- 백제에서 만들어진 칠지도는 기본적으로 왜에 대한 백제의 '인식'을 보여 주는 물건이다. <일본서기>가 백제에 대한 일본의 '인식'을 보여 주는 사료라는 점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칠지도에 보이는 백제의 인식이 당시 백제와 왜의 실제 관계를 보여 주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151쪽)
- 국가 간의 외교 관계에 있어서 어느 한쪽의 인식이 두 나라의 실제 관계와 다르게 기록되는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여러 나라들은 백제왕을 책봉할 때, 자국 중심의 인식에 맞춰 외교문서를 보냈다. 백제왕도 그러한 인식에 어긋나지 않게끔 형식을 갖추어 외교문서를 보냈다. 이러한 관계를 흔히 '조공책봉 관계'라고 하지만, 둘 사이의 실제 관계는 그러한 인식과는 조금 달랐다. 백제왕은 국내의 필요성과 중국의 상황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백제의 외교적 이익에 따라 행동하기도 했다. (151쪽)
- 칠지도는 백제왕이 왜왕에게 내려준다는 백제의 인식에 따라 제작됐다. 다만, 실제 백제와 왜의 관계는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우호 관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우호 관계를 고려한다면, 칠지도의 실제 성격은 '헌상품'이나 '하사품'이라기보다, 외교적 선물에 가까웠을 것이다. (153쪽)
생존을 위한 전쟁, 신라의 삼국통일
- 지금까지 신라의 외교와 전쟁 수행 과정을 살펴보면 결국 고구려와 백제는, 신라 입장에서 상황에 따라 적국이 되거나 동맹국이 될 수 있는, 혹은 상대를 복속시켜서 속국으로 삼기도 한 타국이었다. 이들 사이에 언어가 통한다거나 혹은 문화적 공통점이 어느 정도 있다 할지라도 이들은 같은 민족으로 서로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각기 다른 국가로서 자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합종연횡을 거듭했다. 신라가 백제를 상대할 대상으로 고구려를 선택한 것도 전략적이었으며, 왜나 당을 선택해 외교를 펼친 것 또한 전략적 이득을 감안한 것이었다. (184~5쪽)
- 이 시기에 고구려나 백제, 왜, 당은 신라 입장에서 모두 외세였으며 서로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관계였다. 그리고 이들에게 고구려, 신라, 백제라는 삼국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인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의 관계에 민족이라는 터울을 씌우는 순간 역사는 역사가 아닌 현재의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관점 속에 있는 상상 속 산물이 될 것이다. 그러한 산물 속에서 김춘추는 사대주의자로 포장돼 비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후대의 산물, 인식을 그것이 실재하지 않았던 시기에 실재한 것처럼 덮어씌워 이야기하는 것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이 아닐까. (185쪽)
신라 김씨 왕실은 흉노의 후예였나
- 선조에 대한 여러 기록에는 사람들의 욕망이 투영돼 있다. 또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고대사를 바라보며 여러 욕망을 투영한다. 사람들이 신라 김씨 왕실의 선조에 대한 여러 기록 가운데서도 유독 김일제가 선조였다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던 데에는 우리 민족의 범위를 확장하고 싶은 욕구가 반영돼 있다. 즉 김일제가 신라 김씨 왕실의 선조이면 흉노가 아우르던 드넓은 영토가 곧 우리 민족의 영토가 되고, 중국 왕조를 위협하던 흉노의 강한 군사력이 곧 우리 민족의 힘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일제에 대한 기록은 관념적인 표방이며, 오히려 김일제란 인물은 이민족으로서 중국 왕조에 충성을 바친 상징적 인물이란 사실을 떠올리는 편이 좋을 것이다. (216쪽)
임나일본부설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 과연 고대를 살아간 고대인들을 현대의 국가와 민족 관점에서 해석하는 일이 타당할까?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분과 남해안 교통로의 거점에서 발견되는 왜계 무덤들, 그리고 일본열도에서 발견되는 한반도계 유적들은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에 가로놓인 바다가 당시 사람들에게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가 아니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일 수 있다. <일본서기>에 나타나는 왜인계 관료들의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넘나드는 활동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임나일본부의 실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이처럼 현대인이 아닌 고대인의 관점을 염두에 두고 연구할 때 가능하지 않을까? (246쪽)
발해사는 누구의 역사인가
- 요컨대, 당은 대조영이 실제 말갈인지 아닌지와 관계없이 '발해는 말갈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복속시키지 못한 집단에 대한 오기이자, 일종의 타자화였다. 그런데 공교롭게 그 타자에 대한 멸시를 담은 '말갈'이라는 단어를 근거로 현재 중국은 발해를 자기화하려 한다. 이 얼마나 역설인가. (271~2쪽)
- 일제는 만주국과 조선에 대한 효율적 식민 통치를 위해 역사적으로 만주는 중국과 분리된 지역이었고, 조선은 만주에 종속적이었다는 논리를 만들어 냈다. 발해사 연구는 이런 만선사관 시각에서 진행됐다. (273쪽)
고대국가의 전성기, 언제로 봐야 할까?
<환단고기>에 숨은 군부독재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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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는 역사란 무엇이고 역사 공부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 하는 점을, 후자는 유사역사학을 비판하면서 역사 공부의 바른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두 책의 저자들이 이 책들을 저술하게 된 각각의 출발점은 다르겠지만, 결국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 주겠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즉, 역사를 섣불리 단정 지어 보지 말고, 또 악의를 갖고 역사를 호도하는 사람들을 경계하자는 것입니다.
두 책 모두 느끼는 바가 많은 내용들을 담고 있고, 거의 암기 정도 해놔야 되지 않을까 싶은 주옥같은 내용들이 많습니다. 비단 역사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 사회를 정확히 바라보는 데도 유용한 사고 틀을 발견할 수 있네요. 두고두고 기억해 놓기 위해 여기 일부 내용을 옮겨보려 합니다.
<호모 히스토리쿠스>
[http://www.yes24.com/24/goods/30572882?scode=029] |
제1부 내 발길이 만드는 역사
- 모든 사건에는 언제나 객관적 조건, 사람의 의지, 그리고 우연이 함께 들어 있다. 모든 사건은 조건, 의지, 우연이 합쳐져서 발생합니다. 역사는 사건에 대한 탐구이므로 모든 사건을 탐구할 때는 조건, 의지, 우연을 다 살펴야 합니다. (34쪽)
- 구조라고 해서 불변은 아닙니다. 구조도 변합니다. 구조는 다음에 살펴볼 자유의지와 대립적이지 않습니다. 자유의지로 선택한 것이 나중에는 구조가 됩니다. (52쪽)
- 객관적 조건과 구조를 고려하지 않으면 사태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구조만 고려하면 설명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이 사라집니다. --- 인간의 의지가 빠진 역사적 사건이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53쪽)
- 모든 역사적 사건에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작용하고 있지만, 사건을 해석할 때는 자유의지를 조심스럽게 대입해야 할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60쪽)
- 역사에는 서로 원인이 다른 둘 이상의 사태가 만나서 생기는 사건이 많습니다. 아니 모든 사건에는 우연이 내재합니다. (68쪽)
제2부 역사의 영역
제3부 기억, 기록, 그리고 시간의 존재
- 이렇게 잘못된 기억이 증언이나 기록으로 남고, 이것이 역사자료로 활용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연스럽게 역사의 오류를 낳거나 왜곡으로 이어지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132쪽)
- 핵심은 주관(성)이란 것이 객관(성)과 대립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무엇이 아니라는 겁니다. 아니 그보다 객관성의 토대이자 자양분이며, 실질적 내용이자 풍부하게 해주는 질료가 주관성입니다. 주관을 객관의 대립으로 설정하는 사유는 결국 하나의 '객관'만을 강요하기에 이릅니다. (151쪽)
- 역사기록이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일기나 편지에서 교과서, 논문까지 역사기록의 스펙트럼은 넓습니다. 전자를 주로 사료, 역사기록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역사서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 이런 스펙트럼을 고려하면 사실과 해석, 주관과 객관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데도 유용합니다. (164쪽)
- 역사성에 대한 인식이 중요한 이유는, 역사성을 놓치면 시대착오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이 오류는 어떤 사건이 실제 일어난 시기(시대)가 아닌 다른 시기에 일어난 것처럼 묘사, 분석,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 시대착오의 오류 중 먼저 들 수 있는 것이 현재주의의 오류입니다. 현재주의는 현재의 관점으로 과거의 어떤 사실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175쪽)
제4부 오해와 이해의 갈림길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
[http://www.yes24.com/24/goods/65438499?scode=029] |
고조선 역사, 어떻게 볼 것인가
- 고조선 문화권에서 세 유물이 모두 균일한 밀도로 갖추어져 있었다고 단순하게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 유물을 통해 확인되는 문화적 분포권을 고대국가의 영역과 간단히 동일시해 버리는 태도 역시 위험하다. 문화는 국경을 넘어서도 전파될 수 있기 때문이다. (29쪽)
낙랑군은 한반도에 없었다?
- 사이비 역사가들은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광대한 대륙을 호령했던 우리 역사를 반도로 축소했다고 열을 올려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대륙의 역사는 우월하고 반도의 역사는 열등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다. 넓은 영토에 대한 환상과 욕망에 취해 정작 우리가 발을 디디고 살고 있는 한반도를 혐오하고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 (60쪽)
광개토왕비 발견과 한중일 역사전쟁
- 광개토대왕비는 이러한 정사 기록이 아니다. 장수왕이 자기 부왕인 광개토왕의 업적을 대외에 과시하고자 작성한 훈적비인 셈이다. 또한 비문은 고구려 왕가의 입장에서 과거에 일으킨 전쟁이 정당한 명분하에 치러졌으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성공적으로 수행했음을 국내성의 귀족과 주민에게 널리 알리는 정치 선전물이기도 했다. (88쪽)
- 정작 중요한 것은 비문에서 드러난 국제 정세에 대한 고구려인의 '인식'과 자기 '욕망'이며, 여기에 토대를 둔 정치적 발언 자체를 사실로 보는 것은 순진한 발상에 불과하다. (92쪽)
백제는 정말 요서로 진출했나
- 백제의 요서 진출 정보가 중국 정사에 기록됐기 때문에 타자의 '객관적 시각'에 따라 서술된 '역사적 사실'이라는 믿음도 있다. 타자의 기록이 가진 긍정적 속성도 있지만, 무지와 편견과 이해관계에 따른 왜곡 역시 적지 않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남조 역사서를 해석할 때는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 --- 백제의 요서 진출 문제는 백제만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요서와 중국 내륙, 나아가 동아시아로 시야를 넓혀 입체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조'라는 타자를 주의 깊게 이해해야 한다. 그들 입장에서 왜 기록하게 됐는지를 다각도로 따져 보는 과정 속에서 백제의 요서 진출에 대한 이해도 풍부해질 것이다. (125쪽)
칠지도가 들려주는 백제와 왜 이야기
- 백제에서 만들어진 칠지도는 기본적으로 왜에 대한 백제의 '인식'을 보여 주는 물건이다. <일본서기>가 백제에 대한 일본의 '인식'을 보여 주는 사료라는 점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칠지도에 보이는 백제의 인식이 당시 백제와 왜의 실제 관계를 보여 주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151쪽)
- 국가 간의 외교 관계에 있어서 어느 한쪽의 인식이 두 나라의 실제 관계와 다르게 기록되는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여러 나라들은 백제왕을 책봉할 때, 자국 중심의 인식에 맞춰 외교문서를 보냈다. 백제왕도 그러한 인식에 어긋나지 않게끔 형식을 갖추어 외교문서를 보냈다. 이러한 관계를 흔히 '조공책봉 관계'라고 하지만, 둘 사이의 실제 관계는 그러한 인식과는 조금 달랐다. 백제왕은 국내의 필요성과 중국의 상황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백제의 외교적 이익에 따라 행동하기도 했다. (151쪽)
- 칠지도는 백제왕이 왜왕에게 내려준다는 백제의 인식에 따라 제작됐다. 다만, 실제 백제와 왜의 관계는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우호 관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우호 관계를 고려한다면, 칠지도의 실제 성격은 '헌상품'이나 '하사품'이라기보다, 외교적 선물에 가까웠을 것이다. (153쪽)
생존을 위한 전쟁, 신라의 삼국통일
- 지금까지 신라의 외교와 전쟁 수행 과정을 살펴보면 결국 고구려와 백제는, 신라 입장에서 상황에 따라 적국이 되거나 동맹국이 될 수 있는, 혹은 상대를 복속시켜서 속국으로 삼기도 한 타국이었다. 이들 사이에 언어가 통한다거나 혹은 문화적 공통점이 어느 정도 있다 할지라도 이들은 같은 민족으로 서로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각기 다른 국가로서 자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합종연횡을 거듭했다. 신라가 백제를 상대할 대상으로 고구려를 선택한 것도 전략적이었으며, 왜나 당을 선택해 외교를 펼친 것 또한 전략적 이득을 감안한 것이었다. (184~5쪽)
- 이 시기에 고구려나 백제, 왜, 당은 신라 입장에서 모두 외세였으며 서로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관계였다. 그리고 이들에게 고구려, 신라, 백제라는 삼국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인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의 관계에 민족이라는 터울을 씌우는 순간 역사는 역사가 아닌 현재의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관점 속에 있는 상상 속 산물이 될 것이다. 그러한 산물 속에서 김춘추는 사대주의자로 포장돼 비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후대의 산물, 인식을 그것이 실재하지 않았던 시기에 실재한 것처럼 덮어씌워 이야기하는 것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이 아닐까. (185쪽)
신라 김씨 왕실은 흉노의 후예였나
- 선조에 대한 여러 기록에는 사람들의 욕망이 투영돼 있다. 또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고대사를 바라보며 여러 욕망을 투영한다. 사람들이 신라 김씨 왕실의 선조에 대한 여러 기록 가운데서도 유독 김일제가 선조였다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던 데에는 우리 민족의 범위를 확장하고 싶은 욕구가 반영돼 있다. 즉 김일제가 신라 김씨 왕실의 선조이면 흉노가 아우르던 드넓은 영토가 곧 우리 민족의 영토가 되고, 중국 왕조를 위협하던 흉노의 강한 군사력이 곧 우리 민족의 힘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일제에 대한 기록은 관념적인 표방이며, 오히려 김일제란 인물은 이민족으로서 중국 왕조에 충성을 바친 상징적 인물이란 사실을 떠올리는 편이 좋을 것이다. (216쪽)
임나일본부설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 과연 고대를 살아간 고대인들을 현대의 국가와 민족 관점에서 해석하는 일이 타당할까?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분과 남해안 교통로의 거점에서 발견되는 왜계 무덤들, 그리고 일본열도에서 발견되는 한반도계 유적들은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에 가로놓인 바다가 당시 사람들에게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가 아니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일 수 있다. <일본서기>에 나타나는 왜인계 관료들의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넘나드는 활동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임나일본부의 실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이처럼 현대인이 아닌 고대인의 관점을 염두에 두고 연구할 때 가능하지 않을까? (246쪽)
발해사는 누구의 역사인가
- 요컨대, 당은 대조영이 실제 말갈인지 아닌지와 관계없이 '발해는 말갈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복속시키지 못한 집단에 대한 오기이자, 일종의 타자화였다. 그런데 공교롭게 그 타자에 대한 멸시를 담은 '말갈'이라는 단어를 근거로 현재 중국은 발해를 자기화하려 한다. 이 얼마나 역설인가. (271~2쪽)
- 일제는 만주국과 조선에 대한 효율적 식민 통치를 위해 역사적으로 만주는 중국과 분리된 지역이었고, 조선은 만주에 종속적이었다는 논리를 만들어 냈다. 발해사 연구는 이런 만선사관 시각에서 진행됐다. (273쪽)
고대국가의 전성기, 언제로 봐야 할까?
<환단고기>에 숨은 군부독재의 유산
2018년 12월 12일 수요일
프랑스의 직권남용죄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핫한 범죄는 '직권남용죄'라는 것입니다. 직권남용죄는 우리 형법 제123조에 규정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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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 직권남용죄는 '직권'이 무엇이고 '남용'이 무엇이냐의 해석이 쉽지 않은 범죄입니다. 해석이 쉽지 않은 이유는, '직권'과 '남용'이라는 말의 의미가 매우 추상적인데다, 자칫 그 의미를 확대해서 해석할 경우 왠만한 공무원의 행위가 모두 이 범죄에 해당하게 되어 그 결과 공무원의 복지부동을 초래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급적 '직권'과 '남용'의 의미를 한정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되겠다싶은 행위에 대해서만 이 규정을 적용하여야 합니다.
어제 어떤 분이 저에게 프랑스에도 우리의 직권남용죄에 해당하는 범죄가 있는지 물어보시기에, 저도 궁금하여 한번 찾아봤습니다. 프랑스 형법 제432-4조 제1항에 비슷한 내용의 범죄가 있더군요.
Le fait, par une personne dépositaire de l'autorité publique ou chargée d'une mission de service public, agissant dans l'exercice ou à l'occasion de l'exercice de ses fonctions ou de sa mission, d'ordonner ou d'accomplir arbitrairement un acte attentatoire à la liberté individuelle est puni de sept ans d'emprisonnement et de 100,000 euros d'amende.
Le fait, par une personne dépositaire de l'autorité publique ou chargée d'une mission de service public, agissant dans l'exercice ou à l'occasion de l'exercice de ses fonctions ou de sa mission, d'ordonner ou d'accomplir arbitrairement un acte attentatoire à la liberté individuelle est puni de sept ans d'emprisonnement et de 100,000 euros d'amende.
공무원 또는 공공사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자신의 직무나 사무를 수행하는 과정 또는 수행하는 기회에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자의적으로 지시하거나 또는 실행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7년의 구금형 및 100,000유로의 벌금에 처한다.
제가 번역하면서 우리말로는 사실상 같은 의미인 '직무(fonctions)'라는 말과 '사무(mission)'라는 말을 동시에 사용하였는데요, fonctions은 복수이고 mission은 단수입니다. 위 조문에서 공무원은 dépositaire de l'autorité publique인 사람이고 공공사무 담당자는 chargée d'une mission de service public인 사람이라고 한 다음 공무원은 ses fonctions을 수행하고 공공사무 담당자는 sa mission을 수행한다고 한 것으로 보아, 공무원의 (계속적인) 업무는 fonctions으로, 공무원이 아니나 공적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의 (항상 계속적이지는 않은) 업무는 mission이라고 서로 구분하여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생각되구요, 따라서 이를 '직무(fonctions)'와 '사무(mission)'라는 말로 서로 달리 번역해 보았습니다.
이 범죄는 "제2장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죄" 항목 중 "제2절 개인에 대한 공권력 남용(des abus d'autorité)"의 paragraphe 1 "개인의 자유 침해" 부분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범죄입니다. 프랑스 형법에는 각 범죄마다 죄명이 별도로 작명되어 있진 않지만, 이러한 소제목을 참고해볼 때 우리와 마찬가지로 직권남용죄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프랑스에서 이 범죄가 문제된 사건으로 무엇이 있었는지 궁금하여 구글에서 우리말 뉴스를 한번 검색해봤습니다.
- 1995년 10월 24일자 중앙일보 보도 : 프랑스 고위공직자의 비리 사건은 2년여 전부터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한햇동안 알랭 카리뇽 통신장관 겸 그르노블 시장 등 현직 장관 3명이 공금유용 등의 혐의로 전격 해임돼 기소 내지 수사를 받고 있다.
최근 쟁점이 됐던 알랭 쥐페 총리의 아파트 특혜임차 사건은 지난 11일 불기소처분으로 일단 고비를 넘겼지만 여전히 불씨로 남아있다. 이 사건을 검찰에 고발한 파리 납세자보호협회는 다시 파리행정법원에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할 기세여서 쥐페 총리는 조만간 비리 시비에 또 휘말릴 전망이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도 지난 9월 파리행정법원에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돼 있는데다 23일에는 한 변호사가 같은 문제로 기소할 수있는지 여부를 결정해 줄 것을 검찰에 요청, 심기가 갈수록 불편해지고 있다. 시라크 대통령은 파리시장 시절 한 부동산회사에 압력을 가해 아파트를 구입케 한 의혹을 사고 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도 지난 9월 파리행정법원에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돼 있는데다 23일에는 한 변호사가 같은 문제로 기소할 수있는지 여부를 결정해 줄 것을 검찰에 요청, 심기가 갈수록 불편해지고 있다. 시라크 대통령은 파리시장 시절 한 부동산회사에 압력을 가해 아파트를 구입케 한 의혹을 사고 있다.
- 2014년 8월 27일자 VOA 보도 :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프랑스에서 직권남용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라가르드 총재는 재무장관 재직 당시인 지난 2007년 운동용품 업체 ‘아디다스’와 국영 ‘크레디리요네’ 은행 사이에 분쟁 중재 권한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직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당시 중재를 밀어붙여 아디다스의 전 소유주 베르나르 타피에게 4억 유로, 미화 5억 2천 700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혐의입니다.
이에 대해 라가르드 총재는 오늘 (27일)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에 대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라가르드 총재는 또 당시 일 처리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변호사에게 수사에 대해 이의를 제기토록 했다고 말했습니다.
라가르드 총재는 재무장관 재직 당시인 지난 2007년 운동용품 업체 ‘아디다스’와 국영 ‘크레디리요네’ 은행 사이에 분쟁 중재 권한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직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당시 중재를 밀어붙여 아디다스의 전 소유주 베르나르 타피에게 4억 유로, 미화 5억 2천 700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혐의입니다.
이에 대해 라가르드 총재는 오늘 (27일)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에 대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라가르드 총재는 또 당시 일 처리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변호사에게 수사에 대해 이의를 제기토록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구글에서 프랑스 뉴스를 검색해봤습니다. 검색하다 파리 소르본 대학의 공법 교수인 Roseline Letteron의 블로그 "Liberté, Libertés chéries"를 발견했습니다.
이 블로그의 2016년 6월 15일자 "개인의 자유 침해죄(Le délit d'atteinte à la liberté individuelle)" 글 첫머리에 재미있는 말이 있습니다.
"형법 제432-4조 개인의 자유 침해죄는 흔하지 않은 범죄이기 때문에 판례가 별로 없다."
우리도 요새 국정농단 사건 이전에는 직권남용죄 사건이 거의 없었는데, 프랑스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 재미있네요.
위 블로그 글에서는 2016년 5월 24일자 대법원 판결(Cour de cassation chambre criminelle, 24 mai 2016, N° de pourvoi: 15-80848)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2010년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이 프랑스의 한 지방을 방문할 때 그 지방 도지사의 지시를 받은 군인경찰(프랑스는 역사적인 이유로 일부 지방의 치안을 민간경찰이 아닌 군인경찰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2명이 사르코지 반대 집회에 참석하려던 노조원을 법적 근거 없이 4시간 가량 군인경찰 사무실에 사실상 감금하였다가, 그 노조원이 이 군인경찰 2명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사안입니다.
대법원은 대통령 방문장소의 안전을 확보하는 직무를 담당하는 이 군인경찰들이 이러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불법감금행위를 한 것이므로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공무원이 자신의 직권과 관련하여 어떠한 침해행위를 하여야 직권남용죄가 성립되는 것이고, 자신의 직권과 아무런 상관없는 침해행위에 대해서는 다른 범죄가 성립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직권남용죄는 성립하지 않는 것이거든요.
이 사건은, 2010년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이 프랑스의 한 지방을 방문할 때 그 지방 도지사의 지시를 받은 군인경찰(프랑스는 역사적인 이유로 일부 지방의 치안을 민간경찰이 아닌 군인경찰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2명이 사르코지 반대 집회에 참석하려던 노조원을 법적 근거 없이 4시간 가량 군인경찰 사무실에 사실상 감금하였다가, 그 노조원이 이 군인경찰 2명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사안입니다.
대법원은 대통령 방문장소의 안전을 확보하는 직무를 담당하는 이 군인경찰들이 이러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불법감금행위를 한 것이므로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공무원이 자신의 직권과 관련하여 어떠한 침해행위를 하여야 직권남용죄가 성립되는 것이고, 자신의 직권과 아무런 상관없는 침해행위에 대해서는 다른 범죄가 성립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직권남용죄는 성립하지 않는 것이거든요.
2018년 12월 9일 일요일
프랑스 파리 지방검찰청 검사장 취임식 소식
2018년 12월 4일 프랑스 법무부 홈페이지에 뜬 "파리 검사장 취임식(Audience d’installation du procureur de la République de Paris)" 소식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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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꼴 벨루베(Nicole Belloubet) 법무부장관은 2018년 12월 4일 레미 에이츠(Rémy Heitz) 파리 지방검찰청 검사장(procureur de la République du tribunal de grande instance de Paris)의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파리 법원을 방문했다.
2017년 8월부터 법무부 형사국장(directeur des affaires criminelles et des grâces)으로 재직해온 레미 에이츠는 2018년 11월 9일자 관보에 게시된 대통령령(décret)에 따라 파리 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그 이전에는 2001년 파리 지방검찰청 부장검사(vice-procureur à Paris),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도로안전청 파견(délégué interministériel à la sécurité routière),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보비니 지방법원장(président du TGI de Bobigny)과 꼴마르 고등법원장(Premier président de la cour d’appel de Colmar) 등으로 재직하였다.
그의 전임자는 2018년 11월 16일 검찰총장(procureur général près la Cour de Cassation)으로 자리를 옮긴 프랑소와 몰랑(François Molin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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