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24일 금요일
[성경] 사도 바울의 원래 직업은 검사?
얼마 전 어느 목사님이 설교 중에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별의별 직업인들이 다양하게 등장하는데, 그 중엔 검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도 있다고. 바로 사도 바울이 원래 검사였다는 겁니다.
바울이 검사라니,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말이라 의아했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를 찾기 위해 신약성경의 사도행전을 한번 뒤져봤습니다.
5:34 그런데 가말리엘이라는 한 바리새파 사람이 공회 가운데 일어났습니다. 그는 율법학자로서 모든 사람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가말리엘은 바울의 스승입니다. 바울은 유명한 율법학자인 가말리엘로부터 율법을 배웠습니다. 여기서 율법이란 구약성경의 모세 5경을 가리키는데, 지금 서양의 법률이란 중세 교회법에서 비롯된 것이고, 교회법이란 바로 이 성경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결국 바울은 요새로 따지면 법대에서 법을 공부한 것이죠.
7:1 대제사장이 스데반에게 "사람들이 고소한 내용들이 사실이냐?" 하고 물었습니다.
7:58 그를 성 밖으로 끌어낸 후 돌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목격자들은 자기들의 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청년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8:1 사울은 스데반이 죽게 된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성경에서 바울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던 스데반이라는 사람이 유대인들의 회당에 끌려와 대제사장 앞에서 재판을 받습니다. 율법(종교)이 법(법치, 재판)인 세상이었기 때문에 대제사장이 재판을 합니다. 이 재판에서 스데반은 군중들로부터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는 형벌을 받게 되는데, 군중들은 스데반에게 돌을 던지기 직전에 바울(사도로 활동하기 전에 불리던 이름이 사울) 앞에 옷을 벗어두었고, 바울은 스데반이 마땅히 죽을 짓을 한 거라 생각하며 그저 구경만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바울 앞에 옷을 벗어두는 행동을 하고(어느 글을 보니 이러한 행동은 스데반에 대한 형벌 집행에 관해 바울이 증인이 되게끔 하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바울이 이를 지켜보는 장면에 비추어 보면, 바울도 일반인으로서가 아니라 무언가 공적인 지위를 갖고 이러한 재판절차에 관여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8:3 그러나 사울은 교회를 파괴하면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끌어내 그들을 감옥에 보냈습니다.
바울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점점 명확하게 서술되기 시작합니다. 유대교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기독교인이라는 이단들을 붙잡아 감옥에 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즉, 바울은 현행법에 따라 이단이라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체포해서 구속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검사나 경찰에 해당될까요?
9:1 한편 사울은 여전히 주의 제자들을 위협하며 그들을 죽일 기세로 대제사장에게 나아가 다메섹의 여러 회당들에 써 보낼 공문을 요청했습니다. 거기서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잡아다가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기 위해서였습니다.
바울은 대제사장에게 공문을 요청합니다. 이 공문으로 다른 지역에 있는 이단들을 잡아올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은 검사나 경찰이 범죄자들을 체포하거나 구속하기 위해 법관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는 모습과 흡사하긴 한데, 직접 현장에 달려나가 범죄자들을 검거하는 장면을 봐서는 검사보다는 경찰에 가까워 보입니다.
22:2-5 그러자 바울이 계속 말했습니다.
"나는 길리기아 지방의 다소에서 태어난 유대 사람이지만 이 도시에서 자랐습니다. 나는 가말리엘의 지도 가운데 우리 조상들의 율법으로 엄격한 훈련을 받았고 오늘 여기 모인 여러분 못지않게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핍박하며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모두 잡아다가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그것은 대제사장과 모든 공회원들이 증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심지어 그들로부터 다메섹에 있는 형제들에게 보낼 공문을 얻어 냈고 그곳에 있는 신자들을 붙잡아 예루살렘으로 데려와 처벌받게 하려고 다메섹으로 떠났습니다.
26:9-12 저도 한때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반대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해야 한다고 확신했던 사람입니다.
제가 예루살렘에서 했던 일이 바로 그런 일입니다. 대제사장들의 권한을 받아 많은 성도들을 감옥에 가두었고 그들이 죽임을 당할 때 찬성했습니다.
여러 회당들을 다니며 그들을 여러 번 처벌했으며 강제로 그들에게 모독하는 말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들에게 격분한 나머지 다른 나라 도시까지도 찾아가 핍박했습니다.
그런 일로 다니던 가운데 나는 대제사장들의 권한을 위임받아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기독교를 핍박하던 바울이 회심하여 오히려 기독교를 전파하는 일을 하다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고, 법정에서 자신에 대해 변론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바울은 대제사장들로부터 권한을 받아 범죄자들을 체포하고 그들의 죄를 드러내어 형벌을 받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앞서 스데반이 돌로 쳐죽임을 당하는 형벌을 받는 현장에 관여한 장면을 보면 형 집행이라는 업무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당시 중동 지방의 제도와 지금의 우리 제도를 비교한다는 건 좀 말이 안 되는 억지스런 일이긴 합니다. 그래도 굳이 비교를 해본다면, 유명한 율법학자로부터 교육을 받고 대제사장으로부터 직접 권한을 받아 일을 한 점에 비추어 고위급 공무원이라 볼 여지가 있고, 형 집행은 검사의 고유업무라는 점을 봤을 때, 일응 바울이 사도가 되기 전에 가졌던 직업은 검사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한번 팩트체크해 보았습니다.
2021년 12월 14일 화요일
NFT가 왜 필요한가?
NFT(Non Fungible Token, 대체불가능 토큰)가 영국 콜린스 사전이 뽑은 올해의 단어라고 합니다. '올해의 단어'씩이나? 참 알듯말듯 모르겠고 대체 이게 머라고 이리들 난리인가 싶은 개념입니다. 그래도 세상의 대세를 따라 이게 먼지 알고는 있어야겠기에, 어설프지만 제가 나름 이해한 바를 한번 적어보겠습니다.
1. NFT의 개념이 먼지는 둘째치고, 그보다 중요한 건 이게 "왜 필요한가?"입니다.
그런데 이제 현실세계 못지않게 사이버세상도 우리의 주요한 활동공간이 되었습니다. 사이버세상에서 적지 않은 시간 머물면서 쉴새없이 '물건'을 만들어내고 보고 저장해놓습니다. 그래서 사이버상의 '물건'에도 고유성과 가치를 부여하고 싶어졌고, 이를 위한 수단으로서 필요한 개념이 바로 NFT입니다.
NFT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합니다. 블록체인은 이를테면 중앙집권주의가 아니라 지방분권주의입니다. 사이버상의 '물건'을 공적으로 인정해줄 공인된 기관이나 단체가 있다면 거길 이용하면 되겠지만, 아직까지 그런 기관이나 단체는 없죠. 그래서 다수의 이용자들이 분산원장을 나눠갖고 사이버상의 '물건'에 그러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미지나 영상이 대부분인 NFT 예술품들은 기본적으로 디지털로 만들어진 사이버세상의 '물건'이고 사이버세상에서 유통되고 활용되는 것들입니다. 현실 속의 물건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제 여기 있는 '물건'이나 저기 있는 '물건'이나 구분할 것 없이 다 귀하고 값어치 있는 시대가 되었네요.
2021년 11월 29일 월요일
프랑스 검사의 지위에 대해 설명하는 글 두 편
프랑스에서는 검사의 지위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판사와 함께 사법관(magistrat)이라 불리면서 판사와 마찬가지의 사법기관으로 취급되고는 있지만, 독립기관임에 의문이 없는 판사와는 달리 검사는 (정치인인 대통령의 참모인) 법무부장관의 지휘감독을 받는 지위에 있기에 항상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에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입니다.
매번 정부가 바뀌거나 법무부장관이 바뀌면 거의 반복적으로 '검찰 개혁'이라는 정책이 화두가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2020. 7. 7. 새로 취임한 36년 경력 변호사 출신의 법무부장관 Éric Dupond-Moretti 역시 검찰 개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관련 뉴스]
그래서 독립성이 없는 검사를 판사와 동일한 지위로 취급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견해, 검사가 판사처럼 제대로 사법기관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독립성을 주어야 한다는 견해 등이 주장됩니다. 이 주제에 관한 글 두 편을 소개.........할 능력은 안 되어 링크만 걸어놓습니다.2021년 10월 5일 화요일
프랑스 베타 버전 전자정부, beta.gouv.fr 사이트
어떤 뉴스를 읽다가 흥미로운 사이트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 정부에서 만든 'beta.gouv.fr'라는 이름의 사이트인데요, 주소에 이런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디지털 공공서비스의 인큐베이터, 즉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디지털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2021년 10월 4일 월요일
프랑스 사법관에 대한 폭력 사례
2019년 9월 25일자 'Le Parisien'지의 기사 "Il y a un chiffre noir des violences contre les magistrats"는 프랑스 사법관들이 겪고 있는 폭력, 테러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총 8,500명에 달하는 사법관들이 자신이 맡고 있는 사건과 관련해서 법원 안팎에서 보복 폭력 등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1년에 약 60건 정도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2019년 6월에도 항소부의 재판장이 집에서 괴한의 총에 맞은 일이 있었습니다.
사법관 중에서도 특히 합의체가 아니라 단독 명의로 임명되어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한편 범죄자들을 1:1로 민감하게 상대하는 예심수사판사들이 특히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테러리스트 사건의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의 경우 테러조직들이 명단을 확보하고 있기까지 해서, 테러리스트 사건을 담당하는 판사는 익명으로 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2021년 9월 19일 일요일
프랑스 법무부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정책
앞 글에서 프랑스 법무부의 형사사법절차 전자화와 오픈 데이터 정책을 연달아 소개하였습니다. 이 정책들의 공통점은 사법절차를 아날로그 절차에서 디지털 절차로 전환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두 정책을 소개한 김에 사법절차의 디지털화에 관한 프랑스의 정책들을 전반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검색을 해보니, 잘 정리된 글이 하나 있네요. 프랑스 낭시 고등법원(Cour d'appel de Nancy) 홈페이지의 2021년 2월 5일자 글 "La transformation numérique du Ministère de la Justice(법무부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를 간단히 요약해보겠습니다.
[요새 보면 구글번역기의 프랑스어-한국어 번역 실력이 굉장히 좋아졌습니다. 한국어 번역문만 봐도 대략의 내용을 알 수 있네요. 다만, 구글번역기가 좋아질수록 제 프랑스어 실력은 반대로 가는 것 같아 마냥 좋지만은 않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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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분야와 마찬가지로 법조 분야도 디지털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법무부가 전례 없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정책에 착수했으며, 이는 운영방식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정책은 사법절차를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더 빠르고, 더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PORTALIS, 1세대 디지털 형사사법절차, ASTREA, DOT, NED, PARCOURS, SIVAC 등 법무부의 주요 프로젝트들과 함께, 법원 공무원, 변호사, 공증인, 집행관 등 각종 법조 종사자 및 다양한 민간기업(legaltechs)은 다른 혁신적인 서비스(예측사법 또는 법률정보에 대한 액세스)를 개발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들은 모두 오픈 데이터든 인공지능이든 새로운 도구를 사용한다. 디지털 사전에 등장하는 다른 개념들(RGPD, 블록체인, 스마트 계약 등)은 반드시 쉽게 접근할 수만은 없기도 하다.
다만, 사법과 사회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디지털 도구에 적용되는 법률, 기본권(표현의 자유, 기업의 자유, 사생활 보호, 잊혀질 권리, 소유권 및 데이터 사용, 저작권 등) 뿐만 아니라 재판관 기능의 재정의라는 여러 다양한 법적, 사회적 문제를 제기한다.
최근의 새로운 소식을 소개하면, 2021년 1월 4일부터 모든 소송당사자는 후견판사의 성년자 보호 및 참가형 사소당사자 구성과 관련한 신청을 Justice.fr 사이트에서 온라인으로 할 수 있고, 2021년 4월 6일부터 가정법원 판사에 대한 신청을 온라인으로 할 수 있다.
2016년 5월 12일 소송당사자 정보제공 포털이 개설되었다. 사이트 https://www.justice.fr/ 은 소송당사자의 권리와 절차에 대한 모든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서식의 다운로드를 허용한다. 온라인 계산기(수수료 액수, 위자료 액수 시뮬레이터 및 법률구조 권리 시뮬레이션) 및 법원 직원에 대한 링크를 제공한다. 단순히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디지털 원스톱 창구의 첫 단계이다.
버전 2: 소송당사자의 포털 및 SAUJ 포털 애플리케이션
►소송당사자의 포털
'소송당사자의 포털'을 통해 소송당사자는 온라인으로 민사소송의 진행상황을 확인하고 다양한 문서를 다운로드할 수 있다. 민사 고등법원, 농촌 임대차법원, 노동법원 등 모든 민사소송에 대해 확인할 수 있고, 일부 형사소송도 가능하다.
►SAUJ(service d’accueil unique du justiciable) 포털
SAUJ는 일반적인 정보, 특정한 정보, 문서 접수를 처리한다. 소송당사자들이 일반적인 절차와 특정 사건에 대한 정보를 이 단일화된 창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필요한 서류를 관할기관에 접수할 수 있다.
버전 3: 법조 종사자를 위한 포털
버전 3에서는 사법보조인, 노동위원회, 사법법원 사이의 절차를 용이하게 하고 단순화한다.
버전 4: 가상 사무실
버전 4에서는 사법기관과 사법관들을 위한 가상의 사무실을 제공한다.
버전 5: 새로운 민사소송 시스템 애플리케이션
버전 5는 현재의 업무용 애플리케이션을 대체하는데, 모니터링 테이블 생성, 간단하고 신뢰할 수 있는 통계를 제공하고, 1600가지 유형의 기존 절차를 모델링한다.
버전 6: 민사소송 시스템의 전면적 디지털화
버전 6은 소송당사자가 포털에서 법원에 온라인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법원 판결의 전자서명과 전자보관 기능을 제공한다.
법무부(주: 법원, 검찰)와 내무부(주: 경찰, 군인경찰)는 각각 고유한 응용프로그램을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해 수사기관과 법원 간의 정보 교환은 그다지 유동적이지 않다. 또한 형사사법절차에서는 개시부터 보관까지 종이기록이 사용되고 있다.
디지털 형사사법절차는 2019년 4월 30일과 2019년 6월 14일 아미앵 법원에서, 2019년 6월 6일 블루아 법원에서 시범실시가 이루어졌고, 2020년 10월 16일 에피날 법원에서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2021년에는 성명불상자에 대한 불기소 사건으로 확대적용되었다가, 2022년부터 모든 절차에 적용된다.
구금된 사람을 관리하는 데는 지역 및 중앙 수준에서 많은 공무원이 관여하게 된다.
즉, 교도소 직원이 핵심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업무를 경감시키고, 수감자의 친척 등을 위해 인터넷 방문 예약과 온라인 송금을 할 수 있게 하고, 수감자들이 온라인으로 각종 요청과 식단 관리, 교육을 가능하게 한다.
7. PARCOURS 또는 청소년 사법적 보호 정보시스템 강화(la refonte des applications du système d'information de la protection judiciaire de la jeunesse)
청소년의 사법적 보호를 위한 이 새로운 정보시스템은 청소년에 대한 사법적 보호를 위한 통계자료를 제공하고 청소년에 대한 디지털 개인자료를 구현한다. 전문가 사이의 청소년 정보 공유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일일 메모, 교육 보고서, 관리 문서를 통합할 수 있다.
그리고 법무부의 다른 부서(CASSIOPEE, WINEURS, GENESIS)의 정보시스템과 연결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외부기관의 정보시스템과도 연결될 수 있다.
8. SIVAC 또는 범죄와 재난 피해자를 위한 부처 간 정보시스템(le système d'information interministériel des victimes d'attentats et de catastrophes)
시민안전 부서와 보건 부서에서는 현재 다수 피해자의 위기 관리를 위한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소방서의 경우 SINUS, 병원의 경우 SIVIC).
범죄와 재난 피해자를 위한 부처 간 정보시스템은 11개 정부 부처에서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고, 범죄와 재난을 당한 피해자에 대한 모니터링과 신속하고 충분한 지원과 치료를 보장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매년 100만 건 이상의 법률구조 신청서가 종이 형태로 제출되고, 구식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처리된다.
SIAJ는 소송당사자와 법원 공무원(변호사 및 집행관) 간의 업무를 디지털화하고, 법률구조 절차의 효율성을 높이며, 법률구조 업무의 조정과 분석 도구도 제공한다.
2021년 9월 4일 토요일
프랑스 Open Data 소식
제가 몇 번 소개했던 프랑스의 Open Data 소식입니다. Open Data는 제한적인 공개가 이루어지고 있던 법원의 판결정보의 공개범위를 대폭 확대한다는 프랑스 법무부의 정책입니다.
2021. 5. 6.자 Vie Publique 사이트의 "Open data des décisions de justice : un calendrier prévu jusqu'en 2025" 글에 의하면, '사법 전산화 및 개혁법(La loi de programmation 2018-2022 et de réforme pour la justice)'과 이를 구체화한 'décret du 29 juin 2020'과 'arrêté du 28 avril 2021'에 판결정보의 온라인 공개에 관한 근거규정이 마련되었습니다.
지금은 매년 약 20,000건의 행정법원 판결과 15,000건의 사법법원 판결이 온라인에 게시되고 있는데, Open Data의 목적은 매년 300,000건의 행정법원 판결과 300만 건의 사법법원 판결을 온라인에 게시하여 법 절차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법원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판결정보 공개의 범위는 2025년 12월까지 점차적으로 확대되는데요, 2021년 9월부터 대법원 판결 공개를 시작으로, 2024년 12월부터는 형사 1심 판결이, 2025년 12월부터는 형사 항소심 판결이 공개됩니다. 판결은 공개될 것들만 온라인으로 접근할 수 있고, 특별한 관심사가 될 수 있는 판결의 경우에는 법원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 다만, Open Data의 어려운 점은 판결의 익명화인데, 판결에 등장하는 사건 관련자와 제3자의 이름과 성은 익명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또한, 당사자, 제3자, 사법관, 사법기관 구성원을 식별할 수 있는 모든 요소들도 숨겨질 수 있습니다.
2021년 9월 3일 금요일
프랑스의 형사사법절차 전자화 정책
프랑스 정부는 형사사법절차를 전자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형사사법절차 전자화'란 형사사건 기록을 종이로 만들지 않고 전산시스템 안에서 전자문서만 유통시키는 방식으로 절차가 진행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수사나 재판을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화상재판', '화상조사', '영상재판', '사이버법정', '원격재판' 등의 개념과는 다릅니다. 수사기관 조사실이나 법정에서 지금처럼 원칙적으로 대면 방식의 수사나 재판을 진행하되, 종이기록이 아닌 디지털기기 속의 전자기록을 들여다보며 한다는 것입니다.
이 주제에 관한 이런저런 자료들을 인터넷에서 찾아봤습니다. 대략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1. 2021. 1. 29.자 Village de la justice, "PROCÉDURE PÉNALE NUMÉRIQUE : OÙ EN EST-ON ? RÉPONSES AVEC HAFFIDE BOULAKRAS, DIRECTEUR DU PROGRAMME"
- 전자 형사사법절차는 사건 당사자들에게 보다 더 관심을 갖고 '온라인 고소(신고)(la plainte en ligne, PEL)' 시스템을 제공할 것이다.
- 또한 전자서명은 절차의 증거가치를 높인다. 전자서명은 전자문서의 무결성을 보장하고 작성자를 인증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세스로서, 제801-1조는 전자적으로 서명된 문서를 더 이상 수정할 수 없도록 지정하여 무결성을 보장한다. 따라서 서명 일자 또는 서명자의 식별과 관련된 모든 어려움이 제거되고, 위조 가능성을 줄이게 된다.
2021년 8월 26일 목요일
책 소개 : "Les voies de la Justice en Corée du Sud"
저자 Christophe Duvert는 2007년부터 우리나라 숭실대 국제법무과에 재직 중인 프랑스인 교수입니다. 금년 3월에 "Les voies de la Justice en Corée du Sud"라는 제목의 책을 냈었네요. 제목을 직역하면 "한국에서의 정의의 길" 정도가 되겠습니다.
소개 글에 의하면, 저자는 한국의 법 제도와 정의 관념은 일본, 독일, 프랑스, 미국의 제도, 그리고 공자 사상의 결합물이라고 보면서(특히 서구 근대 제도보다 공자 사상 내지 유교 윤리에 더 기초를 두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하네요) 이를 철학적, 역사적, 법적, 문화적 관점에서 살펴보았다고 합니다.
서양의 학자가 우리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공자 사상', '유교 윤리'에 주목한다는 게 흥미롭군요.
프랑스 L’atelier Des Cahiers 출판사에서 출간하였고, 가격은 32유로입니다.
2021년 7월 13일 화요일
택시와 Tech, IT
택시, 승객 입장에서 불편한 거 많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담배 냄새, 총알 질주, 신호 무시, 특히 시사·정치 얘기 등등, 누구나 풍부한 경험담들이 있고 그게 지난번 ‘타다’ 논란에서 터져들 나온 거죠.
그 외에 승차거부가 첫손가락에 꼽히기도 해요. 승차거부 당하면 우리 동네 푸대접? 하는 마음이 들어 기분 참 안 좋긴 합니다만, 사실 욕하기 좀 애매한 면도 있습니다. 행선지만 보면 견적 바로 나오는데 제가 기사라도 승차거부 안 할 자신 없거든요. 회사택시 사납금 제도 때문이라고도 말하지만, 인간의 욕구와 본능 자연스럽고 뻔한 건데 벌로만 다스리고 억누르는 건 글쎄요.
알고 보니, 이 시간에 택시정류장에 줄서 있으면 바보 인증인 거더군요. 얼른 폰 꺼내 앱 열어 콜 해야 하는 거더군요. 앱으로 제 행선지 먼저 알려줘야 제가 골라잡힐 수 있는 거더군요. 결과는 승차거부랑 똑같은데, ‘거부당했다’라기보단 ‘선택되지 않았다’라는 거여서 모양새는 좀 다르죠. 앱으로 만난 택시 기사님이 미안한 말투로 에둘러 설명을 해주시네요.
택시 욕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테크놀로지라는 건 우리 사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거다, 자칫 게을러져서 이거 손 놓고 살면 큰일 나겠다, 다수가 그 혜택을 누리는 와중에 누군가 여기서 소외되거나 무시당하면 안 되겠다, 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2021년 7월 3일 토요일
직장인의 식사자리와 '쉐어'
이탈리안 음식점 같은 델 가면 여러 요리 시켜서 여러 명이 나눠먹는 ‘쉐어’ 풍경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음식을 다 맛볼 수 있다는 이유로 즐기는 분들도 많지만, 저는 이런 거 딱 질색입니다. 친구나 가족이나 편한 사람들과 함께일 땐 그나마 낫지만, 특히 직장 동료들과 있는 자리에선 정말 싫습니다.
첫째, 접시가 이리저리 오고가야 하고, 양 조절 잘해야 합니다. 정신 사납고 음식 덜기 아주 귀찮습니다. 이런 류 음식 양도 얼마 안 되는데, 찔끔찔끔 덜자니 양에도 안 차구요.
둘째, 음식 꼭 남습니다. 아깝습니다. 음식에 대한 소속감, 소유의식, 책임감이 옅어지고, 남들 보기에 불쌍해 보일까봐 싹싹 안 긁어먹기 때문이죠.
셋째, 이게 제일 중요한 이유인데, 은근 서열 신경 쓰입니다. 상급자보다 먼저 내가 음식에 손대도 괜찮나 싶습니다. 밥 먹는 자리에서 머 그런 거까지 신경 쓰느냐구요? 노 노, 사회생활이란 남 눈치 안 보고 사는 거 절대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눈치 없는 사람들이 공감능력 떨어지는 경우 많고, 여럿 모여사는 데선 누구나 남 얘기 쉽게 하기 마련이거든요. 당위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는 겁니다.
가만 생각하니 이탈리안 뿐만 아니라 한정식집이나 중식당에서 몇 가지 요리들이 차례로 나오는 경우도 그렇고, 평범한 밥집에서 큰 냄비에 탕이나 국 같은 거 끓여 각자 국자로 덜어먹는 경우도 마찬가지겠네요.
2021년 6월 19일 토요일
야구와 심판, 심판과 야구
해태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전성기를 이끈 코끼리 감독, 김응용 감독님의 발자취를 추억하는 프로그램을 시청했습니다. 그가 리더십을 발휘하는 요령도 소개되는데요, 대략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선수를 전적으로 믿고 선수에게 맡긴다는 겁니다. 이래라 저래라 일일이 잔소리할 거 없이, 그냥 믿고 맡기면 선수가 스스로 알아서 할 일 찾아서 잘 한다는 논리입니다. 이건 아마 리더마다 생각이 다를 거에요, 그냥 내버려두면 안된다는 의견도 분명 많을 거에요.
다른 하나는, 때를 잘 맞춰 고도의 심리전을 벌인다는 겁니다. 선수들의 집중력이나 사기를 끌어 올려야겠다 싶으면 난데없이 냅다 물건 깨부수고 집어던져 공포분위기를 조성합니다. 퇴장을 불사하고 심판에게 달려가 격하게 싸움을 거는 것도 공포분위기 조성의 일환입니다.
저는 다른 부분보다, 심판에게 싸움을 건다는 대목에 관심이 갔습니다. 꼭 심리전 아니라도, 감독이든 선수든 무엇인가 불만을 심판에게 분풀이하는 경우가 있어요. 스포츠 경기란 둘로 편 갈라 치고받는 싸움판인데, 간혹 둘끼리만의 싸움이 심판과의 싸움으로 넘어가기도 해요. 심판 일 하시는 분들에겐 죄송한 얘기지만, 그러면서 상대와의 직접적인 싸움 피하고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 어디다 하소연도 하고 스스로 속을 달래기도 하는 거겠죠.
물론 이것도 선을 넘지는 않아야 하구요. 심판에게 항의해서 불만을 보여주는 데서 그쳐야지, 폭력을 행사하거나 판 자체를 엎어버리거나 아예 심판을 없애버리겠다고 하면 안 되는 거겠죠.
그런데 싸움을 걸거나 분풀이를 하려면 심판이 뭔가 석연찮은 판정을 했다던가 하는, 싸움을 걸 만한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야구는 공 하나 하나, 매 번의 플레이마다 심판의 판정이 이루어지죠. 이렇게 무수한 판정들이 있기 때문에 싸움 걸 명분도 잔뜩 널려있습니다. 그래서 심판을 가운데 놓고 심리전이나 분풀이가 용이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새 심판 판정에 대해 챌린지를 하고 비디오판독을 하고 있습니다. 의외로 판정 번복이 꽤 잦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사람한테 맡겨놨나 싶을 정도로 사람 눈이 기계 눈을 많이 못 따라갑니다. 비디오판독이 생기니까 이제 심판을 더 못 믿겠어요. 밑져야 본전이라고, 감독이나 선수들도 왠만한 상황에선 일단 심판 말 무시하고 두 손가락으로 네모를 그리거나 양손으로 두 귀를 덮는 제스처를 합니다.
심판에 대한 신뢰, 권위, 땅 가까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물론 실력 의심되는 심판도 있지만, 감각이나 시력의 한계, 심리적 영향 등 사람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어쩔 수 없는 측면도 분명 있는 걸 텐데요. 이유야 어쨌든 동네북 신세가 됐으니, 심판도 참 못해먹겠네요.
그래서 사람 심판을 없애고 로봇 심판, AI 심판을 도입하자는 얘기도 있죠. 근데 사람 심판이 없어지면 이제 백퍼 정확해진 판정 때문에 야구가 더 볼 만하게 될까요? 더 재미있어질까요?
오심은 대폭 줄 테니 심판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는 없어서 좋겠네요. 화도 안 나겠네요.
다만, 판정이 정확해진 대신 이제 심판에 대한 항의를 심리전으로 이용하는 작전은 더이상 볼 수 없겠네요. 이제 감독이나 선수가 어디 분풀이할 데도, 하소연하거나 속을 달랠 데도 없어지는 거네요. 드디어 야구가 볼썽 사나운 쌈박질 풍경 사라져, 아이들도 맘놓고 즐길 수 있는 점잖고 얌전한 스포츠가 되는 거네요.
근데 그게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낭만야구가 좋냐 너드야구가 좋냐는 질문을 받으면, 선뜻 뭐라고 답을 잘 못하겠습니다.
2021년 5월 29일 토요일
영화 "라스트 레터(Last Letter)"
언론이나 팬의 평들을 보니 이와이 감독의 최고 히트작인 “러브 레터”의 후속편이라고도 하고 “러브 레터”는 물론 “4월 이야기”나 “하나와 앨리스” 등 다른 전작들까지 한데 아우른 속편이라고도 하는데, 제가 보기엔 이건 뭐 그냥 대놓고 “러브 레터” 판박이네요. 소재도 그렇고 플롯도 그렇고 완전 다 “러브 레터”입니다. 1995년 이후 20년 넘게 속편을 기다려온 “러브 레터” 팬들은 이 영화 정말 좋아하시겠습니다.
다만, 그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던 “러브 레터”가 저한텐 그닥이었습니다. 좀 오글거리는 장면이나 억지로 배배 꼬아놓은 듯한 스토리가 그리 와닿지 않았습니다. 빼박인 “라스트 레터”도 그런 느낌이었구요.
그런데 감독의 1997년 작 “4월 이야기”는 매우매우매우 좋아합니다. 별 대단한 스토리 없이 잔잔하게 장면장면들을 보여주는 따뜻한 분위기의 영상이, 과하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고 조미료 맛 안 나는 담백한 음식처럼 눈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잔뜩 널려있는 여백 자체를 그냥 멍때리며 즐길 수도 있고, 반대로 여백 사이사이를 상상력으로 채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4월 이야기”의 팬으로서, “라스트 레터”에는 “4월 이야기”의 흔적들이 얼마나 숨어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다른 글들을 보면 이 영화에서 발견되는 “4월 이야기”의 흔적이라곤, 마츠 타카코가 다시 주인공으로 기용되었다는 점과 일방적 짝사랑 관계까지만 보여주고 본격적으로 연애하는 장면은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건 좀 억지스럽기도 한 논거이긴 합니다만) 정도뿐이라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도 사실 그렇습니다. “라스트 레터”는 첫사랑이 소재라는 점 말고는 “4월 이야기”가 연상되는 장면도 거의 없네요. 굳이 바득바득 “4월 이야기”의 흔적이라 볼 만한 장면들을 찾아보자면 이렇습니다.
- “4월 이야기”의 가장 뚜렷한 흔적은 뭐니 뭐니 해도 마츠 타카코입니다. 마츠 타카코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었다면, 제가 이 영화를 볼 이유도, 이런 글을 쓰고 있을 이유도 없습니다.
두 영화 모두, 마츠 타카코는 같은 고등학교 선배를 짝사랑합니다. 이 영화의 마츠 타카코는 “4월 이야기”의 그 앳된 대학생이 그 성격과 외모 ‘고대로’ 세월을 덧입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말투, 표정, 행동거지 모두 비슷한 캐릭터의 인물을 연기합니다. 수줍음 많고 낯가리는 성격이면서도 짝사랑 상대에게는 적극적으로 가까이 다가가려는 게 똑 닮았습니다.
- 영화 앞부분에 마츠 타카코가 고교 동창회에 나가 중년의 동창생들 앞에서 한 스피치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자신의 차례가 되자 낯을 가리는 듯 쭈삣쭈삣 나와서 재미없고 주변머리 없는 말만 몇 마디 잠깐 하다 들어가고 맙니다.
역시 “4월 이야기”에서 낯선 대학 신입생 동기들을 앞에 두고 자신감 없는 말투와 쑥스러운 표정으로 하나마나 한 말만 하고 마는 마츠 타카코의 자기소개 장면이 바로 연상되는 부분입니다.
- 이 영화에는 소설가인 주인공이 첫사랑을 잊지 못해 첫사랑을 소재로 쓴 소설책 한 권이 자주 등장하는데, 노란색 하드커버로 된 그리 두껍지 않은 책입니다.
이 책은 “4월 이야기”의 주 무대인 서점에서 두 남녀 주인공이 처음으로 서로 살가운 시선을 마주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노란색 하드커버 책을 바로 연상시킵니다. “4월 이야기”의 책은 만화책이었는데, 두 주인공 사이에 묘한 기운이 흘러 서서히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마츠 타카코가 펼쳐든 책이 만화책이어서 피식 하고 헛웃음이 나오는 장면이었죠.
- “4월 이야기”는 빨간색을 모티브로 쓴 걸로 많이 이야기되는 영화입니다. “라스트 레터”에도 빨간색이 등장하는데, 바로 빨간색 우체통입니다. 영화 전체에서 이 우체통이 거의 유일한 빨간색 소품이네요.
주인공들이 서로 편지로 소식을 주고받느라 우체통이 몇 번 등장한 것뿐이어서, 일부러 “4월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우체통을 등장시킨 건 아닌 거 같구요. 빨간색이 워낙 귀하게 쓰인 것만 봐도, “라스트 레터”는 여러모로 “4월 이야기”까지 담아보려고 한 영화는 아닌 걸로 보입니다.
- “라스트 레터” 앞부분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상황에서 추도 행사의 상주에게 다른 사람이 우산을 씌워주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는 “4월 이야기” 앞부분에서 벚꽃 비가 내리고 벚꽃 비도 비니까 맞지 말라고 결혼식 가는 신부를 우산 씌워주는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이와이 감독의 신작을 보면서 제가 좋아하는 “4월 이야기”를 떠올려 보고 싶었는데, 제가 찾은 비슷한 장면은 고작 요 정도 뿐이네요. 영화 한 번 더 보면 혹시 더 찾을 수 있으려나요.
영화가 중간에 좀 지루하고 늘어지는 감이 있긴 한데, 이 감동적인 축사 내용 전부를 듣고 감상에 젖어보기 위해서는 영화를 끝까지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2021년 3월 25일 목요일
프랑스 대학생들의 중국인 모욕 사건
"사람들이 볼 수 있다는 걸 잊었습니다" : 다섯 학생이 트위터에서 공개적으로 중국인들을 모욕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2021년 3월 9일 화요일
드라마 "나의 아저씨"
어떤 무능한 아저씨가 있습니다.
직장에선 그냥 고지식하기만 하고 유도리가 없어 제때 승진도 못하는 만년 부장입니다. 얼마나 고지식한지, 심지어 연로한 회사 오너가 직접 찾아와 밥 한번 먹자는데 그 면전에 대고 선약이 있네 뭐가 있네 하면서 번번히 퇴짜나 놓는 시건방지기까지 한 사람입니다.
고지식하달 뿐 정직한 건 아니어서 누군가가 퀵으로 보낸 뇌물봉투를 받아들고는 마음이 혹하고, 성격은 소심해서 뇌물 받는 걸 누가 봤을까봐 마음 졸이기도 합니다.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데다 폭력적인 성향까지 있어서, 싫어하던 대학 후배가 자기 윗사람인 사장으로 왔다고 꽁해 있다가 급기야는 사장한테 주먹질을 날리기까지 합니다.
자격증은 있는 기술자여선지 안 짤리고 근근이 버티기는 하는데, 남들 다 하는 직장생활 머가 그리 힘들다고 허구한 날 우거지상에 한숨 푹푹 쉬어가며 꾸역꾸역 회사를 다닙니다.
집에서도 좋은 가장이 아닙니다.
회사에서 퇴근하면 무조건 술집입니다. 집에서도 술입니다. 그렇게 줄창 마셔대는데, 다음날 되면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말짱하고 쌩쌩합니다. 술 하난 잘 마시는데 술 말고 할 줄 아는 건 없어서, 어린 아들에게 보여주는 아빠의 특기라는 게 딸랑 폭탄주 제조법뿐입니다.
게다가 끈끈하고 뜨거운 가족애, 형제애, 친구애로 다른 별볼일 없는 아저씨들과 똘똘 뭉쳐다니기 일쑤입니다. 부모형제 집안 일엔 열일 제쳐놓고 달려가고, 주말에도 동네 조기축구 따라다닙니다.
집에 잘 안 있고, 아내와 대화도 없습니다. 아내한테 유일하게 할 줄 아는 말이 퇴근길에 “뭐 사 가?” 뿐입니다.
이렇게 가정은 뒷전이니 아내도 마음이 떠났습니다. 이 아저씨의 회사 사장과 바람을 피웁니다. 이 아내 직업이 변호사인데, 결혼하고 아이 낳고서야 비로소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한 늦깎이 변호사입니다. 아마도 이 답답한 남편만 믿고 살다가는 앞이 안 보이고 이도저도 안 되겠다 싶어 뒤늦게 두 팔 걷고 생활전선에 나선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무능한 아저씨가 주인공이니, 문제 많은 드라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그런 무능한 아저씨를 한참 어리고 예쁘게 생긴 여자아이가 좋아한다는 설정이니, 이건 머 대놓고 막장에다 논란만 일으키는 드라마일 수밖에요.
그런데 이 무능하기만 한 아저씨가 잘 하는 게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공감능력입니다. 아픈 사람 보면서 같이 아파할 줄 알고, 우는 사람 보면서 같이 울어줄 줄 알고, 화난 사람 보면서 같이 화내줄 줄 압니다. 문제아를 그냥 문제아로 보지 않고, 왜 문제아가 됐는지 이해해주려 합니다. 사람 알아봐주는 마음씨가 쓸만 합니다.
그래서 불쌍하고 불행하게 사는 어떤 아이가 이 아저씨에게 반합니다. 이 아저씨로부터 “고맙다” “착하다” 이런 평범한 말을 듣고 바로 감동 먹습니다. 그냥 별거 아닌 말이지만 평소 못 들어보던 말인 거죠. 나한테도 이런 말 해주는 사람이 다 있네, 이거죠. 아무도 관심없고 거들떠도 안 보는 문제아인 자신을 알아주고 이해해주고 신경써주는 유일한 어른인 거거든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른이 할 역할이 바로 그건 거 같습니다. 아이를 알아주고 이해해주고 신경써주는 거. 같이 공감해주는 거. 그래서 아이가 세상에서 잘 크고 잘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해주는 거.
근데 많은 어른들이 이걸 잘 못하죠. 많은 어른들이 공감능력 없는 꼰대여서 되도 않는 잔소리만 하려고 하니 아이들이 다 피합니다. 어떤 어른들은 심지어 자신의 성공과 이익을 위해 아이를 이용해먹고 아이에게 책임을 미루고 하기도 합니다. 이 드라마에서도 사내정치에 이지안을 이용하려는 어른들이 여럿 등장하고, 영화감독 기훈은 영화배우 유라를 등쳐먹고 상처를 줍니다.
이렇게 이 드라마의 주제는 바로 어른과 아이의 관계,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관계 다시보기라고 생각합니다. 어른들 개개인 다 따지고 보면,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아저씨들처럼 다 쪼잔하고 후줄근하기만 합니다. 훌륭한 사람 하나 없이 각자 다 부족한 점 많고 무능하고 흠 투성이이긴 하죠. 기껏 술이나 먹을 줄 알고 다른 거 할 줄은 몰라 시대에 뒤처지기나 하고 망가진 채 여생을 살죠. 그렇지만, 그렇긴 하지만, 아이들에게 공감할 줄 알아야 하는 게 바로 어른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이번 생 망한 어른들이라도 그거 하나만은 제대로 잘 해보자는 겁니다.
물론 이 드라마에서 이 박동훈이라는 아저씨는 비현실적인 캐릭터입니다. 이 정도로 착하고 바르고 공감능력 있는 어른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실제 보기 힘든 캐릭터이고 이런 캐릭터 되기 쉽지 않은 거긴 하지만, 그래도 어른들이 가급적 이런 어른이 되려고 하는 노력은 필요하겠습니다. 저도 아저씨인데, 아이들에게 저는 어떤 모습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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