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21일 일요일
[독서일기]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
서울대 동양사학과 구범진 교수님의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2019, 까치)을 읽었습니다.제가 병자호란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어렸을 때 본 KBS 대하드라마 "대명"에서였습니다. 그동안 각종 소설,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잘 알려진 병자호란이지만, 이 책에서 또다른 새로운 사실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구범진 교수님은 중국사 전공자로서, 특히 명청대의 역사가 주 전공이라고 합니다. 명과 청의 사료들을 풍부하게 검토하여 중국쪽에서 바라본 병자호란의 사실관계도 빠짐없이 잘 정리하였습니다.
한번 읽고 바로 잊어버리기는 아까워, 이 책을 통해 새로 알게 된 사실들을 간단히 정리해 봅니다.
- 병자호란은 양력으로 따지면, 병자년인 1636년에 일어난 전쟁이 아니라 그 해를 넘어 1637년 정축년 1월 3일에 시작된 전쟁입니다. 음력으로 따지면 병자년 12월이기 때문에 병자호란이라고 하는 것이구요.
- 청 태종 홍타이지는 1636년 4월 수도인 심양에서 황제 즉위식을 열고 황제가 됩니다. 황제 즉위식 때 마침 심양에 와있던 조선 사신들을 참석시켜 삼궤구고두를 하도록 하였는데, 조선 사신들은 명나라와의 관계상 감히 청이 황제를 칭함을 용납할 수 없어 이를 거부합니다. 그러자 홍타이지는 이들에 의해 권위가 훼손된 자신의 황제 즉위식을 제대로 완성하기 위해, 친히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공하게 됩니다.
조선의 항복 후 삼전도에서 벌어진 행사 역시 단순히 조선 왕의 항복을 위한 자리라기보다는, 이 황제 즉위식의 완성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병자호란 당시 청군의 병력 규모에 대해서는 기존에 10만설, 12만 8천명설 등이 있는데, 당시의 청이 그 정도의 대군을 구성할 정도의 국력에는 미치지 않았고, 실제로는 청의 지배 하에 있던 몽골의 군사까지 합하여 3만 4천명으로 추정됩니다.
- 불과 10년 전에 있었던 정묘호란에서 제대로 교훈을 얻지 못한 조선 조정의 무능함이, 병자호란에서 아무런 대비책도 마련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원인이라는 것이 기존의 통설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묘호란 후 조선은 청의 재침에 대비한 대책을 분명히 마련하였습니다. 아무 것도 안 한 것이 아닙니다. 조선의 대책은, 전면전으로는 승산이 희박한 점을 감안하여 각 거점에 마련한 산성을 중심으로 지구전 형태의 방어전을 펼치고, 그 사이 조정은 강화도로 이동하여 당시 최강의 조선 수군으로 강화도의 조정을 방어하고, 팔도의 속오군을 신속하게 소집하여 침략군을 물리친다는 전략이었습니다.
다만, 청군은 정묘호란 때처럼 조선 왕이 강화도로 피신하여 지구전을 펼치는 상황을 방지하고자, 신속하게 한양으로 이동하여 조선 왕만 사로잡겠다는 전략으로 조선의 각 거점은 그대로 지나치는 패싱 전략을 구사하였고, 그 바람에 산꼭대기 산성에 숨어있던 조선군은 이를 넋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청군은 강화도의 조류를 잘 계산하여 썰물에 이리저리 밀린 최강의 조선 수군을 무력화하였으며, 각지에서 접근하는 근왕병들을 각개격파함으로써, 결국 조선의 새로운 방어전략은 전혀 힘도 써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 남한산성 공략을 위한 청군의 당초 전략은, 남한산성에 고립된 조선 조정이 식량 부족 등으로 고사하여 제발로 걸어나오길 기다리는 느긋한 계획이었으나, 갑자기 반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당시 조선이나 명나라에 만연한 천연두에 만주족이 취약성을 갖고 있었던 것이죠. 당시만 해도 천연두는 거의 사망에 이르게 되는 무시무시한 전염병이었는데, 이는 특히 겨울과 봄에 창궐하곤 하였다고 합니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1월에서 2월 역시 조선에 천연두가 유행하는 계절이었는데, 1월 16일경 청군 진영에서 처음으로 천연두가 발견되었고, 이에 두려움을 느낀 홍타이지는 신속히 전쟁을 끝내기로 전략을 변경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전쟁을 끝내기 위해 인조가 직접 성에서 나와 항복하고 척화를 주장한 신하 두 세 명을 포로로 달라는, 조선과 인조로서는 조선의 멸망이나 괴뢰정부 설립과 같은 최악의 결과를 피할 수 있는 후한 대가만 요구한 것이죠.
그리고 홍타이지는 드디어 완성판 황제 즉위식을 마치고는, 이틀 후 곧바로 조선을 떠납니다. 한겨울에 먼길을 와서 이제 전쟁을 승리로 끝냈으니, 조선 궁궐에서 뒤풀이를 벌이거나 봄이 올 때까지 한가하게 휴식을 즐길 수도 있었으련만, 그런 모습은 전혀 없이 귀국 준비만 서둘렀던 것입니다. 그만큼 천연두가 그들에게는 큰 공포였던 것이죠.
피드 구독하기:
댓글
(
Atom
)
Search
Category
Tag
4월 이야기
(2)
가짜 뉴스
(1)
감독관
(1)
감찰관
(2)
감찰제도
(3)
강사
(1)
강의
(3)
강제수사
(2)
강제입원
(1)
개혁
(9)
건축
(4)
검사
(52)
검찰
(27)
검찰총장
(6)
검찰항고
(1)
경찰
(4)
고등사법위원회
(7)
골든아워
(1)
공감
(9)
공기계
(1)
공부
(4)
공소장
(1)
교도소
(2)
교육
(2)
구글
(10)
구글포토
(1)
구금대체형
(2)
구금시설
(1)
구치소
(1)
국가금융검찰
(4)
국가대테러검찰
(2)
국가사법재판소
(4)
국가정보기술감독위원회
(1)
국가정의재판소
(2)
국사
(1)
권리보호관
(1)
그리스
(1)
근무환경
(3)
금융전담 검찰
(3)
기생충
(1)
까페
(3)
나의아저씨
(1)
네덜란드
(1)
노란조끼
(1)
녹음
(1)
논고
(1)
대구
(1)
대륙법
(1)
대법원
(10)
대법원장
(2)
대테러
(3)
대통령
(2)
대학원
(6)
대화
(2)
데이식스
(1)
덴마크
(1)
도시
(1)
도피성
(1)
독립성
(17)
독서일기
(37)
독일
(1)
드라마
(1)
디지털
(8)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3)
디지털증거
(2)
라따뚜이
(1)
라트비아
(1)
레미제라블
(3)
루브르
(1)
룩셈부르크
(1)
리더
(1)
리투아니아
(1)
마이클 코넬리
(6)
마인드맵
(1)
마츠 타카코
(1)
마크롱
(2)
맥
(3)
메타버스
(1)
명예훼손죄
(3)
모노프리
(1)
모욕죄
(2)
몰타
(1)
문화
(1)
미국
(13)
미러링
(2)
미모자
(1)
미술
(1)
미키 할러
(6)
바울
(1)
배심재판
(1)
배심제
(7)
범죄
(4)
법률구조
(1)
법률용어
(2)
법무부
(19)
법무부장관
(11)
법원
(15)
법원서기
(1)
법정
(3)
법정소설
(6)
벨기에
(1)
변호사
(11)
변호사협회
(1)
보호유치
(4)
블로그
(5)
비상상고
(1)
비시정부
(2)
빵
(3)
사교
(1)
사기죄
(2)
사법감찰
(1)
사법개혁
(2)
사법관
(16)
사법정보
(2)
사법제도
(87)
사소
(1)
사용자 환경
(1)
사진
(1)
샌드위치
(1)
서기
(1)
서울
(5)
석방구금판사
(1)
성경
(2)
성희롱
(1)
센강
(1)
소년법원
(1)
소법원
(2)
소통
(7)
수사
(1)
수사지휘
(1)
수사판사
(4)
수용시설
(1)
수용시설 최고감독관
(1)
슈크르트
(1)
스웨덴
(1)
스트로스 칸
(1)
스티브잡스
(5)
스페인
(1)
슬로바키아
(1)
슬로베니아
(1)
시간
(1)
시스템
(1)
식도락
(15)
식전빵
(1)
신년사
(2)
신속기소절차
(1)
신원확인
(1)
심리학
(2)
아날로그
(2)
아웃라이어
(1)
아이디어
(9)
아이유
(1)
아이패드
(16)
아이폰
(24)
아일랜드
(1)
아카데미상
(1)
압수수색
(2)
애플
(8)
앱
(5)
야구
(2)
언락폰
(1)
언터처블
(1)
에스토니아
(1)
엘리제 궁
(1)
여행
(10)
역사
(11)
열정
(1)
영국
(2)
영미법
(1)
영상녹화물
(2)
영어
(1)
영화
(9)
예술
(1)
예심수사판사
(6)
예심판사
(3)
오스카상
(1)
오스트리아
(1)
올림픽
(1)
와이파이
(1)
와인
(1)
우트로 사건
(1)
웹사이트
(1)
위선떨지 말자
(1)
위헌
(1)
유럽사법재판소
(1)
유럽인권법원
(1)
유심
(1)
유튜브
(3)
음식
(1)
이국종
(1)
이준
(1)
이탈리아
(1)
인간관계론
(1)
인공지능
(1)
인사
(3)
인생
(1)
인왕재색도
(1)
일본
(1)
자치경찰
(1)
잡담
(40)
재판
(1)
재판의 독립
(1)
쟝-루이 나달
(1)
저작권
(1)
전문법칙
(3)
전원
(1)
전자소송
(4)
전자화
(5)
절차의 무효
(1)
정신병원
(2)
조서
(4)
조직범죄
(1)
중죄재판부
(2)
증거
(8)
증거법
(2)
지문
(1)
직권남용
(1)
직무교육
(1)
직무상 과오 책임
(1)
직장
(7)
직접주의
(1)
참고인
(1)
참고인 구인
(1)
참심제
(2)
체코
(1)
최고사법관회의
(7)
치료감호소
(1)
카페
(1)
캠핑장
(2)
케밥
(1)
크롬
(1)
크리스마스
(1)
키노트
(1)
키프로스
(1)
테러
(3)
통계
(1)
통신비밀
(1)
퇴사
(1)
트위터
(4)
파기원
(2)
파리
(22)
파리 지방검찰청
(1)
판결정보 공개
(3)
판례
(1)
판사
(7)
팟캐스트
(1)
페이스북
(2)
포르투갈
(1)
포토북
(2)
폴란드
(1)
프랑스
(27)
프랑스 국립사법관학교
(13)
프랑스 드라마
(1)
프랑스 사법제도
(131)
프랑스 생활
(37)
프랑스 언론
(3)
프랑스 영화
(3)
프랑스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
(9)
프랑스 장관
(1)
프랑스 총리
(1)
프랑스어
(4)
프레젠테이션
(1)
프리젠테이션
(1)
플뢰르 펠르랭
(2)
플리바기닝
(5)
피해자
(1)
핀란드
(1)
한식
(1)
한양도성
(1)
햄버거
(1)
헌법
(1)
헌법위원회
(3)
헝가리
(1)
형벌
(4)
형사소송
(38)
호텔
(1)
회식
(3)
AI
(1)
CEO
(1)
DELF
(3)
DNA
(1)
EU
(28)
gilets jaunes
(1)
greffier
(1)
IT
(56)
jeudigital
(1)
NFT
(1)
open data
(4)
RSS
(1)
transformation numérique
(1)
UI
(1)
Je-Hee. Powered by Blogger.
Blog Archive
-
2021
(15)
- 12월 2021 (2)
- 11월 2021 (1)
- 10월 2021 (2)
- 9월 2021 (3)
- 8월 2021 (1)
- 7월 2021 (2)
- 6월 2021 (1)
- 5월 2021 (1)
- 3월 2021 (2)
-
2019
(40)
- 12월 2019 (4)
- 11월 2019 (4)
- 10월 2019 (2)
- 9월 2019 (1)
- 8월 2019 (3)
-
7월 2019
(13)
- 강사가 피하면 좋을 말
- [성경] 도피성(Cities of Refuge)
- [독서일기]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
- 잘 나가는 조직과 구성원들의 소통
- 2019년 프랑스 국립사법관학교 교육 일정
- 프랑스 신속기소절차(comparution immédiate) 제도 소개
- 직장 식사자리에서의 대화와 한식
- 외국 서버에 있는 디지털 증거의 압수
- 프랑스 형사소송법의 변호사 사무실 압수수색 규정
- 프랑스 명예훼손죄 개정 관련 뉴스
- 2018년도 프랑스 국가정보기술감독위원회(CNCTR) 연간활동보고
- 프랑스 명예훼손죄 사례, 외국 정부의 명예훼손 고소
- 프랑스 명예에 관한 죄 개관
- 4월 2019 (2)
- 3월 2019 (3)
- 2월 2019 (2)
- 1월 2019 (6)
-
2018
(36)
- 12월 2018 (7)
- 11월 2018 (3)
- 10월 2018 (4)
- 9월 2018 (2)
- 8월 2018 (2)
- 7월 2018 (1)
- 6월 2018 (3)
- 5월 2018 (1)
- 4월 2018 (6)
- 3월 2018 (6)
- 2월 2018 (1)
-
2017
(24)
- 12월 2017 (6)
- 11월 2017 (1)
- 9월 2017 (1)
- 8월 2017 (2)
- 7월 2017 (3)
- 6월 2017 (3)
- 5월 2017 (1)
- 3월 2017 (3)
- 2월 2017 (2)
- 1월 2017 (2)
-
2016
(33)
- 12월 2016 (6)
- 11월 2016 (1)
- 10월 2016 (5)
- 9월 2016 (1)
- 8월 2016 (1)
- 7월 2016 (2)
- 6월 2016 (3)
- 5월 2016 (6)
- 4월 2016 (2)
- 3월 2016 (3)
- 2월 2016 (3)
Popular Posts
-
언젠가부터 고급 레스토랑은 물론 동네에 있는 흔한 파스타 집에서도 '식전빵'이란 걸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에피타이저든 주요리든 뭔가가 나오기 전에 가장 먼저 발사믹을 친 올리브 오일과 함께 나오는 빵을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요...
-
2012년 1월 15일자로 제가 이 블로그에 쓴 "아이폰과 아이패드 활용사례 소개" 글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http://imagistrat.blogspot.kr/2012/01/blog-post_15.ht...
-
오랜만에 글을 써봅니다. 한동안 나태한 생활이 이어지면서 블로그도 제 생활에서 멀어졌었는데, 이제 다시 글이라도 부지런히 쓰면서 마음을 다잡아 볼까 합니다. 오랜만에 쓰는 글이니 가벼운 글로 시작을 해볼까 합니다. 제가 프랑스 파리에서 가장 좋아...
-
지난 주에 4박 5일간의 짧은 파리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다음 여행의 준비를 위해 몇 가지 느낀 점을 두서 없이 적어 볼까 합니다. [이번에 묵은 숙소 창밖 풍경] 1. 이번 파리 여행은 중학교 1학년인 제 딸아이와의 단둘만의 여행이었...
-
프랑스 보르도에 있는 국립사법관학교(École nationale de la magistrature)는 사법관(판사, 검사)을 양성하는 연수기관입니다. 사법관이 되기 위해서는 이 기관에서 총 31개월 간의 연수를 받아야 합니다. 2019년 4월 3...
© iMagistrat 2013 . Powered by Bootstrap , Blogger templates and RWD Testing Tool
댓글 없음 :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