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2일 금요일
프랑스 신속기소절차(comparution immédiate) 제도 소개
예전에 쓴 글에서 프랑스 보르도 법원의 특이하게 생긴 법정을 소개해드린 적이 있습니다.[출처 http://www.justice.gouv.fr/histoire-et-patrimoine-10050/architecture-et-chantiers-12268/les-grandes-evolutions-de-larchitecture-judiciaire-24856.html] |
위 사진의 건물이 보르도 법원인데 그 안에 보이는 원뿔 모양으로 생긴 물건들은, 바로 법원의 재판이 열리는 법정입니다. 보르도가 와인으로 유명한 동네인 점을 반영해서 와인 양조통 모양으로 법정을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와인 양조통과 법정이라니, 그리 연결되는 이미지도 아니고 어찌 보면 좀 괴상망측합니다.
2019년 6월 10일자 franceinfo 사이트의 "사법 : 보르도 법원의 신속기소절차(Justice : en comparution immédiate au tribunal de Bordeaux)" 글에 있는 동영상에서 이 보르도의 법정 내부를 볼 수 있네요.
동영상을 캡쳐한 건데요, 위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단층으로 된 원뿔 모양의 법정이다 보니 단면적은 넓지 않은데 천장은 한없이 높기만 합니다. 공간 효율면에서는 아주 글쎄요 입니다. 지금 이 법정에선 4명의 판사가 법대에 앉아 있고, 법복을 입은 변호사가 그 앞에 나와 선 채로 변론을 하고 있네요.
위 글과 이 4분짜리 동영상에서는 프랑스의 형사소송절차 중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데 쓰이는 '신속기소절차(comparution immédiate)' 제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제도는, 주로 범행현장에서 바로 붙잡힌 현행범인에 대해 사안이 명백하고 증거가 충분한 경우 체포시한(일반적으로 24시간, 1회 연장하면 48시간) 내에 바로 기소하고 재판까지 끝내 버리는, 신속한 사건처리 제도입니다(프랑스 형사소송법 제395조).
내용이 명백하고 간단한 사건은 이런 식으로 빨리빨리 처리해버리는 대신, 보다 더 규모가 크고 중요한 사건에 수사와 재판 역량을 집중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comparution immédiate는 직역하면 '즉시 출석'입니다. 체포된 범인은 법정에 즉시 세우는 게 가능하므로,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제도를 적용한다는 취지의 명칭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를 '즉시출석 제도', '즉시소환 제도'라고 부를 수도 있고, 체포되자마자 신속히 기소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신속히 재판을 하자는 게 목적인 제도이므로 '신속재판 제도'라고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이 제도가 굴러가기 위해서는 일단 검사가 신속기소절차를 통해 범인을 기소하겠다는 결정을 하여야 하고 이를 위해 사전에 경찰을 지휘하고 자신이 직접 범인을 조사하기도 하는 등 이 제도에서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이 글에서는 '신속기소절차'라고 부르기로 하겠습니다.
위 글에 의하면, 보르도 법원은 매일 약 10건 가량의 형사사건을 재판하는데, 그 중 일부(일반적으로 법정형이 징역 10년 미만에 해당하는 경죄 중에서도 사안이 중하거나 범인이 전과가 있는 경우)는 이 신속기소절차에 의해 체포시점으로부터 24시간 안에 판결을 선고한다고 합니다.
캡쳐한 사진들과 함께 동영상 내용을 간단히 보겠습니다.
이 보르도 법원의 검사들은 일요일에도 일을 한다는 나래이션이 나옵니다. 물론 당직을 맡은 검사만 출근해서 일을 하는 것이겠죠. 당직검사가 일하는 사무실은 위 사진의 팻말에 보이는 것처럼 '형사당직실(Permanence Pénale)'입니다.
형사당직실의 내부 모습은 위 사진과 같습니다. 두 여성분이 보이는데, 당직검사와 직원 등 두 분이 전부네요.
위 사진은 당직검사가 경찰관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경찰관이 어떤 사람을 어떤 혐의로 체포하였다고 전화로 사건에 대한 보고를 하면, 검사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고 수사지휘를 하게 됩니다. 이 장면에서는, 경찰이 가방 속에 흉기를 넣은 채 '노란 조끼' 시위에 참여한 사람을 체포하였다고 보고하자, 검사는 일단 신속기소절차로 진행할 테니 내일 범인을 보내라고 요구(demande)합니다.
그런데 검사 앞에 모니터가 2대 있고, 검사가 모니터를 보면서 대화를 하고 있네요.
위 사진은 모니터 2대 중 왼쪽 모니터의 화면 모습입니다. 저는 처음 보는 것이라 정확히 이게 뭔지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사건 내용 등이 입력되어 있는, 법원과 경찰서 사이에 연결되어 있는 내부전산망인 것 같습니다.
다음 장면에선, 위 사진처럼 경찰관과의 통화를 마친 검사가 바로 옆 방으로 이동하더니 또 어떤 모니터를 보면서 그 모니터에 등장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눕니다. 경찰서와의 사이에 설치된 화상대화장치를 통해, 경찰서 유치장에 체포되어 있는 범인을 상대로 사건 내용에 대해 묻는 장면이네요. 이 범인은 다른 사람의 신용카드를 훔친 사람이라고 합니다.
자, 여기까지가 일요일에 검찰청에서 있었던 일이구요. 다음날 아침 위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경찰관들이 신속기소절차로 진행될 예정인 범인들을 호송차에 태워 법원에 데리고 옵니다.
법원에 도착한 범인들은 법원 안에 설치된 구치감에 수용되고, 그 안에서 국선변호인과 접견을 하게 됩니다. 위 사진의 오른쪽에 보이는 사람이 국선변호인으로 지정된 변호사인데, 법복까지 입고 있습니다. 지금 변호사가 만나고 있는 범인은, 술과 약에 취해 흉기를 든 채 남편과 부부싸움을 벌인 여성입니다.
오후에는 재판이 열려야 하기 때문에 국선변호인이 범인과 접견하면서 사건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20분 정도라고 합니다.
벽시계를 잠시 비춰주는데, 벌써 오전 11시 20분이 다 되었네요. 변호인과의 접견을 마친 범인들은 이제 검사 앞에 가서 짧은 조사를 받게 됩니다.
위 사진에서 왼쪽에 있는 사람이 검사이고, 사진 오른쪽에 얼굴이 흐릿하게 처리되어 있는 사람이 부부싸움을 벌인 여성, 그리고 그 여성 오른쪽에 법복을 입고 있는 변호사가 보입니다. 이 여성은 당시 술에 취해 있어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진술하고 있네요.
그러고 보니 전날 일요일에 일처리를 한 당직검사는 당직근무 후 휴식을 취하거나 출근을 하지 않았는지, 다른 검사가 조사를 하고 있네요. 때문에 사건 내용을 하나도 모를 텐데,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조사 준비를 하느라 바빴겠습니다.
그런데 위 사진을 보니, 검사가 조사를 하면서 무슨 서류를 작성하고 있네요. 이 서류는 'procès-verbal'이라고 하는데, 우리 말로 '조서'입니다. 간단한 사건 내용과 죄명, 피고인의 자백 여부, 어느 법정에서 재판받는지 등의 내용을 한 두 장 분량으로 되어 있는 양식에 간단히 수기로 적는데, 이는 공소장의 역할을 하게 되므로 조사가 끝나면 법원으로 보내지게 됩니다.
이 단계까지 온 범인들이 모두 신속기소 대상자로서 당일 오후에 재판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니고, 이때 검사의 조사 결과에 따라 별 문제가 없는 범인은 신속기소 대상자로 확정되어 오후에 재판을 받게 되고, 뭔가 더 조사할 게 있다거나 다른 사정이 있으면 일단 석방하였다가 나중에 보충수사나 정식재판 절차를 밟게 됩니다.
이 동영상에 등장하는 조사과정에서도 검사가 기소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데, 앞의 '노란 조끼' 시위에 참여한 사람에 대해서는 석방하고 9월에 정식재판을 받게 하였고, 부부싸움을 한 여성은 이전에 다른 전과가 있어 그대로 기소하여 오후 재판을 받게 하였습니다.
자, 이제 오후가 되어 와인 양조통 법정에서 재판이 열립니다. 재판을 진행한 후, 판결 선고도 그날 바로 하게 됩니다. 일요일과 월요일, 이틀만에 수사부터 재판까지 모두 끝나게 되니, 정말 문자 그대로 '신속'한 절차이지요.
위 글에는 댓글이 딱 한 개 달려 있습니다.
"Comment du penal peut être jugé aussi rapidement ? C'est la négation de la justice."
"어떤 형벌을 받게 할 지를 어떻게 그렇게 빨리 재판할 수 있다는 말이냐? 이건 정의를 부정하는 짓이다." 머, 이 정도의 내용입니다. 물론 모든 사건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고, 피고인이 재판 준비나 방어권 보장 등을 위해 이 제도를 적용받는 데 동의하지 않고 천천히 정식재판을 받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그 의사에 따라 정식재판을 받을 수도 있답니다.
aussi rapidement ?
"어떤 형벌을 받게 할 지를 어떻게 그렇게 빨리 재판할 수 있다는 말이냐? 이건 정의를 부정하는 짓이다." 머, 이 정도의 내용입니다. 물론 모든 사건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고, 피고인이 재판 준비나 방어권 보장 등을 위해 이 제도를 적용받는 데 동의하지 않고 천천히 정식재판을 받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그 의사에 따라 정식재판을 받을 수도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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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t la négation de la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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