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1일 일요일
프랑스 참심재판 제도의 현재와 미래
영국과 미국에서 시행하는 배심재판 제도, 그리고 프랑스와 독일에서 시행하는 참심재판 제도는 일반국민이 심판 자격으로 재판에 참여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다른 점은, 배심재판 제도의 경우 유무죄 판단을 배심원이 전적으로 담당하고 판사는 사실상 재판진행만 맡는 데 반해, 참심재판 제도의 경우 참심원과 판사가 함께 유무죄 판단을 한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배심재판은 배심원과 판사의 역할이 따로따로 구분되어 있고, 참심재판은 참심원과 판사가 동등한 자격으로 함께 재판을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좌석배치를 보더라도, 배심재판은 배심원(방청석에서 볼 때 법정의 왼쪽)과 판사(법정의 정중앙)가 아예 다른 위치의 좌석에 따로 앉는다면, 참심재판은 참심원과 판사가 법정 정중앙의 자리(이걸 흔히 '법대'라고 합니다)에 함께 일렬로 죽 앉는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참심재판은 'Cour d'assises', '중죄재판부'라고 부르는 전담재판부에서 담당하고 있습니다. 형법상 범죄를 중죄, 경죄, 위경죄의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는데, 그 중 무기징역을 포함해서 10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중죄(crime) 사건에 대해서는 무조건 중죄재판부에서 재판이 진행됩니다. 보통의 사안은 9명의 참심원(juré)과 3명의 판사가 함께 재판에 참여하고, 테러범죄 사건이나 조직범죄 사건처럼 중대한 범죄의 재판은 더 많은 숫자의 참심원과 판사가 필요합니다.
2018년 10월 15일자 Le Parisien지에 프랑스 중죄재판부(Cour d'assises)에 대한 보도가 있기에, 정리해 봅니다.
기사 제목은 "참심원 없는 소송: 중죄재판부가 점점 덜 이용되고 있다(Procès sans jurés : des cours d’assises de moins en moins populaires)"입니다. 제목에 있는 단어 populaire는 영단어 popular와 같은 말이니, "인기가 없어지고 있다" 또는 "국민 참여적 성격이 없어지고 있다"나 "국민 참여가 줄고 있다", 이런 의미로 번역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 기사의 부제는 "벨기에, 스위스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일반국민 참심원이 점점 더 형사절차에서 배제되고 있다"인데요, 기사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중죄재판부 절차의 병목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형사사법제도 개선안을 마련하였다. 이번 개선안은 징역 15년에서 20년으로 처벌할 중죄 사건(전체 중죄 사건의 약 57%에 해당)을 직업법관으로만 구성된 '지역 중죄법원(tribunal criminel départemental)'에서 재판하게 한다는 것인데, 10월 11일 상원에서 그 시범실시안에 대해 표결하였다 . '지역 중죄법원'은 5명의 직업법관으로 구성되고, 시범실시안이 10여 개 지역에서 시행될 예정이다.
중죄재판부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국민주권 원칙의 구현으로 제도화되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그 역할은 점점더 제한적으로 변화되어 왔다.
이번 개선안은 효율적인 진실발견과 예산 절감을 도모한 방안으로, 이웃한 두 나라의 사례가 참고되었다. 벨기에는 2016년 대부분의 중죄 사건을 경죄 사건 담당재판부로 이송하는 처분을 허용하였고, 스위스는 2011년 26개 주 중 25개 주에서 배심제를 폐지하였다. 스위스의 경우 배심제를 폐지하는 대신 '제한적 구두주의(oralité limiteé)'을 채택하였는데, 이는 '기록을 검토한 사법관이 증거로 확인한 모든 사실은 재판에서 재론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말한다.
앞으로 지역 중죄법원에서 중죄 사건을 담당하게 될 경우, 서면주의와 제한적 구두주의로의 회귀가 우려된다. 보다 신속한 사법절차는 오히려 현실과 유리될 우려도 있다.
기사 말미에 요약된 내용을 보면, 2017년의 경우 프랑스 경죄재판부에서 264,068건의 판결을 선고한 데 비해, 중죄재판부는 2,232건의 판결을 선고하였다고 합니다.
배심재판이나 참심재판은 일반국민이 직접 재판에 참여함으로써 국민주권 원칙을 사법분야에도 관철할 수 있다는 명분상 장점은 있으나, 그 시행에 보다 많은 시간과 인력이 소요되어 재판절차의 신속을 저해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오랜 세월 참심재판 제도를 시행해온 프랑스에서는 이미 이 제도의 효용성과 개선방안에 대해 많은 연구와 검토가 있었겠지요.
그래도 이런 제도를 건드리려면 적지 않은 반대가 있을 것 같네요. 이 기사에도 부정적인 댓글이 2개 달려있는데, 이런 내용입니다. "이런 방안은 판사들을 더 방임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민주주의에 대한 침해이다".
'지역 중죄법원'이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별도의 법원을 신설한다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지방법원에 중죄 사건만을 담당하는 전담재판부를 새로이 둔다는 취지인 것 같습니다. 종전의 중죄재판부는 보다 사안이 중한 사건, 상습범 사건, 중죄 항소 사건을 계속 담당하게 된다고 하네요.
선진국의 배심재판 제도와 참심재판 제도를 뒤늦게 들여와 독특한 모습의 국민참여재판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사법제도 종주국들의 제도변화 추이를 잘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도 항상 문제점을 발견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변화에 대응하여야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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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심제는 유죄 여부를 법관만이 판단하고, 참심원은 그저 법관과 형량만을 결정하는 제도라고 압니다. 근래 우리 국민이 유무죄 판단보다는 형량에 많은 불만을 표한다고 생각되는 만큼, 어쩌면 우리의 국민참여재판은 영미식 배심제보단 유럽식 참심제로 가는 게 옳지 않았나 싶네요. 가방끈은 극히 짧지만 나름 법학 학습자로서 요즈음 우리 형사법의 형량이 너무 심각하게 커지고 있는 듯해 걱정입니다... 큰 형량이 무슨 만병통치약도 아니고 오히려 역효과가 큰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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