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9일 금요일
마크롱 대통령의 페탱 원수 발언 논란
며칠 전인 2018년 11월 7일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프랑스 대통령이 필리프 페탱(Philippe Pétain, 1856-1951)에 대해 위대한 군인이었다고 말했다가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페탱은 1차 세계대전 당시 Verdun 전투에서 독일군을 무찌르는 등 프랑스의 승전을 이끌어 프랑스의 원수(元帥, maréchal)라는 칭호를 받은 장군이었으나, 2차 세계대전 때는 위기상황에 놓인 프랑스의 총리로 복귀하여 나치 독일에 항복하고 비시(Vichy) 정부의 수반으로서 히틀러에 적극 부역하였다가 전후 사형선고를 받은 인물입니다.
마크롱 대통령이 했다는 발언은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페탱은 비록 2차 세계대전 당시 불행한 선택(des choix funestes)을 하긴 하였지만, 1차 세계대전의 위대한 장군(un grand soldat)이었습니다. 그가 위대한 장군이었다는 사실은 진실입니다. 인간으로서 정치적 삶은 사람들이 믿기 원하는 것보다는 때때로 더 복잡합니다. 저는 항상 우리나라의 역사를 정면으로 바라봐 왔습니다."
2018년 11월 7일자 리베라시옹(Liberation)지의 체크뉴스(CheckNews.fr)에는 "마크롱 이전의 대통령들은 페탱에 대해 어떠한 발언을 하였는가?(Comment les présidents parlaient du maréchal Pétain avant Macron?)"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이 글에 나온 전직 대통령들의 멘트를 소개해드리겠는데요, 결론부터 말하면 전직 대통령들도 마크롱 대통령과 비슷한 정도의 수위로 발언하였고 마크롱 대통령도 이를 충실히 반영하여 발언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전후 프랑스의 재건기를 이끈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1959-1969 재임) 대통령은 1966년 베르덩 전투 50주년 기념식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불행히도 1차 대전 때와는 다른 시점에, 그의 인생에 있어 혹독한 겨울(l'extrême hiver de sa vie)에, 엄청난 일들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고령의 나이가 페탱을 비난할만한 실패로 이끌었다 할지라도, 그가 베르덩에서 거둔 영광, 그가 그(비시 정부 수립)보다 25년 전에 베르덩에서 거둔 영광, 그리고 그가 그 이후에 프랑스군을 승리로 이끌며 지킨 영광은 조국에 의해 다퉈지거나 부정될 수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40년 후 베르덩 전투 90주년 기념식에서는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1995-2007 재임) 대통령이 이와 유사한 발언을 하였습니다.
"승리를 위한 결정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베르덩의 승리자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바로 필리프 페탱입니다. 불행히도, 1940년 6월에 동일한 사람이 그 인생의 겨울(l'hiver de sa vie)에 이르러 그의 영광을 휴전이라는 불행한 선택(le choix funeste)과 부역이라는 불명예로 상쇄시켜버렸습니다."
시라크 대통령의 위 연설을 보면 그가 드골 대통령이 쓴 'l'hiver de sa vie'라는 표현을 모방하고, 마크롱 대통령은 시라크 대통령이 쓴 'le choix funeste'라는 표현을 그대로 갖다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라크 대통령의 직전 대통령인 프랑수와 미테랑(François Mitterrand, 1981-1995 재임) 대통령은, 페탱의 묘에 헌화하였다가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격한 항의를 받은 후 가진 유대인계 라디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페탱의 모순(contradictions)"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저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우리는 역사의 전형적인 모순 상황 앞에 있고, 역사의 모순은 우리를 다시 모순 상황 속에 놓아두며, 이는 정말로 우리를 견딜 수 없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되어 있는, 프랑스가 거둔 가장 위대한 전투를 빼버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사건들(비시 정부 수립)로부터 25년 전에 일어난 베르덩 전투에 누가 참여하고 누가 지휘했는지는 프랑스의 역사에서 뺄 수 없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것은 바로 치욕입니다. 베르덩의 영광은, 수많은 피와 드라마로 만들어진 영광은 잊혀질 수 없고,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1942년의 치욕이 이 영광을 폄훼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본질적인 모순(une contradiction fondamentale)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에 대처해야 하고, 이에 대한 몰이해가 확대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비난에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비록 1차 대전의 영웅으로 프랑스를 구원한 페탱이지만, 그래서 2차 대전 당시 프랑스가 위기에 처하게 되자 84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이 영웅이 3공화국의 총리로 소환되어 프랑스를 이끌게까지 된 것이지만, 나치 독일에 대한 항복과 부역은 프랑스로서는 부인하고 숨기고만 싶은 수치스런 기억인 거죠.
반면, 런던에서 망명정부인 '자유 프랑스(La France Libre)'를 이끈 드골은 이 어두운 시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랑스럽게 장식하여야만 하는 프랑스의 단 하나의 기억이어야만 했던 거구요. 이러한 대립구도의 설정에는 혹여 역사의 과장이나 더 나아가 조작이 끼어들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프랑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 같습니다. 이게 현재 프랑스 국민들의 국가적 자긍심의 원천이니까요. 그래서 마크롱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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