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7일 월요일
[독서일기] <호모 히스토리쿠스>,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
최근에 역사에 관한 좋은 책 두 권을 읽었습니다. 오항녕 지음 <호모 히스토리쿠스>(2016년 8월, 개마고원)와 젊은역사학자모임 지음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2018년 10월, 서해문집)입니다.전자는 역사란 무엇이고 역사 공부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 하는 점을, 후자는 유사역사학을 비판하면서 역사 공부의 바른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두 책의 저자들이 이 책들을 저술하게 된 각각의 출발점은 다르겠지만, 결국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 주겠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즉, 역사를 섣불리 단정 지어 보지 말고, 또 악의를 갖고 역사를 호도하는 사람들을 경계하자는 것입니다.
두 책 모두 느끼는 바가 많은 내용들을 담고 있고, 거의 암기 정도 해놔야 되지 않을까 싶은 주옥같은 내용들이 많습니다. 비단 역사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 사회를 정확히 바라보는 데도 유용한 사고 틀을 발견할 수 있네요. 두고두고 기억해 놓기 위해 여기 일부 내용을 옮겨보려 합니다.
<호모 히스토리쿠스>
[http://www.yes24.com/24/goods/30572882?scode=029] |
제1부 내 발길이 만드는 역사
- 모든 사건에는 언제나 객관적 조건, 사람의 의지, 그리고 우연이 함께 들어 있다. 모든 사건은 조건, 의지, 우연이 합쳐져서 발생합니다. 역사는 사건에 대한 탐구이므로 모든 사건을 탐구할 때는 조건, 의지, 우연을 다 살펴야 합니다. (34쪽)
- 구조라고 해서 불변은 아닙니다. 구조도 변합니다. 구조는 다음에 살펴볼 자유의지와 대립적이지 않습니다. 자유의지로 선택한 것이 나중에는 구조가 됩니다. (52쪽)
- 객관적 조건과 구조를 고려하지 않으면 사태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구조만 고려하면 설명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이 사라집니다. --- 인간의 의지가 빠진 역사적 사건이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53쪽)
- 모든 역사적 사건에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작용하고 있지만, 사건을 해석할 때는 자유의지를 조심스럽게 대입해야 할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60쪽)
- 역사에는 서로 원인이 다른 둘 이상의 사태가 만나서 생기는 사건이 많습니다. 아니 모든 사건에는 우연이 내재합니다. (68쪽)
제2부 역사의 영역
제3부 기억, 기록, 그리고 시간의 존재
- 이렇게 잘못된 기억이 증언이나 기록으로 남고, 이것이 역사자료로 활용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연스럽게 역사의 오류를 낳거나 왜곡으로 이어지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132쪽)
- 핵심은 주관(성)이란 것이 객관(성)과 대립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무엇이 아니라는 겁니다. 아니 그보다 객관성의 토대이자 자양분이며, 실질적 내용이자 풍부하게 해주는 질료가 주관성입니다. 주관을 객관의 대립으로 설정하는 사유는 결국 하나의 '객관'만을 강요하기에 이릅니다. (151쪽)
- 역사기록이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일기나 편지에서 교과서, 논문까지 역사기록의 스펙트럼은 넓습니다. 전자를 주로 사료, 역사기록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역사서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 이런 스펙트럼을 고려하면 사실과 해석, 주관과 객관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데도 유용합니다. (164쪽)
- 역사성에 대한 인식이 중요한 이유는, 역사성을 놓치면 시대착오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이 오류는 어떤 사건이 실제 일어난 시기(시대)가 아닌 다른 시기에 일어난 것처럼 묘사, 분석,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 시대착오의 오류 중 먼저 들 수 있는 것이 현재주의의 오류입니다. 현재주의는 현재의 관점으로 과거의 어떤 사실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175쪽)
제4부 오해와 이해의 갈림길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
[http://www.yes24.com/24/goods/65438499?scode=029] |
고조선 역사, 어떻게 볼 것인가
- 고조선 문화권에서 세 유물이 모두 균일한 밀도로 갖추어져 있었다고 단순하게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 유물을 통해 확인되는 문화적 분포권을 고대국가의 영역과 간단히 동일시해 버리는 태도 역시 위험하다. 문화는 국경을 넘어서도 전파될 수 있기 때문이다. (29쪽)
낙랑군은 한반도에 없었다?
- 사이비 역사가들은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광대한 대륙을 호령했던 우리 역사를 반도로 축소했다고 열을 올려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대륙의 역사는 우월하고 반도의 역사는 열등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다. 넓은 영토에 대한 환상과 욕망에 취해 정작 우리가 발을 디디고 살고 있는 한반도를 혐오하고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 (60쪽)
광개토왕비 발견과 한중일 역사전쟁
- 광개토대왕비는 이러한 정사 기록이 아니다. 장수왕이 자기 부왕인 광개토왕의 업적을 대외에 과시하고자 작성한 훈적비인 셈이다. 또한 비문은 고구려 왕가의 입장에서 과거에 일으킨 전쟁이 정당한 명분하에 치러졌으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성공적으로 수행했음을 국내성의 귀족과 주민에게 널리 알리는 정치 선전물이기도 했다. (88쪽)
- 정작 중요한 것은 비문에서 드러난 국제 정세에 대한 고구려인의 '인식'과 자기 '욕망'이며, 여기에 토대를 둔 정치적 발언 자체를 사실로 보는 것은 순진한 발상에 불과하다. (92쪽)
백제는 정말 요서로 진출했나
- 백제의 요서 진출 정보가 중국 정사에 기록됐기 때문에 타자의 '객관적 시각'에 따라 서술된 '역사적 사실'이라는 믿음도 있다. 타자의 기록이 가진 긍정적 속성도 있지만, 무지와 편견과 이해관계에 따른 왜곡 역시 적지 않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남조 역사서를 해석할 때는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 --- 백제의 요서 진출 문제는 백제만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요서와 중국 내륙, 나아가 동아시아로 시야를 넓혀 입체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조'라는 타자를 주의 깊게 이해해야 한다. 그들 입장에서 왜 기록하게 됐는지를 다각도로 따져 보는 과정 속에서 백제의 요서 진출에 대한 이해도 풍부해질 것이다. (125쪽)
칠지도가 들려주는 백제와 왜 이야기
- 백제에서 만들어진 칠지도는 기본적으로 왜에 대한 백제의 '인식'을 보여 주는 물건이다. <일본서기>가 백제에 대한 일본의 '인식'을 보여 주는 사료라는 점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칠지도에 보이는 백제의 인식이 당시 백제와 왜의 실제 관계를 보여 주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151쪽)
- 국가 간의 외교 관계에 있어서 어느 한쪽의 인식이 두 나라의 실제 관계와 다르게 기록되는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여러 나라들은 백제왕을 책봉할 때, 자국 중심의 인식에 맞춰 외교문서를 보냈다. 백제왕도 그러한 인식에 어긋나지 않게끔 형식을 갖추어 외교문서를 보냈다. 이러한 관계를 흔히 '조공책봉 관계'라고 하지만, 둘 사이의 실제 관계는 그러한 인식과는 조금 달랐다. 백제왕은 국내의 필요성과 중국의 상황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백제의 외교적 이익에 따라 행동하기도 했다. (151쪽)
- 칠지도는 백제왕이 왜왕에게 내려준다는 백제의 인식에 따라 제작됐다. 다만, 실제 백제와 왜의 관계는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우호 관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우호 관계를 고려한다면, 칠지도의 실제 성격은 '헌상품'이나 '하사품'이라기보다, 외교적 선물에 가까웠을 것이다. (153쪽)
생존을 위한 전쟁, 신라의 삼국통일
- 지금까지 신라의 외교와 전쟁 수행 과정을 살펴보면 결국 고구려와 백제는, 신라 입장에서 상황에 따라 적국이 되거나 동맹국이 될 수 있는, 혹은 상대를 복속시켜서 속국으로 삼기도 한 타국이었다. 이들 사이에 언어가 통한다거나 혹은 문화적 공통점이 어느 정도 있다 할지라도 이들은 같은 민족으로 서로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각기 다른 국가로서 자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합종연횡을 거듭했다. 신라가 백제를 상대할 대상으로 고구려를 선택한 것도 전략적이었으며, 왜나 당을 선택해 외교를 펼친 것 또한 전략적 이득을 감안한 것이었다. (184~5쪽)
- 이 시기에 고구려나 백제, 왜, 당은 신라 입장에서 모두 외세였으며 서로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관계였다. 그리고 이들에게 고구려, 신라, 백제라는 삼국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인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의 관계에 민족이라는 터울을 씌우는 순간 역사는 역사가 아닌 현재의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관점 속에 있는 상상 속 산물이 될 것이다. 그러한 산물 속에서 김춘추는 사대주의자로 포장돼 비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후대의 산물, 인식을 그것이 실재하지 않았던 시기에 실재한 것처럼 덮어씌워 이야기하는 것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이 아닐까. (185쪽)
신라 김씨 왕실은 흉노의 후예였나
- 선조에 대한 여러 기록에는 사람들의 욕망이 투영돼 있다. 또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고대사를 바라보며 여러 욕망을 투영한다. 사람들이 신라 김씨 왕실의 선조에 대한 여러 기록 가운데서도 유독 김일제가 선조였다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던 데에는 우리 민족의 범위를 확장하고 싶은 욕구가 반영돼 있다. 즉 김일제가 신라 김씨 왕실의 선조이면 흉노가 아우르던 드넓은 영토가 곧 우리 민족의 영토가 되고, 중국 왕조를 위협하던 흉노의 강한 군사력이 곧 우리 민족의 힘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일제에 대한 기록은 관념적인 표방이며, 오히려 김일제란 인물은 이민족으로서 중국 왕조에 충성을 바친 상징적 인물이란 사실을 떠올리는 편이 좋을 것이다. (216쪽)
임나일본부설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 과연 고대를 살아간 고대인들을 현대의 국가와 민족 관점에서 해석하는 일이 타당할까?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분과 남해안 교통로의 거점에서 발견되는 왜계 무덤들, 그리고 일본열도에서 발견되는 한반도계 유적들은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에 가로놓인 바다가 당시 사람들에게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가 아니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일 수 있다. <일본서기>에 나타나는 왜인계 관료들의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넘나드는 활동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임나일본부의 실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이처럼 현대인이 아닌 고대인의 관점을 염두에 두고 연구할 때 가능하지 않을까? (246쪽)
발해사는 누구의 역사인가
- 요컨대, 당은 대조영이 실제 말갈인지 아닌지와 관계없이 '발해는 말갈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복속시키지 못한 집단에 대한 오기이자, 일종의 타자화였다. 그런데 공교롭게 그 타자에 대한 멸시를 담은 '말갈'이라는 단어를 근거로 현재 중국은 발해를 자기화하려 한다. 이 얼마나 역설인가. (271~2쪽)
- 일제는 만주국과 조선에 대한 효율적 식민 통치를 위해 역사적으로 만주는 중국과 분리된 지역이었고, 조선은 만주에 종속적이었다는 논리를 만들어 냈다. 발해사 연구는 이런 만선사관 시각에서 진행됐다. (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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