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30일 일요일
[독서일기] 레미제라블 1
휴 잭맨, 앤 해서웨이, 러셀 크로 등이 출연한 영화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이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12월에 개봉되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당시 극장에서만 4번이나 볼 정도로 깊이 빠졌더랬습니다.장발장이 사람들과 극진한 사랑을 나누고 혁명파가 희망을 노래하는 두 가지 이야기가 함께 진행되면서 전해주는 찐한 감동, 이런 감동을 한층 더 업~ 시켜주는 묵직하거나 아름다운 멜로디의 노래들, 배우들의 혼이 느껴지는 절절한 연기들, 어느 것 하나 빼고 더하거나 나무랄 데 없는 명작 영화였습니다, 저에게는요.
이 영화는 당시 다른 나라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히트를 하였습니다. 그때 막 끝난 대통령선거 결과에 실망한 우리 국민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어서 흥행한 것이라는 둥의 분석도 있었습니다만, 저의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외롭고 힘들게 지내던 저의 그때 그 시절을 위로해준 영화였기에 더 마음을 뺏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난 직후에 뮤지컬로도 보고 책으로도 접했지만, 영화만큼의 감동은 주지 못하더군요. 저에게는 뮤지컬이나 책보다 이 영화 자체가 '레미제라블'로서는 최고였습니다. 물론 이 영화의 OST도 너무 좋아해서 아직까지 즐겨 듣고 있구요.
2018년의 마지막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밤에 넷플릭스로 이 영화를 오랜만에 다시 찾아 보았습니다. 역시나 재미있으면서도 가슴 뭉클하게 감상했습니다. 다만, 영화에서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않은 내용을 책으로 다시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그래서 오랜만에 빅토르 위고의 책도 다시 꺼내들어 읽고 있습니다.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판본들이 있지만, 제가 읽고 있는 책 '레미제라블'은 동서문화사에서 여섯 권으로 나온 판본입니다.
책으로 보는 '레미제라블'은 분량이 많기도 하지만, 이야기 전개가 그리 빠르지 않고, 불필요해 보이는 잡다한 설명도 많고, 번역체 문장이 쉽게 읽히는 편도 아니어서, 처음 볼 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읽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레미제라블'에는 죄를 지은 장발장과 벌을 주려는 자베르 형사가 등장하는 관계로, 19세기 초의 프랑스 사법제도에 관한 얘기가 간간히 나오게 되는데요, 앞으로 책을 조금씩 읽어가면서 프랑스 사법제도 얘기가 나올 때마다 간단한 코멘트를 해볼까 합니다. 물론 저는 19세기의 프랑스 사법제도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긴 하지만, 저 자신의 공부를 위해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며 낯선 역사 속을 헤매어 보려 합니다.
어제부터 제1권을 펴 들기 시작했는데, 33쪽에 벌써부터 위조지폐범을 잡는 검사 얘기가 등장하네요. 독서일기 '레미제라블' 첫번째 이야기는 이걸로 시작해보겠습니다.
[https://ridibooks.com/v2/Detail?id=15190004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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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레미제라블'은 1815년 프랑스 디뉴(Digne)라는 지방에서 주교 직을 수행하고 있는 미리엘(Myriel) 주교를 자세하게 소개하는 대목부터 시작합니다. 위고에 따르면 미리엘 주교는 신앙심 깊고, 빈자에게 자애롭고, 일체의 사리사욕 없이 남을 도우며 극히 검소하고 청렴한 삶을 살고 있고, 합리적인 사고방식과 용기도 갖고 있는, 한마디로 이 시대의 성자이자 현자입니다.
미리엘 주교는 원래 귀족 가문 출신으로 젊은 시절에는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나, 프랑스 대혁명으로 가문이 몰락하고 자신은 이탈리아로 망명하였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성직자로 변신하였고 이후로는 전혀 다른 성품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프랑스어 원문(다음에서 발췌: Victor Hugo. ‘Les misérables Tome I.’ iBooks. https://itunes.apple.com/kr/book/les-mis%C3%A9rables-tome-i/id510969617?mt=11)에는 그의 출신에 대해 "M. Myriel était fils d'un conseiller au parlement d'Aix; noblesse de robe"라고 표현하고 있고, 제가 읽고 있는 동서문화사 판본에서는 "미리엘씨는 액스 고등법원 평의원의 아들로 고귀한 법관 가문 출신이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parlement은 현재 '의회'라는 의미로 쓰이는 단어이고 영어에서 의회를 의미하는 parliament과 같은 단어이기도 하지만, 과거에는 의회가 아니라 '고등법원'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단어라고 합니다. 18세기 말까지 파리를 비롯한 13개 도시에 설치되어 있었고, 최종심으로서의 대법원이 별도로 없었던 당시에는 이 parlement이 각 관할구역 내에서 최종심을 담당하였습니다(문준영, 법원과 검찰의 탄생, 역사비평사, 2010, 75쪽).
그리고 'conseiller'는 대개 의회의 의원이라는 뜻의 단어이기도 하지만 다른 의미로는 법원의 판사를 가리키는 단어이므로, 동서문화사 판본에서 '고등법원 평의원'이라고 번역한 부분은 정확하지 않은 번역이라고 하겠습니다.
바로 다음에 나오는 'noblesse de robe'도 프랑스어 사전을 찾아보니 '법복 귀족'이라는 의미이더군요.
결국 위 프랑스어 문장은 "미리엘씨는 액스(Aix) 고등법원 판사의 아들로, 법복 귀족(또는 법관 가문) 출신이었다"로 읽을 수 있겠습니다.
그 뒤로는 미리엘 주교의 훌륭한 인품을 보여주기 위한 여러 에피소드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위조지폐범을 잡은 검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일단 위 iBooks 버전의 원문을 한번 가져와보겠습니다.
Il entendit un jour conter dans un salon un procès criminel qu'on instruisait et qu'on allait juger. Un misérable homme, par amour pour une femme et pour l'enfant qu'il avait d'elle, à bout de ressources, avait fait de la fausse monnaie. La fausse monnaie était encore punie de mort à cette époque. La femme avait été arrêtée émettant la première pièce fausse fabriquée par l'homme. On la tenait, mais on n'avait de preuves que contre elle. Elle seule pouvait charger son amant et le perdre en avouant. Elle nia. On insista. Elle s'obstina à nier. Sur ce, le procureur du roi avait eu une idée. Il avait supposé une infidélité de l'amant, et était parvenu, avec des fragments de lettres savamment présentés, à persuader à la malheureuse qu'elle avait une rivale et que cet homme la trompait. Alors, exaspérée de jalousie, elle avait dénoncé son amant, tout avoué, tout prouvé. L'homme était perdu. Il allait être prochainement jugé à Aix avec sa complice. On racontait le fait, et chacun s'extasiait sur l'habileté du magistrat. En mettant la jalousie en jeu, il avait fait jaillir la vérité par la colère, il avait fait sortir la justice de la vengeance. L'évêque écoutait tout cela en silence. Quand ce fut fini, il demanda:
—Où jugera-t-on cet homme et cette femme?
—À la cour d'assises.
Il reprit:
—Et où jugera-t-on monsieur le procureur du roi?
여기에 등장하는 사건은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연인관계인 남녀가 위조지폐를 만들어 사용한 혐의로 예심절차(instruire)를 거쳐 판결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형사사건으로, 당시는 위조지폐범에 대한 처벌이 사형이던 시절이었습니다. 남자는 위조지폐를 만들고 여자가 그것을 사용하다가 먼저 체포되었는데, 여자는 남자를 보호하기 위해 위조지폐의 출처에 대해 극구 함구하고 있었습니다. 검사(le procureur du roi)는 위조지폐를 만든 공범을 찾아내기 위해 아이디어 하나를 생각해 냈는데, 그것은 남자에게 다른 연인이 있고 여자는 남자에게 속은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위조하여 여자에게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이를 보고 남자에게 분노한 여자가 결국 남자가 위조지폐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자백하여 남자를 검거되게 하였고, 사람들은 여자의 분노를 이용해 진실을 밝혀내고 여자의 복수심에서 정의를 이끌어 냈다며 이 사법관(le magistrat)의 묘책에 감탄하였습니다.
그런데 미리엘 주교는 이 이야기를 듣고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그 남자와 여자는 어디에서 재판을 받습니까?” / “중죄법원(la cour d'assises)입니다.”
미리엘 주교는 다시 이렇게 묻습니다.
“그렇다면 그 검사는 어디에서 재판을 받지요?”
1815년의 프랑스 형사사법제도가 지금과 동일하진 않지만,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 여러 개혁입법이 이루어지면서 지금과 유사한 내용의 근대적 형사사법제도가 마련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범죄수사법(le code d'instruction criminelle, 1808)과 법원조직법(Loi sur l'organisation de l'ordre judiciaire et l'administration de la justice, 1810)이 대표적인 입법입니다.
위 대목에서 등장하는 형사사법절차가 지금과는 다른 법에 근거하고 있지만, 대략적인 모습은 지금과 그다지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먼저, 위 에피소드의 남녀 주인공들이 예심절차를 거쳐 판결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는 대목이 나오네요. 예심절차제도는 구체제(앙시앙 레짐) 시절부터 있어오다 1808년 범죄수사법에 의해 현재의 모습이 갖춰지면서 아직까지 운영되고 있는 제도로서, 법원에서의 재판절차에 앞서 예심판사가 증거를 수집하는 일종의 수사절차 또는 일종의 예비적인 재판절차를 말합니다. 예심절차는 주로 중대한 범죄에 대해서 진행되는 절차인데, 위조지폐범이 사형으로 처벌되던 시절이라고 하니 당연히 예심절차의 대상이 되는 중대한 범죄였던 모양입니다.
예심절차의 대상이 되는 중대한 범죄에 대해서는 중죄법원이 그 재판을 담당합니다.
중죄법원이라 함은 배심재판 방식으로 운영되는 재판부를 말합니다. 프랑스의 배심재판제도(정확하게는 참심재판제도라고 하여야 합니다)는 직접적으로는 프랑스 대혁명을 계기로 영국을 모델로 한 것이나, 사실은 중세 프랑스의 형사재판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노르만족에 의해 영국에 전파되었다가 1791년 법률에 의해 다시 역수입된 것이라고 하네요(김택수, "프랑스 참심재판의 개혁과 시사점", 법학논총 제31집 제2호, 한양대 법학연구소, 2014, 74쪽).
중죄법원은 프랑스 대혁명 직후에는 'tribunal criminel'이라는 명칭으로 출발하였다가, 1810년 법원조직법에서 'cour d'assises'라는 현재의 명칭을 갖게 되었습니다{프랑스 위키피디아, https://fr.wikipedia.org/wiki/Cour_d%27assises_(France)}.
예심판사가 사실상의 수사를 담당하는 제도에서 검사는 어떠한 역할을 하게 될까요.
검사는 13세기 프랑스 왕의 사적 이익을 옹호하는 역할을 하던 '왕의 대리인(procureur du roi)'에서 유래하여 점차 왕의 사적 이익을 옹호하는 위치에서 벗어나 '일반이익과 공공선의 보좌인'이라는 위상을 갖게 된 국가기관으로, 법복 귀족이 장악한 법원을 견제하는 역할을 담당하여 오다 프랑스 대혁명을 계기로 집행권에 속한 특별한 사법관(magistrat)의 지위를 갖게 되었습니다(문준영, 앞의 책, 76~86쪽).
이후 왕정이 모습을 감추고 공화정이 정착되면서 종전의 명칭인 'procureur du roi(왕의 대리인 또는 공소관)' 대신 'procureur de la République(공화국의 대리인 또는 공소관)'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구요. 같은 프랑스어권 국가이지만 입헌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는 벨기에에서는 아직도 검사를 procureur du roi라고 부르고 있지요.
이후 왕정이 모습을 감추고 공화정이 정착되면서 종전의 명칭인 'procureur du roi(왕의 대리인 또는 공소관)' 대신 'procureur de la République(공화국의 대리인 또는 공소관)'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구요. 같은 프랑스어권 국가이지만 입헌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는 벨기에에서는 아직도 검사를 procureur du roi라고 부르고 있지요.
검사는 사법경찰의 수사행위를 지휘감독하고, 사법경찰의 수사 결과 중대한 범죄를 발견하게 되면 이에 대해 예심절차를 개시하여 달라고 예심판사에게 청구하고, 이 사건이 예심판사의 수사 결과 결국 혐의가 인정되어 재판법원으로 넘어오게 되면 법정에 출석하여 범인이 유죄를 받을 수 있도록 소송행위를 담당합니다.
위 에피소드에서 검사는 위조지폐를 사용하다 체포된 여자가 결국 공범에 대해 자백하도록 하였는데, 검사가 사법경찰의 수사, 예심판사의 예심, 재판법원의 재판 등 각 절차 모두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는 하므로 이 중 어느 한 단계에 끼어들어 여자의 자백을 유도하였을 것입니다.
이 에피소드를 들은 사람들 대부분은 이 검사가 기발한 꾀를 내어 자칫 법망을 잘 빠져나갈 뻔했던 공범을 통쾌하게 잡아냈다며 칭송하였다는 것인데요, 유독 미리엘 주교만 여기에 삐딱한 시선을 보냅니다. 아무리 공범을 잡겠다는 선한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무릇 정의를 추구한다는 국가기관이 저렇게 국민을 속이기까지 해서야 되겠냐는 거죠.
사실 지금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공범을 저런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잡아낸 검사가 이상해 보일 뿐 미리엘 주교의 문제 제기는 전혀 삐딱해 보이지 않지만, 미리엘 주교의 선한 품성을 소개하기 위해 빅토르 위고가 이런 에피소드를 레미제라블에 넣은 것을 보면 당시로서는 미리엘 주교를 통해 보여준 이러한 시각이 꽤 독특하고 신선한 것이었던가 봅니다.
사실 지금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공범을 저런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잡아낸 검사가 이상해 보일 뿐 미리엘 주교의 문제 제기는 전혀 삐딱해 보이지 않지만, 미리엘 주교의 선한 품성을 소개하기 위해 빅토르 위고가 이런 에피소드를 레미제라블에 넣은 것을 보면 당시로서는 미리엘 주교를 통해 보여준 이러한 시각이 꽤 독특하고 신선한 것이었던가 봅니다.
그러면 국가기관이 그러한 정직하지 못한 행위를 하면 안 된다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우리 형사소송법에 보면 제308조의2에 위법수집증거 배제원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진실의 발견이 형사사법절차의 목표이기는 하나, 그것은 적법절차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프랑스에도 위법수집증거 배제원칙에 해당하는 것으로 ‘적법절차 원칙(Principe de la légalité)’이라는 것이 있는데요, 인권을 존중하고 정의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증거를 수집함으로써 피고인의 권리와 공정한 절차를 보장하여야 한다는 원칙을 의미합니다. 이는 주로 ‘신의칙(Principe de loyauté)'에서 도출되는 것으로, 형사소송법상 명문의 규정은 없으나 전통적으로 판례에 의해 확립되어 있는 원칙입니다.
적법절차 원칙이 신의칙에서 유래된 데 기인하여, 위법하게(illicite) 수집된 증거뿐만 아니라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déloyale) 수집된 증거도 위법한 증거가 되고, 이러한 증거는 형사소송법에 마련되어 있는 ‘절차의 무효(Nullité de la procédure)'라는 제도에 따라 증거로서의 사용이 금지됩니다(한제희, "프랑스 위법수집증거 취급방법 개관", 형사소송 이론과 실무 제3권 제2호, 한국형사소송법학회, 2011, 198~203쪽).
이와 같이 검사가 위법한 방법으로 증거를 수집하면 안 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 없는 당연한 결론입니다. 그런데 이런 당연한 결론은 그렇다치고, 아마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의문이 드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그럼 위조지폐를 만든 이 범행의 주범인 남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남자에 대해서 위법하게 증거가 수집되었으니 남자는 무죄 판결을 받고 여자만 유죄 판결을 받게 되는 것인가.
우리의 위법수집증거 배제원칙의 경우,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도 예외는 있습니다. 본래의 범죄로 인해 발생한 위법상태와 증거의 위법한 수집으로 인해 발생한 위법상태를 서로 비교하여, 전자가 후자에 비해 본질적이거나 매우 중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도 예외적으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프랑스의 '적법절차 원칙'에도 이런 식의 예외가 인정되는 걸까요. 비슷한 논리로 증거로서의 사용을 인정한 판례들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예외가 인정된다는 취지의 명백한 학설은 없기 때문에, 이 사건의 경우 어떤 결론을 낼 수 있을지는 다소 불분명합니다.
어쨌든 이러한 판단은 재판을 하는 법관이 자유재량에 따라 하게 되는 것인데요. 제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이 사건의 경우 위조지폐를 만드는 것이 사형이라는 벌을 받을 정도로 매우 중대한 범죄이고 남자는 무죄 여자는 유죄라는 불합리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음을 감안할 때, 아마도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이긴 하지만 여자의 자백을 예외적인 유죄의 증거로 채택하여 남자에 대해서도 유죄 판결이 선고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둘째, 만약 검사가 정직한 사람이어서 여자를 속이려고 하지 않아 결국 남자를 못 잡았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남자를 못 잡으면 여자만 혼자 처벌받게 되는 문제가 있고, 남자가 재차 위조지폐를 만들어 사용하는 범행을 반복하게 될 것이니, 무슨 방법을 쓰든 남자를 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소설에 의하면 남자를 잡을 만한 다른 증거는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남자를 잡을 방법이 전혀 없었으니 검사가 정의감이나 의욕이 넘친 나머지 여자의 입을 열기 위해 저런 무리수를 둔 것이라는 거겠죠.
요새같이 두 남녀간의 문자 메시지나 카톡 메시지를 압수해서 보았더니 두 사람이 범행을 함께 한 것이라고 의심할만한 내용이 발견되었다면 어떨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결론은 마찬가지입니다. 공범임을 확신할 수 있는 명백한 내용이 아닌 한, 단지 의심스러운 내용의 문자나 카톡 메시지만으로는 혐의를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결국 두 사람의 자백 진술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거든요.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 보면, 어떤 살인 사건에서 증거라고는 범행에 사용된 칼에서 발견된 누군가의 지문 뿐이라고 할 때, 그 지문만으로 그 지문의 보유자를 범죄자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 지문 보유자의 자백이 추가로 필요합니다. 범죄자가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지문을 칼에 묻혀놓았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다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함부로 유죄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형사재판의 대원칙입니다.
즉, 비록 "자백은 증거의 왕이다"라는 말이 온갖 비난을 다 받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어떠한 물적 증거도 사람의 진술보다는 가치가 낮은 증거라는 것이죠. 여러 물적 증거들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고, 사람의 진술에 의해 '조합'되고 '연결'되어야만 유죄의 증거로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와 같은 이유로 범죄의 증거를 발견하고 수집한다는 것은 극히 힘든 일이고, 특히 사람의 진술은 더더욱 그러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무리 과학수사가 발달하더라도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는 미제 사건은 어쩔 수 없이 발생하기 마련이고, 더구나 그러한 경우가 꽤 잦을 수도 있습니다. 너무 무기력한 얘기 같지만, 이 사건과 같은 류의 사건에서 공범인 남자를 잡지 못하고 사건이 미궁에 빠지는 상황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다시 자세히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셋째, 미리엘 주교의 질문처럼 그럼 여자를 속인 검사는 어디에서 재판을 받게 될까요.
검사가 부정직한 행위를 하기는 했지만, 아마도 이러한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 형법 규정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떠한 잘못된 행위가 있더라도, 그 모두에 대해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 행위의 경중과 불법의 정도 등을 따져, 어떤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가 하면, 그와 다른 어떤 행위에 대해서는 민사배상을 하게 할 수도 있고, 그와는 또다른 어떤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이나 민사배상도 아닌 다른 형태의 제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결국 이 검사의 경우에는 아마도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못한 점을 이유로 내부적인 징계조치를 받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적법절차 원칙이 신의칙에서 유래된 데 기인하여, 위법하게(illicite) 수집된 증거뿐만 아니라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déloyale) 수집된 증거도 위법한 증거가 되고, 이러한 증거는 형사소송법에 마련되어 있는 ‘절차의 무효(Nullité de la procédure)'라는 제도에 따라 증거로서의 사용이 금지됩니다(한제희, "프랑스 위법수집증거 취급방법 개관", 형사소송 이론과 실무 제3권 제2호, 한국형사소송법학회, 2011, 198~203쪽).
이와 같이 검사가 위법한 방법으로 증거를 수집하면 안 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 없는 당연한 결론입니다. 그런데 이런 당연한 결론은 그렇다치고, 아마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의문이 드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그럼 위조지폐를 만든 이 범행의 주범인 남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남자에 대해서 위법하게 증거가 수집되었으니 남자는 무죄 판결을 받고 여자만 유죄 판결을 받게 되는 것인가.
우리의 위법수집증거 배제원칙의 경우,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도 예외는 있습니다. 본래의 범죄로 인해 발생한 위법상태와 증거의 위법한 수집으로 인해 발생한 위법상태를 서로 비교하여, 전자가 후자에 비해 본질적이거나 매우 중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도 예외적으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프랑스의 '적법절차 원칙'에도 이런 식의 예외가 인정되는 걸까요. 비슷한 논리로 증거로서의 사용을 인정한 판례들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예외가 인정된다는 취지의 명백한 학설은 없기 때문에, 이 사건의 경우 어떤 결론을 낼 수 있을지는 다소 불분명합니다.
어쨌든 이러한 판단은 재판을 하는 법관이 자유재량에 따라 하게 되는 것인데요. 제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이 사건의 경우 위조지폐를 만드는 것이 사형이라는 벌을 받을 정도로 매우 중대한 범죄이고 남자는 무죄 여자는 유죄라는 불합리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음을 감안할 때, 아마도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이긴 하지만 여자의 자백을 예외적인 유죄의 증거로 채택하여 남자에 대해서도 유죄 판결이 선고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둘째, 만약 검사가 정직한 사람이어서 여자를 속이려고 하지 않아 결국 남자를 못 잡았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남자를 못 잡으면 여자만 혼자 처벌받게 되는 문제가 있고, 남자가 재차 위조지폐를 만들어 사용하는 범행을 반복하게 될 것이니, 무슨 방법을 쓰든 남자를 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소설에 의하면 남자를 잡을 만한 다른 증거는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남자를 잡을 방법이 전혀 없었으니 검사가 정의감이나 의욕이 넘친 나머지 여자의 입을 열기 위해 저런 무리수를 둔 것이라는 거겠죠.
요새같이 두 남녀간의 문자 메시지나 카톡 메시지를 압수해서 보았더니 두 사람이 범행을 함께 한 것이라고 의심할만한 내용이 발견되었다면 어떨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결론은 마찬가지입니다. 공범임을 확신할 수 있는 명백한 내용이 아닌 한, 단지 의심스러운 내용의 문자나 카톡 메시지만으로는 혐의를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결국 두 사람의 자백 진술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거든요.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 보면, 어떤 살인 사건에서 증거라고는 범행에 사용된 칼에서 발견된 누군가의 지문 뿐이라고 할 때, 그 지문만으로 그 지문의 보유자를 범죄자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 지문 보유자의 자백이 추가로 필요합니다. 범죄자가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지문을 칼에 묻혀놓았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다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함부로 유죄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형사재판의 대원칙입니다.
즉, 비록 "자백은 증거의 왕이다"라는 말이 온갖 비난을 다 받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어떠한 물적 증거도 사람의 진술보다는 가치가 낮은 증거라는 것이죠. 여러 물적 증거들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고, 사람의 진술에 의해 '조합'되고 '연결'되어야만 유죄의 증거로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와 같은 이유로 범죄의 증거를 발견하고 수집한다는 것은 극히 힘든 일이고, 특히 사람의 진술은 더더욱 그러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무리 과학수사가 발달하더라도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는 미제 사건은 어쩔 수 없이 발생하기 마련이고, 더구나 그러한 경우가 꽤 잦을 수도 있습니다. 너무 무기력한 얘기 같지만, 이 사건과 같은 류의 사건에서 공범인 남자를 잡지 못하고 사건이 미궁에 빠지는 상황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다시 자세히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셋째, 미리엘 주교의 질문처럼 그럼 여자를 속인 검사는 어디에서 재판을 받게 될까요.
검사가 부정직한 행위를 하기는 했지만, 아마도 이러한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 형법 규정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떠한 잘못된 행위가 있더라도, 그 모두에 대해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 행위의 경중과 불법의 정도 등을 따져, 어떤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가 하면, 그와 다른 어떤 행위에 대해서는 민사배상을 하게 할 수도 있고, 그와는 또다른 어떤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이나 민사배상도 아닌 다른 형태의 제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결국 이 검사의 경우에는 아마도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못한 점을 이유로 내부적인 징계조치를 받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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