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23일 일요일
[독서일기] 아날로그의 반격
재미있는 책을 발견했고, 역시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2017년 6월 우리말로 번역돼 나온 데이비드 색스의 '아날로그의 반격'입니다.[http://www.yes24.com/24/goods/43209147] |
저자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진작 마땅히 멸종되었을 줄 알았던 레코드판, 종이 노트, 필름 카메라, 보드게임 카페, 종이 잡지, 오프라인 서점 등이 지금도 버젓이 살아 남아 있고, 심지어는 이것들이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다시 유행상품이 되려고 하는 사례들을 보여 줍니다.
물론 저자가 제시한 사례들만 보면 아직 이 아날로그들의 반격은 미미하고 대세라고 말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저자는 사람들이 서서히 이 아날로그들에 다시 주목하는 현상에 적지 않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디지털이 지금 사회의 주류 경향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바람직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인간이란 존재는 나름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기에, 사람들이 무작정 디지털 세계라는 한쪽 방향으로만 쏠리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저자는 아날로그에서 시작하여 디지털로의 전환까지 경험한 장년층 세대와, 처음부터 디지털만 경험해온 신진 세대를 나누어 아날로그의 반격 경향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전자의 경우 자신이 어려서부터 경험하고 즐겨왔던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와 복고가 작용하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 디지털에 대해서만 알고 있는 세대의 입장에서 아날로그는 새로운 것이기에 힙하고 쿨해서 매력적이라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새로운 것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손에 넣고서 남들과 달라보인다는 것에 우쭐하고 만족스러워하곤 하지요. 그러다 그 새로운 것이 대세가 되고나면 다시 다른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구요. 그 새로운 것에는 과거의 것도 물론 포함되기도 합니다. 복고가 다시 유행을 타는 경우도 흔하잖습니까.
쉬운 예를 들어 보면, 스마트폰이 처음 우리에게 등장했을 때는 지하철에서 남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즐기며 스마트폰을 시전하다가, 이제는 지하철에서 누구나 스마트폰에 시선을 꽂고 다니게 되자 그러한 유행에 식상하여 반대로 종이책을 꺼내들고 싶어하게 되잖아요.
저자가 제시한 여러 사례들 중에서도 특히 7장의 디트로이트 시계 제조업체 '시놀라' 사례와 8장의 학교 교육 테크놀로지 사례가, 저에게는 인상 깊었습니다.
수십년간 도시를 먹여살리던 자동차 산업이 떠나가 거의 폐허가 된 디트로이트에 아날로그적인 제조업 방식으로 아날로그 시계를 제조하는 '시놀라'가 잔잔한 파문을 던지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미국은 전통적인 제조업체보다는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업체들이 각광을 받고 있지만, 이러한 IT업체들의 경우 제조업체에 비해 매우 적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을 뿐더러 그 일자리조차 고급 프로그래머와 같은 고도로 숙련된 일자리와 단순 업무만을 처리하는 숙련도 낮은 일자리로 양분되어 있을 뿐이어서 사회적인 공헌도가 크지 않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전통적인 제조업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죠.
저는 아이패드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아이패드라는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기계가 등장하면서, 스티브 잡스가, 그리고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 아이패드가 첨단 교육기기로서 금방 학교 교실들을 장악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자에 의하면 이 실험은 이미 실패하였다고 합니다.
모든 교실에 아이패드를 비롯한 첨단 교육용 기기를 공급하고 설치한다는 것은 정치가나 행정가의 보여주기식 정책으로는 정말 그만이지만,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한 오해에 기인한 정책이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교육이라는 게 단지 지식의 전수에 불과한 것이라면 첨단 기기가 충분히 제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교육은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이고 그들 간의 공감이 본질이기에 그렇지 않다는 것이네요. 스마트 기기가 야기하는 집중력과 사고력의 훼손, 기기의 유지보수 비용 등도 부수적으로 문제가 되겠구요.
아날로그는 이미 흘러간 옛노래인 줄만 알았는데, 너무 세상을 단순하게만 보고 있었던 저에게 귀한 교훈을 주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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