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2일 수요일
프랑스의 직권남용죄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핫한 범죄는 '직권남용죄'라는 것입니다. 직권남용죄는 우리 형법 제123조에 규정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 직권남용죄는 '직권'이 무엇이고 '남용'이 무엇이냐의 해석이 쉽지 않은 범죄입니다. 해석이 쉽지 않은 이유는, '직권'과 '남용'이라는 말의 의미가 매우 추상적인데다, 자칫 그 의미를 확대해서 해석할 경우 왠만한 공무원의 행위가 모두 이 범죄에 해당하게 되어 그 결과 공무원의 복지부동을 초래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급적 '직권'과 '남용'의 의미를 한정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되겠다싶은 행위에 대해서만 이 규정을 적용하여야 합니다.
어제 어떤 분이 저에게 프랑스에도 우리의 직권남용죄에 해당하는 범죄가 있는지 물어보시기에, 저도 궁금하여 한번 찾아봤습니다. 프랑스 형법 제432-4조 제1항에 비슷한 내용의 범죄가 있더군요.
Le fait, par une personne dépositaire de l'autorité publique ou chargée d'une mission de service public, agissant dans l'exercice ou à l'occasion de l'exercice de ses fonctions ou de sa mission, d'ordonner ou d'accomplir arbitrairement un acte attentatoire à la liberté individuelle est puni de sept ans d'emprisonnement et de 100,000 euros d'amende.
Le fait, par une personne dépositaire de l'autorité publique ou chargée d'une mission de service public, agissant dans l'exercice ou à l'occasion de l'exercice de ses fonctions ou de sa mission, d'ordonner ou d'accomplir arbitrairement un acte attentatoire à la liberté individuelle est puni de sept ans d'emprisonnement et de 100,000 euros d'amende.
공무원 또는 공공사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자신의 직무나 사무를 수행하는 과정 또는 수행하는 기회에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자의적으로 지시하거나 또는 실행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7년의 구금형 및 100,000유로의 벌금에 처한다.
제가 번역하면서 우리말로는 사실상 같은 의미인 '직무(fonctions)'라는 말과 '사무(mission)'라는 말을 동시에 사용하였는데요, fonctions은 복수이고 mission은 단수입니다. 위 조문에서 공무원은 dépositaire de l'autorité publique인 사람이고 공공사무 담당자는 chargée d'une mission de service public인 사람이라고 한 다음 공무원은 ses fonctions을 수행하고 공공사무 담당자는 sa mission을 수행한다고 한 것으로 보아, 공무원의 (계속적인) 업무는 fonctions으로, 공무원이 아니나 공적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의 (항상 계속적이지는 않은) 업무는 mission이라고 서로 구분하여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생각되구요, 따라서 이를 '직무(fonctions)'와 '사무(mission)'라는 말로 서로 달리 번역해 보았습니다.
이 범죄는 "제2장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죄" 항목 중 "제2절 개인에 대한 공권력 남용(des abus d'autorité)"의 paragraphe 1 "개인의 자유 침해" 부분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범죄입니다. 프랑스 형법에는 각 범죄마다 죄명이 별도로 작명되어 있진 않지만, 이러한 소제목을 참고해볼 때 우리와 마찬가지로 직권남용죄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프랑스에서 이 범죄가 문제된 사건으로 무엇이 있었는지 궁금하여 구글에서 우리말 뉴스를 한번 검색해봤습니다.
- 1995년 10월 24일자 중앙일보 보도 : 프랑스 고위공직자의 비리 사건은 2년여 전부터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한햇동안 알랭 카리뇽 통신장관 겸 그르노블 시장 등 현직 장관 3명이 공금유용 등의 혐의로 전격 해임돼 기소 내지 수사를 받고 있다.
최근 쟁점이 됐던 알랭 쥐페 총리의 아파트 특혜임차 사건은 지난 11일 불기소처분으로 일단 고비를 넘겼지만 여전히 불씨로 남아있다. 이 사건을 검찰에 고발한 파리 납세자보호협회는 다시 파리행정법원에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할 기세여서 쥐페 총리는 조만간 비리 시비에 또 휘말릴 전망이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도 지난 9월 파리행정법원에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돼 있는데다 23일에는 한 변호사가 같은 문제로 기소할 수있는지 여부를 결정해 줄 것을 검찰에 요청, 심기가 갈수록 불편해지고 있다. 시라크 대통령은 파리시장 시절 한 부동산회사에 압력을 가해 아파트를 구입케 한 의혹을 사고 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도 지난 9월 파리행정법원에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돼 있는데다 23일에는 한 변호사가 같은 문제로 기소할 수있는지 여부를 결정해 줄 것을 검찰에 요청, 심기가 갈수록 불편해지고 있다. 시라크 대통령은 파리시장 시절 한 부동산회사에 압력을 가해 아파트를 구입케 한 의혹을 사고 있다.
- 2014년 8월 27일자 VOA 보도 :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프랑스에서 직권남용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라가르드 총재는 재무장관 재직 당시인 지난 2007년 운동용품 업체 ‘아디다스’와 국영 ‘크레디리요네’ 은행 사이에 분쟁 중재 권한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직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당시 중재를 밀어붙여 아디다스의 전 소유주 베르나르 타피에게 4억 유로, 미화 5억 2천 700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혐의입니다.
이에 대해 라가르드 총재는 오늘 (27일)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에 대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라가르드 총재는 또 당시 일 처리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변호사에게 수사에 대해 이의를 제기토록 했다고 말했습니다.
라가르드 총재는 재무장관 재직 당시인 지난 2007년 운동용품 업체 ‘아디다스’와 국영 ‘크레디리요네’ 은행 사이에 분쟁 중재 권한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직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당시 중재를 밀어붙여 아디다스의 전 소유주 베르나르 타피에게 4억 유로, 미화 5억 2천 700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혐의입니다.
이에 대해 라가르드 총재는 오늘 (27일)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에 대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라가르드 총재는 또 당시 일 처리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변호사에게 수사에 대해 이의를 제기토록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구글에서 프랑스 뉴스를 검색해봤습니다. 검색하다 파리 소르본 대학의 공법 교수인 Roseline Letteron의 블로그 "Liberté, Libertés chéries"를 발견했습니다.
이 블로그의 2016년 6월 15일자 "개인의 자유 침해죄(Le délit d'atteinte à la liberté individuelle)" 글 첫머리에 재미있는 말이 있습니다.
"형법 제432-4조 개인의 자유 침해죄는 흔하지 않은 범죄이기 때문에 판례가 별로 없다."
우리도 요새 국정농단 사건 이전에는 직권남용죄 사건이 거의 없었는데, 프랑스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 재미있네요.
위 블로그 글에서는 2016년 5월 24일자 대법원 판결(Cour de cassation chambre criminelle, 24 mai 2016, N° de pourvoi: 15-80848)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2010년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이 프랑스의 한 지방을 방문할 때 그 지방 도지사의 지시를 받은 군인경찰(프랑스는 역사적인 이유로 일부 지방의 치안을 민간경찰이 아닌 군인경찰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2명이 사르코지 반대 집회에 참석하려던 노조원을 법적 근거 없이 4시간 가량 군인경찰 사무실에 사실상 감금하였다가, 그 노조원이 이 군인경찰 2명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사안입니다.
대법원은 대통령 방문장소의 안전을 확보하는 직무를 담당하는 이 군인경찰들이 이러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불법감금행위를 한 것이므로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공무원이 자신의 직권과 관련하여 어떠한 침해행위를 하여야 직권남용죄가 성립되는 것이고, 자신의 직권과 아무런 상관없는 침해행위에 대해서는 다른 범죄가 성립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직권남용죄는 성립하지 않는 것이거든요.
이 사건은, 2010년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이 프랑스의 한 지방을 방문할 때 그 지방 도지사의 지시를 받은 군인경찰(프랑스는 역사적인 이유로 일부 지방의 치안을 민간경찰이 아닌 군인경찰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2명이 사르코지 반대 집회에 참석하려던 노조원을 법적 근거 없이 4시간 가량 군인경찰 사무실에 사실상 감금하였다가, 그 노조원이 이 군인경찰 2명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사안입니다.
대법원은 대통령 방문장소의 안전을 확보하는 직무를 담당하는 이 군인경찰들이 이러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불법감금행위를 한 것이므로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공무원이 자신의 직권과 관련하여 어떠한 침해행위를 하여야 직권남용죄가 성립되는 것이고, 자신의 직권과 아무런 상관없는 침해행위에 대해서는 다른 범죄가 성립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직권남용죄는 성립하지 않는 것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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