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5일 토요일
프랑스 예심판사 제도 뉴스에 대한 코멘트
2024년 10월 15일자 한겨레의 <'사냥하듯 수사하지 말라'는 제도적 명령, 예심판사>라는 기사는, 우리나라 검찰과 비교하면서 프랑스 예심판사 제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사법제도에 관심이 많은 저는 예심판사 제도 소개 부분에 시선이 꽂혔습니다.
프랑스 법원에는 두 종류의 판사가 일하고 있습니다. 재판절차를 담당하는 판사와 예심절차를 담당하는 판사가 각각 있고, 후자가 바로 예심판사(Juge d'instruction)입니다. 예심절차란 사건이 재판절차에 보낼 만한 것인지, 유죄를 받을 만한 증거는 갖춰져 있는지 여부를 재판 전 단계에서 미리 심사한다는 의미인데, 단지 현재 있는 자료만 갖고 그냥 심사만 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증거를 수집하는 활동, 즉 수사와 같은 활동을 한다는 게 특이한 점입니다. 그래서 예심절차를 담당하니 ‘예심판사’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수사를 하기 때문에 ‘수사판사’라고 하기도 하고, 이도저도 애매하니 한데 합쳐서 ‘예심수사판사’라고 하기도 합니다.
예심판사는 형법에 중죄로 정의된 사건이나 검사가 예심판사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예심절차 개시를 청구하는 사건을 수사하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판사가 검사 같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프랑스가 1808년 이 제도를 만든 이후 19세기 내내 전 세계에 수출하였지만, 차츰 이 제도를 포기하는 나라들이 등장하기 시작해 독일은 1974년에, 이탈리아는 1989년에, 오스트리아는 2001년에 예심판사 제도를 폐지하였습니다. 경찰조직과 수사기법의 발전, 예심판사가 더 이상 필요 없을 정도로 신속하고 다양한 제도의 도입, 수사나 기소와 관련하여 검사에게 부여된 새로운 권한들, 피의자의 권리 확대 등이 그 이유라고 합니다. 일제시대에 예심판사 제도가 있던 우리나라도 해방과 더불어 사라진 제도가 되겠습니다.
프랑스에서도 예심판사에의 과도한 권한 집중과 지나친 절차 지연 등을 이유로 예심판사 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1950년대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이미 예심판사 제도를 폐지한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만약 프랑스에서도 예심판사 제도가 폐지되는 경우에는 검사가 그 역할을 대신할 것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한겨레 기사의 일부 내용을 옮겨 예심판사 제도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프랑스에서 예심판사는 수사를 담당하는 수사기관인 동시에 불편부당해야 하는 사법부 소속 법관이기에 ‘객관 의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예심판사의 임무는 유죄를 받아내는 게 아니라 진실을 밝히는 것으로 규정됩니다. 한마디로 ‘사냥하듯 수사하지 말라’는 제도적 명령인 것입니다.
반면 경찰과 같은 일반적 수사기관은 수사 대상자의 대척점에 서서 그를 처벌하는 데 몰두하게 마련입니다. 검찰도 형사재판의 한 당사자로서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는 게 주된 역할이라는 점에서 예심판사와 구별된다는 게 프랑스 제도에 함축돼있는 기본적인 시각입니다. 다만 2016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객관 의무를 검찰에도 부여했습니다.>
2016년 6월 3일 ‘조직범죄, 테러범죄, 이 범죄들과 관련한 금융범죄 대응 강화, 형사절차의 효율성과 보장성 개선을 위한 법률 제2016-731호’를 통해 형사소송법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제39-3조가 신설되었습니다. 이는 검사에게 사법경찰의 수사를 통제할 핵심적 역할이 있음을 재확인하고, 아울러 검사의 수사주재자 역할을 더욱 강조하는 취지의 규정입니다.
‣ 제39-3조
제1항 사법경찰을 지휘하는 영역에서, 검사(검사장)는 사법경찰에게 일반적인 지시나 구체적인 지시를 할 수 있다. 검사(검사장)는 사법경찰에 의해 행해지는 수사절차의 적법성, 사실관계의 본질과 중요도에 따른 수사행위의 비례성, 수사의 방향 및 수사의 충실성 등을 통제한다.
제2항 검사(검사장)는 피해자, 고소인, 피의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수사가 실체적 진실을 증명하는 데 이르고 있는지, 이들에게 불리한 내용이든 유리한 내용이든 수사가 수행되고 있는지 감독한다.
이 법률은 2015년 11월 발생한 파리 테러사건을 계기로 이러한 사건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더욱 효율적인 수사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하는 데 취지를 두고 마련된 것인데, 특히 제39-3조 제2항의 경우는 종전 형사소송법 제81조 제1항에 대응하도록 마련된 규정입니다.
‣ 제81조 제1항 예심판사는 법률에 따라 실체적 진실 증명에 필요한 모든 수사를 한다. 예심판사의 수사대상에는 피의자에게 불리한 사항과 유리한 사항이 포함된다.
즉, 실체적 진실주의를 규정한 제81조 제1항이 예심판사에 관해서만 언급되어 있고 검사에 관해서는 이러한 언급이 별도로 없어, 검사의 임무가 진실을 찾는 것이기보다는 마치 사람을 법정에 들여오기 위한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검사가 소추기관으로서 수사를 통제한다는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서도 예심판사와 동일하게 공정성과 객관성이라는 의무를 준수하여야 하고, 검사의 지위가 수사관과 혼동되어서는 안 되고 수사관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규정에 대해서는 "종전에 사법경찰의 수사에 대해서는 검사뿐만 아니라 예심판사도 통제권한을 갖고 있었으나, 제39-3조는 사법경찰의 수사를 통제할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검사에게 부여한 것이다”, "검사가 헌법에 규정된 사법관으로서 불리한 내용이든 유리한 내용이든 공정한 수사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역할을 부여한 것이다”, “이번 규정은 현행 형사소송법 제81조, 즉 예심판사의 의무에 관한 규정과 대비되는데, 이는 궁극적으로는 정부가 ‘21세기 사법 현대화 법안’을 통해 전체 형사사건의 일부만을 담당하고 있는 예심판사 제도의 폐지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라는 등의 평가가 있어, 장차 예심판사와 검사의 역할에 또다시 어떠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도 합니다.
<예심판사의 또 한가지 독특한 성격은 철저히 ‘단독자’라는 점입니다. 재판을 하는 판사와 마찬가지로, 예심판사는 비록 법원에 속해 있지만 자신이 맡은 사건은 철저히 독립적으로 처리합니다. 이는 위계질서로 짜인 조직에 속한 검사와 다른 점입니다. 조직으로부터의 단절은 수사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장치입니다. 조직적 이해관계에 따라, 또는 상부의 압박에 따라 수사가 왜곡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직을 뒷배로 한 무리한 수사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예심판사를 두고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사람’(발자크)이라는 세평과 ‘불쌍하고 외로운 사람’이라는 자조가 엇갈린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양자 모두 예심판사의 독립성이 갖는 중요성을 짚어낸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 예심판사는 수사업무를 하기에 얼핏 보면 검사와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심판사는 엄연히 '판사'이지 '검사'는 아닙니다. 동등한 지위가 있는 사법기관이라 하더라도 판사와 검사는 확연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판사는 재판독립성 원칙에 따라 판사 한 명 한 명이 독립적으로 재판업무를 할 수 있는 데 반해, 검사는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라 검사 한 명 한 명이 독립적이 아니라 전체 검찰의 의사를 대변하여 검찰업무를 수행합니다. 판사는 누구의 결재를 받지 않고 혼자 결정을 할 수 있는 반면, 검사는 결재제도를 통해 전체 검찰의 승인을 받아 결정을 해야 합니다. 이건 프랑스나 우리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예심판사 제도에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큰 논란을 불러온 게 ‘우트로 사건’이었습니다. 올해 넷플릭스에 이 사건을 다룬 3부작 다큐멘터리 ‘우트로 사건: 프랑스의 악몽’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2000년 발생한 우트로 사건은 무고한 시민들이 아동 성폭행이라는 끔찍한 누명을 쓰고 장기간 구금되는 등 인권침해를 당한 사건이었습니다. 예심판사의 수사 실패가 비판받으면서 예심판사 폐지론까지 불러일으켰습니다.>
<경험이 부족했던 젊은 예심판사는 허위 진술에 속아 18명 모두를 재판에 넘겼습니다. 한 명은 억울함을 호소하다 구속 중 자살했고, 2004년 1심 재판에서 10명 유죄, 7명 무죄라는 엇갈린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허위 진술을 했던 여성이 2005년 2심 재판에서 자신의 진술이 거짓이었음을 실토하면서 사건의 실상이 명확해졌습니다.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았던 6명에 대해 검찰은 무죄를 구형했고,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대통령, 총리, 법무장관 등이 이들에게 사과했고, 국회가 진상조사에 나섰습니다. 예심판사가 주요 사건을 단독으로 처리하다 보니 경험 부족 등으로 인한 오류를 통제할 방법이 없다는 지적에 따라 2007년 프랑스 국회는 3명의 예심판사가 합의체를 구성해 예심을 이끄는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이후 2009년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은 예심판사 제도 폐지를 본격 제안하며 대통령 직속 사법개혁위원회를 만들어 검토하게 했습니다. 위원회는 예심판사를 없애고 모든 수사를 검사에게 맡기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사법관 노조와 대법원, 변호사협회 등의 강한 반대에 부딪쳐 입법이 무산됐습니다.>
<폐지 반대 주장의 주된 근거는 예심판사의 역할을 검찰로 넘긴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검찰이 수사·기소 권한을 모두 갖게 되면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고, 수사에 대한 법원의 통제가 이뤄지기 힘들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검찰이 수사를 전담하고 법원은 영장심사 등을 통해서만 수사를 통제할 경우(지금 우리나라의 상황과 같습니다), 법원이 수사의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한 채 검찰의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진정한 수사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또 행정부 소속으로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검찰은 수사·기소에서 법원 소속의 예심판사만큼 중립성을 지킬 수 없다는 우려도 컸습니다.
예심판사의 권한은 우리 기준으로 볼 때 과도한 면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구속 여부를 직접 결정하던 권한은 폐지됐지만, 여전히 통신 감청 등을 직권으로 할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예심판사가 수사 뒤 기소 여부까지 결정하는 것보다 검사에게 기소 여부 판단을 넘김으로써 수사·기소 권한을 더 명확히 구분할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예심판사 제도는 수사·기소 권한을 검찰과 분점해 상호견제하고 수사의 객관성과 독립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프랑스가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200년 넘은 예심판사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는 우리의 형사사법체계 개혁에서도 중요한 참고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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