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2일 수요일
우리 음식과 와인
저는 와인을 자주 마십니다. 하지만 와인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
근데 이거 카센터 광고 카피인가요, “운전은 한다, 차는 모른다".
집에 근사한 와인셀러도 있습니다. 다만 평소 안에 와인은 고작 두세 병이고 쌀, 과자, 김치 등도 함께 들어 있어서 제대로 폼이 안 날 뿐이지요.
와인도 잘 모르는데 무작정 범위를 넓히긴 싫어, 가까운 대형마트에서 거의 프랑스 와인만 사다 마시고 있습니다. AOC 등급 프랑스 와인 중 거의 최하한대를 달리는, 그래도 1만 원에서 2만 원 정도는 주어야 하는 와인들이 제 타겟이지요.
프랑스 와인만 마시는 이유는, 와인 맛 때문이 아니라 잠시 살았고 둘째 아이를 어렵게 얻었던 프랑스를 추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와인을 마신다기보다는 추억을 마시는 것이지요.
다만 예외가 하나 있는데, 칠레 와인인 Escudo Rojo는 가끔 마시고 있습니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심취한 나머지 주연배우 김명민씨가 즐겨 마신다는 ’강마에 와인’을 저도 가끔 찾는 것이지요.
또 마침, Escudo Rojo는 보르도 그랑크뤼 와인 Chateau Mouton Rothschild를 생산하는 Baron Philippe de Rothschild 가문이 칠레에서 생산하는 와인이고, 그 가문의 Mouton Cadet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중적인 프랑스 와인이어서 왠지 친숙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Mouton Cadet는 깐느 국제영화제의 공식 와인으로 공급되는 와인이기도 하답니다. 둘 다 묵직하게 드라이한 맛을 볼 수 있는 괜찮은 와인들입니다.
제가 어쩌다 한식을 먹는 자리에서 와인을 마실 일이 있으면 곁에 앉은 사람들에게 자주 건네는 말이 있습니다. “왜 우리 음식에는 와인이 어울리지 않는 걸까요?”
저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이유는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인데, 와인의 역할 때문입니다.
대체로 음식이 느끼하고 국을 곁들이지 않는 서양 식탁에서는 와인이 음식의 느끼함을 덜어주고 음식을 씹기 편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우리의 경우는 김치와 국이 그러한 역할을 훌륭히 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그에 더하여 와인까지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치와 어울리는 와인을 찾기가 힘든 것이겠지요.
두 번째 이유는 제가 혼자 생각해낸 것인데요, 바로 식탁의 모양새 때문입니다.
서양 식탁의 경우에는 자기 앞에 먹을 음식을 덜어 놓은 접시 하나를 놓고 그 접시 하나만을 공략해서 식사를 하고 가끔 접시 윗쪽에 놓인 와인잔에 손을 한번씩 뻗을 뿐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의 식탁은 자신의 앞에 놓인 밥그릇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식탁 여기저기에 놓인 반찬그릇들을 향해 젓가락을 사방으로 휘둘러야 합니다. 젓가락의 행동반경이 넓은 탓에 밥그릇 주변에 높이 솟아 있는 와인잔은 여간 신경쓰이는 귀찮은 존재가 아닐 수 없고, 자칫 잘못 건드려 와인잔이 자빠지는 난처한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밥상에 있는 물컵은 잘 넘어뜨리지 않으니, 와인을 마실 때도 차라리 물컵 같은 고도가 낮은 잔을 사용하면 그나마 낫지 않을까 싶네요.
글쎄, 어떠신가요, 제 얘기가 우리 음식에 와인이 어울리지 않는 이유로 그럴듯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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