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10일 월요일
기생충, 오스카
오늘은 프랑스 언론도 '기생충' 일색이네요.
먼저, 르몽드.
다음은, 피가로.
그리고 리베라시옹.
아무튼 봉준호 감독, 배우, 제작자, 스탭 여러분 모두 축하드립니다. 통역하신 분도요. 저도 영화 정말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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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르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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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lemonde.fr/culture/article/2020/02/10/quatre-oscars-dont-celui-du-meilleur-film-le-triomphe-de-parasite_6029030_3246.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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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lefigaro.fr/cinema/ceremonie-oscars/oscars-parasite-le-phenomene-de-bong-joon-ho-bouleverse-l-histoire-du-cinema-20200210] |
그리고 리베라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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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lefigaro.fr/cinema/ceremonie-oscars/oscars-parasite-le-phenomene-de-bong-joon-ho-bouleverse-l-histoire-du-cinema-20200210] |
아무튼 봉준호 감독, 배우, 제작자, 스탭 여러분 모두 축하드립니다. 통역하신 분도요. 저도 영화 정말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2020년 2월 9일 일요일
프랑스 검찰총장의 신년사, 그리고 여전히 검찰 독립 문제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2/09/2020 05:56:00 오후
라벨:
검사
,
검찰
,
검찰총장
,
국가사법재판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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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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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성
,
법무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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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
유럽사법재판소
,
프랑스 사법제도
프랑스 검찰총장 François Molins은 2020년 1월 10일 법무부장관 등이 참석한 대법원 신년식 행사에서 대법원장에 이어 신년사(Discours de Monsieur François Molins Procureur général près la Cour de cassation, Audience de début d’année judiciaire)를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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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courdecassation.fr/venements_23/audiences_solennelles_59/audiences_debut_annee_judiciaire_60/annees_2020_9590/janvier_2020_44203.html] |
Molins 총장은 대법원의 업무와 역할에 대한 의견을 이어가다 마지막에는 검찰 독립에 관한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러합니다.
검사 직무의 의미를 일깨운 2건의 판결이 최근에 있었는데, 이 2건의 판결은 개별 사건에 관한 법무부장관의 검사 지휘권 폐지로 검찰 독립에 기여한 2013년 7월 25일자 법률의 중요성을 상기시켰습니다.
검사 직무의 의미를 일깨운 2건의 판결이 최근에 있었는데, 이 2건의 판결은 개별 사건에 관한 법무부장관의 검사 지휘권 폐지로 검찰 독립에 기여한 2013년 7월 25일자 법률의 중요성을 상기시켰습니다.
우선, 유럽사법재판소(La Cour de justice de l’Union européenne)는 2019년 12월 12일자 판결에서 프랑스 검찰이 유럽체포영장(mandat d’arrêt européen)을 발부하는(émettre) 데 필요한 자격인 독립성 요건을 갖췄다고 평가하였습니다. 재판소는 프랑스 검사들이 유럽체포영장 발부의 필요성과 비례성, 그리고 혐의자에게 유리한 요소와 불리한 요소를 모두 고려하여 객관적으로 권한을 행사할지 여부를 특히 정부와의 관계에서 독립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인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재판소는 프랑스 검찰의 독립성에 대한 의문은 검사들이 공소권을 행사할 임무를 가졌다는 사실이나, 법무부장관이 검사들에게 형사정책에 관한 일반적 지시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나, 검사들이 위계조직 구조에서 상급자의 지휘감독을 받는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하였습니다. 결국 이 2013년 7월 25일자 법률의 이전과 이후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판결은, 국가사법재판소(La Cour de justice de la République)가 2019년 9월 30일 전직 법무부장관의 공무상기밀 누설(violation du secret professionnel) 혐의에 대해 선고한 판결입니다. 재판소는 공무상기밀의 범위와 관리 문제를 통해 법무부장관과 고등검사장, 검사장 사이의 관계를 명확히 하였습니다. 즉, 고등검사장이 법무부장관에게 보고한 개별 사건에 관한 정보들은 공무상기밀로서 공개되지 않아야 하고, 공익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 검사장만이 형사소송법 제11조 제3항에 정한 절차에 따라 공개할 수 있을 뿐이라는 점이 강조되었습니다.
검사에 대한 인사와 징계 절차에서 판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고등사법위원회(Conseil supérieur de la magistrature)의 의견에 구속력을 부여한다는 점 등을 내용으로 한 헌법개정안의 구체화에 따라, 프랑스 검사의 지위에 관한 진보적인 상황들이 매우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해를 시작하는 지금, 저는 현재 진행 중인 사법개혁을 통해 우리 시민들에게 사법기관, 특히 검사가 충실하고, 신속하고, 단순하고, 독립적이고, 용기있고, 인간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기를 간곡히 기원합니다. 그것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사법이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가장 안전한 길이 될 것입니다.
제가 이 블로그의 여러 글에서 소개하였듯이, 여전히 프랑스 검찰에서는 법무부장관으로 대표되는 행정권력으로부터의 검찰의 독립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다만, Molins 총장도 말하듯이 마크롱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헌법개정안에 검사의 지위에 관한 진전된 내용(법무부장관의 검사 인사와 징계 권한 축소)이 포함되어 있는 등 프랑스 검찰의 독립은 이제 거의 완성판에 다다르고 있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그리고 Molins 총장이 말한 2건의 판결에 관한 기사들을 찾아봤습니다.
첫 번째 판결은, 룩셈부르크에 있는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입니다. 유럽체포영장은 유럽연합 역내에서 발생한 범죄에 대해 유럽연합 각국이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마련된 사법제도로서, 범죄지나 범죄자의 국적을 따지지 않고 각 회원국에 체포 권한을 부여하고 필요할 경우 범죄인 인도를 요구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이 판결의 사안에서는 독일, 오스트리아, 리투아니아에서의 범죄와 관련하여 프랑스 검사가 유럽체포영장을 발부하였고, 범죄자들의 변호인들은 2013년 법률의 문구상으로는 개별 사건에 관한 법무부장관의 검사 지휘권이 폐지된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반대라는 주장을 하면서 프랑스 검사가 영장을 발부할만한 독립적 사법기관(autorité judiciaire)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였으나, 유럽사법재판소는 프랑스 검사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참고한 언론기사는 2019년 12월 12일자 Le Figaro지의 'La Cour de justice de l’Union européenne défend le parquet à la française'입니다.
두 번째 판결은, 이 블로그의 2018년 3월 8일자 '프랑스 전직 법무부장관의 공무상기밀 누설 사건과 국가사법재판소(Cour de Justice de la Republique)' 글의 후속 소식입니다. 프랑스 검찰이 하원의원 Thierry Solère에 대해 탈세 등의 혐의로 예비수사를 진행하던 중 2017년 6월 29일 그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하였는데, 압수수색 결과 그 당시 올랑드 정부의 법무부장관이었던 Jean-Jacques Urvoas가 Solère 의원에게 그 예비수사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한 정황이 확인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결국 이 재판에서 Urvoas 전 장관은 그 혐의가 인정되어 집행유예가 부가된 징역 1년의 형과 5,000유로의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참고한 언론기사는 2019년 10월 1일자 Le Figaro지의 'Urvoas condamné à un mois de prison avec sursis'입니다.
2020년 1월 31일 금요일
프랑스, 재판의 독립성 논란
트위터에서 이런 걸 발견했습니다.
2020년 1월 27일자 프랑스 대법원장과 검찰총장 명의의 공동성명(communiqué)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대법원장과 검찰총장은, 사법의 독립성은 민주주의의 본질적 기능을 위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고, 이를 보장할 임무는 대통령에게 있음을 상기하고자 한다.
대법원의 사법관들은 자신의 권한을 전적으로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프랑스 법원과 검찰의 수장들이 뜬금없이 왜 이런 공동성명을 발표했는지 궁금하여 관련 기사를 찾아보았습니다. 역시 1월 27일자 Le Monde지의 기사 "Meurtre de Sarah Halimi : la Cour de cassation rappelle à Macron l’essentielle « indépendance » de la justice(사라 알리미 살인사건 : 대법원은 마크롱 대통령에게 사법의 실질적인 «독립성»을 상기시켰다)"의 내용은 대략 이러합니다.
1월 27일 대법원장 Chantal Arens과 검찰총장 François Molins이 사라 알리미(Sarah Halimi) 살인사건에 관한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 직후 사법의 독립성과 직무의 공정성 보장을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월 23일 이스라엘에서 열린 프랑스 유대인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75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였다가, 프랑스 교민들에게 파리 고등법원의 판결에 대해 절차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2019년 12월 19일 선고된 이 판결은 2017년 파리에서 60대 유대인 사라 알리미가 살해된 사건의 피고인에게 형사책임이 없다고 결정한 것이었다. 범행 당시 대마 흡연으로 갑작스런 착란 상태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 판결에 대해 "이 판결이 큰 분노와 아쉬움을 불러 일으켰음을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사법의 독립을 보장하여야 하기 때문에 저는 여러분에게 솔직한 말씀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 상고되었는데, 프랑스 사법부는 이 사건에서 반유대주의적 경향을 드러냈습니다. 형사책임 유무가 판사의 일이라면, 반유대주의의 문제는 공화국의 일입니다. 결국 판사가 형사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결정하더라도, 절차적인 문제점은 분명히 있습니다"라고 언급하였다.
마크롱 대통령의 이와 같은 발언은 사법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사법관조합의 몇몇 대표자들을 경악시켰다.
사법관조합의 대표자 Katia Dubreuil는 프랑스통신(AFP)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 발언에 대해 분노합니다. 그는 사법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하고 사법적 결정에 간섭할 수 없음에도, 그가 한 행위가 바로 사법적 결정에 간섭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법원 판결에 대해 한 마디 했다고 대법원장과 검찰총장이 발끈하여 대드는 모양새입니다. 프랑스의 이 사례와 비교할 때, 우리는 더 민주적이고 선진적인 사회인가요. 가만히 반성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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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27일자 프랑스 대법원장과 검찰총장 명의의 공동성명(communiqué)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대법원장과 검찰총장은, 사법의 독립성은 민주주의의 본질적 기능을 위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고, 이를 보장할 임무는 대통령에게 있음을 상기하고자 한다.
대법원의 사법관들은 자신의 권한을 전적으로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프랑스 법원과 검찰의 수장들이 뜬금없이 왜 이런 공동성명을 발표했는지 궁금하여 관련 기사를 찾아보았습니다. 역시 1월 27일자 Le Monde지의 기사 "Meurtre de Sarah Halimi : la Cour de cassation rappelle à Macron l’essentielle « indépendance » de la justice(사라 알리미 살인사건 : 대법원은 마크롱 대통령에게 사법의 실질적인 «독립성»을 상기시켰다)"의 내용은 대략 이러합니다.
1월 27일 대법원장 Chantal Arens과 검찰총장 François Molins이 사라 알리미(Sarah Halimi) 살인사건에 관한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 직후 사법의 독립성과 직무의 공정성 보장을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월 23일 이스라엘에서 열린 프랑스 유대인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75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였다가, 프랑스 교민들에게 파리 고등법원의 판결에 대해 절차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2019년 12월 19일 선고된 이 판결은 2017년 파리에서 60대 유대인 사라 알리미가 살해된 사건의 피고인에게 형사책임이 없다고 결정한 것이었다. 범행 당시 대마 흡연으로 갑작스런 착란 상태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 판결에 대해 "이 판결이 큰 분노와 아쉬움을 불러 일으켰음을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사법의 독립을 보장하여야 하기 때문에 저는 여러분에게 솔직한 말씀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 상고되었는데, 프랑스 사법부는 이 사건에서 반유대주의적 경향을 드러냈습니다. 형사책임 유무가 판사의 일이라면, 반유대주의의 문제는 공화국의 일입니다. 결국 판사가 형사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결정하더라도, 절차적인 문제점은 분명히 있습니다"라고 언급하였다.
마크롱 대통령의 이와 같은 발언은 사법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사법관조합의 몇몇 대표자들을 경악시켰다.
사법관조합의 대표자 Katia Dubreuil는 프랑스통신(AFP)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 발언에 대해 분노합니다. 그는 사법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하고 사법적 결정에 간섭할 수 없음에도, 그가 한 행위가 바로 사법적 결정에 간섭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법원 판결에 대해 한 마디 했다고 대법원장과 검찰총장이 발끈하여 대드는 모양새입니다. 프랑스의 이 사례와 비교할 때, 우리는 더 민주적이고 선진적인 사회인가요. 가만히 반성해 봅니다.
2020년 1월 18일 토요일
2020년 프랑스 법원조직 변경 소식
2019년 1월 27일자 "마크롱 정부 사법개혁안에 대한 프랑스 법조인들의 반발" 글에서 프랑스 마크롱 정부의 사법개혁안을 살짝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프랑스도 매번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사법개혁정책을 추진합니다. 이번 사법개혁안의 목표는 "보다 이해하기 쉽고(plus lisible), 보다 접근하기 쉽고(plus accessible), 보다 단순하고(plus simple), 보다 효율적인(plus efficace) 사법"이고, 6가지의 기본 방향을 제시합니다. 그 중 하나가 "사법기관의 효율성 강화 및 사법기관 기능의 조정"인데요, 그에 따른 조치들 중 하나가 2020년 1월 1일부터 시행됩니다. 바로 tribunal d’instance(TI)와 tribunal de grande instance(TGI)의 통합입니다.
프랑스 법무부 홈페이지의 2019년 12월 24일자 "Réforme de l'organisation judiciaire(사법조직의 조정)" 제목의 기사에 의하면, 2020년 1월 1일부터 별도로 존재하던 tribunal d’instance(TI)와 tribunal de grande instance(TGI)가 한 개 기관으로 합쳐집니다.
저는 보통 TI는 '소법원'으로, 'TGI'는 '지방법원'으로 부르곤 하는데요, 우리 법원 조직과 억지로 비교한다면 예컨대 '광주지방법원(TGI) 해남지원(TI)' 정도가 되겠습니다. 파리의 경우에는, 20개의 구 안에 TI가 각각 하나씩 설치되어 있고, 파리 전체를 관할지역으로 하는 파리 TGI가 한 개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번 조치의 내용은, 같은 지역에 위치한 TI와 TGI는 한 개 기관으로 합쳐져 'le tribunal judiciaire(사법법원)'으로 불리게 되고, TGI와 다른 지역에 위치한 TI는 이 'tribunal judiciaire' 내의 한 개 부(chambre)로 바뀌게 되는데 'tribunal de proximité(근접법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고 합니다. 종래 각 지역에 위치한 TI 청사 자체도 그대로 유지되고 그 이름만 바뀌는 것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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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도 매번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사법개혁정책을 추진합니다. 이번 사법개혁안의 목표는 "보다 이해하기 쉽고(plus lisible), 보다 접근하기 쉽고(plus accessible), 보다 단순하고(plus simple), 보다 효율적인(plus efficace) 사법"이고, 6가지의 기본 방향을 제시합니다. 그 중 하나가 "사법기관의 효율성 강화 및 사법기관 기능의 조정"인데요, 그에 따른 조치들 중 하나가 2020년 1월 1일부터 시행됩니다. 바로 tribunal d’instance(TI)와 tribunal de grande instance(TGI)의 통합입니다.
프랑스 법무부 홈페이지의 2019년 12월 24일자 "Réforme de l'organisation judiciaire(사법조직의 조정)" 제목의 기사에 의하면, 2020년 1월 1일부터 별도로 존재하던 tribunal d’instance(TI)와 tribunal de grande instance(TGI)가 한 개 기관으로 합쳐집니다.
저는 보통 TI는 '소법원'으로, 'TGI'는 '지방법원'으로 부르곤 하는데요, 우리 법원 조직과 억지로 비교한다면 예컨대 '광주지방법원(TGI) 해남지원(TI)' 정도가 되겠습니다. 파리의 경우에는, 20개의 구 안에 TI가 각각 하나씩 설치되어 있고, 파리 전체를 관할지역으로 하는 파리 TGI가 한 개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번 조치의 내용은, 같은 지역에 위치한 TI와 TGI는 한 개 기관으로 합쳐져 'le tribunal judiciaire(사법법원)'으로 불리게 되고, TGI와 다른 지역에 위치한 TI는 이 'tribunal judiciaire' 내의 한 개 부(chambre)로 바뀌게 되는데 'tribunal de proximité(근접법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고 합니다. 종래 각 지역에 위치한 TI 청사 자체도 그대로 유지되고 그 이름만 바뀌는 것이구요.
2020년 1월 1일 수요일
시스템과 사람의 열정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조직 내외의 많은 고위급 인사들은 아는 체하며 타이르듯 말한다. '조직은 몇몇 사람의 힘으로 끌려가서는 안 되며 누가 그 자리에 오더라도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의 힘으로 움직여야 한다.' 진리이나 이것만큼 누구나 다 아는 거짓말은 없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특히 특정한 오너(owner)가 없는 대부분의 공조직이나 학교와 같은 조직에서 업무를 추진하거나 정책 방향을 밀어붙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 추진력은 해당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의 열정'에서부터 나온다. 모든 정책 추진에 있어 완성도는 담당자 개개인의 업무 능력에 좌우되고, 이에 대한 최종 책임은 정책 결정권자가 인사권을 행사하면서 완성된다. 모두가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 이유는 그래야만 책임 소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국종, "골든아워1", 131쪽]
시스템이 중요한 건 맞지만, 아무리 훌륭한 시스템이 있더라도 사람의 열정이 없으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고, 시스템이 없더라도 사람의 열정이나마 있다면 가까스로 현상유지라도 하거나 장차 현상개선을 위한 실마리가 되기도 합니다. 결국 일을 하는 것은 사람이지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은 사람이 시동을 걸고 운전을 해야 비로소 작동하는 것이고, 시스템은 그저 사람을 도울 뿐입니다. 그런데 일을 하는 사람에게 열정이 없다면, 그 일은 보나마나인 거겠죠.
그래서 시스템이 물론 중요한 거긴 하지만, 시스템만 강조하는 건 누구나 다 아는 거짓말이라는 겁니다. 시스템이 없어서 그렇다,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런 말들은 자신의 열정 없음을 변명하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핑계에 불과합니다. 개인이 집단 속으로 익명화를 시도하는 격인 거죠.
정말 필요한 노력은 안 하면서 법만 하나 만들어 놓으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다 해결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 역시 누구나 다 아는 거짓말일 것입니다.
"골든아워2"에는 저자가 경험한 세월호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자는 가라앉고 있는 배를 눈 앞에 두고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사고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였다고 합니다. 정작 손을 써야 할 때는 아무 손도 쓰지 못하다, 상황이 종료된 후 비로소 너도나도 나서서 '골든타임' 운운하며 희생양과 공공의 적을 만들어 자신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비겁한 말잔치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을 저자는 뼈아프게 지적합니다.
아무튼 눈 앞의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게 시스템이 없어서인지, 시스템이 있는데도 사람이 열정이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특히 위기상황에서는 더더욱 시스템보다는 사람의 열정이 긴요하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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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이 중요한 건 맞지만, 아무리 훌륭한 시스템이 있더라도 사람의 열정이 없으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고, 시스템이 없더라도 사람의 열정이나마 있다면 가까스로 현상유지라도 하거나 장차 현상개선을 위한 실마리가 되기도 합니다. 결국 일을 하는 것은 사람이지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은 사람이 시동을 걸고 운전을 해야 비로소 작동하는 것이고, 시스템은 그저 사람을 도울 뿐입니다. 그런데 일을 하는 사람에게 열정이 없다면, 그 일은 보나마나인 거겠죠.
그래서 시스템이 물론 중요한 거긴 하지만, 시스템만 강조하는 건 누구나 다 아는 거짓말이라는 겁니다. 시스템이 없어서 그렇다,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런 말들은 자신의 열정 없음을 변명하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핑계에 불과합니다. 개인이 집단 속으로 익명화를 시도하는 격인 거죠.
정말 필요한 노력은 안 하면서 법만 하나 만들어 놓으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다 해결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 역시 누구나 다 아는 거짓말일 것입니다.
"골든아워2"에는 저자가 경험한 세월호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자는 가라앉고 있는 배를 눈 앞에 두고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사고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였다고 합니다. 정작 손을 써야 할 때는 아무 손도 쓰지 못하다, 상황이 종료된 후 비로소 너도나도 나서서 '골든타임' 운운하며 희생양과 공공의 적을 만들어 자신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비겁한 말잔치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을 저자는 뼈아프게 지적합니다.
아무튼 눈 앞의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게 시스템이 없어서인지, 시스템이 있는데도 사람이 열정이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특히 위기상황에서는 더더욱 시스템보다는 사람의 열정이 긴요하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2019년 12월 28일 토요일
프랑스 판결정보 Open Data 소식
이 블로그의 2019년 4월 15일자 "프랑스 대법원과 전국변호사협회의 Open Data 공동성명" 글의 후속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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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2019년 3월 25일 프랑스 대법원과 전국변호사협회가 판결정보 공개 추진을 위해 협력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는 내용입니다.
2019년 12월 13일자 프랑스 법무부 홈페이지의 글 "Projet de décret relatif à l’open data des décisions de justice(판결정보의 오픈 데이터에 관한 총리령 안)"에 의하면, 법무부의 주도로 판결정보 공개를 위한 총리령이 마련되었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법원은 일반적인 사법법원 외에, 행정법원이 별도로 조직되어 있는데, 이번 판결정보 공개정책은 사법법원과 행정법원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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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justice.gouv.fr/le-ministere-de-la-justice-10017/projet-de-decret-relatif-a-lopen-data-des-decisions-de-justice-32835.html] |
이 총리령 안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2019년 12월 2일자 Dalloz actualité 사이트의 "Open data des décisions de justice : le projet de décret(판결정보의 오픈 데이터 : 총리령 안)" 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후일을 기약하기로 하고, 일단 자료 수집 차원에서 요 정도만 적어 놓습니다.
2019년 12월 25일 수요일
[독서일기] 파기환송 (feat. 플리바기닝)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12/25/2019 12:15: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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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소송
이번에 소개하는 책은 마이클 코넬리의 미키 할러 변호사 시리즈 중 세 번째 작품, ‘파기환송(The Reversal)'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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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파기환송'에서 플리바기닝이 활약하는 장면 소개는 요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위 사건의 결말은 정확히 소개되지 않은 채 다른 사건으로 넘어가지만, 할러 변호사가 검사의 제안을 1년형으로 더 깎으면서 플리바기닝에 성공하는 듯한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작품에서 미키 할러 변호사는 총기 상해범죄 피고인을 위한 플리바기닝을 시도하였고, 다음 작품 '다섯 번째 증인'에서는 살인범죄 피고인을 위한 플리바기닝을 시도하였습니다. 이런 사건은 피해자가 존재하는 강력 사건인데요, 우리나라라면 이런 류의 사건에서 플리바기닝을 한다는 것은 최소한 검사 입장에선 쉽지 않아 보입니다. 범인임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 가해자가 수사기관에 잡혀있기까지 한 상황인데, 증거가 좀 부족하다고 해서, 무죄판결 가능성이 좀 있다고 해서 가벼운 죄로만 살짝 처벌하고 만다는 것은 누구도 수긍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중범죄인을 봐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수사기관은 어떻게 해서든 중범죄인일수록 법정에 세우려고 기를 쓰게 마련입니다. 수사기관이라도 그렇게 안 하면 불쌍한 피해자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요?
게다가 이런 류의 강력 사건은, 수사가 아주 어렵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잘하면 범인을 잡아낼 가능성이 꽤 있습니다. 왜냐하면 강력 사건은 눈에 보이는 범행현장이 있고, 확실한 피해자가 있고, 세상이 좋아져서 지문 감식이나 DNA 감정과 같은 과학수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동네 여기저기에 설치되어 있는 CCTV에 범인의 단서가 포착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긴 세월 오리무중이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도 결국에는 범인이 잡히고야 말지 않습니까?
이런 류의 강력 사건 말고, 정작 플리바기닝이 필요하거나 적절한 사건은 따로 있습니다.
우선은, 범죄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자가 없는 사건이 좋겠습니다. 피해자의 피해감정을 해하면서까지 국가가 범인에게 혜택을 부여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론, 수사가 정말로 쉽지 않은 성격의 사건입니다. 예를 들어, 화이트칼라 사건, 기업 비리 사건, 금융경제 사건, 뇌물 사건, 조직범죄 사건, 마약 사건, 테러 사건, 보이스피싱 사건 같은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사건의 특징은, 가담자들이 다수인데 범죄가 은밀히 이루어지는데다 직접적인 피해자가 없고 범죄자나 그 관련자 모두 서로 win-win 하는 성격의 사건이어서 적발이 쉽지 않고, 어쩌다 잡힌 가담자가 나는 잘 모르는 일이라며 입을 닫아버리면 증거수집도 쉽지 않고 더 이상 윗선으로 올라갈 수 없어 주동자들을 일망타진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된다는 점입니다.
즉, 이런 사건은 적발과 증거수집을 위해서는 내부자의 제보나 협조가 필수적입니다. 내부자의 제보나 협조 없이는 그런 범죄를 제대로 잡아내거나 예방하기는 힘듭니다. 내부자의 제보나 협조를 기대하기 힘든 경우에는, 통신감청이나 잠입수사, 함정수사와 같은 극단적인 형태의 수사기법이라도 동원하여야 하나, 이런 수사기법은 우리 법상 인정되지 않거나 매우 제한적으로만 쓸 수 있고, 설령 가능한 경우라도 인권이나 사생활 침해의 위험이 큰 만큼 함부로 휘두를 수도 없습니다. 이런 사건은 직접적인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아 당장은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법질서를 망가뜨리고 사회와 국가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범죄이기 때문에 국가가 반드시 적발하고 처벌해야 하는 사건입니다.
수년 전 우리나라 법무부와 검찰에서 플리바기닝 제도의 도입을 시도하였다가 무산된 적이 있습니다. 법무부나 검찰에서 플리바기닝 제도에 대해 얘기할 때 흔히 있을 수 있는 비판이, 수사의 효율성만을 강조하여 물증 확보에 노력하지 않고 쉽게 피의자의 자백만 받아내려는 수사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형사절차 실무는, 검사에게 범죄의 성립요건에 대해 엄격한 입증책임을 부담시키고 정밀한 입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극히 간단한 수사만 진행한 채 곧바로 재판절차로 직행하여 대부분의 입증활동이 재판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미국의 형사사법제도와 달리, 우리의 형사사법제도는 수사기관이 충분한 수사를 통해 혐의 입증까지 성공한 다음에야 비로소 재판절차로 넘어가게 되고 재판절차는 수사 과정에서 입증된 사실을 재확인하는 정도로 진행됩니다.
따라서 검사는 재판으로 가기 전에 미리 엄격하고 정밀한 입증을 위해 물증을 확보하고 피의자나 참고인들을 조사하여 진술증거를 충분히 확보하려고 노력합니다. 물증이라는 게 말처럼 쉽게 수집되는 게 아니지만, 설령 아무리 많은 물증이 확보되어 있더라도 물증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 범죄가 입증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의 진술을 통해 물증과 범죄와의 연관성까지 밝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앞에서 말한 플리바기닝에 적합한 성격의 사건들은, 범죄를 적발하고 처벌하기 위해서 내부자들의 진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사기관이 엄격하고 정밀한 입증을 위한 수사에 주력하다보니 부작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혹시라도 무죄판결을 받는 불상사를 방지하고 어떻게든 증거 하나라도 더 수집해서 확실하게 유죄판결을 받기 위해, 압수수색을 과도하게 한다거나, 예컨대 휴대폰이나 카카오톡 같은 지극히 사적인 물건을 그야말로 탈탈탈 턴다거나, 자백을 받기 위해 피의자를 강압적 또는 반복적으로 조사한다거나 하는 인권 침해나 사생활 침해 등의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수사기관이 단지 법과 절차를 잘 지켜 수사를 하는 것만으로는 이런 부작용 예방에 부족할 수 있습니다. 수사기관의 선의에만 기대지 않고 이런 부작용을 근본적으로 예방하려면, 수사기관이 수사라는 걸 좀 적당히 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엄격하고 정밀한 입증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런 부담을 좀 덜어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또한, 사법자원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국가재정상 사법자원은 물적으로나 인적으로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 한계 내에서 효율적으로 배분되어야 한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합니다. 수사기관이 엄격하고 정밀한 입증활동에 나설 수 있는 사건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이런 식의 반론이 가능할 겁니다. 국가의 수사기관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범죄자들을 잡아들이고, 다른 한편으론 억울한 사람이 누명을 쓰는 일이 없도록 엄격하고 정밀한 입증활동을 다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이죠.
네, 당연히 지당하고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현실은 바로 보려 하지 않고 애써 눈을 감은 채, 마치 공자님인 양 맹자님인 양 늘 점잖은 목소리로 지당하고 옳은 말을 하는 데만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저는 2019년 하반기 대한민국을 온통 휘어잡은 소동들을 지켜보면서 한 가지 인사이트를 얻었습니다. 바로, '이제 제발 위선 떨지 말자'라는 생각입니다. 사실은 진심도 아니면서 그저 남 듣기 좋으라고 아름답고 번드르르한 말만 늘어놓는 이중성과 위선, 우린 그걸 올해 새삼스레 많이도 목격하지 않았습니까? 이젠 우리도 솔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점잖게 지당하고 옳은 말만 하기에 앞서, 과연 그게 실현은 가능한 얘기인지, 과연 우리 앞에 놓인 실상과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똑바로 보고 제대로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제 우리는 수사기관이 전지전능하지 않은 존재라는 현실을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수사기관이 행사하는 수사권이 뭔가 대단한 권한이라고 생각하고, 이 요술방망이 같은 권한으로 해결 못하는 일이 없고 못 밝히는 진실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형사법 만능주의 국가가 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회적 논쟁과 문제점은 죄다 형사절차 안에 집합시켜 놓고 형사법에 따른 해결을 기다립니다. 사회적 논쟁과 문제점의 직접당사자들은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해결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그 일의 당사자도 아니고 문외한에 불과한 판검사의 손에 해결을 맡겨버리고는 그 처분만 하염없이 기다리곤 합니다. 그러고도 정작 그 결과에는 승복하지 않고 각 진영별로 아전인수격 주장만 일삼습니다.
그러나 "조사하면 다 나와", 이런 말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조사한다고 속 시원하게 알고 싶은 게 다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몇 사람 사이에 있었던 과거의 어떤 사건을 제3자인 수사기관이 증거라는 형식으로 완벽하게 재구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즉, 수사기관은 제아무리 애를 써도 누구나 수긍하는 진실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수사기관의 능력이 모자라서이기도 하고, 수사라는 행위만으로는 진실을 밝히는 데 턱없이 부족해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언제나 진실을 발견하는 게 가능함을 전제로, 수사기관의 도리와 의무를 말해서는 곤란합니다. 이는 세상의 모든 범죄를 빠짐없이 적발하겠다고 모든 장소에 빠짐없이 CCTV를 설치하자거나 모든 사람들의 휴대폰과 카카오톡을 수사기관이 마음껏 보게 하자는 게 전혀 말이 안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더구나 갈수록 수사환경은 열악해지고 있습니다. 범죄는 고도로 지능적이고 은밀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수사기관이 범죄의 단서조차 찾기 쉽지 않고, 범죄자들은 묵비권을 행사하며 입을 닫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고, 참고인들은 괜한 불이익이라도 당할까 싶어 남의 사건에 개입하기 꺼려합니다. 범죄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자가 있는 사건의 경우에는 피해자의 진술이라도 확보하여 어찌어찌 수사를 진행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건은 사람의 진술을 확보하기 힘들어 수사 진행 자체가 곤란한 경우도 많습니다.
사법선진국 수사기관의 최신 수사기법과 제도를 우리나라에도 수입하려면 온갖 반대론에 맞닥뜨리게 되어, 아직까지 우리나라 수사기관은 2차 세계대전 때 사용하던 구식 무기로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당연한 현실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수사기관의 권한을 늘리고 힘을 키워주자는 주장이 아닙니다. 그런 해결책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수사기관의 과욕에 따른 부작용을 조장하는 위험한 주장일 수 있습니다. 단지, 수사기관이 모든 범죄를 엄격하고 정밀하게 입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수사기관의 엄격하고 정밀한 입증이 가능하고, 수사기관이 언제나 진실을 발견하는 게 가능하더라도, 그 때문에 야기될 수 있는 인권 침해 등의 부작용을 예방한다는 더 중요한 가치를 위해서, 이제 수사기관의 도리와 의무에 대해 현실과는 유리된, 그저 지당하고 옳아 보이기만 한 말은 더 이상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이미 그런 현실을 인정하고 있고, 이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바로 플리바기닝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플리바기닝 제도의 취지는 수사기관의 한계를 인정하고 수사기관의 수사를 줄이자는 것으로, 바로 수사기관의 입증이 부족할 수밖에 없어 생기는 빈 틈의 존재를 인정하되 그 빈 틈을 그냥 방치해두지만 말고 어떻게든 뭐라도 메워놓자는 게 그 취지라고 생각합니다. 플리바기닝 제도는 수사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 맞습니다. 사회적으로 필요성이 있으면 수사편의주의적 발상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수사편의주의를 위해 플리바기닝을 하자는데 이를 수사편의주의라고 비난하는 것은 동어반복에 불과하고 적절한 비난이 아닙니다.
일본의 경우 미국의 제도를 참고하여 변형된 형태의 플리바기닝 제도를 2016년에 도입하였습니다. 그 도입 이유가 재미있는데, 갈수록 진술증거의 수집이 곤란해지고 있는 수사환경을 고려하여 조사의 비중을 줄이고 사건 관련자들로부터 자발적인 진술을 이끌어내기 위한 새로운 수사방법으로서 이 플리바기닝 제도를 도입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역시 수사기관의 한계를 인정하고 현실을 수긍하는 데서 이끌어낸 적절한 대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도 2004년부터 변형된 형태의 플리바기닝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인데, 최근인 2019년 9월부터는 종전의 배심재판 대상사건을 축소해서 시민배심원들의 사법절차 참여를 점차 줄여가고 있습니다. 이는 배심재판으로 야기될 수 있는 형사사법절차의 지연을 방지하여 신속한 재판 진행과 사법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대책인데, '시민의 사법참여'니 '사법의 민주화' 같은 지고지순한 말만 앞세워 배심재판 제도를 숭배대상으로 삼으려 하지 않고, 위선 떨지 않으면서 그리고 실상을 인정하면서 과감하게 문제점을 고쳐나가겠다는 프랑스 국민들의 실용적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사례입니다.
결론을 정리하면, 우리나라에도 플리바기닝 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저는 우리 국민정서법상 100년 안에는 우리나라에 이 제도가 도입되는 일이 절대 없을 거라 예상합니다.
제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이제 우리 솔직해지고 제발 위선 떨지 말자는 것입니다. 모자라고 부족한 현실은 현실 그대로 인정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나갈 수 있습니다. 실상은 외면한 채, 하나마나 한, 그럴듯하기만 한, 그저 번드르르하기만 한 말만 해서는 아무런 해결책도 마련할 수 없습니다.
왜 미국이 스스로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자인하면서도 플리바기닝 제도를 그렇게 오랜 세월 운영하고 있는지, 왜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은 지극히 미국스러운 제도인 플리바기닝 제도를 굳이 자국에 도입한 것인지, 우리는 그 이유를 솔직하게 들여다보면서 우리의 문제점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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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국내에 번역되어 출간된 미키 할러 변호사 시리즈는 모두 4권입니다. 저작 순서로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탄환의 심판', '파기환송', '다섯 번째 증인', 이렇게 됩니다. 마지막 작품인 'The Gods of Guilt'도 조만간 번역되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 흥미로운 시리즈를 죽 읽어가면서, 저는 미국의 형사사법제도 중 특히 한 가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바로 '플리바기닝(plea bargaining)'이라는 제도입니다.
앞서 '다섯 번째 증인' 편에서도 소개하였듯이, 우리말로는 유죄인정 합의, 유죄답변 거래, 유죄답변 협상 등으로 다양하게 부르는 플리바기닝 절차는, 피의자나 피고인이 현재 자신이 받고 있는 혐의보다 가벼운 내용의 혐의를 인정하고 그 가벼운 혐의에 해당하는 처벌만 받기로 하고 정식재판 없이 사건을 종결시키는 검사와 피의자 또는 피고인 사이의 공적 계약을 말합니다.
미국에서 플리바기닝 제도를 도입한 취지는, 형사사건을 효율적으로 처리함으로써 사법자원을 절약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플리바기닝은 재판이 끝나기 전이라면 기소 전이든 재판 중이든 언제든 가능합니다. 다만, 수사 초기에 협상이 이루어진다면 검사 입장에선 수사와 재판에 들이는 수고를 대폭 절약할 수 있어 유리합니다. 만약 피고인이 끝까지 자신에게 죄가 없음을 주장해서 결국 정식재판인 배심재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면, 배심원 선정부터 시작해서 여러 날이 걸리는 이 재판절차를 위해 사법기관은 막대한 노력과 자원을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이죠.
같은 취지로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도 미국과 비슷하거나 다소 변형된 형태의 플리바기닝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미키 할러 변호사 시리즈에는 플리바기닝이 아주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형사사건의 시작은 바로 플리바기닝을 할지 말지 여부에 대한 검사와 변호인의 머리싸움입니다. 보통은 전세가 불리한 편에서 먼저 플리바기닝을 시도합니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건에서 플리바기닝이 검토되고 있고, 실제로도 미국에서는 이 절차를 통해 90퍼센트 이상의 형사사건이 정식재판 없이 종결된다고 하는데, 이처럼 플리바기닝은 미국 형사사법절차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제도입니다.
앞서 '다섯 번째 증인' 편에서도 소개하였듯이, 우리말로는 유죄인정 합의, 유죄답변 거래, 유죄답변 협상 등으로 다양하게 부르는 플리바기닝 절차는, 피의자나 피고인이 현재 자신이 받고 있는 혐의보다 가벼운 내용의 혐의를 인정하고 그 가벼운 혐의에 해당하는 처벌만 받기로 하고 정식재판 없이 사건을 종결시키는 검사와 피의자 또는 피고인 사이의 공적 계약을 말합니다.
미국에서 플리바기닝 제도를 도입한 취지는, 형사사건을 효율적으로 처리함으로써 사법자원을 절약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플리바기닝은 재판이 끝나기 전이라면 기소 전이든 재판 중이든 언제든 가능합니다. 다만, 수사 초기에 협상이 이루어진다면 검사 입장에선 수사와 재판에 들이는 수고를 대폭 절약할 수 있어 유리합니다. 만약 피고인이 끝까지 자신에게 죄가 없음을 주장해서 결국 정식재판인 배심재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면, 배심원 선정부터 시작해서 여러 날이 걸리는 이 재판절차를 위해 사법기관은 막대한 노력과 자원을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이죠.
같은 취지로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도 미국과 비슷하거나 다소 변형된 형태의 플리바기닝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미키 할러 변호사 시리즈에는 플리바기닝이 아주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형사사건의 시작은 바로 플리바기닝을 할지 말지 여부에 대한 검사와 변호인의 머리싸움입니다. 보통은 전세가 불리한 편에서 먼저 플리바기닝을 시도합니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건에서 플리바기닝이 검토되고 있고, 실제로도 미국에서는 이 절차를 통해 90퍼센트 이상의 형사사건이 정식재판 없이 종결된다고 하는데, 이처럼 플리바기닝은 미국 형사사법절차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제도입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실체적 진실 발견과 정의 구현이 최고이념인 형사사법절차에서 죄와 벌을 놓고 '협상'이니 '거래'니 하는 단어를 입에 담는 것 자체에 대한 극심한 알레르기 반응이 존재합니다. 즉, '국민정서법'상 용납되기 매우 힘든 제도입니다. 단언컨대, 100년 안에는 우리나라에 이 제도가 도입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왜 이 제도가 그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이 작품을 통해 해답을 한번 찾아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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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03쪽] 형사재판소 건물 13층, 제124호 법정 옆에 있는 유치장에는 내 의뢰인 카시우스 클레이 몽고메리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
......
"...... 그리고 우린 지금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잖아. 오늘 심리는 잠깐이면 끝날 거야. 그것도 아주 기분 좋게. 재판 날짜만 정하면 그걸로 끝이니까. 그렇지만 우리의 검사 헬먼 씨는 자기가 제안한 협상안이 오늘까지만 유효하다고 말한다는 거지. 만약 우리가 샴페인 판사에게 재판에 임할 준비가 됐다고 오늘 말한다면, 그 거래는 없던 일이 되고, 우리는 재판으로 가는 거야. 어때,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겠어?"
---> 할러 변호사가 법원에 가서 구속되어 있는 의뢰인을 만나고 있습니다. 검사가 제안한 플리바기닝 안에 대해 의뢰인의 의사를 물어보고 있네요. 좀 있다 바로 법정에 나가 판사 앞에 서야 하는데, 법정에 나가기 전에 검사가 제안한 안을 받아들이고 절차를 여기서 끝낼지 아니면 검사의 제안을 거부하고 판사에게 정식재판을 위한 날짜를 잡아달라고 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103-104쪽] 몽고메리가 철창 사이에 고개를 기댔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입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47살이고 살아오면서 이미 9년이라는 세월을 감방 안에서 보냈다. 그리고 지금은 무장 강도죄와 신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 폭행죄로 기소되어 나락으로 추락할 위기에 놓여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몽고메리는 로디아 가든스 빈민 주택단지 내에 있는,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물건을 구할 수 있는 마약 시장을 찾아가 구매자 행세를 했다. 그렇지만 돈을 지불하는 대신 총을 빼들어 마약상이 가진 약과 현찰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그러자 마약상이 그의 총을 빼앗으려 하다가 총이 발사되고 만 것이다. 갱단의 일원이기도 한 다넬 힉스라는 그 마약상은 현재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으며, 앞으로 남은 평생 동안 그 위에서 지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 의뢰인 몽고메리의 혐의는 마약을 빼앗기 위해 마약상을 총으로 쏘고 불구자로 만든 것이로군요. 마약은 해야겠는데, 돈이 없어서 총을 가지고 갔던 모양입니다.
경찰의 수사결과에 의하면, 의뢰인이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일부러 총을 쏜 건 아니고 총으로 피해자를 협박만 하고 있었는데 이 총을 빼앗으려는 피해자와 실랑이를 벌이다 우발적으로 총이 발사된 것이라고 합니다. 비록 일부러 쏜 건 아니라도, 총으로 피해자를 위협함으로써 먼저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니 단순한 과실범은 아니고 그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겠습니다.
[104쪽] 빈민 주택단지가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그곳 주민들은 아무도 수사에 협조하지 않았다. 심지어 피해자조차도 자신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갱단 동료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해주리라 믿었기에 침묵 쪽을 선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찌 됐건 경찰은 수사를 진행했다. 주택단지 입구에 설치된 비디오카메라를 판독해 내 의뢰인의 차량을 확인해서 숨겨둔 차량을 찾아냈고, 차량 문짝에서 피해자의 혈흔을 발견했다.
---> 그럼 그와 같은 혐의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경찰과 검사가 현재까지 확보한 증거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가장 중요한 증거는 피해자의 진술이 될 텐데, 피해자는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당시 상황이 잘 기억나지만 곧이곧대로 말할 수가 없는 입장입니다. 스스로 마약을 판매한 범죄를 자인하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는 갱단의 일원입니다. 자칫 곧이곧대로 진술했다가 자신의 갱단에까지 피해를 입히게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입은 피해는 갱단 동료들이 보복이라는 방식으로 해결해줄 것이기 때문에 굳이 국가에서 제공하는 형사사법 서비스에 기댈 필요도 없습니다. 이런 부류들에겐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깝고 편리한 것이죠. 혹시 피해자가 나중에 마음을 바꿔먹어 사실 그대로 말을 하게 되더라도, 이미 '진술의 일관성'에 흠이 생겨버린 상태여서 진실한 진술도 신빙성 없는 진술로 치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튼 피해자가 이 모양이니,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가 수사기관의 손에는 없는 겁니다.
다음으로, 범행이 발생할 무렵 범행장소 부근을 지나가는 몽고메리의 차가 촬영된 비디오카메라 영상, 그리고 몽고메리의 차에서 발견된 피해자의 혈흔이라는 두 개의 증거가 확보되어 있습니다. 몽고메리가 죄를 저질렀음을 추정할 수 있는 좋은 증거이지만, 이것만 가지고 몽고메리가 피해자를 총으로 쐈다는 사실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피해자가 제대로 말을 하지 않으면, 이를 틈타 몽고메리가 둘러댈 수 있는 변명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입니다. 피해자가 말을 하지 않으니, 그 사이를 연결할 뭔가 다른 증거가 더 필요합니다.
[104쪽] 그다지 강력한 증거는 아니었지만, 우리 쪽에서 검찰의 협상을 끌어내기에는 충분했다. 만약 몽고메리가 검찰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그는 3년 형을 선고받고 대략 2년 6개월 정도 복역하면 풀려날 수 있었다. 만약 그가 도박하기로 결정해서 재판 마지막에 유죄판결을 받게 된다면, 최소한 15년은 꼼짝없이 감방에서 썩게 될 터였다. GBI(신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 폭행죄)와 강도행위 중에 무기를 사용했다는 혐의가 합해졌으니 거의 구원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나는 주디스 샴페인 판사가 총기 범죄에 전혀 관대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증거가 뭔가 좀 더 있을 줄 알았더니, 그게 전부로군요. 현재까지의 증거만으로는 유죄판결을 받기에 부족합니다. 몽고메리 차에 묻은 피해자의 혈흔과 몽고메리가 피해자를 쏜 사실을 바로 연결할 연결고리가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겨우 이 상태에서 재판으로 가려면 검사의 입장에선 피해자의 입을 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피해자의 입을 열지 않으면 유죄판결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피해자가 계속해서 입을 닫고 있겠다면 큰 문제입니다. 사람의 입을, 그것도 피해자의 입을 강제로 열게 할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학수사'나 '물적 증거'와 같이 '사람'이 배제된 수사가 능사는 아닙니다. 반드시 형사재판에는 '인적 증거', 즉 '사람의 진술'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수사기관은 사람으로부터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증거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검사가 먼저 할러 변호사에게 플리바기닝을 제안한 것입니다. 원래는 최소 15년의 형을 받아야 할 사건을 3년 형으로 줄여 준다고 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총을 쏜 행위를 고의범이 아닌 과실범으로 의율해 주겠다는 제안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반대로, 변호인은 유리한 입장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변호인의 입장에서도 검사가 가진 증거가 저게 다라고 해서 무죄판결을 장담할 수만은 없습니다. 총의 발사경위에 대해 몽고메리가 할 수 있는 변명이 아무리 많더라도, 배심원들을 자기 편으로 확 끌어올 만한 그럴듯한 변명이 과연 얼마나 되겠어요. 몽고메리가 마약상을 만나러 가는데 왜 총을 가지고 간 것이며, 왜 하필 그의 차에 피해자의 혈흔이 묻게 된 것이며 등등, 깔끔한 설명이 곤란한 부분이 많습니다. 게다가 그는 전과도 많습니다. 배심원들에게 신뢰를 주기 힘든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배심원들은 확실한 증거가 없더라도 이런저런 정황만으로 몽고메리가 유죄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 위험부담이 있으니, 할러 변호사도 15년과 3년 사이에서 고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이렇게 검사도 변호인도 자신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팽팽한 상황이니, 협상과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각자 자신의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냥 그쪽으로 가서 유죄를 받든 무죄를 받든 하면 그만인 거죠. 플리바기닝이 그렇게 많이 이용된다는 것은, 그만큼 이렇게 팽팽한 상황에 있는 사건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사건이란 게 생각만큼 그렇게 쉽게 수사가 이루어지고 쉽게 증거가 수집되고 쉽게 유죄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형사소송의 대원칙인 '엄격한 증명의 원칙'과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 등의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105쪽] 나는 의뢰인에게 검찰의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권유했다. 내게는 쉬운 결정이었지만, 사실 형을 살게 될 사람은 내가 아니지 않은가. 몽고메리는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
......
"자네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군." 내가 말했다. "우리에겐 상당히 좋은 제안이야. 검사가 이 건을 재판까지 끌고 가고 싶어하지 않아. 법정에 서고 싶어하지 않는 피해자를 굳이 거기다 끌어다 놓고 싶지 않은 거야. 그랬다가는 도움이 아니라 오히려 해를 입히는 꼴이 될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최대한 선심을 베풀어서 가장 짧은 형기를 제시하는 거라고. 하지만 모든 건 자네에게 달렸어. 자네가 결정해야 해. 앞으로 2주 정도 시간이 있고, 그 이후로는 끝이야. 어쨌든 몇 분만 있으면 법정에 나가야 해."
---> 할러 변호사가 검사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나은 전략이라고 의뢰인을 설득합니다. 결정은 의뢰인이 하는 것이지만, 변호인 자신의 의견도 의뢰인에게 솔직하게 전달합니다.
할러 변호사의 말대로 검사는 피해자를 법정에 증인으로 세우고 싶어하지 않을 겁니다. 피해자가 제대로 진술을 하려 하지 않는 건 둘째치더라도, 갱단에 몸담고 있는 데서 연상할 수 있는 피해자의 우락부락한 인상이라든가 몸 여기저기에 문신들이 또아리 틀고 있는 이미지라든가, 배심원들에게 점수 딸만한 꺼리가 하나도 없어서이겠죠. '메시지보다 메신저'를 고려해볼 때 유리할 게 없는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105-106쪽] "...... 자네가 선택해. 3년을 받든가, 아니면 재판으로 가는 거야. 그리고 전에도 말했듯이 재판으로 가도 뭔가 방법이 있기는 할 거야. 검찰 측에서 무기를 찾아내지도 못했고, 피해자는 진술을 거부하고 있잖아. 하지만 여전히 자네 차에 묻어있는 혈흔이 문제야. 그리고 검사 측은 총격 직후에 자네가 차를 운전해서 로디아를 빠져나가는 비디오 영상도 가지고 있잖아. 물론 자네가 얘기했던 대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고 배심원을 설득할 수도 있겠지. 정당방위였다고. 거기에 약을 사러 갔었는데, 그가 자네 돈뭉치를 보고는 그걸 빼앗으려다가 그렇게 됐다고 말이지. 어쩌면 배심원단도 그 말을 믿을지 몰라. 특히 피해자가 증언을 안 하려 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설사 그가 증언을 하더라도 자네 말을 더 믿을지도 모르지. 일단 변론을 시작하면 난 그가 수도 없이 묵비권을 행사하도록 만들 작정이거든. 그럼 배심원들은 그가 증언대에 올라서기도 전에 그를 마치 알 카포네라도 되는 듯이 생각하게 될 거라고."
---> 이제 보니, 범행에 사용된 총도 몽고메리가 이미 어딘가에 버려버린 모양이군요. 총도 없으니 정확한 발사경위를 확인하기도 더 어려워, 몽고메리에게 매우 유리한 상황이겠습니다.
그리고 몽고메리는 정당방위를 주장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일응 해볼 수는 있는 변명 같기는 합니다만, 그 변명이 그럴듯해 보이려면 그 당시 피해자가 탐낼 만한 돈뭉치를 몽고메리가 갖고 있었음을 몽고메리가 입증하여야 할 텐데요. 돈도 전혀 없어서 총으로 협박해 마약을 빼앗으려던 사람이 과연 자신에게 돈뭉치가 있었음을 입증할 수 있을까요?
아무튼 할러 변호사의 탁월한 변론실력을 감안한다면, 정식재판으로 가도 해볼만한 싸움이 될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만......
[106쪽] "검사가 지금 자네에게 제안하는 형량과 만약 우리가 재판에서 졌을 때 선고받게 될 형량 사이에 틈이 너무 벌어져 있다고. 최소한 12년 정도는 예상하고 있어야 해, 캐시. 그 기간을 도박에 걸기에는 너무 길잖아."
---> 아무래도 실패했을 경우의 위험부담이 너무 큽니다. 피고인의 위험부담 뿐만 아니라, 실패했을 경우 변호인이 입게될 데미지도 어마어마할 겁니다.
게다가 빨리 결정을 못하고 어정쩡하게 정식재판으로 가기로 했다가, 그 사이에 어디선가 몽고메리의 총이라도 발견되어 그에게 불리한 상황이 초래될 위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빨리 결정을 내리는 게 유리할 수 있습니다.
-------------------------------------------
......
"...... 그리고 우린 지금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잖아. 오늘 심리는 잠깐이면 끝날 거야. 그것도 아주 기분 좋게. 재판 날짜만 정하면 그걸로 끝이니까. 그렇지만 우리의 검사 헬먼 씨는 자기가 제안한 협상안이 오늘까지만 유효하다고 말한다는 거지. 만약 우리가 샴페인 판사에게 재판에 임할 준비가 됐다고 오늘 말한다면, 그 거래는 없던 일이 되고, 우리는 재판으로 가는 거야. 어때,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겠어?"
---> 할러 변호사가 법원에 가서 구속되어 있는 의뢰인을 만나고 있습니다. 검사가 제안한 플리바기닝 안에 대해 의뢰인의 의사를 물어보고 있네요. 좀 있다 바로 법정에 나가 판사 앞에 서야 하는데, 법정에 나가기 전에 검사가 제안한 안을 받아들이고 절차를 여기서 끝낼지 아니면 검사의 제안을 거부하고 판사에게 정식재판을 위한 날짜를 잡아달라고 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103-104쪽] 몽고메리가 철창 사이에 고개를 기댔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입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47살이고 살아오면서 이미 9년이라는 세월을 감방 안에서 보냈다. 그리고 지금은 무장 강도죄와 신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 폭행죄로 기소되어 나락으로 추락할 위기에 놓여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몽고메리는 로디아 가든스 빈민 주택단지 내에 있는,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물건을 구할 수 있는 마약 시장을 찾아가 구매자 행세를 했다. 그렇지만 돈을 지불하는 대신 총을 빼들어 마약상이 가진 약과 현찰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그러자 마약상이 그의 총을 빼앗으려 하다가 총이 발사되고 만 것이다. 갱단의 일원이기도 한 다넬 힉스라는 그 마약상은 현재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으며, 앞으로 남은 평생 동안 그 위에서 지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 의뢰인 몽고메리의 혐의는 마약을 빼앗기 위해 마약상을 총으로 쏘고 불구자로 만든 것이로군요. 마약은 해야겠는데, 돈이 없어서 총을 가지고 갔던 모양입니다.
경찰의 수사결과에 의하면, 의뢰인이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일부러 총을 쏜 건 아니고 총으로 피해자를 협박만 하고 있었는데 이 총을 빼앗으려는 피해자와 실랑이를 벌이다 우발적으로 총이 발사된 것이라고 합니다. 비록 일부러 쏜 건 아니라도, 총으로 피해자를 위협함으로써 먼저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니 단순한 과실범은 아니고 그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겠습니다.
[104쪽] 빈민 주택단지가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그곳 주민들은 아무도 수사에 협조하지 않았다. 심지어 피해자조차도 자신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갱단 동료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해주리라 믿었기에 침묵 쪽을 선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찌 됐건 경찰은 수사를 진행했다. 주택단지 입구에 설치된 비디오카메라를 판독해 내 의뢰인의 차량을 확인해서 숨겨둔 차량을 찾아냈고, 차량 문짝에서 피해자의 혈흔을 발견했다.
---> 그럼 그와 같은 혐의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경찰과 검사가 현재까지 확보한 증거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가장 중요한 증거는 피해자의 진술이 될 텐데, 피해자는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당시 상황이 잘 기억나지만 곧이곧대로 말할 수가 없는 입장입니다. 스스로 마약을 판매한 범죄를 자인하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는 갱단의 일원입니다. 자칫 곧이곧대로 진술했다가 자신의 갱단에까지 피해를 입히게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입은 피해는 갱단 동료들이 보복이라는 방식으로 해결해줄 것이기 때문에 굳이 국가에서 제공하는 형사사법 서비스에 기댈 필요도 없습니다. 이런 부류들에겐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깝고 편리한 것이죠. 혹시 피해자가 나중에 마음을 바꿔먹어 사실 그대로 말을 하게 되더라도, 이미 '진술의 일관성'에 흠이 생겨버린 상태여서 진실한 진술도 신빙성 없는 진술로 치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튼 피해자가 이 모양이니,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가 수사기관의 손에는 없는 겁니다.
다음으로, 범행이 발생할 무렵 범행장소 부근을 지나가는 몽고메리의 차가 촬영된 비디오카메라 영상, 그리고 몽고메리의 차에서 발견된 피해자의 혈흔이라는 두 개의 증거가 확보되어 있습니다. 몽고메리가 죄를 저질렀음을 추정할 수 있는 좋은 증거이지만, 이것만 가지고 몽고메리가 피해자를 총으로 쐈다는 사실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피해자가 제대로 말을 하지 않으면, 이를 틈타 몽고메리가 둘러댈 수 있는 변명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입니다. 피해자가 말을 하지 않으니, 그 사이를 연결할 뭔가 다른 증거가 더 필요합니다.
[104쪽] 그다지 강력한 증거는 아니었지만, 우리 쪽에서 검찰의 협상을 끌어내기에는 충분했다. 만약 몽고메리가 검찰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그는 3년 형을 선고받고 대략 2년 6개월 정도 복역하면 풀려날 수 있었다. 만약 그가 도박하기로 결정해서 재판 마지막에 유죄판결을 받게 된다면, 최소한 15년은 꼼짝없이 감방에서 썩게 될 터였다. GBI(신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 폭행죄)와 강도행위 중에 무기를 사용했다는 혐의가 합해졌으니 거의 구원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나는 주디스 샴페인 판사가 총기 범죄에 전혀 관대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증거가 뭔가 좀 더 있을 줄 알았더니, 그게 전부로군요. 현재까지의 증거만으로는 유죄판결을 받기에 부족합니다. 몽고메리 차에 묻은 피해자의 혈흔과 몽고메리가 피해자를 쏜 사실을 바로 연결할 연결고리가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겨우 이 상태에서 재판으로 가려면 검사의 입장에선 피해자의 입을 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피해자의 입을 열지 않으면 유죄판결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피해자가 계속해서 입을 닫고 있겠다면 큰 문제입니다. 사람의 입을, 그것도 피해자의 입을 강제로 열게 할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학수사'나 '물적 증거'와 같이 '사람'이 배제된 수사가 능사는 아닙니다. 반드시 형사재판에는 '인적 증거', 즉 '사람의 진술'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수사기관은 사람으로부터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증거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검사가 먼저 할러 변호사에게 플리바기닝을 제안한 것입니다. 원래는 최소 15년의 형을 받아야 할 사건을 3년 형으로 줄여 준다고 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총을 쏜 행위를 고의범이 아닌 과실범으로 의율해 주겠다는 제안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반대로, 변호인은 유리한 입장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변호인의 입장에서도 검사가 가진 증거가 저게 다라고 해서 무죄판결을 장담할 수만은 없습니다. 총의 발사경위에 대해 몽고메리가 할 수 있는 변명이 아무리 많더라도, 배심원들을 자기 편으로 확 끌어올 만한 그럴듯한 변명이 과연 얼마나 되겠어요. 몽고메리가 마약상을 만나러 가는데 왜 총을 가지고 간 것이며, 왜 하필 그의 차에 피해자의 혈흔이 묻게 된 것이며 등등, 깔끔한 설명이 곤란한 부분이 많습니다. 게다가 그는 전과도 많습니다. 배심원들에게 신뢰를 주기 힘든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배심원들은 확실한 증거가 없더라도 이런저런 정황만으로 몽고메리가 유죄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 위험부담이 있으니, 할러 변호사도 15년과 3년 사이에서 고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이렇게 검사도 변호인도 자신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팽팽한 상황이니, 협상과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각자 자신의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냥 그쪽으로 가서 유죄를 받든 무죄를 받든 하면 그만인 거죠. 플리바기닝이 그렇게 많이 이용된다는 것은, 그만큼 이렇게 팽팽한 상황에 있는 사건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사건이란 게 생각만큼 그렇게 쉽게 수사가 이루어지고 쉽게 증거가 수집되고 쉽게 유죄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형사소송의 대원칙인 '엄격한 증명의 원칙'과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 등의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105쪽] 나는 의뢰인에게 검찰의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권유했다. 내게는 쉬운 결정이었지만, 사실 형을 살게 될 사람은 내가 아니지 않은가. 몽고메리는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
......
"자네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군." 내가 말했다. "우리에겐 상당히 좋은 제안이야. 검사가 이 건을 재판까지 끌고 가고 싶어하지 않아. 법정에 서고 싶어하지 않는 피해자를 굳이 거기다 끌어다 놓고 싶지 않은 거야. 그랬다가는 도움이 아니라 오히려 해를 입히는 꼴이 될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최대한 선심을 베풀어서 가장 짧은 형기를 제시하는 거라고. 하지만 모든 건 자네에게 달렸어. 자네가 결정해야 해. 앞으로 2주 정도 시간이 있고, 그 이후로는 끝이야. 어쨌든 몇 분만 있으면 법정에 나가야 해."
---> 할러 변호사가 검사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나은 전략이라고 의뢰인을 설득합니다. 결정은 의뢰인이 하는 것이지만, 변호인 자신의 의견도 의뢰인에게 솔직하게 전달합니다.
할러 변호사의 말대로 검사는 피해자를 법정에 증인으로 세우고 싶어하지 않을 겁니다. 피해자가 제대로 진술을 하려 하지 않는 건 둘째치더라도, 갱단에 몸담고 있는 데서 연상할 수 있는 피해자의 우락부락한 인상이라든가 몸 여기저기에 문신들이 또아리 틀고 있는 이미지라든가, 배심원들에게 점수 딸만한 꺼리가 하나도 없어서이겠죠. '메시지보다 메신저'를 고려해볼 때 유리할 게 없는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105-106쪽] "...... 자네가 선택해. 3년을 받든가, 아니면 재판으로 가는 거야. 그리고 전에도 말했듯이 재판으로 가도 뭔가 방법이 있기는 할 거야. 검찰 측에서 무기를 찾아내지도 못했고, 피해자는 진술을 거부하고 있잖아. 하지만 여전히 자네 차에 묻어있는 혈흔이 문제야. 그리고 검사 측은 총격 직후에 자네가 차를 운전해서 로디아를 빠져나가는 비디오 영상도 가지고 있잖아. 물론 자네가 얘기했던 대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고 배심원을 설득할 수도 있겠지. 정당방위였다고. 거기에 약을 사러 갔었는데, 그가 자네 돈뭉치를 보고는 그걸 빼앗으려다가 그렇게 됐다고 말이지. 어쩌면 배심원단도 그 말을 믿을지 몰라. 특히 피해자가 증언을 안 하려 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설사 그가 증언을 하더라도 자네 말을 더 믿을지도 모르지. 일단 변론을 시작하면 난 그가 수도 없이 묵비권을 행사하도록 만들 작정이거든. 그럼 배심원들은 그가 증언대에 올라서기도 전에 그를 마치 알 카포네라도 되는 듯이 생각하게 될 거라고."
---> 이제 보니, 범행에 사용된 총도 몽고메리가 이미 어딘가에 버려버린 모양이군요. 총도 없으니 정확한 발사경위를 확인하기도 더 어려워, 몽고메리에게 매우 유리한 상황이겠습니다.
그리고 몽고메리는 정당방위를 주장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일응 해볼 수는 있는 변명 같기는 합니다만, 그 변명이 그럴듯해 보이려면 그 당시 피해자가 탐낼 만한 돈뭉치를 몽고메리가 갖고 있었음을 몽고메리가 입증하여야 할 텐데요. 돈도 전혀 없어서 총으로 협박해 마약을 빼앗으려던 사람이 과연 자신에게 돈뭉치가 있었음을 입증할 수 있을까요?
아무튼 할러 변호사의 탁월한 변론실력을 감안한다면, 정식재판으로 가도 해볼만한 싸움이 될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만......
[106쪽] "검사가 지금 자네에게 제안하는 형량과 만약 우리가 재판에서 졌을 때 선고받게 될 형량 사이에 틈이 너무 벌어져 있다고. 최소한 12년 정도는 예상하고 있어야 해, 캐시. 그 기간을 도박에 걸기에는 너무 길잖아."
---> 아무래도 실패했을 경우의 위험부담이 너무 큽니다. 피고인의 위험부담 뿐만 아니라, 실패했을 경우 변호인이 입게될 데미지도 어마어마할 겁니다.
게다가 빨리 결정을 못하고 어정쩡하게 정식재판으로 가기로 했다가, 그 사이에 어디선가 몽고메리의 총이라도 발견되어 그에게 불리한 상황이 초래될 위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빨리 결정을 내리는 게 유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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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파기환송'에서 플리바기닝이 활약하는 장면 소개는 요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위 사건의 결말은 정확히 소개되지 않은 채 다른 사건으로 넘어가지만, 할러 변호사가 검사의 제안을 1년형으로 더 깎으면서 플리바기닝에 성공하는 듯한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작품에서 미키 할러 변호사는 총기 상해범죄 피고인을 위한 플리바기닝을 시도하였고, 다음 작품 '다섯 번째 증인'에서는 살인범죄 피고인을 위한 플리바기닝을 시도하였습니다. 이런 사건은 피해자가 존재하는 강력 사건인데요, 우리나라라면 이런 류의 사건에서 플리바기닝을 한다는 것은 최소한 검사 입장에선 쉽지 않아 보입니다. 범인임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 가해자가 수사기관에 잡혀있기까지 한 상황인데, 증거가 좀 부족하다고 해서, 무죄판결 가능성이 좀 있다고 해서 가벼운 죄로만 살짝 처벌하고 만다는 것은 누구도 수긍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중범죄인을 봐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수사기관은 어떻게 해서든 중범죄인일수록 법정에 세우려고 기를 쓰게 마련입니다. 수사기관이라도 그렇게 안 하면 불쌍한 피해자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요?
게다가 이런 류의 강력 사건은, 수사가 아주 어렵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잘하면 범인을 잡아낼 가능성이 꽤 있습니다. 왜냐하면 강력 사건은 눈에 보이는 범행현장이 있고, 확실한 피해자가 있고, 세상이 좋아져서 지문 감식이나 DNA 감정과 같은 과학수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동네 여기저기에 설치되어 있는 CCTV에 범인의 단서가 포착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긴 세월 오리무중이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도 결국에는 범인이 잡히고야 말지 않습니까?
이런 류의 강력 사건 말고, 정작 플리바기닝이 필요하거나 적절한 사건은 따로 있습니다.
우선은, 범죄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자가 없는 사건이 좋겠습니다. 피해자의 피해감정을 해하면서까지 국가가 범인에게 혜택을 부여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론, 수사가 정말로 쉽지 않은 성격의 사건입니다. 예를 들어, 화이트칼라 사건, 기업 비리 사건, 금융경제 사건, 뇌물 사건, 조직범죄 사건, 마약 사건, 테러 사건, 보이스피싱 사건 같은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사건의 특징은, 가담자들이 다수인데 범죄가 은밀히 이루어지는데다 직접적인 피해자가 없고 범죄자나 그 관련자 모두 서로 win-win 하는 성격의 사건이어서 적발이 쉽지 않고, 어쩌다 잡힌 가담자가 나는 잘 모르는 일이라며 입을 닫아버리면 증거수집도 쉽지 않고 더 이상 윗선으로 올라갈 수 없어 주동자들을 일망타진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된다는 점입니다.
즉, 이런 사건은 적발과 증거수집을 위해서는 내부자의 제보나 협조가 필수적입니다. 내부자의 제보나 협조 없이는 그런 범죄를 제대로 잡아내거나 예방하기는 힘듭니다. 내부자의 제보나 협조를 기대하기 힘든 경우에는, 통신감청이나 잠입수사, 함정수사와 같은 극단적인 형태의 수사기법이라도 동원하여야 하나, 이런 수사기법은 우리 법상 인정되지 않거나 매우 제한적으로만 쓸 수 있고, 설령 가능한 경우라도 인권이나 사생활 침해의 위험이 큰 만큼 함부로 휘두를 수도 없습니다. 이런 사건은 직접적인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아 당장은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법질서를 망가뜨리고 사회와 국가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범죄이기 때문에 국가가 반드시 적발하고 처벌해야 하는 사건입니다.
수년 전 우리나라 법무부와 검찰에서 플리바기닝 제도의 도입을 시도하였다가 무산된 적이 있습니다. 법무부나 검찰에서 플리바기닝 제도에 대해 얘기할 때 흔히 있을 수 있는 비판이, 수사의 효율성만을 강조하여 물증 확보에 노력하지 않고 쉽게 피의자의 자백만 받아내려는 수사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형사절차 실무는, 검사에게 범죄의 성립요건에 대해 엄격한 입증책임을 부담시키고 정밀한 입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극히 간단한 수사만 진행한 채 곧바로 재판절차로 직행하여 대부분의 입증활동이 재판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미국의 형사사법제도와 달리, 우리의 형사사법제도는 수사기관이 충분한 수사를 통해 혐의 입증까지 성공한 다음에야 비로소 재판절차로 넘어가게 되고 재판절차는 수사 과정에서 입증된 사실을 재확인하는 정도로 진행됩니다.
따라서 검사는 재판으로 가기 전에 미리 엄격하고 정밀한 입증을 위해 물증을 확보하고 피의자나 참고인들을 조사하여 진술증거를 충분히 확보하려고 노력합니다. 물증이라는 게 말처럼 쉽게 수집되는 게 아니지만, 설령 아무리 많은 물증이 확보되어 있더라도 물증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 범죄가 입증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의 진술을 통해 물증과 범죄와의 연관성까지 밝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앞에서 말한 플리바기닝에 적합한 성격의 사건들은, 범죄를 적발하고 처벌하기 위해서 내부자들의 진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사기관이 엄격하고 정밀한 입증을 위한 수사에 주력하다보니 부작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혹시라도 무죄판결을 받는 불상사를 방지하고 어떻게든 증거 하나라도 더 수집해서 확실하게 유죄판결을 받기 위해, 압수수색을 과도하게 한다거나, 예컨대 휴대폰이나 카카오톡 같은 지극히 사적인 물건을 그야말로 탈탈탈 턴다거나, 자백을 받기 위해 피의자를 강압적 또는 반복적으로 조사한다거나 하는 인권 침해나 사생활 침해 등의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수사기관이 단지 법과 절차를 잘 지켜 수사를 하는 것만으로는 이런 부작용 예방에 부족할 수 있습니다. 수사기관의 선의에만 기대지 않고 이런 부작용을 근본적으로 예방하려면, 수사기관이 수사라는 걸 좀 적당히 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엄격하고 정밀한 입증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런 부담을 좀 덜어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또한, 사법자원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국가재정상 사법자원은 물적으로나 인적으로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 한계 내에서 효율적으로 배분되어야 한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합니다. 수사기관이 엄격하고 정밀한 입증활동에 나설 수 있는 사건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이런 식의 반론이 가능할 겁니다. 국가의 수사기관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범죄자들을 잡아들이고, 다른 한편으론 억울한 사람이 누명을 쓰는 일이 없도록 엄격하고 정밀한 입증활동을 다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이죠.
네, 당연히 지당하고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현실은 바로 보려 하지 않고 애써 눈을 감은 채, 마치 공자님인 양 맹자님인 양 늘 점잖은 목소리로 지당하고 옳은 말을 하는 데만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저는 2019년 하반기 대한민국을 온통 휘어잡은 소동들을 지켜보면서 한 가지 인사이트를 얻었습니다. 바로, '이제 제발 위선 떨지 말자'라는 생각입니다. 사실은 진심도 아니면서 그저 남 듣기 좋으라고 아름답고 번드르르한 말만 늘어놓는 이중성과 위선, 우린 그걸 올해 새삼스레 많이도 목격하지 않았습니까? 이젠 우리도 솔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점잖게 지당하고 옳은 말만 하기에 앞서, 과연 그게 실현은 가능한 얘기인지, 과연 우리 앞에 놓인 실상과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똑바로 보고 제대로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제 우리는 수사기관이 전지전능하지 않은 존재라는 현실을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수사기관이 행사하는 수사권이 뭔가 대단한 권한이라고 생각하고, 이 요술방망이 같은 권한으로 해결 못하는 일이 없고 못 밝히는 진실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형사법 만능주의 국가가 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회적 논쟁과 문제점은 죄다 형사절차 안에 집합시켜 놓고 형사법에 따른 해결을 기다립니다. 사회적 논쟁과 문제점의 직접당사자들은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해결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그 일의 당사자도 아니고 문외한에 불과한 판검사의 손에 해결을 맡겨버리고는 그 처분만 하염없이 기다리곤 합니다. 그러고도 정작 그 결과에는 승복하지 않고 각 진영별로 아전인수격 주장만 일삼습니다.
그러나 "조사하면 다 나와", 이런 말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조사한다고 속 시원하게 알고 싶은 게 다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몇 사람 사이에 있었던 과거의 어떤 사건을 제3자인 수사기관이 증거라는 형식으로 완벽하게 재구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즉, 수사기관은 제아무리 애를 써도 누구나 수긍하는 진실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수사기관의 능력이 모자라서이기도 하고, 수사라는 행위만으로는 진실을 밝히는 데 턱없이 부족해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언제나 진실을 발견하는 게 가능함을 전제로, 수사기관의 도리와 의무를 말해서는 곤란합니다. 이는 세상의 모든 범죄를 빠짐없이 적발하겠다고 모든 장소에 빠짐없이 CCTV를 설치하자거나 모든 사람들의 휴대폰과 카카오톡을 수사기관이 마음껏 보게 하자는 게 전혀 말이 안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더구나 갈수록 수사환경은 열악해지고 있습니다. 범죄는 고도로 지능적이고 은밀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수사기관이 범죄의 단서조차 찾기 쉽지 않고, 범죄자들은 묵비권을 행사하며 입을 닫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고, 참고인들은 괜한 불이익이라도 당할까 싶어 남의 사건에 개입하기 꺼려합니다. 범죄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자가 있는 사건의 경우에는 피해자의 진술이라도 확보하여 어찌어찌 수사를 진행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건은 사람의 진술을 확보하기 힘들어 수사 진행 자체가 곤란한 경우도 많습니다.
사법선진국 수사기관의 최신 수사기법과 제도를 우리나라에도 수입하려면 온갖 반대론에 맞닥뜨리게 되어, 아직까지 우리나라 수사기관은 2차 세계대전 때 사용하던 구식 무기로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당연한 현실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수사기관의 권한을 늘리고 힘을 키워주자는 주장이 아닙니다. 그런 해결책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수사기관의 과욕에 따른 부작용을 조장하는 위험한 주장일 수 있습니다. 단지, 수사기관이 모든 범죄를 엄격하고 정밀하게 입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수사기관의 엄격하고 정밀한 입증이 가능하고, 수사기관이 언제나 진실을 발견하는 게 가능하더라도, 그 때문에 야기될 수 있는 인권 침해 등의 부작용을 예방한다는 더 중요한 가치를 위해서, 이제 수사기관의 도리와 의무에 대해 현실과는 유리된, 그저 지당하고 옳아 보이기만 한 말은 더 이상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이미 그런 현실을 인정하고 있고, 이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바로 플리바기닝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플리바기닝 제도의 취지는 수사기관의 한계를 인정하고 수사기관의 수사를 줄이자는 것으로, 바로 수사기관의 입증이 부족할 수밖에 없어 생기는 빈 틈의 존재를 인정하되 그 빈 틈을 그냥 방치해두지만 말고 어떻게든 뭐라도 메워놓자는 게 그 취지라고 생각합니다. 플리바기닝 제도는 수사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 맞습니다. 사회적으로 필요성이 있으면 수사편의주의적 발상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수사편의주의를 위해 플리바기닝을 하자는데 이를 수사편의주의라고 비난하는 것은 동어반복에 불과하고 적절한 비난이 아닙니다.
일본의 경우 미국의 제도를 참고하여 변형된 형태의 플리바기닝 제도를 2016년에 도입하였습니다. 그 도입 이유가 재미있는데, 갈수록 진술증거의 수집이 곤란해지고 있는 수사환경을 고려하여 조사의 비중을 줄이고 사건 관련자들로부터 자발적인 진술을 이끌어내기 위한 새로운 수사방법으로서 이 플리바기닝 제도를 도입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역시 수사기관의 한계를 인정하고 현실을 수긍하는 데서 이끌어낸 적절한 대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도 2004년부터 변형된 형태의 플리바기닝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인데, 최근인 2019년 9월부터는 종전의 배심재판 대상사건을 축소해서 시민배심원들의 사법절차 참여를 점차 줄여가고 있습니다. 이는 배심재판으로 야기될 수 있는 형사사법절차의 지연을 방지하여 신속한 재판 진행과 사법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대책인데, '시민의 사법참여'니 '사법의 민주화' 같은 지고지순한 말만 앞세워 배심재판 제도를 숭배대상으로 삼으려 하지 않고, 위선 떨지 않으면서 그리고 실상을 인정하면서 과감하게 문제점을 고쳐나가겠다는 프랑스 국민들의 실용적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사례입니다.
결론을 정리하면, 우리나라에도 플리바기닝 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저는 우리 국민정서법상 100년 안에는 우리나라에 이 제도가 도입되는 일이 절대 없을 거라 예상합니다.
제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이제 우리 솔직해지고 제발 위선 떨지 말자는 것입니다. 모자라고 부족한 현실은 현실 그대로 인정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나갈 수 있습니다. 실상은 외면한 채, 하나마나 한, 그럴듯하기만 한, 그저 번드르르하기만 한 말만 해서는 아무런 해결책도 마련할 수 없습니다.
왜 미국이 스스로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자인하면서도 플리바기닝 제도를 그렇게 오랜 세월 운영하고 있는지, 왜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은 지극히 미국스러운 제도인 플리바기닝 제도를 굳이 자국에 도입한 것인지, 우리는 그 이유를 솔직하게 들여다보면서 우리의 문제점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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