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4일 월요일
[독서일기] 레미제라블 2
독서일기 레미제라블 두 번째 글입니다.레미제라블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는 대목이, 장발장이 받았던 무거워도 너무 무거운 형벌에 대한 비난입니다. 극도로 가난해 굶주린 사람이 배고픔을 견딜 수 없던 나머지 결국 빵 하나를 훔쳤는데, 딸랑 빵 하나 훔쳤다고 십 몇 년씩이나 사람을 징역 살리는 건 너무 심하지 않느냐, 법에는 인정도 없느냐, 유전무죄 무전유죄 아니냐는 등의 비난이 그것이죠.
제가 읽고 있는 동서문화사 판 '레미제라블' 첫째 권 150쪽 이하 부분을 보면, 장발장이 총 19년의 징역형을 받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밤에 빵가게 창을 깨고 손을 집어넣어 빵 한 개를 훔쳐서 5년, 교도소 생활 중 4년을 마칠 무렵 첫 탈옥을 시도하다 3년, 6년째에 다시 탈옥을 시도하던 중 간수를 폭행하여 5년, 10년째에 세 번째 탈옥을 시도하다 3년, 13년째에 마지막 탈옥을 시도하다 다시 3년.
장발장은 이 19년을 꽉 채우고 나서야 비로소 자유 아닌 자유의 몸이 됩니다. 석방되고 나서도 가는 곳마다 노란색 통행증을 제시해야 하는, 즉 지금으로 치면 보호관찰 같은 상태에 놓이게 되지요.
장발장이 빵을 훔치기 전에는 딱히 다른 전과가 있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주림을 참지 못해 우발적으로 빵을 한 개 훔친 행위에 대한 벌 치고는 5년의 징역형이란 대단히 무거워 보이긴 합니다.
장발장이 빵을 훔친 게 1795년이라고 하니, 1791년에 제정된 형법(CODE PÉNAL Du 25 septembre – 6 octobre 1791)이 적용될 것 같은데요, 제2장 개인에 대한 중죄(TITRE II - CRIMES CONTRE LES PARTICULIERS) 중 제2절 재산에 대한 중죄와 경죄(SECTION II - CRIMES ET DÉLITS CONTRE LES PROPRIÉTÉS) 항목의 제3조와 제4조를 찾아보니, 밤에 남의 집에 침입해 물건을 훔친 죄의 징역형이 최고 22년에 이르는군요. 어마어마하긴 한데, 물론 법정형이 그렇다는 것이고 각 사건에서의 개개 사정에 따라 22년의 범위 내에서 형벌의 높낮이가 상당한 진폭으로 왔다갔다 하겠지요.
우리 형법에 의하더라도 특수절도죄(야간에 문을 손괴하고 타인의 건조물에 침입하여 재물을 절취)는 벌금형도 없이 징역형만 정해져 있는 중한 범죄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나라 기준에 의한다면, 초범에, 우발적 범행에, 피해가 크지 않은 점 등을 참작받아 기소유예 정도, 더 무거워봤자 집행유예 정도의, 형벌이라기보다는 사실상의 선처를 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348쪽 이하에는 이런 대목이 등장합니다. '샹마띠외(Champmathieu)'라는 사나이가 남의 집 사과를 훔치다가 잡혔는데, 하필 장발장과 나이와 고향이 같은 데다 다른 사람들이 그가 장발장이라는 잘못된 증언을 하는 바람에 장발장으로 누명을 쓰고 중벌에 처해질 상황에 이르게 되는데요. 이 사람의 범행에 대해 자베르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담을 넘고 들어가 가지를 꺾고 사과를 훔친 것쯤은 어린아이라면 장난에 지나지 않고 어른이라 해도 경범죄에 불과하지만, 전과자라면 큰 범죄입니다. 가택 침입에 절도가 겹치는 것입니다. 이미 경범죄 재판의 문제가 아니고 중죄 재판입니다. 며칠 동안의 구류가 아니라, 종신 징역입니다.
자베르는 남의 집 담을 넘어 들어가 사과를 훔쳐도 전과만 없다면 단지 '경범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빵집 창을 깨고 손을 안으로 집어넣어 빵을 훔친 것이나, 남의 집 담을 넘어 들어가 나뭇가지를 꺾고 사과를 훔친 것이나, 서로 무슨 차이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행위 자체도 비슷하고 피해 정도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왜 장발장은 징역 5년, 샹마띠외는 단지 경범죄인 걸까요. 장발장이 빵을 훔친 1795년과 샹마띠외가 사과를 훔친 1823년 사이에 법이 바뀌어 절도죄의 형벌이 가벼워진 걸까요. 절도죄를 바라보는 법의 시선이 불과 30년 사이에 그렇게 관대해졌을 것 같진 않은데요.
'레미제라블'의 원문을 한번 찾아봤습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애플 아이북스 버전입니다.
Si c'est Jean Valjean, il y a récidive. Enjamber un mur, casser une branche, chiper des pommes, pour un enfant, c'est une polissonnerie; pour un homme, c'est un délit; pour un forçat, c'est un crime. Escalade et vol, tout y est. Ce n'est plus la police correctionnelle, c'est la cour d'assises. Ce n'est plus quelques jours de prison, ce sont les galères à perpétuité.
재범이 아니라면 어른이 남의 집 담을 넘어 들어가 나뭇가지를 꺾어 사과를 훔친 행위는 'délit'이고, 재범이라면 'crime'이라는 설명이 나오네요. 프랑스 형법에서는 법정형의 경중에 따라 범죄를 중죄(crime), 경죄(délit), 위경죄(contravention) 등 3가지로 구분하여, 각각의 수사절차와 재판절차를 달리 규정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중죄와 경죄가 법정형 징역 10년을 기준으로 구분되는데,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 당시에는 징역 5년을 기준으로 구분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경죄'는 이름만 가벼운 범죄로 보일 뿐, 법정형의 상한이 징역 5년에까지 이르는, 결코 가볍지 않은 범죄를 일컫는 말입니다. 따라서 위 동서문화사 판의 '경범죄'라는 번역은 정확하지 않은 것이고, 중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범죄라는 의미로 그러한 표현을 쓴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과거의 일을 평가할 때는 지금의 기준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당시의 시대상황을 따져봐야겠지요. 물질풍요의 시대와 그렇지 않은 시대 사이에 빵 하나의 가치는 현격히 다를 것이고, 치안과 사회질서가 안정되어 있는 시대와 그렇지 않은 시대 사이에 법과 경찰활동의 역할은 매우 다를 것입니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장발장의 형벌을 바라봐야겠지요.
아무튼 장발장이 받은 과중한 형벌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타까운 연민을 보내는 한편으로, 그런 약자에게 인정사정 없는 무자비한 공권력을 비난하곤 합니다. 빅토르 위고 역시 마찬가지구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장발장의 19년 징역형에 대해서는 대부분 비판을 가하면서도, 지금 우리 일상에서는 '엄벌'이나 '처벌 강화' 같은 말을 너무나 쉽게 입에 올리곤 합니다. 어떠한 큰 사건이나 사고만 났다 하면 그에 대한 충분한 원인 분석이나 깊은 고민도 없이 즉각적으로 쉽게 나오는 대책이, 바로 엄벌, 처벌 강화입니다. 최근에 발생한 음주운전, 응급실 폭력 등의 불행한 사건, 사고들에 대해서도 언론과 정부는 매번 엄벌주의라는 익숙한 주문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엄벌주의로 그러한 사건, 사고를 미리 예방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전통적으로 매우 논란이 많은 문제입니다. 엄벌주의가 정답이라고 단정해 말하기 곤란합니다. 엄벌주의는 희생양을 만들어 온갖 비난을 집중시킴으로써 사건, 사고의 근원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엄벌주의를 구호로 만들어진 법은 자칫 약자에게 인정사정 없는 무자비한 공권력을 양산할 위험마저 있습니다.
빠르고 쉬운 길로만 가려 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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