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2일 화요일
전문증거에 관한 쟁점 한 가지
전문증거의 의미와 관련하여, 평소 갖고 있던 생각 한 가지를 메모합니다.
수사과정에서 피의자의 진술을 기록한 피의자신문조서는 전문증거입니다. 재판에서 증거로 제출되는 경우 형사소송법 제312조에 따라 증거능력 여부가 결정됩니다. 그런데 수사과정에서 혐의사실을 자백해서 재판을 받던 피고인이 종전의 진술을 번복해서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경우, 대개 그의 자백진술이 기록된 피의자신문조서는 증거능력이 부정되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피고인의 수사과정에서의 자백진술은 온데간데 없이 증거로 쓸 길이 없어지게 됩니다. 현재의 판례에 따르면요.
그런데 만약 피고인이 재판과정에서 자신이 수사과정에서 자백진술을 한 일이 있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한다면, 피고인의 법정진술 중 그의 수사과정에서의 자백진술 부분은 전문증거가 아니라 본래증거이므로 증거능력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우리 형사소송법상 전문증거의 개념은 제310조의2(“제311조 내지 제316조에 규정한 것 이외에는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의 진술에 대신하여 진술을 기재한 ①서류나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 외에서의 타인의 진술을 내용으로 하는 ②진술은 이를 증거로 할 수 없다”)로부터 도출되는데, 이 규정에 대한 정확한 해석에 의할 때 피고인의 법정진술 중 그의 수사과정에서의 자백진술 부분은 전문증거의 개념에 포섭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위 규정에서 ‘①서류’는 법정 외에서 작성된 것으로서 법정 외에서의 ‘진술’이 담겨있는 것이고 ‘②진술’은 법정에서의 진술로서 법정 외에서의 ‘타인의 진술’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①서류’는 자기 자신이든 타인이든 누구의 진술이라도 전달하는 것이면 되나, ‘②진술’은 타인의 진술만을 전달하는 것이 전문증거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법정에 나온 증인이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이 공판 외에서 했던 진술 내용에 관해 증언한다면 이 증언은 전문증거이지만, 법정에 나온 증인이 자기 자신이 공판 외에서 했던 진술 내용에 관해 증언한다면 이 증언은 전문증거가 아닙니다. 법정진술에 관한 형사소송법 제316조 제1항과 제2항의 내용을 봐도 그렇게 해석됩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전문법칙의 취지상 당연한 이치이기도 합니다. 전문법칙이라는 건 본래 요증사실에 관해 증언을 해야 할 어떤 사람이 법정에 나올 수 없을 때, 그의 증언 대신 다른 대체물을 증거로 인정하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증언을 해야 할 사람이 이미 법정에 나와 있다면, 궁금한 걸(그 사람의 법정 외 진술) 바로 그 사람에게 물어보면 되지 굳이 전문법칙을 따지고 있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치로, 피고인이 수사과정에서는 혐의사실을 자백하였다가 공판과정에서 이를 번복하여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사안에서, 만약 피고인이 법정에서 ‘수사과정에서 혐의사실을 자백하였다’라고 진술한다면 이는 ‘타인의 진술’을 진술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러한 피고인의 법정진술은 전문증거가 아닙니다. 이는 본래증거이므로, 곧바로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것입니다. 즉, 피고인이 법정에서 수사과정에서의 자백진술을 번복하는 경우, 피의자신문조서야 전문증거여서 피고인의 내용부인을 사유로 증거능력이 부정되는 건 당연하다 치더라도, 현재 법정에 나와 있는 피고인의 진술에 의해 그 내용이 인정된 수사과정에서의 자백진술은 본래증거이므로 당연히 증거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이러한 논리를 전개하는 판례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형사소송법 제310조의2 문언상 명백한 논리임에도, 피고인의 '내용부인'이라는 한 마디로 수사과정에서의 피의자의 진술이 온데간데 없어져야 한다는 이런 이상한 법해석은 하루 속히 바로잡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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