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23일 목요일
사기죄의 죄수
(이 글은 대학원 이번 학기 "죄수및경합론" 수업의 발표문입니다. 역시 주석이 옮겨지지 않아 인용문출처가 제대로 표시되지 않았습니다.)
목 차
Ⅰ. 죄수결정의 기준
1. 죄수결정 기준에 관한 학설
2. 죄수결정 기준의 검토
3. 사기죄의 죄수
Ⅱ. 1명을 수회 기망한 경우(대법원 2004. 6. 25. 선고 2004도1751 판결)
1. 사안의 개요
2. 판결의 요지
3. 대상판결의 검토
Ⅲ. 수인을 개별적으로 기망한 경우(대법원 2010. 4. 29. 선고 2010도2810 판결)
1. 사안의 개요
2. 판결의 요지
3. 대상판결의 검토
Ⅳ. 수인을 1개의 행위로 기망한 경우(대법원 2011. 1. 13. 선고 2010도9330 판결)
1. 사안의 개요
2. 판결의 요지
3. 대상판결의 검토
Ⅴ. 맺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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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죄수결정의 기준
1. 죄수결정 기준에 관한 학설
일죄와 수죄의 구별은 공소제기의 효력, 기판력의 범위, 그리고 처단형의 범위에 차이가 생긴다는데 그 중요성이 있다.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기준으로 죄수를 결정하는지에 대해서는 법상 명문규정이 없어 판례와 학설의 해석에 맡겨져 있는데, 일단 죄수를 결정하는 기준에 관하여 행위표준설, 법익표준설, 의사표준설, 구성요건표준설 등이 논해지고 있다.
행위표준설은 자연적 의미의 행위의 수에 따라서, 법익표준설은 침해되는 법익의 수에 따라서, 의사표준설은 행위자의 범죄의사를 기준으로, 구성요건표준설은 구성요건해당사실을 기준으로, 각각 범죄의 수를 결정하고자 한다.
이들 학설에 의하면, 간통죄는 성교행위마다 1개의 간통죄가 성립한다고 보는 판례는 행위표준설에 따른 사례로, 위조통화행사죄와 사기죄는 보호법익이 다르므로 위조통화를 행사하여 재물을 편취한 경우에는 위조통화행사죄와 사기죄의 경합범이 된다는 판례는 법익표준설의 사례로, 수개의 수뢰행위가 동일한 상대방과의 사이에서 단일한 범의에 의하여 계속되고 피해법익도 동일하면 포괄일죄로 보아야 한다는 판례는 의사표준설에 따른 사례로 각각 언급되기도 한다. 그리고, 예금통장과 인장을 절취한 행위와 저금환급금수령증을 위조한 행위는 별개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독립된 행위여서 경합범이 성립한다는 판례는 구성요건표준설에 의한 것으로 거론되고 있다.
2. 죄수결정 기준의 검토
그러나, 죄수결정의 기준을 앞에서 본 학설들과 같이 행위, 법익, 의사, 구성요건 등으로 놓고 보았을 때, 명쾌한 기준과 일관성을 견지하기 위하여 이 중 어느 한 가지 기준에만 따라서 죄수를 결정한다는 것은 실제사례에의 적용이 그리 용이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범죄는 기본적으로 형사처벌법규에 규정되어 있는 구성요건을 기준으로 봄이 상당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일단 구성요건표준설이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구성요건을 죄수결정의 기준으로 하는 경우에도, 구성요건해당 행위와 자연적 행위의 개념은 동일하지 않기에 그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자연적 행위의 수를 고려할 필요가 있고, 그 자연적 행위의 수는 범죄의사와 법익도 함께 고려하여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판례도 일응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한 가지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러 기준들을 함께 고려하여 죄수를 결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죄수결정이 한 가지 기준으로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결국 일관된 기준이 없다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어, 판례가 사안에 따라 일관되지 못한 기준으로 죄수를 판단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판례가 구성요건표준설의 입장에서 해당 구성요건의 객관적, 주관적 요소인 행위, 법익, 의사를 모두 고려하는 일관된 기준으로 죄수를 판단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도 존재한다.
3. 사기죄의 죄수
이 글에서는 특히 사기죄의 죄수결정에 관한 판례의 기준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사기죄의 경우, 판례는 행위의 수와 행위방법, 범의의 단일성과 계속성, 피해자의 수 등을 기준으로 죄수를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기준은 행위의 수와 피해자의 수이다.
먼저, 1회의 기망행위를 하였고 그것이 1명의 피해자를 상대로 한 것이라면, 물론 논의의 여지없이 일죄만 성립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로, 수회의 기망행위를 하였는데 그것이 1명의 피해자를 상대로 한 것이라면, 그 수회의 기망행위를 단지 자연적 행위 그대로 여러 개의 행위로 취급할 것인지, 아니면 구성요건을 1회 충족한 것으로 평가하여 한 개의 행위로 취급할 것인지가 문제된다. 판례는 이 경우 그 수회의 기망행위를 범의의 단일성과 계속성․범행방법의 동일성이 인정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구분하여, 전자는 포괄일죄로, 후자는 실체적 경합범으로 보고 있다.
세 번째로, 수명의 피해자를 상대로 수회의 기망행위를 하였다면, 원칙적으로 각 피해자별로 수개의 사기죄가 성립하고 그 사기죄 상호간은 실체적 경합범 관계에 있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이다. 이 경우 수명의 피해자에 대한 수회의 기망행위에 대해 범의의 단일성과 계속성․범행방법의 단일성이 인정되든 그렇지 않든 구분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수명의 피해자를 상대로 1회의 기망행위를 하였다면, 원칙적으로 피해자별로 수개의 사기죄가 성립하되, 그 사기죄 상호간은 상상적 경합범 관계에 있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이다.
이하에서 사기죄에 관한 판례의 죄수결정 기준과 그 타당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Ⅱ. 1명을 수회 기망한 경우(대법원 2004. 6. 25. 선고 2004도1751 판결)
1. 사안의 개요
○ 피고인은 제조업체를 운영하면서 부담하게 된 채무액이 약 16억 원 상당에 이른 상황에서 미리 위 업체 공장의 모든 기계류, 원자재, 완제품 등을 빼돌린 다음 피고인 명의로 발행한 어음과 수표를 고의로 부도내는 방법으로 그 채무를 면탈할 계획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어음을 할인받거나 어음 또는 수표에 의한 대금지급 조건으로 물품을 납품받더라도 그 어음이나 수표를 지급기일에 결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
○ 피고인은 2001. 11. 8.경 피해자 갑에게 약속어음을 할인해주면 피고인이 운영하는 업체의 공장부지에 관하여 담보를 설정해주겠다고 거짓말하여 피해자로부터 피고인 명의로 발행한 약속어음을 할인받아 그 할인금을 지급받고 그 지급기일에 고의로 부도내는 방법으로 이를 편취한 것을 비롯하여, 그때부터 2002. 2. 3.경까지 사이에 19회에 걸쳐 같은 방법으로 어음을 할인받아 편취하였다.
○ 피고인은 2001. 11. 8.경 위 피해자 갑에게 물품을 납품해주면 약속어음으로 대금을 지불하겠다고 거짓말하여 피고인 명의로 발행한 약속어음을 교부하면서 피해자로부터 플라스틱 사출원료를 공급받은 후 지급기일에 그 어음을 고의로 부도내는 방법으로 위 원료를 편취한 것을 비롯하여, 그때부터 2002. 2. 5.경까지 사이에 11회에 걸쳐 같은 방법으로 어음이나 수표를 대금지급 명목으로 교부한 후 이를 부도내는 방법으로 위 원료를 편취하였다.
2. 판결의 요지
단일한 범의의 발동에 의하여 상대방을 기망하고 그 결과 착오에 빠져 있는 동일인으로부터 일정기간 동안 동일한 방법에 의하여 금원을 편취한 경우에는 이를 포괄적으로 관찰하여 일죄로 처단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나, 범의의 단일성과 계속성이 인정되지 아니하거나 범행방법이 동일하지 않은 경우에는 각 범행은 실체적 경합범에 해당한다.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어음할인으로 금원을 편취한 부분과 플라스틱 사출원료를 편취한 부분은 서로 범행의 방법이 동일하지 않고 범의의 단일성과 계속성을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서로 실체적 경합범의 관계에 있다.
(餘論 : 사기죄의 수단으로 발행한 수표가 지급거절된 경우 부정수표단속법위반죄와 사기죄는 그 행위의 태양과 보호법익을 달리하므로 실체적 경합범의 관계에 있다.)
3. 대상판결의 검토
대법원은 동일한 피해자에 대해 수회의 기망행위를 한 경우에 관하여, 이 판결 이전에도 같은 취지의 판결을 하여 왔다.
이 사건은 피고인이 그가 운영하는 업체의 거래상대방인 피해자 갑을 상대로 약 3개월 사이에 수회에 걸쳐 금원과 물품을 편취한 사안이다.
비록 행위는 수개인 것이 분명하지만, 피해자가 단 1명이고, 그 1명의 피해자를 상대로 불과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수회에 걸쳐 거래관계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방법으로 금원이나 물품을 편취하였으므로, 먼저 포괄일죄의 성립 여부를 검토해 볼 수 있겠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행위가 수개이더라도 이를 단지 자연적 행위 그대로 수개의 행위로 취급하지 않고 구성요건을 1회 충족한 것으로 평가하여 한 개의 행위로 취급할 여지가 있다.
다만, 구성요건적으로 수개인 행위는 원칙적으로 수죄로 취급함이 상당하고, 수개의 행위를 일괄하여 포괄일죄로 보거나 과형상 일죄인 상상적 경합으로 보는 것은 제한적으로 인정함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즉, 포괄일죄나 상상적 경합을 인정할 수 있는 경우로는, 범의, 행위태양, 법익 등에 비추어 수개의 행위가 1개의 구성요건에 의해 충분히 평가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경우(포괄일죄)나 수개의 행위가 자연적 의미에서 1개의 행위로 볼 수 있는 경우(상상적 경합)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이렇게 제한적으로 해석하지 않을 경우 명문규정에 따른 구성요건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게 될 여지가 있고, 피고인을 부당하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취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입장에서 판례는 수개의 행위에 대해 포괄일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범의의 단일성과 계속성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이 피해자 갑을 상대로 불과 3개월 사이에 무려 19회에 걸쳐 어음을 할인하여 달라고 거짓말하여 할인금 명목의 금원을 편취한 행위들 사이에서는, 그 각각의 행위방법이 동일하다면 그 범의의 단일성과 계속성이 인정되어 포괄일죄로 볼 수 있다. 피고인이 피해자 갑을 상대로 같은 기간 동안 11회에 걸쳐 어음이나 수표로의 대금지급 명목으로 물품을 편취한 행위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편, 피고인이 ‘어음할인 명목으로 금원을 편취한 행위’와 ‘어음이나 수표로의 대금지급 명목으로 물품을 편취한 행위’는, 서로 행위방법과 범행의 객체 자체가 동일하지 않고 그로 인해 범의의 단일성도 인정하기 곤란하다. 따라서 판례의 기준에 의하는 한, 결국 수개의 행위에 의해 성립하는 이 두 죄는 포괄일죄로 평가할 수 없고 다만 실체적 경합범의 관계에 있다고 볼 것이다.
(餘論 : 피고인이 사기의 수단으로 수표를 발행하고 지급기일에 그 수표대금을 지급하지 않은 부분에 관하여는, 수표의 발행이 사기의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므로 사기죄와 부정수표단속법위반죄가 서로 상상적 경합관계에 있는 것은 아닌지 문제된다.
그러나, 사기죄의 구성요건은 물품대금 지급수단으로 수표를 발행하여 교부하면서 “물품을 지급받은 행위”이고, 부정수표단속법위반죄의 구성요건은 수표를 발행한 후 그 지급기일에 “수표대금을 지급하지 않은 행위”로서, 그 구성요건이나 행위방법이 전혀 다르다.
따라서 물품을 지급받은 행위의 고의와 수표대금을 결제하지 않은 행위 사이의 고의도 다를 수밖에 없고, 피해자의 재산이라는 사기죄의 보호법익과 수표거래의 신용이라는 부정수표단속법위반죄의 보호법익도 다르기 때문에, 결국 사기죄와 부정수표단속법위반죄가 서로 실체적 경합범 관계에 있다고 보는 판례의 견해가 타당하다.)
Ⅲ. 수인을 개별적으로 기망한 경우(대법원 2010. 4. 29. 선고 2010도2810 판결)
1. 사안의 개요
○ 피고인은 2005. 6. 22. 사기죄(계불입금 편취) 등으로 징역 8월을 선고받고 같은 날 판결이 확정되어, 2005. 7. 5. 그 형의 집행을 마쳤다.
○ 피고인은 계원들로부터 계불입금을 납입받더라도 계금을 지급할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계를 조직하고 계원들을 모아 다음과 같이 계불입금을 편취하였다.
- 2003. 1. 13., 2004. 4. 16., 2007. 12. 22. 3개의 계를 조직하고 피해자 갑을 계원으로 가입시켜 그로부터 그 3개의 계의 계불입금 편취
- 2006. 6. 2., 2007. 2. 7. 2개의 계를 조직하고 피해자 을을 계원으로 가입시켜 그로부터 그 2개의 계의 계불입금 편취
- 2006. 9. 17., 2007. 9. 4. 2개의 계를 조직하고 피해자 병을 계원으로 가입시켜 그로부터 그 2개의 계의 계불입금 편취
- 2007. 1. 7., 2007. 6. 2., 2007. 8. 16., 2007. 10. 20. 4개의 계를 조직하고 피해자 정을 계원으로 가입시켜 그로부터 그 4개의 계의 계불입금 편취
2. 판결의 요지
수인의 피해자에 대하여 따로 기망행위를 하여 각각 재물을 편취한 경우에는, 비록 범의가 단일하고 범행방법이 동일하더라도 각 피해자의 피해법익은 독립한 것이므로, 각 피해자별로 독립한 여러 개의 사기죄가 성립하고, 그 사기죄 상호간은 실체적 경합범 관계에 있다.
3. 대상판결의 검토
앞서 본 바와 같이 판례는 수명의 피해자를 상대로 수회의 기망행위가 있었던 경우, 원칙적으로 각 피해자별로 수개의 사기죄가 성립하고 그 사기죄 상호간은 실체적 경합범 관계에 있다고 본다.
즉, 은행원이 1년여 사이에 피해자 20여명에게 실제는 만기에 원금과 이자를 지급할 의사가 없음에도 “재형저축 중도해약자가 있는데 그 해약금을 납부하면 많은 이자소득을 볼 수 있으니 그 해약금 및 월불입금을 대납하면 만기에 원금과 이자를 수령하여 대납하여 주겠다.”라고 거짓말하여 피해자들로부터 합계 10억여 원을 편취한 사례, 아파트 분양권한이 없는 자가 분양희망자들에게 마치 분양할 정당한 권한이 있는 것처럼 기망하여 아파트를 분양하고 100여명으로부터 합계 40여억 원을 편취한 사례 등에서, 대법원은 범의가 단일하고 범행방법이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각 피해자별로 독립한 수개의 사기죄가 성립(즉, 실체적 경합범)한다고 각각 판시하였다.
사기죄 등의 특정 재산범죄를 그 이득액에 따라 가중처벌하고 있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제3조 제1항에서 말하는 이득액은 단순일죄나 포괄일죄의 이득액의 합산액을 의미하고, 경합범으로 처벌될 수죄에 있어서 그 이득액을 합한 금액을 말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이다. 따라서 판례에 의하면 수명의 피해자별로 수개의 사기죄가 성립하는 경우에는, 피해자 1명에 대한 편취액이 5억원 이상이 되어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적용대상이 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각 피해자별로 성립한 사기죄 상호간에 실체적 경합이 아닌 상상적 경합관계가 성립한다고 판시한 사례도 있다.
즉, 단일하고 계속된 범의 하에 같은 장소에서 반복하여 여러 사람으로부터 계불입금을 편취한 행위는 피해자별로 포괄하여 1개의 사기죄가 성립하고, 이들 포괄일죄 상호간은 상상적 경합관계에 있다고 봄이 판례의 태도이다. 이 판결의 사안은 피고인이 1986. 8. 8.경 18명의 계원을 모아 계금 10,200,000원의 35구좌 낙찰계를 조직하여 계원들로부터 매월 같은 장소에서 계불입금을 수령하여 이를 편취하였다는 것으로, 이는 범죄의 시간, 장소, 범의, 범행방법 등이 동일하고 피해자만 다를 뿐이어서 범죄의 기본사실이 동일하다고 보아 상상적 경합관계에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편, 대상판결은 피고인이 위 89도252와 같은 취지의 판례를 염두에 두고 공소사실 중 일부 사기범행은 이미 자신이 확정판결을 받은 과거사건의 사안과 시간, 장소, 범행방법 등이 동일하고 피해자만 다를 뿐이어서 범죄의 기본사실이 동일하므로 면소대상이라고 주장한 사안이었다.
이러한 피고인의 주장에 대해 대법원은 피해자들이 피고인의 개별적인 기망행위에 의해 각각 계에 가입한 점, 피해자들의 계불입금 납입과 계금 수령 등도 피고인과의 사이에 개별적으로 이루어진 점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들의 피해원인은 피고인의 개별적인 기망행위라고 할 것이어서 피해자별로 독립하여 사기죄가 성립하고, 그 사기죄 상호간은 실체적 경합범 관계에 있다고 판시한 것이다.
즉, 위 89도252 판결과 대상판결의 사안은 행위의 개별성에 차이가 있고, 후자의 경우 그 수개의 행위를 일죄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상판결 사안의 경우에도, 우선 각 피해자별로는 포괄일죄의 성립 여부가 문제된다. 피고인이 각 피해자를 상대로 수회에 걸쳐 동일한 방법으로 계불입금을 편취하였다면 그 범의의 단일성과 계속성이 인정되어 포괄일죄로 볼 수 있겠다.
그리고, 각 피해자별로 성립한 사기죄 상호간은 수개의 행위로 인한 것이고 피해자가 수인이므로, 일죄로 평가할만한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실체적 경합범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구성요건상 사기죄는 1명의 피해자를 전제로 성립될 수 있는 범죄이고, 비록 사기죄의 보호법익은 피해자의 재산으로서 일신전속적 법익은 아니나 각 피해자의 피해법익은 판례가 들고 있는 바와 같이 각기 독립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상판결에 의하면 수인의 피해자에 대한 수개의 행위에 대해서는 범의의 단일성과 계속성․범행방법의 단일성의 인정 여부와 상관없이 수개의 사기죄 사이의 실체적 경합관계를 인정하고 있는데, 이는 포괄일죄나 상상적 경합의 성립범위를 가능한 한 제한하여야 한다는 데 비추어 보면 지극히 당연한 해석이라고 생각된다.
Ⅳ. 수인을 1개의 행위로 기망한 경우(대법원 2011. 1. 13. 선고 2010도9330 판결)
1. 사안의 개요
○ 피고인은 공동피고인 A, B, C와 사기도박의 방법으로 금원을 편취하기로 공모하였다.
○ B, C는 이 사건 모텔 906호실에 카메라 등을 몰래 설치하고, A는 피해자 갑과 을에게 연락하여 도박을 하자고 유인하였다.
○ 피해자 을은 피해자 병에게도 함께 도박을 하자고 권유하였고, 결국 피해자 갑, 을, 병이 피고인 등이 마련한 위 906호실로 오게 되었다.
○ 피고인과 A는 수신기와 특수표시 화투 등을 소지하고 피해자 갑, 을, 병과 속칭 ‘섯다’라는 도박을 하여 피해자들로부터 도금 명목의 금원을 편취하였다.
2. 판결의 요지
피고인 등이 피해자들을 유인하여 사기도박으로 도금을 편취한 행위는 사회관념상 1개의 행위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므로, 피해자들에 대한 각 사기죄는 상상적 경합의 관계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3. 대상판결의 검토
판례에 의하면 1명의 피해자에 대하여 수회에 걸쳐 기망행위가 있었던 경우의 죄수는 범의나 범행방법에 따라 결정된다. 즉, 범의의 단일성과 계속성이 인정되고 범행방법이 동일한 경우는 포괄일죄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각 범행의 실체적 경합범에 해당한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이다.
이 사건의 원심은 피고인 등이 피해자들로부터 도금을 편취한 행위가 각 피해자별로 실체적 경합의 관계에 있다고 보고 경합범가중을 하였다. 즉, 원심은 대법원 1989. 6. 13. 선고 89도582 판결을 인용하면서 수인의 피해자에 대하여 각별로 기망행위를 하여 각각 재물을 편취한 경우에는 비록 범의가 단일하고 범행방법이 동일하다 하더라도 각 피해자의 피해법익은 독립한 것이므로 이를 포괄일죄로 파악할 수 없고 원칙적으로 피해자별로 독립한 수개의 사기죄가 성립한다는 이유로 이 사건 사안을 실체적 경합범으로 판단하였다. 우선 각 피해자별로는 포괄일죄가 성립하되, 그 포괄일죄 상호간에는 피해자가 수인인 점에 주안점을 둔 것이다.
이에 반하여, 대법원은 원심과 마찬가지로 각 피해자별로는 범의의 단일성과 계속성, 그리고 범행방법의 동일성 등이 인정되므로 포괄일죄의 성립을 인정하되, 그 포괄일죄 상호간에 있어서는 피고인 등이 피해자들을 유인하여 사기도박을 통해 도금을 편취한 행위를 사회관념상 전체적으로 1개의 행위로 평가하여 상상적 경합의 관계에 있다고 보고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앞서 대법원이 89도252 판결에서, 단일하고 계속된 범의 하에 같은 장소에서 반복하여 여러 사람으로부터 계불입금을 편취한 행위에 관하여 피해자별로 포괄하여 1개의 사기죄가 성립하고 이들 포괄일죄 상호간에 상상적 경합관계에 있다고 본 논리가 대상판결의 사안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 것이다.
생각건대, 이 사건 기망행위의 수단인 도박은 구성요건적으로 다수인의 동시참가와 동일한 행위의 반복을 당연히 전제하는 개념인 점에 비추어 보면, 각 피해자별로 개별적인 기망행위가 있었다고 보기 곤란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판례와 같이 각 피해자들에 대한 피고인 등의 행위를 전체적으로 일련된 1개의 행위로 보아 피해자별 각 사기죄들이 서로 상상적 경합관계에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해석하더라도 사기죄의 구성요건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라 보기 어렵고, 피고인을 부당하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취급한 것이라 보기도 어렵다.
Ⅴ. 맺는 말
합리적인 죄수결정 기준의 마련은 적정한 처단형의 범위를 설정하고, 범죄자에 대한 부당한 특혜 부여나 반대로 부당한 책임 가중을 방지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러한 죄수결정의 중요성에 비추어 판례의 죄수결정 기준에 대한 합리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우리 판례는 사기죄의 죄수 결정에 있어, 행위의 수와 피해자의 수를 주요 판단기준으로 하여 행위방법, 범의의 단일성과 계속성 등을 함께 고려하여 판단하고 있다. 이와 같은 판례의 태도는 죄수결정에 있어 일관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실제 사례에 적용해 보았을 때 비교적 타당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참 고 문 헌
배종대, 「형법총론」 제10판, 홍문사(2011)
김성돈, “죄수결정의 기준”, 법학논고 제14집, 경북대 법학연구소(2009)
김성돈, “연속범의 죄수”, 형사정책연구 제8권 제1호, 한국형사정책연구(1997)
윤동호, “형법 제40조 ‘1개의 행위’의 의미와 범주”, 형사법연구 제26호, 한국형사법학회(2006)
한상훈, “상상적 경합의 유형, 효과에 대한 재검토와 형법 제40조의 입법론”, 형사법연구 제22권 제1호, 한국형사법학회(2010)
손동권, 「형사특별법 정비방안(4)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한국형사정책연구원(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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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고급 레스토랑은 물론 동네에 있는 흔한 파스타 집에서도 '식전빵'이란 걸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에피타이저든 주요리든 뭔가가 나오기 전에 가장 먼저 발사믹을 친 올리브 오일과 함께 나오는 빵을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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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15일자로 제가 이 블로그에 쓴 "아이폰과 아이패드 활용사례 소개" 글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http://imagistrat.blogspot.kr/2012/01/blog-post_15.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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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글을 써봅니다. 한동안 나태한 생활이 이어지면서 블로그도 제 생활에서 멀어졌었는데, 이제 다시 글이라도 부지런히 쓰면서 마음을 다잡아 볼까 합니다. 오랜만에 쓰는 글이니 가벼운 글로 시작을 해볼까 합니다. 제가 프랑스 파리에서 가장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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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4박 5일간의 짧은 파리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다음 여행의 준비를 위해 몇 가지 느낀 점을 두서 없이 적어 볼까 합니다. [이번에 묵은 숙소 창밖 풍경] 1. 이번 파리 여행은 중학교 1학년인 제 딸아이와의 단둘만의 여행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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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보르도에 있는 국립사법관학교(École nationale de la magistrature)는 사법관(판사, 검사)을 양성하는 연수기관입니다. 사법관이 되기 위해서는 이 기관에서 총 31개월 간의 연수를 받아야 합니다. 2019년 4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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