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istrat
레이블이 형사소송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형사소송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26년 7월 19일 일요일

책을 두 권 냈습니다. "2026년, 마지막 검찰청법 이야기", "검사의 시각으로 쉽게 풀어낸 형사증거법 강의"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7/19/2026 09:36:00 오후 라벨: 검사 , 검찰 , 검찰청법 , 사법제도 , 프랑스 사법제도 , 형사소송 , 형사증거법

 



올해 4월과 5월, 제 이름을 단 책을 두 권 냈습니다. 이 블로그는 비실명으로 운영하고 있어 이 책 얘기를 할까말까 망설였습니다. 그래도 이 블로그가 저의 개인 역사책인데 여기에 저의 중요한 역사를 기록해두지 않을 수 없네요. 뒤늦게 제 책을 소개합니다. 

출판사는 박영사입니다. 두 책의 머릿말 중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책 소개를 대신합니다.  


O "2026년, 마지막 검찰청법 이야기"

하필 곧 검찰청이 간판을 내리려는 2026년, 그 검찰청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시하려는 건 아니고, 미래의 역사가 될 지금을 일단 기록해 놓으려는 것입니다.

이제는 사라진 법을 해설하는 글이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가 지금 2026년도 검찰청법의 마지막 모습을 연구하거나 회고하려는 시도가 분명히 있으리라 기대하며 어찌어찌 글을 완성해 봤습니다.

나라마다 각각의 검찰 제도는 조금씩 다른 모양을 띠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다양성 속에서도 공통분모가, 보편적인 제도의 모델은 분명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게 검찰 제도의 취지이다, 이런 게 검찰의 역할이다, 이런 게 검사가 할 일이다, 하는 보편적인 컨센서스가 전 세계적으로 인정되고 있다는 것이죠.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에서는 이 제도가 자꾸만 그 보편적인 모습에서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 제도와의 공통분모도 이젠 얼마 안 남아 보입니다. 본래의 보편적인 모습에서 멀어져가는 대한민국에서의 이 제도가 곧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오기를 소망하면서, 이 책을 내놓습니다.

O "검사의 시각으로 쉽게 풀어낸 형사증거법 강의"

증거법은 형사소송법 교과서 안에서도 가장 난해하기로 유명한 파트여서 처음 공부하는 분들에게는 대단한 인내심을 요구하는데요, 원래 신임검사님들을 위해 모임을 만들고 강의를 하고 글을 쓴 것이니만큼, 이 책은 특히 새내기 법조인이나 예비 법조인분들, 그리고 기존 교과서에서 힘들게 증거법을 공부하고도 과연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건지 의문이 들었던 분들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검사들이 일을 어떤 식으로 하는지 궁금한 분들도 좋겠구요.

주류의 시각보다는 ‘검사의 시각’이라는 좀 색다른 관점에서 증거법을 풀어내는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물론 저의 소수설이 옳다는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에요. 소수설을 통해 판례가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왜 그러한 논리를 갖게 된 건지를 독자 분들이 보다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 책은 저의 첫 책 『2026년, 마지막 검찰청법 이야기』(2026년 박영사 刊)에 이은 ‘검찰에 대한 오해와 이해’ 시리즈의 제2탄 정도가 되겠습니다. 검찰이 잘났고 잘하기만 했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건 전혀 아니구요, 검찰에 대한 어지럽고 악의적인 선동구호 저 너머에, 우리 사회를 굴려나가는 한 톱니바퀴로서 이 제도와 시스템이 조용히 작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이 검찰청법 책과 관련해 법률신문과 인터뷰를 했었습니다.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법률신문 2026년 7월 8일자 "사라질 검찰에는 遺書, 태어날 공소청엔 사용설명서".


Read More

2026년 7월 5일 일요일

"희미해지는 프랑스 형사법의 흔적들"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7/05/2026 07:54:00 오후 라벨: 검찰 , 독립성 , 사법제도 , 조직범죄 , 프랑스 사법제도 , 형사소송 , 형사소송법
이 글은 2026년 5월 16일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있었던 한불법학회, 국회사무처 법제실, 법제처,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검찰프랑스법연구회가 공동주최한 학술대회에서 제가 발표한 글입니다. 이 학술대회의 대주제는 '한국-프랑스의 법제도 교류 140년 : 과거, 현재와 미래'였는데요, 저는 형사법 분야에서 프랑스가 140년 전 우리에게 미친 영향과 그 현재 모습에 대해 정리해봤습니다.   
이 글은 올해 연말쯤 출간할 제 책에 다시 실을 예정입니다. 


----------------------------------------------------


1. 우리 형사재판의 모습

우리나라는 1895년 갑오개혁 이후 일본을 통해 프랑스와 독일의 근대 사법 제도를 수입하였습니다. 해방 이후 법제 측면에서도 미국의 강한 영향권 안에 들어간 데다 프랑스와의 교류는 활발하지 않다 보니, 이제 우리 형사사법 제도에 프랑스풍의 흔적은 많이 사라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검사인만큼 형사재판에만 한정하여, 현재의 우리 법정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프랑스의 흔적들을 찾아보겠습니다.

먼저, 서울북부지방법원 2020. 4. 29. 선고 2019고합396 판결을 살펴보겠습니다.1) 이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자신을 수술한 종합병원 의사 A의 의료과실로 후유증이 생겼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가 기각된 데 불만을 품고 ① 미리 준비한 과도를 휘둘러 A를 살해하려다 A에게 손가락 절단상 등만 가한 채 미수에 그치고(살인미수), ② 이를 말리던 병원 직원 B에게 과도를 휘둘러 B의 팔을 베고 옆구리를 찔러 상해를 가하였다는 것(특수상해)입니다.
피고인은, ① A에 대해서는 살인의 고의를 부인하였고, ② B에 대해서는 A에게 상해를 가하는 과정에서 B가 이를 말리다 과도에 베이게 된 것이라며 상해의 고의를 부인하였습니다.
① A에 대한 살인미수 부분은 9명의 배심원 중 7명의 무죄 의견과 2명의 유죄 의견이 있었고 그 축소사실인 A에 대한 특수상해에 대해서만 만장일치로 유죄 의견이 있어, 결국 살인미수는 무죄이고 특수상해로만 유죄가 선고되었습니다. ② B에 대한 특수상해 부분은 배심원 7명이 유죄 의견, 2명이 무죄 의견으로, 결국 유죄가 선고되었습니다.
판결서에 기재된 유죄 부분의 증거 요지를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피고인의 일부 법정진술
1. 피해자 A와 B의 각 법정진술
1. 수사보고서(사건 당시 진료를 보고 있던 C 상대 수사보고), 수사보고서(목격자 및 신고자인 간호사 D 진술청취)
1. 수사보고서(발생장소 주소 정정), 수사보고서(112신고사건처리내역서 첨부), 각 112신고사건 처리내역서
1. 압수조서 및 압수목록
1. 수사보고서(환자 대기석 CCTV 분석), 수사보고서(재심청구 결과 송달받은 날짜 확인)
1. 각 현장감식결과보고서
1. 수사보고서(유전자 감정 의뢰), 유전자 감정서 회보
1. 압수품 사진, 피해자 사진, 수사보고서(현장 사진 등 첨부), 현장 약도, 각 현장 사진, 각 사진
1. 수사보고서(피해자 A 진단서 및 수술 당시 촬영한 사진 첨부 관련), 진단서, 소견서 및 진단서, 수사보고서(피해자 B 상처 사진 첨부), 피해자 B 상처 사진
1. 수사보고서(피의자의 의무기록 사본 첨부), 의무기록 사본 등, 수사보고서(판결문 사본 첨부), 각 판결문 사본


양형에 대해서는, 배심원들의 의견이 징역 3년 2명, 징역 4년 6월 2명, 징역 6년 9월 5명으로 엇갈린 끝에 징역 5년이 선택되었습니다.
이 판결은 피고인이 상소하였으나 모두 기각되고 상고심에서 확정되었습니다.

판결서 내용만으로 먼저 눈에 띄는 특이점은, 법정에 나온 증인은 피해자 A, B 둘 뿐이고 적지 않은 수의 서증이 증거로 채택되었다는 점입니다.
서증도 법정에서 증거조사가 이루어진다면 ‘형식적’ 직접심리주의 측면에선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직접 사실을 경험한 자를 법정에서 증인으로 조사하여 충분히 반대신문의 기회를 주어 공격과 방어를 할 수 있도록 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심증을 형성해야 한다는 ‘실질적’ 직접심리주의 측면에서 본다면, 서증조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수사보고서나 감정서, 진단서, 사진과 같은 서류들은 단지 이 서류들만 법정에 나와 검사가 그 내용을 낭독하거나 영상을 보이는 방법으로 배심원에게 제시될 게 아니라, 그 작성자나 원진술자들을 불러 증인신문이라는 형식을 통해 배심원에게 제시되는 게 더 적절한 성격의 증거입니다.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작성자나 원진술자들을 상대로 한 반대신문의 기회가 필요하고, 그런 공방을 지켜보면서 배심원이 사건의 쟁점과 내용을 더 잘 이해하고 쉽게 심증을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재판이 실질적 직접심리주의를 구현하는 재판일 겁니다. 그럼에도 이 재판은 증인신문은 별로 없이 대부분 서증조사 위주로 진행되었습니다.

서증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다수의 수사보고서들이 증거로 채택되었는데, 그중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던 C와 목격자 D로부터 청취한 진술은 ‘수사보고서에 기재된 내용’이라는 형식으로 법정에 등장하는 것보다는, 원진술자인 C와 D가 직접 증인으로 법정에 나와 배심원에게 자신들이 경험한 사실을 생생하게 들려주고 피고인은 원진술자들을 상대로 반대신문을 함으로써 방어기회를 갖도록 하는 게 어땠을까 싶습니다.
다른 수사보고서들 중 ‘발생장소 주소 정정’, ‘환자 대기석 CCTV 분석’, ‘재심청구 결과 송달받은 날짜 확인’, 그리고 수사보고서들에 첨부된 서류인 112신고사건 처리내역서, 현장감식결과보고서, 압수품 사진, 피해자 사진, 현장 약도, 현장 사진, 사진 등은 수사보고서나 첨부서류 자체만 제출되어 검사가 배심원에게 이 서류를 보여주거나 그 내용을 낭독하는 정도로 증거조사가 이루어지는 것보다는, 이 서류를 작성하거나 수사를 진행한 사법경찰관들이 직접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배심원에게 그 내용을 들려주고 피고인은 반대신문의 기회를 갖는 게 더 좋았을 법합니다. 일반재판에서는 수사를 담당한 사법경찰관이 증인으로 나오는 경우가 드물지만, 모름지기 국민참여재판이라면 수사관이 증인으로 나와 수사과정이 어떠하였는지, 수사 결과 어떠한 이유로 피고인을 범인으로 인지하게 되었는지 등을 설명하고, 피고인으로 하여금 반대신문의 기회에 수사과정의 부당성 또는 수사관의 선입견이나 불공정성 등을 주장하게 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건 너무 미국영화식이라 이상한가요?
유전자 감정서 회보, 진단서, 소견서 및 진단서, 피해자 B 상처 사진, 의무기록 사본 등도 유전자를 감정한 감정인이나 피해자들을 진료한 의사가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진술하고 피고인에게는 반대신문의 기회를 주는 게 국민참여재판에 어울리는 증거조사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일반재판이라면 이런 전문가들이 법정에 증인으로 나오는 모습은 중요사건이 아닌 한 흔히 볼 수 없는 일이긴 하나, 그래도 국민참여재판이라면 평소 부르기 어려운 증인이라도 마땅히 증인으로 나오게 하는 게 좋겠고, 증인으로 나오게 하지도 않을 거라면 굳이 배심재판을 열 필요까진 없을 겁니다. 사법경찰관의 수사과정을 직접 보지 않은, 그리고 의료나 감정 업무에 전문적 식견이 없는 검사가 사법경찰관의 수사과정에 대해 대신 설명하고 진단서나 감정서를 낭독하거나 그 내용을 설명하는 건, 배심원들의 쟁점 이해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피고인의 반대신문권 보장에도 미흡합니다. 이런 식의 재판은 재미도 없고 배심원들을 졸게 만들기 딱 좋을 겁니다.

유무죄에 관한 배심원들의 평결이 끝나고 유죄가 확정되면, 배심원들은 심리에 관여한 판사와 함께 양형에 관해 토의하고 그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형사재판은 유무죄 인정을 위한 사실심리 중심으로 운영되고 양형에 관한 심리는 다소 소홀히 다루어지는 편입니다. 절차가 분리되어 있지도 않아서, 사실심리 절차와 양형심리 절차가 한데 합쳐서 진행됩니다. 이 재판과 같이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는 사건에서는, 피고인이든 검사든 모두 유무죄에 관한 주장만을 주로 할 뿐 유죄가 인정될 경우를 대비해 미리 양형에 관한 주장을 적극적으로는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장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니 심리를 제대로 할 여지도 적은 것이죠.
이 재판의 경우, 양형과 관련된 증인은 없었습니다. 판결서 내용만으로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배심원이나 재판부가 이러한 양형 결정에 참고할 만한 자료로는, 아마도 유무죄 심리과정에서 확인된 이 사건 범행의 내용, 피고인의 법정진술에서 드러난 피고인의 태도, 피해자들의 법정증언에서 드러난 피해감정과 처벌의사, 과거의 판결서에 등장하는 피고인의 범죄전력, 정상관계에 관한 변호인과 검사의 최종의견 정도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실제의 양형심리가 이 정도였다면, 국민참여재판이라지만 일반재판과 그리 다를 바 없습니다. 양형기준에 대한 이해와 재판경험이 전혀 없는 배심원들이 이 정도의 양형심리를 통해 적절한 양형수준을 가늠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건에서 배심원들의 양형의견은 징역 3년부터 징역 6년 9월까지 다양하게 엇갈렸는데, 이는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한 사건만으로 속단하면 안 되겠지만 제가 찾아본 다른 사건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우리 국민참여재판은 여전히 서증조사 위주로 진행되고 있고 서면재판 또는 조서재판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2) 물론 실제 국민참여재판에서는 일반재판에 비해 늘어난 재판시간만큼 증인신문과 서증조사 모두에 긴 시간을 할애하면서 훨씬 심도 있는 재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이는 국민참여재판이라고 해서 서증조사는 줄고 더 많은 수의 증인이 나온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서증조사 위주 진행’이나 ‘서면재판 또는 조서재판식 진행’이라는 표현은, 증인신문과 서증조사가 각각 긴 시간을 들여 심도 있게 진행되기는 하지만 증인신문으로 증거조사를 할 법한 내용을 서증조사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전히 서증조사의 비중이 적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공판중심주의를 제대로 한다면, 대부분 전문증거일 서면보다 증인 같은 본래증거가 더 먼저, 그리고 더 많이 등장하는 게 타당할 겁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서면재판을 하는 걸까요? 그것도 공판중심주의나 실질적 직접심리주의가 더 제대로 구현되어야 할 국민참여재판에서 말이죠.

국민참여재판이 서증조사 위주로 진행되는 원인으로서 가장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검사의 서증 신청입니다. 일반재판과 마찬가지로 국민참여재판도 검사가 증거서류를 증거로 신청하는 데서부터 증거조사 절차가 시작됩니다. 즉, 증인을 먼저 신청하는 게 아니라 서증을 먼저 신청합니다. 수사기록의 상당부분이 서증이어서 검사가 신청하는 서증의 양이 적지도 않습니다. 서증을 먼저 신청하여 피고인의 증거인부 결과에 따라 비로소 보완적으로 증인이 신청되고 채택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서증을 중심에 놓은 증거조사 절차가 되고 서증으로 증명이 되는 부분은 굳이 증인이 나올 필요가 없게 되니, 자연스레 상당수의 서증이 증거로 채택되고 증인신문보다는 서증조사 위주의 재판으로 진행되기 쉬운 겁니다.

다음 원인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건, 바로 ‘하루짜리 재판’입니다. 우리 국민참여재판의 대부분은 공판준비기일을 제외한 본 기일이 하루에 불과한 하루짜리 재판입니다. 2008년부터 2020년까지 진행된 총 2,718건의 국민참여재판 사례 중 단 하루 만에 재판이 진행된 사례가 무려 90.5%에 달하는 2,460건입니다.3) 같은 자료에는 나머지 258건(9.5%)이 재판에 이틀 이상 걸린 사례라고만 표시되어 있는데, 아마도 이 대부분이 이틀짜리 재판이고 사흘 이상 진행된 사례는 매우 드물 것으로 추측됩니다.
국민참여재판에서는 내용이 간단하고 증거가 많지 않은 사안이라도, 아무래도 재판시간이 더 많이 소요됩니다. 배심원 선정절차에 적지 않은 시간이 들고, 배심원들이 절차의 진행방법과 증거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하니 이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배심원들을 감안하여 증인신문도 길어지고 서증조사도 자세히 하는 건 물론입니다.4) 당연히 재판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지만 실무상 재판을 가급적 하루에 맞춰 끝내려다 보니, 가급적 저녁식사 전에 증인신문과 서증조사까지는 마쳐야 하고, 그러려다 보니 당연히 있는 증인, 없는 증인 전부를 법정에 부를 수는 없어 반드시 꼭 필요한 핵심증인만 부르고, 서증으로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굳이 증인을 부르지 않게 됩니다. 사건 자체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증인 외에, 전문가 증인이나 조사자 증인, 양형 증인을 법정에 소환하는 데는 더더욱 소극적인 자세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법정에 나올 수 있는 증인 수에 제한이 생기고, 그 공백은 다시 서증이 메우게 됩니다. 결국 여전히 종전의 일반재판과 그리 큰 차이도 없는 서면재판식의 재판 진행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능한 증인이 모두 다 나오는 제대로 된 재판을 위해, 가급적 하루짜리 재판을 지양하고 여러 날이 걸리더라도 재판을 길게 가져가는 게 옳을까요? 그것도 사실 여의치 않습니다. 국민들이 그걸 원하지 않습니다. 단 하루 만에 치러지는 재판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재판시간이 길다고 불만입니다. 2008년부터 2020년까지 실시된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장기간의 재판으로 인한 불편’이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힙니다(42.6%).5)
그래서 국민참여재판이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줄일 수 있는 절차는 과감히 줄이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고, 공판중심주의에 어울리지 않는 서증조사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흔히 제기되곤 합니다.6) 물론 매우 적절한 지적입니다. 국민참여재판에서 서증조사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앞의 판결 사례 등을 보며 드는 생각은, 지금의 국민참여재판은 어찌 보면 서증이 불필요하게 중복하여 많이 나오는 게 문제라기보다는, 증인이 너무 안 나오는 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증인이 별로 안 나오는데 신속한 재판을 하겠다고 서증까지 줄여버리면, ‘증명의 공백’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공판중심주의와 실질적 직접심리주의를 충실하게 구현하기 위해 시작한 재판 제도에서 필요한 증인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실태를 놔두고 서증을 줄여야 한다고만 대책을 내놓는 건, 정작 가려운 곳을 정확히 긁지 못하는 진단입니다.

저는 방금 국민참여재판이 일반재판과 다를 바 없이 서증조사 위주로, 서면재판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국민참여재판은 문제가 많은 재판이라는 걸까요?
제가 생각하는 답은 “그렇지 않다”입니다. 서면재판 자체가 문제인 건 아닙니다. 서면재판식의 재판은 배심원들이 사안과 쟁점을 쉽게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문제는 있으나, 개개 사안에 맞게 자백사건, 또는 공소사실이나 쟁점이 간단한 사건 같은 경우는 서면재판식으로 재판을 해도 그게 실체진실 발견에 지장이 없다면 이는 합리적이고 적절한 방식의 재판 진행인 것입니다.
특히, 앞에서 보았듯이 장시간의 재판에 대한 일반국민의 불만을 감안하면 국민참여재판을 마냥 길게 가져갈 수도 없기에, 결국 실체진실 발견에 지장이 없다면 현재와 같이 하루나 이틀 사이에 재판을 마무리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하루짜리 재판이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하루짜리 재판은 이러한 현실을 고려한 합리적인 재판 진행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참여재판은 무조건 공판중심주의식으로 진행돼야 하고 공판중심주의는 무조건 서면재판을 배척해야 한다는 도그마는 재고될 필요가 있습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 것이고, 개개 사안에 따라 소송경제도 함께 감안하여 그에 맞는 방식으로 적절하게 제도를 운영하면 되는 것입니다.

국민참여재판은 흔히 보기 힘든 예외적 형태의 재판입니다. 배심재판 제도를 비롯해 미국법을 지향하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고자 하는 바이긴 하겠지만, 2008년 시행 후 20년이 다 돼가도록 여전히 배심원들의 판단에 구속력도 없고 시범실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냥 보여주기식 장식용 제도에 불과합니다. 그럼 재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반재판은 어떨까요?
일반국민이 사법에 참여하는 ‘사법민주화’ 차원에서 재판 제도의 궁극적인 롤모델로 여겨지는 배심재판이나 참심재판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므로, 모든 재판을 이 방식으로 진행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사법자원의 제약상 모든 재판을 배심재판으로 진행할 순 없더라도, 배심재판을 롤모델로 설정해둔 상태에서 가급적 모든 재판이 배심재판의 정신과 취지를 염두에 두고 이루어질 필요는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일반재판 제도 역시 전면적인 배심재판을 할 수는 없어 그 대체물로써 배심재판의 정신과 취지를 반영하고 있는데, 그게 바로 ‘공판중심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즉, 배심원이 직접 법정에 있으면서 배심원이 직접 사실인정을 할 여건은 안 되어서 직업법관에게 그 역할을 맡겨두고 있지만, 마치 ‘배심원들이 법정에 있으면서 직접 사실인정을 하는 것처럼’ 가정하여 재판을 한다는 것이 공판중심주의입니다.
공판중심주의의 3대 요소는 공개재판주의, 구두주의, 즉일심판주의인데, 이것이 바로 최대한 배심재판과 비슷한 상황을 연출하겠다는 것이죠. 일반재판도 비록 배심원은 없더라도 그 대신 재판 방청인이라는 추상적 의미의 국민들이 참여하도록 공개재판을 하는 것이고(공개재판주의), 비록 배심원은 없지만 그 대신 추상적 의미의 국민들이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판사만이 볼 수 있는 ‘글’보다는 방청인 모두 들을 수 있는 ‘말’로 재판을 하라는 것이며(구두주의), 비록 배심원은 없지만 그 대신 재판의 결론을 낼 때 판사가 혼자 판사실에 가서 혼자만 아는 정보로 결론 내지 말고 마치 배심원들이 있었다면 배심원들이 낼 법한 결론을 방청인 모두 보는 자리에서 재판 날 바로 내라는 것입니다(즉일심판주의).
결국 배심재판처럼 국민에게 오픈하여 국민도 알아듣고 국민이 할 법한 상식적인 결론을 도출하라는 게, 배심재판의 대체물인 공판중심주의의 실천적 의미입니다. 이렇게 일반재판도 공판중심주의에 의해 운영되어야겠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많은 재판이 서면재판식으로 진행됩니다. 실제 사건으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수원지방법원 2022. 11. 10. 선고 2022고합188 판결 사건은, 피고인이 피해자와 말다툼을 벌이다 피해자가 소주병으로 피고인의 머리를 내리치는 데 대항해 피해자의 배 부위를 깨진 병조각으로 1회 긁어 자상을 가했다는 사안입니다.7)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과 그에 대한 재판부의 증거결정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피해자에 대한 사법경찰관 작성 진술조서 / 피해자의 법정진술 : X -/ ❍
- 조사 경찰관의 법정진술 : X
- 바디캠 영상과 그 녹취서 : X
- 현장출동 경찰관의 법정진술 : X
- 범행현장 사진 : ❍
- 피해자 상처부위 사진 : ❍


피고인이 수사과정부터 재판과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범행을 부인하면서 피해자 진술조서를 증거부동의하자, 검사는 피해자를 증인으로 신청하였습니다. 경찰 수사과정에서 피해를 호소했던 피해자는 법정에 나오자 원진술을 번복합니다. 이미 피고인과 합의한 후였거든요. 피고인에게 맞지 않았다고 하니 피해자의 이 법정진술은 피고인의 범행을 증명할 직접증거로 쓸 수 없는, 알맹이 없는 증거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음으로 검사가 한 조치는, 피해자를 조사한 경찰관을 증인으로 신청한 것이었습니다. 조사 경찰관은 당초에는 검사가 계획하지 않은 증거였겠으나, 피고인이 피해자 진술조서를 증거부동의하고 피해자가 원진술을 번복하며 그 조서의 진정성립까지 부인하자 그 대안으로 뒤늦게 신청하였을 겁니다. 공판중심주의와 직접심리주의를 충실히 구현하는 재판을 하자면 검사가 조서를 증거로 신청하지 말고 처음부터 피해자는 물론 조사 경찰관까지 증거로 신청하는 게 맞겠으나, 많은 사건을 재판하는 우리나라는 신속하고 효율적인 절차 진행을 위해 이 재판처럼 조사 경찰관은 피고인이나 중요 참고인이 재판과정에서 원진술을 번복한 일부 재판에서만 증인으로 등장합니다.

아무튼 직접증거인 피해자의 법정진술과 조서를 모두 증거로 쓸 수 없는 상황이 되니, 검사로선 가만있을 수만은 없어 일단 피해자를 조사한 경찰관의 말이라도 들어보자 싶어 증인으로 신청하였을 것이고 다행히 재판부도 증인채택을 해줍니다. 이 조사 경찰관이 법정에 나와 말한 증언에 담겨 있는 원진술은 “조사 당시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맞았다’고 진술하였다”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재판부는 이 조사 경찰관의 법정진술에 대해 원진술자가 진술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니므로 제316조 제2항 8)에 따라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법 규정에 따른 당연한 결론입니다. 다만, 어차피 애초부터 증거능력 없는 증거가 확실한데 검사는 왜 증거신청하고 재판부는 왜 증거채택한 거지? 라는 의문만 남깁니다.

검사가 신청한 또 다른 증거로는, 바디캠 영상과 그 영상 안에 등장하는 진술들을 녹취한 녹취서가 있었습니다. 이 바디캠 영상은, 일부분은 전문증거이고 다른 일부분은 본래증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영상 중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범행 직후의 그 현장 상황을 촬영한 부분은, 이를 통해 피고인이 피해자를 폭행하였음을 추단케 하는 간접증거에 해당합니다. 이는 본래증거이므로 진정성이 증명되면 바로 증거능력이 인정되지만, 범행 직후 혈흔이 낭자하고 피를 흘리는 피해자가 영상에 나타난다고 하여 이것만 갖고 바로 범행이 피고인의 소행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니 유죄의 증거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 사건 재판부도 이 본래증거 부분이 유죄 증거로는 불충분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당연한 판단입니다.
다음으로, 현장출동 경찰관이 그 현장에서 피해자에게 피해를 입은 경위를 묻자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맞았다고 말하는 장면이 바디캠으로 촬영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피해자의 원진술이 담긴 전문증거이고, 공소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직접증거입니다. 이 재판부는 바디캠 영상 중 이 전문증거 부분의 증거능력을 부정하였는데,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① 이 전문증거 부분은 형사소송법 제311조 이하의 전문법칙 예외에 해당하는 형태의 증거가 아니어서 증거능력이 없고, ② 설령 전문법칙 예외에 해당하더라도 수사기관이 작성한 영상녹화물은 독립적인 증거능력이 없으니 이 영상 역시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할 말 많은 판단이지만, 이 글에서는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다음으로, 검사는 현장출동 경찰관을 증인으로 신청했고 재판부도 이를 채택해서 증인신문이 이루어졌습니다. 검사가 보기에 조서, 조사자 증언, 바디캠 영상 모두 증거능력이 부정될 것으로 보이고 결국 제대로 된 증거가 하나도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범행 직후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의 말이라도 들어보기 위해 그를 증인으로 신청한 걸 겁니다. 이 현장출동 경찰관의 법정진술에 담긴 원진술은 “범행 직후 현장에서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맞았다’고 진술하였다”라는 것입니다. 이 현장출동 경찰관의 법정진술 역시 재판부는 제316조 제2항에 따라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이 역시, 어차피 증거능력 없는 증거인데 검사는 왜 증거신청하고 재판부는 왜 증거채택한 거지? 라는 의문을 남깁니다.

검사는 현장출동 경찰관이 범행 직후 현장에 도착해서 촬영한 현장 사진들도 증거로 제출하였습니다. 이는 본래증거이고 피고인의 범행이 있었음을 추단케 하는 데 쓰이는 간접증거입니다. 재판부는 이 사진에 대해, 증거능력은 있으나 유죄 인정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시하였습니다. 타당한 판단입니다.

마지막으로 검사가 제출한 증거는 피해자의 상처부위를 촬영한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피고인의 폭행범행을 증명하는 간접증거입니다. 재판부는 이 역시 증거능력은 있지만 유죄 인정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시하였습니다. 타당한 판단입니다.

이렇게 해서 앞의 표에서 보는 것처럼 결국 쓸 만한 증거라곤 남아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경찰관 증인 2명과 바디캠 인터뷰 영상은 아예 증거능력이 없고, 피해자의 법정진술은 그 자체는 증거능력이 있으나 진술 번복으로 인해 공소사실을 바로 인정할 직접증거로서의 내용은 없으며, 범행현장 사진과 피해자의 상처부위 사진은 간접증거에 불과하고 유죄의 증거로는 턱없이 부족할 뿐입니다. 따라서 이는 무죄 선고만 가능한 증거결정 결과일 수밖에 없습니다.
증거능력 문턱을 넘은 증거도 별로 없고 유죄 인정에는 부족한 간접증거 몇 개만 증거로 남았는데, 이렇게 실체판단보다는 형식판단 위주로 이루어지는 심리가 과연 공판중심주의에 부합하는 재판인지는 의문입니다. 공판중심주의라는 원칙이 증거능력 없는 증거를 잘 골라내자는 취지라기보다는, 법정에 풍부한 증거를 갖다놓고 사안의 진상을 제대로 가려보자는 취지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례만 봐도 정작 테이블에 올라온 증거가 없어도 너무 없습니다.

우리는 이른바 ‘조서재판’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인상을 갖고 있어, 재판에서 조서가 증인보다 먼저, 그것도 주된 증거로 전면에 등장하는 데 대한 거부감이 있을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의 재판이라면 검사가 조서를 증거로 내지 않고 증거동의 제도도 없으니 당연히 증인신청이 먼저였겠죠. 우리도 공판중심주의나 직접심리주의를 제대로 하자면, 검사가 조서를 먼저 증거로 낼 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피해자를 증인신청하는 게 맞을 겁니다. 다만, 우리 재판은 신속하고 효율적인 절차 진행을 위해, 먼저 조서를 증거로 제출해본 후 피고인이 이를 증거부동의하는 경우에만 원진술자를 증인으로 나오게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자백하거나 증거동의하면 굳이 피해자를 증인으로 부를 필요 없이 재판은 제1회 기일에 변론종결하게 되니, 신속하고 효율적인 재판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면 겨우 재판의 신속성과 효율성 따위를 위해 공판중심주의와 직접심리주의라는 훨씬 상위의 가치를 소홀히 해도 되느냐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죠. 그런데 모든 재판에서 모든 증인을 다 나오게 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그런 식으로는 재판 제도가 제대로 운영될 수 없습니다. 미국의 경우라면 피의자가 혐의를 자백하는 사건은 플리바게닝을 통해 미리 걸러지고 혐의를 부인하는 극소수의 사건만 재판으로 가지만, 우리는 자백사건까지 포함한 많은 사건이 재판에서 다루어지니 모든 재판의 증인들을 일일이 다 부르는 건 곤란합니다. 모든 재판에 모든 증인을 다 나오게 하려면 미국처럼 재판무대에 오르는 사건을 대폭 줄이는 조치가 먼저 필요하고, 그렇게 할 게 아니라면 우리 입장에선 수사절차와 조서의 활용을 통한 재판의 신속성과 효율성도 분명 중요한 가치라고 할 것입니다.


2. 수사기록과 서면재판의 역할

이제까지 서면재판식으로 진행되는 우리 법정의 풍경을 살펴봤습니다. 서면재판은 수사기관이 작성한 수사기록이 검사의 증거신청에 의해 법정에 등장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우리가 공판중심주의를 주창하며 경멸해 마지않는 이런 풍경이, 사실은 프랑스법의 흔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프랑스 파리 법원의 실제 수사기록 하나를 살펴보겠습니다.9) 1,0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예심사건의 수사기록으로, 피의자 3명 중 피의자 A와 B는 강도치사 혐의로 구속, 피의자 C는 장물취득 혐의로 불구속인 사건입니다.10) 사건 발생일은 2006. 1. 5., 검사가 예심개시를 청구한 날은 2006. 1. 13., 예심판사가 피의자들을 법정에 세우기로 결정하고 사건을 법원으로 보낸 날은 2년 가까이 지난 2007. 12. 20.입니다.

○ 이 사건의 수사기록은 여러 권의 서류철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Inventaire des pièce à conviction’(증거물 또는 압수물 목록)이라는 이름의 서류철을 시작으로, ‘Copies de pièce pénales’(변호인들에 대한 기록 복사 관련 서류들), ‘Cote A - Pièce de forme’(절차 관련 서류들), ‘Cote B - Renseignements et personnalité’(피의자별 인적사항, 개인적 특성, 정상관계 관련 서류들), ‘Cote C - Détention provisoire’(구속피의자별 신병 관련 서류들) 등 이름의 서류철들이 한데 묶여 있습니다.
○ 이어서, ‘Cote D - Pièce de fond’이라는 이름의 실체적 내용에 관한 서류철이 있고, 이는 크게 사법경찰의 현행범수사 내지 예비수사에 따른 수사서류, 검사의 수사지휘에 따른 수사서류, 예심판사의 예심서류 등 3가지 종류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이 서류철에 들어있는 각종 서류들을 요약해 옮겨보겠습니다.
- 2006. 1. 12.자 사법경찰이 작성한 송치서와 의견서
- 2006. 1. 5.자 수사보고서(중상을 입은 피해자가 발견되어 현행범수사를 개시한다는 내용)를 시작으로, 사법경찰은 이후 1. 12.까지 불과 8일간의 짧은 기간 내에 현장검증, 참고인 조사, 피의자 신문, 수사협조 의뢰, 피해자의 진료기록 입수, 통화내역 조회, DNA 검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방대한 양(이 많은 걸 다 타이핑하느라 도대체 발로 뛰는 수사는 언제 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의 수사보고서들을 생산하며 수사를 진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수시로 수사지휘 당직검사와 통화하며 수사진행상황을 보고하고 수사방향에 대해 지휘를 받았습니다. 다만, 당직검사가 수시로 바뀌는 관계로 전화지휘하는 검사도 계속 다른 사람입니다.
- 2006. 1. 11. 피의자 3명에 대한 체포 개시(그 후 검사의 연장허가를 받아 한 차례 연장)
- 2006. 1. 12. 전화지휘 과정에서 검사가 사법경찰에게 ‘예심판사와 의논해 예심절차가 개시되게 하겠다’라고 말하였고, 잠시 후 다른 당직검사가 사건을 송치할 것을 지휘하였습니다. 아직 수사가 완료되지 않아 추가수사가 필요한 상황인데, 체포시한이 다 되어가고 있고 시한이 만료되면 사법경찰 단계에서는 더 이상의 강제수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법경찰은 이날 총 634페이지 분량의 수사기록을 검사에게 송치하였습니다.
- 2006. 1. 13. 형사부 소속 검사가 예심개시 청구
- 2006. 1. 13.자 예심판사가 작성한 피의자 3명에 대한 제1회 피의자신문조서 3건
- 2006. 1. 14.자 예심판사의 수사지휘서
{Commission rogatoire, ‘수사지휘’ 대신 ‘위임수사’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이 예심판사는 수사기한을 2006. 3. 30.로 하여 구체적인 수사필요사항을 특정하지 않은 채 단지 ‘혐의 증명에 필요한 사항을 수사하라’는 식의 포괄적인 내용으로 지휘하였는데, 통상 예심판사의 제1회 수사지휘는 이처럼 포괄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집니다. 이후 4. 6. 수사기일이 연장(5. 15.까지)되었다가 4. 15. 일부 기록이 송치된 후, 5. 30. 나머지 기록이 모두 송치되었습니다. 사법경찰은 피의자 신문만 제외하고 나머지 다양한 방법의 수사를 진행하였습니다.}
- 2006. 2. 13.자 예심판사의 보완수사지휘서(수사기한은 2006. 2. 25.이고, 일부 특정한 사항에 대해 수사하라는 취지의 지휘입니다. 사법경찰은 2. 28. 다시 기록을 송치하였습니다.)
- 2006. 3. 31. ~ 6. 16. 예심판사가 작성한 피의자 A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 2건, 피의자 B와 C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 각 1건
- 2006. 6. 20.자 예심판사의 보완수사지휘서(수사기한은 2006. 7. 20.이고, 참고인 1명에 대한 조사와 금융자료 1건을 입수하라는 취지입니다. 기록은 7. 11. 다시 송치되었는데, 예심판사는 이렇게 간단한 사항도 사법경찰에게 지휘하여 수사하는 모양입니다.)
- 2006. 8. 17.자 예심판사가 작성한 음성감정 의뢰서
- 2006. 9. 19. ~ 10. 25. 예심판사가 작성한 피의자 A, B, C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 피의자들과 참고인들 사이의 대질조서, 사소당사자 진술조서, 참고인 진술조서 등 조서 총 14건
- 2007. 10. 26.자 예심판사가 작성하여 검사, 사소당사자, 피의자, 변호인 등에게 보낸 예심종결예정고지 및 의견요구서11)
- 2007. 11. 21.자 검사가 작성하여 예심판사에게 보낸 의견서12)
- 2007. 12. 20.자 예심판사가 작성한 중죄법원 이송결정서

우리 수사기록도 이런 프랑스 수사기록과 대략 비슷합니다. 다만, 위 사건의 수사기록만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프랑스가 우리보다 훨씬 짜임새 있고 꼼꼼한 수사를 하는 것 같습니다. 방대한 분량으로 상세한 내용의 수사기록을 만드는 건, 이 수사기록의 쓰임새 때문이지 않나 싶습니다. 쓸모가 많고 효용이 큰 서류이니 이렇게 정성들여 만드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조서는 원진술자의 말 한 마디로 쓸모없어질 수 있는 서류이니, 아무래도 정성이 들어가기 힘든 것과는 반대로 말입니다.
이걸 이런 식으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미법의 형사절차는 일반인인 배심원에 의한 재판을 전제로 한 제도이고, 대륙법의 형사절차는 관료인 직업법관에 의한 재판을 전제로 한 제도입니다. 그 영향 탓에 영미법은 수사기록 없는 재판이, 대륙법은 수사기록 위주의 재판이 이루어집니다. 재판 제도의 모습에 따라 수사기록의 쓸모와 효용이 퍽 다르다는 겁니다.

영미법에서는, 법을 모르는 배심원들에게 복잡하고 알아듣기 힘든 전문용어들이 잔뜩 쓰여 있는 수사기록을 재판하는 데 참고하라고 주는 건 의미 없는 일입니다. 간혹 글을 못 읽는 배심원이 있을 수도 있구요. 그래서 재판에 수사기록이 나오지 않고, 증인들이 우르르 나옵니다. 수사기관이 수사기록을 안 만드는 건 아니고 수사기록 일부가 재판에 나오긴 합니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단지 수사 자체를 위한 목적으로, 즉 수사진행 상황을 그때그때 기록해 두는 게 주된 목적이지 재판에서 증거로 쓰려는 게 주된 목적은 아닙니다.
이렇게 영미법 재판에서는 수사기록이 없는 대신 증인들이 직접 법정에 나와 증언하고 배심원들은 이 말들을 듣고 재판을 합니다. 다만, 필요한 증인이 재판에 다 못 나오는 경우가 분명히 있을 수밖에 없으니, 이때는 증인 대신 예외적으로 수사기록이 증거로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이 수사기록이 간혹 내용에 앞서 그 출처나 만들어진 경위 자체가 의심스러워 증거가치가 극히 적은 것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증거를 배심원에게 바로 주면 법을 모르는 배심원들이 그 증거가치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속아서 엉뚱한 판단을 할 수 있기에, 이를 막고자 전문법칙 같은 증거법이론을 만들어 증거가치가 적은 수사기록들을 걸러내고 배심원들에겐 양질의 증거만 제공될 수 있게 합니다.
그런데 배심재판에는 과도한 시간과 자원이 소요되니 모든 사건의 재판을 배심재판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선 대다수의 형사사건이 플리바게닝 등 정식재판이 아닌 간이한 방법으로 종결되고, 극히 일부의 사건만 배심재판(jury trial)이나 직업법관의 재판(bench trial)으로 진행됩니다.

이에 비해 대륙법에서는, 일찌감치 예심절차 제도가 발달하였습니다. 법률전문가인 직업법관이 재판을 하지만, 직업법관이 아주 많지 않은 다음에야 모든 사건을 다 꼼꼼히 재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재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재판절차 이전에 예심절차를 둡니다. 예심절차를 담당하는 예심판사 또는 검사(예심판사 제도가 없는 나라의 경우)가 재판에 준하는 심리를 미리 해보고 재판을 할 만한 사건만 골라서 재판에 보냅니다. 예심판사나 검사도 자신이 모든 사건의 심리를 다 할 여력은 안 되어 경찰에게 수사를 위임하는 방법으로 예심을 진행합니다. 예심은 재판을 준비하는 절차이니, 예심판사나 검사는 자신이 확인한 내용을 서류에 적고 기록으로 만들어(경찰의 수사기록도 포함) 재판에 보내서 재판에 참고하게 합니다.
이 예심기록이 바로 수사기록입니다. 이 기록은 예심과정에서 예심판사나 검사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심리를 하고 제대로 판단을 했는지를 재판법원 판사나 상급기관에게 보이고 심사를 받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므로, 비교적 꼼꼼한 내용과 방대한 분량으로 만들어집니다. 재판을 하는 판사는 이렇게 꼼꼼하고 방대하게 만들어진 수사기록이 있으니 정작 재판은 간이한 방법으로 진행합니다. 이미 같은 사법관인 예심판사나 검사가 열심히 사건을 들여다보고 필요한 사실관계들을 확인하고 잘 기록해서 재판에 보낸 것이기에, 재판을 하는 판사가 필요한 증인을 죄다 다시 재판에 부를 필요가 없는 겁니다.13) 즉, 수사기록은 각 서류들을 증거와 증거 아닌 것으로 분류할 필요도 없이 기록 통째로 증거로 활용되고, 이런 구조에서는 미국의 전문법칙 같은 까다로운 증거법이론도 필요가 없습니다.14) 수사기록 일체가 증거로 사용되니 증인이 법정에 나오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15) 이런 방법을 통해 영미법보다는 많은 사건이 정식재판에서 처리될 수 있습니다.

결국, 미국은 플리바게닝 제도를 이용해 정식재판으로 가는 사건을 대폭 줄이는 방식으로 제도의 효율적 운용을 도모하고,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예심절차와 수사기록을 이용해 사건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수사기록은 어떨까요? 판사나 검사에 의한 사법적 통제를 받지 않고 독립적인 수사를 하는 경찰이 만드는 수사기록, 그리고 객관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늘 의심받는 검사가 만드는 수사기록을, 사법관이 직접 또는 사법관의 주재하에 사법경찰이 만드는 프랑스의 예심기록과 동급으로 놓을 수는 없겠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도 수사기록의 활용도는 매우 큽니다.
형사사건에는 피고인이 범행을 자백하는 사건이 부인하는 사건보다 훨씬 많습니다.16)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백사건에서는 조서를 비롯한 수사기록이 재판에 그대로 받아들여져 유죄의 증거로 잘 활용되고 있고 절차가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운용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17) 부인사건 재판에서도, 물론 구두주의에 충실한 절차 진행이 바람직하겠으나 필요하다면 조서도 심리의 자료로 충분히 활용되고 있습니다.18)
게다가 모든 사건이 반드시 재판으로 가는 게 아니고 재판으로 가는 사건은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수사를 해본 결과 유죄의 증거가 충분하지 않아 재판으로 가지 않고 불기소 처분되는 사건이 훨씬 더 많습니다. 불기소 처분되는 사건도 당사자의 이의제기나 상급기관의 관리감독을 대비하거나 미제사건인 경우 나중에 해결될 것을 기대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수사기록은 반드시 만들어놓아야 하고 그 중요성이 더 큽니다.
공판중심주의와 직접심리주의에 입각한 재판을 제대로 하자면, 조서가 등장하는 대신 그 원진술자가 재판에 나오는 게 바람직하듯이 수사기록이라는 서면 대신 이를 작성한 경찰관이 직접 증인으로 나와 그간의 수사과정과 피고인을 입건하게 된 경위 등을 구두로 설명하는 게 바람직할 겁니다. 조서가 만들어지지 않고 police report를 증거로 사용하지 않는 미국의 재판이라면 당연히 처음부터 경찰관이 증인으로 나올 것입니다. 미국은 플리바게닝으로 다수의 자백사건을 미리 걸러내고 적은 수의 부인사건만 재판을 하므로, 모든 재판에 경찰관이 증인으로 나오는 게 가능할 수도 있을 겁니다.
반면, 프랑스의 재판이라면 수사기록 일체가 증거로 쓰이는 체제이니, 우리처럼 조서나 수사기록이 그대로 증거로 쓰이고 여기 적힌 내용이 특별히 다투어지지 않는다면 경찰관이 증인으로 나오는 일도 드물 것입니다. 우리는 자백사건을 포함해 많은 사건을 재판절차에서 다루는 체제이므로, 모든 재판에 경찰관을 증인으로 나오게 하는 게 곤란하여 프랑스처럼 수사기록이라는 서면이 먼저 증거로 등장합니다. 재판할 사건이 많은 우리 제도는 재판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고려하여 일단 서면증거를 먼저 활용하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증인을 나오게 함으로써, 우리 여건에 맞게 나름의 적절한 방식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예심절차의 역할

저는 공판중심주의가 이미 확고한 원칙과 기준으로 선 이 시대에, 조서와 수사기록 위주의 서면재판이 중요하다는 시대착오적 주장을 아직도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제가 주장하는 건 그게 아닙니다. 공판중심주의 대신 조서와 수사기록으로 서면재판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라, 서면재판이 그렇게 이상하고 부당한 재판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그 이유는 예심절차의 역할 때문입니다. 재판절차가 적정규모의 체구를 유지하며 온전하게 굴러가려면 예심절차의 존재가 필수적이고, 예심절차를 두려면 프랑스 제도처럼 조서와 수사기록 위주의 서면재판은 당연히 따라오게 되는 겁니다.19) 예심절차를 안 두려면 미국처럼 플리바게닝을 활용해서 아예 재판절차의 사이즈 자체를 줄여버리든가요.
우리는 플리바게닝이 없고 예심절차가 있는 나라입니다. 그럼 우리에게 예심절차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앞에 보신 프랑스의 수사기록에는, 우리와 좀 다른 부분도 눈에 띕니다. 프랑스는 재판 전 단계에서 예심판사(Juge d'instruction)가 주재하는 예심절차가 있고, 예심절차를 통해 예심판사가 수사과정에 관여합니다. 예심절차란 해당 사건이 재판절차에 보낼 만한 것인지, 유죄를 받을 만한 증거는 갖춰져 있는지 여부를 재판 전 단계에서 미리 심사한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사건을 전부 다 재판에 보내면 재판이 마비될 것이니 도저히 가능한 일이 아니고, 재판을 할 만한 소수의 사건만 재판에 보냄으로써 재판 제도가 제대로 굴러가게 하기 위해 미리 사건을 검토하고 추리는 절차가 필요한 것입니다. 다만, 단지 현재 있는 자료만 갖고 그냥 심사만 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증거를 수집하는 활동, 즉 수사와 같은 활동을 한다는 게 특이한 점입니다.20)
이 예심판사는 어떤 식으로 일을 할까요? 어떤 사건을 재판에 보낼지 여부를 판단해 보려면, 먼저 피의자 본인의 말을 들어볼 겁니다. 어떤 사건이든 그 행위주체인 피의자가 그 사건에 대한 가장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을 테니, 먼저 그 사람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일 겁니다. 피의자 본인의 말을 들어보는 게 가장 중요하니 그런 기회를 반드시 확보하기 위해, 말을 안 들려주려고 하는 피의자는 일단 체포하거나 구속해 두기도 합니다. 피의자가 범행을 부인한다든지 해서 피의자의 말만으로는 판단이 서지 않으면 그 다음으로 피해자나 다른 목격자 등을 만나 더 이야기를 들어볼 거고,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싶으면 압수수색을 해보기도 하고 계좌거래내역을 보기도 하고 통화내역을 보기도 하면서 점차 사건의 진상에 접근해 갈 겁니다. 이러는 과정에서 확인한 내용들을 서류에 적어놓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자료들이 모이게 되고 이걸 다 기록으로 묶어놓으니 이게 곧 증거가 되고, 결국 이 과정이 바로 ‘수사’인 겁니다.21)
다시 말하면, 예심절차라는 건 피의자를 재판에 보낼지 여부를 판단(공소권 행사)하기 위해 이런저런 필요한 사실관계를 확인(수사)하는 절차입니다. 이렇게 예심이 곧 수사이고 공소권 행사를 위한 판단과정이 수사이므로, 수사란 공소권 행사와는 별개의 독립적인 절차가 아니라 공소권 행사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 바로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므로, 공소권 행사와 수사는 분리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예심판사는 소수 인원으로 구성된 소규모의 기관으로서 이들이 모든 사건의 심리를 다 할 여력은 안 되니 사법경찰에게 수사를 위임하는 방법으로 예심을 진행하고, 예심은 재판을 준비하기 위한 절차이니 재판하는 판사가 보게 할 목적으로 예심절차에서 확인한 사실관계들을 자세하게 기록해 놓는데 이게 바로 수사기록입니다. 재판을 하는 판사는 이미 동일한 자격을 가진 사법관인 예심판사가 꼼꼼히 심리를 하여 그 결과를 자세히 기록해놓은 수사기록이 있으니, 정작 재판은 전문법칙 같은 복잡한 규칙 없이, 증인도 별로 없이 비교적 간이한 방법으로 진행합니다.
다만, 모든 사건의 예심절차를 예심판사가 다 담당하는 건 아닙니다. 예심판사가 담당하는 사건은 극히 일부이고,22) 대부분의 사건은 검사가 예심절차를 담당합니다. 즉, 검사가 사법경찰을 지휘해 현행범수사나 예비수사라는 형식의 수사를 진행하여 재판에 보낼 사건을 검토하고 추리는 역할을 맡고 있고, 이 역시 그 성격은 예심절차에 해당합니다.
모든 형사사건을 전부 다 정식재판으로 바로 보내는 나라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재판 전 단계에서 상당수의 사건을 걸러내고 일부의 사건만 재판 단계로 들여보냅니다. 어느 나라나 사법자원은 예산과 인력상 무한하지 않으니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경우, 모든 형사사건을 정식재판인 배심재판이나 직업법관의 재판에서 다룰 수는 없으니 절대다수 사건을 그 전 단계에서 플리바게닝으로 종결시켜버리고 나머지 극소수의 사건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사법자원을 쏟아붓는 식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형사사법 제도가 플리바게닝 제도를 이용해 상당수의 사건을 처리하고 소수의 중요사건에만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처럼, 프랑스의 제도는 ① 예심판사와 검사가 사법경찰에 수사를 위임하면서 주재하는 재판 전 예심절차의 운영과 ② 재판에서 수사기록을 증거로써 활용하는 심리 방식을 통해, 상당수의 사건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면서 소수의 중요사건에만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입니다.

프랑스법을 계수한 일본의 영향으로 우리도 일제시대에 예심판사 제도가 운영되었습니다. 예심판사 제도는 해방과 동시에 사라지고, 예심판사 제도가 폐지된 독일 등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 역할을 검사가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즉, 우리나라 검사가 담당하는 수사절차가 바로 재판에 보낼 사건을 미리 검토하고 추리는 예심절차이고, 2020년까지는 검사가 사법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바탕으로 이 예심절차를 운영하여 왔습니다.
그러다 2020년 이른바 ‘1차 검수완박법’에 따라, 현행 검찰청법 제4조 제1항 제1호 단서에서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를 부패범죄와 경제범죄 등 일부 범위로 제한한 데 이어,23) 같은 항 제2호에서는 일반사법경찰관리에 대한 수사지휘를 금지하였습니다.24)
프랑스의 예심판사와 검사는 각각 예심절차를 담당하기에 수사권을 갖고 수사를 할 수 있는데, 예심판사와 검사가 수사를 하는 방식에는 ‘직접수사의 방식’과 ‘수사지휘의 방식’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의 예심판사와 검사는 대개 직접수사의 방식보다는 수사지휘의 방식으로 수사를 합니다. 수사지휘의 방식으로 수사한다고 하여 예심판사와 검사의 수사가 아닌 게 아니고, 경찰이 직접 수사한다고 하여 경찰의 수사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수사권의 행사주체는 예심판사와 검사이므로 오직 ‘예심판사의 수사’나 검사의 수사’가 있을 뿐이고, ‘경찰의 수사’나 ‘경찰 수사권 독립’이라는 개념은 없습니다. 경찰은 독립적으로 수사하는 게 아니라 사법관인 예심판사와 검사로부터 사법권을 위임받아서 그 위임범위 내에서 사법기능 중 하나인 수사를 행하는 것이고, 따라서 이는 문자 그대로 ‘사법’경찰로서의 행위인 겁니다.
이러한 프랑스 제도와 비교할 때, 우리의 경우엔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를 제한하여 검사의 수사 중 ‘직접수사 방식’의 수사를 크게 제한한 데 이어, 일반사법경찰관리를 지휘할 수 없게 하여 ‘수사지휘 방식’의 수사도 금지시켰습니다. 즉, ‘검사의 수사’를 전면적으로 금지시킨 겁니다. ‘수사ㆍ기소 분리론’에 입각한 아이디어이고, 검사는 공소권 행사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검사의 역할에서 수사를 빼고 공소권 행사로만 한정지어야 한다는 ‘수사ㆍ기소 분리론’의 주장에도 난점이 있습니다. 공소권 행사라는 기능이 모든 사건은 무조건 공소를 제기하여야 한다는 건 아니니 공소 제기 외에 당연히 불기소 처분도 그 내용으로 하는데, 2020년 ‘1차 검수완박법’에서는 불기소 처분을 ‘불송치 결정’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경찰이 할 수 있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경찰이 모든 사건을 검사에게 송치하던 종전의 ‘전건송치 제도’에서, 이제는 기소 의견이 아닌 사건은 송치하지 않음으로써 경찰 자체적으로 종결할 수 있게 된 겁니다. 형사사건에는 기소되는 사건보다 불기소되는 사건이 훨씬 더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검사의 본질적인 권한이라는 공소권 행사 기능마저 사실상 온전하지 않게 된 상황입니다.
결국 프랑스 검사와 비교할 때, 2020년 ‘1차 검수완박법’이 시행되기 시작한 2021년 1월 1일 이후 우리나라 검사는 검사 제도 본래의 역할인 직접수사 방식의 수사와 수사지휘 방식의 수사를 포함한 ‘검사의 수사’, 그리고 ‘공소권 행사’ 모두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되었기에, 실질적으로 이젠 ‘검사’라고 부르기도 힘든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서면재판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면서, 재판 전 단계에 반드시 예심절차가 있어야 해서 그렇다고 말씀드리고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사법관인 예심판사와 검사가 예심절차를 담당하고 있으니 사법적 영역 안에서 예심 기능이 이루어지고 있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해방과 동시에 예심판사 제도가 폐지되면서 사법관도 아닌 준사법관인 검사가 오랫동안 예심을 담당해 오다 이제는 사법적 영역을 아예 벗어나 경찰이 예심을 맡게 되었습니다. 2026년 10월부터 경찰은 독립적인 수사를 행할 수 있고 불송치 결정까지 담당하게 됨으로써 사실상 공소권 행사 기관이 되었습니다. 사법적 영역 밖에서 사법관의 지휘도 받지 않으니 이제는 ‘사법경찰’이라고 부를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본래 예심절차 때문에 서면재판이 필요한 것이었는데, 이제 이렇게 예심절차의 성격과 담당기관이 크게 달라진 상황이 되었으니 사법적 영역 밖에서 만들어진 수사기록을 갖고도 지금처럼 서면재판을 계속 유지할 것이냐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재판을 할 것이냐라는 선택의 문제가 남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4. 정치적 중립성 보장 대책

경찰이 예심절차를 담당하게 된 게 부당하니 다시 검사에게 예심절차를 돌려주자고 주장하는 건 아닙니다. 지금까지 우리 검찰 제도가 프랑스의 오리지날 제도처럼 해오지 않았으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고 해도 역시 또 마찬가지일 겁니다. 검찰은 안 바뀔 겁니다. 다만, 재판 제도의 작동원리에 비추어 볼 때 새로운 우리나라의 제도가 비교법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사실 되돌아보면, 우리나라 검사는 예심절차를 담당하면 안 되었습니다. 사법관도 아니고 그럴 자격이 없는데 예심절차를 맡았으니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겁니다. 우리나라 검사가 가장 많은 비난을 들어온 지점은 정치적 중립성 이슈였습니다. ‘정치’는 국민 모두의 삶을 곧바로 통제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말 중요한 분야이므로, 정치와 관련된 일을 다루는 직업은 무엇보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무사공평한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검찰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는커녕 정치와 한 몸인 기관이었으니 사실 예심을 담당하면 안 되었던 겁니다.

예심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이 중요하다고 논의되기는 프랑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심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프랑스는 이런저런 노력을 해왔습니다.
일단 예심기관의 대표격인 예심판사는 정치적 중립성 면에서는 탁월한 기관입니다. 그 신분이 판사이니 재판독립 원칙에 따라 정치적 영향력이 좀처럼 미치기 힘듭니다. 다만, 이 예심판사 제도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제도입니다. 프랑스가 1808년 처음 이 제도를 만들어 19세기 내내 전 세계에 수출하였지만, 차츰 이 제도를 포기하는 나라들이 등장하기 시작해서 독일은 1974년에, 이탈리아는 1989년에, 오스트리아는 2001년에 예심판사 제도를 폐지하였습니다.
프랑스에서도 이미 오래 전부터 예심판사 제도를 없애자는 논의가 줄곧 있어왔는데,25) 예심판사 제도를 폐지하고 검사에게 예심판사의 역할을 대신 맡기는 데는 전제조건이 하나 따라붙습니다. 예심판사는 그 역시 판사 신분이므로 재판독립 원칙에 따라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반면, 검사가 법무부장관의 지휘감독을 받는 체제에서 예심을 맡는다면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중립성이나 수사의 공정성 면에서 취약할 수 있으니 검사의 정치적 중립성이나 독립성이 지금보다 더 보장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26)
그렇지 않아도 프랑스에서는 검찰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법무부와 검찰 사이의 거리두기가 꾸준히 진행되어 왔습니다. 프랑스 검찰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행정부에 소속되어 법무부장관을 정점으로 한 위계조직 속에 놓여 있는 관계로, 수시로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렇게 정치적 중립성 측면에서 미흡한 검사가 사법관임을 근거로 강제처분권을 행사하거나 판결의 성질을 갖는 처분을 행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해 종종 의문이 제기되고 유럽법원이나 국내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한때 검찰을 법무부로부터 완전히 독립시켜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시키자는 내용의 법률안이 제안되기도 했고(1997년), 1999년 이후 오랜 논의 끝에 법무부장관이 개별 사건에 관하여 검찰을 지휘하는 것이 아예 금지되기에 이르렀습니다(2013년).
그뿐 아니라, 검사 인사와 징계에 관한 법무부장관의 권한을 제한하는 방안도 꾸준히 시도되고 있습니다. 검사에 대한 인사와 징계를 의결하는 ‘고등사법위원회(Conseil Supérieur de la Magistrature)’의 의장과 부의장 자리에서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을 제외시키고 그 위원들의 구성을 다양화한 데 이어(2008년), 판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검사 인사와 징계에 관한 고등사법위원회의 의견에 구속력을 인정하는 방안이 전임 올랑드 정부에 이어 현 마크롱 정부에서도 계속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법기관이 정치인과 관련된 사건을 다루자면 늘 각 진영에서 정치적 중립성 문제로 시비를 걸곤 하니, 이런 사건에 대해서는 일반 사법 제도와는 아예 다른 별개의 제도를 고민해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심각합니다. 국가의 중요한 의사결정과 분쟁이 정치과정이 아닌 사법과정으로 해소되는 ‘정치의 사법화’는 결국 ‘사법의 정치화’를 낳게 됩니다. 정치 문제가 사법부에서 해소되는 경우가 많아질수록 임명권을 가진 대통령이나 의회의 다수파는 중립적이고 공정한 인사보다는 자기 진영 사람을 법원에 집어넣기 위해 노력하게 되고, 이렇게 법원이 당파성을 띠게 되면 그 판결 또한 당파적으로 되기 마련입니다.27) 이렇게 정치인 사건이 일반사법절차로 오면 사법절차 자체를 오염시켜버리고 마니, 아예 정치인 사건만을 전담하는 별도의 제도를 따로 마련함으로써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를 동시에 방지하는 방안을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법 앞에 평등’을 실천하거나 지킬 능력이 안 되는 우리의 현실을 쿨하게 인정하고, ‘법 앞에 평등’이라는 선비같은 말만 고상하게 되뇌고 있지 말고 그냥 정치인들은 특별대우를 해주자는 말입니다.

2018. 1. 16.자 프랑스 일간지 Le Figaro의 기사 “Urvoas 사건 : 국가사법재판소가 수사를 개시한다(Affaire Urvoas : la Cour de justice de la République ouvre une enquête)”를 소개합니다. 2016. 9.부터 파리 근교의 낭떼르 검찰이 하원의원 Thierry Solère에 대해 탈세 등 혐의로 예비수사를 진행하던 중, 2017. 6. 29. 그의 주거지 압수수색에서 당시 올랑드 정부의 법무부장관 Jean-Jacques Urvoas가 Solère 의원에게 텔레그램 메시지로 이 수사 관련 정보를 제공한 정황이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낭떼르 검찰 검사장은 형사처벌이 가능한 수준의 기밀누설 정황이 발견되었다고 언급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에 의하면 이 Urvoas 장관의 공무상기밀 누설 사건은 일반 검찰청이나 법원에서 수사하거나 재판하지 않고, ‘Cour de Justice de la Republique’라는 기관에서 수사하고 재판한다고 합니다.28) 이 국가사법재판소는 1993년 헌법 개정으로 신설된 헌법기관으로, 정부 고위공직자가 직무수행 중 저지른 범죄행위를 수사하고 재판하기 위한 특별사법기관입니다. 이러한 성격의 범죄는 정치적인 책임이나 고려가 필요한 특수성이 있어 일반수사기관이나 재판기관에서 일반사건과 동일한 절차나 방법으로 처리하기는 적절하지 않은 점을 감안하여 특별한 관할을 가진 사법기관을 두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오래 전부터 ‘Haut Cour de Justice’(정치재판소 또는 최고정의재판소라고 번역)라는 기관을 두고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공직자의 직무상 범죄를 다루게 하였는데, 1993년 새로이 국가사법재판소를 신설하면서 Haut Cour de Justice는 대통령의 직무상 범죄만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국가사법재판소는 정치적 사건에 대한 지나치게 관대한 처분으로 인해 그동안 많은 비판이 있어왔습니다. 1993년 이후 겨우 7명의 정부 구성원들이 이 기관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그중 4명만이 가벼운 처벌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나마 이마저도 형이 면제되었다고 합니다. 국가사법재판소는 상하의원 각 6명씩과 대법원 판사 3명 등 총 15명으로 구성되는데, 정치인 사건을 같은 정치인이 다수인 기관에서 처리하니 팔이 안으로 굽는 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런저런 비난과 효용성에 대한 의문 때문에, 마크롱 대통령은 이 기관을 폐지하겠다는 발표를 하기도 하였습니다.29)
유독 정치인에게 관대한 건 프랑스나 우리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그런 걸 보면 ‘정치’는 정말 유니크한 영역입니다. 그러나 팔이 안으로 굽는 문제가 있더라도, ‘사법의 정치화’로 사법절차가 오염되는 걸 방지하는 게 더 득이 큰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국가사법재판소는 검찰총장의 소추 또는 일반인의 고발에 따라 심사위원회(Commission des requêtes) 및 수사위원회(Commission d'instruction)를 거쳐 재판에 이르게 됩니다. 이번 법무부장관 사건은 검찰총장이 국가사법재판소의 수사위원회에 소추를 제기하였습니다. 그리고 2019. 9. 검찰총장의 ‘집행유예가 붙은 징역 1년’ 구형보다 가벼운 ‘집행유예가 붙은 징역 1월 및 벌금 5,000유로’의 형이 선고되었습니다.30)

요약하면, 우리나라 검사는 정치권으로부터의 중립성이나 독립성이 극히 취약하고, 프랑스 검사처럼 판사와 동등한 지위의 사법관도 아니어서 직무수행의 객관성에 대해 늘 의심을 받아왔습니다. 이런 기관이 예심절차를 담당하면 안 됩니다. 프랑스는 예심절차의 공정성이 중요함을 인식하여 이를 담당하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사법의 정치화’ 방지에도 신경을 써왔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노력도 없이 정치권력과 검찰이 항상 밀착되어 있었으니 예심절차를 운영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새로운 공소권 행사 기관으로서 예심절차를 담당하게 된 경찰이 검찰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정치적 중립성이나 독립성을 잘 갖추어 예심절차를 제대로 운영하게 할 대책에 대해 우리는 고민해야 할 시점이겠습니다.


5. 조직범죄 대책

예심절차를 예심판사가 담당하든, 검사가 담당하든, 경찰이 담당하든, 그건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형사사법에서 가장 중요한 건, 범죄자들을 제때 잘 적발하고 처벌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겁니다. 이게 형사사법의 목적인 거고, 재판을 어떻게 하든, 예심절차를 어느 기관이 맡든 따위는 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프랑스는 어떻게 하고 있고 우리는 뭘 하고 있는지 비교해 보겠습니다.

모성준 판사님의 『빨대사회』(2024년 박영사 刊)는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을 강하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정책을 설계하는 분들은 꼭 보셔야 하는 책인데, 과연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책에 의하면, 다른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지금 마약 범죄, 보이스피싱 범죄, 투자사기 범죄, 금융증권 범죄, 자금세탁 범죄 등의 ‘조직범죄’가 창궐하고 있습니다. 과거 조직폭력배에 의한 조직폭력 범죄가 아니라, 경제적 이익을 위해 다수인이 결합하여 조직적, 지능적, 분업적으로 범죄를 행하는 문자 그대로 ‘조직적 재산범죄’ 말입니다. 이러한 범죄의 특징은, 핵심가담자들의 검거를 피하기 위해 여러 공모자들에게 각각의 역할을 분담시키고 이를 하부에서 상부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로 조직하며 그 각 단계 사이에는 서로 누가 누군지를 알지 못하게 설계함으로써 이 공모자들과 핵심가담자들 사이의 ‘공모’ 사실이 증명되기 매우 어렵게 한다는 점입니다. 핵심가담자들이 검거되기 힘들고 설령 검거되더라도 법망을 빠져나가기 쉬운 구조라는 것이죠. 우리가 흔히 보는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처럼, 맨 하부의 현금수거책들만 검거되고 제일 상부의 주범들은 좀처럼 검거되지 않는 경우 말입니다.
전통적인 형법과 형사소송법의 법규정과 이론과 제도는 1명의 범죄자가 1개의 범죄를 저지르는 기본적인 상황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인데, 다수인이 결합하여 다수의 피해자들을 상대로 다수의 범행을 동시다발적으로 벌이는 조직범죄 사건이 너무나 큰 피해를 끼치고 있고 이에 대해서는 전통적인 대책이 아닌 별도의 특별한 대처방안이 시급합니다. 우리나라가 형사사법의 목적을 잊고 이 심각한 문제에 대해 마냥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미국인 작가 마이클 코넬리(Michael Connelly)가 쓴 법정소설 중에 『파기환송(The Reversal)』(2016년 알에이치코리아 刊)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2011년에 국내 상영된 영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로 잘 알려진 미키 할러(Mickey Haller) 변호사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이 미키 할러 변호사 시리즈에는 플리바게닝이 아주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형사절차의 시작은, 바로 플리바게닝을 할지 말지 여부에 대한 검사와 변호인의 머리싸움입니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건에서 플리바게닝이 검토되고 있고 실제로도 미국에서는 이 절차를 통해 대다수의 형사사건이 정식재판 전에 종결된다고 하는데, 이처럼 플리바게닝은 미국 형사사법절차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제도입니다.
이 『파기환송』에서는 할러 변호사가 총기상해 범죄 피의자를 위한 플리바게닝을 시도하였고, 다음 작품 『다섯 번째 증인(The Fifth Witness)』(2017년 알에이치코리아 刊)에서는 살인 범죄 피의자를 위한 플리바게닝을 시도합니다. 이런 범죄는 피해자가 존재하는 강력범죄인데요, 우리나라라면 이런 류의 사건에서 플리바게닝을 시도한다는 건 검사 입장에선 매우 쉽지 않아 보입니다. 범인임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 가해자가 있고 중범죄자이니 대개 수사기관에 잡혀있기까지 한 상황일 텐데, 증거가 좀 부족하다고 해서, 무죄판결 가능성이 좀 있다고 해서 가벼운 죄로만 살짝 처벌하고 만다는 건 그 누구도 수긍하지 않을 겁니다. 이런 중범죄자를 봐준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검사는 어떻게 해서든 중범죄자일수록 법정에 세우려고 기를 쓰게 마련입니다.
게다가 이런 류의 강력범죄는, 수사가 아주 어렵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잘하면 범인을 잡아낼 가능성이 꽤 있습니다. 왜냐하면 강력범죄는 눈에 보이는 범행현장이 있고, 피해를 당한 사람이 확실하게 있고, 세상이 좋아져서 지문이나 DNA 감정과 같은 과학수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동네 여기저기에 설치되어 있는 CCTV나 주차차량에 있는 블랙박스에 범인의 단서가 포착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긴 세월 오리무중이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마저도 결국에는 범인이 잡히고야 말지 않습니까?

이런 류의 강력범죄 말고, 정작 플리바게닝이 필요하거나 적절한 범죄는 따로 있습니다.
우선은, 범죄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자가 없는 범죄가 좋겠습니다. 피해자의 피해감정을 해하면서까지 국가가 플리바게닝으로 범인에게 혜택을 부여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론, 수사와 증명이 정말로 쉽지 않은 성격의 범죄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조직범죄가 이에 해당합니다. 조직범죄를 흔히 길거리범죄라고도 부르는 단발성의 단독범행인 살인, 절도, 폭력 등의 범죄와 비교해 보면, 길거리범죄는 범죄 직후 현장에 흩뿌려진 증거들을 신속하게 수집하고 범인을 추적해서 단시간에 결론을 볼 수 있는 성격의 범죄인 데 반해, 조직범죄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증거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하부 조직원으로부터 상부 조직원에게로 한 단계씩 차근차근 올라가는 방식으로 수사가 진행됩니다. 물적 증거보다는 진술과 같은 인적 증거가 더 중요하고, 외부의 목격자보다는 내부가담자의 협조가 필요하고, 수사에 다수의 인력과 오랜 시일이 소요됩니다.
사회가 발전하고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조직범죄가 급증하고 그에 대한 국가적 대응태세가 더욱 긴요해지며, 조직범죄에 대처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많은 나라가 서로 국경을 접하고 있고 그 국경 사이로 중대범죄가 쉽게 넘나드는 유럽의 예가 특히 더욱 그러한데, 각 나라마다 전문수사기관 신설, 특별수사기법과 제도 도입 등을 통해 국가의 범죄대응역량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 반대급부로, 사안 경미하고 증거 명백한 길거리범죄에 대해서는 신속처리절차 도입 등을 통해 사법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데 애쓰고 있습니다.31)
수사기관이 정말로 많은 노력을 들여 수사하여야 할 현대사회의 범죄는 바로 이렇게 다수인이 조직적으로 행하는 조직범죄입니다. 고전적인 범죄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범죄여서, 수사기관은 전문성이 필요하고 수사기법도 전문적이고 정교하여야 하며 수사가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조직범죄를 수사하기 위해 우리 수사기관이 갖고 있는 무기는 그리 신통치 못합니다. 수사기관의 전문성이 부족하고, 길거리범죄를 수사하는 데 동원하는 수사기법이나 조직범죄 수사에 쓰는 수사기법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특수한 수사기법과 제도에 관한 입법적 뒷받침이 부족하고, 비교법 연구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플리바게닝, 참고인 강제구인, 사법방해죄, 감청 등의 제도는 제대로 된 이해도 없이 온갖 선전선동구호만 난무하는 우리 실정에서 요원하기만 합니다.

수년 전 우리나라 법무부와 검찰에서 플리바게닝 제도의 도입을 시도하였다가 무산된 적이 있습니다. 법무부나 검찰에서 플리바게닝 제도에 대해 얘기할 때 흔히 있을 수 있는 비판이, 수사의 효율성만을 강조하여 물증 확보에 노력하지 않고 피의자의 자백만 편하게 받아내려는 수사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것입니다. 또, 모름지기 국가기관이란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무장하여 주어진 여건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 범죄자들을 잡고 범죄피해자들을 보듬어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네, 맞습니다. 당연히 지당하고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현실은 바로 보려 하지 않고 애써 눈을 감은 채, 마치 공자님인 양 맹자님인 양 선비처럼 늘 점잖은 목소리로 지당하고 옳은 말만 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일본인 학자 오구라 기조가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2017년 모시는사람들 刊)라는 책에서, ‘한국은 도덕지향적인 나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게 한국인이 도덕적으로 살고 있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도덕지향적인 것과 도덕적인 건 다른 것이다’라고 아프게 지적했듯이 말이죠.
저는 정치인들이 연루된 사건과, 그런 사건들을 놓고 각각의 진영에 따라 진영의식에만 사로잡혀 거친 목소리를 드높이곤 하는 소동들을 지켜보면서 한 가지 인사이트를 얻었습니다. 바로, ‘이제 제발 위선 떨지 말자’라는 생각입니다. 사실은 진심도 아니면서 그저 남 듣기 좋으라고 아름답고 좋은 말만 늘어놓는 이중성과 위선, 우린 그걸 그동안 참 많이도 목격해왔습니다. 이젠 우리도 좀 솔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도덕지향적’으로 점잖게 지당하고 옳은 말만 하기에 앞서, 과연 그게 논리적인 논리이고 실현은 가능한 얘기인지, 과연 우리 앞에 놓인 실상과 문제점은 무언지를 똑바로 보고 제대로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제 우리는 수사기관이 전지전능하지 않은 존재라는 현실을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수사기관은 어떤 진실이든 다 밝힐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이고 수사권을 갖고 있으면 밝히지 못할 의혹이 없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한참 전부터 대한민국은 형사법 만능주의 국가가 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회적 논쟁거리는 죄다 형사절차 안에 집합시켜 놓고 형사법에 따른 해결만을 기다립니다. 사회적 논쟁거리의 직접당사자들은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해결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그 일의 당사자도 아니고 문외한에 불과한 판검사의 손에 해결을 맡겨버리고는 그 처분만 하염없이 기다리곤 합니다. 그러고도 정작 그 결과에는 승복하지 않고 각 진영별로 아전인수격 주장만 일삼습니다.
그런데 수사기관은 그렇게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고 수사권이라는 권한도 무슨 대단한 요술방망이가 아닙니다. “조사하면 다 나와”, 이걸 진실로 생각하는 분들이 아직도 있던데요, 이런 말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조사한다고 속 시원하게 모두가 알고 싶은 게 다 나오는 게 아니죠. 저의 이런 변명 같은 주장에 대해서, 진실을 발견하겠다는 수사기관으로서의 의지나 능력이 모자람을 지적할 수는 있겠지만 언제나 진실을 발견하는 게 가능함을 전제로 당연하다는 듯 수사기관의 역할과 임무를 얘기해서는 곤란합니다. 이는 세상의 모든 범죄를 빠짐없이 적발하겠다고 모든 장소에 CCTV를 설치하자거나 모든 사람들의 휴대전화와 모바일 메신저를 국가가 마음껏 보게 하자는 게 전혀 말이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런 당연한 현실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수사기관의 권한을 늘리고 힘을 키워주자는 주장이 결코 아닙니다. 수사기관의 권한을 늘리자는 해결책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자칫 수사기관을 통제 불가능한 공룡으로 만들고 수사기관의 공명심과 과욕에 따른 부작용만 조장하는 위험한 발상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수사기관이 모든 범죄를 제대로 잡아내고 증명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설령 수사기관이 모든 범죄를 잡아내고 증명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지라도, 그 때문에 야기될 수 있는 인권 침해와 사생활 침해 등의 부작용을 예방한다는 더 중요한 가치를 위해서, 이제 수사기관의 역할과 임무에 대해 현실과는 유리된 그저 ‘도덕지향적’이기만 한 말은 경계하자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이미 그런 현실을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바로 플리바게닝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플리바게닝 제도의 취지는 수사기관의 한계를 인정하고 수사기관의 수사를 줄이자는 것으로, 바로 수사기관의 증명이 부족할 수밖에 없어 생기는 빈틈의 존재는 그 존재대로 인정하되 그 빈틈을 그냥 방치해두지만 말고 뭐라도 어떻게든 메워놓자는 게 그 취지라고 생각합니다.32) 플리바게닝 제도를 얘기하면 이를 수사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하는 비난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 제도는 수사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 맞습니다. 사회적으로 필요성이 있어 구성원들의 공감대가 이루어진다면 수사편의주의적 발상도 가능한 것이고, 수사편의주의를 위해 플리바게닝을 한다는 것인데 이를 수사편의주의라고 비난하는 것은 동어반복에 불과합니다.
일본의 경우 미국의 제도를 참고하여 변형된 형태의 플리바게닝 제도를 2016년에 도입하였습니다. 그 도입 이유가 재미있는데, “종래에는 진술증거 수집의 수단이 한정되어 진술증거의 수집을 오로지 조사에 있어서의 조사관의 노력에 의존하고 있었고, 또한 허위의 자백조서가 오판의 원인이 되었다고 지적을 받는 사태에 이르게 된 반성적인 입장에서, 또한 최근의 사회정세와 국민의식의 변화 등에 따라 증거수집이 곤란해지고 있는 현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 조사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향을 개선하고 적정하고 다양한 절차를 통해 보다 용이하게 진술증거가 수집되고, 공판정에서도 현출되도록 하기 위한 새로운 제도의 도입”이라고 합니다.33) 이 역시 수사기관의 한계를 인정하고 현실을 수긍하는 데서 이끌어낸 솔직한 대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도 신속한 사건 처리를 위해 2004년부터 플리바게닝 제도를 수입해 나름대로의 변형된 형태로 운영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급증한 각종 중대범죄에 맞서, 선택과 집중을 통한 형사사법의 효율화를 목표로, 경미범죄는 간이절차 등을 통해 신속히 처리하는 대신 중대범죄는 전문수사기관을 신설하는 등 수사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형사정책을 추진해 왔습니다. 또한, 오래 전부터 미국식 배심재판과는 다소 다른 형태의 참심재판 제도를 운영하고 있기도 한데요, 2019년부터는 종전의 참심재판 대상사건을 축소해서 시민참심원들의 참여범위를 점차 줄여가고 있습니다. 이는 참심재판으로 야기될 수 있는 절차의 지연을 방지하여 신속한 절차 진행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사법개혁 방안의 하나로서, ‘시민의 사법참여’니 ‘사법의 민주화’ 같은 ‘도덕지향적’인 구호만 앞세워 자신들의 참심재판 제도를 신성불가침 대상으로 삼으려 하지 않고 위선 떨지 않으면서, 그리고 현실을 인정하면서 과감하게 문제점을 고쳐나가겠다는 프랑스 국민들의 실용적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사례입니다.34)

정리하면, 우리나라에도 플리바게닝 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건 결코 아닙니다. 우리의 경우 실체적 진실 발견과 정의 구현이 최고이념인 형사사법절차에서 죄와 벌을 놓고 ‘협상’이니 ‘거래’니 하는 단어를 입에 담는 것 자체에 대한 극심한 알레르기 반응이 존재합니다. 즉, 도덕지향적인 ‘국민정서법’상 용납되기 매우 힘든 제도입니다. 단언컨대, 100년 안에는 우리나라에 이 제도가 도입되는 일이 절대 없을 거라 예상합니다.
다만 주장하고 싶은 것은, 위선에서 벗어나 솔직한 논의를 하자는 것입니다. 모자라고 부족한 현실은 현실 그대로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야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비로소 찾아나갈 수 있습니다. 실상은 외면한 채, 하나 마나 한, 그럴듯하기만 한, 그저 번드르르하기만 한 말만 해서는 아무런 해결책도 마련할 수 없습니다. 왜 미국이 스스로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자인하면서도 플리바게닝 제도를 그렇게 오랜 세월 운영하고 있는지, 왜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은 지극히 미국스러운 제도인 플리바게닝 제도를 굳이 자국에 도입한 것인지, 우리는 그 이유를 솔직하게 들여다보면서 우리 자신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 다시 아까의 문제 제기로 돌아가서, 지금 시대의 가장 큰 현안인 조직범죄에 맞선 프랑스의 선행 대처방안들은 아직까지 우리에게 이렇다 할 영감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직범죄에 잘 대처하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신경 써야 할 텐데, 우리는 이미 유행한 지 한참 된 보이스피싱 범죄를 아직까지도 그대로 방치하고 있습니다. 영상녹화조사나 조사자 증언은 증거로 쓰지 못하니 사안이 경미한 길거리범죄 사건에서도 일일이 조서를 작성하느라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있고, 이마저도 걸핏하면 사건관계인들의 진술 번복으로 하나 마나 한 결과로 이어지곤 합니다. 음주운전 사건 같이 매우 간단한 사안임에도 단지 피고인의 의사에 따라 정식재판절차에까지, 심지어는 국민참여재판에까지 나아갈 수 있게 하여 한정된 사법자원을 낭비하게 하기도 합니다.


6. 자취를 감추는 흔적들

이제까지 말씀드린 내용들을 요약하겠습니다.
프랑스 형사사법절차가 잘 굴러가게 하는 데 필수적인 제도로 두 가지를 들 수 있겠습니다. ① 사법관이 주재하는 예심절차의 운영(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수사기록의 증거 활용), ② 길거리범죄와 조직범죄를 구분한 선택과 집중 전략입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프랑스와 꽤 거리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심절차는 이제 아예 사법의 영역 밖에서 이루어지게 됐으니, 재판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 같고 서면재판의 대안이 필요합니다. 다만, 대법관 증원에 따라 대법관을 보좌하는 재판연구관이 새로 100명이나 더 필요하다는 상황에서,35) 일선 법원의 재판은 지금도 못하고 있는 공판중심주의를 누가 무슨 수로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선택과 집중 전략 면에서도 갈 길이 멀어 보이는데요, 새로 생긴다는 중대범죄수사청이 신생기관으로서 그 정착에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여 자칫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再版에 그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K-Pop과 한류 등으로 대한민국의 국격이 전 세계적으로 치솟고 있는 지금, 우리는 앙시앙 레짐을 극복하며 탄생된 근대 사법 제도를 버리고 오히려 구체제를 향한 레트로와 반동을 시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다시 원래대로 돌리자는 거 아닙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국민 다수는 이 새로운 제도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제도가 잘만 굴러가면 그만이고, 결과가 중요한 거지 과정은 덜 중요합니다.
다만, 우리 제도가 프랑스와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고 있고,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던 흔적마저 아예 자취를 감추려고 합니다. 한불법학회와 검찰프랑스법연구회가 함께 프랑스 형사법에 대해 이야기를 할 이유가 점점 더 줄고 있어 아쉬운 마음이지만, 부디 새로운 한국형 제도가 잘 운영되기를 바랍니다.

--------------------

주석 :


1) 한제희, “국민참여재판에서의 직접심리주의 구현”, 형사판례연구 제30권, 한국형사판례연구회(2022).

2) 비슷한 견해로, 윤영석,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고찰-피고인의 관점에서”, 아주법학 제13권 제2호, 아주대학교 법학연구소(2019), 179면.

3) 법원행정처, 국민참여재판 성과 분석(2008년~2020년)(2021), 35면.

4) 윤영석, “국민참여재판의 위기와 개선방안”, 서울법학 제28권 제4호,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연구소(2021), 278면.

5) 이 설문조사에서 배심원들에게 제시된 5가지의 객관식 문항 중 다른 애로사항으로는, ① 법률용어에 대한 이해 어려움(26.8%), ② 재판서류 등 증거 이해 어려움(12.1%), ③ 수입 감소, 직장에서의 불이익(9.3%), ④ 피고인 보복 등 안전 우려(9.2%)가 있었습니다(법원행정처, 앞의 책, 73면).

6) 2021. 11. 12.자 한겨레 기사, “툭하면 ‘1박2일’…배심원단 진 빼는 국민참여재판, 바뀔 수 없나요”,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19106.html

7) 한제희, “전문법칙 적용사례 연구”, 형사법의 신동향 제83호, 대검찰청(2024).

8) “피고인 아닌 자의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의 진술이 피고인 아닌 타인의 진술을 그 내용으로 하는 것인 때에는 원진술자가 사망, 질병, 외국거주, 소재불명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유로 인하여 진술할 수 없고,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행하여졌음이 증명된 때에 한하여 이를 증거로 할 수 있다.”

9) 한제희, “프랑스 형사증거법 연구 – 조서와 영상녹화물을 중심으로”, 해외연수검사 연구논문집 제24권 제2권, 법무연수원(2009), 601면. : 한제희, 프랑스 검사의 지위와 기능 – 최근 동향을 중심으로”, 형사소송 이론과 실무 제9권 제1호, 한국형사소송법학회(2017), 35면에서 재인용.

10) 사건 내용은, 피의자 A와 B는 공동으로 피해자를 불상의 흉기로 때려 피해자의 신용카드를 강취하였고, 그 후 피의자 C는 피의자 A, B로부터 장물인 정을 알면서도 위 신용카드를 취득하였으며, 사건 당시 중상을 입었던 피해자는 이틀 후에 사망하였다는 것입니다.

11) 검사는 예심판사로부터 예심기록과 함께 의견요구서를 송부받으면, 구속 사건은 1개월 이내에, 불구속 사건은 3개월 이내에 이를 검토하고 의견서를 작성하여 예심판사에게 회신합니다. 실무상 이때 검사는 매우 상세한 내용으로 의견서를 작성하는 편이고, 이로 인해 예심사건에 관한 의견서 작성은 검사에게 큰 부담이 되는 업무라고 합니다.

12) 예심판사는 예심을 종료하였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즉시 그 취지를 검사, 사소당사자, 피의자, 변호인 등에게 고지하고, 그에 대한 의견을 제출하도록 요구합니다.

13) 사법경찰이 작성한 수사기록도 사법관인 예심판사와 검사의 주재하에 진행된 절차에서, 즉 사법적 영역에서 작성된 것이므로, 역시 재판에서 신빙할 수 있는 서류인 겁니다.

14) 다만, 대륙법에도 가급적이면 재판에서 너무 수사기록에만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말라는 원칙이 있는데, 이를 ‘직접주의’ 내지 ‘직접심리주의’라고 부릅니다.

15) 다만, 프랑스는 사인소추 제도가 있어서 피해자인 사소당사자가 재판에 출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소당사자로서 법정에 나온다는 점도 피해자가 증인으로 나오는 경우가 드문 이유가 되겠습니다. 피해자 아닌 그야말로 제3자는 그 진술이 기재된 조서가 있으면 직접 법정에 증인으로 나오는 경우가 정말 드뭅니다.

16) 몇 년 전에 대구지방검찰청에서 전수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22년 10월부터 2023년 3월까지 6개월 간 대구지방법원에서 선고된 제1심 재판 사건 중 재판과정에서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한 사건(일부 부인 포함)의 비율은 23.6%였습니다. 대략 4건 중 3건 이상이 자백사건인 셈인데, 이런 정식재판 사건보다 사건 수 자체가 많고 자백사안도 훨씬 더 많은 약식명령 사건들까지 감안하면 부인사건 대비 자백사건의 비중은 더 높아집니다.

17) 우리 형사절차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백사건에서는 조서가 아무런 문제없이 널리 잘 활용되고 있고 절차가 효율적으로 운용되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음에 반해, 피고인이 재판절차에서 혐의를 부인하는 사건에서는 대부분 피고인의 ‘내용부인’이란 한 마디에 바로 조서가 부정되고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합니다. 자백사건 재판에서는 멀쩡하게 제 역할을 잘하던 조서를 부인사건 재판에서는 문제가 있다고 아예 빼버립니다. 자백사건의 조서와 부인사건의 조서 사이에 딱히 증거가치에 차이가 있을 것도 아닌데, 같은 조서를 놓고 피고인이 혐의를 자백하느냐 부인하느냐에 따라 그 대우를 달리한다는 게 논리적으로 잘 이해되지는 않습니다. 자백사건보다 훨씬 적은 부인사건에 등장하는 조서만 유독 악마화하는 건 퍽 이상한 풍경입니다.

18) 조서는 물론 가급적 법정에 나오지 않는 게 바람직합니다. 전문증거가 갖고 있는 위험성이 있고 직접심리주의에 위반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조서는 사실상 재전문증거이니 전문증거라고 할 수도 없고 더욱 문제가 많습니다.
다만, 우리는 조서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 탓에, 피고인은 누명을 쓴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증인(원진술자)은 안 부르고 조서만 갖고 유죄를 선고하는 예외적인 상황만을 상상하면서 조서를 비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원진술자가 법정에 나오는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원진술자가 법정에 나오는 상황이란, 바로 원진술자가 법정에서 원진술을 번복하는 사건(그로 인해 조서를 증거로 쓰지 못하게 된 사건)을 말합니다. 조서를 비롯한 수사절차에서의 원진술을 아예 법정에 나오지 못하게 하는 해석론은 바로 이런 사건에서 어떠한 불합리한 점이 있는지가 여실히 드러나게 되고, 판례의 증거법 법리가 과연 논리적으로 타당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합니다.
우리는 형사소송법, 검찰청법,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에 따라 공식적인 수사기관과 수사 제도를 갖추고 있는 나라이므로, 수사절차에서의 원진술이 법정에 등장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법정에 나와야 할 사람은 안 나오고 조서만 나오는 조서재판이 비난을 받는 것이지, 사람도 나오고 동시에 수사절차에서의 원진술도 나오는 건 비난받을 일이 아닙니다.

19) 물론 지금이야 조서와 수사기록 위주의 서면재판을 말하지만, 2025년 말부터 형사절차 전자화 시대가 개막되어 앞으로는 종이기록이 사라지고 전자기록이 본격적으로 이용됩니다. 조서, 사진, 동영상, 통신자료, 금융자료, 디지털자료 등 형사사건의 많은 증거가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의 디지털기기를 통해 작성되고 전산시스템에 저장되므로, 이를 굳이 종이로 출력하지 않고 그대로 전산시스템 안에서 유통시키면서 수사도 하고 재판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증거를 종이 형태로 만들기보다 디지털 형태로 만드는 게 더 간편해져서 더 많이 선호될 것이고, 모바일기기를 활용한 비대면 조사가 활성화되면서 서면 형태의 조서보다는 영상녹화물이나 음성녹음물 형태의 전자기록물을 증거로 사용할 필요성이 더 커질 것입니다.

20) 예심절차를 담당하니 ‘예심판사’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수사를 하기 때문에 ‘수사판사’라고 하기도 하고, 이도저도 애매하니 한데 합쳐서 ‘예심수사판사’라고 하기도 합니다.

21) 이렇게 예심이 사실상 수사이므로 수사를 담당하는 판사라는 특징이 잘 드러나는 ‘수사판사’나 ‘예심수사판사’라는 용어가 등장한 거지만, 예심은 수사와 동의어이므로 ‘예심수사판사’는 동어반복이고, ‘수사판사’는 예심의 재판적 성격을 반영하지 못하는 용어입니다.

22) 프랑스 법무부 통계에 의하면, 2024년 검찰에 접수된 1,940,006명의 피의자들 중 656,617명이 기소되었는데, 기소된 피의자들 중 약 5%에 해당하는 인원이 예심개시 청구되었습니다(이 통계에 정확한 피의자 수는 기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한 해 동안 전체 피의자들 중 예심판사가 담당한 피의자의 비중은 약 1.69%로서, 예심판사가 중죄사건 등 주요하거나 중요한 사건의 수사를 담당하긴 하지만 전체 사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높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프랑스 법무부, “Les chiffres clés de la justice(Édition 2025)”,
https://www.justice.gouv.fr/sites/default/files/2026-03/Chiffres_Cles_2025_corrV2.pdf}.

23) 그리고 2026년 10월 곧 검찰청법이 폐지되면서 검사의 직접수사는 모두 금지됩니다.

24) 검사가 직접수사를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에는 각기 장단점이 있어서, 각 나라마다 그 사정에 따라 각기 합리적인 방법을 선택하기 나름입니다.
검사가 직접수사 방식이 아니라 수사지휘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하는 건, 검사와 사법경찰 사이에 의사소통에 시간이 걸릴 수 있고 의사소통 자체가 원활하지 않을 수도 있어 수사의 효율성은 떨어지고 신속성 면에서도 문제가 있겠지만 반면 공정성 면에서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수사할 때 검사가 수사지휘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한다면, 검사와 사법경찰 모두 그 사건의 내용과 수사상황을 공유하고 잘 알고 있으니 두 기관 사이에 서로 눈치를 보게 되고 견제기능이 작동하여 두 기관 어느 쪽이든 임의로 부당하게 수사하거나 이상한 결론을 내리긴 힘들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5) 예심판사는 어디까지나 ‘판사’이다 보니 영장을 스스로 직접 발부해서 수사를 진행할 수 있고 재판독립 원칙에 따라 누구의 간섭이나 견제를 받지 않다 보니 권한이 매우 큰 데 반해, 그 부작용으로 대형사고가 생길 위험이 있습니다. 또, 예심판사가 피의자를 구속수사할 수 있는 기간이 기본이 4개월, 최장 2-3년이 될 정도로 매우 길고 판사 한 명 한 명이 단독으로 일을 하다 보니 혼자서 수사하기 역부족인 사건을 만날 수도 있어, 지나치게 절차가 지연된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원이 재판권뿐만 아니라 수사권도 아울러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많습니다. 예심판사나 재판하는 판사나 동일한 신분을 가진 판사여서 어떤 판사가 어느 날은 예심판사로서 수사를 했다가 다음 인사 때는 재판 담당으로 발령이 나 재판 업무를 맡기도 하고, 심지어는 오늘은 예심판사로 일하고 내일은 법정에 들어가 재판장이나 배석판사로 일하기도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과연 수사와 재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 요새 어느 선진국이 수사와 재판을 한 기관에서 다 담당하느냐, 그래서 이건 너무 낡은 제도가 아니냐 라는 의문이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온 것입니다.
프랑스에서도 이런 이유로 예심판사 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1950년대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이미 예심판사 제도를 폐지한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만약 프랑스에서도 예심판사 제도가 폐지되는 경우에는 검사가 그 역할을 대신할 것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다만, 오랜 역사를 가진 제도를 당장 없애긴 힘드니, 입법자들은 일단 예심판사의 권한을 줄이고 검사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모색해 왔습니다. 2000년 예심판사로부터 구속 관련 권한을 배제하였고, 2003년과 2004년 예심판사의 개입을 무의미하게 할 정도로 수사절차에 관한 검사의 권한이 확대되었으며(특히 조직범죄 분야에서), 2007년에는 검사의 기소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소당사자가 예심판사에게 고소를 제기하여 피의자를 곧바로 법정에 세우는 것을 사실상 곤란하게 만들었습니다.

26) “프랑스 예심수사판사 제도 폐지와 관련한 오래된 뉴스”,
https://imagistrat.blogspot.com/2016/10/blog-post_26.html

27) 양재진. 『정부의 원리』, 마름모(2025), 325면.

28) 이 기관은 우리나라 문헌들에서 ‘국가사법재판소’ 또는 ‘국가정의재판소’라고 번역하곤 하는데, ‘justice’가 원래 ‘정의’라는 뜻의 단어이긴 하지만 ‘사법’이라고 부르는 게 보다 자연스러워 보여 이 글에서는 ‘국가사법재판소’라고 부르기로 하겠습니다.

29) 2018. 1. 15.자 Le Figaro의 기사, “마크롱 대통령이 폐지하려고 하는 국가사법재판소란 무엇인가?(Qu'est-ce que la Cour de justice de la République que veut supprimer Macron?)”,
http://www.lefigaro.fr/actualite-france/2016/12/12/01016-20161212ARTFIG00032-qu-est-ce-que-la-cour-de-justice-de-la-republique.php

30) 2019. 9. 30.자 Le Monde의 기사, “장-쟈끄 위르보아가 공무상기밀 누설로 집행유예부 징역 1월 형을 선고받다(Jean-Jacques Urvoas condamné à un mois de prison avec sursis pour « violation du secret »)”,
https://www.lemonde.fr/societe/article/2019/09/30/jean-jacques-urvoas-condamne-a-un-mois-de-prison-avec-sursis-pour-violation-du-secret-professionnel_6013665_3224.html

31) 특히, 프랑스의 ‘선택과 집중’ 사례가 현저합니다. 그 예로는, 2014년 ‘Parquet National Financier(국가금융검찰청)’ 신설과 2019년 ‘Parquet National Antiterroriste(국가대테러검찰청)’ 신설{한제희, “프랑스 검사의 지위와 기능 – 최근 동향을 중심으로”, 61면 이하}, 그리고 2026년 ‘Parquet national anticriminalité organisée(국가조직범죄검찰청)’ 신설{“프랑스 파리 지방검찰청의 조직 구성, 그리고 국가대테러검찰과 조직범죄검찰”, http://imagistrat.blogspot.com/2019/12/blog-post_21.html ; “프랑스 국가조직범죄검찰청(PNACO) 설립 소식”, http://imagistrat.blogspot.com/2025/08/pnaco.html} 등을 들 수 있습니다.

32) 검사의 입장에서 봤을 때, 플리바게닝이라는 건 무엇보다 무언가 이익이나 명분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뭔가 이익이나 명분이 있어야 검사가 피의자에게 먼저 협상을 제안하든가, 반대로 피의자의 협상 제안을 받아들이기 마련입니다.
① 만약 검사가 유죄를 얻어내기에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냥 원칙대로 재판으로 가서 피의자가 죄에 합당한 벌을 받도록 하면 그만입니다. 그게 검사라는 사람들 입장에서 폼도 나고 뿌듯해 할 일일 겁니다. 굳이 죄를 저지른 사람이 가벼운 형벌을 받도록 허용할 이유가 없고, 형량을 다운시켜서 검사가 딱히 얻을 이익이 없습니다. 최소한 피해자 앞에서 면은 서고 봐야죠.
② 그런데 피의자가 범죄를 저질렀을 것이라는 심증은 충분히 있으나 물증이 부족한 경우라면, 그건 상황이 좀 다릅니다. 물증이 부족한데 그냥 재판으로 가게 되면 결국 재판하느라 힘은 힘대로 쓰고 판결은 무죄로 나서 피의자에게 면죄부만 주게 될 가능성이 많고, 무죄판결이 무서워 피의자를 그냥 풀어주고 사건을 끝내자니 피해자의 반발이나 검사의 체면상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을 겁니다. 바로 이럴 때 플리바게닝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순순히 죄를 자백하면 형량을 낮춰주겠다.’ 비록 검사가 당초 가졌던 생각보다 형량은 낮아지지만, 죄를 저지른 게 분명한 사람을 아무런 제재도 없이 그냥 놔주는 일은 생기지 않게 되는 이익이 검사에게는 있는 겁니다. 바로 수사기관의 증명이 부족할 수밖에 없어 생기는 빈틈을 그냥 방치하고 마는 게 아니라 뭐라도 어떻게든 메워놓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33) 안상훈, “일본에서의 유죄협상제도에 관한 논의와 입법화”, 형사소송 이론과 실무 제8권 제2호, 한국형사소송법학회(2016), 50면.

34) “프랑스 참심재판 제도의 현재와 미래”,
http://imagistrat.blogspot.com/2018/10/blog-post_21.html ;
“시민참심원이 배제된 재판부, 프랑스 중죄재판부(cour criminelle) 제도 시행”,
http://imagistrat.blogspot.com/2019/10/cour-criminelle.html

35) 2026. 3. 1.자 한겨레 기사, “대법관 증원 따라 연구관도 늘려야...하급심 부실 막을 대책 필요”,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47161.html
Read More

2025년 8월 23일 토요일

책 소개 : "프랑스 형사재판의 구조와 원칙 - 형사소송법의 이해"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8/23/2025 03:19:00 오후 라벨: 프랑스 사법제도 , 형사소송 , 형사소송법
계명대학교 법학과 김택수 교수님께서 최근에 “프랑스 형사재판의 구조와 원칙 - 형사소송법의 이해”라는 책을 내셨습니다. 

교수님은 프랑스 낭시2 대학교에서 형사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으셨고, 이 책으로 프랑스 형사소송절차 전반을 정리하셨습니다. 아마 국내에 프랑스 형사소송절차 전반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단행본은 이 책이 유일하지 않나 싶습니다.


저의 공부삼아, 이 책의 귀한 내용들 중 몇 부분에 제 의견을 살짝 덧붙여 정리해봅니다.

——————————————-

[14면]

조직범죄, 금융범죄, 경제범죄와 같이 광역화된 범죄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특별법원으로서, 2004년 창설된 '광역특별법원(les juridictions interrégionales spécialisées, JIRS)'이 있습니다. 이는 조직범죄 등 분야에 특별한 능력과 경험이 있는 검사와 예심판사들로 구성된 특별사법기관이고, 광역 단위의 토지관할을 갖고 전국 9개의 주요 거점에 두고 있습니다.
2019년의 행정지침은 이 법원의 관할에 관해, 범죄의 파급이 일정 지역에 걸치고 지역의 질서를 혼란케 할 것을 요건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그와 비슷한 특별법원으로, '조직범죄대처전국법원(la juridiction nationale de lutte contre la criminalité organisée, JUNALCO)'이 2019년에 창설되었다고 합니다. 이 법원은 조직범죄, 특히 조세범죄, 마약범죄, 사이버범죄, 재정범죄, 자금세탁범죄 등에 대처하는 임무를 갖고 있습니다. 다만, 형사소송법 제704조에서 정하는 부패범죄는 여기서 제외됩니다.


[84면]

수사절차에서 경찰유치(garde à vue)가 종료되면 검사는 원칙적으로 피고인을 자신 앞에 출석시키도록 하는데, 이를 인치(défèrement)라고 부릅니다. 이 단계에서 기소 여부의 결정이 내려지는데, 피의자의 인치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고 인치없이 피의자가 석방된 상태에서 소추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직접소환심판(citation directe), 즉시출석심판(comparution immédiate), 별도기일 출석심판(comparution à délai diffère)의 경우에는 검사 면전에의 인치가 필요하지만(형사소송법 제393조 제1항), 사법경찰관에 의한 소환심판(convocation par officier de police judiciaire) 방식은 검사의 면전에 피의자를 인치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 때문에 경죄사건의 일반적인 기소방식이 되고 있습니다.

검사 면전에 피의자가 인치되는 경우, 검사는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조력권을 고지한 후 피의자를 신문(interrogatoire)하고 기소 여부를 결정합니다(제393조 제4항). 이러한 신문에 대해서는 조서(procès-verbal)를 작성합니다(제393조 제6항).


[102면]

이 부분에 기재된 프랑스 검찰 통계에 의하면, 2023년 기준 검찰에 접수된 4,705,322건의 새로운 사건 중 33,793건이 중죄, 3,892,561건이 경죄, 326,884건이 위경죄 사건이라고 합니다.

검찰이 처리한 사건 4,370,113건 중 3,170,220건은 신원미상 등 이유로 기소가 불가능한 사건이고 나머지 27.5%에 해당하는 1,199,893건이 기소 가능한 사건인데, 기소 가능 사건 중 절반인 594,365건은 기소, 100,242건은 기소유예, 400,458건은 기소대체수단을 통해 종결되었습니다.

검사가 기소한 594,400건 중 16,227건은 예심수사 청구(약 3%), 508,882건은 경죄법원 기소, 32,299건은 경찰법원 기소로 처리되었습니다. 소년법원 기소도 36,957건이 있네요.

경죄법원 기소 중에서는 사법경찰관에 의한 소환 100,242건, 즉시출석 50,273건, 조서에 의한 소환 32,318건, 직접소환 6,119건, 별도기일출석 4,075건이고, 약식명령이 201,081건, 유죄인정부출석이 114,774건입니다.


[214면]

프랑스에서는 경찰유치 피의자, 예심피의자, 미성년 피해자 등에 대한 조사과정은 영상녹화하여야 합니다. 예심수사에 대해서도 영상녹화조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조서 작성을 대신하여 영상녹화만으로 조사가 이루어질 수는 없고, 예심과정이나 공판절차에서 조서에 기재된 진술 내용이 진술한 대로 기재되지 않았다고 다투어지는 경우 그에 대한 반박을 위해 영상녹화물이 쓰이게 된다고 합니다. 즉, 영상녹화물은 조서 기재의 정확성을 보장하기 위한 보조적 증거물입니다.

피고인의 의사에 따라 증거로 못 쓸 수도 있는 우리나라 조서와는 달리, 프랑스에서의 조서는 거의 무조건 증거로 쓰입니다. 더구나 프랑스의 조서는 단순한 증거의 지위만 있는 게 아니라, 사건이 법원에 오기 전의 예비심리 단계(검사의 수사 및 예심판사의 수사)에서 그 절차를 담당한 사법관이 자신이 사실관계를 검토해보니 이 피고인이 죄가 있는 게 맞다고 판단한다는 내용이 담긴 기록물 중 하나이고 재판법원의 판사로 하여금 신속하고 간이하게 재판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이므로, 모든 사건에서 조서가 작성됩니다. 다시 말해, 당연히 증거로 쓰이는 조서를 작성하지 않을 이유가 없고, 조서가 없으면 예비심리 단계에서 사법관이 어떠한 판단을 하였는지 재판법원의 판사가 알 수 없으니 조서를 반드시 작성해야 하는 겁니다.

따라서 영상녹화조사가 이루어지더라도 조서 작성이 생략되면 곤란하고 조서는 작성될 필요가 있는 겁니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 조서는 증거가치가 현저히 적으니 굳이 작성할 필요성이 없고, 필요에 따라 영상녹화조사가 이루어지는 경우 조서 없이 영상녹화물만 있으면 충분하지 않나 하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128면, 210면, 217면]

경죄법원과 경찰법원에서 증인을 출석시켜 신문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증인을 신문하는 경우 피고인을 먼저 신문한 후 증인을 신문합니다(제442조).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프랑스에서 조서는 거의 무조건 증거로 쓰이므로, 굳이 조서상의 진술자인 증인이 법정에까지 나올 필요가 없어 증인신문이 드문 겁니다.

또, 해당 사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피고인 본인이므로 그로부터 듣는 사건에 관한 정보가 가장 중요하고, 그러한 이유로 피고인신문이 증인신문 순서보다도 앞에 위치하는 겁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증인신문이 앞서 이루어지고, 재판절차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 그것도 필수절차가 아니라 임의절차로 피고인신문이 위치해 있습니다. 해당 사건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의 말을 우리가 들어보기가 힘든 구조인 것입니다.


[218면]

유럽인권재판소와 프랑스 대법원은 대면심문권(confrontation)을 피고인의 권리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유럽인권재판소는 대면심문권을 침해한 경우에 일관되게 이를 유럽인권협약 제6조가 보장하는 공평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단하였으나, 최근 익명증인에 대한 대면심문권의 제한이 곧바로 공평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아니며 피고인에 대한 다른 절차적 보장장치에 의해 보완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대면심문권을 절대적 권리가 아닌 상대적 권리로 변경하였다고 합니다.


[221면]

사인이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가 실체판단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는지가 논란이 되는 대표적인 사례는 상대방 몰래 대화를 녹음한 녹음물과 그 녹취서인데, 우리 법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사적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 당사자라고 하더라도 대화의 상대방 몰래 대화를 녹음하는 행위를 1년 이하의 구금 또는 45,000유로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고 합니다(형법 제226-1조).

그런데 프랑스 대법원은 이렇게 사인이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라 하더라도 그 녹음물 자체는 형사소송법 제170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예심상의 행위나 증거물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무효화될 수 없고 오히려 대심적으로 토론될 수 있는 증거방법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고 합니다. 즉, 사인이 형벌법규를 위반하는 방법으로 증거를 수집한 경우 그 위반행위에 대해 처벌받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이를 증거로 제출하는 것은 허용된다는 겁니다.


Read More

2024년 7월 19일 금요일

미국 뉴욕남부검찰청 공소장

댓글 1개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7/19/2024 04:50:00 오후 라벨: 검사 , 검찰 , 공소장 , 미국 , 사법제도 , 증거 , 형사소송

수 미 테리 SUE MI TERRY 사건. 국정원으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으며 한국 정부를 위한 첩보원으로 활동한 혐의로 미국 뉴욕남부검찰청이 2024년 7월 15일 기소하였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워싱턴포스트 지는 7월 17일 홈페이지에 그 공소장을 게시하였습니다. 저는 미국의 공소장을 처음 봅니다. 낯서네요. 몇 가지 메모해봅니다. 


공소장은 indictment. 총 31쪽입니다.

대배심 Grand Jury를 거쳐 기소된 법원은 UNITED STATES DISTRICT COURT SOUTHERN DISTRICT OF NEW YORK.

사건번호는 24 CRIM 427.

기소한 검사의 명의는 United States Attorney DAMIAN WILLIAMS.

문단마다 문단번호가 매겨져 있고, 군데군데 소제목과 각주도 달려있습니다.

중간중간 사진도 6장이나 삽입되어 있습니다. 공소장에 증거자료를 넣을 수 있군요. 우리나라는 이런 거 하면 안 되는데요.

미국은 기소하자마자 이렇게 공소장이 일반에 공개되는군요. 우리나라는 공소장의 공개시점에 대해 지난 정부 때 만들어진 제한사항이 있습니다.  
 


아무튼 이 공소장의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고, 훗날의 공부를 위해 일단 여기 공소장 링크를 적어둡니다. 

235b1cb6-82bc-4a5e-a820-b12721d2f6f8.pdf (washingtonpost.com)

Read More

2023년 12월 6일 수요일

프랑스 법무부의 4가지 사법개혁 방안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12/06/2023 09:44:00 오전 라벨: 디지털 ,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 법률구조 , 법무부 , 법무부장관 , 전자소송 , 전자화 , 프랑스 사법제도 , 형사소송

자료 수집 차원에서 일단 글 제목만 여기 옮겨봅니다. 


한참 전 일이긴 하지만 2022년 2월 2일자 프랑스 정부 홈페이지 "Conseil des ministres du 2 février 2022. Résultats. Les réformes prioritaires du ministère de la justice." 글입니다.


법무부장관이 국무회의에서 발언한 4가지 사법개혁 방안을 소개합니다. 4가지 방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1. Déploiement de la procédure pénale numérique, conjointement avec le ministère de l’intérieur

2. Généralisation du système d’information de l’aide juridictionnelle (SIAJ)

3. Développement du travail d’intérêt général (TIG) et de l’insertion professionnelle des personnes placées sous main de justice

4. De nouvelles mesures en faveur d’une justice de la vie quotidienne
Read More

2023년 9월 16일 토요일

우리 형사절차 구조에서의 수사기록과 조서의 의의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9/16/2023 09:50:00 오후 라벨: 미국 , 사법제도 , 영상녹화물 , 전문법칙 , 조서 , 증거법 , 직접주의 , 프랑스 사법제도 , 형사소송

9월 15일에 한국형사소송법학회 추계 학술대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창온 교수님의 「직권주의와 당사자주의 형사절차와 증거법의 구조적 분석과 한국 형사소송법의 비판적 검토」라는 제목의 발표에 대해 토론을 하였는데, 제 토론문을 살짝 고쳐 여기에 올려둡니다. 


-----------------------------------------


발표자는 우리 형사증거법이 형사절차의 구조와 부정합상태에 놓여있는 문제점을 지적하셨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우리 ‘형사증거법’이 그러하다기보다는 형사증거법에 대한 우리 대법원과 주류 학계의 ‘해석론’이 그러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를테면, 조서의 증거능력과 연동시켜 조사자 증언의 증거능력도 패키지로 부정해온 2007년 이전의 해석론, 특신상태 요건을 폭넓게 활용함으로써 2007년 모처럼 입법된 조사자 증언의 증거능력을 쉽사리 인정하지 않으려는 해석론, 증거자유 원칙과 배치되는 듯한 수사기관 영상녹화물의 증거능력 부정론, 제312조 명문규정과는 배치되는 듯한 공범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 부정론 등처럼, 대법원은 ‘재판절차에서의 수사기록 규제’라는 목적을 위해 논리적인 논리보다는 발표자도 지적하셨듯이 규범적 선언의 차원에서 증거법을 해석해온 경향이 있습니다. 위와 같은 해석론들은 증거법 규정의 문리적 해석만으로도 현행법 하에서 얼마든지 정반대의 결론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1. 발표문 내용처럼 우리는 대륙법계 직권주의 국가들에서 볼 수 있는 직권적 수사절차를 갖고 있습니다. 이 수사절차라는 건 곧 예심절차입니다. 예심절차는 프랑스에서는 예심판사가, 예심판사 제도를 폐지한 대륙법계 국가들에서는 검사가 주재하는 절차로서, 사법관이 사건관계인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고, 그것으로 부족하면 압수수색을 하기도 하고 계좌거래내역을 보기도 하고 통화내역을 보기도 하는 등으로 재판에 준하는 심리를 하면서 재판에 보낼 사건을 판단하고 추리는 절차이고, (이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증거가 모이고) 이게 곧 수사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심절차라는 건 피의자를 재판에 보낼지 여부를 판단(공소권 행사)하기 위해 이런저런 필요한 사실관계를 확인(수사)하는 절차입니다(그래서 공소권 행사와 수사는 분리될 수 없다는 겁니다).

예심판사나 검사는 그가 모든 사건의 심리를 다 할 여력은 안 되니 사법경찰에게 조사를 위임하는 방법(우리나라에선 이걸 수사지휘라고 부릅니다)으로 예심을 진행하고, 재판을 준비하기 위한 절차이니 재판하는 판사가 보게 할 목적으로 예심절차 과정에서 확인한 사실관계들을 꼼꼼하고 자세하게 기록해 놓는데 이게 바로 수사기록입니다. 모든 수사기록에는 빠짐없이 조서가 들어있고 간혹 영상녹화물 같은 게 들어있기도 합니다. 재판을 하는 판사는 이미 같은 신분을 가진 사법관인 예심판사나 검사가 열심히 심리를 하여 그 결과를 자세히 기록해놓은 예심기록이 있으니, 정작 재판은 전문법칙 같은 복잡한 규칙 없이 비교적 간이한 방법으로 진행합니다. 미국은 플리바게닝 제도를 이용해 정식재판으로 가는 사건을 대폭 줄이는 방식으로 제도의 효율적 운용을 도모하고,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이렇게 예심절차를 이용해 사건을 효율적으로 처리합니다.

우리도 비슷합니다. 비록 우리 사법경찰이나 검사가 만드는 조서에 대해서는 오랜 기간 수많은 문제 제기와 거부감이 있어왔지만, 수사절차는 재판을 준비하기 위한 예심절차이기에 지금도 여전히 기록이 만들어지고 조서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판례에 따라 조사자 증언이나 영상녹화물은 재판에 등장하기 곤란하기 때문에 수사절차에서 확인한 사실관계들을 기록할 수단으로는 사실상 조서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과학기술 발전으로 녹음이나 녹화 등 새로운 기록수단은 늘어가지만, 현 제도상 조서의 대체물도 마땅히 없습니다.

즉, 우리 수사절차는 직권주의 형사절차의 예심절차에 해당하는 것으로, 수사기록과 조서에 대한 증거법적 평가도 그러한 형사절차 구조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재판절차를 당사자주의 구조라고 먼저 단정을 해두고서 수사기록이 재판에 들어오면 안 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수사절차도 당사자주의 구조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인데, 그러면 미국처럼 플리바게닝 제도라도 있어야 할 텐데 그런 제도의 도입도 매우 요원한 우리나라에서 전체 형사절차의 효율적 운용은 어떤 방법으로 달성할 것인지, 그에 관한 대책은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2. 사법적 통제를 받지 않고 독립적인 수사를 하는 우리 경찰이 만드는 수사기록, 그리고 객관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늘 의심받는 우리 검사가 만드는 수사기록을, 사법관 내지 준사법관이 만드는 대륙법계 국가의 예심기록과 어찌 동급으로 비교할 수 있느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검사가 이런 자리에 나오니 역시나 또 조서 타령이냐 하는 피로감과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최근 대구지방검찰청에서 전수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22. 10.~2023. 3. 6개월 간 대구지방법원에서 선고된 1심 재판 사건 중 재판과정에서 피고인이 혐의를 부인한 사건(일부 부인 포함)의 비율은 23.6%였습니다. 대략 4건 중 3건 이상이 자백사건인 셈인데, 이런 정식재판 사건보다 수도 많고 자백사건도 훨씬 더 많은 약식명령 사건들까지 감안하면 부인사건 대비 자백사건의 비중은 더 높아집니다. 자백사건의 수사기록에는 거의 예외 없이 사법경찰의 조서가 들어있을 것이고 일부 사건에는 검사의 조서도 있을 것인데, 이 조서들은 증거동의나 진정성립 인정에 따라 모두 증거능력이 인정되었을 겁니다.

다시 말해, 우리 절차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백사건에서는 조서가 아무런 문제없이 널리 잘 활용되고 있고 절차가 효율적으로 운용되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피고인이 재판과정에서 혐의를 부인하는 사건에서는 대부분 피고인의 내용부인 한 마디에 따라 조서가 증거능력이 바로 부정되고 아무런 역할도 못합니다. 자백사건 재판에서는 멀쩡하게 제 역할을 잘하던 조서를 부인사건 재판에서는 문제 있다고 아예 빼버립니다. 자백사건의 조서와 부인사건의 조서 사이에 딱히 증거가치에 차이가 있을 것도 아닌데, 같은 조서를 놓고 피고인이 혐의를 자백하느냐 부인하느냐에 따라 그 대우를 달리한다는 게 논리적으로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조서 제도를 평가할 때 자백사건이냐 부인사건이냐에 휘둘릴 게 아니라, 피고인의 입장과 연동되지는 않는, 모든 종류의 사건에 공통되고 일관되는 해석론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즉, 비록 경찰이 사법적 통제를 받지 않은 채 독립적인 수사를 하고 검사의 객관성과 정치적 중립성은 의심받곤 하지만, 이들이 만드는 수사기록과 조서는 전체 사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백사건의 재판에서 광범위하게 증거로 쓰이고 있습니다. 자백사건보다 훨씬 적은 부인사건에 등장하는 조서만 유독 악마화하는 건 퍽 이상한 풍경입니다.


3. 우리 증거법을 대법원과 주류 학계 입장과 같이 ‘해석’하다 보면, 즉 증거능력 판단에 집착하여 수사기록의 증거능력 배제에 몰두하다 보면, 당사자주의와 직권주의 절차와 비교할 때 지나치게 빈약한 콘텐츠만 있는, 실체 확인과는 거리가 있는 재판을 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수사과정에서 자백했던 피고인이 재판과정에 이르러 이를 번복하는 경우에 피고인의 종전 자백진술의 증거능력이 어떻게 되느냐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미국에서라면 진작 자백했으니 사실 플리바게닝 등을 통해 재판이 아예 열리지도 않을 상황이겠고, 재판이 열리더라도 이 종전 진술은 전문법칙 적용대상이 아니니 당연히 증거로 쓰일 겁니다. 프랑스에서도 전문법칙이 없으니 당연히 종전 진술이 증거로 인정될 텐데, 우리는 종전 진술을 증거로 쓸 방법이 없습니다. 종전 진술이 조서가 아니라 영상녹화물이나 음성녹음물에 담겨 있는 경우라면, 이 역시 미국이나 프랑스에선 당연히 증거로 쓰이겠으나 우리는 증거능력을 인정받기 힘듭니다. 미국이나 프랑스에서는 당연히 증거로 쓰일 중요한 증거가 우리 재판에는 아예 나오지 못하니, 그 나머지 얼마 안 되는 빈약한 증거만 갖고 사건의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유무죄를 판단해야 합니다.

더구나 국민참여재판에서라면, 재판 진행자인 직업법관이 증거능력 판단 단계에서 사실상의 사실인정권자인 배심원이 볼 증거를 광범위하게 배제해버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들 눈앞에 제시되는 증거가 일반재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배심원들에게 친절하지 않은 재판입니다. 위법한 자료가 아닌 한 배심원들이 가급적 풍부한 자료의 바탕 위에서 제대로 결론을 낼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국민참여재판이 겉으로는 배심재판이라고 하지만 증거능력 단계에서 법관이 사실상 재판을 다 끝내버리는 셈이어서 실제로는 ‘배심’재판이 아니라 ‘법관’재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당사자주의 절차도 직권주의 절차도 아닌 제3의 마이웨이를 고집하기엔, 우리 절차가 지나치게 증거능력 판단에만 집착하면서 제대로 된 재판을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고,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아무리 융합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과연 당사자주의나 직권주의 절차보다 나은 점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결코 조서 옹호론을 말씀드린 게 아닙니다. 우리 법이 예정하고 있는 우리 형사절차 구조에 맞게 증거법 해석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런 시각에서 수사기록과 조서를 바라봐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오랜 세월 ‘재판절차에서의 수사기록 규제’를 위해 차곡차곡 빌드업 되어 온 대법원과 주류 학계의 해석론은 당위성이 지나치게 강조되었을 뿐 사실 논리적으로는 많은 의문이 드는 해석론이었습니다. 발표자의 견해처럼 이제는 우리 형사절차의 구조에 맞게 우리 증거법을 다시 해석하려는 고민이 필요하겠습니다.

Read More

2023년 5월 2일 화요일

전문증거에 관한 쟁점 한 가지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5/02/2023 02:27:00 오후 라벨: 사법제도 , 전문법칙 , 증거 , 형사소송

전문증거의 의미와 관련하여, 평소 갖고 있던 생각 한 가지를 메모합니다.

 

수사과정에서 피의자의 진술을 기록한 피의자신문조서는 전문증거입니다. 재판에서 증거로 제출되는 경우 형사소송법 제312조에 따라 증거능력 여부가 결정됩니다. 그런데 수사과정에서 혐의사실을 자백해서 재판을 받던 피고인이 종전의 진술을 번복해서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경우, 대개 그의 자백진술이 기록된 피의자신문조서는 증거능력이 부정되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피고인의 수사과정에서의 자백진술은 온데간데 없이 증거로 쓸 길이 없어지게 됩니다. 현재의 판례에 따르면요.

그런데 만약 피고인이 재판과정에서 자신이 수사과정에서 자백진술을 한 일이 있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한다면, 피고인의 법정진술 중 그의 수사과정에서의 자백진술 부분은 전문증거가 아니라 본래증거이므로 증거능력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우리 형사소송법상 전문증거의 개념은 제310조의2(“제311조 내지 제316조에 규정한 것 이외에는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의 진술에 대신하여 진술을 기재한 ①서류나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 외에서의 타인의 진술을 내용으로 하는 ②진술은 이를 증거로 할 수 없다”)로부터 도출되는데, 이 규정에 대한 정확한 해석에 의할 때 피고인의 법정진술 중 그의 수사과정에서의 자백진술 부분은 전문증거의 개념에 포섭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위 규정에서 ‘①서류’는 법정 외에서 작성된 것으로서 법정 외에서의 ‘진술’이 담겨있는 것이고 ‘②진술’은 법정에서의 진술로서 법정 외에서의 ‘타인의 진술’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①서류’는 자기 자신이든 타인이든 누구의 진술이라도 전달하는 것이면 되나, ‘②진술’은 타인의 진술만을 전달하는 것이 전문증거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법정에 나온 증인이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이 공판 외에서 했던 진술 내용에 관해 증언한다면 이 증언은 전문증거이지만, 법정에 나온 증인이 자기 자신이 공판 외에서 했던 진술 내용에 관해 증언한다면 이 증언은 전문증거가 아닙니다. 법정진술에 관한 형사소송법 제316조 제1항과 제2항의 내용을 봐도 그렇게 해석됩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전문법칙의 취지상 당연한 이치이기도 합니다. 전문법칙이라는 건 본래 요증사실에 관해 증언을 해야 할 어떤 사람이 법정에 나올 수 없을 때, 그의 증언 대신 다른 대체물을 증거로 인정하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증언을 해야 할 사람이 이미 법정에 나와 있다면, 궁금한 걸(그 사람의 법정 외 진술) 바로 그 사람에게 물어보면 되지 굳이 전문법칙을 따지고 있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치로, 피고인이 수사과정에서는 혐의사실을 자백하였다가 공판과정에서 이를 번복하여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사안에서, 만약 피고인이 법정에서 ‘수사과정에서 혐의사실을 자백하였다’라고 진술한다면 이는 ‘타인의 진술’을 진술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러한 피고인의 법정진술은 전문증거가 아닙니다. 이는 본래증거이므로, 곧바로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것입니다. 즉, 피고인이 법정에서 수사과정에서의 자백진술을 번복하는 경우, 피의자신문조서야 전문증거여서 피고인의 내용부인을 사유로 증거능력이 부정되는 건 당연하다 치더라도, 현재 법정에 나와 있는 피고인의 진술에 의해 그 내용이 인정된 수사과정에서의 자백진술은 본래증거이므로 당연히 증거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이러한 논리를 전개하는 판례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형사소송법 제310조의2 문언상 명백한 논리임에도, 피고인의 '내용부인'이라는 한 마디로 수사과정에서의 피의자의 진술이 온데간데 없어져야 한다는 이런 이상한 법해석은 하루 속히 바로잡혀야 하겠습니다. 

Read More

2022년 8월 21일 일요일

[독서일기] 르네상스의 갈림길 - 배심재판과 조서재판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8/21/2022 05:26:00 오후 라벨: 검사 , 독서일기 , 미국 , 배심재판 , 배심제 , 사법제도 , 조서 , 프랑스 사법제도 , 형사소송

『르네상스의 갈림길 - 배심재판과 조서재판』, John H. Langbein 저 / 김희균 역,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12.

이미 절판된 책이지만 '국가정책연구포털' 사이트(https://www.nkis.re.kr:4445)에서 원문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번역자이자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계신 김희균 교수님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프랑스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형사법을 공부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십니다. 형사법에 대해 엄청난 내공을 갖고 계시면서 글을 참 알기 쉽고 재밌게 쓰시는, 대단하고 존경스런 분입니다. 교수님이 쓰신 여러 학술논문들 중 특히 "CCTV를 본 증인의 진술의 증거능력"(서울법학 제20권 제1호, 서울시립대학교, 2012)이라는 논문은, 그 어려운 전문증거의 개념을 쉽고 명확하게 이해하게 해주는 불후의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 『르네상스의 갈림길 - 배심재판과 조서재판』은 16세기 영국, 독일, 프랑스에서 각각 벌어진 형사법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원 제목은 『Prosecuting Crimes in the Renaissance』. 한참 전에 있었던 남의 나라 얘기, 사실 많이 지루하고 재미도 없습니다. 책 자체보다는 김 교수님이 쓰신 '역자 서문'이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교수님 유학생활의 애환도 들을 수 있고, 무엇보다 전문법칙과 크로포드 판결이 뭔지 쉽게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역자 서문만 읽어도 본전 뽑는 거라 생각합니다. 너무 좋은 글이기에 이 블로그에 찬찬히 정리해놓고 싶어 오랜만에 독서일기를 적어봅니다. 

마지막 약간의 인사말 부분만 빼고 다소 길지만 역자 서문의 대부분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 


이 책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Crawford v. Washington 이라는 판례에 각주로 소개된 책이다. 보통 외국 판례를 읽을 때 각주까지 부릅뜨고 읽을 일이 거의 없지만 아주 개인적인 이유로 나는 그런 무모한 짓을 하고 말았다. 


2004년 여름 박사학위 논문을 다 마치고, 귀국해서 무얼 할까 궁리하고 있었다. 미국에 가서는 절대 전공하지 말라는 전문법칙으로 논문을 거의 다 쓴 터라 그 다음 일이 걱정이었다. 그러던 차에 A 대학 공채에 서류를 냈고 총장 면접까지 무사히 올라갔으며, 나름대로 잘 치르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니, 9월이었다. 학위논문 완성본만 있으면 얼른 고국으로 돌아가야지, 그런 생각에 적잖이 들떠 있었다. 마지막 구두심사를 하는 날 제일 비싼 커피를 열 잔씩이나 갖다 놓고 교수님들을 기다렸다. 전문법칙과 그 예외이론은 건드리기만 해도 다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특히, Ohio v. Roberts 라는 1980년 판결에 대해서는 여러 층으로 분석을 끝낸 상태였다. 그런데 그날 심사에 들어오신 미국 교수 3명은 Roberts에 대해서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Crawford만 물어 봤다. 그런 판결이 금년 봄에 나왔다는 것쯤은 나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뭐? 그게 어쨌다고? 그게 Roberts를 엎기라도 했다는 거야, 뭐야? 아니, 24년 동안 멀쩡하던 판결이 왜 하필 지금 뒤집혀? 나는 열심히 대답했지만 교수들은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다. 끝자리에 앉아 있던 지도교수는 별다른 도움은 주지 않고 창문만 힐끔힐끔 쳐다봤다. 나만큼이나 곤란해 보였다. 나는 얼굴이 점점 노래져 갔다. 심사가 끝나고 지도교수가 아주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고치는 데 1년까지 걸리지는 않을 거야.” 

서울 갈 짐을 싸고 있는 아내한테 뭐라고 말해야 하지... 

지도교수 말을 듣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다. 


2004년 3월에 나온 Crawford는 1980년 Roberts를 뒤집었다. Roberts를 근거로 썼던 책들은 다시 써야 할 처지가 됐다. 도대체 Crawford가 뭐길래 24년 간 요지부동이던 Roberts를 엎은 것일까. A 대학 교수로 가는 길이 막혀 버린 나는 그해 가을 눈을 부릅뜨고 Crawford를 읽을 수밖에 없었다. 

재판에는 원래 증인이 나와야 한다. 증인은 안 나오고 증인이 한 말을 들어서 다른 사람이 전하는(이걸 ‘전문’이라고 한다) 경우, 그 전하는 사람의 진술을 전문증거라고 한다. 전문증거는 증거능력이 없다. 왜? 반대신문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신문을 해야 약점을 노출시켜서 신용성을 높일 수 있는데, 그걸 못하니까 증거능력이 없다. 이게 전문법칙이다. 그렇다면 굳이 반대신문 하지 않아도 충분히 믿을 만한 진술은 어떻게 하나? 가령 증인이 재판 전에 죽어가면서 한 진술, “이제 죽으면서 하는 말이지만, 그 피고인이 스미스 부인을 죽이는 걸 내가 봤어” 이런 진술, 이런 건 반대신문을 하지 않아도 증거능력이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왜? 충분히 믿을 만하니까 말이다. 이런 진술을 우리는 전문법칙의 예외라고 한다. 반대신문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믿을 만한 불출석 증인의 진술은 예외적으로 증거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자. 범행 현장에서 피고인의 머리카락이 발견되었다. 그 머리카락에서 DNA를 추출한 결과 피고인 것이다, 라는 사실을 알아낸 사람이 과학수사담당관이자 증인인 W다. W는 그런 취지로 감정서를 썼다. 감정서에는 “현장에서 발견한 머리카락은 피고인의 것이다” 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그 감정서를 썼다는 W는 이미 퇴직해서 이민을 갔고, 그가 쓴 감정서만 증거로 제출됐다. 그러면 감정서는 전문증거가 된다. W가 직접 말하는 게 아니라 서류에 담겨서 법정에 나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증거능력이 있는가? 있다. 왜? 전문법칙의 예외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감정서 같은 공신력 있는 분석기관의 문서는 증거능력이 있다는 예외가 우리 법 제314조에도 있고, 미국연방증거규칙 제803조(8)에도 있다. 이런 조항들이 없다면 우리는 모든 DNA 분석 결과를 낼 때 직접 쓴 사람을 대기시켜야 한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쉬운 일은 절대로 아니다. 

전문법칙의 예외 이론은 수사기관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장점을 가지고 있다. 증인을 직접 내지 않고도 증인의 진술을 제3자나 서면을 통해서, 혹은 비디오테이프를 통해서, 녹음테이프를 통해서 법정에 내고 그걸로 유죄판결을 받을 수 있는 유용한 장치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전부 증거법이고, 헌법 상 문제가 남아 있다. 미연방헌법 수정 제6조는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자를 피고인이 대면할 수 있는 권리, 즉, 대면권(right of confrontation)을 규정하고 있다. 우리 예로 바꿔 설명하면 피고인이 W를 대면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그게 보장되지 않으면 헌법 위반이라고 한다. 만약 이 대면권 조항을 곧이곧대로 적용하면 모든 전문법칙의 예외 조항은 다 위헌이 된다. 왜? 대면을 시켜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 앞에 데리고 와라. 내 앞에서 말하게 하라. 그러면 내가 기꺼이 죽겠다”는 1603년 영국의 장군 Walter Raleigh의 외침이 있었고, 그게 대면권이 되었으며, 미국 헌법 수정 제6조에 등기되어 있다. 

미국은 200년 동안 이 문제를 두고 골머리를 앓았다. 전문증거를 쓰기는 써야겠는데, 그러자면 헌법 위반이 된다. 대면이 옳은 것은 안다. 대면? 좋다. 하지만 어떻게 일일이 증인을 다 법정에 데려오는가 말이다. 이런 논쟁이 200년 동안 계속되다가 1980년 Roberts에서 매듭을 짓는다. “신용성이 있어서 예외적으로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경우, 헌법 상 대면권도 보장한 것이 된다” 라고 연방대법원이 설시한 것이다. 즉, 피고인에게 증인의 얼굴을 직접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증인의 진술이 일단 신용성 심사를 받았고, 그걸 통과했으면 별 문제가 안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DNA 분석결과보고서와 같은 중요한 증거가 법정에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당연히 나도 이 판결을 기초로 전문법칙을 썼고, 그 예외 이론을 썼고, 그간의 논의를 썼고, 결론을 내렸다. 전문법칙의 예외 규정을 맞추면 대면권도 보장된 걸로 친다, 라고 말이다. 그런데 Crawford가 이를 뒤집은 것이다. 어떻게 뒤집었겠는가. 짐작하시는 그대로다. 

“전문법칙이고 예외고 우리는 그런 거 모른다. 불리한 증인은 얼굴을 보여 줘라.” 라고 말이다. 

이로써 내가 쓴 논문은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1999년 여름 크로포드는 Lee라는 자가 자기 부인을 강간하려고 했다는 얘기를 듣고 펄쩍 뛰었다. 여러 바를 전전하면서 ‘Lee, 어디 있어? 알아?’ 라고 수소문을 하고 다녔다. 크로포드 부인은 보다 못해 크로포드를 Lee의 아파트로 안내했다. 그런데 주소를 잘못 알아서 다른 집을 눌렀는데도 Lee가 우연히 자기 집 문을 열었다. 크로포드와 부인은 Lee의 집으로 들어갔고, 크로포드와 Lee 사이에 말다툼이 있었으며, 크로포드가 Lee를 칼로 찔러 상해를 입혔다. 이게 사건의 전말이다. 

크로포드와 부인은 수차례 경찰 조사를 받았다. 두 사람이 말하는 바가 대부분 일치했다. 그런데 한 군데서 진술이 달랐다. 논점은, ‘크로포드가 칼을 들고 달려들 당시에 Lee가 칼을 들고 있었느냐?’로 모아졌다. 크로포드는 이 대목에서 그렇다, 고 대답했다. 즉, 상해한 것은 맞지만 정당방위라는 것이다. 반면에 부인의 진술은 약간 달랐다. 남편이 칼로 찌를 때 Lee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는데, 나중에 손을 꺼낼 때 보니까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부인의 진술에 따르면 크로포드는 정당방위를 한 게 아니라, 무기도 없는 자를 찌른 게 된다. 경찰이 부인의 진술을 그대로 녹음했고, 크로포드에게는 위험한 한 방(?)이 될 수 있는 증거였다. 

크로포드는 재판에서 ‘부부 간 증언거부권’을 행사한다. 즉, 부부는 다른 일방의 형사사건에서 진술할 수 없다, 는 워싱턴 주법 조항을 원용한 것이다. 그래서 부인은 법정에 나올 수 없었고, 대신 녹음테이프만 나왔다. 전문증거만 나온 것이다. 피고인 측 변호사는 바로 손을 들었다. 

“전문증거라서 증거능력이 없습니다.”

그러자 검사가 반박했다. 

“전문증거인 것은 맞지만, 이 테이프는 예외에 해당해서 증거능력이 있습니다.” 

“무슨 예외?” 

“증인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로서 전문법칙의 예외에 속합니다.” 

크로포드 사건에서 가장 신비로운 인물이 바로 부인이다. 부인은 자기 남편에게 무슨 애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남편 성질을 뻔히 알면서도 남편을 Lee의 아파트로 인도한 것이다. 번지수는 약간 틀렸지만, 그래도 마침 Lee가 기어 나오는 바람에 사단이 벌어졌다. 그렇다면 부인은 나중에라도 남편 편을 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심지어 잘 못 봤더라도 ‘저를 강간하려 했던 그 Lee라는 자가 손에 칼을 들고 있었어요. 그래서 남편이 별 수 없이 칼로 찔렀어요, 우리 남편이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닌데, 흑흑.’ 이렇게 흘러갔어야 맞다. 그런데 반대로 진실을 말해 버렸다. ‘저쪽은 칼도 들고 있지 않았는데, 남편이 칼로 찔렀어요’ 라고 말이다. 과연 이 진술은 믿을 만한가. 

크로포드 부인이 이상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이 진술은 전문법칙의 예외 이론에 의하면 믿을 만하다. 왜? 크로포드 부인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진술이기 때문이다. 미연방증거규칙 제804조(b)(3)에 나오는 얘기다. 부인의 진술대로라면 부인 자신도 상해죄의 공범이 된다. 정범인 남편을 Lee에게 안내한 사람이 바로 부인이기 때문이다. 부인은 상해죄의 방조범이다. 그걸 아는데도 불구하고 피해자 손에 칼이 없었다고 진술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믿을 만하다고 보아야 한다. 이게 제804조(b)(3)의 취지다. 

다시 공판으로 돌아와 보자. 

검사가 대답한다. 

“증인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로서 전문법칙의 예외에 속합니다.” 

판사는 검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부인은 못 나왔지만 자기 자신한테 불리한 내용인데도 경찰한테 말한 걸로 봐서 부인의 진술은 믿을 만하지. 증거로 받아도 되겠어.’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 결과 크로포드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크로포드의 변호사는 이 대목에서 큰 판을 벌이기로 작심한다. 부인의 얼굴을 보여주지도 않고, 부인의 진술을 증거로 쓰는 것은 헌법 위반이잖아, 워싱턴으로 가자,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결국 크로포드 사건은 연방대법원으로 갔고, 다음과 같은 판결을 얻어 냈다. 

“전문법칙이 중요한 게 아니라 헌법이 중요하다. 헌법 상 크로포드에게는 불리한 증인에 대한 대면권이 있다. 그런데 부인을 대면시켜 주지 않았으므로, 부인의 진술은 증거로 쓸 수 없다.” 

크로포드는 그렇게 자유의 몸이 되었다. 


사실 연방대법원은 크로포드를 구제해 주는 게 아니었다. 왜? 크로포드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이 아니다. 지금 이 사건에서 경찰이 부인을 증인으로 못 나오게 한 게 아니다. 불리한 증인인 부인을 경찰이 어디로 빼돌린 게 아니다. 크로포드 본인이 못 나오게 했다. 그래 놓고서는 ‘내 부인을 데려와라!!! 내 앞에 와서 얘기하게 해라!!!’ 이렇게 말하는 건 생떼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방대법원은 크로포드의 손을 들어줬다. 왜 그랬을까? 

연방대법원은 그만큼 진실 발견의 장으로서 법정을 중시한다. 진실은 법정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판사는 난데, 왜 경찰인 당신이 진술을 받아?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아니, 판사님, 제가 증인을 못 나오게 한 게 아닌데요, 피고인이 못 나오게 한 건데요?’ 

‘그건 그거고. 어쨌든 증인이 못 나왔잖아? 그런데 왜 증인 진술이 증거로 나와? 당신들이 녹음한 거 아냐? 그런 거 하지 말란 말이야. 당신이 판사야, 내가 판사지? 뭐든 내 앞에서, 피고인 보는 앞에서 얘기하란 말이야. 왜 자꾸 테이프니 문서니 이딴 데 적어서 증거로 내밀어? 그건 우리 재판이 아니야. 우리가 무슨 대륙법이야?’ 

그렇다. 중요한 건 여기다. 연방대법원이 무슨 말을 길게 하든, 무슨 이유를 덕지 덕지 붙이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연방대법원 판사들 속에 있는 확신이다. 무엇일까? 바로 미국법은 대륙법과 다르다는 사실이다. 사실 크로포드 판결의 나머지 구절들은 전부 그야말로 사족이다. 모두 들러리다. 연방대법원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단 한 문장으로 귀결된다. 

‘(대면권을 강조하는 이유는) 대륙법에서처럼 증인을 신문해서 공판 전에 진술을 받아내고 그걸 법정에 증거로 내는 일을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preventing the government from using hearsay statements at trial if the statements were obtained through a method that resembles a civil-law mode of interrogation)(Crawford, 541 U.S. at 51-52) 

연방대법원이 대면권을 강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륙법 방식으로 하지 말라는 얘기다. 경찰이 뭘 적었다가 증거로 내는 것? 그게 대륙법이다. 반면에 우리는 우리 식이 있다. 그게 바로 증인을 데려오는 것이다. 이게 연방대법원이 하고 싶은 말이다. 


이에 대해 누군가 반론을 제기한다. 

‘잠깐만요, 판사님. 우리도 예전에 공판 전에 진술을 받아서 증거로 낸 적이 있습니다.’ 

‘뭐?’ 

‘판사님이 그렇게 싫어하시는 대륙법적인 예심절차를 도입한 적이 있다고요. 르네상스 시댄데요, 왜 그때는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 전부 다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뭐? 우리가 조서재판을 했다고?’ 

연방대법원은 깜짝 놀란다. 그래서 부랴부랴 르네상스 시대 법제사 책을 뒤진다. ‘우리가 대륙식으로 조서재판을 했다니!’ 혀를 끌끌 차면서 연구원들을 동원해서 사료를 뒤진 것이다. 그 결과 발견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비로소 연방대법원은 안도의 한숨을 쉰다. 

‘거 봐. 아니잖아. 우리가 한 건 조서재판과는 차원이 다르대잖아.’ 

연방대법원은 의기양양했다. 그래서 아예 각주로 달아 세상에 공표하는 것이다. 


‘이상은 J.H. Langbein, 『Prosecuting Crimes in the Renaissance』 참조’ 라고 말이다. 

나는 그 각주에 나온 책을 대출해서 읽어 보았다. 

그게 이 책을 번역한 계기다. 


그런데 연방대법원이 한 가지 틀린 점이 있다. 

이 책은 앞부분에서 

“영국에서도 한 때 문서로 공판 전에 증인의 진술을 적었지만 그걸 그대로 증거로 쓰지는 않았고, 오히려 공판정에 증인을 불러서 구두로 진술하게 하는 방식을 썼다” 

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건 맞다. 연방대법원이 읽고 싶어하는 바 그대로다. 하지만 문제는 연방대법원 혹은 그 소속 연구원들은 여기까지만 읽고 덮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무슨 말이냐면, 그 다음에는 더 엄청난 사실이 나오는데, 그게 더 중요하다. 저자는 연방대법원이 이름만 듣고도 몸서리쳐 하는 그 고약한 대륙법이 사실은 나쁜 법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적과 선을 긋다가 엉뚱하게 적을 추켜세우기에 이르는 것이다. 

독자들도 들어 봤을 것이다. 캐롤리나라고. 캐롤리나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알 5세가 만들어 반포한 16세기 형법 및 형사소송법이다. 

보통 교과서에는 그게 악법으로 나온다. 규문절차의 금자탑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란다. 고문과 자백을 중시하는 법은 맞지만 악법은 아니란다. 합리적인 법이고, 개혁법이란다. 19세기까지 독일 법학자들의 사랑을 받던 법이고, 자랑스러워 하던 법이란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미연방대법원이 경멸해 마지않던 그 대륙식이라는 것이 사실은 미개하고 잔인한 제도가 아닐 수 있다. 아니, 아니다. 르네상스 시대 대륙에서도 나름대로 합리적인 재판을 했다. 그 이후로도 마찬가지다. 미연방대법원 판사들이 짐작하는 것처럼 르네상스의 갈림길에서 영국은 천국으로 가고 독일이나 프랑스는 지옥으로 간 게 아니다. 

나는 책을 덮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게 내가 이 책을 번역하고자 마음먹은 이유다.


------------------------------------------------


김희균 교수님의 설명에 의하면, 미국 유학 시절 전문법칙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준비하다 크로포드 판결 때문에 국내 취업이 좌절되고 유학생활이 연장되는 곤혹스런 상황을 맞이합니다. 크로포드 판결은 미국법이 대륙법과 다르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획기적인 판결이라고 소개합니다. 미국법과 대륙법이 뭐가 그렇게 다르기에 연방대법원은 이런 판결을 만들어낸 걸까요? 

영미법의 사법제도는 배심원에 의한 재판을 전제로 한 제도이고, 대륙법의 사법제도는 관료(직업법관)에 의한 재판을 전제로 한 제도입니다. 그로 인해 영미법은 수사기록이 없는 재판이, 대륙법은 수사기록 위주의 재판이 이루어집니다.  

영미법에서는, 법을 모르는 배심원들에게 복잡하고 알아듣기 힘든 전문용어들이 잔뜩 쓰여있는 수사기록을 재판하는 데 참고하라고 주는 건 의미없는 일입니다. 간혹 글을 못 읽는 배심원이 있을 수도 있구요. 그래서 재판에 수사기록이 나오지 않고, 증인들이 우르르 나옵니다. 재판이 이렇게 진행되니 수사기관도 굳이 수사기록을 만들지 않습... 아니, 안 만드는 건 아닙니다. 수사기록을 만들긴 만들고 그 중 일부가 재판에 나오긴 합니다만(크로포드 사건에서도 경찰이 크로포드 부인을 조사하면서 음성녹음물을 작성하였고 이게 재판에 증거로 등장했죠), 이는 어디까지나 단지 수사 자체를 위한 목적으로, 즉 수사진행 상황을 그때그때 기록해두는 게 주된 목적(혹시나 수사담당자가 변경될 수 있고, 미제 사건으로 남을 경우 언젠가 재개될 수사를 위해서도 수사기록 작성이 필요합니다)이지 재판에서 증거로 쓰려는 게 주된 목적은 아닙니다. 

이렇게 영미법 재판에서는 수사기록이 없는 대신 증인들이 직접 법정에 나와 증언하고 배심원들은 이 말들을 듣고 재판을 합니다. 다만, 필요한 증인이 재판에 다 못 나오는 경우가 분명히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때는 크로포드 부인의 음성녹음물처럼 증인 대신 수사기록이 증거로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이 수사기록은 간혹 신용성이 없어 증거가치가 극히 적은 것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증거를 배심원에게 바로 주면 법을 모르는 배심원들이 그 증거가치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속아서 엉뚱한 판단을 할 수 있기에, 이를 막고자 전문법칙이란 걸 만들어 증거가치가 적은 수사기록들을 걸러내고 배심원들에겐 소수의 양질의 증거만 제공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배심재판에는 시간과 자원이 과도하게 소요되기 때문에 모든 사건의 재판을 배심재판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실 미국에선 95% 이상의 형사사건이 플리바게닝 등 정식재판이 아닌 간이한 방법으로 종결되고, 극히 일부의 사건만 배심재판이나 직업법관의 재판으로 진행됩니다. 직업법관이 하는 재판의 경우에도 기본적인 재판모델이 배심재판이기 때문에 배심재판에서의 원리가 대부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에 비해 대륙법에서는, 일찌감치 예심제도가 발달하였습니다. 법률전문가인 직업법관이 재판을 하지만, 직업법관이 아주 많지 않은 다음에야 모든 사건을 다 꼼꼼히 재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재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재판절차 이전에 예심절차를 둡니다. 예심절차를 담당하는 예심판사 또는 (예심판사 제도가 없는 경우) 검사가 재판에 준하는 심리를 미리 해보고 재판을 할 만한 사건만 골라서 재판에 보냅니다. 예심판사나 검사도 자신이 모든 사건의 심리를 다 할 여력은 안 되어 경찰에게 조사를 위임하는 방법으로 예심을 진행합니다. 예심은 재판을 준비하는 절차이기 때문에 예심판사나 검사는 자신이 확인한 내용을 기록으로 만들어(경찰의 수사기록도 포함) 재판에 보냅니다. 이 기록은 재판에서 바로 증거로 쓰이기도 하고, 예심 과정에서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심리를 하고 제대로 판단을 했는지를 재판법원 판사나 상급기관에게 알리고 심의를 받는 목적도 있기 때문에 비교적 꼼꼼한 내용과 방대한 분량으로 만들어집니다. 이 예심기록이 사실상의 수사기록인 거죠. 

재판을 하는 판사는 이렇게 꼼꼼하고 방대하게 만들어진 수사기록이 있으니 정작 재판은 간이한 방법으로 진행합니다. 이미 같은 사법관인 예심판사나 검사가 열심히 사건을 들여다보고 필요한 사실을 확인하고 재판에 보낸 것이기 때문에 재판을 하는 판사가 필요한 증인을 죄다 다시 재판에 부를 필요가 없는 겁니다. 즉, 수사기록은 각 서류들을 증거와 증거 아닌 것으로 분류할 필요도 없이 기록 통째로 증거로 활용되고, 이런 구조에서는 전문법칙도 필요가 없는 겁니다(다만, 대륙법에도 가급적이면 재판에서 너무 수사기록에만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말라는 원칙이 있고, 이를 '직접주의' 내지 '직접심리주의'라고 부릅니다). 이런 방법을 통해 영미법보다는 많은 사건이 정식재판에서 처리될 수 있습니다. 물론 프랑스와 독일에도 미국의 플리바게닝을 본딴 제도들이 존재하지만, 이를 통해 처리되는 사건은 미국 플리바게닝 사건에 비하면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편입니다. 

한편, 대륙법에도 배심재판과 닮은 참심재판 제도가 있습니다. 직업법관이 사실판단 과정에서 배제되어 있는 배심재판과 달리, 참심재판에는 직업법관도 일반인 참심원들과 함께 재판부를 구성해서 사실판단을 할 권한이 있습니다. 또, 직업법관은 수사기록도 미리 볼 수 있기 때문에 참심원들에게 직업법관이 갖고 있는 사건 관련 지식과 심증이 그대로 전달되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직업법관이 결론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겁니다. 더구나 만장일치로 평결을 하여야 하는 미국 배심재판과 달리, 대륙의 참심재판은 대개 다수결 평결 제도이기 때문에 직업법관의 판단과 크게 다른 결론이 나기 힘든 구조이기도 합니다. 

영미법이나 대륙법이나 각자의 나라에서 나름 잘 굴러가고 있습니다. 역자 서문의 마지막 말처럼, 영미법과 대륙법 중 무엇이 더 낫고 무엇이 못하다 라는 우열관계는 있을 수 없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대륙법을 그렇게 너무 무시하거나 미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륙법도 나름의 역사와 이유가 있어 지금의 제도를 갖고 있는 것이거든요. 16세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구요. 결국 각 나라마다 특유의 전통과 관습이 현재의 제도에 영향을 미친 것이고, 각 제도마다 각기 장단점을 다 갖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한 쪽만 지고지선이라고 맹종하는 건 현명하지 못한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크로포드 판결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영미법 입장에서는 대륙법처럼 전문법칙도 없고 수사기록을 그대로 재판에 활용하는 제도는 참 미개하고 수준 낮은 제도라고 봅니다. 어떻게 판사가 사건관계인 진술도 안 들어보고 재판을 하느냐는 거죠. 그래서 전문법칙의 예외 영역이 자꾸 넓어지면서 점차 대륙법을 닮아가는 재판실무가 마음에 안 들어 헌법상의 대면권 규정을 들어 이러한 시류에 제동을 걸게 된 겁니다. 

그러면 크로포드 이후의 미국 전문법칙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까요? 김희균 교수님의 다른 논문 "형사증거법의 재조명II: 크로포드 이후 전문법칙의 미래"(형사법연구 제25권 제1호, 한국형사법학회, 2013)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크로포드 판결에서 지적한 것처럼 모든 증인을 죄다 법정에 불러 피고인의 대면권을 보장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이고 제도 운영상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결론입니다. 연방대법원은 이에 대한 우회방법으로, 크로포드 판결의 적용범위를 제한하는 새로운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즉, 피고인의 대면권을 보장하여야 하는 진술은 '증언으로서 가치를 가지는(testimonial) 진술”(증언적 진술)에 제한되고, 그렇지 않은 진술(비증언적 진술)에 대해서는 피고인 앞에 증인을 부르지 않아도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증언으로서 가치를 가지는 진술'의 의미에 대해 연방대법원은, 사건관계인이 장차 재판에서 진술할 것을 염두에 두고 국가기관 앞에서 행한 진술을 주로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크로포드 이후의 판례들은 이러한 진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2006년 Davis v. Washington 사건에서는 범행 당시 피해자의 911 신고전화 진술은 위급한 상황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 것이지 장차 증언으로 쓰일 것을 염두에 두고 한 진술이 아니므로 비증언적 진술이라고 보았고, 2006년 Hammond v. Indiana 사건에서는 가정폭력 사건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격리한 후 피해자로부터 작성받은 진술서는 피해자가 이미 위험한 상태에서 벗어난 이후의 진술이어서 장차 증언으로 쓰일 것을 예상한 진술이므로 증언적 진술이라고 보았습니다. 2009년 Melendez-Diaz v. Massachusetts 사건에서는 마약 딜러로부터 압수한 물건이 코카인이라는 감정서의 내용은 증언적 진술이므로 감정인이 법정에 나와야 증거능력이 있고, 2011년 Bryant v. Michigan 사건에서는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자신에 대한 총격 직후 경찰에게 말한 피해진술은 피해자를 기준으로 한다면 이미 범행 후의 진술이기는 하지만 아직 다른 사람들에 대한 총격의 위험은 남아 있는 상황이어서 이 역시 위급상황에서의 진술로 볼 수 있으므로 비증언적 진술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2012년 Williams v. Illinois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질에서 채취한 정액의 DNA와 피고인의 DNA를 비교한 감정서 내용이 비증언적 진술이라고 보았는데, 이는 아직 진범이 특정되기 전에 범행현장에서 채취한 DNA와 여러 사람의 DNA를 비교한 결과에 불과할 뿐 특정인을 처벌할 목적으로 만들어 낸 증거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 책의 주제와 비슷한 내용으로 법제사에 관심이 있는 분에게는 김희균 교수님의 다른 번역서 『대륙법 전통 - 비교를 통해 알아보는 대륙법과 영미법』도 추천합니다. 


Read More

2021년 10월 5일 화요일

프랑스 베타 버전 전자정부, beta.gouv.fr 사이트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10/05/2021 02:22:00 오후 라벨: 구금대체형 , 디지털 ,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 전자화 , 프랑스 , 프랑스 사법제도 , 형벌 , 형사소송 , IT

어떤 뉴스를 읽다가 흥미로운 사이트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 정부에서 만든 'beta.gouv.fr'라는 이름의 사이트인데요, 주소에 이런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 incubateur de services publics numériques >

디지털 공공서비스의 인큐베이터, 즉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디지털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프랑스 정부가 IT 스타트업체들과 함께 공공서비스 시스템을 개발하는 오픈 플랫폼입니다. 이 개발과정은 4단계로 이루어지는데, 1단계는 6~9주간의 조사 단계, 2단계는 12개월간의 개발 단계, 3단계는 12개월간의 적용 단계, 4단계는 6개월간의 이전 또는 통합 단계입니다. 

이 사이트에는 이러한 단계를 거쳐 이미 구현된 시스템과 현재 개발 중인 시스템 등을 한데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미 구현된 시스템은 17개, 기존 시스템에 이전된 시스템은 9개, 적용 단계를 밟고 있는 시스템은 31개, 개발 중인 시스템은 79개, 조사 단계에 있는 시스템이 22개, 파트너십이 종료된 시스템(아마도 개발 실패 내지 미완성이라는 의미 같습니다)이 94개입니다.

이 중 개발 단계에 있는 시스템 하나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명칭은 "Mon Suivi Justice"입니다. 직역하면 "나의 추적 사법", 의역하면 "사법추적시스템"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지 않고 집행유예나 보호관찰이나 기타 대체형벌을 선고받고 석방된 사람은 일정 기간마다 형벌적용판사나 보호관찰관의 소환에 응해야 하는데, 우편으로 소환통지서를 발송하는 데 따른 비용이나 미송달의 문제를 줄이기 위해 문자메시지, 이메일, 알림메시지 등 디지털적인 방법으로 소환송달을 하는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이 시스템을 소개하는 페이지는 1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 제도 개요 2. 문제점 3. 해결방안 4. 전략 5. 6개월간 시행 결과 등으로 이 시스템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단에는 이 시스템 개발에 참여한 팀원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총 10명의 기획자와 개발자들의 이름이 보입니다.  


이 beta.gouv.fr 사이트를 보면서, 프랑스 정부의 정책과 공공서비스가 광범위하게 디지털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에 따라 많은 개발인력과 관련 스타트업들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구요. 일반 국민들에게도 이 사이트를 통해 정부 정책을 홍보하고 디지털화에 대한 관심도 불러일으킬 수 있겠습니다.    



Read More

2021년 9월 3일 금요일

프랑스의 형사사법절차 전자화 정책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9/03/2021 12:53:00 오전 라벨: 법무부 , 사법관 , 전자소송 , 전자화 , 프랑스 사법제도 , 형사소송 , IT

프랑스 정부는 형사사법절차를 전자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형사사법절차 전자화'란 형사사건 기록을 종이로 만들지 않고 전산시스템 안에서 전자문서만 유통시키는 방식으로 절차가 진행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수사나 재판을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화상재판', '화상조사', '영상재판', '사이버법정', '원격재판' 등의 개념과는 다릅니다. 수사기관 조사실이나 법정에서 지금처럼 원칙적으로 대면 방식의 수사나 재판을 진행하되, 종이기록이 아닌 디지털기기 속의 전자기록을 들여다보며 한다는 것입니다.

이 주제에 관한 이런저런 자료들을 인터넷에서 찾아봤습니다. 대략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1. 2021. 1. 29.자 Village de la justice, "PROCÉDURE PÉNALE NUMÉRIQUE : OÙ EN EST-ON ? RÉPONSES AVEC HAFFIDE BOULAKRAS, DIRECTEUR DU PROGRAMME"

  - 형사사법절차 전자화라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위해 법무부와 내무부는 2018. 1.부터 협력하여 '완전한' '전자 형사사법절차(Procédure pénale numérique, PPN)'를 구축하고 있다. 형사사법절차 전자화는 형사사법절차를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한 것인데, 이는 많은 사법경찰, 사법관, 법원서기, 변호사, 집행관 등이 일하는 방식을 뒤바꾸게 될 것이다. 사건 당사자의 경우 곧 '온라인 고소(신고)(la plainte en ligne)'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게 되는데, 이를 위해 2021. 5. 5.자 법령(Arrêté du 5 mai 2021 relatif à l'entrée en vigueur de nouvelles modalités de communication électronique pénale)이 2021. 5. 12.부터 발효되었다.

    * 참고로, 이 법령은 형사소송법 D591조와 D592조가 효력을 개시한다는 내용으로, D591조는 법무부와 변호사협회 간의 협약에 따라 사건 당사자의 변호사는 각종 서면을 전자문서로 형사사법기관의 이메일이나 온라인 시스템에 제출할 수 있다는 내용이고, D592조는 예심수사부에 서면을 제출할 때도 마찬가지라는 내용입니다.

  - 사법관(직전엔 파리지방검찰청 부장검사로 재직)이자 PPN의 책임자(directeur du programme "Procédure pénale numérique")인 Haffide Boulakras는 인터뷰에서, 자신을 디지털 기술이 형사사법절차 종사자들의 일상을 단순화한다고 믿는 기술 애호가라고 소개하면서, 형사사법절차 전자화는 고소(신고)부터 형 집행에 이르기까지 종이와 자필서명을 포기함으로써 형사사법절차를 현대화하여 절차를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고 사건 관련 정보의 전달을 개선하여 시민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정책으로, 법원서기, 사법관, 경찰, 군인경찰, 변호사, 집행관 등으로 하여금 부가가치가 낮은 업무에서 해방되어 본연의 핵심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 PPN 프로그램은 절차를 디지털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일련의 응용 프로그램으로 구성되는데, 이러한 도구들(NPP, NOE, PLINE, PLEX)은 '전자 형사 사무실(le Bureau Pénal Numérique)'이라는 단일창구를 통해 접속할 수 있다. 전자서명, 전자조사, 변호인 전자접견 등도 마련되고 있는데, 2022년에는 모든 형사사법기관에 전자 형사사법절차가 제공될 것이다. 
 
                               

  - 전자 형사사법절차를 통해 각 형사사법기관 종사자들은 '사용의 단순화'를 경험하게 될 텐데, 일련의 디지털 도구를 통해 보다 효율적이고 단순하게 상담, 저장, 전달 등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PLEX 애플리케이션(PLateforme d’échange EXterne)을 이용해 법원과 외부 변호사 간에 방대한 문서와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형사사법기관 종사자들이 핵심 업무에 집중할 수 있고, 이로써 사건 당사자에게 더 나은 품질의 사법, 당사자의 말을 더 잘 경청하는 사법, 당사자에게 더 잘 대응하는 사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나아가, 절차가 끝날 때 사건 당사자들에게 디지털화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 전자 형사사법절차는 사건 당사자들에게 보다 더 관심을 갖고 '온라인 고소(신고)(la plainte en ligne, PEL)' 시스템을 제공할 것이다. 


2. 2021. 2. 9.자 Dalloz actualité, "La procédure pénale numérique : une révolution en cours"

  - 전자 형사사법절차는 현재 Amiens 법원과 Blois 법원에서 시범실시 중이다.

  - 시스템의 보안상 문제점은 관찰되지 않았고, 디지털 도구로 문서를 전달할 수 있어 절차가 신속하고 간소화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연간 600만 장의 종이를 절약하였다.


3. 2020. 12. 2.자 법무부, "Dématérialisation de la procédure pénale"

  - 2019. 3. 23.자 '사법 전산화 및 개혁법(La loi de programmation et de réforme pour la Justice du 23 mars 2019)'은 고소(신고)부터 판결까지 완전한 형사사법절차 전자화를 목적으로 한다. 

  - 이제부터 종이 기록은 더 이상 법적 가치가 있는 유일한 자료가 아니다. 완전한 형사사법절차 전자화는 법률 전문가, 특히 의뢰인의 이익을 보다 신속하게 방어하는 데 필요한 절차에 접근할 수 있는 변호사에게 이득이 된다. 그리고 전자화를 통해 수사를 단순화할 수 있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경찰과 군인경찰에게 부담을 주는 다양한 절차가 확실히 줄어든다. 또한, 보관, 처리 및 복사 임무를 수행하는 법무부 소속 공무원들도 시간을 절약하고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어 이롭다. 


4. 2021. 4. 7.자 Affiches Parisiennes, "Droits de la défense à l'ère du numérique : quels constats?"

  - 새로운 기술과 디지털 도구를 사용하는 잇점 중 하나는 소송행위의 증거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형사사법절차 전자화 프로젝트의 주요 목표 중 하나도 소송행위의 증거가치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이미 형사소송법 제801-1조(2019. 3. 25. 시행)에 명시되어 있는데, 이 조항은 형사소송법에 언급된 모든 문서(수사행위, 사법결정 또는 기타 문서)를 디지털 형식으로 작성하거나 변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 따라 모든 디지털 문서는 원래 디지털 형식으로 작성되었든 디지털화된 것이든 원본이 될 수 있다.

  - 또한 전자서명은 절차의 증거가치를 높인다. 전자서명은 전자문서의 무결성을 보장하고 작성자를 인증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세스로서, 제801-1조는 전자적으로 서명된 문서를 더 이상 수정할 수 없도록 지정하여 무결성을 보장한다. 따라서 서명 일자 또는 서명자의 식별과 관련된 모든 어려움이 제거되고, 위조 가능성을 줄이게 된다. 


5. 2021. 8. 13.자 르몽드, "Justice : la révolution tranquille de la procédure pénale numérique"

  - 전자 형사사법절차를 시범실시 중인 Blois 법원의 검찰서기 Thomas Quenard는 프린터가 있던 자리를 두 번째 컴퓨터 모니터로 교체하였다. "우리는 종이를 절약하고, 그리고 시간을 절약합니다(Nous faisons des économies de papier… et de temps)"라고 그는 말한다. 


6. 2020. 6. 26.자 Wolters Kluwer, "Dossier pénal numérique : un décret officialise sa création"

  - 전자 형사사법절차에서 유통되는 서류(Le dossier pénal numérique, DPN)에 관한 내용



---------------------------------

프랑스의 형사사법절차 전자화 현황을 러프하게 살펴봤습니다. 요약하면, 프랑스는 2022년부터 완전한 전자 형사사법절차가 시작됩니다. 이제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종이가 사라집니다. 

형사사법절차는 이렇게 전자화 된다는데, 그럼 민사소송은 어떤지가 궁금하네요. 2020. 11. 18.자 법무부 사이트의 "Procédure dématérialisée pour les petits litiges" 글을 보니, 민사소송 역시 종래에는 전자화가 되어 있지 않았으나 2019. 3. 23.자 '사법 전산화 및 개혁법'에 따라 소가 5천 유로 미만의 소액소송은 전자화가 시행된다고 합니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우리도 비슷합니다. 
우리나라는 2010년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간단한 음주운전과 무면허운전 사건에 대해서만 피의자의 동의를 전제로 종이기록이 없는 전자 절차를 이미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2024년 시행을 목표로 모든 형사사건을 대상으로 한 완전한 형사사법절차 전자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를 '차세대 형사사법정보시스템'이라고 부릅니다.  
시작은 우리가 빨랐는데, 완성은 프랑스가 앞서겠네요. 
다만, 민사소송의 경우 우리 법원은 이미 2011년부터 전면적인 전자소송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Read More

2020년 10월 11일 일요일

프랑스의 비상상고 제도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10/11/2020 04:47:00 오후 라벨: 검찰총장 , 비상상고 , 사법제도 , 프랑스 사법제도 , 형사소송
[직장 일로 간단히 리서치해보았던 내용인데, 여기에도 옮겨적어보겠습니다.]

우리 형사소송법 제441조에는 비상상고라는 제도가 규정되어 있습니다. 제441조에는 "검찰총장은 판결이 확정한 후 그 사건의 심판이 법령에 위반한 것을 발견한 때에는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할 수 있다"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판결이 확정되었더라도, 그 판결이 법령에 위반한 것이라면 나중에라도 특별한 절차를 통해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는 것이죠.  
이 비상상고 제도와 유사한 프랑스의 제도로, ‘pourvoi dans l'intérêt de la loi’가 있습니다. 우리 비상상고 제도가 이 프랑스의 제도로부터 유래한 것이라는 학설도 있습니다. 프랑스 형사소송법 제620조와 제621조에 규정되어 있는 ‘pourvoi dans l'intérêt de la loi’(일단 ‘비상상고’라고 부르기로 하겠습니다) 제도는, 확정판결에 대해 법정기간이 도과하거나 (피고인이 무죄판결을 선고받아) 피고인의 상고가 없는 경우라도 법률상 이유 내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직접 상고를 제기할 수 있는 특별한 제도입니다. 제620조는 법무부장관의 지시에 따른 검찰총장의 비상상고를, 제621조는 검찰총장의 직권에 의한 비상상고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 형사소송법 제447조는 당초 피고인에게 유리하였던 판결에 대해 비상상고가 제기되어 피고인에게 불리한 결과가 야기될 경우에는 그 효력이 피고인에게 미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무죄판결과 같이 피고인에게 유리한 판결에 대해서도,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기 위해 비상상고가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럼 프랑스의 비상상고 역시 그러한지 여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프랑스의 비상상고 제도는 판결에 발생한 법률위반을 규제하고 판례의 통일성과 법의 준수를 기하기 위한 제도입니다[Bernard BOULOC, Procédure pénale(21e éd.), Dalloz(2008), 956면]. 따라서 그와 같은 필요성이 있는 경우라면 피고인에게 유리한 판결에 대해서도 비상상고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 제도의 목적은 하급법원으로 하여금 법 원칙을 준수하고 상급법원 판례의 구속성을 상기시키려는 데 있지, 피고인의 지위를 불이익하게 하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검찰총장의 비상상고에 대해 대법원이 하급심의 무죄판결이 잘못되었다고 보아 인용결정을 하더라도, 이는 단지 이론적으로만 위 판결이 잘못되었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지 그 피고인을 불이익하게 하는 효과가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Bernard BOULOC, 같은 책, 956면).
예컨대, 프랑스 대법원 1994. 12. 14. 선고 94-84.202 판결(Cour de Cassation, Chambre criminelle, du 14 décembre 1994, 94-84.202, Publié au bulletin)은 법정형이 징역 10년 이상인 특수절도죄를 범한 3명의 피고인들에게 징역 8년 내지 5년을 선고한 항소심 판결에 대한 비상상고 사건인데, 대법원은 법정형 위반을 이유로 비상상고를 인용하는 결정을 하면서도 피고인들에게 선고된 종전의 형량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다음으로, 어떠한 법령위반의 경우에 비상상고가 이루어지는 것인지 여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대표적인 비상상고의 대상은, 앞에서 본 프랑스 대법원 1994. 12. 14. 선고 94-84.202 판결과 같이 법정형 등 명시적인 법령 규정을 위반하여 판결한 경우입니다. 최대 징역 2년이 법정형인 사건에서 징역 3년을 선고하여 비상상고가 인용된 사안들[프랑스 대법원 2000. 6. 27. 선고 00-82.156 판결(Cour de Cassation, Chambre criminelle, du 27 juin 2000, 00-82.156, Inédit), 프랑스 대법원 2007. 9. 26. 선고 07-82.713 판결(Cour de cassation, criminelle, Chambre criminelle, 26 septembre 2007, 07-82.713, Publié au bulletin)], 최대 징역 20년이 법정형인 사건에서 징역 20년을 선고하여 비상상고가 인용된 사안[대법원 2013. 11. 6. 선고 13-83.798 판결(Cour de cassation, criminelle, Chambre criminelle, 6 novembre 2013, 13-83.798, Publié au bulletin)]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법 규정을 잘못 적용한 사례도 비상상고의 대상입니다. 예컨대, 광고를 부착한 육상 이동 차량에 대한 형사처벌과 관련하여 적용하여야 할 시행령이 아닌 다른 시행령을 잘못 적용한 사례[프랑스 대법원 1993. 1. 20. 선고 92-80.011 판결(Cour de Cassation, Chambre criminelle, du 20 janvier 1993, 92-80.011., Publié au bulletin)]가 그것입니다. 

그러면 무효인 법령 또는 위헌적인 내용을 가진 법령을 근거로 판시한 판결에 대해서도 비상상고 제기가 가능한 것인지 여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비록 검찰총장이 비상상고를 제기한 사안은 아니나, 범죄피해자가 상고를 제기한 일반 상고사건에서 프랑스 대법원은 위헌적인 내용을 가진 법령을 근거로 판시한 하급심 판결을 파기한 사례가 있습니다[프랑스 대법원 1996. 4. 30. 선고 95-82.500 판결(Cour de Cassation, Chambre criminelle, du 30 avril 1996, 95-82.500, Publié au bulletin)].
이 사안은 도주하려는 운전자를 체포하기 위해 총을 쏴 운전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군인경찰에 대한 과실치사 사건으로, 이를 수사한 예심판사가 위 군인경찰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하였고 그 항소심에서도 동일한 내용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예심판사의 무혐의 결정 이유는, 형법 제122-4조(다른 법령에 규정되거나 승인된 행위를 수행하는 사람은 형사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취지) 및 군인경찰조직법(décret du 20 mai 1903 portant règlement sur l'organisation du service de la gendarmerie) 제174조(군인경찰은 운전자가 정지명령을 따르지 않는 경우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에 따라 도주하는 운전자를 쏜 군인경찰에게 형사책임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당시 위 군인경찰이 제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있는 상태에서 개인 총기를 사용한 점에 비추어 그를 위 군인경찰조직법 제174조에서 말하는 ‘정지명령을 할 권한이 있는 군인경찰’로 보기 곤란하다는 이유와 함께, 위 제174조는 시민의 공적 자유의 본질적 보장의무를 침해하고 입법자의 권한을 넘는 방법을 규정한 위헌적인 규정으로서 헌법 제34조(시민의 기본권 보장 규정)에 위반하는 규정이므로 항소심에서 이 규정을 무효로 판단하였어야 한다는 이유로, 위 군인경찰에게 형사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판시하였습니다.
당사자가 상고를 제기하는 일반 상고사건도 물론 원심판결의 법령위반을 이유로 하는 것이므로, 이 사건이 검찰총장의 비상상고 사건이더라도 대법원의 결론은 동일할 것입니다. 다만, 이 판결보다 3개월 앞서 선고된 프랑스 대법원 1996. 1. 16. 선고 94-81.585 판결(Cour de Cassation, Chambre criminelle, du 16 janvier 1996, 94-81.585, Publié au bulletin)은 검찰총장이 비상상고를 제기한 사건으로 위 판결과 거의 동일한 내용의 사안이나, 이 판결에서는 위 군인경찰조직법 제174조가 위헌적인 규정이라는 내용의 설시는 없이 단지 이 규정이 제복을 입은 군인경찰의 총기사용에만 적용된다는 점만을 이유로 결론에 이른 차이점이 있습니다.
Read More

2019년 12월 25일 수요일

[독서일기] 파기환송 (feat. 플리바기닝)

댓글 없음 : 작성자: iMagistrat 시간: 12/25/2019 12:15:00 오전 라벨: 검사 , 독서일기 , 마이클 코넬리 , 미국 , 미키 할러 , 법정소설 , 변호사 , 사법제도 , 수사 , 위선떨지 말자 , 플리바기닝 , 형사소송
이번에 소개하는 책은 마이클 코넬리의 미키 할러 변호사 시리즈 중 세 번째 작품, ‘파기환송(The Reversal)'입니다.



현재까지 국내에 번역되어 출간된 미키 할러 변호사 시리즈는 모두 4권입니다. 저작 순서로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탄환의 심판', '파기환송', '다섯 번째 증인', 이렇게 됩니다. 마지막 작품인 'The Gods of Guilt'도 조만간 번역되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 흥미로운 시리즈를 죽 읽어가면서, 저는 미국의 형사사법제도 중 특히 한 가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바로 '플리바기닝(plea bargaining)'이라는 제도입니다.
앞서 '다섯 번째 증인' 편에서도 소개하였듯이, 우리말로는 유죄인정 합의, 유죄답변 거래, 유죄답변 협상 등으로 다양하게 부르는 플리바기닝 절차는, 피의자나 피고인이 현재 자신이 받고 있는 혐의보다 가벼운 내용의 혐의를 인정하고 그 가벼운 혐의에 해당하는 처벌만 받기로 하고 정식재판 없이 사건을 종결시키는 검사와 피의자 또는 피고인 사이의 공적 계약을 말합니다.
미국에서 플리바기닝 제도를 도입한 취지는, 형사사건을 효율적으로 처리함으로써 사법자원을 절약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플리바기닝은 재판이 끝나기 전이라면 기소 전이든 재판 중이든 언제든 가능합니다. 다만, 수사 초기에 협상이 이루어진다면 검사 입장에선 수사와 재판에 들이는 수고를 대폭 절약할 수 있어 유리합니다. 만약 피고인이 끝까지 자신에게 죄가 없음을 주장해서 결국 정식재판인 배심재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면, 배심원 선정부터 시작해서 여러 날이 걸리는 이 재판절차를 위해 사법기관은 막대한 노력과 자원을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이죠.
같은 취지로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도 미국과 비슷하거나 다소 변형된 형태의 플리바기닝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미키 할러 변호사 시리즈에는 플리바기닝이 아주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형사사건의 시작은 바로 플리바기닝을 할지 말지 여부에 대한 검사와 변호인의 머리싸움입니다. 보통은 전세가 불리한 편에서 먼저 플리바기닝을 시도합니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건에서 플리바기닝이 검토되고 있고, 실제로도 미국에서는 이 절차를 통해 90퍼센트 이상의 형사사건이 정식재판 없이 종결된다고 하는데, 이처럼 플리바기닝은 미국 형사사법절차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제도입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실체적 진실 발견과 정의 구현이 최고이념인 형사사법절차에서 죄와 벌을 놓고 '협상'이니 '거래'니 하는 단어를 입에 담는 것 자체에 대한 극심한 알레르기 반응이 존재합니다. 즉, '국민정서법'상 용납되기 매우 힘든 제도입니다. 단언컨대, 100년 안에는 우리나라에 이 제도가 도입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왜 이 제도가 그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이 작품을 통해 해답을 한번 찾아볼까 합니다. 

------------------------------------------


[102-103쪽]  형사재판소 건물 13층, 제124호 법정 옆에 있는 유치장에는 내 의뢰인 카시우스 클레이 몽고메리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
......
"...... 그리고 우린 지금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잖아. 오늘 심리는 잠깐이면 끝날 거야. 그것도 아주 기분 좋게. 재판 날짜만 정하면 그걸로 끝이니까. 그렇지만 우리의 검사 헬먼 씨는 자기가 제안한 협상안이 오늘까지만 유효하다고 말한다는 거지. 만약 우리가 샴페인 판사에게 재판에 임할 준비가 됐다고 오늘 말한다면, 그 거래는 없던 일이 되고, 우리는 재판으로 가는 거야. 어때,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겠어?"

---> 할러 변호사가 법원에 가서 구속되어 있는 의뢰인을 만나고 있습니다. 검사가 제안한 플리바기닝 안에 대해 의뢰인의 의사를 물어보고 있네요. 좀 있다 바로 법정에 나가 판사 앞에 서야 하는데, 법정에 나가기 전에 검사가 제안한 안을 받아들이고 절차를 여기서 끝낼지 아니면 검사의 제안을 거부하고 판사에게 정식재판을 위한 날짜를 잡아달라고 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103-104쪽]  몽고메리가 철창 사이에 고개를 기댔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입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47살이고 살아오면서 이미 9년이라는 세월을 감방 안에서 보냈다. 그리고 지금은 무장 강도죄와 신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 폭행죄로 기소되어 나락으로 추락할 위기에 놓여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몽고메리는 로디아 가든스 빈민 주택단지 내에 있는,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물건을 구할 수 있는 마약 시장을 찾아가 구매자 행세를 했다. 그렇지만 돈을 지불하는 대신 총을 빼들어 마약상이 가진 약과 현찰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그러자 마약상이 그의 총을 빼앗으려 하다가 총이 발사되고 만 것이다. 갱단의 일원이기도 한 다넬 힉스라는 그 마약상은 현재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으며, 앞으로 남은 평생 동안 그 위에서 지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 의뢰인 몽고메리의 혐의는 마약을 빼앗기 위해 마약상을 총으로 쏘고 불구자로 만든 것이로군요. 마약은 해야겠는데, 돈이 없어서 총을 가지고 갔던 모양입니다.
경찰의 수사결과에 의하면, 의뢰인이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일부러 총을 쏜 건 아니고 총으로 피해자를 협박만 하고 있었는데 이 총을 빼앗으려는 피해자와 실랑이를 벌이다 우발적으로 총이 발사된 것이라고 합니다. 비록 일부러 쏜 건 아니라도, 총으로 피해자를 위협함으로써 먼저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니 단순한 과실범은 아니고 그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겠습니다.


[104쪽]  빈민 주택단지가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그곳 주민들은 아무도 수사에 협조하지 않았다. 심지어 피해자조차도 자신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갱단 동료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해주리라 믿었기에 침묵 쪽을 선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찌 됐건 경찰은 수사를 진행했다. 주택단지 입구에 설치된 비디오카메라를 판독해 내 의뢰인의 차량을 확인해서 숨겨둔 차량을 찾아냈고, 차량 문짝에서 피해자의 혈흔을 발견했다. 

---> 그럼 그와 같은 혐의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경찰과 검사가 현재까지 확보한 증거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가장 중요한 증거는 피해자의 진술이 될 텐데, 피해자는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당시 상황이 잘 기억나지만 곧이곧대로 말할 수가 없는 입장입니다. 스스로 마약을 판매한 범죄를 자인하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는 갱단의 일원입니다. 자칫 곧이곧대로 진술했다가 자신의 갱단에까지 피해를 입히게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입은 피해는 갱단 동료들이 보복이라는 방식으로 해결해줄 것이기 때문에 굳이 국가에서 제공하는 형사사법 서비스에 기댈 필요도 없습니다. 이런 부류들에겐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깝고 편리한 것이죠. 혹시 피해자가 나중에 마음을 바꿔먹어 사실 그대로 말을 하게 되더라도, 이미 '진술의 일관성'에 흠이 생겨버린 상태여서 진실한 진술도 신빙성 없는 진술로 치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튼 피해자가 이 모양이니,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가 수사기관의 손에는 없는 겁니다.
다음으로, 범행이 발생할 무렵 범행장소 부근을 지나가는 몽고메리의 차가 촬영된 비디오카메라 영상, 그리고 몽고메리의 차에서 발견된 피해자의 혈흔이라는 두 개의 증거가 확보되어 있습니다. 몽고메리가 죄를 저질렀음을 추정할 수 있는 좋은 증거이지만, 이것만 가지고 몽고메리가 피해자를 총으로 쐈다는 사실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피해자가 제대로 말을 하지 않으면, 이를 틈타 몽고메리가 둘러댈 수 있는 변명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입니다. 피해자가 말을 하지 않으니, 그 사이를 연결할 뭔가 다른 증거가 더 필요합니다.


[104쪽]  그다지 강력한 증거는 아니었지만, 우리 쪽에서 검찰의 협상을 끌어내기에는 충분했다. 만약 몽고메리가 검찰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그는 3년 형을 선고받고 대략 2년 6개월 정도 복역하면 풀려날 수 있었다. 만약 그가 도박하기로 결정해서 재판 마지막에 유죄판결을 받게 된다면, 최소한 15년은 꼼짝없이 감방에서 썩게 될 터였다. GBI(신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 폭행죄)와 강도행위 중에 무기를 사용했다는 혐의가 합해졌으니 거의 구원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나는 주디스 샴페인 판사가 총기 범죄에 전혀 관대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증거가 뭔가 좀 더 있을 줄 알았더니, 그게 전부로군요. 현재까지의 증거만으로는 유죄판결을 받기에 부족합니다. 몽고메리 차에 묻은 피해자의 혈흔과 몽고메리가 피해자를 쏜 사실을 바로 연결할 연결고리가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겨우 이 상태에서 재판으로 가려면 검사의 입장에선 피해자의 입을 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피해자의 입을 열지 않으면 유죄판결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피해자가 계속해서 입을 닫고 있겠다면 큰 문제입니다. 사람의 입을, 그것도 피해자의 입을 강제로 열게 할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학수사'나 '물적 증거'와 같이 '사람'이 배제된 수사가 능사는 아닙니다. 반드시 형사재판에는 '인적 증거', 즉 '사람의 진술'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수사기관은 사람으로부터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증거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검사가 먼저 할러 변호사에게 플리바기닝을 제안한 것입니다. 원래는 최소 15년의 형을 받아야 할 사건을 3년 형으로 줄여 준다고 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총을 쏜 행위를 고의범이 아닌 과실범으로 의율해 주겠다는 제안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반대로, 변호인은 유리한 입장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변호인의 입장에서도 검사가 가진 증거가 저게 다라고 해서 무죄판결을 장담할 수만은 없습니다. 총의 발사경위에 대해 몽고메리가 할 수 있는 변명이 아무리 많더라도, 배심원들을 자기 편으로 확 끌어올 만한 그럴듯한 변명이 과연 얼마나 되겠어요. 몽고메리가 마약상을 만나러 가는데 왜 총을 가지고 간 것이며, 왜 하필 그의 차에 피해자의 혈흔이 묻게 된 것이며 등등, 깔끔한 설명이 곤란한 부분이 많습니다. 게다가 그는 전과도 많습니다. 배심원들에게 신뢰를 주기 힘든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배심원들은 확실한 증거가 없더라도 이런저런 정황만으로 몽고메리가 유죄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 위험부담이 있으니, 할러 변호사도 15년과 3년 사이에서 고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이렇게 검사도 변호인도 자신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팽팽한 상황이니, 협상과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각자 자신의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냥 그쪽으로 가서 유죄를 받든 무죄를 받든 하면 그만인 거죠. 플리바기닝이 그렇게 많이 이용된다는 것은, 그만큼 이렇게 팽팽한 상황에 있는 사건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사건이란 게 생각만큼 그렇게 쉽게 수사가 이루어지고 쉽게 증거가 수집되고 쉽게 유죄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형사소송의 대원칙인 '엄격한 증명의 원칙'과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 등의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105쪽]  나는 의뢰인에게 검찰의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권유했다. 내게는 쉬운 결정이었지만, 사실 형을 살게 될 사람은 내가 아니지 않은가. 몽고메리는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
......
"자네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군." 내가 말했다. "우리에겐 상당히 좋은 제안이야. 검사가 이 건을 재판까지 끌고 가고 싶어하지 않아. 법정에 서고 싶어하지 않는 피해자를 굳이 거기다 끌어다 놓고 싶지 않은 거야. 그랬다가는 도움이 아니라 오히려 해를 입히는 꼴이 될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최대한 선심을 베풀어서 가장 짧은 형기를 제시하는 거라고. 하지만 모든 건 자네에게 달렸어. 자네가 결정해야 해. 앞으로 2주 정도 시간이 있고, 그 이후로는 끝이야. 어쨌든 몇 분만 있으면 법정에 나가야 해."

---> 할러 변호사가 검사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나은 전략이라고 의뢰인을 설득합니다. 결정은 의뢰인이 하는 것이지만, 변호인 자신의 의견도 의뢰인에게 솔직하게 전달합니다.
할러 변호사의 말대로 검사는 피해자를 법정에 증인으로 세우고 싶어하지 않을 겁니다. 피해자가 제대로 진술을 하려 하지 않는 건 둘째치더라도, 갱단에 몸담고 있는 데서 연상할 수 있는 피해자의 우락부락한 인상이라든가 몸 여기저기에 문신들이 또아리 틀고 있는 이미지라든가, 배심원들에게 점수 딸만한 꺼리가 하나도 없어서이겠죠. '메시지보다 메신저'를 고려해볼 때 유리할 게 없는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105-106쪽]  "...... 자네가 선택해. 3년을 받든가, 아니면 재판으로 가는 거야. 그리고 전에도 말했듯이 재판으로 가도 뭔가 방법이 있기는 할 거야. 검찰 측에서 무기를 찾아내지도 못했고, 피해자는 진술을 거부하고 있잖아. 하지만 여전히 자네 차에 묻어있는 혈흔이 문제야. 그리고 검사 측은 총격 직후에 자네가 차를 운전해서 로디아를 빠져나가는 비디오 영상도 가지고 있잖아. 물론 자네가 얘기했던 대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고 배심원을 설득할 수도 있겠지. 정당방위였다고. 거기에 약을 사러 갔었는데, 그가 자네 돈뭉치를 보고는 그걸 빼앗으려다가 그렇게 됐다고 말이지. 어쩌면 배심원단도 그 말을 믿을지 몰라. 특히 피해자가 증언을 안 하려 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설사 그가 증언을 하더라도 자네 말을 더 믿을지도 모르지. 일단 변론을 시작하면 난 그가 수도 없이 묵비권을 행사하도록 만들 작정이거든. 그럼 배심원들은 그가 증언대에 올라서기도 전에 그를 마치 알 카포네라도 되는 듯이 생각하게 될 거라고."

---> 이제 보니, 범행에 사용된 총도 몽고메리가 이미 어딘가에 버려버린 모양이군요. 총도 없으니 정확한 발사경위를 확인하기도 더 어려워, 몽고메리에게 매우 유리한 상황이겠습니다.
그리고 몽고메리는 정당방위를 주장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일응 해볼 수는 있는 변명 같기는 합니다만, 그 변명이 그럴듯해 보이려면 그 당시 피해자가 탐낼 만한 돈뭉치를 몽고메리가 갖고 있었음을 몽고메리가 입증하여야 할 텐데요. 돈도 전혀 없어서 총으로 협박해 마약을 빼앗으려던 사람이 과연 자신에게 돈뭉치가 있었음을 입증할 수 있을까요? 
아무튼 할러 변호사의 탁월한 변론실력을 감안한다면, 정식재판으로 가도 해볼만한 싸움이 될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만......


[106쪽]  "검사가 지금 자네에게 제안하는 형량과 만약 우리가 재판에서 졌을 때 선고받게 될 형량 사이에 틈이 너무 벌어져 있다고. 최소한 12년 정도는 예상하고 있어야 해, 캐시. 그 기간을 도박에 걸기에는 너무 길잖아."

---> 아무래도 실패했을 경우의 위험부담이 너무 큽니다. 피고인의 위험부담 뿐만 아니라, 실패했을 경우 변호인이 입게될 데미지도 어마어마할 겁니다.
게다가 빨리 결정을 못하고 어정쩡하게 정식재판으로 가기로 했다가, 그 사이에 어디선가 몽고메리의 총이라도 발견되어 그에게 불리한 상황이 초래될 위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빨리 결정을 내리는 게 유리할 수 있습니다.


-------------------------------------------


자, '파기환송'에서 플리바기닝이 활약하는 장면 소개는 요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위 사건의 결말은 정확히 소개되지 않은 채 다른 사건으로 넘어가지만, 할러 변호사가 검사의 제안을 1년형으로 더 깎으면서 플리바기닝에 성공하는 듯한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작품에서 미키 할러 변호사는 총기 상해범죄 피고인을 위한 플리바기닝을 시도하였고, 다음 작품 '다섯 번째 증인'에서는 살인범죄 피고인을 위한 플리바기닝을 시도하였습니다. 이런 사건은 피해자가 존재하는 강력 사건인데요, 우리나라라면 이런 류의 사건에서 플리바기닝을 한다는 것은 최소한 검사 입장에선 쉽지 않아 보입니다. 범인임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 가해자가 수사기관에 잡혀있기까지 한 상황인데, 증거가 좀 부족하다고 해서, 무죄판결 가능성이 좀 있다고 해서 가벼운 죄로만 살짝 처벌하고 만다는 것은 누구도 수긍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중범죄인을 봐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수사기관은 어떻게 해서든 중범죄인일수록 법정에 세우려고 기를 쓰게 마련입니다. 수사기관이라도 그렇게 안 하면 불쌍한 피해자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요?
게다가 이런 류의 강력 사건은, 수사가 아주 어렵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잘하면 범인을 잡아낼 가능성이 꽤 있습니다. 왜냐하면 강력 사건은 눈에 보이는 범행현장이 있고, 확실한 피해자가 있고, 세상이 좋아져서 지문 감식이나 DNA 감정과 같은 과학수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동네 여기저기에 설치되어 있는 CCTV에 범인의 단서가 포착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긴 세월 오리무중이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도 결국에는 범인이 잡히고야 말지 않습니까?

이런 류의 강력 사건 말고, 정작 플리바기닝이 필요하거나 적절한 사건은 따로 있습니다.
우선은, 범죄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자가 없는 사건이 좋겠습니다. 피해자의 피해감정을 해하면서까지 국가가 범인에게 혜택을 부여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론, 수사가 정말로 쉽지 않은 성격의 사건입니다. 예를 들어, 화이트칼라 사건, 기업 비리 사건, 금융경제 사건, 뇌물 사건, 조직범죄 사건, 마약 사건, 테러 사건, 보이스피싱 사건 같은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사건의 특징은, 가담자들이 다수인데 범죄가 은밀히 이루어지는데다 직접적인 피해자가 없고 범죄자나 그 관련자 모두 서로 win-win 하는 성격의 사건이어서 적발이 쉽지 않고, 어쩌다 잡힌 가담자가 나는 잘 모르는 일이라며 입을 닫아버리면 증거수집도 쉽지 않고 더 이상 윗선으로 올라갈 수 없어 주동자들을 일망타진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된다는 점입니다.
즉, 이런 사건은 적발과 증거수집을 위해서는 내부자의 제보나 협조가 필수적입니다. 내부자의 제보나 협조 없이는 그런 범죄를 제대로 잡아내거나 예방하기는 힘듭니다. 내부자의 제보나 협조를 기대하기 힘든 경우에는, 통신감청이나 잠입수사, 함정수사와 같은 극단적인 형태의 수사기법이라도 동원하여야 하나, 이런 수사기법은 우리 법상 인정되지 않거나 매우 제한적으로만 쓸 수 있고, 설령 가능한 경우라도 인권이나 사생활 침해의 위험이 큰 만큼 함부로 휘두를 수도 없습니다. 이런 사건은 직접적인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아 당장은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법질서를 망가뜨리고 사회와 국가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범죄이기 때문에 국가가 반드시 적발하고 처벌해야 하는 사건입니다. 

수년 전 우리나라 법무부와 검찰에서 플리바기닝 제도의 도입을 시도하였다가 무산된 적이 있습니다. 법무부나 검찰에서 플리바기닝 제도에 대해 얘기할 때 흔히 있을 수 있는 비판이, 수사의 효율성만을 강조하여 물증 확보에 노력하지 않고 쉽게 피의자의 자백만 받아내려는 수사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형사절차 실무는, 검사에게 범죄의 성립요건에 대해 엄격한 입증책임을 부담시키고 정밀한 입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극히 간단한 수사만 진행한 채 곧바로 재판절차로 직행하여 대부분의 입증활동이 재판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미국의 형사사법제도와 달리, 우리의 형사사법제도는 수사기관이 충분한 수사를 통해 혐의 입증까지 성공한 다음에야 비로소 재판절차로 넘어가게 되고 재판절차는 수사 과정에서 입증된 사실을 재확인하는 정도로 진행됩니다.
따라서 검사는 재판으로 가기 전에 미리 엄격하고 정밀한 입증을 위해 물증을 확보하고 피의자나 참고인들을 조사하여 진술증거를 충분히 확보하려고 노력합니다. 물증이라는 게 말처럼 쉽게 수집되는 게 아니지만, 설령 아무리 많은 물증이 확보되어 있더라도 물증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 범죄가 입증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의 진술을 통해 물증과 범죄와의 연관성까지 밝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앞에서 말한 플리바기닝에 적합한 성격의 사건들은, 범죄를 적발하고 처벌하기 위해서 내부자들의 진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사기관이 엄격하고 정밀한 입증을 위한 수사에 주력하다보니 부작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혹시라도 무죄판결을 받는 불상사를 방지하고 어떻게든 증거 하나라도 더 수집해서 확실하게 유죄판결을 받기 위해, 압수수색을 과도하게 한다거나, 예컨대 휴대폰이나 카카오톡 같은 지극히 사적인 물건을 그야말로 탈탈탈 턴다거나, 자백을 받기 위해 피의자를 강압적 또는 반복적으로 조사한다거나 하는 인권 침해나 사생활 침해 등의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수사기관이 단지 법과 절차를 잘 지켜 수사를 하는 것만으로는 이런 부작용 예방에 부족할 수 있습니다. 수사기관의 선의에만 기대지 않고 이런 부작용을 근본적으로 예방하려면, 수사기관이 수사라는 걸 좀 적당히 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엄격하고 정밀한 입증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런 부담을 좀 덜어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또한, 사법자원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국가재정상 사법자원은 물적으로나 인적으로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 한계 내에서 효율적으로 배분되어야 한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합니다. 수사기관이 엄격하고 정밀한 입증활동에 나설 수 있는 사건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이런 식의 반론이 가능할 겁니다. 국가의 수사기관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범죄자들을 잡아들이고, 다른 한편으론 억울한 사람이 누명을 쓰는 일이 없도록 엄격하고 정밀한 입증활동을 다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이죠.
네, 당연히 지당하고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현실은 바로 보려 하지 않고 애써 눈을 감은 채, 마치 공자님인 양 맹자님인 양 늘 점잖은 목소리로 지당하고 옳은 말을 하는 데만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저는 2019년 하반기 대한민국을 온통 휘어잡은 소동들을 지켜보면서 한 가지 인사이트를 얻었습니다. 바로, '이제 제발 위선 떨지 말자'라는 생각입니다. 사실은 진심도 아니면서 그저 남 듣기 좋으라고 아름답고 번드르르한 말만 늘어놓는 이중성과 위선, 우린 그걸 올해 새삼스레 많이도 목격하지 않았습니까? 이젠 우리도 솔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점잖게 지당하고 옳은 말만 하기에 앞서, 과연 그게 실현은 가능한 얘기인지, 과연 우리 앞에 놓인 실상과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똑바로 보고 제대로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제 우리는 수사기관이 전지전능하지 않은 존재라는 현실을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수사기관이 행사하는 수사권이 뭔가 대단한 권한이라고 생각하고, 이 요술방망이 같은 권한으로 해결 못하는 일이 없고 못 밝히는 진실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형사법 만능주의 국가가 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회적 논쟁과 문제점은 죄다 형사절차 안에 집합시켜 놓고 형사법에 따른 해결을 기다립니다. 사회적 논쟁과 문제점의 직접당사자들은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해결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그 일의 당사자도 아니고 문외한에 불과한 판검사의 손에 해결을 맡겨버리고는 그 처분만 하염없이 기다리곤 합니다. 그러고도 정작 그 결과에는 승복하지 않고 각 진영별로 아전인수격 주장만 일삼습니다.
그러나 "조사하면 다 나와", 이런 말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조사한다고 속 시원하게 알고 싶은 게 다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몇 사람 사이에 있었던 과거의 어떤 사건을 제3자인 수사기관이 증거라는 형식으로 완벽하게 재구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즉, 수사기관은 제아무리 애를 써도 누구나 수긍하는 진실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수사기관의 능력이 모자라서이기도 하고, 수사라는 행위만으로는 진실을 밝히는 데 턱없이 부족해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언제나 진실을 발견하는 게 가능함을 전제로, 수사기관의 도리와 의무를 말해서는 곤란합니다. 이는 세상의 모든 범죄를 빠짐없이 적발하겠다고 모든 장소에 빠짐없이 CCTV를 설치하자거나 모든 사람들의 휴대폰과 카카오톡을 수사기관이 마음껏 보게 하자는 게 전혀 말이 안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더구나 갈수록 수사환경은 열악해지고 있습니다. 범죄는 고도로 지능적이고 은밀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수사기관이 범죄의 단서조차 찾기 쉽지 않고, 범죄자들은 묵비권을 행사하며 입을 닫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고, 참고인들은 괜한 불이익이라도 당할까 싶어 남의 사건에 개입하기 꺼려합니다. 범죄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자가 있는 사건의 경우에는 피해자의 진술이라도 확보하여 어찌어찌 수사를 진행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건은 사람의 진술을 확보하기 힘들어 수사 진행 자체가 곤란한 경우도 많습니다.
사법선진국 수사기관의 최신 수사기법과 제도를 우리나라에도 수입하려면 온갖 반대론에 맞닥뜨리게 되어, 아직까지 우리나라 수사기관은 2차 세계대전 때 사용하던 구식 무기로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당연한 현실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수사기관의 권한을 늘리고 힘을 키워주자는 주장이 아닙니다. 그런 해결책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수사기관의 과욕에 따른 부작용을 조장하는 위험한 주장일 수 있습니다. 단지, 수사기관이 모든 범죄를 엄격하고 정밀하게 입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수사기관의 엄격하고 정밀한 입증이 가능하고, 수사기관이 언제나 진실을 발견하는 게 가능하더라도, 그 때문에 야기될 수 있는 인권 침해 등의 부작용을 예방한다는 더 중요한 가치를 위해서, 이제 수사기관의 도리와 의무에 대해 현실과는 유리된, 그저 지당하고 옳아 보이기만 한 말은 더 이상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이미 그런 현실을 인정하고 있고, 이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바로 플리바기닝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플리바기닝 제도의 취지는 수사기관의 한계를 인정하고 수사기관의 수사를 줄이자는 것으로, 바로 수사기관의 입증이 부족할 수밖에 없어 생기는 빈 틈의 존재를 인정하되 그 빈 틈을 그냥 방치해두지만 말고 어떻게든 뭐라도 메워놓자는 게 그 취지라고 생각합니다. 플리바기닝 제도는 수사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 맞습니다. 사회적으로 필요성이 있으면 수사편의주의적 발상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수사편의주의를 위해 플리바기닝을 하자는데 이를 수사편의주의라고 비난하는 것은 동어반복에 불과하고 적절한 비난이 아닙니다.
일본의 경우 미국의 제도를 참고하여 변형된 형태의 플리바기닝 제도를 2016년에 도입하였습니다. 그 도입 이유가 재미있는데, 갈수록 진술증거의 수집이 곤란해지고 있는 수사환경을 고려하여 조사의 비중을 줄이고 사건 관련자들로부터 자발적인 진술을 이끌어내기 위한 새로운 수사방법으로서 이 플리바기닝 제도를 도입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역시 수사기관의 한계를 인정하고 현실을 수긍하는 데서 이끌어낸 적절한 대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도 2004년부터 변형된 형태의 플리바기닝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인데, 최근인 2019년 9월부터는 종전의 배심재판 대상사건을 축소해서 시민배심원들의 사법절차 참여를 점차 줄여가고 있습니다. 이는 배심재판으로 야기될 수 있는 형사사법절차의 지연을 방지하여 신속한 재판 진행과 사법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대책인데, '시민의 사법참여'니 '사법의 민주화' 같은 지고지순한 말만 앞세워 배심재판 제도를 숭배대상으로 삼으려 하지 않고, 위선 떨지 않으면서 그리고 실상을 인정하면서 과감하게 문제점을 고쳐나가겠다는 프랑스 국민들의 실용적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사례입니다. 

결론을 정리하면, 우리나라에도 플리바기닝 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저는 우리 국민정서법상 100년 안에는 우리나라에 이 제도가 도입되는 일이 절대 없을 거라 예상합니다.
제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이제 우리 솔직해지고 제발 위선 떨지 말자는 것입니다. 모자라고 부족한 현실은 현실 그대로 인정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나갈 수 있습니다. 실상은 외면한 채, 하나마나 한, 그럴듯하기만 한, 그저 번드르르하기만 한 말만 해서는 아무런 해결책도 마련할 수 없습니다.
왜 미국이 스스로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자인하면서도 플리바기닝 제도를 그렇게 오랜 세월 운영하고 있는지, 왜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은 지극히 미국스러운 제도인 플리바기닝 제도를 굳이 자국에 도입한 것인지, 우리는 그 이유를 솔직하게 들여다보면서 우리의 문제점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Read More
이전 게시물 홈
피드 구독하기: 글 ( Atom )
내 사진
iMagistrat
'magistrat'는 '사법관'을 뜻하는 프랑스어입니다.
전체 프로필 보기

Search

Category

  • 프랑스 사법제도 (137)
  • 사법제도 (92)
  • IT (57)
  • 잡담 (44)
  • 독서일기 (40)
  • 프랑스 생활 (38)
  • 아이폰 (24)
  • 아이패드 (16)
  • 식도락 (15)
  • 아이디어 (9)

Tag

4월 이야기 (2) 가짜 뉴스 (1) 감독관 (1) 감찰관 (2) 감찰제도 (3) 강사 (1) 강의 (3) 강제수사 (2) 강제입원 (1) 개혁 (9) 건축 (4) 검사 (58) 검찰 (33) 검찰청법 (1) 검찰총장 (6) 검찰항고 (1) 경찰 (4) 고등사법위원회 (7) 골든아워 (1) 공감 (10) 공기계 (1) 공부 (4) 공소장 (1) 공정 (1) 교도소 (2) 교육 (2) 구글 (11) 구글포토 (1) 구금대체형 (2) 구금시설 (1) 구치소 (1) 국가금융검찰 (4) 국가대테러검찰 (2) 국가사법재판소 (4) 국가정보기술감독위원회 (1) 국가정의재판소 (2) 국가조직범죄검찰 (1) 국사 (1) 권리보호관 (1) 그리스 (1) 근무환경 (3) 금융전담 검찰 (3) 기생충 (1) 까페 (3) 나의아저씨 (1) 네덜란드 (1) 노란조끼 (1) 녹음 (1) 논고 (1) 대구 (1) 대륙법 (1) 대법원 (10) 대법원장 (2) 대테러 (3) 대통령 (2) 대학원 (6) 대화 (2) 데이식스 (1) 덴마크 (1) 도시 (1) 도피성 (1) 독립성 (19) 독서일기 (40) 독일 (1) 드라마 (1) 디지털 (8)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3) 디지털증거 (2) 라따뚜이 (1) 라트비아 (1) 레미제라블 (3) 루브르 (1) 룩셈부르크 (1) 리더 (1) 리투아니아 (1) 마약 (1) 마이클 코넬리 (6) 마인드맵 (1) 마츠 타카코 (1) 마크롱 (2) 맥 (3) 메타버스 (1) 명예훼손죄 (3) 모노프리 (1) 모욕죄 (2) 몰타 (1) 무죄 (1) 문화 (1) 미국 (13) 미러링 (2) 미모자 (1) 미술 (1) 미키 할러 (6) 바울 (1) 배심재판 (1) 배심제 (7) 범죄 (4) 법률구조 (1) 법률용어 (2) 법무부 (19) 법무부장관 (11) 법원 (15) 법원서기 (1) 법정 (3) 법정소설 (6) 벨기에 (1) 변호사 (11) 변호사협회 (1) 보호유치 (4) 블로그 (5) 비상상고 (1) 비시정부 (2) 빵 (3) 사교 (1) 사기죄 (2) 사법감찰 (1) 사법개혁 (2) 사법관 (16) 사법정보 (2) 사법제도 (92) 사소 (1) 사용자 환경 (1) 사진 (1) 샌드위치 (1) 서기 (1) 서래마을 (1) 서울 (5) 석방구금판사 (1) 설득 (1) 성경 (4) 성희롱 (1) 세리 마태 (1) 센강 (1) 소년법원 (1) 소법원 (2) 소통 (7) 수사 (1) 수사지휘 (1) 수사판사 (4) 수용시설 (1) 수용시설 최고감독관 (1) 슈크르트 (1) 스웨덴 (1) 스트로스 칸 (1) 스티브잡스 (5) 스페인 (1) 슬로바키아 (1) 슬로베니아 (1) 시간 (1) 시스템 (1) 식도락 (15) 식전빵 (1) 신년사 (2) 신속기소절차 (1) 신원확인 (1) 심리학 (2) 아날로그 (2) 아웃라이어 (1) 아이디어 (9) 아이유 (1) 아이패드 (16) 아이폰 (24) 아일랜드 (1) 아카데미상 (1) 압수수색 (2) 애플 (8) 앱 (5) 야구 (2) 언락폰 (1) 언터처블 (1) 에스토니아 (1) 엘리제 궁 (1) 여행 (10) 역사 (11) 열정 (1) 영국 (2) 영미법 (1) 영상녹화물 (2) 영어 (1) 영화 (9) 예술 (1) 예심수사판사 (7) 예심판사 (4) 오스카상 (1) 오스트리아 (1) 올림픽 (1) 와이파이 (1) 와인 (1) 우트로 사건 (1) 웹사이트 (1) 위선떨지 말자 (1) 위헌 (1) 유럽사법재판소 (1) 유럽인권법원 (1) 유심 (1) 유튜브 (3) 음식 (1) 이국종 (1) 이준 (1) 이탈리아 (1) 인간관계론 (1) 인공지능 (1) 인사 (4) 인생 (1) 인왕재색도 (1) 일본 (1) 자치경찰 (1) 잡담 (44) 재판 (4) 재판의 독립 (1) 쟝-루이 나달 (1) 저작권 (1) 전문법칙 (3) 전원 (1) 전자소송 (4) 전자화 (5) 절차의 무효 (1) 정신병원 (2) 조서 (4) 조직범죄 (2) 중죄재판부 (2) 증거 (8) 증거법 (2) 지문 (1) 직권남용 (1) 직무교육 (1) 직무상 과오 책임 (1) 직장 (8) 직접주의 (1) 참고인 (1) 참고인 구인 (1) 참심제 (2) 체코 (1) 최고사법관회의 (7) 치료감호소 (1) 카페 (1) 캠핑장 (2) 케밥 (1) 크롬 (1) 크리스마스 (1) 키노트 (1) 키프로스 (1) 테러 (3) 통계 (1) 통신비밀 (1) 퇴사 (1) 트위터 (4) 파기원 (2) 파리 (22) 파리 지방검찰청 (1) 판결정보 공개 (3) 판례 (1) 판사 (7) 팟캐스트 (1) 페이스북 (2) 포르투갈 (1) 포토북 (2) 폴란드 (1) 프랑스 (27) 프랑스 국립사법관학교 (13) 프랑스 드라마 (1) 프랑스 사법제도 (137) 프랑스 생활 (38) 프랑스 언론 (3) 프랑스 영화 (3) 프랑스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 (9) 프랑스 장관 (1) 프랑스 총리 (1) 프랑스어 (5) 프레젠테이션 (1) 프리젠테이션 (1) 플뢰르 펠르랭 (2) 플리바기닝 (6) 피해자 (1) 핀란드 (1) 한식 (1) 한양도성 (1) 항소 (1) 햄버거 (1) 헌법 (1) 헌법위원회 (3) 헝가리 (1) 형벌 (4) 형사소송 (41) 형사소송법 (2) 형사증거법 (1) 호텔 (1) 회식 (3) AI (1) CEO (1) DELF (3) DNA (1) EU (28) gilets jaunes (1) greffier (1) IT (57) jeudigital (1) NFT (1) open data (4) RSS (1) transformation numérique (1) UI (1)
Je-Hee. Powered by Blogger.

Blog Archive

  • 2026 (6)
    • 7월 2026 (5)
      • 책을 두 권 냈습니다. "2026년, 마지막 검찰청법 이야기", "검사의 시각으로 쉽게 풀...
      • 왜 검사는 무죄판결에 항소하는가?
      • [성경] 세리 마태 이야기
      • [독서일기 ]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 "희미해지는 프랑스 형사법의 흔적들"
    • 1월 2026 (1)
  • 2025 (6)
    • 9월 2025 (1)
    • 8월 2025 (2)
    • 7월 2025 (1)
    • 4월 2025 (2)
  • 2024 (4)
    • 9월 2024 (1)
    • 7월 2024 (1)
    • 4월 2024 (2)
  • 2023 (11)
    • 12월 2023 (2)
    • 10월 2023 (2)
    • 9월 2023 (2)
    • 7월 2023 (1)
    • 6월 2023 (2)
    • 5월 2023 (2)
  • 2022 (2)
    • 8월 2022 (1)
    • 4월 2022 (1)
  • 2021 (15)
    • 12월 2021 (2)
    • 11월 2021 (1)
    • 10월 2021 (2)
    • 9월 2021 (3)
    • 8월 2021 (1)
    • 7월 2021 (2)
    • 6월 2021 (1)
    • 5월 2021 (1)
    • 3월 2021 (2)
  • 2020 (9)
    • 11월 2020 (1)
    • 10월 2020 (1)
    • 8월 2020 (1)
    • 6월 2020 (1)
    • 2월 2020 (2)
    • 1월 2020 (3)
  • 2019 (40)
    • 12월 2019 (4)
    • 11월 2019 (4)
    • 10월 2019 (2)
    • 9월 2019 (1)
    • 8월 2019 (3)
    • 7월 2019 (13)
    • 4월 2019 (2)
    • 3월 2019 (3)
    • 2월 2019 (2)
    • 1월 2019 (6)
  • 2018 (36)
    • 12월 2018 (7)
    • 11월 2018 (3)
    • 10월 2018 (4)
    • 9월 2018 (2)
    • 8월 2018 (2)
    • 7월 2018 (1)
    • 6월 2018 (3)
    • 5월 2018 (1)
    • 4월 2018 (6)
    • 3월 2018 (6)
    • 2월 2018 (1)
  • 2017 (24)
    • 12월 2017 (6)
    • 11월 2017 (1)
    • 9월 2017 (1)
    • 8월 2017 (2)
    • 7월 2017 (3)
    • 6월 2017 (3)
    • 5월 2017 (1)
    • 3월 2017 (3)
    • 2월 2017 (2)
    • 1월 2017 (2)
  • 2016 (33)
    • 12월 2016 (6)
    • 11월 2016 (1)
    • 10월 2016 (5)
    • 9월 2016 (1)
    • 8월 2016 (1)
    • 7월 2016 (2)
    • 6월 2016 (3)
    • 5월 2016 (6)
    • 4월 2016 (2)
    • 3월 2016 (3)
    • 2월 2016 (3)
  • 2015 (16)
    • 11월 2015 (2)
    • 7월 2015 (5)
    • 6월 2015 (4)
    • 5월 2015 (2)
    • 4월 2015 (1)
    • 2월 2015 (2)
  • 2014 (2)
    • 12월 2014 (1)
    • 5월 2014 (1)
  • 2013 (9)
    • 10월 2013 (1)
    • 8월 2013 (4)
    • 5월 2013 (1)
    • 3월 2013 (2)
    • 2월 2013 (1)
  • 2012 (9)
    • 10월 2012 (1)
    • 7월 2012 (1)
    • 6월 2012 (5)
    • 1월 2012 (2)
  • 2011 (90)
    • 12월 2011 (2)
    • 11월 2011 (2)
    • 10월 2011 (2)
    • 9월 2011 (5)
    • 8월 2011 (6)
    • 7월 2011 (4)
    • 6월 2011 (8)
    • 5월 2011 (4)
    • 4월 2011 (4)
    • 3월 2011 (10)
    • 2월 2011 (9)
    • 1월 2011 (34)
  • 2010 (2)
    • 12월 2010 (1)
    • 6월 2010 (1)

Popular Posts

  • 아이패드, 아이폰, 미러링을 활용한 프리젠테이션
    2012년 1월 15일자로 제가 이 블로그에 쓴 "아이폰과 아이패드 활용사례 소개" 글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http://imagistrat.blogspot.kr/2012/01/blog-post_15.ht...
  • 식전빵?
    언젠가부터 고급 레스토랑은 물론 동네에 있는 흔한 파스타 집에서도 '식전빵'이란 걸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에피타이저든 주요리든 뭔가가 나오기 전에 가장 먼저 발사믹을 친 올리브 오일과 함께 나오는 빵을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요...
  • 프랑스 검찰 독립성 관련 헌법위원회의 합헌결정(2)
    2017년 12월 25일에 " 프랑스 검찰 독립성 관련 헌법위원회의 합헌결정 "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프랑스 헌법위원회의 결정문 하나를 소개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 결정문과 함께 그에 부속된 보충설명서를 번역하여 최근 어느 모임에서...
  • 책을 두 권 냈습니다. "2026년, 마지막 검찰청법 이야기", "검사의 시각으로 쉽게 풀어낸 형사증거법 강의"
      올해 4월과 5월, 제 이름을 단 책을 두 권 냈습니다. 이 블로그는 비실명으로 운영하고 있어 이 책 얘기를 할까말까 망설였습니다. 그래도 이 블로그가 저의 개인 역사책인데 여기에 저의 중요한 역사를 기록해두지 않을 수 없네요. 뒤늦게 제 책을 소...
  • 프랑스 검사의 권한에 대한 오해
    9. 22. 그저께부터 중앙일보는 '2016년 대한민국 검사 대해부'라는 제목으로 검사와 관련한 시리즈 기사들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여러 흥미로운 기사들이 있는 가운데, 어제 아침 기사 중 하나인 ' 영국 수사 주체는 경찰, 미국...

© iMagistrat 2013 . Powered by Bootstrap , Blogger templates and RWD Testing To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