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5일 토요일
프랑스 예심판사 제도 뉴스에 대한 코멘트
2024년 10월 15일자 한겨레의 <'사냥하듯 수사하지 말라'는 제도적 명령, 예심판사>라는 기사는, 우리나라 검찰과 비교하면서 프랑스 예심판사 제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사법제도에 관심이 많은 저는 예심판사 제도 소개 부분에 시선이 꽂혔습니다.
프랑스 법원에는 두 종류의 판사가 일하고 있습니다. 재판절차를 담당하는 판사와 예심절차를 담당하는 판사가 각각 있고, 후자가 바로 예심판사(Juge d'instruction)입니다. 예심절차란 사건이 재판절차에 보낼 만한 것인지, 유죄를 받을 만한 증거는 갖춰져 있는지 여부를 재판 전 단계에서 미리 심사한다는 의미인데, 단지 현재 있는 자료만 갖고 그냥 심사만 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증거를 수집하는 활동, 즉 수사와 같은 활동을 한다는 게 특이한 점입니다. 그래서 예심절차를 담당하니 ‘예심판사’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수사를 하기 때문에 ‘수사판사’라고 하기도 하고, 이도저도 애매하니 한데 합쳐서 ‘예심수사판사’라고 하기도 합니다.
예심판사는 형법에 중죄로 정의된 사건이나 검사가 예심판사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예심절차 개시를 청구하는 사건을 수사하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판사가 검사 같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프랑스가 1808년 이 제도를 만든 이후 19세기 내내 전 세계에 수출하였지만, 차츰 이 제도를 포기하는 나라들이 등장하기 시작해 독일은 1974년에, 이탈리아는 1989년에, 오스트리아는 2001년에 예심판사 제도를 폐지하였습니다. 경찰조직과 수사기법의 발전, 예심판사가 더 이상 필요 없을 정도로 신속하고 다양한 제도의 도입, 수사나 기소와 관련하여 검사에게 부여된 새로운 권한들, 피의자의 권리 확대 등이 그 이유라고 합니다. 일제시대에 예심판사 제도가 있던 우리나라도 해방과 더불어 사라진 제도가 되겠습니다.
프랑스에서도 예심판사에의 과도한 권한 집중과 지나친 절차 지연 등을 이유로 예심판사 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1950년대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이미 예심판사 제도를 폐지한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만약 프랑스에서도 예심판사 제도가 폐지되는 경우에는 검사가 그 역할을 대신할 것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한겨레 기사의 일부 내용을 옮겨 예심판사 제도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프랑스에서 예심판사는 수사를 담당하는 수사기관인 동시에 불편부당해야 하는 사법부 소속 법관이기에 ‘객관 의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예심판사의 임무는 유죄를 받아내는 게 아니라 진실을 밝히는 것으로 규정됩니다. 한마디로 ‘사냥하듯 수사하지 말라’는 제도적 명령인 것입니다.
반면 경찰과 같은 일반적 수사기관은 수사 대상자의 대척점에 서서 그를 처벌하는 데 몰두하게 마련입니다. 검찰도 형사재판의 한 당사자로서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는 게 주된 역할이라는 점에서 예심판사와 구별된다는 게 프랑스 제도에 함축돼있는 기본적인 시각입니다. 다만 2016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객관 의무를 검찰에도 부여했습니다.>
2016년 6월 3일 ‘조직범죄, 테러범죄, 이 범죄들과 관련한 금융범죄 대응 강화, 형사절차의 효율성과 보장성 개선을 위한 법률 제2016-731호’를 통해 형사소송법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제39-3조가 신설되었습니다. 이는 검사에게 사법경찰의 수사를 통제할 핵심적 역할이 있음을 재확인하고, 아울러 검사의 수사주재자 역할을 더욱 강조하는 취지의 규정입니다.
‣ 제39-3조
제1항 사법경찰을 지휘하는 영역에서, 검사(검사장)는 사법경찰에게 일반적인 지시나 구체적인 지시를 할 수 있다. 검사(검사장)는 사법경찰에 의해 행해지는 수사절차의 적법성, 사실관계의 본질과 중요도에 따른 수사행위의 비례성, 수사의 방향 및 수사의 충실성 등을 통제한다.
제2항 검사(검사장)는 피해자, 고소인, 피의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수사가 실체적 진실을 증명하는 데 이르고 있는지, 이들에게 불리한 내용이든 유리한 내용이든 수사가 수행되고 있는지 감독한다.
이 법률은 2015년 11월 발생한 파리 테러사건을 계기로 이러한 사건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더욱 효율적인 수사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하는 데 취지를 두고 마련된 것인데, 특히 제39-3조 제2항의 경우는 종전 형사소송법 제81조 제1항에 대응하도록 마련된 규정입니다.
‣ 제81조 제1항 예심판사는 법률에 따라 실체적 진실 증명에 필요한 모든 수사를 한다. 예심판사의 수사대상에는 피의자에게 불리한 사항과 유리한 사항이 포함된다.
즉, 실체적 진실주의를 규정한 제81조 제1항이 예심판사에 관해서만 언급되어 있고 검사에 관해서는 이러한 언급이 별도로 없어, 검사의 임무가 진실을 찾는 것이기보다는 마치 사람을 법정에 들여오기 위한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검사가 소추기관으로서 수사를 통제한다는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서도 예심판사와 동일하게 공정성과 객관성이라는 의무를 준수하여야 하고, 검사의 지위가 수사관과 혼동되어서는 안 되고 수사관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규정에 대해서는 "종전에 사법경찰의 수사에 대해서는 검사뿐만 아니라 예심판사도 통제권한을 갖고 있었으나, 제39-3조는 사법경찰의 수사를 통제할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검사에게 부여한 것이다”, "검사가 헌법에 규정된 사법관으로서 불리한 내용이든 유리한 내용이든 공정한 수사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역할을 부여한 것이다”, “이번 규정은 현행 형사소송법 제81조, 즉 예심판사의 의무에 관한 규정과 대비되는데, 이는 궁극적으로는 정부가 ‘21세기 사법 현대화 법안’을 통해 전체 형사사건의 일부만을 담당하고 있는 예심판사 제도의 폐지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라는 등의 평가가 있어, 장차 예심판사와 검사의 역할에 또다시 어떠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도 합니다.
<예심판사의 또 한가지 독특한 성격은 철저히 ‘단독자’라는 점입니다. 재판을 하는 판사와 마찬가지로, 예심판사는 비록 법원에 속해 있지만 자신이 맡은 사건은 철저히 독립적으로 처리합니다. 이는 위계질서로 짜인 조직에 속한 검사와 다른 점입니다. 조직으로부터의 단절은 수사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장치입니다. 조직적 이해관계에 따라, 또는 상부의 압박에 따라 수사가 왜곡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직을 뒷배로 한 무리한 수사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예심판사를 두고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사람’(발자크)이라는 세평과 ‘불쌍하고 외로운 사람’이라는 자조가 엇갈린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양자 모두 예심판사의 독립성이 갖는 중요성을 짚어낸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 예심판사는 수사업무를 하기에 얼핏 보면 검사와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심판사는 엄연히 '판사'이지 '검사'는 아닙니다. 동등한 지위가 있는 사법기관이라 하더라도 판사와 검사는 확연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판사는 재판독립성 원칙에 따라 판사 한 명 한 명이 독립적으로 재판업무를 할 수 있는 데 반해, 검사는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라 검사 한 명 한 명이 독립적이 아니라 전체 검찰의 의사를 대변하여 검찰업무를 수행합니다. 판사는 누구의 결재를 받지 않고 혼자 결정을 할 수 있는 반면, 검사는 결재제도를 통해 전체 검찰의 승인을 받아 결정을 해야 합니다. 이건 프랑스나 우리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예심판사 제도에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큰 논란을 불러온 게 ‘우트로 사건’이었습니다. 올해 넷플릭스에 이 사건을 다룬 3부작 다큐멘터리 ‘우트로 사건: 프랑스의 악몽’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2000년 발생한 우트로 사건은 무고한 시민들이 아동 성폭행이라는 끔찍한 누명을 쓰고 장기간 구금되는 등 인권침해를 당한 사건이었습니다. 예심판사의 수사 실패가 비판받으면서 예심판사 폐지론까지 불러일으켰습니다.>
<경험이 부족했던 젊은 예심판사는 허위 진술에 속아 18명 모두를 재판에 넘겼습니다. 한 명은 억울함을 호소하다 구속 중 자살했고, 2004년 1심 재판에서 10명 유죄, 7명 무죄라는 엇갈린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허위 진술을 했던 여성이 2005년 2심 재판에서 자신의 진술이 거짓이었음을 실토하면서 사건의 실상이 명확해졌습니다.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았던 6명에 대해 검찰은 무죄를 구형했고,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대통령, 총리, 법무장관 등이 이들에게 사과했고, 국회가 진상조사에 나섰습니다. 예심판사가 주요 사건을 단독으로 처리하다 보니 경험 부족 등으로 인한 오류를 통제할 방법이 없다는 지적에 따라 2007년 프랑스 국회는 3명의 예심판사가 합의체를 구성해 예심을 이끄는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이후 2009년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은 예심판사 제도 폐지를 본격 제안하며 대통령 직속 사법개혁위원회를 만들어 검토하게 했습니다. 위원회는 예심판사를 없애고 모든 수사를 검사에게 맡기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사법관 노조와 대법원, 변호사협회 등의 강한 반대에 부딪쳐 입법이 무산됐습니다.>
<폐지 반대 주장의 주된 근거는 예심판사의 역할을 검찰로 넘긴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검찰이 수사·기소 권한을 모두 갖게 되면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고, 수사에 대한 법원의 통제가 이뤄지기 힘들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검찰이 수사를 전담하고 법원은 영장심사 등을 통해서만 수사를 통제할 경우(지금 우리나라의 상황과 같습니다), 법원이 수사의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한 채 검찰의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진정한 수사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또 행정부 소속으로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검찰은 수사·기소에서 법원 소속의 예심판사만큼 중립성을 지킬 수 없다는 우려도 컸습니다.
예심판사의 권한은 우리 기준으로 볼 때 과도한 면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구속 여부를 직접 결정하던 권한은 폐지됐지만, 여전히 통신 감청 등을 직권으로 할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예심판사가 수사 뒤 기소 여부까지 결정하는 것보다 검사에게 기소 여부 판단을 넘김으로써 수사·기소 권한을 더 명확히 구분할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예심판사 제도는 수사·기소 권한을 검찰과 분점해 상호견제하고 수사의 객관성과 독립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프랑스가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200년 넘은 예심판사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는 우리의 형사사법체계 개혁에서도 중요한 참고가 될 것입니다.>
2023년 6월 17일 토요일
1990년대 이후 프랑스 검찰 관련 이슈
신종범죄 출현과 중대범죄 급증에 대처하기 위한 국가적 노력은 범죄현장의 최일선에 자리한 사법경찰의 역할과 권한 확대라는 효과와도 직결됩니다. 사법경찰의 역할과 권한 확대는 이에 대한 통제의 필요성과 함께 전반적인 수사과정을 지휘감독할 검사의 수사주재자로서의 역할 또한 종전보다 더욱 강조되는 결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검찰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법무부와 검찰 사이의 거리두기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프랑스 검찰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행정부에 소속되어 법무부장관을 정점으로 한 위계조직 속에 놓여 있는 관계로, 수시로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정치적 중립성 측면에서 취약한 검사가 사법관임을 근거로 강제처분권을 행사하거나 판결의 성질을 갖는 처분을 행하는 게 적정한지에 대해 종종 의문이 제기되고 유럽법원이나 국내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검사 인사와 징계에 관한 법무부장관의 권한을 제한하는 방안도 꾸준히 시도되고 있습니다. 고등사법위원회(Conseil Supérieur de la Magistrature)의 의장과 부의장 자리에서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을 제외시키고 그 위원들의 구성을 다양화한 데 이어(2008년), 판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검사 인사와 징계에 관한 고등사법위원회의 의견에 구속력을 인정하는 방안이 올랑드 정부에 이어 현 마크롱 정부에서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1990년대 이후 프랑스에서의 검찰과 관련한 논의주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테러범죄, 조직범죄, 금융범죄 등 국경을 넘나들며 프랑스 국내에 빈발하는 중대범죄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 검찰에 힘을 주자>이고, 다른 하나는 <검찰이 정치권력으로부터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법무부장관의 검찰 지휘권을 줄이고 검사 인사권과 징계권도 줄이자>입니다. 얼핏 보면 둘 다 검찰에게만 유리하고 좋은 일 만들어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취지는 이겁니다. 지금 현실적으로 검찰이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중요한 상황에 있는데 이에 상응하여 검찰의 권한이 커질수록 그런 권한을 이용하려고 정치권력이 부당하게 검찰권 행사에 관여할 위험도 커진다, 그러니 검찰이 정치권력의 간섭을 받지 않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자는 것입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의 검찰과 관련한 대표적인 논의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어서 폐해가 크니, 그 권한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혁을 해야 한다>입니다. 이번 정부 들어 검찰에 한때 사라졌던 조직과 권한이 다시 생기면서 ‘검찰공화국’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고는 있지만, 이는 그간의 꾸준한 정치적 흐름에 비춰 보았을 때 퍽 이례적인 현상에 불과합니다. 검찰이 처해있는 위치가 워낙 정치바람을 많이 타는 터라 사실 이게 또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아무튼 프랑스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가는 듯 보입니다. 우리가 잘 하는 걸까요, 프랑스가 잘 하는 걸까요?
2021년 11월 29일 월요일
프랑스 검사의 지위에 대해 설명하는 글 두 편
프랑스에서는 검사의 지위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판사와 함께 사법관(magistrat)이라 불리면서 판사와 마찬가지의 사법기관으로 취급되고는 있지만, 독립기관임에 의문이 없는 판사와는 달리 검사는 (정치인인 대통령의 참모인) 법무부장관의 지휘감독을 받는 지위에 있기에 항상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에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입니다.
매번 정부가 바뀌거나 법무부장관이 바뀌면 거의 반복적으로 '검찰 개혁'이라는 정책이 화두가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2020. 7. 7. 새로 취임한 36년 경력 변호사 출신의 법무부장관 Éric Dupond-Moretti 역시 검찰 개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관련 뉴스]
그래서 독립성이 없는 검사를 판사와 동일한 지위로 취급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견해, 검사가 판사처럼 제대로 사법기관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독립성을 주어야 한다는 견해 등이 주장됩니다. 이 주제에 관한 글 두 편을 소개.........할 능력은 안 되어 링크만 걸어놓습니다.2020년 8월 9일 일요일
프랑스 검찰의 독립성 논란 뉴스 ; 국가금융검찰 검사장의 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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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에 출석하여 발언하는 울레뜨 검사장. 출처 :https://www.dalloz-actualite.fr/flash/affaire-houlette-ou-l-hypocrite-debat-sur-l-independance-de-justice-relance#.XyahG_gzbFR] |
울레뜨 검사장은 2017년 국가금융검찰을 이끌며 수사한 피용 전 총리 부부를 위장고용 혐의로 기소하였고, 이 사건은 최근 1심에서 유죄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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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레뜨 검사장에 이어 역시 하원 청문회에 출석한 샹프르노 고검장. https://www.lefigaro.fr/actualite-france/affaire-fillon-la-procureur-generale-nie-les-pressions-20200702] |
2020년 2월 9일 일요일
프랑스 검찰총장의 신년사, 그리고 여전히 검찰 독립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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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ourdecassation.fr/venements_23/audiences_solennelles_59/audiences_debut_annee_judiciaire_60/annees_2020_9590/janvier_2020_44203.html] |
검사 직무의 의미를 일깨운 2건의 판결이 최근에 있었는데, 이 2건의 판결은 개별 사건에 관한 법무부장관의 검사 지휘권 폐지로 검찰 독립에 기여한 2013년 7월 25일자 법률의 중요성을 상기시켰습니다.
2020년 1월 31일 금요일
프랑스, 재판의 독립성 논란
2020년 1월 27일자 프랑스 대법원장과 검찰총장 명의의 공동성명(communiqué)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대법원장과 검찰총장은, 사법의 독립성은 민주주의의 본질적 기능을 위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고, 이를 보장할 임무는 대통령에게 있음을 상기하고자 한다.
대법원의 사법관들은 자신의 권한을 전적으로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프랑스 법원과 검찰의 수장들이 뜬금없이 왜 이런 공동성명을 발표했는지 궁금하여 관련 기사를 찾아보았습니다. 역시 1월 27일자 Le Monde지의 기사 "Meurtre de Sarah Halimi : la Cour de cassation rappelle à Macron l’essentielle « indépendance » de la justice(사라 알리미 살인사건 : 대법원은 마크롱 대통령에게 사법의 실질적인 «독립성»을 상기시켰다)"의 내용은 대략 이러합니다.
1월 27일 대법원장 Chantal Arens과 검찰총장 François Molins이 사라 알리미(Sarah Halimi) 살인사건에 관한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 직후 사법의 독립성과 직무의 공정성 보장을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월 23일 이스라엘에서 열린 프랑스 유대인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75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였다가, 프랑스 교민들에게 파리 고등법원의 판결에 대해 절차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2019년 12월 19일 선고된 이 판결은 2017년 파리에서 60대 유대인 사라 알리미가 살해된 사건의 피고인에게 형사책임이 없다고 결정한 것이었다. 범행 당시 대마 흡연으로 갑작스런 착란 상태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 판결에 대해 "이 판결이 큰 분노와 아쉬움을 불러 일으켰음을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사법의 독립을 보장하여야 하기 때문에 저는 여러분에게 솔직한 말씀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 상고되었는데, 프랑스 사법부는 이 사건에서 반유대주의적 경향을 드러냈습니다. 형사책임 유무가 판사의 일이라면, 반유대주의의 문제는 공화국의 일입니다. 결국 판사가 형사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결정하더라도, 절차적인 문제점은 분명히 있습니다"라고 언급하였다.
마크롱 대통령의 이와 같은 발언은 사법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사법관조합의 몇몇 대표자들을 경악시켰다.
사법관조합의 대표자 Katia Dubreuil는 프랑스통신(AFP)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 발언에 대해 분노합니다. 그는 사법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하고 사법적 결정에 간섭할 수 없음에도, 그가 한 행위가 바로 사법적 결정에 간섭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법원 판결에 대해 한 마디 했다고 대법원장과 검찰총장이 발끈하여 대드는 모양새입니다. 프랑스의 이 사례와 비교할 때, 우리는 더 민주적이고 선진적인 사회인가요. 가만히 반성해 봅니다.
2019년 8월 24일 토요일
프랑스 검사의 거짓말과 검찰 독립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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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liberation.fr/france/2019/08/05/le-procureur-de-nice-va-etre-mute_1743794] |
2019년 4월 20일 토요일
프랑스 국립사법관학교 60주년 기념행사 소식
며칠 전에 보니 사법관학교 홈페이지 안에 '60주년 기념 홈페이지'가 새로 만들어져 있네요. 주소는 이겁니다. https://60ans.enm.justice.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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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60ans.enm.justice.fr/] |
60주년이라고 해서 뭐 대단하게 거창한 기념행사가 있는 것은 아니고, 약간의 소박하기만 한 행사들입니다.
오프라인 행사로는, '법조교육 : 민주주의의 쟁점(la formation judiciaire : un enjeu pour la démocratie)'이라는 제목의 토론회(colloque), 법률영화 감상 및 토론회(ciné-débat), 법조계 풍경을 보여주는 캐리커처 전시회 정도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온라인 행사로는, 즉 60주년 기념 홈페이지에서는 사법관이라는 직업과 사법관학교를 소개하는 영상 및 캐리커쳐, 사법관학교의 역사적 순간들 등의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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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60ans.enm.justice.fr/dates-cles] |
한 사법관이 누군가의 발길에 차여 날아가고 있네요. 이를 본 행인 1은 "검사가 검사장에게 쫓겨나나 봐", 행인 2는 "아니야, 석방구금판사가 법원장에게 쫓겨나는 거야."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프랑스의 석방구금판사는 우리로 치면 영장전담판사와 비슷한 자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상명하복 원칙과 위계조직 구조 때문에 흔히 검사 조직이 '군기'가 셀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아마도 프랑스에서는 검사보다 석방구금판사 조직이 막중한 임무 탓에 더 그런 분위기라는 걸 보여주는 그림이 아닌가 싶습니다.
재판은 단독판사에 의한 재판(재판장 1명)과 합의부에 의한 재판(재판장 1명과 배석판사 2명)이 있습니다. 상단의 그림이 단독판사 재판, 하단의 그림이 합의부 재판 모습인데요, 합의부 재판임에도 배석판사들이 "곧 돌아올께"라는 말만 남기고 다른 업무들을 보러 자리를 비웁니다.
판사들의 업무가 과중해서 합의부 재판이 단독판사 재판이나 다를 바 없이 운영되는 실태를 꼬집는 그림이네요.
'traitement en temps réel'은 우리말로 '실시간 수사지휘'입니다. 검사가 수시로 경찰관으로부터 사건 수사에 관한 보고를 전화로 받으면서 지휘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위 그림 맨 왼쪽에 있는 전화기에 '선한 신(경찰)'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고, '자유의 보증인'이라고 표시된 검사가 전화기에 연결된 기계의 손잡이를 내리니 재판날짜가 적힌 종이가 튀어나오네요. '법전 등등'은 휴지통에 처박혀 있구요.
자유의 보증인 역할을 해야할 검사가 제대로 경찰을 지휘하지 못한 채 경찰의 전화를 받고 기계적으로 재판날짜나 정하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그림으로 보입니다.
위 그림은, 한 사법관이 사건들을 땅에 파묻으려고 하는데, 즉 사건들을 처리하려고 하는데 오히려 몰려오는 사건들에 파묻힐 위기에 직면해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판검사들에게 사건이란, 밑빠진 독이라고도 합니다. 처리하고 처리하고 또 처리해도 줄기는 커녕 계속 몰려오기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위 그림에는 '보다 더 보장된 검찰의 독립성을 향하여'라는 제목이 붙어 있고, 사람들이 마룻바닥 조각에 하나씩 올라타고 같은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네요.
프랑스어로 검찰을 가리키는 parquet는 본래 '마룻바닥'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여기서 마룻바닥이란 법정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따라서 위 그림에서 마룻바닥 조각에 올라탄 사람들은 검사인 것이구요, 현재 프랑스 검찰의 최대 화두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검찰의 독립성 보장이라는 점을 강조한 그림이 되겠습니다.
2018년 6월 27일 수요일
프랑스 형사소송 구조와 동향
참고로, 한불법학회는 프랑스에서 헌법, 행정법, 형사법 등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하고 돌아오신 교수님들이 결성하신 학회이고, 검찰 프랑스법연구회는 프랑스에서 국외훈련을 한 경험이 있는 검사들의 모임으로, 두 학회는 작년부터 공동으로 1년에 두 번씩 학술대회를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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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심 제도의 존재
프랑스의 형사소송 구조를 소개하기 위해서는 흔히 수사판사, 예심판사, 예심수사판사 등으로 번역되곤 하는, 재판 전 단계에 존재하는 예심절차를 주관하는 juge d'instruction 제도(이하 ‘예심수사판사’라고 한다)에 대한 언급을 먼저 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 형사법원에는 재판 업무를 담당하는 판사와 별도로, 예심절차를 담당하는 예심수사판사가 있다. 예심절차란 재판 이전 단계에서 사건이 재판절차에 보낼 만한 것인지, 유죄를 받을 만한 증거는 갖춰져 있는지 여부를 미리 심사한다는 의미인데, 단지 현재 있는 자료만 갖고 심사만 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증거를 수집하는 활동, 즉 수사를 한다는 게 특이한 점이다. 예심절차를 담당하기 때문에 예심판사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수사를 한다고 하여 수사판사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이도저도 애매하니 한데 합쳐서 예심수사판사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예심수사판사는 검사가 예심수사를 청구한 사건을 맡아 수사한 다음, 혐의가 인정되면 재판법원으로 사건을 보내고(중죄법원에 대한 이송결정을 ‘ordonnance de mise en accusation devant la cour d'assises’라고 하고, 경죄법원에 대한 이송결정을 ‘ordonnance de renvoi devant le tribunal correctionnel’이라고 한다), 혐의가 인정되지 않으면 종결처분(ordonnance de non-lieu)한다.
프랑스에서는 범죄를 그 법정형에 따라 중죄(crime, 무기징역형 또는 10년 이상 30년 이하의 징역형), 경죄(délit, 10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3,750유로 이상의 벌금형), 위경죄(contravention, 3,000유로 이하의 벌금형) 등의 세 가지로 분류하여 각각의 수사절차와 재판절차를 달리 규정하고 있는데, 중죄사건의 경우 예심절차가 의무적이므로 검사는 중죄사건에 대해서는 예심수사판사에게 예심수사를 청구하여야 한다. 그리고 중죄사건이 아닌 경죄사건이나 위경죄사건의 경우에는, 검사가 예심수사판사에 의한 보완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때에 예심수사판사에게 예심수사를 청구하게 된다.
중죄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범죄로는 살인, 강도, 강간 등이 있고, 경죄에 해당하는 범죄로는 사기, 절도, 폭력 등이 있으며, 위경죄에 해당하는 범죄로는 우리의 도로교통법위반이나 경범죄처벌법위반에 해당하는 범죄들을 들 수 있다.
2015년도 프랑스 법무부의 사법통계를 보면, 한 해 동안 유죄를 선고받거나 형사화해 결정을 받은 총 1,035,604명의 피고인들 중 중죄 피고인이 2,381명(0.23%), 경죄 피고인이 597,594명(57.70%), 5급 위경죄 피고인이 33,900명(3.27%), 1~4급 위경죄 피고인이 401,729명(38.79%)으로서, 경죄사건과 1~4급 위경죄사건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의 예심수사판사는 사실상 우리나라의 검사가 행하는 수사와 유사한 방식으로, 주요한 사건에 대해 수사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예심수사판사가 모든 형사사건의 수사를 담당하는 것은 아니다. 검사가 예심수사 개시를 청구한 사건만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2014년도 통계를 한번 찾아보았다.
('※ 2014년 프랑스 검찰처분 통계' 표 생략)
2014년 프랑스 검찰에 사건접수된 2,049,427명의 피의자들 중 660,276명이 기소되었는데, 그 중 28,242명에 대해 예심수사가 청구되었다. 즉, 그 한 해 동안 예심수사판사가 담당한 사건의 피의자 수는 2,049,427명 중 28,242명, 비율로는 1.38%라는 얘기로, 결국 예심수사판사가 중죄사건 등 중요한 사건의 수사업무를 담당하기는 하나 전체 사건에서 차지하는 비중 자체는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다. 예심수사판사가 처리하는 사건의 비중이 이렇게 낮고 사건 수도 날이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는 현상은, 오늘날 예심수사판사 제도를 폐지하여야 한다는 주장의 주요한 논거 중 하나가 되고 있기도 하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판사가 재판권한뿐만 아니라 수사권한도 아울러 갖고 있다는 점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매우 많다. 예심수사판사나 재판법원의 판사나 동일한 신분을 가진 판사이므로 어떤 판사가 어느 날은 예심수사판사로서 수사를 했다가 다음 인사 때는 재판법원 판사로 발령이 나 재판업무를 맡기도 하고, 심지어는 오늘은 예심수사판사로 일하고 내일은 법정에 들어가 재판장으로 일하기도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과연 수사와 재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 요새 어느 선진국이 수사와 재판을 한 기관에서 모두 담당하느냐, 그래서 이건 굉장히 낡은 제도가 아니냐라는 의문이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오고 있다.
이런 여론을 등에 업고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예심수사판사 제도를 없애고 수사권한을 검사에게 부여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기도 하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이러한 시도는 사법관들의 강력한 반대와 여론 등에 밀려, 결국 사르코지 정부가 물러나면서 유야무야된 일이 있었다.
예심 제도의 폐지론과 관련해서는, 2009. 1. 16.자 ‘Alternatives Economiques’지에 실린 SciencePo의 Dominique BLANC의 글 "Suppression du juge d'instruction : une réforme inachevée”(예심수사판사 제도의 폐지 : 끝나지 않은 개혁)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예심수사판사 제도를 없애자는 니콜라스 사르코지 대통령의 논쟁적인 제안은 새로운 주장도, 말이 안 되는 주장도 아니다.
이런 논쟁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프랑스가 1808년 직권주의를 채택한 이후 19세기 내내 전세계에 이 제도를 수출하였으나,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예심수사판사 제도의 정당성과 유용성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경찰조직과 수사기법의 발전, 예심수사판사가 더 이상 필요치 않을 정도로 신속하고 다양한 제도의 도입, 수사 및 기소와 관련하여 검사에게 부여된 새로운 권한들, 범죄자의 권리 확대 등이 그 이유였다. 이에 따라 프랑스 제도를 수입했던 일부 나라들이 예심수사판사 제도를 포기하기 시작했는데, 독일은 1975년에, 이탈리아는 1989년에 예심수사판사 제도를 각각 폐지하였다.
프랑스에서는 예심수사판사 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1950년대부터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0여 년 전부터는 이러한 움직임이 실제로 있어왔는데, 입법자들은 예심수사판사의 권한을 줄이고 검사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진행하였다. 즉, 2000. 6. 15.자 법률에서는 예심수사판사로부터 구속 관련 권한을 배제하였고, 2003. 3. 18.자 및 2004. 3. 9.자 법률에서는 예심수사판사의 개입을 무의미하게 할 정도로 수사절차에 관한 검사의 권한이 확대되었고(특히 조직범죄 분야에서), 2007. 3. 5.자 법률에서는 사소당사자가 예심수사판사에게 직접 고소를 제기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예심수사판사의 권한이 변화함에 따라 예심수사판사가 형사절차에 개입할 수 있는 범위가 점점 축소되고 그가 담당하는 사건이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전체 형사사건의 5% 정도만 담당). 이에 낭트 대학교 교수이자 형법 전문가인 Jean DANET는 "검사와 석방구금판사가 수사과정에서 모든 조사를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아직도 예심수사판사를 필요로 하는가"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선결과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첫째, 검사가 수사업무를 공정하게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예심수사판사가 법관으로서 갖고 있었던 것과 같은 독립성을 검사도 보장받도록 해야 한다.
둘째, 검사가 형사사법절차를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현재 사실상 내무부장관 이하의 위계질서 안에 위치한 사법경찰을 통제할 실질적인 권한을 검사에게 부여하고, 검사가 수사담당자에게 직접적으로 밀착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셋째, 그동안 프랑스에서는 범죄자의 권리보다는 절차의 효율성을 강조하여 온 점을 고려하여, 수사단계에서 범죄자의 권리를 보다 보장하여야 한다.
넷째, 수사과정에서 각 당사자에게 상호 변론기회를 부여하여야 한다.
2. 수사와 수사지휘
프랑스 형사사법절차에서 수사업무는 앞에서 소개한 예심수사판사 외에, 검사와 사법경찰도 수행한다.
프랑스 형사소송법 제41조 제1항은 "검사(검사장)는 형벌법규에 반하는 범죄의 수사 및 소추를 위하여 필요한 일체의 처분을 행하거나 이를 행하게 한다”라는 내용으로 검사의 수사권한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이는 자신이 수사를 할 수 있기도 하고 남에게 수사를 시킬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다음의 형사소송법 조문들도 검사의 수사권한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 제12-1조 검사(검사장)와 예심수사판사는 재량에 따라 사법경찰권을 행사할 기관을 특정할 수 있다.
‣ 제35조 제5항 고등검찰청 검사장은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필요한 경찰력을 요구할 수 있다.
‣ 제42조 검사(검사장)는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직접 경찰력을 청구할 권리를 갖는다.
다만, 프랑스 검사는 실무상 직접수사를 거의 하지 않고 있고, 그 대신 사법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가 주요한 업무이다. 즉, 직접수사 방식 대신 사법경찰에 대해 수사지휘권한을 행사하는 방법으로 수사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프랑스 검사가 직접수사를 하지 않는다고 하여 수사권한 자체가 없다고 하는 것은 논리비약이다. 논리적으로 보더라도, 수사권한 자체가 없는 기관이 다른 국가기관을 상대로 수사지휘권한을 행사할 수는 없는 것이겠다.
형사소송법은 다음과 같이 수사지휘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 제12조 사법경찰권은 검사(검사장)의 지휘 하에 본편에 정하는 사법경찰관, 공무원 및 사법경찰리가 행사한다.
‣ 제13조 사법경찰은 각 고등법원 관할구역별로 고등검찰청 검사장의 감독을 받고, 제224조 이하에 정한 바에 따라 고등법원 예심부의 통제를 받는다.
‣ 제19조 제1항 사법경찰관이 중죄·경죄 및 위경죄를 인지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이를 검사(검사장)에게 보고하여야 한다. 사법경찰관이 임무를 완료한 경우에는 작성한 조서의 원본 및 그 인증등본 1통을 직접 검사(검사장)에게 제출하여야 하고, 일체의 관련 서류 및 기록, 압수한 물건 등도 동시에 검사(검사장)에게 송부하여야 한다.
‣ 제41조 제2항 전항의 목적을 위하여 검사(검사장)는 그 지방법원 관할구역 내에서 사법경찰관 및 사법경찰리의 활동을 지휘한다.
‣ 제54조 제1항 중죄의 현행범이 발생하여 사법경찰관이 그 통지를 받은 때에는 즉시 이를 검사(검사장)에게 보고하여야 한다.
‣ 제74조 제1항 사체를 발견한 경우, 그 사인이 불명하거나 의심스러운 때에는 변사인지 여부를 불문하고 사법경찰관은 즉시 검사(검사장)에게 이를 보고하여야 한다.
‣ 제75조
제1항 사법경찰관 및 그 감독 하에 있는 제20조의 사법경찰리는 검사(검사장)의 지휘에 기하여 또는 직권으로 예비수사를 행한다.
제2항 전항의 수사는 고등검찰청 검사장의 감독을 따른다.
‣ 제75-1조
제1항 검사(검사장)가 사법경찰관에게 예비수사를 명할 때에는 예비수사가 실시될 기간을 정한다. 검사(검사장)는 사법경찰관이 제시하는 이유를 검토하여 그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제2항 예비수사가 직권으로 시작된 경우 사법경찰관은 6월이 경과한 때에 검사(검사장)에게 수사의 진행상황을 보고한다.
‣ 제75-2조 중죄 또는 경죄에 관한 예비수사를 실시하는 사법경찰관은 혐의자의 인적사항이 확인된 때에는 이를 검사(검사장)에게 보고한다.
‣ 제151조 제1항 예심수사판사가 사법경찰에게 수사지휘를 할 경우 지휘를 받은 사법경찰은 그 사실을 검사(검사장)에게 보고하여야 한다.
프랑스의 각 검찰청에는 수사지휘를 담당하는 부서들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는데, 그 부서에서 24시간 유선지휘체계를 유지하면서 사법경찰의 수사를 지휘하고 있다. 또한 검찰이 접수한 고소사건을 사법경찰에 지휘하여 수사하도록 하거나 일종의 내사에 해당하는 ‘예비수사'를 사법경찰에 지휘하기도 한다.
한편, 영장 제도에 대해 살펴보면, 프랑스 형사소송법상 인신구금과 관련한 영장으로는 ① 체포유치영장(mandat de recherche), ② 소환영장(mandat de comparution), ③ 구인영장(mandat d’amener), ④ 체포영장(mandat d’arrêt), ⑤ 구속영장(mandat de dépôt) 등이 있다.
앞의 4가지 영장은 예심수사판사가 발부하고, 마지막의 구속영장은 석방구금판사가 발부하며, 필요 시 직권으로 발부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첫 번째의 체포유치영장은 예심수사판사뿐만 아니라 검사도 중죄사건 현행범과 3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할 경죄사건 현행범의 경우 발부할 권한이 있다.
‣ (현행범수사) 제70조 제1항
제73조가 적용되는 경우(현행범체포)를 제외하고,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중죄 또는 경죄의 현행범 수사에 필요한 경우, 검사(검사장)는 범죄를 범하였거나 범하려고 하였다는 의심이 들게 하는 하나 또는 수개의 사유가 있는 자에 대하여 체포유치영장을 발부할 수 있다.
‣ (예비수사) 제77-4조 제1항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중죄 또는 경죄의 수사에 필요한 경우, 검사(검사장)는 범죄를 범하였거나 범하려고 하였다는 의심이 들게 하는 하나 또는 수개의 사유가 있는 자에 대한 체포유치영장을 발부할 수 있다.
프랑스에는 우리의 긴급체포와 유사한 제도로서 흔히 ‘보호유치'(garde à vue)로 번역되는 제도가 있는데, 사법경찰은 피의자를 보호유치한 경우 즉시 검사에게 이를 보고하여야 하고, 24시간 이상 보호유치를 연장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검사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석방하는 경우에도 검사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
‣ 제62-3조 제4항 검사(검사장)는 언제든지 보호유치된 자를 면담하거나 석방할 수 있다.
‣ 제63조 제1항 사법경찰은 직권으로 또는 검사(검사장)의 지휘에 따라 사람을 보호유치할 수 있다. 사법경찰은 보호유치를 시작하자마자 어떤 방법으로든지 검사(검사장)에게 이를 보고한다. (중략)
제2항 보호유치의 기간은 24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다만, 피의자가 중죄 또는 1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경죄를 저지른 것으로 의심되고 보호유치가 제62-2조 제1호부터 제6호까지 규정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경우, 보호유치는 검사(검사장)의 이유를 기재한 서면승인에 의해 24시간 연장될 수 있다. 검사(검사장)는 피의자를 면담한 후에만 연장승인을 할 수 있는데, 화상면담도 가능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는 면담 없이 승인할 수도 있다.
3. 사소 제도와 범죄피해자의 지위
프랑스 형사사법절차에서 범죄피해자는 크게 고소권과 사소권, 그리고 검찰항고권을 갖고 있다.
가. 고소(plainte)와 사소(action civile)
검사가 제기하는 공소(公訴, action publique)에 대비하여, 일반인은 사소(사인소추, 私訴, action civile)를 제기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타인의 범죄행위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수사기관에 고소를 제기하는 방법 외에 일정한 요건 하에 예심수사판사 또는 재판법원에 가해자를 상대로 직접 소추를 제기할 수 있는 사소 제도가 인정되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1조는 “형벌을 적용하기 위한 공소는 사법관 또는 법률에 의하여 이를 위탁받은 공무원이 제기하고 수행한다. 공소는 이 법에 정한 요건 하에서 피해자도 제기할 수 있다”, 제2조 제1항은 “중죄, 경죄 또는 위경죄에 의하여 발생한 손해배상을 위한 사소는 범죄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발생한 개인적 손해를 입은 모든 자가 행사할 수 있다”, 제3조는 “사소는 공소와 동시에, 동일한 법원에 제기할 수 있고, 사소는 물적인 손해뿐만 아니라 신체적 또는 정신적인 손해 등 소추의 대상인 행위에서 유래하는 모든 항목의 손해에 대하여 제기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범죄피해자는 우선 경찰 또는 검사에게 고소를 제기할 수 있다. 경찰이 고소를 접수한 경우에는 이에 대해 수사한 후 검사에게 사건을 송치한다. 피해자가 단순한 고소(plainte simple)를 제기할 수 있는 단계는 여기까지이다.
만약 검사가 이 고소 사건을 기소하여 예심수사판사의 예심수사나 재판법원에서의 재판이 진행되면, 피해자는 예심수사절차나 재판절차에 사소당사자의 자격으로 참여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검사가 이 고소 사건을 불기소 처분한다면, 이에 불복하는 피해자는 ‘사소당사자 구성 고소’(plainte avec constitution partie civile)라는 것을 예심수사판사에게 제기하거나, 재판법원에 ‘직접소환’(citation directe)이라는 방법을 사용해 가해자의 인적사항과 범죄사실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여 가해자를 법원에 바로 출석시켜 재판이 열리게 하는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다.
즉, 최소한 예심수사판사라는 판사에 의해 절차가 진행되는 예심수사 단계부터 비로소 ‘사소’의 개념이 등장하는 것인데, 이 ‘사소’는 피해자에 의해 사실상 공소제기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소를 제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피해자가 경찰이나 검찰 같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법원에 직접 사소청구서(우리의 ‘고소장’에 해당)를 제출하면 법원은 그것을 근거로 재판을 열 수 있으므로, 간단히 상대방을 법정에 세울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예심수사판사에 대한 사소청구는 곧바로 허용되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가 직접 사법경찰 또는 검사에게 고소장을 제출하여 검사가 이를 허용한 경우, 피해자가 검사에게 고소장을 제출하여 접수증을 받거나 배달증명우편 영수증을 받은 후 3개월이 경과하였음을 증명한 경우, 사법경찰에게 고소장을 제출하고 그 사본을 검사에게 송부한 후 3개월이 경과하였음을 증명한 경우에만 피해자가 예심수사판사에게 직접 고소장을 제출하여 사소청구인이 될 수 있다(형사소송법 제85조).
일반적으로 사소 제도는 범죄피해자의 형사소추권과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권을 결합한 제도라고 설명된다. 따라서 손해배상을 원하지 않는 피해자가 오로지 가해자의 유죄판결만을 목적으로 사소를 제기할 수는 없는지 문제될 수 있는데, 이에 대해 프랑스 대법원은, 손해배상의 요구는 사소권 행사의 한 요소일 뿐이므로 이를 요구하지 않은 채 유죄판결만을 위한 사소를 제기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범죄피해자가 사소권을 행사하는 경우 단순한 참고인 등이 아닌 당사자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므로, 형사사법절차 전반에 걸쳐 피의자나 피고인과 마찬가지로 당사자로서의 여러 권리도 부여받게 된다.
먼저, 사소당사자는 수사 단계, 재판 단계, 형 집행 단계 등 형사사법절차의 모든 단계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권리의 내용과 이 권리를 행사하는 데 필요한 각종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
그리고 변호사를 통해 소송기록을 열람하거나 등사할 수 있고, 재판절차에서는 증인 등의 증거를 신청하고 재판장을 통해 증인이나 피고인을 신문할 수 있으며, 피고인의 형사처벌 및 손해배상 청구와 관련한 의견을 진술할 수 있다. 재판절차에서 의견을 진술하는 경우에는, 사소당사자에게 변호인이 선임되어 있으면 그 변호인이 먼저 의견을 진술한 다음 사소당사자가 의견을 진술하고, 그 이후 검사가 구형 의견을 포함한 논고를 행한다. 그리고 사소당사자는 대부분 변호인과 함께 재판에 출석하여 변호인의 조력을 받고 있는데, 사소당사자가 출석하지 않은 채 변호인만이 출석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사소 제기 후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에는 피해자가 오히려 무고죄나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될 수도 있다.
('범죄피해자의 고소 처리절차' 그림 생략)
나. 검찰항고(recours)
프랑스 형사소송법 제40-3조에는 이런 내용이 규정되어 있다.
Toute personne ayant dénoncé des faits au procureur de la République peut former un recours auprès du procureur général contre la décision de classement sans suite prise à la suite de cette dénonciation. Le procureur général peut, dans les conditions prévues à l'article 36, enjoindre au procureur de la République d'engager des poursuites. S'il estime le recours infondé, il en informe l'intéressé.
지방검찰청 검사장에게 어떤 사실을 고소한 모든 사람은 불기소 처분에 불복하는 경우 고등검찰청 검사장에게 항고(recours)를 제기할 수 있다. 고등검찰청 검사장은 제36조에 규정된 요건에 따라 지방검찰청 검사장에게 기소를 명할 수 있다. 고등검찰청 검사장은 항고가 이유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 관련자에게 이 사실을 통지한다.
여기서의 ‘recours’는 우리나라의 검찰항고 제도와 유사한 점을 감안하여, 이를 ‘검찰항고’로 번역하였다. 우리의 검찰항고란 검찰청법 제10조에 규정되어 있는 제도로서, 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하는 고소인 또는 고발인이 고등검찰청에 제기하는 이의제기 절차를 말한다.
프랑스 형사소송법의 이 제40-3조는 2004년 3월 9일자 개정으로 신설된 조문이다. 당시의 상원 입법보고서에는 그 신설이유가 명확히 기재되어 있지는 않지만, 당시 함께 신설된 제40-2조(범죄피해자에 대한 처분결과 통지)의 신설취지와 마찬가지로 범죄피해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프랑스 형사소송법상 고소를 제기한 피해자가 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할 수 있는 방법은 이렇게 검찰항고 제도를 이용할 수도 있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법원을 상대로 한 사소 제도를 이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Ⅱ. 프랑스 형사소송 제도의 최근 동향
1. 수사의 효율화, 전문화 추구
프랑스는 1990년대 이후 범죄의 세계화, 유럽통합의 영향에 따른 조직범죄와 금융경제범죄의 급증, 살인·강간 등 흉악범죄의 재범 증가, 2015년 ‘주간지 샤를리 앱도(Charlie Hebdo) 총기난사 사건' 이후 잇따르고 있는 대형 테러범죄의 중심지가 되면서 범죄로부터의 사회안전 확보가 중대한 현안이 되었다. 이에 선택과 집중을 통한 형사사법의 효율화와 아울러, 조직범죄나 테러범죄 등 중대범죄와 관련한 수사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기하고자 새로운 제도와 조직을 만들어 대처하고 있다.
즉, 1998년 2월 ‘금융경제범죄 거점수사부’(Pôle financier)가 파리 등 주요 대도시에 설치되었고, 이를 통해 금융경제범죄 수사역량을 전문화, 집중화하였다. 2002년 3월에는 ‘공중보건범죄 거점수사부’(Pôle de santé-publique)가 신설되어, 역시 공중보건범죄 수사에 대한 전문화, 집중화가 시도되고 있다.
2004년 3월 입법된 ‘범죄의 발전에 따른 사법의 대응에 관한 제2004-204호 법률’(loi n°2004-204 du 9 mars 2004, portant adaption de la justice aux évolutions de la criminalité)에서는 범죄의 세계화와 새로운 범죄의 급증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사법적 수단의 강화, 수사권 강화 등이 추진되었는데, 이를 통해 조직범죄의 수사와 재판을 위한 ‘특별광역법원’(Juridiction inter-régionale spécilaisée)이 신설되고, 테러범죄 수사의 경우 파리지방법원으로 관할이 단일화되었다. 교통과 기술의 발달, 범죄의 지능화와 광역화에 따라 수사와 재판을 전문화, 집중화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인 점을 고려하여, 금융경제범죄와 조직범죄, 부패 관련 범죄를 관할하는 법원과 검찰을 광역화해 예심수사판사와 검사가 통합된 형태로 운영함으로써 범죄에 대한 대응력을 강화시킨 것이다.
이 법에서는 형사적 대응효과의 개선을 위해, ‘유죄를 인정한 경우의 특례절차 제도’(Comparution sur reconnaissance préalable de culpabilité)를 도입하기도 하였다. 이는 미국식 플리바기닝 제도로서, 검사가 피의자의 유죄 인정을 전제로 1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벌금형을 제안하고, 판사 앞에서 피의자의 동의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신속히 사건을 처리하도록 하였다.
2014년 2월에는 ‘국가금융검찰’(Parquet National Financier, 약칭 PNF)이라는 새로운 수사조직이 출범하였다(형사소송법 제705조 이하). 이 금융사건을 전담하는 특별검찰청은 파리지방법원에 설치되기는 하였으나 전국적 범위를 관할하면서 독자적인 수사를 진행하고, 대형 금융범죄, 탈세범죄, 뇌물범죄 등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전문역량을 갖춘 검사들을 배치하였다.
이 국가금융검찰의 운영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관련 언론보도들을 소개하기로 한다.
“Cahuzac 스캔들(필자 주 : 2012년 프랑스의 인터넷 폭로전문 언론매체인 Mediapart가 예산부장관인 Jérôme Cahuzac이 외국은행 비밀계좌에 거액의 자금을 예치해 두었다고 폭로하면서 시작된 사건으로, 2016년 12월 8일 Cahuzac은 탈세와 자금세탁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의 영향으로 창설된 새로운 기관인 이 국가금융검찰은 국내적으로든 국제적으로든 중대한 반향을 불러일으킬 만한 대형 사건이나 복잡한 사건을 담당한다. 이 기관의 창설에 반감을 가졌던 사람들도 지금은 그 효용성, 능력, 불가피성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다.
2월 8일 발표된 하원 보고서에 따르면, 당초 2013년에는 22명의 사법관, 21명의 서기, 5명의 전문보조인으로 구성되어 각 사법관당 평균 8건의 사건을 처리할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2016년 10월 현재 15명의 사법관, 10명의 서기, 4명의 전문보조인이 배치되어 각 사법관당 평균 27건을 처리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이 3년의 기간 동안 국가금융검찰은 총 360건의 사건을 수사하고 있고, 100건 이상의 사건을 검토하였다. 총 사건의 45%는 신뢰를 침해하는 사건(부패, 뇌물, 특혜, 공금횡령)이고, 43%는 공공재정을 침해하는 사건(가중 탈세, 자금세탁, 부가가치세 사취)이며, 12%는 금융시장 기능을 침해하는 사건(내부정보 유출, 주가조작)이다.
절반에 가까운 사건은 다른 검찰청으로부터 이송받은 사건이고, 29%는 공공기관으로부터 직접 넘겨받은 사건이며, 8%는 Fillon 전 총리 사건처럼 국가금융검찰이 처음부터 수사를 시작한 사건이다. 절차에 소요되는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예비수사가 먼저 개시된다.
이번 보고에서 보고자들은 법인이 너무 쉽게 처벌을 면하고 충분한 처벌도 받지 못한다며 법인을 기소하는 데 대한 어려움을 호소한다. 그리고 포화우려와 별도로, 보고자들은 특별한 광역관할권을 위한 수단이 불충분하고, 관공서 간의 정보접근 제한, 탈세액 추징의 어려움 등이 존재한다고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2017년 2월 8일자 르몽드 기사 "포화상태 일보직전에 있는 국가금융검찰(Le parquet national financier au bord de la saturation)”]
“Cahuzac 스캔들의 영향으로 2013년 말 창설된 국가금융검찰은 3년이 지나는 동안 경제금융범죄에 대항하는 필수기관으로 자리잡았다. 얼마 전부터는 Fillon 전 총리의 배우자인 Penelope Fillon에 대한 위장고용인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현재 15명의 사법관과 4명의 전문보조인이 401건의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그동안 처리한 사건 중 31건에 대해 판결선고가 있었고, 그 중 2건은 확정되었다.
그간 처리해온 중요 사건들을 보면, 먼저 2016년 12월 8일 파리경죄법원에서 징역 3년이 선고된 Cahuzac 사건이 있는데, Cahuzac은 현재 항소한 상태이다.
그리고 전 내무장관 Claude Guéant의 현금 프리미엄 사건의 항소심에 관여해 징역 2년을 선고받게 하였고, 구글 프랑스를 세금도피 혐의로 수색하였으며, 파나마 페이퍼 사건에 대한 예비수사, 축구선수들의 조세피난처 운영 사건인 Football Leaks 사건의 예비수사를 개시하였다.
반면, 국가금융검찰이 궁지에 몰린 때도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2017년 1월 12일 파리경죄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된 Wildenstein 상속인 사건으로, 외국 중개상을 통한 5억 유로 상당의 탈세와 자금세탁 혐의로 기소된 예술품 매매상에 대한 사건이다. 현재 이 사건은 검찰이 항소한 상태이다.
그리고 헌법재판소가 지난 12월 반부패 관련 법률로서 국가금융검찰에게 부패, 뇌물, 탈세의 경죄에 관한 독점적인 관할권을 인정하고 있던 "Sapin 2"법에 대해 위헌결정을 함으로써, 이제는 증권 관련 범죄에 대해서만 관할이 있는 상태이다.
2017년의 계획을 살펴보면, 12건의 중요사건 수사가 예정되어 있고, 20여건의 예비수사가 막 종료되었거나 진행 중이다.”[2017년 2월 4일자 피가로 기사 "국가금융검찰은 3년간 400건의 사건을 처리하였다(En trois ans, le Parquet national financier a traité 400 dossiers)"]
2. 검사의 역할 확대
새로운 범죄의 출현과 중대범죄의 급증, 그리고 그에 대처하기 위한 새롭고 다양한 수사제도와 수사조직의 신설 등은 범죄현장의 최일선에 자리한 사법경찰의 역할과 권한 확대라는 결과와도 직결된다. 사법경찰의 역할과 권한 확대는 이에 대한 통제의 필요성과 함께 전반적인 수사과정을 감독할 검사의 수사주재자로서의 역할 또한 종전보다 더욱 강조되는 결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검사의 수사주재자로서의 자리매김과 관련한 주요 움직임으로는, 사법경찰에 대한 검사의 수사주재자로서의 지위를 명확히 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을 들 수 있다.
2016년 6월 3일 ‘조직범죄, 테러범죄, 이 범죄들과 관련한 금융범죄 대응 강화, 형사절차의 효율성과 보장성 개선을 위한 법률 제2016-731호’를 통해 형사소송법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제39-3조가 신설되었다. 이는 검사에게 사법경찰의 수사를 통제할 핵심적 역할이 있음을 재확인하고, 아울러 검사의 수사주재자 역할을 더욱 강조하는 취지의 규정이다.
‣ 제39-3조
제1항 사법경찰을 지휘하는 영역에서, 검사(검사장)는 사법경찰에게 일반적인 지시나 구체적인 지시를 할 수 있다. 검사(검사장)는 사법경찰에 의해 행해지는 수사절차의 적법성, 사실관계의 본질과 중요도에 따른 수사행위의 비례성, 수사의 방향 및 수사의 충실성 등을 통제한다.
제2항 검사(검사장)는 피해자, 고소인, 피의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수사가 실체적 진실을 증명하는 데 이르고 있는지, 이들에게 불리한 내용이든 유리한 내용이든 수사가 수행되고 있는지 감독한다.
이 법률은 2015년 11월 발생한 파리 테러사건을 계기로 더욱 효율적인 수사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함에 그 취지를 두고 마련된 것인데, 특히 제39-3조 제2항의 경우는 종전 형사소송법 제81조 제1항에 대응하도록 마련된 규정이다.
‣ 제81조 제1항 예심수사판사는 법률에 따라 실체적 진실 증명에 필요한 모든 수사를 한다. 예심수사판사의 수사대상에는 피의자에게 불리한 사항과 유리한 사항이 포함된다.
즉, 실체적 진실주의를 규정한 제81조 제1항이 예심수사판사에 관해서만 언급되어 있고 검사에 관해서는 이러한 언급이 별도로 없어, 검사의 임무가 진실을 찾는 것이기보다는 마치 사람을 법정에 들여오기 위한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검사가 소추기관으로서 수사를 통제한다는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서도 예심수사판사와 동일한 공정성, 객관성이라는 의무를 준수하여야 하고, 검사의 지위가 수사관과 혼동되어서는 안 되고 수사관 자체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이 새로운 규정에 대해서는 "종전에 사법경찰의 수사에 대해서는 검사뿐만 아니라 예심수사판사도 통제권한을 갖고 있었으나, 제39-3조는 사법경찰의 수사를 통제할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검사에게 부여한 것이다”, "검사가 헌법에 규정된 사법관으로서 불리한 내용이든 유리한 내용이든 공정한 수사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역할을 부여한 것이다”, “이번 규정은 현행 형사소송법 제81조, 즉 예심수사판사의 의무에 관한 규정과 대비되는데, 이는 궁극적으로는 정부가 ‘21세기 사법 현대화 법안’을 통해 전체 형사사건의 일부만을 담당하고 있는 예심수사판사 제도의 폐지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라는 등의 평가가 있어, 장차 예심수사판사와 검사의 역할에 또다시 어떠한 변화가 예상되기도 한다.
한편, 1993년 1월 4일에 있었던 형사소송법 개정에서는 사법경찰에 대한 고등검찰청 검사장의 근무평정제도가 신설되었는데, 고등검찰청 검사장은 검사와 예심수사판사로부터 매년 관내 사법경찰을 대상으로 한 평가결과를 제출받아 중죄법원장 및 고등법원 예심부의 의견을 들은 후 최종적인 근무평정을 실시하고, 그 평정결과는 사법경찰의 승진인사에 의무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 제19-1조 사법경찰관에 대한 고등검찰청 검사장의 근무평정은 승진 결정에 참고한다.
이와 같이 사법경찰은 고등검찰청 검사장으로부터 매년 근무평정을 받고 고등검찰청 검사장의 명령으로 직무를 박탈 또는 정지당할 수 있는 등 고등검찰청 검사장에 의한 실질적 통제가 행해지고 있다.
1993년 개정 형사소송법에서는 보호유치장소 감찰권도 신설되었다.
‣ 제41조 제3항 검사(검사장)는 보호유치를 감독한다. 검사(검사장)는 최소한 1년에 1회 이상, 또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보호유치 장소를 감찰하여야 한다. 검사(검사장)는 이를 위하여 각기 다른 장소에서 취해진 보호유치의 수와 빈도를 일목요연하게 기재한 대장을 작성한다. 검사(검사장)는 매년 보호유치 장소와 보호유치 조치에 관한 사항을 고등검찰청 검사장에게 보고하고, 보고서는 고등검찰청 검사장을 경유하여 법무부장관에게 제출된다. 법무부장관은 보호유치에 대한 보고내용을 총괄하여 연차보고서 형태로 일반에 공개한다.
3. 법무부와 검찰의 거리두기
프랑스의 검사는 판사와 함께 ‘사법관’(magistrat)으로 통칭되는데, 사법관이 되기 위한 선발절차와 연수과정이 동일하고 사법관으로의 임용 후에도 동일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판사와 검사가 몸담고 있는 조직도 사실상 동일하다. 법무부 내에 대법원을 비롯한 각급 법원이 소속되어 법무부가 법원의 예산이나 조직 등 행정적 관리를 담당하고 있고, 검찰은 법원과 다른 별개의 기관이 아니라 각급 법원에 소속된 하나의 부서로서 설치되어 있다.
다만, 프랑스 판사와 검사도 둘 사이에 중대한 차이가 존재하는데, 이는 판사에게는 신분보장(헌법 제64조 제4항은 “판사는 신분이 보장된다(Les magistrats du siège sont inamovibles)”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부동성 원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은 물론 독립성이 인정되어 법무부장관이 판사의 재판 업무에 관여할 수 없는 반면, 검사에게는 이러한 신분보장이나 독립성이 인정되지 않고 법무부장관을 정점으로 한 위계조직 내에 위치하여 상급자의 지시에 따를 의무가 있다는 점이다.
제5조 검찰의 사법관(검사)은 법무부장관에 소속되어, 위계조직상 상급자의 지시와 통제를 따른다. 법정에서의 발언은 자유롭다.
프랑스 검찰의 조직구조를 살펴보면, 1심을 관할하는 각 지방검찰청의 수장을 ‘Procureur de la République’, 직역하면 ‘공화국 검사’라고 하는데, 우리의 '검사장'에 해당한다. 그 밑으로는 우리로 치면 부장검사급인 Vice-Procureur(직역하면 ‘부검사’)와 평검사급인 Substitut(직역하면 ‘대리인’)가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형사소송법상 각 검찰청별로 이 1명씩의 ‘공화국 검사’(이하 ‘검사장’이라고 함)가 검찰권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고, 다만 위계조직 구조에 의해 그의 지휘감독에 따라 Vice-Procureur와 Substitut가 대리인으로서 우리의 개개 검사와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 구조이다.
그리고 고등검찰청의 수장은 ‘Procureur Général’(직역하면 ‘검사장’)이라고 하는데, 우리의 '고등검사장(고검장)'에 해당한다. 역시 위계조직상 우리로 치면 고등검찰청 부장검사급인 ‘Avocat Général’과 고등검찰청 검사급인 ‘Substitut Général’이 그 대리인으로서 검찰권을 행사하고, 그 관할 내 각 지방검찰청의 검사장들은 고등검찰청 검사장(이하 ‘고검장’이라고 함)의 지휘감독에 따르게 된다.
나아가 각 고검장들은 법무부장관의 지휘감독을 받도록 되어 있어, 결국 법무부장관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 구조로 검찰이 조직되어 있다. 다만, 완전한 피라미드 구조는 아닌데, 프랑스는 우리의 검찰총장과 같이 전체 검찰을 지휘감독한다는 개념의 직급이나 직위는 존재하지 않고, 각 고검장들이 우리의 검찰총장과 같은 역할을 각 관할별로 수행하고 있으며, 이 여러 고검장들을 지휘감독하는 것은 대검찰청에 있는 검찰총장이 아니라 법무부장관이다. 즉, 프랑스 대검찰청의 검찰총장도 여러 명의 고검장들 중 하나에 불과하고, 그는 대검찰청에 근무하는 검사들만을 지휘감독할 뿐 각 고등검찰청이나 지방검찰청의 검사를 지휘감독할 권한은 없다(다만, 검찰총장이 전체 검찰을 대표한다는 상징적인 지위는 갖고 있다).
국민주권주의 이념에 비추어 법무부장관이 검찰을 지휘하여 법집행작용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른 한편으로, 검찰권은 사회와 개인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중요한 권한이고 검사가 행사할 수 있는 권한도 광범위하여 검사 개개인이 독단에 빠져 사건을 잘못 처리하는 경우 국민들에게 미칠 피해가 막대할 것이므로, 이를 적절히 통제하고 시정하기 위해서라도 개개 검사에 대한 위계조직상의 지시와 통제, 검찰에 대한 법무부장관의 지휘권이 필요한 것이다.
‣ 형사소송법 제30조 제1항 법무부장관은 정부의 공소권 행사와 관련된 정책을 집행한다. 이를 위하여 국내 모든 관할구역에서의 법 적용의 적절성을 감독한다.
제2항 이를 위하여 법무부장관은 검사에게 공소권 행사에 관하여 일반적인 지시를 한다.
제3항 법무부장관은 그가 인지한 사건 및 지시받은 사건에 대해서는 의견을 담은 문서를 기록에 첨부하고 고검장에게 인계하여 직접 소추 또는 소추를 하게 하거나, 장관이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조치를 할 수 있는 관할권 있는 법원에 청구하도록 한다.
다시 말하면, 고검장에 대한 법무부장관의 구체적 지휘권은 오직 개별 사건이 범죄혐의가 있을 경우 기소명령권을 행사할 수 있음에 그치는 것이고, 법무부장관이 그 사건에 대해 피의자의 구속 여부에 관하여 지휘하거나 불기소 처분을 하도록 지휘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법무부장관에게 기소명령권을 인정하는 이유는 범죄혐의가 명백함에도 부당하게 불기소 처분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결국 법무부장관의 검찰에 대한 지휘는 개별 사건에 관한 한 제한된 범위에서 소극적인 형태로 행사되고 있는 것이었는데, 이마저도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마련된 ‘형사정책과 공소권 행사에서의 법무부장관과 검찰의 권한에 관한 2013년 7월 25일자 법률 제2013-669호’에 따라 금지되고 말았다.
즉, 형사소송법 개정을 목적으로 한 이 새로운 법에서는 앞에서 본 종전 형사소송법 제30조 제3항 부분을 모두 삭제하고, 다음과 같이 새로운 내용의 제3항을 마련함으로써 개별 사건에 관한 법무부장관의 구체적 지휘를 아예 금지한 것이다.
‣ 제30조 제3항 그(법무부장관)는 그들(고검장)에게 개별 사건에 대해서는 어떠한 지시도 할 수 없다.
그리고 “검사는 공소권을 행사하고 법률의 적용을 청구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었던 종전 형사소송법 제31조도 “검사는 객관성 원칙을 존중하면서 공소권을 행사하고 법률의 적용을 청구한다”라는 내용으로 개정하여 객관의무를 추가함으로써, 검사로 하여금 업무수행 과정에서 객관성, 중립성, 공정성을 담보하도록 하였다.
사실은 이 형사소송법 제30조 제3항 개정에 앞서, 법무부장관은 2012년 9월 19일에 마련한 일반훈령(Circulaire JUS D. 1234837 C / CRIM 2012-16/ E 19.09.2012)을 통해 이미 검찰에 대한 구체적 지휘권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한 일이 있었다. 2012년 5월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올랑드 후보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검찰에 대한 구체적 지휘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공약하였고, 이후 올랑드 행정부의 법무부장관이 검찰에 대해 구체적 지휘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이 일반훈령을 통해 명시적으로 밝힌 것이다. 이는 프랑스 검찰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행정부에 속해 있고 법무부장관을 정점으로 한 위계조직 구조에 놓여있는 관계로, 수시로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한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위 일반훈령의 내용을 요약하면, 법무부장관이 검찰을 상대로 개별 사건에 대한 구체적 지휘는 하지 않는 대신, 고검장으로부터 중요 사건에 대한 보고는 받고, 고검장으로부터 받는 보고를 통해 필요한 경우 전국적인 형사정책 사항을 결정하여 다시 고검장을 상대로 일반적 내용의 지휘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프랑스의 시도는, 법무부장관의 검찰에 대한 지휘권 제한이라는 방식뿐만 아니라, 고등사법위원회(Conseil supérieur de la magistrature)를 통한 검사 인사 및 징계 제도 개혁이라는 투 트랙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최고사법관회의’, ‘최고사법평의회’로도 번역되곤 하는 고등사법위원회는 사법권의 독립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헌법 제65조 제2항에 의해 설치된 헌법기관으로, 사법관의 인사와 징계 업무 등을 담당하는 조직이다. 고등사법위원회는 판사 분과와 검사 분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인적 구성을 보면, 판사 분과는 대법원장을 위원장으로 하여 5명의 판사와 1명의 검사, 1명의 최고행정법원 판사, 1명의 변호사, 총리와 상하원 의장에 의해 지명된 6명(법학전문가 등)으로 구성되고, 검사 분과는 검찰총장을 위원장으로 하여 5명의 검사와 1명의 판사, 1명의 최고행정법원 판사, 1명의 변호사, 판사 분과의 경우와 같은 6명의 지명자로 구성된다.
법무부장관이 사법관의 인사와 징계에 관한 초안을 만들어 고등사법위원회에 송부하면 고등사법위원회가 이를 심의하여 법무부장관에게 의견을 개진하고, 법무부장관은 이에 따라 인사와 징계를 실시하게 된다. 그런데 판사의 경우 고등사법위원회의 의견은 기속력이 있어 법무부장관이 그 의견에 따라야 하는 반면, 검사의 인사와 징계에 관한 고등사법위원회의 의견에는 기속력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법무부장관이 그 의견과 다른 내용으로 인사와 징계를 할 수 있다.
검사의 경우 법무부장관을 정점으로 한 위계조직 내에 위치하여 그 지휘감독에 따르도록 되어 있으면서 인사권과 징계권도 법무부장관에게 전적으로 부여되어 있는 구조인 탓에 지속적으로 검찰의 독립성 논란이 제기되어 왔고, 검사의 인사와 징계에 관여하는 고등사법위원회의 역할도 재고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꾸준히 있어 왔다.
이러한 논란을 일부 반영하여, 종래에는 고등사법위원회의 의장과 부의장이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으로 되어 있어 고등사법위원회의 의사결정 과정에 행정부가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구조였으나, 2008년 7월 23일 개정법에서 사법권 독립을 보장하는 최고기관으로서의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현재와 같이 대법원장과 검찰총장이 각 분과의 의장을 맡도록 하고 그 구성원도 사법관 7명과 외부위원 8명으로 다양화하였다.
또한, 직전 정부의 올랑드 대통령도 취임 이후 검찰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한 끝에, 2016년 1월 고등사법위원회법 개정안을 의회에 제출하였는데, 그 주요 내용은 판사의 인사와 징계 방식과 마찬가지로 검사의 인사와 징계에 관한 고등사법위원회의 의견에 기속력을 인정하여 정부가 이를 의무적으로 따르도록 한 것이다. 이를 통해 국민들에게 사법권이 정의의 실현을 위해 행사된다는 신뢰를 주고 사법관이 외부의 개입, 특히 정부의 개입 없이 자신의 임무를 다하는 것을 보장할 수 있도록 고등사법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함으로써, 결국 고등사법위원회의 개입에 의해 사법권의 독립성을 강화한다는 것이 이 개정안의 입법취지였다.
이 개정안은 올랑드 전 대통령의 재선 실패로 결실을 보지 못하였으나, 2017년 새로 집권한 현 마크롱 정부 역시 전임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즉, 마크롱 정부는 2018년 5월 9일 새로운 헌법개정안을 발표하였는데, 그 내용 중에는 검찰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검사의 인사와 징계를 고등사법위원회의 의견에 기속되도록 하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다.
"보다 대표성 있고, 책임 있고, 효율적인 민주주의를 위한 헌법개정안”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이번 헌법개정안에는, 총 17개의 조문 중 형사사법제도 개혁과 관련된 부분이 제12조와 제13조에 담겨 있다. 그 중 제12조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Article 12(제12조)
Article 65 de la Constitution(헌법 제65조)
L’indépendance de la Justice sera confortée. Les membres du parquet seront nommés sur avis conforme de la formation compétente du Conseil supérieur de la magistrature, et non plus sur avis simple. Dans cet esprit, la même formation statuera comme conseil de discipline des magistrats du parquet, comme pour ceux du siège.
(사법의 독립은 보장되어야 한다. 검찰의 구성원들은 더 이상 고등사법위원회의 기속력 없는 의견이 아니라 기속력 있는 의견에 따라 인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판사와 마찬가지로 검사도 고등사법위원회의 기속력 있는 의견에 따라 징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현행 헌법 제65조는 판사와 검사의 인사와 징계를 심의하는 고등사법위원회의 구성과 권한에 대해 정하고 있는데,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위원회의 기속력 있는 심의 의견에 따라 법무부장관이 인사와 징계를 실시하는 판사와 달리, 검사의 인사와 징계에 대해서는 법무부장관이 위원회의 심의 의견에 기속력이 없다. 이번 헌법개정안은 검사의 인사와 징계에 대해서도 법무부장관이 고등사법위원회의 기속력 있는 심의 의견에 따라 시행한다는 것을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정치권력으로부터의 검사의 독립성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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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고급 레스토랑은 물론 동네에 있는 흔한 파스타 집에서도 '식전빵'이란 걸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에피타이저든 주요리든 뭔가가 나오기 전에 가장 먼저 발사믹을 친 올리브 오일과 함께 나오는 빵을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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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인사말 중에 Bonjour와 Bonsoir가 있습니다. 앞의 것은 낮에 하는 인사말, 뒤의 것은 저녁에 하는 인사말이라고 흔히 설명됩니다. 직역하면 각각 '좋은 날', '좋은 저녁' 정도가 되겠네요. 사실 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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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4박 5일간의 짧은 파리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다음 여행의 준비를 위해 몇 가지 느낀 점을 두서 없이 적어 볼까 합니다. [이번에 묵은 숙소 창밖 풍경] 1. 이번 파리 여행은 중학교 1학년인 제 딸아이와의 단둘만의 여행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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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느 목사님이 설교 중에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별의별 직업인들이 다양하게 등장하는데, 그 중엔 검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도 있다고. 바로 사도 바울이 원래 검사였다는 겁니다. 바울이 검사라니,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말이라 의아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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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준 판사님의 "빨대사회"라는 책에 의하면, 다른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현재 마약범죄, 보이스피싱범죄, 투자사기범죄, 증권금융범죄, 자금세탁범죄 등의 조직범죄가 창궐하고 있습니다. 과거 조직폭력배에 의한 조직폭력범죄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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