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7일 일요일
[독서일기] 아웃라이어(Outliers)
'다소곳 범생'인 제가 보기에 '천방지축 두루미'같은, 애정하는 후배가 하나 있습니다.이 친구가 빌려준 덕분에, 이 유명한 책을 이제서야 접하게 되었습니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 그런지 부분부분의 내용들을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단편적으로 접해온 탓에, 기시감이 들기도 하는 책이네요. 분명히 안 읽었는데도 마치 읽은 듯 싶기도 한.
이 책 내용에 대해 비판하는 글도 간간히 본 거 같은데(특히 대한항공 항공기 추락사건 부분), 그래도 공감되는 부분이 훨씬 많네요. 내용이 주옥같아서(어쩌면 저도 성공이라는 거에 욕심이 나서^^) 여기에 한번 정리해 봅니다.
이 책의 주제는 첫 부분 '프롤로그'에 바로 나와 있습니다.
오래 산다는 것, 장수는 통상 유전자, 식습관, 운동, 적절한 치료 등에 좌우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대상자가 속해있는 문화와 환경도 큰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합니다. 장수와 마찬가지로 성공이라는 것 역시 그 사람이 속해있는 문화와 환경이 어떠냐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 저자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의 주장입니다. 물론 문화와 환경만이 유일한 원인이라는 것은 전혀 아니고, 여러 원인들 중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이겠죠.
제1장에서 먼저 예로 드는 것이 캐나다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태어난 달을 분석한 결과입니다.
선수들이 태어난 달을 살펴보니 1월, 2월, 3월 순으로 많았는데요, 매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선수를 뽑기 때문에 12월에 태어난 선수보다는 1월에 태어난 선수가 체격조건이나 연습량 면에서 월등히 유리하다는 것이죠. 특히 유소년 시절에 싹수가 보이는 선수들이 일찌감치 유망주로 선발되어 이후 성인 시절까지 탄탄한 선수경력을 밟는다고 보았을 때, 몇 달이라도 먼저 태어난 유소년 선수들이 특히 더 유리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 얘기를 좀 드리면 저는 2월 생인데요(그것도 음력으로), 지금과는 달리 3월 1일을 기준으로 국민학교 입학자격을 따지던 그 시절, 그러면 저에게는 3월 생 동급생에 비해 대단히 불리한 기회가 제공된 셈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일단 저는 성공의 첫발을 잘못 디딛기 시작한 것이군요.
하지만 다행히도, 저자는 이렇게 캐나다에서 1월이나 2월에 태어났다고 하여 다 하키 선수로 성공하는 건 아니라고 하면서, 두 번째 장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노력의 중요성을 또한 강조합니다. 어느 분야에서든 최고 수준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고 하면서요.
그런데 이렇게 연습만 1만 시간을 채운다고 되는 건 아닌데, 하키 선수를 계속 예로 들면 유소년 시절 일찍이 (1월이나 2월 생이 보여줄 수 있는) 재능과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로 치면 영재반에 들어갈 수 있어야 비로소 1만 시간의 연습을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재반에 들어가 나름 자부심을 갖고 비슷한 연령과 능력의 동료들과 경쟁하는 맛이 있어야지, 어린 소년이 혼자 또는 단지 '방과후 수업' 시간에 연습한다고 하면 동기 부여나 주위의 관심, 시설 지원 등 측면에서 볼 때 1만 시간을 채우기가 만만치 않겠지요. 1만 시간의 연습 시간도 그 정도의 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나 환경이 제공되어야 채울 수 있는 시간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제 얘기를 또 해보면, 저는 학창시절에 체격이나 공부나 운동 면에서 모두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 본 적은 없는 것 같고, 간혹 부모님이 제가 동급생들보다 나이가 어리고 덜 자라 불리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1만 시간을 연습할 수 있는 저만의 특별한 기회나 환경을 제공받았던 것 같지도 않네요. 아니면, 그 시절 흔했던 '야간 자율(이라고 쓰고 '강제' 또는 '타율'이라고 읽죠)학습'을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했으니, 그걸 통해서 1만 시간을 채운 것이라고 봐야 하는 걸까요.
암튼 이번 두 번째 여정도 저에게는 해당사항이 별로 없어 보이네요.
제3장과 제4장에서는 어떤 가정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자랐는지가 성공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제시됩니다.
어떤 가정에서 어떤 교육을 받는지에 따라 살아가는 데 있어 사람들과의 사회적 관계에서 필요한 지능이 후천적으로 계발되는데, 특히 '권위'에 대한 태도나 접근방식을 놓고 보면,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소통하며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하는 경향을 보이는 데 비해,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권위와 거리를 두고 권위를 의심하면서도 순응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합니다. 이는 가정환경에 따라 부모들이 자녀들을 양육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전자가 성공으로 가는 더 유리한 '기회'를 갖고 있는 것이고, 이렇게 사람마다 가정환경이라고 하는 각기 다른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지요.
저는 바로 후자입니다. 이 책을 읽어갈수록 성공과는 거리가 멀어져가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네요.
제5장에서는 이제까지의 이야기들을 종합합니다. "혼자서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의 성공은 특정한 장소와 환경의 산물이다"(144쪽). 저자는 이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죠. '노력하면 성공한다' 류의 기존 성공신화들에 반기를 들고 싶었던 거죠.
예를 들면, 이제 곧 블루오션으로 각광받을 업종에 (우연이든 미리 예측하고 계획한 것이든) 먼저 뛰어들어 있던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지, 무조건 노력만 한다고 되는 건 아니라는 식의 내용입니다.
지금 제가 몸담고 있는 법조 분야를 두고 대한민국의 누구도 블루오션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책을 읽는 처음부터 이상하다 이상하다, 나랑은 연결이 잘 안 되네 했더니, 결국 저는 그냥 이렇게 루저로 남고 마는 것인가요?
암튼 여기까지가 이 책 '제1부 기회(Opportunity)'였구요, 나머지 절반인 '제2부 유산(Legacy)'은 제1부에서 말한 주제와 좀 동떨어진 느낌도 들고 내용이 썩 잘 연결되진 않는 것 같습니다. 해서 여기에 제2부의 내용을 더 옮기진 않겠습니다.
이제 결론을 말하면, 비록 이렇게 제 사례와는 많이 다른 얘기를 다룬 책이긴 하지만, 성공을 위한 사람의 노력도 무시하는 건 아니나 어느 정도 (환경이 성공을 좌우한다는) 결정론적 시각에 서 있는 저자의 견해에 저는 상당히 공감하면서 이 책을 재밌게 읽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갖고 있는 기독교 신앙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이게 이해가 되거든요.
저자도 말하듯이 성공이란 건 한두 가지 요인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고, 개인의 타고난 재능, 출신, 배경, 가정, 교육, 문화, 사회적 요청과 시대적 환경 등 다양한 요인들이 모두 다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야 가능한 것인데, 한두 번의 우연이라면 모르되 이 다양한 요인들의 절묘한 조합을 모두 우연만으로 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성공은 극히 희박한 확률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례적이고 신비한 현상으로도 볼 수 있을 텐데, 이런 이례적이고 신비한 현상을 볼 때마다 더더욱 우리가 절대자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본질적으로 같은 현상을 두고 저자와 제가 해석만 달리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제가 이제까지 이 책에서 말하는 성공의 길과는 판이한 길을 걸어왔지만, 앞으로 제 앞에 어떤 길이 예비되어 있을지 저는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려 합니다.
God bles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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