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4일 화요일
프랑스 형사재판에서 범죄피해자의 지위
[이 글은 제가 2018년 4월 23일 한국형사소송법학회와 대법원 형사법연구회 공동학술대회에서 발표한 '프랑스 형사재판에서 범죄피해자의 지위와 역할' 중 일부를 정리한 것입니다.]아래 사진은 프랑스 법무부 홈페이지에 “Les droits des victimes(피해자의 권리)”이라는 제목으로 게시되어 있는 10여 쪽 분량의 얄팍한 리플릿 중 일부입니다.
이 리플릿의 내용을 요약하면 대충 이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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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폭행, 강간, 상해, 교통사고 등을 당한 사람은 범죄피해자이다.
가. 피해 발생 : 신체적 피해, 정신적 피해, 물질적 손해, 간접적 피해
나. 범죄로 인한 피해 : 위경죄, 경죄, 중죄
2. 범죄피해자라는 사실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가. 의사가 작성한 진단서
나. 물질적 손해나 피해비용을 입증할 수 있는 모든 서류
3. 어디에 문의하여야 하는가?
가. ‘범죄피해자 지원협회’(associations d‘aide aux victimes)
- 전국에 174개 지부가 있는데, 무료로 법률지원을 받을 수 있다.
- 이 협회에서는 ‘08 Victimes’이라는 명칭의 전국적 신고전화를 운영 중이다.
나. 49개 지방법원 안에는 ‘범죄피해자 지원국’(bureaux d‘aide aux victimes)이 설치되어 있다.
다. 변호사
- 아는 변호사가 없는 경우 변호사협회를 통해 변호사를 지정받을 수 있다.
4. 어떻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가?
가. 고소(또는 신고, plainte)
- 범죄피해자는 경찰에 피해사실에 대해 고소(또는 신고)를 할 수 있는데, 이는 경찰을 거쳐 검사에게 송치(전달)된다. 모든 경찰은 범죄피해자의 고소를 접수하여야 한다.
- 범죄피해자는 검사에게 직접 고소를 할 수도 있다.
- 단지 고소를 하는 것만으로는 피해회복에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사소당사자로서 참여한다.
- 고소의 철회는 형사절차를 중단시키지 못한다.
나. 사소당사자 구성(constitution de partie civile)
- 범죄피해자는 피해회복을 위해 사소당사자를 구성할 수 있다. 사소당사자 구성은 절차 진행과정에서 범죄피해자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다.
- 사소당사자 구성은 형사절차 진행 중 어느 단계에서나 가능하다.
- 사소당사자가 되면, 형사절차 진행과 관련된 통지를 받을 수 있고, 변호인을 통해 사건기록에 접근할 수 있고, 어떠한 처분에 불복하는 경우 보완수사를 요구하거나 이의제기를 할 수 있고, 피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범죄피해자의 고소 처리절차>
다. 범죄피해자의 고소는 기소 대체처분인 중재나 조정에 이를 수 있다.
- 형사조정(médiation pénale), 형사화해(composition pénale) 등
라. 예심수사(instruction)
- 사안이 복잡한 사건은 예심수사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
마. 기소(poursuites)
- 사건이 기소되어 재판절차에 이른 경우, 범죄피해자는 재판결과에 불복하면 피고인이나 검사와 마찬가지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5. 피해배상
가. 보험
- 개인적으로 가입한 사보험에 의해 손해를 보상받을 수 있고, 교통사고의 경우에는 의무보험에 의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나. 범죄피해자 배상위원회(Commission d'indemnisation des victimes d'infractions)
- 범죄피해자 배상위원회는 범죄로 인해 가까운 사람이 사망한 경우, 불구 또는 1개월 이상의 중한 상해를 입은 경우, 반인권적 범죄 또는 성폭력 범죄의 피해를 입은 경우 등에 피해를 배상한다.
다. 피해배상
- 민사절차 또는 형사절차에서 피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고, 피해배상 결정에 불복하는 경우 상소하거나 이의제기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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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짧은 리플릿 안에는 프랑스 형사사법절차에서의 범죄피해자와 관련된 제도가 모두 서술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다시 한번 요약하면, 범죄를 당한 피해자(victime)는 경찰 또는 검사에게 고소(plainte)를 제기하거나 예심수사 또는 재판 절차에 사소당사자(partie civile)로서 참여할 수 있고, 그 외에 피해배상을 위한 각종 제도들이 운영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좀더 부연설명해 보겠습니다.
범죄피해자는 우선 경찰 또는 검사에게 고소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경찰이 고소를 접수한 경우에는 이에 대해 수사한 후 검사에게 사건을 송치합니다. 피해자가 단순한 고소를 제기할 수 있는 단계는 여기까지입니다.
만약 검사가 이 고소 사건을 기소하여 예심수사판사의 예심수사나 재판법원에서의 재판이 진행되면, 피해자는 예심수사 절차나 재판 절차에 사소당사자의 자격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검사가 이 고소 사건을 불기소 처분한다면, 이에 불복하는 피해자는 ‘사소당사자 구성 고소’(plainte avec constitution partie civile)라는 것을 예심수사판사에게 제기하거나, 재판법원에 ‘직접소환’(citation directe)이라는 방법을 사용해 가해자의 인적사항과 범죄사실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여 가해자를 법원에 바로 출석시켜 재판이 열리게 하는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즉, 최소한 예심수사판사라는 판사에 의해 절차가 진행되는 예심수사 단계부터 비로소 ‘사소’의 개념이 등장하는 것인데, 이 ‘사소’는 피해자에 의해 사실상 공소제기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유의할 것은, 프랑스는 범죄로 인한 피해회복의 소를 사소로 규정하면서 범죄 이외의 불법행위로 인한 민법상의 손해배상 소와는 구분하는 입장에 있고, 사소는 민사법원 또는 형사법원에 선택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독특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와 같이 형사절차에서 검사가 제기하는 공소(公訴, action publique)에 대비하여, 범죄피해자는 사소(私訴, action civile)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이에 관하여 프랑스 형사소송법 제1조는 “형벌을 적용하기 위한 공소는 사법관 또는 법률에 의하여 이를 위탁받은 공무원이 제기하고 또 수행한다. 공소는 이 법에 정한 요건 하에서 피해자도 제기할 수 있다”, 제2조 제1항은 “중죄, 경죄 또는 위경죄에 의하여 발생한 손해배상을 위한 사소는 범죄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발생한 개인적 손해를 입은 모든 자가 행사할 수 있다”, 제3조는 “사소는 공소와 동시에, 동일한 법원에 제기할 수 있고, 사소는 물적인 손해 뿐만 아니라 신체적 또는 정신적인 손해 등 소추의 대상인 행위에서 유래하는 모든 항목의 손해에 대하여 제기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소를 제기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피해자가 경찰이나 검찰 같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법원에 직접 사소청구서(우리의 ‘고소장’에 해당)를 제출하면 법원은 그것을 근거로 재판을 열 수 있으므로, 간단히 상대방을 법정에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사소 제기 후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에는 피해자가 오히려 무고죄나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소 제도는 범죄피해자의 형사소추권과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권을 결합한 제도라고 설명됩니다. 따라서 손해배상을 원하지 않는 피해자가 오로지 가해자의 유죄판결만을 목적으로 사소를 제기할 수는 없는지 문제 될 수 있는데, 이에 대해 프랑스 대법원은, 손해배상의 요구는 사소권 행사의 한 요소일 뿐이므로 이를 요구하지 않은 채 유죄판결만을 위한 사소를 제기할 수도 있다는 입장입니다.
범죄피해자가 사소권을 행사하는 경우 단순한 참고인 등이 아닌 당사자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므로, 형사절차 전반에 걸쳐 피의자나 피고인과 마찬가지로 당사자로서의 여러 권리도 부여받게 됩니다.
먼저, 사소당사자는 수사 단계, 재판 단계, 형 집행 단계 등 형사절차의 모든 단계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권리의 내용과 이 권리를 행사하는 데 필요한 각종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변호사를 통해 소송기록을 열람하거나 등사할 수 있고, 재판절차에서는 증인 등의 증거를 신청하고 재판장을 통해 증인이나 피고인을 신문할 수 있으며, 피고인의 형사처벌 및 손해배상 청구와 관련한 의견을 진술할 수 있습니다. 재판절차에서 의견을 진술하는 경우에는, 사소당사자에게 변호인이 선임되어 있으면 그 변호인이 먼저 의견을 진술한 다음 사소당사자가 의견을 진술하고, 그 이후 검사가 구형 의견을 포함한 논고를 행합니다. 그리고 사소당사자는 대부분 변호인과 함께 재판에 출석하여 변호인의 조력을 받고 있는데, 사소당사자가 출석하지 않은 채 변호인만이 출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프랑스의 형사사법절차에서는 범죄피해자가 사소당사자로서 재판에 직접 참여하는 사례가 꽤 흔합니다. 범죄피해자가 재판에 참여하게 되면, 사법기관의 입장에서는 피해자가 재판장 앞에서 생생한 피해진술을 함으로써 아무래도 실체적 진실 발견에 도움이 될 수 있고 유죄판결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점이 있으며,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손해배상까지 형사재판에서 한 번에 받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무고성 고소로 인해 법정에 서게 된 억울한 피고인 외에는, 대부분 별로 좋을 게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판결을 선고할 때 먼저 형을 선고한 다음,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액 선고가 이어집니다. 배심재판의 경우에는 배심원들이 형 선고까지만 관여하고, 그 이후의 손해배상액 결정은 직업법관들이 담당합니다.
프랑스 형사재판에서의 사소 제도에 대해서는 국내에 이미 상세한 내용을 소개한 여러 선행연구들이 있습니다.
전윤경 검사님의 “프랑스 범죄피해자의 권리 및 형사절차 참여방안 연구”는, 프랑스에서 범죄피해자의 지위 향상을 꾀하여 온 그간의 입법경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에 의하면, 프랑스에서도 과거 범죄피해자가 단지 증거의 객체로만 다루어져 온 데 대한 반성적 고려로, 1977년 형사소송법에 신체 손상을 입은 일정한 피해자에 대한 보상 규정을 신설하고, 1983년에는 피해자가 정신적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게 한 데 이어, 1993년에는 피고인에게 다양한 권리가 인정되고 있는 이상 피해자에게도 동일한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피해자에게도 증인신문권과 감정청구권 등이 인정되었습니다.
이어서 2000년에는 ‘무죄추정의 보호와 피해자의 권리 강화에 관한 2000년 6월 15일자 제2000-516호 법률’에 따라 피해자의 법적 지위를 더욱 향상시켰는데, 형사소송법 序條 제2조에서 “사법당국은 형사소송의 모든 절차에서 범죄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범죄피해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여야 한다”라는 새로운 내용을 천명함으로써 사소당사자가 아닌 피해자에게도 다양한 정보를 받을 권리가 부여되었을 뿐 아니라, 피해자는 이제 형사절차에서 피의자나 검사와 마찬가지로 무기대등의 원칙에 입각한 온전한 하나의 당사자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2007년에는 전국 108개 지방법원에 피해자 전담판사(Juge délégué aux victimes)를 임명하고, 범죄피해의 실질적 회복을 위해 2008년 범죄피해회복 지원국(Service d'assistance au recouvrement des victimes d'infractions)을 설치하였으며, 2009년부터 매년 각 지방법원에 피해자를 위한 전용공간인 범죄피해자 지원국(Bureau de l'aide aux victimes)을 설치하였습니다.
손병현 교수님의 “프랑스 형사법상 범죄피해자의 당사자적 지위”도, 범죄피해자의 권리보장 강화는 프랑스 사법부에서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주된 형사사법정책 중의 하나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범죄피해자의 지위에 관한 중요한 형사소송법 개정 사례로 앞서 언급한 ‘무죄추정의 보호와 피해자의 권리 강화에 관한 2000년 6월 15일자 제2000-516호 법률’을 들면서, 이 법률은 형사소송법상 피해자의 지위를 선언적으로 보장하는 序條 제2조를 신설하고, 심지어 이 규정을 피의자 또는 피고인의 권리에 관한 규정보다 법문 순서상 먼저 규정하고 있다는 의의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범죄피해자를 형사절차 전반에 걸쳐 다른 당사자 즉 피의자, 피고인, 검사와 마찬가지로 무기대등의 원칙에 입각한 온전한 하나의 당사자라고 봅니다. 온전한 당사자의 지위를 위해, 피해자는 사소당사자를 구성하여 능동적으로 민사법원과 형사법원을 선택하여 자신의 피해보상권을 행사하는 한편, 법은 이를 돕기 위해 형사사법기관, 범죄피해자 지원위원회 등이 피해자에게 수사 단계부터 형 집행 단계까지 지속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원만한 피해회복을 위해 주력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김택수 교수님의 “프랑스 부대사소제도와 피해자의 소송참가”는, 프랑스의 사소 제도가 본래 범죄로 인한 피해회복에 대한 소를 민사법원이 아닌 형사법원에서 제기하여 공소와 사소의 심리를 동시에 진행시킴으로써 신속한 피해회복을 가능하게 하고 민사법원과 형사법원 판결의 모순을 없애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그런데 이 글에서는 사소 제도가 단순히 피해회복에만 그치지 않는 것으로, 대법원 판례는 손해배상의 청구가 없거나 형사법원이 사소에 대한 재판권이 없는 경우에도 피고인의 유죄를 얻어내려는 목적의 부대사소가 제기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음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즉, 사소를 제기한 피해자가 피해회복을 받기 위해 피해 범위 뿐만 아니라 범죄의 존부라는 공적인 영역에 대해서도 주장하고 이를 입증할 것이 요구되는 것에 더하여, 검사의 공소제기를 전제로 해서만 사소 제기가 가능한 것이 아니라 검사가 불기소 처분한 경우에도 피해자의 사소 제기를 통해 결국 기소가 강제되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피해자를 검사와 대등한 당사자로서 형사절차에 적극 참여하게 함으로써, 검사의 기능을 한편으로는 보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견제하도록 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평가합니다.
프랑스의 사소 제도는 형사재판에서의 손해배상 판결로 신속하게 범죄피해를 구제할 수 있다는 장점과 더불어, 대부분의 범죄피해자로 하여금 수사와 재판 단계 전반에 직접 참여하여 당사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며 적극적으로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피해자의 형사절차상의 권리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피해자가 형사소송만을 통해 별도의 민사소송을 제기하여야 한다는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물론, 가해자 역시 동일한 사안에 관하여 반복적인 소송으로 불안한 지위가 계속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소송경제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는데,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의 동시 진행에 따른 경제적 비용은 물론, 양자의 결론이 충돌할 경우 야기될 수 있는 사법의 신뢰 훼손을 방지하는 의의도 있다고 할 것입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기존의 연구 성과들은 프랑스의 범죄피해자 관련 입법례를 높이 평가하면서, 형사절차에서 범죄피해자의 위치를 당사자의 지위로 격상시키자는 데 대체로 찬성하는 입장인 듯합니다.
이제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면, 프랑스의 사소 제도에 비근한 제도로서 현재 배상명령 제도와 재정신청 제도 등이 운영되고 있으나, 대상범위가 제한적이거나 인용범위가 협소하다는 등의 사정에 비추어 볼 때 범죄피해자를 위한 배려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사인들 간에 발생한 분쟁에 관하여 대화와 타협, 더 나아가 민사적인 해결보다는 수사와 형사처벌에 의한 해결을 우선시하는 우리의 강경 일변도의 사회적 분위기와 경향으로 인해, 무익한 고소나 고발이 남발되고 민사적 성격이 짙은 고소나 고발 사건이 급증하는 것이 현실임을 감안하면, 이러한 형사법 만능주의가 횡행하고 있는 현실에서 과연 형사절차로의 진입장벽을 낮춤으로써 그러한 경향을 더욱 부추길 수 있는 방안이 적절한 해결방법인지는 의문입니다. 바로 대부분의 형사소송법 교과서 첫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는 형사법의 보충성 원칙이나 비례성 원칙을 과연 우리가 충실히 준수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특히, 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하는 피해자가 법원에 직접 소를 제기하는 방식의 사소 제도가 도입된다면, 바로 형사소송의 남발로 이어져 지나치게 많은 피고인을 양산하고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어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다만, 무작정 형사절차로의 진입장벽을 높이기만 할 것이 아니라 반대로, 왠만한 분쟁이란 분쟁이 모두 형사절차로 진입하는 우리의 현실을 현실 그 자체로 인정하는 입장에 서서 본다면, 형사절차 내에서 피해자의 입장을 충분히 배려함으로써 보다 사건을 적정하게 처리하기 위한 방안으로 프랑스의 입법례를 일정 부분 참고할 필요는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진행 중인 수사나 재판에 부대적으로 참가하는 방식의 사소 제도에 대해 검토해 볼 때, 현재 시행 중인 배상명령 제도를 확대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데 필요한 권리를 피해자에게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형사조정(médiation pénale), 형사화해(composition pénale) 등
라. 예심수사(instruction)
- 사안이 복잡한 사건은 예심수사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
마. 기소(poursuites)
- 사건이 기소되어 재판절차에 이른 경우, 범죄피해자는 재판결과에 불복하면 피고인이나 검사와 마찬가지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5. 피해배상
가. 보험
- 개인적으로 가입한 사보험에 의해 손해를 보상받을 수 있고, 교통사고의 경우에는 의무보험에 의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나. 범죄피해자 배상위원회(Commission d'indemnisation des victimes d'infractions)
- 범죄피해자 배상위원회는 범죄로 인해 가까운 사람이 사망한 경우, 불구 또는 1개월 이상의 중한 상해를 입은 경우, 반인권적 범죄 또는 성폭력 범죄의 피해를 입은 경우 등에 피해를 배상한다.
다. 피해배상
- 민사절차 또는 형사절차에서 피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고, 피해배상 결정에 불복하는 경우 상소하거나 이의제기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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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짧은 리플릿 안에는 프랑스 형사사법절차에서의 범죄피해자와 관련된 제도가 모두 서술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다시 한번 요약하면, 범죄를 당한 피해자(victime)는 경찰 또는 검사에게 고소(plainte)를 제기하거나 예심수사 또는 재판 절차에 사소당사자(partie civile)로서 참여할 수 있고, 그 외에 피해배상을 위한 각종 제도들이 운영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좀더 부연설명해 보겠습니다.
범죄피해자는 우선 경찰 또는 검사에게 고소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경찰이 고소를 접수한 경우에는 이에 대해 수사한 후 검사에게 사건을 송치합니다. 피해자가 단순한 고소를 제기할 수 있는 단계는 여기까지입니다.
만약 검사가 이 고소 사건을 기소하여 예심수사판사의 예심수사나 재판법원에서의 재판이 진행되면, 피해자는 예심수사 절차나 재판 절차에 사소당사자의 자격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검사가 이 고소 사건을 불기소 처분한다면, 이에 불복하는 피해자는 ‘사소당사자 구성 고소’(plainte avec constitution partie civile)라는 것을 예심수사판사에게 제기하거나, 재판법원에 ‘직접소환’(citation directe)이라는 방법을 사용해 가해자의 인적사항과 범죄사실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여 가해자를 법원에 바로 출석시켜 재판이 열리게 하는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즉, 최소한 예심수사판사라는 판사에 의해 절차가 진행되는 예심수사 단계부터 비로소 ‘사소’의 개념이 등장하는 것인데, 이 ‘사소’는 피해자에 의해 사실상 공소제기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유의할 것은, 프랑스는 범죄로 인한 피해회복의 소를 사소로 규정하면서 범죄 이외의 불법행위로 인한 민법상의 손해배상 소와는 구분하는 입장에 있고, 사소는 민사법원 또는 형사법원에 선택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독특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와 같이 형사절차에서 검사가 제기하는 공소(公訴, action publique)에 대비하여, 범죄피해자는 사소(私訴, action civile)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이에 관하여 프랑스 형사소송법 제1조는 “형벌을 적용하기 위한 공소는 사법관 또는 법률에 의하여 이를 위탁받은 공무원이 제기하고 또 수행한다. 공소는 이 법에 정한 요건 하에서 피해자도 제기할 수 있다”, 제2조 제1항은 “중죄, 경죄 또는 위경죄에 의하여 발생한 손해배상을 위한 사소는 범죄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발생한 개인적 손해를 입은 모든 자가 행사할 수 있다”, 제3조는 “사소는 공소와 동시에, 동일한 법원에 제기할 수 있고, 사소는 물적인 손해 뿐만 아니라 신체적 또는 정신적인 손해 등 소추의 대상인 행위에서 유래하는 모든 항목의 손해에 대하여 제기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소를 제기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피해자가 경찰이나 검찰 같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법원에 직접 사소청구서(우리의 ‘고소장’에 해당)를 제출하면 법원은 그것을 근거로 재판을 열 수 있으므로, 간단히 상대방을 법정에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사소 제기 후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에는 피해자가 오히려 무고죄나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소 제도는 범죄피해자의 형사소추권과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권을 결합한 제도라고 설명됩니다. 따라서 손해배상을 원하지 않는 피해자가 오로지 가해자의 유죄판결만을 목적으로 사소를 제기할 수는 없는지 문제 될 수 있는데, 이에 대해 프랑스 대법원은, 손해배상의 요구는 사소권 행사의 한 요소일 뿐이므로 이를 요구하지 않은 채 유죄판결만을 위한 사소를 제기할 수도 있다는 입장입니다.
범죄피해자가 사소권을 행사하는 경우 단순한 참고인 등이 아닌 당사자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므로, 형사절차 전반에 걸쳐 피의자나 피고인과 마찬가지로 당사자로서의 여러 권리도 부여받게 됩니다.
먼저, 사소당사자는 수사 단계, 재판 단계, 형 집행 단계 등 형사절차의 모든 단계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권리의 내용과 이 권리를 행사하는 데 필요한 각종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변호사를 통해 소송기록을 열람하거나 등사할 수 있고, 재판절차에서는 증인 등의 증거를 신청하고 재판장을 통해 증인이나 피고인을 신문할 수 있으며, 피고인의 형사처벌 및 손해배상 청구와 관련한 의견을 진술할 수 있습니다. 재판절차에서 의견을 진술하는 경우에는, 사소당사자에게 변호인이 선임되어 있으면 그 변호인이 먼저 의견을 진술한 다음 사소당사자가 의견을 진술하고, 그 이후 검사가 구형 의견을 포함한 논고를 행합니다. 그리고 사소당사자는 대부분 변호인과 함께 재판에 출석하여 변호인의 조력을 받고 있는데, 사소당사자가 출석하지 않은 채 변호인만이 출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프랑스의 형사사법절차에서는 범죄피해자가 사소당사자로서 재판에 직접 참여하는 사례가 꽤 흔합니다. 범죄피해자가 재판에 참여하게 되면, 사법기관의 입장에서는 피해자가 재판장 앞에서 생생한 피해진술을 함으로써 아무래도 실체적 진실 발견에 도움이 될 수 있고 유죄판결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점이 있으며,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손해배상까지 형사재판에서 한 번에 받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무고성 고소로 인해 법정에 서게 된 억울한 피고인 외에는, 대부분 별로 좋을 게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판결을 선고할 때 먼저 형을 선고한 다음,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액 선고가 이어집니다. 배심재판의 경우에는 배심원들이 형 선고까지만 관여하고, 그 이후의 손해배상액 결정은 직업법관들이 담당합니다.
프랑스 형사재판에서의 사소 제도에 대해서는 국내에 이미 상세한 내용을 소개한 여러 선행연구들이 있습니다.
전윤경 검사님의 “프랑스 범죄피해자의 권리 및 형사절차 참여방안 연구”는, 프랑스에서 범죄피해자의 지위 향상을 꾀하여 온 그간의 입법경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에 의하면, 프랑스에서도 과거 범죄피해자가 단지 증거의 객체로만 다루어져 온 데 대한 반성적 고려로, 1977년 형사소송법에 신체 손상을 입은 일정한 피해자에 대한 보상 규정을 신설하고, 1983년에는 피해자가 정신적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게 한 데 이어, 1993년에는 피고인에게 다양한 권리가 인정되고 있는 이상 피해자에게도 동일한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피해자에게도 증인신문권과 감정청구권 등이 인정되었습니다.
이어서 2000년에는 ‘무죄추정의 보호와 피해자의 권리 강화에 관한 2000년 6월 15일자 제2000-516호 법률’에 따라 피해자의 법적 지위를 더욱 향상시켰는데, 형사소송법 序條 제2조에서 “사법당국은 형사소송의 모든 절차에서 범죄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범죄피해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여야 한다”라는 새로운 내용을 천명함으로써 사소당사자가 아닌 피해자에게도 다양한 정보를 받을 권리가 부여되었을 뿐 아니라, 피해자는 이제 형사절차에서 피의자나 검사와 마찬가지로 무기대등의 원칙에 입각한 온전한 하나의 당사자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2007년에는 전국 108개 지방법원에 피해자 전담판사(Juge délégué aux victimes)를 임명하고, 범죄피해의 실질적 회복을 위해 2008년 범죄피해회복 지원국(Service d'assistance au recouvrement des victimes d'infractions)을 설치하였으며, 2009년부터 매년 각 지방법원에 피해자를 위한 전용공간인 범죄피해자 지원국(Bureau de l'aide aux victimes)을 설치하였습니다.
손병현 교수님의 “프랑스 형사법상 범죄피해자의 당사자적 지위”도, 범죄피해자의 권리보장 강화는 프랑스 사법부에서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주된 형사사법정책 중의 하나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범죄피해자의 지위에 관한 중요한 형사소송법 개정 사례로 앞서 언급한 ‘무죄추정의 보호와 피해자의 권리 강화에 관한 2000년 6월 15일자 제2000-516호 법률’을 들면서, 이 법률은 형사소송법상 피해자의 지위를 선언적으로 보장하는 序條 제2조를 신설하고, 심지어 이 규정을 피의자 또는 피고인의 권리에 관한 규정보다 법문 순서상 먼저 규정하고 있다는 의의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범죄피해자를 형사절차 전반에 걸쳐 다른 당사자 즉 피의자, 피고인, 검사와 마찬가지로 무기대등의 원칙에 입각한 온전한 하나의 당사자라고 봅니다. 온전한 당사자의 지위를 위해, 피해자는 사소당사자를 구성하여 능동적으로 민사법원과 형사법원을 선택하여 자신의 피해보상권을 행사하는 한편, 법은 이를 돕기 위해 형사사법기관, 범죄피해자 지원위원회 등이 피해자에게 수사 단계부터 형 집행 단계까지 지속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원만한 피해회복을 위해 주력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김택수 교수님의 “프랑스 부대사소제도와 피해자의 소송참가”는, 프랑스의 사소 제도가 본래 범죄로 인한 피해회복에 대한 소를 민사법원이 아닌 형사법원에서 제기하여 공소와 사소의 심리를 동시에 진행시킴으로써 신속한 피해회복을 가능하게 하고 민사법원과 형사법원 판결의 모순을 없애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그런데 이 글에서는 사소 제도가 단순히 피해회복에만 그치지 않는 것으로, 대법원 판례는 손해배상의 청구가 없거나 형사법원이 사소에 대한 재판권이 없는 경우에도 피고인의 유죄를 얻어내려는 목적의 부대사소가 제기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음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즉, 사소를 제기한 피해자가 피해회복을 받기 위해 피해 범위 뿐만 아니라 범죄의 존부라는 공적인 영역에 대해서도 주장하고 이를 입증할 것이 요구되는 것에 더하여, 검사의 공소제기를 전제로 해서만 사소 제기가 가능한 것이 아니라 검사가 불기소 처분한 경우에도 피해자의 사소 제기를 통해 결국 기소가 강제되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피해자를 검사와 대등한 당사자로서 형사절차에 적극 참여하게 함으로써, 검사의 기능을 한편으로는 보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견제하도록 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평가합니다.
프랑스의 사소 제도는 형사재판에서의 손해배상 판결로 신속하게 범죄피해를 구제할 수 있다는 장점과 더불어, 대부분의 범죄피해자로 하여금 수사와 재판 단계 전반에 직접 참여하여 당사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며 적극적으로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피해자의 형사절차상의 권리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피해자가 형사소송만을 통해 별도의 민사소송을 제기하여야 한다는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물론, 가해자 역시 동일한 사안에 관하여 반복적인 소송으로 불안한 지위가 계속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소송경제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는데,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의 동시 진행에 따른 경제적 비용은 물론, 양자의 결론이 충돌할 경우 야기될 수 있는 사법의 신뢰 훼손을 방지하는 의의도 있다고 할 것입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기존의 연구 성과들은 프랑스의 범죄피해자 관련 입법례를 높이 평가하면서, 형사절차에서 범죄피해자의 위치를 당사자의 지위로 격상시키자는 데 대체로 찬성하는 입장인 듯합니다.
이제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면, 프랑스의 사소 제도에 비근한 제도로서 현재 배상명령 제도와 재정신청 제도 등이 운영되고 있으나, 대상범위가 제한적이거나 인용범위가 협소하다는 등의 사정에 비추어 볼 때 범죄피해자를 위한 배려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사인들 간에 발생한 분쟁에 관하여 대화와 타협, 더 나아가 민사적인 해결보다는 수사와 형사처벌에 의한 해결을 우선시하는 우리의 강경 일변도의 사회적 분위기와 경향으로 인해, 무익한 고소나 고발이 남발되고 민사적 성격이 짙은 고소나 고발 사건이 급증하는 것이 현실임을 감안하면, 이러한 형사법 만능주의가 횡행하고 있는 현실에서 과연 형사절차로의 진입장벽을 낮춤으로써 그러한 경향을 더욱 부추길 수 있는 방안이 적절한 해결방법인지는 의문입니다. 바로 대부분의 형사소송법 교과서 첫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는 형사법의 보충성 원칙이나 비례성 원칙을 과연 우리가 충실히 준수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특히, 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하는 피해자가 법원에 직접 소를 제기하는 방식의 사소 제도가 도입된다면, 바로 형사소송의 남발로 이어져 지나치게 많은 피고인을 양산하고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어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다만, 무작정 형사절차로의 진입장벽을 높이기만 할 것이 아니라 반대로, 왠만한 분쟁이란 분쟁이 모두 형사절차로 진입하는 우리의 현실을 현실 그 자체로 인정하는 입장에 서서 본다면, 형사절차 내에서 피해자의 입장을 충분히 배려함으로써 보다 사건을 적정하게 처리하기 위한 방안으로 프랑스의 입법례를 일정 부분 참고할 필요는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진행 중인 수사나 재판에 부대적으로 참가하는 방식의 사소 제도에 대해 검토해 볼 때, 현재 시행 중인 배상명령 제도를 확대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데 필요한 권리를 피해자에게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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