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6일 금요일
도미니끄 스트로스 칸 사건과 미-프 사법제도의 차이
IMF 총재이자 유력한 프랑스 대권주자인 도미니크 스토로스 칸이 지난 5월 14일 뉴욕의 한 호텔에서 청소일을 하는 흑인 여종업원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어 전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일이 있죠. 그런데, 칸을 구속해 기소했던 뉴욕의 검사 Cyrus Vance가 피해여성의 진술이 신빙성 없어 보인다는 이유로 공소를 취소하여 더더욱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처음에 이 사건을 보면서, 미국 검사가 어떻게 피해자의 진술만 믿고 그토록 신속하고 전격적으로, 막 출발하려는 항공기를 멈추게 하면서까지 세계적인 유명인사를 쉽게 구속할 수 있는지 무척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다면 그와 같은 신속한 구속조치는 전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선 범죄혐의가 있다고 볼 증거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통상 성폭력사건은 피해여성의 진술 외에 다른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아 피해여성의 진술이 신빙성 있는지 여부가 가장 큰 쟁점이 되곤 합니다. 피의자는 화간을 주장하고, 피해자는 강간을 주장하는 사건이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이 사건에서도 역시 피해여성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였고, 그 진술이 신빙성 있는지 여부는 매우 신중하게 따져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진술의 신빙성 유무를 따져보기 위해서는 당시 상황에 관한 수사를 매우 상세하게 해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상세한 수사는커녕 피해자의 진술만 듣고 신고접수로부터 불과 몇 시간 만에 사람을 구속하다니요.
둘째, 칸 같은 거물을 구속하게 되면 그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평범한 일반인에 비해 구속 여부는 더 신중하게 결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단순히 평범한 사람과 유명인을 차별대우한다는 차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런데, 뉴욕의 검사는 이것저것 재지도 않고 곧바로 거물급 인사를, 그것도 외국인을 덜컥 구속해버렸습니다. 더구나, 칸이 초췌한 모습으로 수갑을 차고 있는 모습을 언론으로 하여금 촬영하게 하여 전세계인들에게 칸을 망신주기까지 하였습니다.
이게 단지 대륙식 사법제도와 영미식 사법제도의 차이만에 기인하는 것인지, 아니면 음모론에 기인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파리고등검찰청의 Bilger 검사가 8. 24. 블로그에 이 사건에 대한 느낌을 글로 올렸습니다. Bilger 검사는 한마디로 우스꽝스럽고도 부끄러운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하면서, 프랑스에서였다면 전혀 다른 결과였을 것이라며 프랑스와 미국의 사법제도를 비교해보기도 하였습니다. 전체적인 취지는 제가 아까 한 얘기들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Bilger 검사가 언급한 프랑스와 미국 사법제도의 주된 차이점은 다음 두 가지입니다.
- 미국 검사의 공소취소는 칸이 무죄라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무죄를 받을까 우려하여 재판을 포기하는 것에 불과하고, 이로 인해 실체적 진실의 발견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의 사법제도에서는 미국에서처럼 그렇게 빨리 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예심수사판사의 수사와 중죄법원에서의 참심재판이라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프랑스의 사법절차는 추상적이고 절대적인 개념의 진실을 발견하여야 하는데, 그 절차의 결과는 불확실하고 알 수 없고, 재판과정에서 증거 및 자유심증과 관련한 논쟁이 벌어지겠지만 그 결과는 신통치 않을 수도 있다. 미국의 경우, 그렇게 되기 전에 미리 타월을 던져버린다.
- 프랑스와 미국 사법제도의 두 번째 근본적인 차이점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Vance 검사가 칸을 상대로 증거를 찾으려고 하지 않고 피해자와 그의 진술에만 관심이 있었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검사나 예심수사판사였다면 피해자보다는 피의자의 진술이 무엇인지, 그 진술이 모순되는지 아니면 진실한지에 대해 직접적으로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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