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19일 금요일
[독서일기]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국민대 건축학과 교수 이경훈 저, 푸른숲, 2011.책 겉표지에는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라는 제목이 걸려있고, 속표지에는 그 옆에 "아직은"이라는 말이 달려 있습니다. 아직은 서울을 제대로 된 도시라고 보기 어렵다는 저자의 선언인 것이지요.
평소 건축, 서울, 이런 류에 관심이 많던 차에,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너무 재미있어 순식간에 읽어버려, 250쪽 정도인 다소 적은 분량이 아쉽기까지 합니다.
일단, 좋은 내용들이 많은데, 일일이 옮겨적기 번거로워서 출판사의 소개문 중 일부를 인용해 봅니다.
[ 서울이 정겹지 못하고 삭막한 까닭은 도시이기 때문일까?
- 오로지 서울에만 있는 여덟 가지 도시 풍경
- 오로지 서울에만 있는 여덟 가지 도시 풍경
걷고 싶은 거리_인도. 거리는 우리에게 도시 생활의 즐거움을 준다. 걸으면서 사색하고 사랑하고 일하고 함께 밥 먹는 공간, 거리를 기웃기웃거리며 낯익은 사람들을 만나고, 흥미로운 가게에 들어가 구경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도시적 삶이다. 그런데 서울은 인도가 없고, 그나마 있는 인도에는 주차가 되어 있다!
걷고 싶은 거리_상점. 거리를 가장 아름답게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정답은 숲과 가로수가 아니라 상점이다. 도시는 그 자체가 상업적 공간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 도시의 가장 원초적인 기능이 발현될 때 거리는 깨끗해지고, 도시는 안전해지며 볼거리가 많아진다. 각자 자신의 상점을 꾸미고, 그곳에 사람들이 드나들 때 진정한 도시가 되는 것이다. 그 어느 도시보다 상업적이면서도, 걷고 싶은 거리나 광장에 있어야 할 상점을 상업적이라고 배척하는 태도가 서울을 엉뚱하게 만들고 있다. 상점이야말로 서울의 거리를 아름답게 바꿀 최후의 꽃병이다.
걷고 싶은 거리_광장. 광화문광장이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난감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광화문광장에는 도시성이 없다는 것을 그 이유로 꼽는다. 다른 말로 그곳에서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발길을 끌어들이는 상점과 카페가 없고, 주변 건물들과 어우러진 어떠한 형태도 없다. 즉, 사람들이 오가고 소통하는 광장의 기능성이 거세된 공간이기 때문에 불편하다는 것이다.
마을버스. 마을버스는 서울에만 있는 교통수단이란 것을 알고 있는가? 지하철이 안 들어오는 곳에 사는 주민들에게 편리한 교통수단을 제공한다고 생각하지만, 마을버스는 도시에서 마을을 없애는 주범이다. 마을버스는 동네를 걸어 다니며, 주민들과 만나고 인사하며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그러면서 점점 인도는 줄어가고 거리는 황폐해진다. 결국 서울 시내에 거리는 사라지고 길만 남게 되는 것이다!
방음벽. 전 세계 도시 중 장벽이 남아 있는 도시는 예루살렘과 서울이란 사실 알고 있는가? 방음벽은 장벽이다. 소음을 차단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풍경과 이웃마저 차단한다. 이는 사적 이익이 공유 공간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가치관의 발로다. 도시는 원래, 사적 이익을 어느 정도 감수하고 더불어 잘 지내기 위해 거리, 광장과 같은 공유 공간이 중요시되는 곳이다. 허나 방음벽은 이 전제를 뒤집는 장벽이다.
도시, 기억의 공간. 유럽의 오랜 건물이 인간적인 반면 불과 20년 된 우리의 건물들이 스산한 건 왜일까? 이것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새집증후군과 연결되는 문제다. 싸고 쉽게 짓고 빨리 허물고 새 건물을 짓고자 하는 습식 건축 공법을 맹신하기 때문이다. 이는 도시를 기억의 공간이라 생각지 않고, 부동산 투기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 작용한 까닭이며 결국 도읍이 된 지 6백 년이 지났지만 서울은 스토리가 사라진 공간이자 소아병을 앓는 도시가 되었다.
모델하우스. 모델하우스는 왜 화려할까? 모델하우스는 서울의 그닥 행복하지 않은 현실을 지워주는 지우개다. 모델하우스는 일반 아파트가 갖지 못한 모든 욕망이 실현된 공간이다. 엄청나게 높은 천장, 은은한 조명, 화려한 인테리어 마감재. 거기에 극진한 서비스까지. 본 용도는 우리가 살 집을 보여줘야 하지만, 실상은 꿈과 같은 이미지를 전시한다. 즉,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하고 아름다운 도시를 이미지로 보여주고, 현실도 그러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기대하게 만드는 장치로써, 실제 서울의 부족한 면을 애써 감추는 장치다.
남향 아파트. 남향이 친환경적이고 쾌적할까? 물론 남향은 좋다. 풍수지리, 농경사회의 유산으로 남향은 주거 환경의 기본 조건이 되었다. 그런데 왜 중국 도시들은 남향을 고집하지 않을까. 건축은 지대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남향을 고집하면서 우리는 앞 동 뒤통수만 보거나, 눈 한번 내리면 절대로 녹지 않는 응달을 아파트 단지 안에 만들었다. 한강 변의 아파트는 말할 것도 없고, 세종문화회관도 큰 거리를 놔두고 뒤를 돌아서 있다. 도시에서 방향보다 중요한 것은 너무도 많다. 낮 시간 동안 빈집에 햇살 가득하길 바라는 이기심을 버리면 신사동 가로수길처럼 거리가 햇살을 머금고 모두가 행복한 도시가 바로 살 만한 곳이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경탄하는 유럽의 도시들이나 뉴욕에 비하여 우리 서울이 왜 덜 아름다워 보일까, 왜 답답해 보일까 하는 물음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답을 제시해 줍니다.
자동차가 주인인 도로체계, 아파트 일변도의 주거형태, 자연적 공간만을 추구하고 상업적 공간을 차별하는 의식 등 여러 요인이 섞여 서울은 진정한 도시적인 장점을 갖지 못한 채 이웃과의 소통이 단절되고 삭막한 풍경만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가 격찬한 신사동 가로수길, 저도 아주 좋아하는 곳인데, 그곳을 좋은 거리로 만든 것은 단지 이국적인 풍경만이 아니라 거리에 늘어선 많은 볼거리들과 걷기 편한 인도라고 하는 사실, 좋은 거리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도 가르쳐 줍니다.
제가 늘상 출퇴근하는 여정 중에 그런 면에서 좋은 거리가 없다는 것이 매우 유감이긴 하지만, 제가 사는 곳을 새로운 눈으로 다시 살펴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시는 나름의 장점과 이유가 있어 만들어진 장소이고, 도시에 살면서 그런 장점을 누리고 있는 시민들은 도시를 더 도시답게, 그런 장점을 더 잘 누릴 수 있게 도시를 가꾸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노력을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도록 이 책이 널리 애독되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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