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4일 월요일
영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를 통해본 미국 형사사법제도
며칠 전에 직장 동료들과 단체로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원제 The Lincoln Lawyer)를 보았습니다. 영화는 오랜만에 보는데, 꽤 볼만 하였습니다.법정스릴러물로, 주인공은 링컨 콘티넨탈 초기 모델 차량을 사무실로 사용하는 할러 변호사(Matthew McConaughey 분)입니다. 할러 변호사는 건들건들하고 돈만 밝히는 것처럼 보이는 속물형 변호사인데, 강간상해 사건 피의자의 변론을 맡아 곤경에 처했다가 모면한다는 내용입니다.
ⓒ Lionsgate/ Lakeshore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
이 영화를 통해 본 미국 형사사법제도와 우리와의 차이점 몇 가지.
1. 재판은 게임이다.
미국의 형사사법제도는 정의 실현보다는 게임 승리가 목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플리바기닝 제도가 그런 인상을 주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2. 전문진술의 증거능력
주인공의 유능한 변론으로 수세에 몰려 있던 검사가 재판 종반부에 마지막 히든카드로 내세운 증인인 X(이름이 기억나지 않네요)는, 피고인이 막 체포되어 있을 당시 유치장에서 들은 피고인의 진술에 대해 증언합니다. 피고인이 자신이 피해자를 강간상해하였고 과거에 다른 여성을 살해한 사실도 있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죠.
다만, 이 X는 과거 다른 사건에서도 유치장에서 다른 피고인으로부터 자백진술을 들었다면서 증언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그 진술의 신빙성이 탄핵되었고, 결국 X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무죄를 선고받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형사재판에서였다면 진술의 신빙성 유무를 따져보기도 전에 이 X의 증언은 증거로서의 사용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피고인으로부터 들은 말의 내용에 대한 다른 사람의 증언은 우리 법상 '전문진술'에 해당되고, 그러한 전문진술은 증인이 아무리 증언을 해댄다 한들 원진술자인 피고인이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사실이 없다고 한마디만 해버리면 전혀 증거로 인정받을 수가 없습니다.
전문법칙의 원조국가인 미국의 제도를 받아들인 우리나라가 오히려 미국보다 전문법칙의 적용범위가 넓어, 이렇게 재판의 실제 운용상 불합리한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3. 체포가 쉽다.
위 증인 X의 증언에는 피고인이 과거에 다른 여성도 살해하였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그 말을 단서로 경찰은 무죄판결을 선고받고 법정을 나서던 피고인을 다시 살인 혐의로 체포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라면 이는 얼토당토 않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증인 X의 증언은 그 신빙성이 탄핵되어 이번 사건에서 전혀 증거로서 인정받지 못한 결과 무죄판결까지 선고된 상태이므로, 그러한 증언을 단서로 피고인을 다른 살인범죄의 혐의로 체포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번 재판에서도 믿지 못한 X의 증언을 다른 사건에서는 어떻게 신빙할 수 있겠어요.
인권보호의 원조국가인 미국의 제도를 받아들인 우리나라가 오히려 미국보다 인권보호에 충실한 것이라고 봐야 할까요.
지난 5월에 IMF 총재인 프랑스인 Dominique Strauss-Kahn이 미국에서 성폭력 혐의로 체포된 일이 있었죠.
피해자인 기니 출신 여성의 진술 외에 다른 객관적 증거는 없는 사건이었으나, 미국 경찰은 이륙하려는 항공기를 세우기까지 하면서 칸 총재를 전격적으로 체포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어제 뉴스를 보니 피해자의 진술이 신빙성 없다는 정황이 발견되어, 미국 검찰은 칸 총재에 대한 기소를 취소하는 것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일반인이라도 피해자의 진술 한마디만 갖고 체포한다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닌데, 하물며 칸 총재 같은 세계적 유명인사라면 이는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칸 총재의 체포소식을 듣고 미국 경찰이 너무 오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와 같이 사람을 신분에 따라 구분하지 않고 좌고우면하지 않는 미국 사법제도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칸 총재 사건에 대한 새로운 뉴스 때문에 프랑스 법조인들의 블로그에도 관련된 글이 올라왔던데, 조만간 이에 대해서도 다시 소개하기로 하겠습니다.
극장 안에서 촬영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 해피엔딩의 주인공이 된 할러 변호사가 역시 링컨을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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