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14일 금요일
프랑스 검찰의 가처분(référé) 신청
프랑스에서 오늘 7월 14일은 1789년의 대혁명을 기념하는 중요한 국경일입니다. 이날은 에펠탑에서의 불꽃놀이, 샹젤리제 거리에서의 군사 퍼레이드 등 대규모의 화려한 행사들을 만날 수 있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1년 전 이날 프랑스 남부의 휴양도시 니스(Nice)에서는 끔찍한 일이 있었습니다. 국경일을 맞아 불꽃놀이를 즐기러 나온 인파를 대형 트럭이 덮쳐 86명이 숨지고 400여명이 다치는 테러사건이 발생한 것이지요.
오늘 프랑스 일간지 'Le Monde'의 "니스 테러사건 : 파리 마치가 가판대에서 판매될 수 있게 되다(Attentat de Nice : « Paris Match » reste en kiosques)" 기사와 'Ouest-France'의 "니스 테러사건. 파리 마치는 사진들을 공개하고, 검찰은 잡지의 판매중단을 요구한다(Attentat de Nice. Paris Match publie des photos, le parquet demande le retrait du magazine)" 기사를 보니, 이와 관련한 소식이 있어 소개합니다.
이번주 발행된 프랑스 주간지 '파리 마치'(Paris Match)는 이 니스 테러사건 1주년을 맞아 당시 상황이 촬영된 CCTV 영상 장면들을 특집기사에서 공개하였는데요, 유족들이 여기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이 잡지에 실린 참혹한 사진들이 피해자들의 존엄성을 침해한다는 주장입니다.
파리 마치 측은 독자들의 알권리가 보장되어야 하고 이 기사가 니스 테러사건을 잊지 말자는 취지의 기사라고 맞섰지만, 유족단체의 변호인은 곧바로(2017년 7월 12일 수요일) 파리 지방검찰청의 대테러 전담부서에 위 잡지의 판매중단 가처분을 신청하여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이에 검찰은 다음날(목요일) 곧바로 파리 지방법원에 잡지의 판매중단 가처분(잡지 자체의 판매중단 뿐만 아니라 어떤 형태의 배포도 금지, 특히 파일 형태의 배포 금지)을 신청하였고, 법원은 이날 당일 법원장이 참여한 합의부(판사 3명)에서 변론절차를 열어 신속하게 결론을 냈습니다.
즉, 법원은 잡지에 실린 사진 중 2장이 피해자들의 존엄성을 훼손한다고 보면서도, 이미 잡지가 판매되고 있는 상태여서 판매중단이 효과적인 조치라고는 볼 수 없으므로 판매중단을 명령하지는 않겠으나, 추가적으로 잡지를 배포하는 것은 금지한다고 결정하였습니다.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듭니다. 먼저 여기서 '가처분'이라고 번역한 '레페레(référé)'라는 게 뭐냐, 그리고 왜 주로 형사사건을 취급하는 검찰에서 레페레를 신청하느냐 하는 점입니다.
저는 프랑스의 민사소송 절차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사실 레페레에 대해서도 잘 알지는 못합니다. 궁금하여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니, 레페레는 민사소송법에 규정되어 있는 우리의 가처분이나 가압류와 유사한 절차로서, 민사상 또는 행정상의 긴급한 처분이나 보전조치가 필요한 경우에 당사자의 신청으로 변론절차를 열어 결정하는 임시처분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어느 문헌에선 이를 '가처분'으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어떤 문헌에서는 이것이 우리의 가처분이나 가압류와 똑같은 것은 아니라는 이유로 그냥 '레페레'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아무튼 레페레가 대충 뭔지는 알 것 같은데, 형사절차와는 별 상관 없어 보이는 레페레 절차에 왜 검찰이 관여하는 것일까요.
검사가 주로 형사절차와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것은 맞지만, 그 역할이 형사절차 내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우리 민법의 가족편 부분을 보면 검사가 친권자 지정, 후견인 선임, 친양자 파양 등 일부 가사절차에서 당사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공익의 대변자라는 지위에서 검사로 하여금 형사절차가 아닌 다른 분야의 절차에도 관여하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프랑스는 검사가 관여하는 범위가 우리보다 더 넓습니다.
사법조직법(Code de l'organisation judiciaire) 제L122-2조는 "검사장은 지방법원이 관할하는 제1심 절차의 모든 사건에 대해 검찰권을 행사한다(Le ministère public est exercé, en toutes matières, devant toutes les juridictions du premier degré du ressort du tribunal de grande instance par le procureur de la République)", 제L122-3조는 "고검장은 고등법원이 관할하는 제2심 절차와 중죄법원의 모든 사건에 대해 검찰권을 행사한다(Le ministère public est exercé, en toutes matières, devant toutes les juridictions du second degré et les cours d'assises instituées dans le ressort de la cour d'appel par le procureur général)"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고검장과 검사장은 형사절차이든 민사절차이든 해당 법원의 모든 사건에 관여할 권한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실무상 모든 사건에 관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법령의 정당한 적용을 청구할 필요가 있는 사건'에 대해서는 검사가 관여하여 법원을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한 예로, 파리 고등법원의 경우에는 세 부서가 있는데, 주로 형사사건을 담당하는 형사부와 재정경제범죄 전담부 외에 '민사부'라는 부서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드는 의문은, 원래 가처분이라는 것은 일단 긴급한 필요가 있어 임시로 하는 처분이므로 그 이후에 본안소송이라는 정식 절차가 따라온다는 게 전제되어야 하는 것인데, 검찰이 신청한 레페레를 법원이 받아들이면 검찰은 나중에 어떤 본안소송을 제기할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
이 사건의 경우, 나중에 검찰이 직접 원고가 되어 잡지사들이 유족들의 정신적 손해를 배상하라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게 되는 걸까요. 실제 프랑스 검찰이 이런 일반적인 형태의 민사소송도 직접 제기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앞의 기사를 읽어보면, 파리 검찰청에서는 법원에 레페레를 신청함과 동시에, 파리 마치 측을 상대로 '예심수사의 비밀 침해와 은닉' 혐의의 수사를 개시하였다고 합니다. 프랑스 형사소송에서는 피고인이 죄가 있냐 없냐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통상 피해자도 사소당사자로서 재판에 직접 참여하여 피고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이에 따라 한 재판에서 피고인의 유무죄와 손해배상액이 한번에 결론나는 형태가 일반적입니다. 따라서 위 사건의 수사 결과 파리 마치 측의 혐의가 인정되어 기소되고 형사소송이 열리게 되면 아마도 유족들의 손해배상 청구도 함께 이루어질 것인데, 그렇다면 결국 이것이 위 레페레의 본안소송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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