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15일 일요일
영화 "4월 이야기", 그리고 "空の鏡"
올해 4월에야 비로소 알게 된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4월 이야기(四月物語)".
이게 1998년 3월에 공개되었다니까 지금으로부터 무려 20년 전 영화인 겁니다. 그런데 그만 이 20년 전 영화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배우, 풍경, 벚꽃, 음악, 빨간 사다리와 빨간 우산, 자전거, 자잘한 에피소드들 등등, 이 영화의 모든 것이 다 좋습니다.
기본적인 줄거리는, 고등학교 1년 선배를 짝사랑하던 홋카이도의 여학생이 도쿄로 떠난 선배를 만나기 위해 고3 후반기 6개월 동안 벼락치기 공부를 한 끝에 이 선배가 다니는 도쿄의 대학으로 진학하는 데 성공하고, 혼자만의 새로운 객지생활에 적응해가며 지내다 마침내 그 선배와 조우하여 통성명하는 데까지는 성공하였다.........는 내용입니다. 분위기 아주 잔잔하고 따뜻하고 설레고 덩달아 다시 대학 신입생이 되고 싶어지고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주인공은 멋지기만 하고, 아무튼 4월 분위기에 아주 잘 어울리는 영화입니다. 런닝타임이 1시간 약간 넘는 정도에 불과해, 시간날 때 잠깐씩 보기에도 전혀 부담이 없습니다.
그런데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보면 두들겨 맞기 딱 좋은 영화겠다 싶기도 합니다. 이거 너무 남자들의 환타지로만 잔뜩 치장되어 있는 내용 아닌가요.
어떤 모르는 여자가 나를 짝사랑하며 내 주위에서 늘 나를 주시하고 있다, 그런데 그 여자가 무려 엄청난 미인에다 착해 보이기까지 한다, 굳이 억지로 하나 더 덧붙이자면 혼자 이사 오면서 그럴 듯한 아파트에서 자취를 시작하고 이삿짐이 거의 신혼살림 수준이고 오자마자 자전거 한 대 턱 사서 타고 다니고 걸핏하면 서점에 들러 3만 원 어치나 되는 책들을 과감하게 사모으는 모습들을 보면 분명히 집이 재력까지도 갖췄다, 결국 이렇게 남자들의 시각에서 남자들이 보고 싶어하는 내용들만 늘어 놓았으니 환타지도 이런 환타지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남자들의 이런 말도 안 되는 억지 환타지를 예쁘고 화사하기 그지 없는 영상으로 아름답게 포장까지 해서 이걸 미화시키다니요.
여자도 참 그래요, 자신의 미래나 꿈 같은 정말 중요한 것을 위해서도 아니고 단지 남자 하나 때문에 가족 다 버리고 멀리 나와 혼자 살고(일본은 고교 졸업생들이 우리처럼 무조건 성적순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만 몰리는 게 아니라, 대부분 자신이 살고 있는 지방의 대학으로 진학한다고 하네요), 자신의 적성이나 장래 희망은 죄다 무시하고 엉뚱한 대학에 와서 등록금을 낭비하고 있다니요(어떻게든 선배가 다니는 학교를 목표로 하고 온 것이니, 무조건 점수에만 맞는 학과를 선택했겠죠).
여자도 참 그래요, 자신의 미래나 꿈 같은 정말 중요한 것을 위해서도 아니고 단지 남자 하나 때문에 가족 다 버리고 멀리 나와 혼자 살고(일본은 고교 졸업생들이 우리처럼 무조건 성적순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만 몰리는 게 아니라, 대부분 자신이 살고 있는 지방의 대학으로 진학한다고 하네요), 자신의 적성이나 장래 희망은 죄다 무시하고 엉뚱한 대학에 와서 등록금을 낭비하고 있다니요(어떻게든 선배가 다니는 학교를 목표로 하고 온 것이니, 무조건 점수에만 맞는 학과를 선택했겠죠).
근데요, 저는..............................그냥 막 두들겨 맞겠습니다. 그냥 이 영화 좋아할랍니다. 이성이 제 감성을 어쩔 수가 없네요.
이 영화는 이렇다할 사건이나 갈등도 없고 객지생활하는 신입생의 소소한 일상만 잔잔하게 보여주는데요, 그 잔잔한 와중에도 여기저기 재미있는 개그 코드들이 들어있어 좀처럼 지루해지지 않게 해줍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여자 모델이 활짝 웃고 있는 입간판 옆에 앉아 있다가 이걸 보고 흉내 낸답시고 혼자 실없이 씨~익 웃어보는 장면, 주인공이 같은 과 친구의 권유로 낚시동아리에 가입하였는데 알고보니 그 친구는 동아리에서 공짜 릴을 받기 위해 주인공을 데려와 가입시킨 것이라는 사실이 들통나는 장면, 브래드 피트 주연의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영화를 본 적 있냐는 낚시동아리 회장의 질문에 주인공이 브래드 피트가 곰에게 물려죽는 영화(이 영화는 '가을의 전설') 아니냐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해서 사람들을 얼어붙게 만드는 장면, 가족과의 전화통화를 제때 끊지 못해 모처럼 찾아온 옆집 손님이 혼자서 민망하게 카레를 먹게 두는 장면, 결국 다시 만나게 된 선배가 갑작스런 비를 만난 주인공에게 주려고 펼치는 우산들마다 죄다 살이 나가 망가져있는 장면 등등.
한편, 이 영화의 주인공을 연기한 마츠 타카코(松たか子, Matsu Takako)는 배우로서 뿐만이 아니라, 1997년 10월 "空の鏡(Sora no Kagami)"라는 제목의 데뷔앨범을 발표하면서 현재까지 가수로도 맹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이 슌지 감독과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이 해 데뷔앨범의 뮤직비디오 제작을 의뢰하면서였다고 하는데요, 감독이 영화도 함께 찍자고 해서 "4월 이야기"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영화와 뮤직비디오의 촬영이 거의 같은 때 같은 장소에서 진행되었구요.
한편, 이 영화의 주인공을 연기한 마츠 타카코(松たか子, Matsu Takako)는 배우로서 뿐만이 아니라, 1997년 10월 "空の鏡(Sora no Kagami)"라는 제목의 데뷔앨범을 발표하면서 현재까지 가수로도 맹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이 슌지 감독과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이 해 데뷔앨범의 뮤직비디오 제작을 의뢰하면서였다고 하는데요, 감독이 영화도 함께 찍자고 해서 "4월 이야기"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영화와 뮤직비디오의 촬영이 거의 같은 때 같은 장소에서 진행되었구요.
그런데 제가 구글링을 해보니 우리나라에 저 뮤직비디오(정확히는 뮤직비디오 모음집이고, 정식 명칭은 "film 空の鏡"입니다)는 별로 소개가 안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서 쉽게 영상을 찾을 수도 없구요(잘 검색을 해보면 딱 한 군데서 볼 수 있긴 합니다). 앨범 홍보를 위해 그냥 공짜로 뿌려지는 뮤직비디오가 아니라, 마치 영화처럼 별도의 독립된 저작물이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할 수 없이 저는 일본 아마존에서 DVD를 구입했는데요, "4월 이야기"를 뭉클하게 보신 분이라면 분명히 이 뮤직비디오 모음집도 좋아하실 겁니다. 데뷔앨범에 들어있는 일곱 곡의 뮤직비디오를 한데 모아 놓은 것인데, 각각의 곡에 뮤직비디오를 위해 새로 찍은 장면에다 영화에 이미 등장하는 장면을 연결시키기도 하고, 마츠 타카코가 영화에서 입었던 의상을 그대로 입고 영화 속에 나오는 장소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영화에서처럼 주인공의 자취집에서 카레를 만들어 영화 스텝들에게 대접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특히 마지막의 연주곡을 위한 영상물은 아예 영화의 메이킹필름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영화를 만들 때 이런 상황이었구나 하고 재밌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뮤직비디오 모음집의 총 런닝타임은 28분이나 돼서, 영화의 짧은 분량에 허전해 하셨던 분들에겐 충분한 보너스 영상이 될 수 있겠습니다.
마츠 타카코의 목소리는 우리나라 가수로 치면 서현 스타일의 목소리입니다. 자극적이지 않고, 맑고 편안하고 평범합니다. 설탕이나 계란 안 들어가서 맛은 심심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질리지 않고 매일 먹을 수 있는 바게뜨처럼요. 그래서 요즘 제 출퇴근길은 늘 마츠 타카코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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